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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화의 사기 3 : 세 치 혀로 세상을 바꾸다 ㅣ 장자화의 사기 3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사마천 원작 / 사계절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장자화의 사기 3 : 세 치 혀로 세상을 바꾸다> 사마천 / 장자화 / 전수정 / 사계절 (2018)
[My Review MMLXXXIX / 사계절 13번째 리뷰] 왜 사람이들이 <고전>을 많이 읽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 <고전>을 즐겨 읽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별빛마저 감춰진 깜깜한 한밤중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들이 '등대'를 찾아 헤매듯이 한치 앞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혼미한 세상이 펼쳐질 때마다 '등대'를 찾듯 <고전>에서 '해법'을 찾으려 탐독하곤 한다고 말한다. 십분 이해가 가는 얘기였다. <고전>에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는 책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럼 어떤 <고전>을 읽으면 좋으냐는 물음을 던졌더니, 무엇보다 '내 나라의 <고전>'을 먼저 읽으라고 권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엄마'를 찾듯이, 혼미한 세상에서는 '모국어'로 쓰여진 <고전>을 탐독하는 것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여기서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우리가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물'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은 잘 알면서 등한시 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원효, 박지원, 정약용, 이이와 이황 등등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기록유산'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것만 소중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의 것이긴 하지만 <고전>은 전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지혜보따리임에 틀림없기에 반드시 섭렵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 책, 사마천이 쓴 <사기>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고전>을 읽을 때, 자칫 '방대한 분량'에 짓눌려서 꾸역꾸역 읽는 것에만 매몰되는 경향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주제'를 잊지 말고 끝까지 탐독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지혜보따리'를 열어놓고도 '무엇'이 소중한 보물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아무 거나 주워 섬기는 '중구난방' 격으로 읽다가 지쳐서 허무하게 손가락 틈 사이로 보물이 죄다 빠져나가 버리고 남는 것은 '빈 손바닥'만 쳐다보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고서 남겨 놓은 주제는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니라 '세상의 이치란 무엇이냐?'라는 물음이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임금님에게 충성하라는 말들을 '최고'로 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사마천이 '고대 중국사'를 쭈욱 펼쳐놓고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잘 살고 못 산 일대기가 쫘악 펼쳐졌는데, 도무지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더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착하게 살았는데도 '입 바른 소리' 한 번 잘못 놀려서 제 목숨도 잃고, 삼족이 멸족하는 불운을 겪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천하의 악인으로 정평이 난 '짐승'같은 것들이 한 평생을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눈꼴 시린데, '천수'까지 누리면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도무지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절대로 정의롭지 못해 보이더란 말이다. 뭐, 그마저도 '하늘의 섭리'라고 한다면 사마천도 반박할 말은 없지만서도, 그 '하늘의 섭리'라는 것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몹시 궁금하더라는 말이다. 이것이 사마천이 <사기>를 펴내면서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 답은 '독자의 몫'이다. 사마천은 자신이 남긴 글에 '어떤이'는 옹호하고, '저떤이'는 그 반대인 듯한 뉘앙스로 나름의 답을 내리긴 했지만, 무려 2000여 년 전에 살았던 이의 '해답'이 오늘날에도 곧이 곧대로 정답일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평가는 '독자'가 마땅히 해야 할 숙제다. 그렇다고 부담부터 가질 필요는 없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 독자들은 대다수 '비전문가'다. 그러니 학문적 성과를 내야 할 의무가 있는 '역사전문가(?)'처럼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다. 대중 독자들이 <고전>을 읽는 목적은 그게 아닐 테니 말이다. 깜깜한 밤에도 길을 잃지 않고 '반듯이' 갈 수 있는 '등대 같은 참지혜'를 얻는 데 역점을 두면 된다.
이 책은 대만의 저명한 박사출신 문학가 장자화가 소설처럼 읽기 쉽게 펴낸 <사기>다. 보통은 이렇게 읽기 쉽게 쓰기 위해서 사마천의 <사기열전>만 따로 떼어 내서 술술 읽기 쉽게 편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장자화는 <사기열전>뿐만 아니라 <본기>와 <세가> 등의 내용도 '읽을 만한 것'을 따로 추려내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편집을 했고, 이를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서 <장자화의 사기(전5권)>을 펴냈다. 그래서 이 책은 '사마천'이 직접 쓴 <사기>의 축약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가운데 3권인 이 책은 주제가 '세 치 혀로 세상을 바꾸다'를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혓바닥(?)을 잘 굴리는 인물들을 추려내서 책 한 권에 담아냈다. 손빈, 자공, 상앙, 소진, 장의, 맹상군 등등 이름만 들어도 관련된 고사성어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인물들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읽다보면 정확한 시대배경과 사건순서, 인물의 이름 따위가 기억나지는 않아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옛이야기'라는 느낌을 먼저 받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다.
