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한 멜모스·아듀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파롤앤(PAROLE&)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침 사건 재현의 한계를 기억과 서사측면에서 성찰한 오카 마리의 저술 복간과 때를 같이해 리얼리티 문학에 비판적 시선을 던졌던 발자크의 대표적 두 작품이 번역 출간되었다. <회개한 멜모스><아듀> 두 작품은 발자크의 인간극에 속하는 세 개의 하위 연구(풍속, 철학, 분석연구)’ <철학연구>에 속하는 작품으로, 환상과 기억, 현실의 관계성과 그 재현 ()가능성에 대한 고찰을 거의 직접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소설이다. 오카 마리는 기억서사의 한계를 논의하는 한 축으로 발자크의 <아듀>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쟁이라는 인간의 가장 잔혹한 폭력행위와 그 폭력적 사건 내에 존재했던 인간 고통의 기억 문제를 다룬다. 이것은 재현성의 문제로 부상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은 물론 특히 역사 서술에 있어 극한적 대립을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이 아듀를 읽게 된 동기다.

 

1. 소설, <아듀(Adieu)>에 대해

 

발자크의 소설 모두가 인간극이라는 인간에 대한 전반적 통찰인 까닭에 그는 인간심리에 대해서는 여느 과학적 연구를 앞서고 있다고까지 여겨진다. 때문에 읽는 사람들의 집중을 쥐어 채는 데 있어 달관의 경지를 보인다. 작품 도입부에는 필리프 드 쉬시 대령과 친구인 달봉 후작이 실패한 사냥을 거두고 이동 수단 하나 없이 지친 몸으로 낯선 황폐한 건물을 발견하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단지 건물과 주변 풍경의 묘사에서 마주하게 될 사건이 비유의 언어로 촘촘하게 박혀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어떤 인위적인 손질도 닿지 않은 (...) 야생의 은둔지에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세상의 풍문이 이 안식처에 다가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아름드리나무들발치에 서면 인간사 희로애락은 가뭇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100쪽 에서

 

야생’, ‘막아주는 역할’, ‘사라진 희로애락등의 표현은 등장인물들의 속성이나 전개될 사건의 내용을 이미 함축 예시한다. 어쨌든 이러한 폐허의 풍경들이 매혹적 시정(詩情)과 더불어 몽환적 관념을 독자가 공유하게 하며 텍스트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특히 달봉 후작은 일찌감치 저주의 시선으로 바뀌어 그 집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데,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사는 궁전이로군.”이라며 망령들의 세계에 속한 미지의 여인이 스쳐지나갔음을 말하는 대목이다. 이윽고 그 미지의 여인은 두 남자와 얼굴이 마주치자 달려가며 아듀!”라 말하고 사라져간다.

 

이때 필리프 대령은 풀밭위에 죽은 사람처럼 뻗어버리는데, 그는 패퇴한 전쟁의 퇴각 길에서 이별하고 이미 죽었다고 여긴 연인을 상기했음에 분명한 충격을 상징하는 장면일 것이다. 병석에 누운 필리프에게 달봉은 그녀가 실성한 방디에르 백작부인이라 전한다. 여기까지가 작품의 주요 도입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는 영화감독 스필버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시작 장면을 가득 채운 전쟁터의 리얼한 재현을 통해 전쟁의 폭력성을 노출하였듯이 발자크는 작품의 중간에 나폴레옹 군의 러시아에 패퇴한 전쟁 중 하나인 베레지나 강 도하 전투를 재현한다.

 

허기와 갈증과 피곤과 수마로 빈사 상태에 빠진 병사들 (...) 최악의 지경까지 몰린 그 무리에 끝도 없이 떨어지는 포탄들은 그저 불편함이 또 하나 추가되는 것일 뿐이었다.며 극한 상황에서 눈 덮인 광막한 허허벌판에 자신들의 목숨을 잔혹한 무관심에 맡긴 채 아무 곳이나 누워 잠들어 죽음으로 돌진하는 3만 명의 불쌍한 군인들의 전경이 흐른다.  제아무리 전쟁의 참혹성을 사실에 근접하도록 재현하더라도 손가락 사이로 무수한 사실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발자크는 리얼리티한 재현이란 것의 한 실례를 보여주려 한 것이라 여겨지는데, 대체 그것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반증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다의적 주제를 담고 있는데, 그 하나인 전쟁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측면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후대의 사가들은 발자크의 베레지나 퇴각 장면의 묘사를 칭송한 것 같은데, 이는 작가의 의도와는 아마 상당히 동떨어진 이해였을 것이다.

 

방디에르 백작부인인 스테파니는 당시 필리프 드 쉬시 중령의 정부(情婦)였으며, 그녀는 남편인 방디에르 백작의 종군에 동행한 비방디에르(vivandiere)’였다. 이는 군인 남편을 따라 부대에서 세탁, 간호 업무를 지원하는 종군 아내를 이르는데, 프랑스는 20세기 초에 이 관행을 폐지하였다니 여성이 이러한 성적착취 대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불과 100년 전이었음을 시사한다. 손에 닿을 정도로 근접한 러시아군을 피해 도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혹한의 강을 건너야 하고, 필리프는 연인을 위해 마차를 부수고 잔해들을 그러모아 뗏목을 만들지만 생존을 위해 몰려든 병사들로 인해 가까스로 방디에르 백작부부만 승선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때 스테파니는 필리프에게 몸을 던지고 으스러지도록 껴안으며 입술을 맞추면서 아듀!”를 남기고 떠나지만, 남편은 도하(渡河)중 강물에 떨어져 죽고, 그녀는 러시아 군대에 2년 동안 끌려 다니면서 비루한 인간들의 노리개로 착취당한다. 전쟁이 끝나고 10여 년이 지난 스테파니가 실성한 사람이 되어 오직 본래의 뜻을 상실한 아듀만을 소리내는 이유는 이 같은 전쟁의 폭력성에 기인한다.

 

 

여자는 그 엄청난 폭력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충실하게 재현됨으로써 과거가 현실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을 차단, 철저하게 망각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었음을 신체가 자각했다는 의미이다. 오직 실성만이 그녀를 살아있게 하는 것인데, ‘사건의 기억이란 그녀에겐 곧 폭력이며, 그것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극한의 고통 그 자체임을 가리킨다. 소설은 이 폭력으로서의 사건을 통해 또 다른 주제를 역설하는데, 실성한 연인 스테파니를 전쟁 전 파리 무도회의 여왕이었던 바로 그 여인으로 돌리고자 하는 필리프의 욕망에 깃든 젠더(性化)의식에 대한 비판이다.

 


필리프는 그녀를 길들이기로 마음먹는데, 그것은 자기 정부의 본능에 대한 지배이며, 여성으로서의 복원에 대한 갈망이다. 필리프가 스테파니를 보호하고 있는 숙부인 의사에게 하는 말 속에 이러한 이기심이 드러난다. 그녀가 미쳤더라도 여자다움을 조금이나마 간직했다면 난 어떤 일이든 견뎠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야만적이고, 심지어는 수치심도 모르는 그녀를 바라보자니,..”와 같이 지난날 자신의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서 아름다움을 간직하던 여성성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결국 스테파니를 죽이려 하지만 의사의 방해로 미수에 그치고 추방된다. 의사는 그를 신랄하게 꾸짖는데,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오페라에나 나오는 그런 터무니없는 사랑이 필요했던 거군요.”라며 실성한 스테파니를 하나의 인간 존재로서가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필리프는 고아(高雅)한 여성으로서의 스테파니를 잃을 수 없는 것이고, 의사 몰래 베레지나 강을 도하 하기 위해 이별할 때의 장면을 위한 대규모 재현 작업에 돌입한다. 이로써 재현된 장면은 리얼리티에 대한 발자크의 냉혹한 비판 의지였던 것 같다. 필리프는 19세기판 스필버그로서 행위하는데, 실상에 가깝게 하기 위해 운하를 파고 폭약을 터뜨리고, 눈이 내려 벌판을 덮는 계절과 당시의 시간까지 정교하게 맞추는가하면, 복식과 병사들의 남루한 상태까지 그야말로 실감나게 형상화한 것이다. 스테파니를 잠에 취하게 한 후 마차에 태워 재현 장소로 달려가 그녀를 깨우고 준비된 뗏목을 두고 끔찍했던 진상의 재현 속에 빠뜨린다.

