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마록 1 : 혼세편 ㅣ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퇴마록 - 혼세편 1> 이우혁 / 엘릭시르 (2012)
[My Review MDCCXCVI / 엘릭시르 8번째 리뷰] 세상이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국내편'에서 퇴마행을 하기 위해 뭉쳤던 박 신부, 이현암, 현승희, 장준후, 4명의 퇴마사들은 언어학 박사 서연희 양과 함께 '세계편'에서 대활약을 펼친 끝에 이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려 악마 아스타로트를 불러들이는 '지옥문'을 열려는 블랙서클과 싸워 승리를 거두웠다. 그렇게 세상은 평온해지는 줄 알았으나 여기저기에서 '악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며 퇴마사들을 바쁘게 만든다. '혼세편 1권'에서는 블랙서클 퇴치 뒤에 국내에서 일어나는 혼돈스런 상황을 정리하는 일에 나섰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와불이 일어나면 편>에 잘 나타났다.
<와불이 일어나면>에선 일제 총독부가 앞장 서서 조선의 정기를 끊어놓겠다며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조선팔도 명당이란 명당 자리에 '쇠말뚝'을 박아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물론 풍수지리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산이나 들에 쇠말뚝 몇 개, 아니 수백 수천 개를 박아놓았다고 한들 큰 문제가 될 것도 없다. 만약에 풍수지리가 실제로 큰 힘을 발휘하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국내의 건설업'은 물론이거나와 전세계 건설업자들은 모두 풍수지리에 따라 조심스럽게 사업을 펼쳐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풍수지리는 그럴 만한 힘이 없으니 크게 걱정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본 총독부가 '한국땅'에 쇠말뚝을 박아넣은 일이 만행인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이 '조선의 정기'를 끊어 한민족이 절대로 부흥하지 못하고 결국엔 쇠망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품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곱지 못한 의도로 저지른 짓을 철저히 파헤쳐서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겠다는 것이 '혼세편 1권'의 핵심 주제인 셈이다.
<와불이 일어나면>의 배경은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운주사다. 이 운주사가 유명한 까닭은 이곳에 '천불천탑'이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석탑'이 있다는 이름인데, 그 옛날 신라 효공왕 때 도선국사가 천상(하늘)의 석공들을 불러 하룻밤만에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불상과 석탑이 있는 관계로 장관을 이룬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나 많은 불상과 석탑의 모습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1000개의 숫자보다는 한참 모자란 수로 현존하는 까닭에 그저 '많다'는 뜻을 담아 지었다는 설과 당시엔 '천 개'를 꼭 채웠으나 무수한 세월이 흐른 지금은 수백 개만 남아 있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운주사에 있는 와불(누운 자세의 불상)을 일으켜 세우려는 시도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기술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크레인이나 기중기도 없었기에 놀라울 따름이고, 굳이 누워 있는 불상을 세우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그 의도가 '풍수지리'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와불이 일어나면 벌어질 일들에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풍수지리상 한반도의 형세가 어떠한가 살펴보면, '행주형국(行舟形局)'으로 뜻을 풀면, 배가 동쪽 바다로 나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백산맥이 있는 동쪽 지형이 지대가 높고 서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으니 한반도의 땅 모양이 배와 같은데, 한 쪽이 무거워서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 배가 똑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크게 휘어져 나가는 형세라는 말이다. 그러나 풍수지리라는 것이 '좋은 땅, 나쁜 땅'을 가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애초에 좋은 땅은 더욱 좋게 만들고, 반대로 나쁜 땅이라 할지라도 '부족함'은 채우고 '과함'은 깍아서 좋은 형세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근본이다. 그렇기에 동쪽 땅이 무거우면 서쪽 땅에도 그에 못지 않은 '무게'를 주어 기울어진 배를 바로 잡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행주형국'인 한반도의 서쪽 땅(전라남도)에 운주사를 하루만에 짓고 그곳에 천불천탑을 하룻밤만에 지어 바로 잡아 '한반도의 풍수 기운이 올바르게 차고 넘치도록 보완했다'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소설에서는 바로 이런 '사실(史實)'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여기에 일제시대 총독부의 만행을 기어 넣은 것이다. 다시 말해, 도선국사가 바로 잡은 한반도의 좋은 풍수를 망치려 전국에 '쇠말뚝 테러'를 저질렀고, 와불 또한 일으켜 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만행이다. 