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 서해문집 청소년 고전문학 8
채윤미 지음, 예란 그림, 송동철 해설 / 서해문집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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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XXVIII / 서해문집 12번째 리뷰] '같은 작품'을 여러 번 감상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가도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경험은 없었던가? 같은 음식점을 가서 같은 음식을 주문했는데, 평소와 '다른 맛'을 경험한 적은 없었나? 내가 <운영전>을 세 번째 리뷰하는데 '같은 리뷰'를 쓰지 않는 까닭도 바로 그런 것이다. 바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생긴단 말이다. 이번에 주목한 내용은 바로 '궁녀들의 이유 있는 저항'이다.

  조선시대 궁녀들의 삶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면이 있음에도 '유교적 가부장, 신분제도'에 얽매인 처량한 신세라는 점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허나 이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여성인권의 향상으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현대에도 시댁에선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며느리로 살아야 한다. 남성은 낮에는 회사업무에 전념을 하더라도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달콤한 휴식이 허용되는 분위기인데 반해, 여성은 낮에는 회사업무, 밤에는 가사, 육아 노동까지 전담해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려야 한다. 근래 들어서 '핵가족화'된 가정에서는 부부가 맞벌이하면서 가정의 전반적인 노동을 서로 분담해서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남녀가 할 수 있는 '분리된 영역(출산, 육아 따위)'에서는 남성이 도와주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그 대신에 '가사와 양육'등에서 더 많은 부담을 하는 것으로 보편화되는 추세다. 허나 조선시대 궁녀들은 이런 꿈조차 꿀 수가 없었다. 왜냐면 전문직을 가진 커리어우먼이 되었으나 그러한 경력을 갖추고서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임금의 여자'가 되었기에 궁궐밖으로 나가는 일이 금지되었고, 궁궐밖의 남자와 교제할 수도 없었으며, 운이 좋아 '후궁'이 되고, '아들(왕자)'까지 낳게 되면 '또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으나, 그런 삶조차 '궁궐안'에서 이루어지는 한정된 삶이기에 갇혀지내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운명에 당당히 도전한 여성이 있다. 바로 안평대군의 수성궁에 살고 있는 궁녀 '운영'이다. 그녀는 '안평대군의 여자'로 평생을 살아야하는 운명에서 당당히 벗어나 '김진사의 여인'이 되고자 궁을 벗어날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이 실현되지 못하자 현실(궁녀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선택'에 부끄럼이 없었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는 일을 실현시키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폐쇄적인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틀 안에서 이토록 놀라운 일을 벌인 여성이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운영'이란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더 놀라운 점은 수성궁에서 '운영'과 목숨을 함께하겠다는 '아홉 명의 궁녀'가 더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은 '소옥', '부용', '비경', '비취', '옥녀', '금련', '은섬', '자란', '보련'이다. 이 궁녀들은 운영과 함께 글과 시를 배운 '동문'이면서 '궁녀의 삶'에 문제의식을 공유한 '동지'였던 셈이다. 궁녀의 삶에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던가? 그건 바로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아가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어찌하여 궁녀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궁밖을 나서기만 해도 사형, 외갓남자에게 존재를 들키는 것만으로도 사형,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도 혼인조차 할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르게 만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수많은 궁녀들이 '이유'도 모른채 궁궐에 갇혀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하찮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홉 명의 궁녀들'은 운영이 김진사와 사랑에 빠지는 범죄를 보고도 눈 감아주었고, 심지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운영의 죄가 안평대군에게 들통이 나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모두가 나서서 운영을 살려주십사 구명운동을 나선 것이다. 왜냐면 저들도 같은 궁녀로서 운영의 사랑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기회'가 닿았다면 운영처럼 사랑에 빠졌을 것이고, 사랑하는 님과 한가정을 이루는 꿈을 꾸었을 테고, 그 사랑과 꿈이 죽을 죄인 것을 알았다고해도 기꺼이 죽을 각오를 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이런 당찬 여성들이 참 많았을 것이다. 헌데도 우리가 익히 알지 못한 까닭은 '여인들의 목소리'에 귀담아 듣는 남정네들이 없었던 탓이고, '여성, 자신들의 의견'을 스스로 기록하지 못해서 발생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운영전>은 더욱 소중하다. 그런 몇 안 되는 '조선여인들의 한맺힌 절규'가 아니겠느냔 말이다.