 

스테파니는 생생하게 되살아난 기억 속 현장에 자신을 옮겨놓고 필리프를 바라본다. 순간 아름다운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부시게 빛나는 젊은 여자의 광채를 되찾는다. 재현된 그 리얼리티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던 육체를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여자는 드디어 말한다. ! 필리프 당신이군요.” 그리곤 벼락을 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축 늘어지고,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듀, 필리프. 당신을 사랑해, 아듀!”, 여자는 필리프 대령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그녀는 말 할 수 없어 망각으로 지워버렸던 사건이 의식의 표면에 이르는 순간 죽은 것인데, 끝을 알 수 없는 사건의 흔적인 아듀라는 말만 남은 폭력적 사건으로서 기억은 완결되지 않는 채 하나의 정신적 외상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전이시키곤 소설은 종결된다.

 

이 소설은 몇 가지 고발을 하고 있는 것인데, 물론 전쟁의 폭력성은 주된 한 가지이고, 두 번째는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비판이다. 온전한 재현의 확실성을 주장하는 리얼리티란 것이 엄청난 틈새, 사건 자체가 지니고 있는 정작 중대한 사실성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럴듯함만 남겨진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여성의 젠더화에 은폐된 남성적 욕망의 이기주의적 시선에 대한 비판이다. 결국 기억의 서사를 표상하는 문제에 있어 발자크는 재현의 과신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고, 또한 그 자체가 또 다른 폭력을 내포하고 있음에 대한 사유의 촉구였을 것 같다. 리얼리티라는 사실성 재현의 욕망에는 필리프의 그것처럼 항시 불순한 동기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경종의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다.

 

2. 소설 <회개한 멜모스>에 대해

 

이 작품은 몇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어떤 환유(換喩)로서의 사유를 제안하는 것으로 갈음하려 한다. 발자크는 그의 인간극에 대한 보조적 참고서로서 일련의 생리학 시리즈를 썼다. 이 작품의 도입부는 이들 중 <공무원 생리학>을 연상시키는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그 신랄함이 가히 현대적이어서 비판의 대상 주체만을 바꾸면 그 의미가 손상됨 없이 그대로 전해질 것만 같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정신이 바짝 들게 하는데 다음과 같다.

 

식물계에서 화초재배업자가 (...) 번식시킬 수 없는 희귀한 잡종을 온실 교배를 통해

새로 만들어내듯이, 사회계에도 문명이 빚어내는 희한한 인간종이 하나 있다.”

-회개한 멜모스, 첫 문장에서

 

희귀한 잡종이자 희한한 인간종에 대한 구체적 인물에 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는데, 악행의 손으로 자잘하게 가지치기되면서 (...) 참한 아내와 성가신 아이들에 둘러싸여 나무처럼 자란다.”, 한마디로 악행의 손길에서 나무처럼 자라는 불의하고 부도덕한 관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그 인간종을 떠올려보라며, 덫에 갇힌 생쥐를 앞에 둔 고양이처럼 항상 돈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며, 선박 조타실에 못 박혀 있는 항해사보다도 덜 움직이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고, 왜소하다고 할 만한 몸집을 가진피조물이다. 왠지 저절로 온갖 도덕적 규범으로 지탄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는가? 이러한 신랄한 언어로 악덕에 대한 대담성과 법망을 빠져나갈 교묘한 능력까지 갖춘 패덕한 인간을 사회적 생리에 만연한 덕에 출현한 생태계로 그려나간다. 이것은 소설의 사건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예비고찰로서 써 진 것인데, 특히 폐쇄된 공적 권력 조직에 일찌감치 소집된 젊은이들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어떻게 부패하며 재능을 소진하는 가를 오늘 한국의 정치검찰과 비교하며 읽어나가면 꽤나 흥미로운 읽기가 될 것 같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문명의 진정한 상처를 미리 내다볼 만큼 뛰어난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라고. 허튼 소리가 아니라 정말 믿어도 될 만큼 흥미로운 작품이다. 글자 조합에 절대 누설될 수 없는 비밀이 담겨있고. 단조(鍛造) 흔적이 역력한 캐비닛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금융공무원이다. 금융공무원의 자리에 어떤 부패하거나 불의한 인간 무리를 대입해도 의미는 통할 것이다.  ‘멜로스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키는 악마에 가깝지만 발자크는 환상론자가 아니기에 현실 감각으로 환상을 끌어내린다. 사실주의 비판자이기도 했지만 환상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자로서의 관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줄거리는 독서의 흥미를 위해 남겨놓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아무튼 꽤나 흥미를 돋우는 작품이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서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오카 마리 지음, 김병구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주된 물음은 이것이다. 어떤 부조리한 폭력적 사건의 당사자 혹은 그 사건의 내부에 존재함으로써 정신적 외상이라는 고통을 입은 사람의 기억, 그 증언이 말로 완전하게 표현될 수 있는가와, 외부에 있는 사람이 그 사건을 표상하는데 어떤 결여도 없이 온전하게 모두를 재현할 수 있는가의 논의다. 그 답은 물론 불가능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과의 관계성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말 되어지지 않는다면, 불의하거나 부조리한 사건외부에 있는 우리들은 타자에 이르는 길을, 그 회로를 영영 알 길이 없어지며, 지금 존재하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무관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의와 부조리한 폭력이 반복되는 세계의 도래에 무능과 무력함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억의 표상과 그 표상인 서사의 한계란 무엇인지를 사유하고, 말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사건의 잉여, 바로 이 말로 표상될 수 없는 잉여를 잉태하는 사건의 표상 불가능성을 넘어서 어떻게 이를 타자와 나누어 가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비평적 논설은 1982년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 때 베이루트 시내에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기습한 레바논기독교민병대의 남녀노소를 불문한 무차별 대학살 사건으로 시작된다. 유대인 군사조직의 이같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학살은 반복되어 온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세계에 전달되지 못한 망각된 과거였다. (나누어 갖지 못한 기억이 그 불의가 반복 실행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여성 작가 리아나 바드르1991년에 발표된 소설 거울의 눈(The eye of the mirror)을 통해 전해지는데, 이는 베이루트 난민촌인 탈 자아타르포위와 학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7년에 걸친 인터뷰 끝에 얻어낸 증언들을 토대로 픽션으로 재구축한 작품이다. 소설의 서문에서 작가는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갖기를 바라는 바람을 담아 썼으며, 겪어 온 고난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사건의 기억을 공유해주기를 바라는 절박한 요청을 담아내려 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중요한 점은 사건을 재현하려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뜨거운 물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은 찬물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과 똑같이 느낄 수 없다.”는 것, 사건의 외부에 있는 사람은 내부에 있는 사람과 다르다는 것으로서, 사건의 참혹한 고통은 결코 말로, 글로 표현된 것을 넘쳐흐르는 잉여, 그것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경험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리얼(real)하게 보이는 서술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사건그 자체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금지명령을 텍스트에 써 넣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주제의식을 대변한다. 책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1장에서는 말 되어지기의 한계와 2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가지기 위한 서사를 사유한다.

 

1. 기억의 표상과 서사의 한계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인 듯한데, 탈출하다 붙잡혀 일본군 병사에 의해 태워지던 동료 위안부여성의 신체가 타는 냄새로 인해 고기 타는 냄새조차도, 그래서 고기조차 입에 대지 못한다는 증언을 통해 기억의 폭력성을 우선 문제시 한다. 잊어버리고 싶은 폭력적 사건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되살아와 폭력적 사건 전체가 그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과거로만 순치할 수 없는 생생한 폭력으로 그녀의 신체에 살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음을 말한다. 이것은 무언가 근원적일 경우, 먼저 느낄 수밖에 없는 사실은 인간의 언어가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며, 우리가 가진 언어의 윤곽 속에 완전히 담기지 않은 채 흘러넘치는 사건의 조각, 잘려나간 부분에 많은 것이 있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고 사유한다.