이를 테면, 너무 뛰어난 실력 때문에 절친한 친구의 시샘을 받아 두 다리를 잃어버린 손빈이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출세를 하여서 복수에 성공했는데, 그 방법이 전쟁의 혼전 중에 어지럽게 도망을 가다 길을 잃자 여기가 어디쯤인지 궁금했고, 마침 부하가 나무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보고를 하자 자세히 읽기 위해 불을 밝히고 소리 내어 읽었는데, 그 내용이 [OO장군, 바로 이곳에서 죽다]이었고, 다 읽기도 전에 수백 발의 화살이 온몸에 꽂혀서 즉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바로 손빈의 두 다리를 망가뜨린 실력 없는 그 친구의 최후다. 한편, 법가사상가로 유명한 상앙의 고사로는, 마을 한복판에 나무 기둥을 두고서, [이 기둥을 남쪽 성문 앞까지 옮긴 자에게 100금의 돈을 상으로 주겠다]고 공고했는데, 백성들이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단다. 오히려 기둥에 올라타서 장난 치고, 오줌을 싸는 등 분탕질만 실컷 하고서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다. 다음날 상앙은 100금의 상금보다 열 배를 올려서 1000금을 주겠다고 하였고, 이번에는 건장한 남자 하나가 속는 셈치고 그 나무를 짊어져다가 남쪽 성문 앞에 옮겨다 놓았다. 그러자 상앙은 그 자리에서 상금 1000금을 주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 백성들은 '나라에서 하는 말'은 굳게 믿고 따르려 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진나라는 상앙의 '법치주의'로 인해 빠르게 국력을 키웠고, 다른 제후국들에 비해서 월등히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허나 세월이 흘러 상앙도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죽을 위기를 간신히 피하고 이제 국경만 넘어가면 살 목숨이었는데, 국경에서 멀지 않은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쉬려다가 뒤쫓던 군사들에게 잡혀서 사형을 당하고 만다. 이제 곧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었던 상앙은 왜 어이없게 국경 근처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을까? 그건 바로 '자신이 만든 법' 때문이었다. 모든 백성들은 국경을 넘을 때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급하게 도망을 치려다 '신분증'을 챙기지 못한 상앙을 의심한 여인숙의 주인이 국경 근처 군사들에게 신고를 했고, 지극히 당연한 '법적조치'를 취하려 출동한 군사들에게 꼼짝 없이 붙잡혔던 것이다.
어떤가?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그럼 이런 낯익은 옛이야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세 치 혀'를 잘 놀리면 벼락출세를 할 수도 있고, '세 치 혀'를 잘못 놀리면 한 목숨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패가망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 혓바닥(?)을 잘 간수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지 않겠는가. 바로 날카로운 독설, 패부를 찌르는 입담으로 단련된 '유세객'들의 출세에 관한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겠다. 제자백가들 가운데 '종횡가'로 구분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들은 '종횡가'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대치하는 평가를 마주하곤 한다. 대표적인 종횡사상가로 '합종연횡'을 주장하던 소진과 장의가 그렇다. 이들은 '귀곡자의 제자들'로도 유명할 정도로 입담이 훌륭한 '유세객'이기도 하다. 귀곡자의 제자들은 주로 '세 치 혀'로 전국에 유세를 펼쳐서 출세한 인물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종횡가'는 말발(?) 하나로 세상을 주무르는 기세가 뿜뿜하는 엄청난 기량을 뽐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벼락출세한 이들의 결말이 좋은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서 탈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듯이 '혀로 흥한 자도 혓바닥이 뽑히는 형벌로 죽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종횡가의 인물들이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흙수저(?)들의 롤모델'이 바로 종횡가이기 때문에 아주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신분이 천하거나 가진 재산이 없어서 '아빠 찬스(!)'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므로, 오직 '자신의 실력'과 '엄청난 노력'으로 우연히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당히 출세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횡가들은 '낭중지추'로 불리기도 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뛰어난 실력이 있기에 주머니 밖으로 (실력이) 삐쳐 나올 수밖에 없음을 빗대어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횡가들은 대부분 '실리주의'를 따른다. 허례허식 따위는 과감히 타파하고, 오직 '이득'을 추구하여 달콤한 결실을 따박따박 살뜰히 챙기면서 출세가도를 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횡가들의 최후가 그닥 좋지 않은 까닭은 이들이 '한미한 가문'에, '많지 않은 재산'으로 뒷배경이 튼튼하지 못한 탓에, 오직 '최고권력자의 동아줄' 딸랑 하나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아, '권력자의 변심'으로도 종횡가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 치 혀'를 어찌 놀려야 한단 말인가? 