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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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 그 본질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 감정적 동일성을 우리가 가지고 있을까? 라는 물음이 작품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아마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11)”, 밀물에 수많은 무덤들과 뼈들이 씻겨날까 안타까워하는 반복된 꿈의 의미에 대한 화자의 자각 장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빠르고 직관적이었던 그 결론은 내 오해였거나 너무 단순한 이해였는지 모른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지난여름이었다.” - 11

 

 

불가능성을 예시하는 듯한 반복된 꿈은 광주민중 항쟁이라는 민중적 트라우마를 지닌 역사의 이야기인  자신의 책(소년이 온다로 연상됨)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윌 수 있을 거라고(23)”, 순진하고, 뻔뻔스럽게 바랐던 것일까라고 자성하는 것에서 다시금 제시된다. 타인의 고통에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라고 편승하지 말 것을 당부했던 수전 손택의 말을 이제야 어렴풋이 헤아린다. 고통에 공감했다는 마음만으로, 나름의 다시 쓰기만으로 수월하게 흔적들을 떨쳐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해였고 단순한 생각이었다는 문제의 제기일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의 제목이 화자에게 역사적 고통은 단지 그것 밖에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27)”처럼, 삶과 함께 지속될 수밖에 없으니 등지고 갈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작별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리라. 화자에게 광주의 트라우마는 삶에 틈입하여 일체화된 고통이 된 듯하다.

 

바닷가 묘지 꿈을 토대로 공동의 영상작업을 하기로 했던 영상 다큐멘터리 작가인 인선의 절단되어 봉합 수술을 한 손가락 두 개의 치료 장면은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49)”는 걸, 신경이 죽지 않도록 3분마다 바늘로 찔리는 고통의 전율로 다가온다.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것이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후략),57 라고 인선이 속삭이는 고통의 감응에서 역사 재현이란 어떤 한계, 영원히 결핍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읽게 된다.

 

어쩌면 화자와 인선의 삶과 동반하는 역사적 고통의 지속성은 폭설이 내리는 제주 인선의 집에서 고통을 겪는 앵무새 아마와 길을 잃고 두통과 위경련으로 화자의 현실 속에서 재현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끊어진 전기와 한기, 생생한 신체적 고통의 한계 끝에 바다가 빠져나가고 있었다.(175)”는 악몽의 떠남을 막연하게 예감하며 화자는 자문한다. 그들과 싸워 이긴 건지, 그들이 나를 다 으깨고 지나간 건지 분명하지 않았다.(177)” 이렇듯 광주의 흔적에 대한 화자의 감응의 미결성(未決性)은 인선이 자신의 어머니가 겪었던 제주 4.3과 보도연맹 사건 속에 사라져간 참혹한 역사의 증언으로 이어진다.

 

 

인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린시절 자신의 삶을 옥죄는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반감이 그녀를 잃은 후에야 알게 된 어머니가 찾으려했던 흔적과 그 실패의 처연한 사연이다. 소설의 2부는 사건의 기록들과 증언들이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영화로 만들 것인지를 인선에게 물었을 때 인선은 다음의 이유로 즉시 부인한다.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한계를 초과하는 폭력이 제거될 거다.” -287

 

 

그래, 이 작품은 작가의 전작 소년이 온다의 연속선상에서 읽힌다. 무수한 기록들과 증언, 인터뷰의 내용들이 발산하는 고통 재현의 불가능성, 어떻게 그것을 오늘 우리네가 애도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었던 것 같다. 재현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초월의 폭력성과 그칠래야 그칠 수 없고 현재의 언어로 환원할 수 없는 고통의 실재에 대한 윤리적 자기 한계에 대한 고뇌가 계속되고 있음을.

 

어머니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지리라 여겼던 그 고통이 인선에게 더 이상 죽어서 벗어날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죽고(314)” 싶은 감응으로 남는 것처럼 화자의 광주 흔적은 제주 4.3사건과 결합하여 지금 우리에게 말해지고 있다. 수많은 정치적 타살이 남긴 한국사회의 트라우마는 차치하고라도 대중 혹은 군중인 나와 우리는 이들 동료 인간들, 타자를 향했던 무참함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 내 마음 속 가치 체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혹여 회한과 애도라는 순수한 연민이 억압되거나 잃게 된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에 압도되어 냉담함과 잔인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호흡하고 있다. 고통과 그 참담한 상처의 흔적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동료 인간들의 고통을 야기했던 그 역사적 인식의 이해는 바로 지금 우리네 윤리의식의 위치일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님으로써 비로소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이해의 촉구인지도 모르겠다. 계속 표현되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표현의 한계가 지닌 윤리적 결여라 할지라도. 잠든 도덕 인식을 일깨우는 처절한 자기 고투의 이 작품에 작은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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