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몰고 온 오늘의 사회는 노동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 들끓고 있습니다. 정의(Justice)를 세계적 화두로 사람들을 감화시켰던 마이클 샌델교수가 바로 이러한 불공정성의 심화를 야기하는 그 연원이 짧음에도 급속하게 신화적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능력주의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주제로 새 책 The Tyranny of Merit를 발표하였습니다.

 

우리말로 의역한다면 '능력주의의 오만' 또는 '능력의 폭정'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우리의 좋은 성적과 학위는 모두 우리 자신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괜찮습니까?" 내 능력으로 성공했으니 그 과실을 독점적으로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출발로 삼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죠.

 

기회가 진정 동등하게 주어졌는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나아가 이렇게 해서 기득권을 차지한 엘리트 계층이 능력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압제한다는 것이죠. 대중이 이에 혐오와 불공정함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능력주의의 어두운 측면인 불평등성을 폐기하지 않으면 포퓰리스트(populist)가 엘리트 계층에 전복적 시선을 지니는 것은 정당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죠.

 




승자와 패배자를 다루는 이 능력주의라는 신화에는 불평등을 기초로 하는 교활함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은 가난으로 연결되고, 부자는 부자로 연결되는 사회 구조를 이루는 토대 환경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불평등성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능력주의 전투'에 덜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대학 학위(,박사 등), 성공의 정의, 일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전제합니다.

 

특히 일(직업)에 대한 오늘의 가치 인식은 '벌어들이는 돈', '계급적 지위'가 아니라 "공동선에 대한 기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쓰레기를 수거하는 미화(청소)원이 의사만큼 중요한 사회적, 공공 기여자라는 것입니다. 그가 일하지 않으면 질병 통제는 불가능하게 되고, 우리가 사는데 서로 얼마나 깊이 서로 지지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그 답변이 될 것입니다. 택배, 창고 노동, 간호보조, 홈케어 ..., 아마 이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검찰청의 정치 검사들보다 공공선에 훨씬 중요한 기여자들임을 부인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가치 인식을 공공선의 기여로 조정하면 지급되어야 할 돈(임금,수익 등), 직업 인식, 성공의 조건이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성공은 내가 잘해서 이룬 것이라는 착각은 패배자들에 경멸을 보내는 것을 정당화 합니다. 실패는 네 잘못이라는 오만함을 양산하는 능력주의는 이러한 가치 인식의 변화를 통해 그 도덕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죠. 뉴노멀의 시대, *사회적 계층의 이동성에 대한 신뢰를 포함하여 정의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틀을 제공하는 저술이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적 계층의 이동성: 샌델은 하위1/5의 계층 사람이 상위 1/5계층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1.5~2%내외의 비율이라 지적하면서 능력주의는 허구이며, 수많은 불평등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고 비판적 사유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참조】능력주의(Meritocracy)'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마이클 영'의 저서 , The Rise of the Meritocracy(능력주의의 부상)은 마이클 샌델의 새 책을 읽는데 중요한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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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달아오른 보드라운 피부에
닿지도 않고서 사람의 도리를 설명하는 당신 쓸쓸하지 않나요?”

 

 

 

감각 표상을 통해서
문학 텍스트를 재검토하다.

 

감각(촉각, 시각, 청각, 후각)이 문학과 예술의 창조와 수용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인간의 신체를 사회권력(제도)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유일 것이다.

 

책,『감각의 근대 - 소리, 신체, 표상』은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하여 하기와라 사쿠타로, 미시마 유키오와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이르는 일본 근대문학 작품을 통해 서양에서 이식되기 시작했던 감각의 통제와 균질화들을 통찰한다. 

 

오늘, 말(언어)의 협소한 의미로 점점 소통의 단절과 소외가 심화되기만 한다.  구체적이며 체험적인 구심적 감각인 촉각(접촉)이 아닌 고작 시각적, 청각적인 원심적 감각에 전념케하여 사적인 신체조차 조작되고 통제관리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비교문학의 차원에서 이 책은 우리의 근대문학은 물론 작금의 문학작품을 바라보는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잃어버린 그 풍성한 감각의 세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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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 인형의 집에서

 

 

결혼과 성 역할을 둘러싼 허위와 기만을 폭로함으로써 근대 여성해방운동의 불씨를 당겼던

헨릭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여성상을 위해 다시금 소환되었다.

