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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을 리뷰해주세요
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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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노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진정 노년의 시기와 마주했을 때 내 일상은 어떤 것들로 채워질지 나름 설계를 해보곤 한다. 그리곤 잊혀져있던 죽음의 사유에서 삶의 무상함에 침울해 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예기치 않게 손에든 김열규 선생의 『노년의 즐거움』에서 답변을 듣게 되었음은 다행이랄 수 있겠다.  

자기주장만 늘어 고집스럽고, 탐욕스러워 가뜩이나 주름져 흐물흐물 탄력을 잃은 몰골이 더욱 추해진 노인들을 보면 노년에 대한 연민보다 욕지거리와 외면을 선택하게 한다. 또한 자기 한 몸 가누지 못하고 뒷방에서 불안에 가득 차 외치는 악다구니나,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푸념도 노년에 대한 불쾌와 짜증을 더하기만 한다. 이렇듯 노년에 대한 불만스러운 인식으로 점차 나이 들어감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의 경과는 추함과 무기력에 대한 불안으로 노년을 증오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년이 이러한 불쾌함의 덩어리만은 아님은 분명하다. 위인들의 고고한 용모는 모두 노년의 모습들이지 않은가, 그리고 완벽하게 성숙한 삶을 노숙(老熟)이라 하고, 솜씨나 재주가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을 노련(老鍊)이라 하듯이, 나이들만큼 들은 노년은 삶의 지고(至高)의 경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농암 이현보의 형형한 눈빛과 올곧은 이목구비의 초상은 당당하고 자신에 찬 노숙과 노장(老壯)을 보여준다. 김열규 선생은 그래서 행복한 노년을 지키기 위해 다섯 가지의 금지와 권장을 이야기한다. 군소리 하지 말고, 노(怒)하지 말라, 기죽는 소리 하지 말고 노탐을 부리지 마라, 그리고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외려 무심(無心), 무욕(無慾), 무탐(無貪)의 허심탄회함, 유유자적(悠悠自適)할 수 있음은 노년의 축복이다. 그래서 사색과 달관을 말 할 수 있지 않는가!

매화와 노송, 남명 조식 선생의 기세등등한 표정에서 충천(衝天)하는 노기(老氣)를 느낀다. 87세의 마라토너, 70세의 증권사 투자상담사처럼 뒷방의 노인이 아니라 노년(老年)은 활력 넘치는 노당익장(老當益壯)을 과시하는 지성과 영혼의 최절정기, 황금기임을 깨우쳐준다. 오히려 싱그런 초록, 노숙과 노장으로 무장된 새로운 삶의 시기임을 역설한다.

죽음은 삶의 뜻을 일으켜 세우는 의미로, 그리고 “머물지 않음에 머물고서야 비로소 머묾”이라는 ‘주무주주(住無住住)“의 삶에 대한 이해, ”이거 ’낙(樂)‘ 아잉교!“하는 촌노(村老)의 달관에서 노년의 숙성과 경외를 느끼게 된다. 노년은 멋지고 즐거운 삶의 한 시대임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노(老), 지고의 경지를 말하는 이 어휘에 스며있는 자긍심이 이 책에는 빼곡하다. 아직은 장년인 사람들, 그리고 노년에 접어든 모든 이들에게 파릇파릇한 삶과 관록의 자부심이 기다리는 노년의 멋을 깨우쳐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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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를 리뷰해주세요.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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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민주항쟁도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당시 20대 학생이었던 이들도 이젠 50대의 중년이 될 만큼의 시간이니 그 참혹과 격동의 순간을 삶의 내내 기억하기에는 충분히 버거운 시간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쟁취한 것이 오늘의 민주주의 한국이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다시금 되새기는 것은 그 숭고하고 고귀한 이들의 숫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깨어있는 정신, 그리고 국민의 분노의 힘을 망각하는 독선적인 정치권력에 대한 각성이라 할 수 있겠다.

제목 ‘100℃’는 바로 이러한 도달해야하는 민주주의의 올 곧음을 위한 민중의 끓어오르는 열정의 표현이다. 국민의 의지를 훼손하며,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의 자유를 탄압하는 독재 권력과 전체주의적 정책을 지향하는 정치사회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파괴한다. 수없이 많은 젊은 죽음 들을 통해 이룩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 상실하는 구시대로의 회귀는 생각만으로도 암울하다.