 

어쩌면 이 책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부분인데, 1830년에 발표된 발자크의 소설 아듀(Adieu)를 통해 바로 이와 같은 신체에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 되어 회귀하는 기억 또는 그 기억이 매개하는 사건을 나누어 갖는 것의 불가능성을 탐사하는 여정이다. 혹독한 전쟁에서의 후퇴 길에 이별한 연인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만났지만 여인은 정신을 잃은 미치광이 여인이 되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아듀라는 낱말만을 반복한다. 남자는 여자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지만 여인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최후의 방법으로 이별 당시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 장면에 놓이자 여자는 기억을 되찾지만 아듀를 외친 그 순간 여자는 죽어버린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기억의 문제를 우리들에게 당혹스럽게 던지는데, 여자에게 과거 이별의 사건이 가하는 폭력에서 육체가 오랫동안 살아남게 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몸에 일어난 모두를 잊어버려야만 했던 것이고, 그래서 철저하게 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충실하게 재현됨으로써 과거가 현실의 세계로 회귀했을 때 그 엄청난 폭력을 그녀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돌연 도래하는 사건의 기억은 곧 폭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고통 그 자체인 것이다. (작품의 세부 내용은 후일 별도 논의할 기회로 미룬다.) 소설에서 아듀라는 말은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없는 말, 자신에게 들씌워져 놓아주지 않는 말,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건의 흔적인 것이다. 이 소설의 위대성은 전쟁이라는 폭력적 사건을 완결시키지 않음으로써 작품 자체를 하나의 사건으로서 독자의 정신적 외상으로 전이(轉移)시킨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대한 물음을 던지는데, 전쟁과 같은 폭력적 사건을 리얼하게 표상하려는 욕망의 불순함을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오카 마리는 이 리얼리즘을 예리하게 비판하는데, 표상과 실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이 단어에 숨겨진 확신의 오만이다. 소설 아듀의 주인공 남자는 충실하게, 즉 리얼하게 장면을 재현한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첫 장면에 전장의 리얼리티한 재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고 묻는다. 아듀의 남자는 여자에게 연인이었던 자신을 인지시켜(즉 여자가 상실한 여성성의 복구) 자신의 나르시시즘적 욕망을 채우려는 것이며, 스필버그는 재현 불가능한 실제와 사건의 잉여, 타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로써 전쟁이라는 폭력의 기억을 억압하기 위한 욕망으로서 과잉의 리얼한 재현을 사용한 것이라 비판한다. 즉 서사는 근원에서부터 사건의 폭력성을 부인하고 있기에 과잉으로 리얼리티하게 폭력을 재현하고 보충한 부인(否認)된 사건의 폭력성 자체라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쉰들러 리스트>는 사건의 기억으로서 고통을 외면하고, 인간의 숭고한 사랑의 찬가로 소비함으로써 사건의 폭력성을 그로테스크한 희화(戱畵)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스필버그와는 그 접근방법에서는 다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원더풀 라이프(1998)> 또한 사자(死者)들의 기억이라는 영상을 통해 전쟁이나 위안부의 폭력적 사건에 도사린 무의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죽음이라는 사건자체에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의미를 채워 넣음으로써 사건 자체를 부인하는 기만, 즉 그것에 내셔널한(national;국수주의적) 욕망이 마치 없는 것인 양 부정하는 토대로 삼고 있는 기억의 횡령”, “서사의 횡령이라 비난하고 있다. 이처럼 사건의 충실한 재현들이 모두 기만이고 위선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다시 말해 이러한 사건의 폭력성들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표현되고 표상할 수 없는 사건기억이라면 대체 이것을 어떻게 타자와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인가?

 


2. 표상 불가능을 넘어 - 어떻게 기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가?

 

사실 이러한 사건으로서의 역사를 구성, 기술하는 존재는 사건과 기억을 경험하지 않은 살아남은 우리들, 곧 타자들이다. 때문에 비록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현실에 재현될 수 없는, 근원적으로 표상의 한계를 가진 사건을 이 외부에 있는 타자에게로 이르는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기억의 문제를 둘러싼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역사 왜곡이 수시로 사건을 부정하고 터무니없는 의미를 쑤셔 넣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실을 볼 때 이는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논의이다.

 

이러한 역사 왜곡의 양상을 표현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사건의 기억이 타자와 공유되지 않고 사건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가 외부 세계에 방치되어 온 그 자체와, 사건이 타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자리매김 되고 서술되어 왔다는 것 자체로서 타자에 의한 일방적 표상이라는 폭력의 뜻으로서 타자에 의한 표상의 폭력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을 비롯한 이에 뇌동하는 오늘 한국사회의 역사 부정주의자들인 뉴라이트라 자처하는 친일집단들이 이러한 표상의 폭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무리는 위안부 여성이었던 최후의 생존자였던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모두 부정하고, 식민지 여성에 대한 그 어떤 폭력도 존재치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증언이란 본성상 수동적이고 주체의 언설 무능성에서 나온다는 점이기에,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의혹은 의미를 상실한다.

 

저자는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사람이 사건을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사람을 영유한다.”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폭력적 사건으로서의 기억은 당사자의 의사에 의해 떠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불현 듯 심연에서 돌연 도래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사건과 이의 기억은 그것이 억압된 존재를 통해 결코 말로 표현되지 못하고 항상 표현되지 않은 잉여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폭력적 사건의 희생자들과 그 관련자들을 인물로 하는 서사를 아주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들 작품들은 우리에게 이해와 감동을 주기는 하지만 결코 묘사되는 사건에 빠뜨려 불안이나 위협하는 일 없이 알 수 없는 끈으로 이어져있다는 공감과 실감을 준다. 그럼으로써 무자비하게 낯선 폭력의 사건을 보편성의 시각으로 안전하게 감상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적되어 온 사건의 잉여, 그 사건의 본질이라는 불가능한 진실을 영원히 막아버리는 봉인 행위가 되어, 한낱 지나간 과거의 일화로 휘발시켜 버리고 만다.

 

바로 이같이 인간이 영유할 수 없는 사건의 기억을 말하고자 의도적으로 써진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 칠레의 지진사건기억이 소유하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타자에 의한 표상으로서의 폭력의 서사로서 관동(關東)대지진으로 무참하게 학살되는 조선인 사건과 함께 인용되는데, ‘사건기억을 마치 한 때의 추억으로 서사와 한께 과거로 매장시켜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는 행위에 내재된 폭력성을 들춰내는 것이다. 칠레의 지진1647년 칠레 산티아고에 발생한 대지진을 배경으로 하는 픽션이다. 수녀원에서 수녀가 임신함으로써 남자를 수녀원 정원에서 처형하려는 날 대지진이 발생한다. 이 엄청난 혼란으로 남자와 수녀인 여자는 수녀원을 벗어나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출산과 행복한 날을 보낸다. 그리고 지진이 끝나고 일상을 되찾아가던 어느 날 성당 미사에 참석하게 되지만, 사제는 대지진이 부도덕한 타락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며 수녀원 정원에서 일어난 신에 대한 모독행위 탓이라 비난한다. 이 규탄행위는 성난 폭력으로 발전하여 두 남녀는 맞아 죽고, 갓난아기는 교회기둥에 휘둘러 머리를 박살내 조각이 나도록 내려쳐진다. 뇌수가 흐르고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람들은 현장을 물러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하는데, 바로 두 남녀와 갓난아기의 두개골을 박살내 죽인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억 속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은 정신적 외상이어야 하는 그 기억을 역설적이게도 기쁨이라 명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스트는 사건에 위장 플롯을 부여함으로써 결코 매듭지을 수 없는 사건을 어긋나게 함으로써 우리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사건에 다른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사건의 폭력을 망각하도록 하는 것인데, 작가는 이렇게 폭력의 기억을 부정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더욱 비장하게 사건에 사람들을 빠뜨려 신체화 한다. 반면에 관동대지진시 난무했던 일본인들의 기만적 플롯인 조선인이 공격해 온다.”는 서사는 후일 일본의 방송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한 여성의 옛날 하나의 삽화로 추억을 완결하듯등장해 사건의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역사의 한 사건을 기억, 증언한다는 것은 타자와 서로 나누어 갖는 것이라 한다. 역사를 결정하는 저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견뎌내고 있는 낮은 곳에 몸을 두는 것이라고.