  <운영전>에는 '금지된 사랑'의 애달픔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도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목숨을 걸고 증명한 이야기다. 이러한 한맺힌 절규조차 당당히 이름을 밝혀지 못할 정도로 조선사회는 견고했다. 그래서 한맺힌 이야기를 '사랑'으로 한꺼풀 발림했고,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라는 '몽유록'으로 또 한겹 포장을 덧붙였다. 그래도 조심스러워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유영'이라는 사람조차 속세를 버리고 훌쩍 피안의 세계로 떠나버리는 '결말'로 마무리 지었다. 어쩌면 이런 장치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아닐까? 만약에 '궁녀의 저항정신'만을 강조한 글귀로 남겨졌다면 조선시대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불살라졌을지도 모르며, '금지된 사랑'이라는 불경스런 내용으로 전해졌다면 풍기문란하다는 이유로 소설의 내용이 왜곡되거나 윤색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겹겹히 싸여진 채로 온전히 그 내용이 전해진 탓에 읽는 이의 눈썰미가 더욱 필요해진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이야기의 진면목'을 꺼내는 대단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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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 :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에서 시작된 사랑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휴머니스트) 1
조현설 지음, 흩날린 그림, 전국국어교사모임 기획 / 휴머니스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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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eiw MDCCLXXXVII / 휴머니스트 41번째 리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마다하는 이는 없다. 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랑의 결실을 이룬 뒤의 이야기에는 왜 흥미를 잃는가? 두 남녀가 뜨거운 사랑 끝에 '결혼'에 성공한 뒤에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보며 늙어가는 이야기는 왜 아름답게 그리지 않느냔 말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함께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좋아하고, 왕자가 유일하게 남겨놓은 신발 한 켤레를 들고 신붓감을 찾는 장면에서는 애를 끓으면서 '행복한 결말'인 성대한 결혼식의 뒷이야기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느냔 말이다. 그건 아마도 '흥미가 떨어지게 때문'일 것이다. 결혼 생활이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고, 종종 부부싸움을 벌일 정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팩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딱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까지만 관심 있어 한다. '행복한 결말'을 이루는 것에 더 없이 감동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 현실적인 비극에는 눈 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허나 '금지된 사랑'이라면 어떤가? 달콤한 사랑이야기에도 아드레날린이 뿜뿜하며 흥분할 지경인데, 그 사랑이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라면 더욱더 애가 닳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 도파민을 비롯해서 각종 호르몬이 폭발하며 '허락'되지 않고 '금지'된 사랑을 '극복'하고 두 남녀가 바라마지 않는 사랑이 위대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응원'을 아낌없이 건낼 것이다. 여기 그런 '금지된 사랑'을 하는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한국고전소설이 있다. 바로 <운영전>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과 대군을 모시는 열세 살의 아름다운 궁녀 운영이 등장하고, 운영과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는 소년 수재 김진사가 곧이어 등장한다. 이렇게 셋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왜 '금지된 사랑'인 것인지 단박에 감이 올 것이다. 바로 시대적 한계인 '조선사회 유교적인 틀'이 궁녀와 사대부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틀에 박힌 '신분제도의 벽'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이미 '임금의 여인'으로 다른 남자와 연을 맺을 수 없는 궁녀신분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제약인 것이다. 그런데도 운영과 김진사 두 남녀는 서로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 애뜻한 감정이 '시'로 드러나며, 두 사람이 나누는 '편지'에서도 오롯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벅찬 감정이 두 남녀를 '하나'로 합칠 수 있게 하지만, 그것은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둘만의 비밀로만 지낼 수 있다면야 사랑을 나눌 수 있었겠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고 둘의 나누는 '금지된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위기는 점점 두 남녀를 향해 조여올 뿐이었다. 그러다 끝내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이 낱낱이 밝혀지게 되자 두 남녀는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지 못하고 끝내 자결을 하고 만다. 행복하지 못한 '슬픈 결말'인 셈이다. 다행히 천상에서나마 두 남녀는 재회를 하였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뒷이야기를 남겼지만, 사랑했다는 죄만으로 이승에서는 고통만 당하고 저승에 가서야 이룰 수 있는 결말이라니,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랑꾼들에게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이란 말인가.