공수부대원들이 동원된 무참한 학살, 정경유착의 사악한 경영주들의 노동 착취와 인권탄압, 민주를 외치던 학생들의 무차별적 구속과 고문, 그리고 강제입영과 싸늘한 시신, 이러한 잔혹한 폭력과 야만의 시대가 바로 70,80년대의 독재정권의 그늘 하에 시름하던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86년 6월 29일, 내내 99℃에 머물러있던 민중의 힘과 열정이 폭발하는 날, 우리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쟁취하였다.

아마도 사실의 호도와 왜곡에 눈과 귀가 멀어버린 무지와 자신이 서있는 사회의 현실을 외면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바로 그 시대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기록의 만화집은 생생한 우리 현대사를 전해 줄 것이다. 국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정치는 국민을 기망(欺罔)하기 시작한다. 정의와 공정성을 손상시키고 권력을 국민의 기본권 침탈에 사용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분노의 힘을, 국가 주체자로서의 국민은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바로 이러한 참여의 의미를 이 저술은 우리의 보편적 일상사를 통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잘 잊어버리는 사회, 이제 이러한 오명을 벗어버리고 한층 성숙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깨어있는 국민, 절대 잊지 않는 국민이 중심이 되는 정치와 국가, 그래서 민주주의 정신을 파괴하는 어떠한 권력도 세력도 발붙일 수 없는 사랑과 평화와 신뢰가 넘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리라. 어느새 망각하려는 우리의 인권선언이자 권리장전을 쟁취하고자 했던 그 시대와 나날들을 결코 잊지 말자.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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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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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해금이 등‘아홉 송이 수선화’가 밟았던 인생길은 그 가장 예뻤을 시절을 앗아가 버린 우울하고 고통스런 시간으로 우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메케한 냄새와 희뿌옇게 도시를 점령한 최루가스와 차 밑창을 하늘로 한 채 뒤집혀 불타고 있는 경찰차량, 연일 새까맣게 몰려드는 시위학생과 군중, 그리고 착검한 소총을 둘러멘 공수부대 계엄군, 짭새한테 용돈 받고 동료를 밀고하는 파렴치한 녀석들, 계엄군 검열에 삭제되어 시커멓게 이 빠진 신문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소설처럼 우리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밤하늘 아래 원을 두르고 어깨동무하여 민주를 외쳐댔었다. 당시 대학신문사에 있었던 나로서는 거의 시위현장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밤이면 낯 시간의 시위를 마치고 인근의 대학으로 몰려드는 지방대 학생들까지 합세한 한 밤의 열기를 취재하느라 날 새기를 밥 먹듯 하기도 했다. 경애, 수경, 승규, 이들의 터무니없는 주검이 일상처럼 우리들의 환경이 되어버린 그런 야만의 시대였으니, 그 가장 예뻤던 스무 살은 온통 상실에 휩싸여 있었을 뿐이었다.

작가는 그러나 온 몸으로 살아내었던 스무 살의 해금이와 정신, 승희, 만영이...가 가장 예뻤다고 기억한다. “다른 사람의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좀더 아름다워질 거야”하는‘시인(김진혁)’의 위로처럼 그네들의 울음이 “야만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바꾸”고, 한국 민주주의의 진일보를 만들어냈으니 그보다 예쁜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

30년 전 그때 민중들의 삶은 정말 고단했다. 늦은 저녁 동네 언덕길을 오르다보면 길가에 연탄불을 내놓고 국수 삶을 물을 끓이는 이웃들이 허다했다. 오랜 군부독재의 그늘아래 신음하던 서민들의 삶은 뒤틀릴 데로 틀려있어 노란 불빛이 비추는 단란한 가족, 그것이 희망이던 음울한 시절이었다. 스무 살 해금이들은 그래서 공장으로 막노동으로, 이념의 장으로 변질된 대학에서 ‘뚜뚜전’의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고, ‘혁명적 노동의 길’이라는 낯선 길로 내몰렸었다. 지금은 디지털단지라고 멀쩡하게 이름까지 바뀐 당시의 구로공단은 작품에서처럼 소외된 공장노동자들의 벌집이 다닥다닥 붙어 그야말로 “본능만이 살아서 꿈틀대는 동네”, “야만의 시간이 지배하는 동네”였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기막힌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의 정부발표는 비밀주의와 폭력성, 국민 기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독재정권의 파렴치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악아, 우지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하고 해금이를 토닥여주는 승희 엄마의 품속, 아주 오래 묵은 엄마의 냄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잊어버렸던 그 처절했던 기억들을 풀어낸다.