 

소설 칠레의 지진과 일본 방송 프로그램 서사의 공통점은 인간을 영유한 대지진이라는 사건의 폭력에 대해 인간 스스로 그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사건에서 부정된 자신들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들의 주체성을 징벌한 기만적 플롯(신이나, 헛소문)이 행한 폭력으로서 사건 자체가 지닌 폭력의 기억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음이 하나 떠오른다. 어떤 기억 서사도 그 사건의 당사자에 포함될 경우 그 서사를 자명한 것으로 읽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명한 것으로 향유하고 있던 것이 모두 내팽개쳐지고, 의미는 희미해져 이해 불가능한 것이 되고,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어떤 서사에서 우리가 자명성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건의 나누어 가짐이 아니라 한낱 이야기의 소비로 멈추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표상 불가능한 사건을 표상하는 것, 말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건의 말할 수 없음 자체를 증언하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어떤 주체의 의사와 상관없이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신체에 습격해오는 폭력적 사건인 역사의 기억에 대한 우리 인간의 언어인 서사적 한계를 사유함으로써,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 세계의 사람들이 나누어가지는 서사로 말해지고 써질 수 있는가의 진지한 탐구이다. 대체 어떻게 사건에 있지 않은 외부자인 사람들이 그 사건의 기억과 증언의 표현과 표상을 함부로 재단하고 정의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리얼리티라는 그 터무니없는 재현의 온전함을 확신하는 신화적 기만은 역겨움이라 할 것이다. 역사의 기억과 그것의 재현을 위한 서사의 정의를 향한 긴요한 사유의 단서를 제공하는 저작이라 하겠다. 이 기억과 서사와 관련된 많은 논의가 이미 존재하지만 이 저술은 특히 그 한계를 냉정하고 날카롭게 파헤쳐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이 저술을 읽고 나면 아마도 여타 문학과 역사 읽기의 안목이 이전과는 결코 같을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절판되었던 책을 이렇게 다시금 출간한 출판사에 고마움을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행위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아요. 오히려 독자는 서사 속에서 맞닥뜨린

각각의 새로운 상황에 대해 능동적으로 정신적 시뮬레이션을 하게 되지요.”

-신경과학자 니콜 스피어, 113쪽에서

 

책의 제목은 어떻게 쓰는가?’라고 글 쓰는 이가 주체로 내세워져 있지만, 실은 글 읽는 이, 즉 독자를 주체로 하여, 독자의 기대를 지속케 하여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끌기 위해 이야기를 창작해 내는 주의깊은 코칭이라 하겠다. 결국 독자인 대다수의 사람들이 왜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며, 읽음으로써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요인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그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해 나가는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강의라 하겠다.

 

인용한 니콜 스피어의 말처럼 읽는 행위는 능동적인 정신 작업이다. 그저 종이 위의 글자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넋 놓은 행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산문 문학의 경우, 독자는 해당 작품을 통해 감정적 이해 능력의 폭을 넓히고, 평범한 삶에서라면 결코 마주하지 못할 낯설고 두렵기조차 한 인물들과 교감함으로써 타인들과의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타인의 욕망과 의도들과 우리들이 좀처럼 마주하지 못할 삶의 장벽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의 행위를 통해 안전한 장소에서 그러한 행동 방식이나 삶의 태도를 이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 리사 크론은 이미 세계적인 문학 편집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컨설턴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이론적 근간을 이루는 신경과학과 심리학과 이야기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지닌 연구가(*TED 강연 참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심리적 욕구와 신경과학의 이론들을 배경으로 ’, 그렇게 써야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 입증이기도 하. 때문에 독자는 첫 문장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를 원한다.”는 문장은 인간의 뇌가 그렇게 생겨먹은 까닭에 근원하는 것이다. 인간의 적응 무의식(또는 인지적 무의식)이나 직관은 어떤 이야기이든 첫 문장이나 첫 장면에서 좋고 나쁨을 바로 판별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여부를 곧바로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진화한 뇌의 반응 방식 때문이다.

 

신경생물학적 심리에 토대를 둔 이야기 창작의 글이기에 기성의 많은 글쓰기 관련 도서들과 그 구성 방식이나 견인해나가는 힘에서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들이 이야기를 읽을 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며 저자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곧 즐거움이 되고, 마치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이 저자의 글에 코를 빠뜨리게 된다. 강력한 이야기는 뇌를 재설계하는 힘을 지녔다.”고 하듯, 이 책 또한 어쩌면 이야기를 창작하고픈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를 지닌 뇌로 재부팅 해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만큼 저자의 조언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신체에 와 박힌다.

 


우리들이 읽으려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그저 누군가의 일상적 뒷담화같은 너절한 흔한 담화는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란 달성하기 어려운 어떤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나중에 그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켜주는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독자는 아무나의 지루한 이야기를 읽으려 문학이나 영화를 찾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독자들은 문학작품 읽는 것 말고도 삶 그자체로 바쁜 존재들이다. 때문에 소설이나 시나리오가 되는 이야기란 삶에서 지루한 부분을 뺀 나머지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의 뇌는 생존과 이에 이익(보상)을 주는 것을 즉시 구별한다. 즉 뇌가 작동할 욕망을 자극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첫 문장은 독자의 주의를 재빨리 낚아채는 것이어야 한다.

 

책의 내용은 이렇게 추상적 이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아주 구체적이고 예시적이며, 실제적이다. 재빠르게 낚아채기 위해서 첫 페이지의 문장들에 담겨 있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한다. 누구의 이야기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위태로운 일이 일어날 것인지 세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을 주인공의 문제, 주제, 플롯이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 어우러져야 할 삼 요소라 한다. 이 베테랑 편집자자는 놀라울 정도의 뇌과학자이자 심리학자처럼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문학적 쓰기와 수단들을 설명한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읽을 것을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공항 내 서점에서 읽을거리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 문학이론가 스탠리 피시는 책의 첫 문장을 읽고는 바로 엘리자베스 조지의 소설을 골랐다, 그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당시 열한 살이었던 조지 캠벨은, 버스에 타는 것으로 끝내 살인까지 이어지는 추락을 시작했다.”, 삼요소가 모두 있다. 주인공 조지 캠벨, 버스에 올라타고, 그를 살인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숨이 위태롭다. 여기에 이야기의 맥락, 일어날 일에 대한 어떤 정서적 의미까지 하도 강력해서 나라도 이 책을 집어 들었을 것 같다.

 

우리 뇌는 언제나 구체적 맥락 속에서 사건을 평가한다.”는 신경정신학자 리처드 레스탁을 인용하며, 뇌는 유용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의미를 찾으므로 의미를 부여하는 맥락은 이처럼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뇌의 비밀과 이야기의 비밀을 오가며 리사 크론은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야기의 초점과 주인공의 목표를 만들고, 변화와 갈등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 하다못해 주인공을 어떻게 상처 입혀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고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간과하기 쉬운 부분들까지 놓치지 않는다.

 

플롯, 서브플롯, 전제와 플래시백의 사용은 어느 순간에 필요한지, 또 어떻게 사용되면 이야기가 망가지는지, 또한 복선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언제, 어떻게 사용돼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우리들은 바로 뇌의 신경망 덕에 더욱 쉽게 납득하게 된다. 아마 독자가 지닌 욕망을 충족시켜준다는 이익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 이유와 그 아래 감춰진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사실 커다란 범주에서 이 같은 이야기의 본질인 뇌의 인지적 무의식의 작동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면 아마 끌리는 이야기를 쓰는 방법론은 그 어떤 새로운 책도  더 이상 이 책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글을 쓴다는 것, 끌리는 글을 쓰는 이 끌리게 쓴 글쓰기 방식의 설명이 왜 그 수많은 글쓰기 책들 중에서 현대의 고전이 되었는지 절로 수긍하게 된다. 이야기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우리들 뇌가 지닌 능력과 한계의 비밀을 토대로 써진 이 독특한 설명은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선사해 주리라 믿는다. 우리의 삶과 이야기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타인의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라는 사실 하나의 이해만으로도 작가나 독자 모두에게 이 책은 이야기에 대한 매혹적인 접근법이 되어 줄 것 같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저술이다.