  그러나 '금지된 사랑'은 운영과 김진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운영이 김진사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안평대군'과 운영도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안평대군이 사회적으로 허락하지 않은 일을 서슴지 않게 만들었는지 짐작해보면 어렵지 않게 '둘의 사랑'이 이미 싹트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고 '학문'을 하도록 배려하지 않았다. 애초에 여자에게 재능이 없었다기보다는 제도적으로 여자에게 '사회적 진출'을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뽐내고, 그 능력을 사회에 공헌하는데 쓰며, 널리 이름을 날려 명성을 쌓을 수 있는 글재주를 여자들에게 가르쳐봐야 아무짝에 쓸모없는 일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애초에 '글공부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으면 그런 안타까움도 없을테니, 여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거의 '금기'시 되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안평대군은 굳이 자신의 수성궁에 살고 있는 궁녀들 가운데 열 명을 뽑아 글을 가르치고 '시'를 짓는 재주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재주는 빛을 발하였으며 당대의 내노라하는 문인들 앞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뛰어난 수준으로 올라버렸다. 안평대군의 기쁨은 하늘을 찌를 듯 했을 것이다. 그 열 명의 궁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재가 바로 '운영'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안평대군의 사랑은 거기까지였다. 안평대군도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을 펼치지도 못하고 스스로 꺾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애뜻한 감정도 몰라주고 대군의 어머님이 운영을 '친자식'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궁으로 들어온 운영이 친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다가 집밖 출입조차 허락치 않는 궁녀가 되어 궁궐에만 갇혀 지내야하니 얼마나 갑갑하고 힘겨워했겠느냔 말이다. 그런 운영을 '손주'를 돌보듯 손수 키우듯 보살핀 이가 바로 안평대군의 어머니였다. 그런 운영에게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간 대군은 소녀티를 벗고 아름다운 처녀로 성숙해진 운영에게 그만 홀딱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운영을 '후궁'으로 삼는다면 어머니께 불효를 저지르는 일이 되고 말 것이기에 안평은 속내를 꺼내지도 못하고 운영을 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운영에게 '다른 남자의 느낌'을 받은 것이다. 바로 운영이 지은 시에 '자신은 궁에 갇혀 지내야 하는 외로운 몸'이고, '자신이 마음을 내어준 님을 만나지 못해 슬프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시를 쓰자, 안평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 허나 수성궁 안에 다른 남자를 들이지 않았으니 '그 아픔'마저 당당히 드러내어 운영을 꾸짖을 수도 없었다. 운영은 내 여자인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더욱 애달파지는 안평이었다.