이 작품은 이렇듯 오늘의 우리들이 이루어낸 소중한 가치들을 당시대를 절절히 앓아왔던 해금이 들의 모습을 통해 잔잔하지만 격렬하게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작품 어디에도 극한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은 없다. 냉혹하고 야멸치게 쏴 부쳐야 할 때 작가 특유의 유머와 위트 넘치는 문장이 더욱 속 깊은 의미로 다가서게 한다.

상경한 아이들을 데려다 매매하는 인간쓰레기의 “자아 여러분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제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기도는 굳게 다물어졌던 입을 파~아~하고 터지게 한다. 또한, 노동자와 운동하는 이들과의 괴리, 즉, 당시 노동운동의 모습을‘일터’와 ‘현장’, ‘일꾼’과 ‘존재이전’이란 허풍스런 비난에 슬쩍 담아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품은 그냥 노동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1980년 해금이 들의 그 서럽기 그지없는 눈물들을 아른거리게 하고,  건강함과 정당함이 배어있는 아름다운 그네들의 얼굴, “짜디짠 소금물이 어쩔 땐 영혼 속까지 배어들어오는 느낌”으로 시대를 살아온 그네들을 잊을 수 없게 한다. 진정 가장 예뻤던 스무 살의 그 터무니없던 시절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그러나 통렬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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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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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술기행문을 순수한 미술에세이로 읽기위해서는 몇 가지 부담스러운 표기를 감수해야 한다. 일본식 어휘의 고집(예: 원주민-선주민), ‘한국’의 표기를 거부하고 ‘조선’을 주장하는 작자의 정체성에 대한 거부감을 잠시 물리치는 일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別論으로 하자)

몇 개의 장은 독일 등지의 미술관 방문을 통하여 확인하고 감상된 표현주의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한 작자의 단상이고, 일부는 대담형식을 차용한 미술평론이며, 또 일부의 장은 주관적 미술에세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미 이들 에세이는 오래전 일본의 잡지들에 발표되었던 내용들을 재구성한 것이어서 부분적으로 시간의 왜곡현상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작자의 초지일관하는 주제만큼은 분명하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 ‘에밀 놀데’의 고향 ‘제뷜’의 작은 미술관을 향한 작자의 기행에서 작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다.”라고 정의하고 미의식은 역사적, 사회적 산물일 뿐이라는 주장과 상통한다.

그래서 독일 표현주의 운동의 핵을 형성한 놀데를 중심으로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로빈스 코린트’ ‘조지 그로스’의 작품을 통하여 주제를 표현하는 미술, 즉, “동시대인의 찌푸린 얼굴에 거울을 들이대는” 진실주의 회화에 집중한다.  내적 충동표현의 광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어 이의 연장선에서 전쟁의 기억을 그려낸 신즉물주의(新卽物主義) 화가 ‘오토 딕스’에 대한 찬양적 수사가 한 개의 장을 이룬다. 전쟁의 참혹한 폐해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는 그의 전쟁화(전쟁제단화)를 비롯한 나치의 퇴폐화(畵) 박해 등 일련의 추함의 미적 추구를 설파한다. 이는 한국미술에 전쟁화가 거의 없고 예쁜 미술에 집착한다는 일종의 한국미술에 대한 비판과 결합한다. 즉 한국의 근대화란 일본의 식민지로서 강요당한 2급 시민의 입장에서 경험했기에 완전한 근대화 주체일 수 없었기에 그렇다는 것이고 또한 국민들의 미의식을 통제하고 지배하려했던 한국의 군사정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에 공여한다. 결국 미술은 20세기 초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들이 보여주었던 체제저항과 소외된 삶들에 대한 적나라한 표출을 담아내야 한다는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전쟁, 자본주의 모순, 인간의 탐욕, 시대상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주장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한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폭력의 증언자로서 ‘펠릭스 누스바움’이나 불신에 대한 광적 숭고로서의 ‘카라바조’의 해석은 작자의 특이한 집착과 열광을 보게 한다.