 

우리의 뇌는 미래에 닥칠 어려운 일을 미리 경험해보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한다.

(...) 이야기의 역할은 주인공을 꿈에서도 통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시험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9시험 들기와 상처 입히기, 274쪽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4-03-24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피지기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합니다.ㅎㅎ 멋진 리뷰입니다.

필리아 2024-03-24 11:0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호시우행님~~
책에는 ˝타인의 욕망과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추론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모든 사람들의 뇌에 있는 ‘거울 뉴런‘을 설명하고 있어요. 아마 말씀하시는 ‘지피지기‘도 이것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리사 크론의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혹은 이야기 읽기에 어떤 빛을 비추어주는 저술임에 틀림없답니다.
 
조선에 반反하다 - 벌거벗은 자들이 펼치는 역류의 조선사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3
조윤민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작하는 말

 

앞선 저술인 지배질서를 정당화하며 신분우위와 특권행사의 근거를 마련하던 조선 양반 지배집단의 헤게모니 전략의 본거지로서 기획된 조선 건축조물에 드리운 그림자를 탐사했던 문화유산의 두 얼굴에 이은 두 번째 조선(朝鮮)역사 읽기이다. 우리는 역사 배우기를 항시 시대의 주류 흐름과 지배세력 중심으로 기술된 교육으로 강요받아 왔기에, 역사의 또 다른 한 축, 아니 실질적 줄기인 (백성)의 눈물과 땀이 밴 노역과 산물은 물론, 당해 사회가 내재한 근본적 모순성이나 기만성에 대해서는 사유되는 것이 차단되어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앎에 대한 방벽을 세워 사유의 방법적 모색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지배자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하여 역사와 그 실체에 대한 곡해를, 그리고 역사수정주의라는 극단적 역사부정자들을 양산하는데 이르렀다. 역사의 진실은 외면되거나 부인됨으로써 이제 친일매국 세력이 버젓이 역사를 농단(壟斷)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이 책은 지배집단이 은폐한 역사를 엄정한 역사의 줄기로서 드러내어 기울어지고 왜곡된 역사를 균형잡힌 정직한 역사로 기틀을 세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읽는 것은 지나간 과거를 단지 감상하고 공감 또는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바로 지금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예리한  질타의 칼을 마음에 들여놓는 작업일 것이다. 우리들의 사회와 정신에 깊게 새겨진 빛과 그늘을 새김으로써 동일한 실패의 반복을 불가능하게 하는 자성(自省)의 칼()’ 말이다. 조선에 하다는  ()와 도()라는 유교적 윤리의 얼굴 뒤에 숨어 구축한 억압과 착취의 사회구조가 지닌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균열을 내고 거스르며 맞서 싸웠던 민초들의 역류와 항쟁의 역사이다. 특권을 항구화하기 위해 조선조 500년 내내 유교적 질서를 앞세워 얼마나 극악하게 백성을 차별하고 억눌러왔는가의 폭력의 시간적 자취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초들의 저항의 역사 속으로

 

책은 연대기적 기술이 아니라 신분제 질서에 대한 저항, 변란과 모반, 그리고 거대한 백성의 봉기인 항쟁의 역사로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감상글은 이와는 달리 연대기적 기술을 선택하였다. 이렇게 서술함으로써 민초의 저항이 조선조 내내 진행되어 왔음을, 그리고 그만큼의 참혹한 억압과 폭력의 지배가 극악하게 저질러졌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군주를 정점으로 한 상하의 위계적 통치관계와 귀천의 신분질서가 합리화되고 정당화된 시대이다.  또한 삼강오륜이라는 의와 예, 효와 충을 사회질서의 덕목으로 하여 백성과 관료의 관계를  강상(綱常)의 윤리라 불렀다. 백성은 자식으로 양반 지배계급을 어버이로 하는 부자관계라 내면화시킨 사회다.

 

그런데 조선조 500년간 단 한순간도 백성에 대해 어버이와 자식 관계의 윤리적 실천이 실행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 강상의 윤리라는 허무맹랑한 유교의 지배질서 체계의 허위와 기만에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한글창제의 왕으로 추앙받는 군주이지만 세종은 결코 백성을 자식처럼 쓰다듬은 인물이 아니었다. 이미 문화유산의 두 얼굴에서도 지적한 바 (*링크 글 참조) 있지만, 그는 자신의 절대 왕권 유지를 위해 그 어떤 아량이나 베풂도 허락하지 않은 냉혹한 인물이다.

 

오늘날 부총리격인 의정부 찬성 허조는 세종에게 간한다. 부민과 수령의 관계는 아버지 아들의 관계이므로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그 허물과 악함을 고소하게 되면 아비의 허물을 들추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범한 자에게는 강상죄를 적용하여 능지처사로 다스려야 합니다.(세종실록, 1443년 세종13). 세종은 둔전의 지대를 거두러 온 어영청 관리가 이를 빌미로 농부들의 전답까지 강탈하자 이에 분을 이기지 못한 농부의 저항에 대해 능지처사를 명한다. 지배권력의 불의에 항거하는 것을 곧 왕권에 도전하는 것이요, 강상의 윤리를 저버린 포악한 행위로 보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배논리가 지닌 모순과 부조리에 끈질기게 지속된 저항의 목소리가  책의 지면을 가득 채운다.

 

1495년은 연산군이 집권하던 시기다. 경상도 동래 수군 신분의 박을수가 수령의 불법을 조정에 호소하지만 묵살되자 궁궐에 난입하여 소란을 피운 사건이 있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궁궐 난입이 증가하는데, 이는 왕실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었음의 반증일 것이다. 물론 박을수는 능지처사되었다. 왕을 비롯한 지배계급은 이를 단지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악행으로만 비난하고 처벌하여 민의를 짓밟으면 체제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러한 양상은 그 사건의 모양만 달리하지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근본 원인을 제거하여야 하는데, 문제의 근본이란 것이 곧 지배질서 체제를 유지하는 유교의 의와 예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끝없이 잉태하고 출산하는 그 괴물스러운 강상의 윤리를 놓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1561년 명종 때에 임꺽정무리가 대거 준동한 것인데, 착취와 조세 수탈에 시달리던 양민과 농민, 상인, 헐벗은 천민까지 합류한 거대한 도적 세력이 양반부자들의 재산을 강탈하여 백성들에게 배분하는 의적으로 행세하였다. 오늘의 말로 하자면 물적 재분배라는 일종의 복지정책을 이들이 실행한 것이다. 이때 지배계급의 목소리는 이렇다. 지금 도적세력이 성하여 적국(敵國)과 같으니 엄히 다스려야.”, 이 말은 그저 탄압하여 눌러버리면 그만이라는 목소리다. 사회 기층민의 억울한 목소리에 깃든 근본적 사회 문제를 해결할 의지라는 것이 아예 존재치 않았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기록이 남아있는데, 조선을 찾은 중국 사신이 명종에게 논하는 말이다. 몸이 병난 것만 알고 병이 생기는 근본은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도적 무리가 생긴 까닭은 도적질하기 좋아해서가 아니라 굶주림과 헐벗음을 견디지 못해 하루라도 연명하려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 벼슬을 산 자들이 지방관이 되어 백성을 약탈하니 백성이 어디 간들 도적이 되지 않겠는가.” (명종실록, 1561. 10.17)

 

오히려 중국의 사신이 근본문제를 살필 것을 이웃나라 국왕에게 논할 정도이니, 그 패악은 가늠하고도 남을 것이다.