  그러다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운영이 사랑하는 님이 자신이 총애하던 김진사였고, 둘은 이미 높다란 궁궐의 담을 넘나들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안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무릇 궁녀가 주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통한 사실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터인데, 자신이 그 '주인'으로서 직접 운영을 벌하여 죽음에 이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어찌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안평은 끝내 운영을 죽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운영의 사랑을 허락치도 못하였으니, 안평이 얼마나 운영을 사랑했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운영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자결'을 하고 만다. 김진사도 운영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특이 죄값을 치루는 것을 확인한 뒤에 곡기를 끊고 자결을 한다. 안평도 얼마 뒤에 벌어진 '계유정난'에 휘말려 강화도에서 사사되었으니, 사랑으로 얽힌 세 남녀는 모두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만 받다가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야 사랑을 이룬 운영과 김진사는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그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안평대군은 끝내 평안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일이 지났다고하나 안평대군이 살았던 수성궁터가 쑥대밭이 되어 쓸쓸해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름답던 궁궐인데 말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었던 곳인데, 이토록 쓸쓸해졌으니 옛추억을 돌이켜 보았을 때 안타까움만 커져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운영전>은 '금지된 사랑'으로 짜여진 슬픈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을 최고로 여기는데, 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런 최고의 감정조차 '제약'을 두려하는가? 허락된 사랑보다 금지된 사랑이 더욱 뜨겁고 짜릿한 감정을 선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슬픈 결말'이라도 두지 말 것이지 왜 사랑하는 사이를 갈라놓게 만들고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가슴 찢어지게 만드냔 말이다. 하긴 아무리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사랑이라고하기엔 너무 더러운 사랑도 있기는 하다. 물론 사랑엔 나이도 숫자에 불과하고 국경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진리이지만, 적절히 절제할 때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족에 가깝지만, 개인적으로 운영의 짝으로 김진사보다는 안평대군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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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산책 12 - 미국 '1극 체제'의 탄생 미국사 산책 1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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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XXVI / 인물과사상사 19번째 리뷰] 미국이 초강대국인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정의로운 나라일까? 미국이 하는 일은 아무런 의심할 것도 없이 믿어도 되는 걸까? '미국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이들이라면 그런 말은 함부로 입에 올리기 힘들 것이다. 물론 미국이 세계평화를 위해 앞장 서서 한 일들도 많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전범국 독일을 패망시킨 것이 그렇다. 600만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재자 히틀러를 힘으로 억눌러 제압한 것으로 '미국의 힘'은 세계평화를 지키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냉전시대에는 공산진영의 확산을 막아내고 자유진영을 지키는 최선봉으로 자리매김하며 오늘날까지도 세계경제의 주축이 되어 경제질서를 바로 잡은 공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이었던 '일제'에 대해서는 전범국 독일과는 사뭇 다른 결말을 지었다.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전범자들에게 혹독한 처벌을 내린 것과는 달리 일왕을 위시한 일제군국주의의 전범자들에겐 관대하다 싶을 정도로 너그러운 판결을 내렸고, 수감된 몇몇 전범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석방하고서 미국을 도와 전쟁을 수행하는데 적극적으로 돕도록 조치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의 피해국이었던 한국은 해방이후에 전쟁과 분단이라는 끔찍한 처벌 아닌 처벌을 받았고, 가해국인 일본은 패망했음에도 '미국의 배려(?)'로 인해 빠르게 경제대국으로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패전국'이라는 멍에마저 미국 덕분에 훌훌 벗어던지고 세계무대에 당당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며, 미국으로부터 '면죄부'를 톡톡히 받아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일본이 미국의 꼬붕 역할을 충실히 하는 단초가 되긴 하지만, 미국의 꼬붕이 된 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에 아직까지는 별다른 이슈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여튼, 중요한 사실은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월등한 지위를 누리는 자리에 있으면서 도덕적, 윤리적, 인권적으로 하등 문제가 전혀 없는 범접할 수 없는 대국이 아니라 속으로 곪을대로 곪아터져서 썩어빠진 정치를 하면서도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전세계의 이익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악의 제국'처럼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힘 센 나라면서 가장 도덕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텐데, 초강대국인 주제에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무한 자국이기주의'에 빠져서 약소국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조폭과도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낄 정도란 점이다.

  이는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기만 봐도 그렇다. 그가 집권하던 1980년대는 '강력한 미국'을 표방할 정도로 전세게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소비에트 연방도 경제가 흔들리자 정계까지 막바지에 내몰리며 '개혁(페레스트로이카), 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을 추진했지만 스탈린의 폭정으로 이미 내리막을 탄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소련이 해체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당에 미국과 경쟁하던 '소련의 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에 미국은 미국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를 찾아 '적수(훗날 '악의 축'에 해당하는)'를 찾으려 애썼지만 마땅한 후보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만만한 상대를 고르기 시작했는데, 레이건이 찾은 만만한 맞수가 바로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었다. 훗날 '아랍의 봄'의 여파로 내전이 발발하였고 42년간 철권통치를 해오던 무아마르 알 카다피이 사살되면서 막을 내렸던, 바로 그 '카다피'가 맞다. 분명 악독한 독재자가 맞긴 하지만 1981년 당시 리비아가 어찌 단독으로 미국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란 말인가? 그럼에도 레이건은 자신의 정권 안정을 위해서 '리비아 폭격'을 강행하였다. 결과는 리비아가 변변한 반항도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한 미국은 승리를 자축하며 공공연하게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데 성공하고 미국내의 정권안정을 꾀할 수 있었단다. 허나 이는 반쪽짜리 승리였다. '리비아 폭격'을 강행한 미국의 편을 든 나라는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 세 나라 뿐이었고, 제3세계 국가들을 비롯한 95개국의 나라가 '반미주의의 깃발'을 높이 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기회만 된다면 '미국의 힘'에 편승하는 각 나라 '친미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일을 일삼았다. 설령 '친미정권'의 지도자가 그 나라의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친미정책'을 유지하는데 앞장서기만 한다면 아무 상관도 없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한민국의 전두환 등등 이들이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그 나라의 국민들을 학살하는 일에는 눈을 감고 오직 '미국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것만을 바라며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하긴 미국내부의 '인종차별'도 자국의 백인들을 위해서라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것을 보면 의아해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미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에 어김없이 내세우는 명분이 '인권탄압' 아니었던가? 힘없는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를 '악의 축'으로 삼고 전쟁도 불사하는 미국의 모습과는 사뭇 상반된 모습 아닌가? 그토록 '인권보호'에 앞장 설 요량이면 자국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빈곤한 계층이 죽지 못해 들고 일어난 시위들에게 '폭도'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우면서 강경진압하지 말고,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한 것 아닌가? 도대체 어느 것이 미국의 진면목이란 말인가?