벼락출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아낌 없이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실을 얻게 된다면, 반드시 '겸손'해져야만 한다. 최고권력자 하나에만 매달리지 말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혓바닥'을 잘 굴려서 '자기 편'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자신의 목숨줄을 길게 늘릴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적까지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을 보여주고, 감명시켜 기꺼이 '자기 편'이 되도록 해야만 한다. 그래야 '세 치 혀'가 간혹 할 수 있는 실수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뿌리 깊은 나무처럼 꿋꿋하게 설 수 있고,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종횡가'들은 변칙복서(!) 같은 경우가 많아서 기득권층을 짓밟고 출세하기 위해서 상당히 까부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그렇게 출세하는 시작부터 '적(그것도 뿌리가 탄탄하고 세력이 큰 기득권층을)'으로 삼고 그 위에 올라서는 경우가 많기에 애초부터 착하게 살기는 글러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종횡가들의 평가'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이다. 왜냐면 일단 '종횡가'들은 기존의 질서를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새로운 질서'가 더 많은 국민들에게 공정성을 인정 받고, 든든한 지지를 받게 된다면 마냥 나쁜 것으로만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상앙'이다. 그는 약소국이자 후발주자였던 '진나라'를 다른 제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을 키워서 성장시킨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상앙' 단 한 사람이 이뤄낸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국력을 신장시키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실력을 '규칙'적으로 착착 진행시켰던 그가 어찌 하다가 한 순간에 몰락의 길을 걷고야 말았을까? 그건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들의 불문율 '도덕적 타락(부정부패)' 때문이었다. 권세의 자리에 있으면 '어둠의 세력'이 마수를 뻗기 참 좋다. 이를 물리쳐야 '승승장구'를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타락'하고 만다. 사람이다보니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선물 같은 뇌물'도 받고, '청탁 같은 이권'을 나눠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자기 잇속도 챙기다보면 '부정부패'에 어느새 몸을 담고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상앙도 그랬다. 그래서 그를 시기하던 세력에 역공을 당했고,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처형을 당하느니 '고향땅'으로 탈주를 시도했지만, 끝내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서 붙잡혀 죽고 말았다. 종횡가들의 최후가 대부분 이렇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서 어지러운 세상을 이겨낼 지혜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지혜 속에서도 '옥석'을 골라낼 줄 알아야 한다. '세 치 혀'를 잘 놀리면 위기를 기회로 삼고,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길을 엿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애써 찾아낸 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으로 시작된 대한민국의 경제 위기는 '비상계엄'이란 또 다른 위기로 인해서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대위기를 초래할 뻔 했다. 하지만 '윤석열 탄핵'으로 급한 불을 끄고, 새 정부가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어나가며 그야말로 '전화위복'을 경험했다. 그치만 아직 완전한 위기극복을 한 것은 아니다. 전세계 경기침체는 아직 헤쳐나가지도 못했으며, 기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환경재앙이 도사리고 있고, 곳곳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의 위협이 대한민국에도 경고등이 켜지게 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험난한 여정을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중압감이 들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전세계를 이끌어나갈 '선도국가'가 되는 것 말이다. 아유~ 대한민국 같은 쬐끄만 약소국이 언감생심 야무진 꿈을 꾸느냐고 비아냥거릴 때가 아니다.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이 '선도국가'가 되지 않는다면, 나머지 다른 여정은 험난한 가시밭길이고 말 것이다. 오직 '선도국가'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바야흐로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한 지금의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말이다. 해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