 

1629년 인조(仁祖)부터 숙종, 경종, 영조, 정조에 이르는 17~18세기는 그야말로 크고 작은 민란과 변란이 전국 곳곳에서 우후죽순으로 발생하는데, 그 발흥의 신분은 천민에서부터 몰락 양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백성을 아우른다. 17세기 말 10년 이상 준동한 의적 장길산이나 개국대전(改國大典)을 내걸고 봉기한 이충경, 정감록 변란 사건이라 부르는 역성(易姓)혁명에 이르기까지 양반관료의 악랄한 침해와 착취, 신분제에 의한 정의의 실종은 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민의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체제 모순의 심화, 제도의 파행적 운용, 억압과 착취의 심화, 해소는커녕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무도한 폭력만이 자행되는 세계였으니 국가는 자멸의 길을 일찍이 이즈음부터 그 행보를 가속화했다고 단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순조 2, 1812년 평안도 청천강 유역 다북동에서 출발하여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119일간의 처절한 항쟁을 하였던  홍경래의 난은 이처럼 곪아터진 조선사회 기득권계층인 양반세력의 오랜 파행적 부패에 대한 항거였다. 관군의 무자비하고 광기어린 진압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지배계급의 포악질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2,983명을 체포하여 처형하였으며, 어린아이와 부녀자 1,917명을 무차별 도륙하며 난은 평정되었다. 이 반란의 여파는 이후 각종 민란의 본보기가 되어 1813년부터 1817년까지 전국방방곡곡에서 그치질 않았다. 홍경래의 죽음을 부정하는 백성의 목소리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의 목소리가 오래 살아남아 백성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1862진주민란은 과도한 수취, 이를테면 땔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초군, 남의 땅을 경작하여 근근이 살아가는 병작농에게 토지에 물리는 전세를 부과하고 토지 주인은 세 부담에서 제외하여 주는 황당한 조세부과 원칙과, 관료와 구실아치의 집중적 수탈로 생존이 불가능하게 된 민초들의 거대한 봉기였다. 여기에 삼정의 문란으로 일컫는 황구첨정과 백골징포까지 군역의 폐단이 더해져 이후 삼남지방은 민란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 아마 이때 처음으로 피지배층인 백성이 지배층의 언어인 을 들고 제대로 준수하라고 외쳤다고 하니, 더 이상 법은 지배층이 독점하는 언어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마 이후 민란부터 민중과 결합한 정치적 변란의 성격으로 저항 운동이 한 단계 고양되었던 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1882715서울에서 발생한 최대의 정치적 민란이 발생한 날인데, 선혜청 책임자의 횡령으로 13개월 동안 하급 군병의 급료가 지급되지 않다가, 모래알 섞인 쌀을 한 달치 급료로 규정에 미달하게 지급함으로써 발생한 사건인 임오군란에 이은 민겸호 등 민씨 척족의 부정부패와 반일(反日)의식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민씨 척족 정권의 무능과 부패로 인한 정책 파탄에 대한 주범인 중전 민씨에 책임을 묻는 사건의 일환이었는데, 고종이 내린 토벌 요청서를 받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임오군란 진원지인 왕십리와 이태원 일대의 급습으로 인한 백성들의 저항으로 촉발된 사건이기도 하다. 11명이 참수되고 170명이 체포 감금되며 사건은 일단락 되었는데, 도망쳤던 민비는 이때 청군의 호위를 받으며 입성, 다시금 조정을 장악하고 척족 세력의 착취를 더욱 노골화한다. 이 사건이 이 땅에 외세의 침탈을 유인하는 결정적 계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이 사건의 피해자라며 군대를 주둔시키고, 일본에게 국토를 유린하는 권리를 양허하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해주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1894년 갑오 동학농민전쟁의 궤멸은 바로 이러한 일본군의 조선반도 내 본격적 진입과 경상도 안동, 의성, 예천 등 서원을 중심으로 한 양반 유림들의 일본군에 대한 적극 호응 지지의 결과이다. 경상도는 일본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확실히 수행했는데, 스스로 민보군을 조직하여 일본군 관군과 협력하여 동족인 동학농민군을 참살하는데 앞장섰으니, 대한제국의 일본 병탄은 국가의 기층민인 백성의 약소함이 아니라 양반 유림들의 민족 배반과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했던 몰지각과 무능이 초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멸족되었어야 할 이것들의 후손이란 것들이 나라를 일본에 갖다 바치고선 그 매국의 더러움을 망각하고 뻔뻔스러운 주둥아리를 오늘에도 놀려대고 있다. (*경상도 서원 유림의 친일행각은 링크된 리뷰참조)

 

이것들은 친일 극우를 자처하며 오늘 더러운 아가리를 놀려댄다.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은 백성이 자기 수호의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병약해서 자초한 것이지, 일본의 무력 침략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의 열등감이지 일본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참회와 반성은 실종되고 추악한 것들이 그들 조상의 패악질을 잊은 채 망령된 헛소리를 지껄인다. 영남의 유림들이 조직한 민보군은 외세와 맞서 함께 싸우자는 농민군의 연합전선을 거절하고, 일본군에 붙어 동족 학살에 적극 협력했다. 아마 망국은 바로 이러한 유림세력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역사의 그릇된 이해는 아닐 것이다. 조선 지배층 다수는 자신들의 지배체제와 신분질서를 지키기 위해 외세 침략이라는 나라 전체의 위기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의 극단적 이기심이 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끈 것이다. 이들은 포로를 아예 잡지 않았으며, 동학교는 모조리 살육하라!”는 토벌 구호를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친일파의 뿌리는 깊다 이미 188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일본의 조선 침탈은 1905년 을사늑약이 시작이 아니다.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이라는 지배계급 간의 권력 투쟁에 외세를 불러들인 양반유림계급의 사대주의가 시작이며, 이로 인해 일본군의 조선 주둔과 1894년 갑오년 동학전쟁으로 농민을 비롯한 일반 백성인 외세 저항 세력이 궤멸되었기 때문이다. 동학전쟁은 일본군과 백성의 전면전이었다. 여기에 양반 지배계급과 관군이 일본군에 합세함으로 인해 초래된 굴욕이 바로 1910년 한일병탄의 치욕이다. 결국 국가를 말아먹은 당사자는 바로 500년을 기만적 유교논리로 기득권을 누렸던 양반유림 세력이다. 이들이 매국노 집단이요, 이 땅의 발전을 가로막는 추악한 족속들이다.

 

다음은 1894년 갑오년의 대표적 친일파 매국노의 일례이다. 이때 중앙군영인 자위영의 영관(領官)이었던 이두영이란 인물이 있는데, 일본군이 앞세운 동학농민군 토벌 선봉대장이 되어 백성을 무자비하게 유린 학살했으며, 이 토벌의 승리를 대가로 일본에 의해 1908년 전라북도 판사, 조선멸망과 함께 전라북도 도지사를 역임한다. 또한 일본이 양성한 교도중대 지휘관 이진호1907년 중추원 부찬의를 거쳐 평안남도 관찰사, 한일병탄 뒤 도지사를 거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와 고문을 지냈다. 1895년 동학의 교주인 전봉준은 일본의 영향력 아래 신문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지는데, 당시 이 신문의 최고 책임자는 일본이 만든 법무아문(오늘의 법뮤장관) 서광범이다. 갑신정변의 주동자인데, 일본으로 도주해서 미국 망명길에 오르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다. 그리고는 일본 외무성 주선으로 조선에 돌아와 법무장관에 임명된 대표적 친일, 민족 배신자이다.

 

결국 조선(대한제국)의 패망은 이들 지배계급의 탐욕이 불러온 자멸이다.  동학농민전쟁이 외세없이 수행되었다면 아마 백성이 세운 흥국안민(興國安民), 통치의 도리와 지배의 의리가 토대가 된 새로운 세계가 열렸을 것이다. 지배계급으로 자처하는 잘난 족속들이 자기 이익에 매몰돼 역사의 진실한 축을 외면할 때 그 나라의 미래는 곧 자멸의 길을 향하게 된다. 조선조의 뿌리깊은 배제와 차별의 억압과 폭력의 정치는 그 추악한 유림 세력을 통해 일제 식민지 치하의 기득권으로 이어지고, 오늘 극우 친일의 배은망덕으로 다시금 그 더러운 모습을 뻔뻔스레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엄중하게 징치(懲治)되어야 할 대상이지 감히 나댈 것들이 아니다.