  <미국사 산책>을 통해 미국을 주욱 살펴보니, 미국이란 나라는 기승전 '자국이익'으로 결말을 맺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모든 나라가 '자국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이 '자국이익'에 목을 매다는 모습을 펼치면 전세계가 들썩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왜 '아메리칸 퍼스트'를 외쳤는지도 이제 제대로 이해가 되었다. 초강대국인 미국도 경제가 휘청거리면 앞뒤 잴 것도 없이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전세계가 어떤 영향을 받든 '나중 일'이라는 냉혹한 국제관계의 질서로 새삼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런 초강대국 미국이 '브레이크 망가진 자동차'처럼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릴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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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산책 11 - '성찰하는 미국'에서 '강력한 미국'으로 미국사 산책 1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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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XXV / 인물과사상사 18번째 리뷰] 미국의 70년대와 80년대에는 39대 지미 카터 대통령과 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다. 두 대통령은 그 성향부터 극명하게 달랐는데, 이를 저자는 '성찰하는 미국'과 '강력한 미국'으로 함축해서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카터 대통령은 '인권'을 중시하는 도덕적인 정치를 지향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힘'을 바탕으로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미국으로 거듭나길 바랐다고 한다. 하긴 38대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하였기에 뒤를 이은 카터 대통령은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카터 정부를 지내며 위축되었던 '미국의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픈 분위기가 띄워지자 '강한 미국'을 표방한 대통령이 당선되어 미국을 이끌어 나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와중에 한미간에 중대한 사건들이 터져나왔는데, 박정희 정권 때에 '코리아 게이트' 사건과 전두환 신군부가 저지른 '광주민주화혁명' 사건이다. 각각 카터 대통령 시절과 레이건 대통령 취임 직전이었는다.