한편 ‘반 고흐’의 원근법의 권력에서의 탈피와 예술과 재화의 모순적 병행에 대한 당위화는 저작자 자신과의 동일시는 물론 미의식에 대한 작자의 전반적인 신념을 위한 기반이 된다.

역시 증언예술의 일환으로 사진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유대인 학살사진자료를 비롯하여 피카소의 한국전쟁에서의 양민 학살을 주제로 한 ‘한국에서의 대학살(The Massarcre in Korea)'까지 인용하면서 1948년 제주 4.3사건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현대 예술의 세계에서는 부재의 표상이 학살이나 전쟁을 예술적으로 표상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적절히 묻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추도를 의미한다.”고 전쟁과 인간의 잔혹성을 빗대어 과거의 한국을 비하하기도 한다.

결국 이 미술기행문은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재일한국인이 한 발은 한국에 담그고, 일본에 거주하며, 한국은 부정하고 조선을 주장하며, 남북분단이 미국과 반민주세력에 동조하여 김일성의 민족세력을 중심으로 한 통일을 방해한 결과라고 믿는 사람의 낡은 이데올로기 예술을 동원한 분노 표현의 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대에 대한 비판과 참여를 담는 미술이라는 이 저작물이 관통하는 주제를 예술사조에 대한 해설이나 비평으로만 읽기에는 순수치 못함으로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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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리뷰해주세요.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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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서울이, 그리고 한국의 면면이 어떻게 보여 지고, 이해되고 있는지에 대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사실 이러한 단상들에 대한 내용은 100만 명을 넘는 외국인이 거주하는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신선한 소재거리도 내용도 전해주지 못한다.

특정분야에 초점을 맞춘 전문적 진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TV 연예프로그램의 말초적이고 통속적인 에피소드의 나열도 아닌 어중간한 내용으로 이들의 관심사에 그렇게 집중할 화제가 없다.

영어선생, 디자이너, 화가, 영화학자, 댄서라는 직업과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이들이 서울에서 어떤 일상과 접하고 그 가운데 느낀 우리사회에 대한 소견들을 마냥 호기심으로만 바라보던 시대가 아닌 오늘에는 그들이 어느 장소를 좋아하고, 한국인들이 어떻게 비춰지는지와 같은 일반적 관심사를 나열하는 이야기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파란눈의 영어선생님,‘로버트 프리먼’처럼 한 인간으로서 아시아의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일궈나가고, 인생의 깊이를 깨달아가는 모습, 아이들의 순수와 성장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선생님인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진정하게 다가온다. 한국인과 섞여 지내고 그들의 음식과 문화에 익숙해지지만 어쩌지 못하는 고독과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이방인의 진솔한 면모가 보기에 좋다.

모국에서보다 삶의 자유로움을 더욱 만끽한다는 이들과 경쟁의 일상에 빼꼭히 점령당해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네의 비견되는 삶에서 낯섦에의 도전과 고독함의 사유를 통해 삶의 진정성을 보는 것은 작은 발견이 될 수도 있다.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인‘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방인들의 지적이 있지만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판타지와 전근대적인 예스러움과 동의어만 같아 선뜻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무차별적인 도시 개발 능사를 벌이는 우리의 안목 부족은 안타깝고, 또한 경계되어야 하는 일면이고, 이에 더해 종로가로변의 혐오스런 도시라인의 훼손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이도 저도 아닌 흉물스런 모습은 부끄럽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서울 사람으로 동화된 이가 있는가하면 한국이라는 아시아의 한 지역에서의 신나는 경험을 안고 자신의 나라에 돌아갈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시선에서 묻어나는 소견들을 맹목적으로 수용할 이유도 없겠지만 한결같이 조언하는 한국인들의 서구의 무차별적 흉내와 자신의 것을 잃어버려 궁극에는 한국을 표현할 어떠한 것도 남지 않을까한다는 우려는 오로지 물질에 현혹되어 소중한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우리들에게 따끔한 충고로 새겨도 무방하리라.

그렇게 새로운 식견이나 시선을 담아내지 못하고 진부한 동어반복의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된 이 소 책자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접기 힘들지만, 지극히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평범한 이들 이방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미흡하나마 들어보는 짧은 기회로서 의미를 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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