 

실행된 적 없는 조선의 상하 소통제도

 

조선조에도 백성이 지배층을 향해 고충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형식적 제도가 있었다. 지배체제에 용인한 합법적 항의 방법으로  등소(等訴)’라는 것이 있었는데, 실현된 적이 없다고 한다. 지배체제의 본질과 구조로 인해 아래 것이 상전에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것이었다. 또한  거화(擧火)’라는 것도 있었는데, 일종의 직접 간언 제도로써 왕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횃불을 올리면 그를 확인하고 대응하는 제도이다. 이것은 단 한 차례 실행되었는데, 1824년 순조 때 이인백이라는 인물이 거화하고 상소를 올린 사건이다. 이에 좌의정 이상황이 왕에게 전언하는데,  지척에서 변괴가 일어났습니다. (...) 상소 양식으로 첫머리가 시작되고 말이 나라의 길흉에 관계되어 아주 흉악했습니다....”이다. 존재하는 제도였으나 조선 역사 이래 단 한 차례 실행되자 지배계급의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백성의 간청이 변괴이고, ‘흉악으로 돌변하는 것은 양반 권문세가들의 백성에 대한 인식이란 오직 찍어 누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민고소(部民告訴)’ 라는 것도 있었으나, 백성이 지방관을 고소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단지 모반대역죄와 불법 살인죄만 허용되었는데, 즉 지배권력에 위해가 될 여지가 있는 것만 조정에 알릴 의무가 주어진 것이지 사회적 약자인 백성의 정당한 고소 수단과는 애당초 한참이나 먼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왕의 거둥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능과 사당에 참배하기 위해 궁궐 밖으로 행차하는 국왕의 행렬을 말한다. 거둥길에서 왕은 길가에 엎드린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사실 군주의 위엄을 과시하고 통치 권위를 확보하는 일종의 정치 쇼로서 기만적 몸짓이라 할 수 있었는데, 거둥길의 이 소통 이벤트를 통해 불만을 가진 백성을 지배질서로 포섭하고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 소통 이벤트인 정치 쇼는 1777년 정조에 이르러 다소 완화되어 거둥길에 백성이 앞으로 나와 소란을 피우지 않을 정도의 거리만 떨어져 있으면 용납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마치 작금에 용산 청사를 비롯해 이동할 때마다 거리가 차단되고 수많은 경호차량과 경찰 오토바이가 에워싼 무례한 권력자의 행차와 닮아있었다. 1861년 철종에 이르러 국왕의 거둥길 행차에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왕의 가마 꼭대기 황금봉황 장식을 부러뜨린 사건이다. 즉시 범인은 색출되어 국왕의 온갖 고문으로 계속된 친국 속에서도 당사자 조만준은 굴복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단독 행위임을 주장했다. 그는 사지와 목이 찢기는 능지처사 되었다. (국민의 대표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입법기관인 의회 다수당인 야당 대표의 목에 칼을 찔러 넣는 희대의 살인 미수사건이 벌어져도 수사가 오리무중인 작금의 현실과 엄청난 대조를 보여준다)

 

신격화된 군주의 심기에 거스르는 행위는 도의를 부정한 것이라는 대역부도(大逆不道)’, 오늘이라면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죄목으로 주살되었다. 조선의 지배질서란 지배계급 자신이 영구히 상전인 것은 하늘의 신성한 뜻이라는 것이었다. 감히 하늘의 뜻을 넘봐? 아래 것들이 죽을라고!, 이것이 500년 조선사, 아니 오늘의 패덕한 극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야만적이고 반인륜(反人倫)의 파렴치가 지속되고 있다. 조선조는 백성이 지배계급에 정당한 요청을 하는 길이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던 사회라 할 수 있다. 백성은 오로지 지배계급의 요구에 순응하여 따르는 예의만 요구되던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수단은 봉기이고, 민란이요, 반란이며, 혁명을 위한 전쟁 뿐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저항운동은 주류의 관점에서 바라 본 부정이나 부도덕, 또는 부정의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소통의 통로가 단절된 유일한 민의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맺는 말

 

조선 사회는 모두에도 말했지만 의와 도라는 유교적 윤리의 얼굴 뒤에 숨어 그 자체가 내재한 무수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로 추한 민낯을 감추기 위해 백성을 수탈하고 차별하며, 모욕하고 원한과 설욕의 욕망을 뒤엉키게 한 불의한 비극의 세계였다. 사회자체의 본질과 구조로 인해 회피할 수 없는 모순과 신분제의 부조리함이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 사회였다. 양반 지배질서는 백성에 그러함에도 어질고 예의바름을 요구했다. 오로지 상전을 향한 의와 예를,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아래를 향한 그 의()와 예()! 양반계급의 지배와 교화는 의로웠던 적이 한 순간도 없었던 잔혹한 사회였다.

 

1597년 양반 오희문은 자전일기인 쇄미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한복이 죽은 것은 족히 아까울 것이 없다. 다만 (...) 갑자기 죽었으니, 마치 더러운 물건을 삼킨 것 같아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자신의 노복 한복에게 빌려준 땅의 농사와 달리 자신의 전답을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관아에 고발하여 죽음에 몰아넣고는 그 죽음에 어떤 연민이나 슬픔도 보이지 않으며, 고작 계산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 소유 물건이 없어진 것만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것이 조선조 양반 지배계급이 백성을 대하는 고착된 관점이요, 방식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요, 동물이었던 것이다.

 

1704년 숙종 때에는 성균관 유생을 시중들고 건물을 운용하며, 온갖 식음과 제사의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사령 두 사람이 자결했다. 숙종조 승정원일기에는  재원은 줄어들었는데 받들고 수행해야 할 일은 전과 같으니 최소의 임무조차 행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성균관 노비가 역()을 감당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 수 있습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양반 사대부들은 자신들은 한 푼도 부담하지 않으며, 자신들, 양반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기관의 운용 재정 전반을 백성에게 부담시키며 그 혹독함을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1727년 영조 3년의 승정원일기에 다시 반복 되어 나타난다 백성의 신역(身役)중 성균관의 신역보다 괴롭고 무거운 경우는 없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절대 양반 지배계급의 의식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 부담은 더 가중되어,  이들에게 형조, 사헌부, 한성부에 속전으로 바치는 돈이 거의 수천 냥에 이릅니다. 하급 벼슬아치도 함부로 돈을 요구합니다.”고 실상을 왕에게 고하고 있다. 건물 관리, 제사 업무 전반에 대한 책임, 유생의 뒷바라지, 음식을 만들어 받드는 식사 책임, 성균관 운영에 대한 전반적 재정 감당까지 여기에 더해 속전까지 요구한다,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이것을 조선이 자랑하고 오늘도 이들을 계승하고 있다며, 거들먹거리는 후손들은 유교의 윤리가 이 땅의 정신이라는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지껄이기까지 한다.  이 책, 조선의 역사를 읽는 다는 것은 고통과 울분을 마음에서 삭이는 인내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불의함이 오늘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추악한 사슬, 연결의 고리를 잘라내야 하는데, 우리는 지나친 관용의 말로 그 패악을 희석하고 만다. 결코 이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석학들은  민중의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 없이는 민주주의란 언제든 부식될 수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잘 안착된 민중의 평등과 자유와 인권에 대한 제도조차 이렇게 불안한 것이 인간 세계이다.  하물며, 철저하게 민의가 봉쇄된 억압 사회에서 백성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겠는가?