  '코리아 게이트'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박정희 정권이 '박동선'이란 한 개인을 통해서 미국의 고위급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 자금'을 뿌린 사건인데, 이것이 미국에겐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 있었는지 미국의 정치인과 언론인 들이 들고 일어서서 한국을 맹비난하며 쌍욕까지 서슴지 않아 대한민국에 심각한 정치, 경제, 안보 등에 악영향을 끼친 사건이 되고 말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약소국 한국이 강대국 미국에게 잘 좀 보아달라며 '뇌물'을 갖다 바친 것인데, 뇌물을 받아쳐먹은 미국놈들을 벌주기는커녕 감히 한국 따위가 미국에 돈을 펑펑 쓰면서 '로비'를 일삼다니 괘씸하다는 듯이 열불을 내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원조' 없이는 살아갈 능력도 없으면서 미국 고위관리층에게 '거액의 로비 자금'을 퍼줄 여력이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경제원조 중단', '주한미군 철수', '미국 농부들 밥줄 끊길뻔 했으니 미농산물 한국 니네가 싹다 수입해' 등등 한국에게 덤터기를 씌워도 이만저만 씌운 것이 아닌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부는 이런 모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미국의 경제원조가 끊기면 '대미 수출길'이 막히는 것인데, 미국에 '완성품'을 수출하는 것으로 겨우 경제를 살려나가고 있는 판국에 이걸 끊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한미군 철수'는 더더욱 안 될 말이었다. 얼마전에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져 가뜩이나 남북간의 긴장감이 고조된 판국에 '주한미군'이 철수까지 해버리면 만에 하나 전쟁이라도 발생했을 시에 한국이 단독으로 맞서 싸울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경제성장의 싹을 틔웠을 뿐, 70년대 대한민국은 아직도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런 판국에 또다시 전쟁까지 나버린다면 그야말로 폭망하는 일밖에 남지 않게 되니 '미군철수'는 아직이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으로 '한국의 농부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 미국의 농산물을 대량으로 수입하도록 허가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바닥을 찍게 되었다. 좁다란 땅에서 겨우 자급자족할 식량을 근근히 생산하던 시절이었는데, 미국에서 '값싼 농산물'이 대량으로 수입해서 들여오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곡식들은 내다 팔지도 못하고 갈아엎어야만 했으며, 대대로 농사를 지어오던 이들은 땅을 팔고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노동자가 되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이른바 '이촌향도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이것이 어찌어찌 80년대 고도성장기와 맞물려 '공장노동자'를 충당하는 이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70년대에는 그야말로 농촌도, 도시도 빈곤하고 가난한 이들이 갈 곳도 없고 반기는 곳도 없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하는 일이 되었다. 특히 '코리아 게이트'의 여파로 인해 대한민국의 농업은 아직까지도 '자급률'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단다. 망가지긴 쉬워도 다시 회복하긴 어려운 법이다.

  한편, 박정희가 피살되고 혼란했던 정국을 수습한 건 '전두환 신군부'였다. 허나 신군부는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공수부대로 짓밟으며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이런 폭정의 시대가 다시금 도래했는데도 미국은 '신군부의 편'이었다. 자국민을 짓밟는 무뢰배를 향해 꾸짖기는커녕 도리어 신속히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능력자(?)'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과연 미국은 도덕적인 나라인가? 인권을 중시하던 카터 대통령은 어디 갔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알만한 지식인들은 하나 같이 이런 행태를 자행하는 미국에 대해 '비난'을 쏟아부었다. 이른바 '반미주의의 탄생'이다. 광주에서 저항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신군부의 행태를 두둔하는 듯한 미국의 언론도 한몫을 하였다. 신군부에 저항하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을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레밍 떼'에 비유한 것이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모한 '죽음의 행진'을 멈추지 않는 레밍처럼 신군부의 총칼과 몽둥이 앞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는 광주의 시민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의아해했단다. 광주에서는 저렇듯 처절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광주밖에서는' 어찌도 그리 조용한 것이냐면서 말이다.

  그러나 광주의 시민들은 신군부의 총칼과 몽둥이 세례를 받으면서도 한줄기 빛을 기다렸다. 자신들의 저항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미국이 알게 된다면 미국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란 것을 말이다. 인권유린을 참지 않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미국이 신군부의 폭력을 잠재워줄 막강한 '정의의 심판'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나 그 빛이 사그라들었다. 전두환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신속히 '정국안정'을 이룰 적임자로 '선택'하면서 말이다. 그리고서 미국은 뒷짐을 지었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그렇게 미국이 뒷짐진 사이에 신속하게 광주를 쓸어버렸다.

  그렇지만 '광주밖에서' 조용히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설처대는 신군부와 뒷짐진 미국을 그대로 좌시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확고하게 '반미주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그저 소소한 시작일 뿐이었다.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는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과격했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신군부를 향한 데모는 끊이질 않았다. 정의롭지 못한 전두환을 두둔한 미국을 향해서도 확실히 반대했다. 이러한 일련의 '반미주의'는 당시의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과 맞물려 계속 울려퍼지게 된다. 이는 1987년 6월의 그날까지 멈추지 않았다.