명백하게 '나쁜 의도'로 저지른 짓이자, 대한민국의 국보이자 소중한 문화재를 망가뜨리려 한 범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마사와 함께 동행한 풍수지리가와 도가의 고수(도술 고단자)가 부족한 불상과 석탑을 복원하고 와불을 일으켜 세워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은 일본 정부를 향해 본때를 보여주려 했다. 다시 말해, 읿어버렸던 풍수의 기운을 되살리는 것을 넘어 와불을 일으켜 세움으로써 그 기운을 더욱 넘치게 한다면, 우리 나라는 큰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일본은 침몰시켜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식민의 경험'이라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저들의 잘못을 사죄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저들 덕분에' 한국이 이만큼이나마 잘 살게 되었다는 허튼 소리를 지꺼리는 일본정치인들에게 혼쭐을 낼 수 있다면, 와불을 일으켜 세우는 것뿐 아니라 더 심한 일도 마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풍수지리'라는 것은 비과학적인 일이다. 천불천탑으로 '기울어진 형세'를 바로 잡았는데, 일제가 이를 훼손시켜 우리에게로 향하던 '기운'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일제가 부흥할 수 있었으니, 역으로 훼손된 천불천탑을 복원시켜 일본으로 흘러들어가는 '기운'을 흘러가지 못하게 막고, 와불을 일으켜 세워 무거운 태백산맥을 지렛대의 주춧돌로 삼아 일본 열도를 높이 들어올렸다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뜨려서 그대로 '침몰'시켜버린다는 가설이 실제로 일어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제 총독부가 실제로 효과가 있을 지 없을지 모르지만 '나쁜 의도'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들처럼' 우리에겐 좋은 기운을 일본에겐 나쁜 기운을 천벌처럼 내려본다면 어떨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통쾌하지 않겠는가? 마치 거대한 태풍이 우리 나라를 비켜서 일도 열도로 곧장 가버리던가, 진도 9가 넘는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그로 인해 지진해일(쓰나미)가 일본 열도를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면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그에 대한 사죄나 반성 따위는 할 줄도 모르는 '야만인들의 나라'가 그처럼 천벌을 받아 벌벌 떠는 모습이라도 보는 것이 속시원한 일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면 그런 마음을 품는 것조차 큰 죄책감을 갖게 될 것이 틀림 없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은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은 반드시 죄값을 받게 하고, 그 피해 배상 또한 꼭 받아내야 하며, 다시는 그런 죄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사죄를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두 번 다시 이 땅을 넘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처절한 반성까지 얻어내면 개이득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인, 모두를 죄인으로 삼겠다'는 것이라면 옳지 못한 일이다. 과거에 저지른 '아빠의 잘못'을, 현재의 '그 아들'과 미래의 '그 손주'가 대신 받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현재를 살아가는 '전후 세대의 일본인'에게 과거의 죄값을 물어, 너희들은 죽어 마땅한 족속이라고 매도해버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반드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일본정부'다. 그들의 뻔뻔한 면상을 후두려 패고 굴복시켜야 한단 말이다. 물론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그것이 '정상국가'이자 '선진국'의 방식인 것이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일본정부보다 앞서고 뛰어난 '선도력'을 보여줘야 저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 허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저들을 굴복시킨다면 '복수는 복수는 낳는다'는 진리를 통해 저들 또한 '앙갚음'을 하려 들 것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일본 침몰을 실현시킬 수 있는 '스위치'를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리고 퇴마사들이 선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 한 명의 목숨을 구하고, 고통에 겨워하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하나 뿐인 목숨일망정 기꺼이 내놓을 준비가 된 이들이 바로 퇴마사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능력을 허튼 일에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저들에게 주어진 놀라운 능력이 놀라운 까닭은 '능력,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능력을 지녔음에도' 저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구할 수 있는 목숨과 영혼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놓을 각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천할 따름이다. 그들이 구할 수 있다면, 그들은 어디라도 갈 것이다. 설령 그곳이 지옥의 끝자락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퇴마사들이 일본 침몰을 목적으로 한 '와불'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