 

역사를 주류, 기득권의 관점에서만 기술하려는 자들, 그리고 조선조 말 외세에 의존하여 나라를 팔아넘긴 양반 유림 세력들, 그리고 일제부역자들과 청산되지 못한 이것들의 후손이라는 것들이 더 이상 이 땅의 역사를 왜곡하고 더럽히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아니 하는 순간 매장되는 제도적이고 윤리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신음하며 고달픈 삶을 살아내야 했던 많은 백성들의 후손인 오늘의 우리들은 이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나 또한 이들 민초의 지난한 고통과 저항의 역사가 역사 변혁의 주체였다고 단언하지는 않으련다. 그러나  그들이 외쳤던 절규의 목소리와 정직한 몸짓은 다가오는 우리의 역사적 도전에 중요한 자성의 칼이 되어 줄 터이다.  조선의 패망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양반 기득권 지배계층의 위선과 무능이 불러 온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오늘은 이러한 지배권력과 질서를 만드는 책임이 국민에게 주어져 있다. 잘못된 자유의 선택은 독재자를 부르고 공멸의 길을 열어젖히기도 한다. 역사 읽기는 이러한 미혹의 시선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한 단계 올려놓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세 번째 조선사 읽기인 조선의 두 얼굴로 달려 가보아야 할 것 같다. 선비라 부르던 사대부들의 그 이중적 얼굴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 카프카 드로잉 시전집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58
프란츠 카프카 지음, 편영수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전집은 카프카의 일기, 편지, 소설을 포함한 산문들에서 시적(詩的)116편을 떼어낸 것이다.  여기에 카프카의 자유로운 정신적 흐름의 산물인 드로잉 스케치 작품들이 곁들여져 카프카 문학에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세계와의 친밀성을 더해준다. 카프카 전기를 쓴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스케치는 화가로서의 능력과 독창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기에 적합했다고 말하면서 그 누구도 스케치 환상과 서사 환상의 유사점을 추적하려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시집의 첫 지면과 마주하게 되는 시(詩)는 열네 살 카프카가 쓴 조금은 통속적 분위기의 시구다.

 

오고

이별이 있다.

그것도 자주 - 재회는 없다. (1897.12.20.)

 

단어 또는 문구 한 구절 마다 행을 달리함으로써 우리 사고의 지연을 요구하여 대립된 이미지의 묘한 통합을 이루게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행에 이르러 어떤 숙명의 작용을 생각하게 한다. 이 어린 시인의 감성에 이미 삶과 죽음의 기묘한 어울림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는 점은 놀랍기도 하다.


이 드로잉에는 청원자와 지체 높은 후원자라는 설명이 붙어있는데, 각자의 내면을 상징하는 듯한 모자를 쓴 그들의 작은 얼굴표정과 표면화된 얼굴의 이중성이 대비된 희화성을 읽을 수 있다.


나는 12번째 시를 한동안 응시했는데, 소설 소송요제프 K’변신그레고르 잠자의 마음이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며 인간으로서의 막연한 공감을 하게 된 작품이다.

 

침대에서,

무릎을 약간 세우고,

주름진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중략)----

군중과 멀리 떨어져서,

군중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먼 관계를 맺는다.

 

동화하려 하지만 불가능한, 또한 하나의 고정된 관념처럼 되어버린 유대인으로서 분리될 수 없는 정체성과 이 세계의 끈질긴 억견으로부터 고립된 한 인간의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는 애증의 도시인 프라하의 풍경을 묘사한 2번째에서 4번째에 이르는 시구는 그 처연함과 외로이 걷는 한 청년의 처진 어깨를 떠오르게 한다.

 

오늘 서늘하고 칙칙하다,

구름은 굳어 있다.

바람은 잡아당기는 밧줄이다.

사람들은 굳어 있다.

---(후략)--- (1903.11.8.)

 

그런데 카프카의 음울한 사변과 다른 조금은 명랑해보이기까지 해서 감긴 눈을 뜨이게 하는 시가 있다. 하늘하늘한 봄바람이 굳은 마음을 열어 폴짝폴짝 뛰는 경쾌함이 미소짓게 한다.

 

작은 영혼이여,

그대는

---(중략)---

반짝이는 풀밭에서,

두 발을

쳐드는 구나. (1909. 9)


단편소설 시골 의사가 출처인 듯한 작품인데, 우리들은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코러스의 합창, 인물들이 말하지 못하는 세상의 인식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 아마 카프카를 읽어 본 독자들은 이 시를 대하고 친밀함에 반갑기도 할 것이다.

 

그의 옷을 벗겨라, 그러면 그가 치료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치료하지 않으면, 그를 죽여라!

그는 단지 의사일 뿐, 단지 의사일 뿐.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의 치료를 주저하는 시골의사를 향한 마을 주민들의 은근한 압력의 장면이 떠 오를 것이다. 기이한 관계역설을 일으키는  카프카스럽다는 말을 절로 내뱉게 하는 대표적 장면일 것 같다.

 

아마 다음의 시구는 단편 돌연한 출발이 그 출처일 것이다. 지금 여기라는 그의 정체성을 묶어두는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 그러나 그것이 목표인 한 그것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주인 나리, 어디로 가시나요?

모른다.” 나는 말했다.

단지 여기에서 떠나는 거야, 단지 여기서 떠나는 거야.

끊임없이 여기에서 떠나는 거야,

그래야 내 목표에 도착할 수 있어.

 

그러시다면 나리께서는 목표를 아신단 말씀인가요?”

그렇다네내가 대답했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여기-에서-떠나는 것’, 그것이 내 목표야.” (1922.2)

 

옮긴이의 한 문장이 어쩌면 카프카 시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하는 것 같다.  슬픈 미래와 전쟁에서  폐허 더미를 목격한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는 말이다. 자신 안에 이 세계의 질서를 부여할 수 없다는 사실과 정직하고자 하는 절대적 요구에 의해, 혼돈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카프카의 내면은 가혹한 전쟁터였을 것이다.

 


두 권의 카프카 평전을 쓴 마르트 로베르는 세기 전환기인 19세기 말  이상(理想)의 몰락으로 인류의 지성들이 현기증 나는 심연과 마주했을 때 이를 메우고 진실을 열어 보이기 위해 이상의 대치물로 문학에 최고의 지위를 기대했다고 주장한다. 신의 죽음에 대한 선언이 있고서부터 신이 떠나고 없는 자리를 대신하게 된 신비와 맺어주는 능력을 시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접근 불가능한 경험 저편의 세계로 이르는 길을 열어준 카프카 산문의 출현은 이러한 시의 신비와 경이의 교량기능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카프카의 시()전집 번역자인 편영수는 카프카에게는  시와 산문 사이의 과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카프카의 산문이 시에 가깝듯 카프카의 시는 산문에 가깝다.”,  산문에 근접할 때만 독창적이라 카프카의 시를 혹평한 집단을 향해 마르트 로베르의 시대정신을 품은 문학의 의미로서 카프카의 시를 대변한다.

 

작품에 대한 해설에서 카프카는  세계와 세계질서의 도래하는 파괴를 예감한 횔덜린을 잇는 파편적 글쓰기의 선구자라 이해하며, 이  파편(fragment)이 곧 카프카의 문체가 완성되는 유일한 형식이라 말하고 있다. 사실 많은 문학이론가들이 앞서 이 파편의 축조물로서 카프카의 소설을 해독하고 있다, 파편인 실존의 폐허를 재료로 삼아 완성한 성(城)은 축조된 조각들 사이에 메워지지 않은 무수한 틈을 지니게 된다. 아마 완성되었으나 여전히 미완성인 이 모순적 상황이 카프카의 시와 산문일 수밖에 없는 원인일 것이다.

 

책의 편집에 대한 작은 아쉬움의 변으로 감상을 맺어야 할 것 같다. 수록된 시들은 카프카의 산문글 어느 것으로부터 분리된 글들이다. 즉 시들 중 많은 것들이 어떤 맥락 속에 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를테면 19161224일자 일기라던가, 단편 <어느 단식 광대>와 같이 그 출처를 밝혀 독자들의 읽기를 도울 수 있었을 텐데 작품해설에서 몇 편에 대해서만 이를 표기하고 있기에 감상에 어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이 책의 흠결(欠缺)이다. 차후 개정을 하게 될 때 반영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이 시전집은 카프카는 시인일까? 라는 회의적 질문에 대한 당찬 도전 작업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듯하다. 아마 카프카의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카프카에 이르는 새로운 접근 통로가 되어 줄 터이다주목할 만한 시적 재능을 지닌 시인”,  카프카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