  과연 대한민국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두 나라의 운명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느냔 말이다. 이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을 때까지 나의 '미국사 관련 책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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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 : 왜 금지된 사랑에 빠질까? 물음표로 따라가는 인문고전 3
임치균 지음, 김유경 그림 / 아르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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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XXIV / 아르볼 3번째 리뷰] '금지된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통해 너무도 많다. 그래서 너무 식상한 주제일 것도 같은데, 최신 유행가 가사만 보아도 '사랑타령'은 여전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그럴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 모양이다. 그런데 '금지된 사랑'이라고 하면 오늘날에는 '불륜'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과거에는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한 것이 더 많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원수 가문인 탓에 서로 사랑에 빠질 수 없는 두 남녀가 죽음에 이를 지경까지 이르는 사랑이야기를 담았고, <춘향전>에서도 양반과 기생이라는 신분차이를 뛰어넘어 사랑을 하는 두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이 두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운영전>에서도 이런 '방해요소'와 '극복노력'이 담겨 있다.

  <운영전>의 주인공은 곧 과거급제를 할 유망한 청년 '김진사'와 안평대군의 궁궐, 수성궁에 살고 있는 궁녀 '운영'이란 두 남녀다.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바로 여주인공인 운영이 안평대군의 '궁녀'이기 때문이다.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이건만 왜 '궁녀'이라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건 바로 '궁 안에 살고 있는 여자'는 궁의 주인에게 속한 여자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운영은 안평대군의 수성궁에 살고 있는 까닭에 이미 '안평대군의 여자'인 셈이다. 정식 부인은 아니지만 '부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여자라서 '외갓남자'와 마주쳐서도 안 되고 심한 경우에는 '궁궐밖으로' 한발짝도 나설 수 없는 감옥 아닌 감옥에 살고 있는 것처럼 갇혀서 살아갈 운명이다. 그래서 운영은 안평대군을 지아비로 섬기는 '후궁'이 되는 길이 아니고서는 평생 정절을 지키고 수절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운명을 지닌 여인이 외갓남자인 '김진사'와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된다. 안평대군이 심심풀이 삼아 운영을 비롯한 열 명의 궁녀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시를 짓는 교육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인의 신분으로 글공부를 하게 되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밖에 나가 실력을 뽐내지는 못하고 오직 '수성궁' 안에서만 글을 짓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배우지 않았으면 모르겠으나 이미 글을 배우고 학문을 읽혔으니 자연스레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록 궁궐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는 없지만, 글을 통해서나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글을 짓는 실력이 나날이 늘어 안평대군을 기쁘게 해주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에 운영을 비롯한 아홉 명의 궁녀들은 시를 통해서나마 자신의 심사를 드러내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된다. 그러다 어느 날, 수성궁에 바깥 손님들이 찾아왔고 안평대군의 명을 받아 손님들이 시를 짓는 시중을 들도록 열 명의 궁녀들을 부른다. 그렇게 마주한 김진사와 운영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에서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 인연이 되어 둘은 남몰래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말이다. 비록 김진사의 붓끝에서 운영의 손가락으로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지만, 운영은 그 먹물을 지우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먹물을 떨어뜨린 김진사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코 사랑한다는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궁궐의 여인'이자 '안평대군의 여자'인 운영에게 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남녀는 말 없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나날이 야위워만 갈 뿐이었다.

  그러다 김진사가 먼저 용기를 내어본다. 용한 무당의 도움으로 수성궁 안으로 소식을 전할 방법을 찾아본 것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소식을 전했지만, 어디 사랑에 빠진 남녀가 그것만으로 만족할 리가 있겠는가. 이번에는 김진사의 노비 특의 도움을 받아 수성궁의 담장을 넘어 운영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성궁의 높은 담을 넘어 둘의 만남은 계속 이어지니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음이라. 허나 새벽닭이 울기 전에 다시 담장을 넘어야 하는 김진사와 담장을 넘지 못하고 그저 멀어지는 님의 모습만 바라봐야하는 운영의 마음은 점점 더 애달퍼지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안평대군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둘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기에 비밀스런 만남은 그렇게 몰래몰래 어둠을 빌어서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허나 오래되면 비밀도 탄로가 나는 법이라, 운영의 마음에 변화가 있음을 안평대군이 짐작하게 된다. 바로 운영이 지은 시의 내용에 '따로 정을 통한 연인이 있다'는 내용을 짐작한 것이다. 평소 시는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본심이 드러나기 마련이라 입버릇처럼 말했던 대군이기에 더욱 심증을 굳혔다. 그렇게 운영을 추궁하자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며, 운영이 외갓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사실까지 발각이 되고 만다. 이에 죽을 일만 남게 된 운영은 대군에게 잘못을 고하고 자결을 하려 하나 다른 궁녀들이 나서서 운영을 감싸고 도니 안평대군은 그런 운영을 용서하게 된다. 허나 용서를 받았다고해서 운영과 김진사가 백년해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인 제약 때문에 둘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운영은 끝내 자결을 하였고, 김진사도 곡기를 끊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둘은 저승에서 만나 사랑을 이루게 된다. 애초에 둘은 천상의 선남선녀였는데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인간세상의 고통을 겪으러 내려왔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맛보고나서야 천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는 뻔한 핑계와 함께 말이다.