    

 

오는 11월 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3막으로 구성된 인형의 집이 연극무대에 오른다.

희곡의 줄거리는 널리 잘 알려져 있듯이 남편에 종속된 존재로만 여겨졌던 가정주부인 노라

한 인간으로서 홀로 서기위해 집을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페미니즘의 열기가 지속되고 있다. 민음사에서 예술의 전당 에디션으로 출간 예정된

인형의 집21세기 지금 입센의 메시지를 환기하는 의미 있는 기회를 일깨워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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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던 유인원이 어떻게 지구 행성의 주인행세를 하게 되었는지 인류의 과거를 두루 더듬었던 사피엔스에 이어, 영원불멸의 삶을 희구하며 궁극적으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 종()의 미래를 탐사하며 오만함에 고양되어있는 인류를 향해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 같았던 호모데우스로 인간 미래에 대한 논의에 많은 인간들의 시선을 모았던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교수가 인류의 현재를 위한 교훈을 내놓았다.

    

 

새로이 출간된 책은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고 해석하면 될 듯하다.  과거와 미래를 말하고 이제 화급한 현재를 얘기한다. 이로서 그의 '인류' 3부작이 완결된다.

    

 

 

하라리 교수의 눈에 비친 오늘의 인간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직면한 일상에 허우적대느라 인류의 미래라는 거대 담론에 무관심한 종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혐오와 멸시의 질책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우리들에게 배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인류의 중차대한 운명, 당면한 곤경들에 대한 보다 진지한 참여와 사유의 기회가 되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 목표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들에서 놓여나질 못한다. 그래서 인류의 미래가 자신에게 부당하게 결정되었다고 뒤늦게 호소해보아야 역사는 냉정하다. 바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 인류가 직면한 문제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그래서 알아야 한다. 하라리는 뭄바이 빈민촌에서 두 아이를 기르느라 분투하는 홀어머니의 관심사는 다음 끼니다.” 라고 말한다. 즉 눈앞에 닥친 끼니의 문제가 지구온난화나 자유민주주의위기 같은 것보다 훨씬 다급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관심 밖의 일로 인해 뭄바이 빈민촌에서마저 살 수 없는 곳이 되면생존의 뿌리마저 상실하는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21 Lessons ... 은 바로 이 당면한 곤경의 상이한 면들을 다루고 있다.

 

 

전 세계 사회를 규정하고 지구 전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주요 힘들을 살펴보는 이 교훈 선집은 현재의 우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자극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고귀한 방향등이 되어 줄 것 같다. 최소한 명료한 전망을 얻을 수는 없을지언정 우리의 미래를 위한 핵심 질문이 무엇인지는 알아차리게 해 줄 터이다.  20188월 영문판의 출간과 서문이 소개되자 독자들의 탄성어린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리말판도 동시에(9.1 예정) 출간될 예정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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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회화나 드로잉 작품들을 보노라면,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의 죽음의 다른 이름인

'에로티즘'의 현현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곤한다.

  

특히 황금비()로 변한'제우스''다나에'에게 젖어드는 상징적 작품인

 <다나에; Danae>의 그 열락의 표정은 자아(自我)의 경계가 사라지고 존재의 연속성이 구현되는 순간,

바로 신성한 그 무엇을 느끼게 한다.

 

 

  

한편,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물뱀'이라고 표현될 밖에 없는

 <물뱀;Water Snakes>연작중  <Water Snakes II> 또한 그 몽환적 표현에 넋을 잃고 한참을 들여다 보게 하는데,

오색의 화려한 선율이 넘실대고, 생명의 절정이자 죽음의 심연인 황홀의 경지가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아,

그림 앞에서서 한동안 몽상에 깊이 빠지게도 된다.

 

 

 

"모순과 역설은 에로티즘의 본성 앞에서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연속성의 열락을 희망하고 때로는 불연속성의 고독을 희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혜롭게도 또는 음험하게도 모순되는 두 항의 양립을 모색하는 발칙한 존재"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에로티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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