  비록 '금지된 사랑'을 주제로 다루었으나 <운영전>에서는 비교적 해피엔딩으로 끝맺음을 하였다. 살아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죽어서는 사랑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다만 조선이라는 '현실'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에 '꿈속에서(몽유록계 소설)' 이룰 수 있었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런 제한적 조건을 달지 않고서는 허락되지 않은 '꽉 막힌 사회'였던 것이다. 특히 '여인들'에게 야박한 족쇄를 채운 것을 잘못되었다 여기기까지 꽤나 오랜 시일이 지나야만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게 왜 안타까운 일일까? 조선시대에 여성들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사회적 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바깥일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몫'이었지, 여성들은 '집안에만' 갇혀지내며 남성들의 '부속품' 쯤으로 천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시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성의 재주를 인정해주는 유일한 직장이 바로 '궁녀'였다. 요즘말로 하면 '궁녀=직장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문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하는 궁녀일지라도, '궁궐안에서'만 생활을 해야하는 여인들의 숙명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또한 궁녀는 원천적으로 '왕의 여자'였기에 마음대로 사랑에 빠지고 혼인을 할 수도 없었다. 예외적으로 나이가 차서 더는 궁궐 일을 할 수 없거나 공을 세워서 혼인을 허락받은 궁녀가 아니고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궁녀가 유일하게 혼인할 수 있는 경우는 '왕의 첩지'를 받아 후궁이 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왕의 첩'이 되어 왕자를 생산(?)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이다. 허나 구중궁궐 속 수많은 궁녀들 가운데 임금의 승은을 받아 '후궁'이 되는 일은 정말 흔치 않는 일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궁녀의 운명은 평생 처녀의 몸으로 늙어 죽는 일이었다. 남몰래 '사랑'에 빠지게 되면 행복한 결말은커녕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는 일뿐이었고 말이다. 감히 '왕의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는 것만으로도 죽을죄였던 것이다.

  이토록 궁녀에게 '사랑'은 금기시 되던 일이다. 그게 설령 '안평대군'일지라도 '궁녀 운영'은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왜냐면 왕족이 사대부 가문의 여인이 아닌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왕족의 욕정에 의해 범해졌다하더라도 천한 궁녀쯤이야 언제든지 내다버릴 수 있는 '권력'을 지녔고, 이를 용납하는 사회분위기였기 때문에 안평대군 또한 몸가짐을 반듯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섣부른 행동거지로 인해 애꿎은 여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안평대군이 운영의 잘못을 용서해준 것도 애초에 대군이 '운영'을 사사로이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열 명의 궁녀에게 글을 가르칠 때에도 유독 운영의 재주에만 관심을 보였으며, 운영의 시를 통해서 '운영의 마음'을 엿보려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안평대군의 여인'인 궁녀였기에 대군과 함께 동침을 하며 사랑을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운영은 대군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안평대군도 운영에게 목을 매는 일도 없었고, 사랑을 구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런 운영이 김진사와 사랑에 빠졌을 때 심각하게 질투심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이렇게 '삼각관계'를 다루기라도 했다면 <운영전>은 전근대를 넘어 현대적인 사랑이야기로 초월하는 기염을 토했을 것이다. 왕자와 선비의 사랑을 독차지한 위풍당당한 궁녀의 러브스토리라면서 말이다. "왕비냐, 마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가 <운영전>에서 먼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운영전>은 묘한 고전소설이다. 일면 대단히 단순한 소설 같고, 뻔한 사랑이야기를 담아놓은 것 같은데도, 그 이야기에 덧붙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좀더 찌끄려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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