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고려사 4 - 대몽항쟁의 끝, 부마국 고려 박시백의 고려사 4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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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VII / 휴머니스트 42번째 리뷰] '조선사'를 다룬 역사책은 참 많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려사'를 다룬 역사책은 드문 편이다. 더구나 '몽골의 침략'과 '원의 내정간섭'을 집중 조명한 책은 더 드물다. 그래서 이 책 <박시백의 고려사>는 읽을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려는 태조 왕건으로부터 시작해서 무신집권기 초반 뿐이다. 그리고 '최씨 무인정권부터 원 간섭기까지'의 상당 부분은 겉핥기 식으로 스리슬쩍 넘어간 뒤에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와서야 다시금 조명을 받다가 여말선초의 역성혁명으로 '조선 건국'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고려사를 마무리 짓곤 한다. 이런 까닭은 고려사를 다룬 사료가 '절대부족'한 상황인 탓이 가장 크다. 고려조에 쓰여졌던 '고려왕조실록'은 오랜 전란으로 유실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조선 초기에 쓰여진 탓에 '객관성'에 상처를 받았던 터라 고려의 진면목을 다잡기에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고려사>를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왕과 고위급 신하들의 전유물이었던 '역사기록'이 아닌 온 국민에게 널리 읽히고 뜻을 새롭게 정리할 역사책이 말이다. 그래야 역사책을 읽는 가치가 더욱 선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최충헌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충선왕의 죽음'까지 다뤘다. 시기적으로는 '몽골의 침략'과 그에 따른 '고려의 항전', 그리고 '항복 이후의 원 간섭기'를 다룬 셈이다. 고려 왕조로 살펴보면 '고종'부터 '원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으로 이어졌다. 13세기 전부를 다루고 14세기 초까지 아우르는 10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의 고려를 보여주었다. 고려는 '무신집권'으로 문벌귀족사회가 무너지고 그야말로 '무인시대'가 펼쳐졌다. 나쁘게 말하면 난장판이었고, 좋게 말하면 '실력'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대변혁기였다. 이런 처지에 빠진 고려를 '몽골'이 발흥하여 침략해왔다. 무려 40여 년 간이나 말이다. 무신집권시기가 꼭 100년이었고, 그중 '최씨 무인정권'이 60년을 해먹었으니, 무신집권시기의 후반부는 '대몽항쟁의 시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무인정권은 몽골과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도 '팔만대장경 조판' 등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허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전쟁통에 방치된 백성들이다. 최씨 무인정권은 몽골과의 싸움에서 개경이 함락될 것 같자 '강화천도'를 밀어붙인다. 이대로 몽골에게 패배해 항복을 하게 된다면 '고려 왕족'은 볼모로 잡혀갈지언정 살아남아 '몽골의 속국'이라도 될 수 있겠지만, 최씨 무인정권(당시 집권자, 최우)으로서는 패배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지리적인 이점이 큰 '강화도'에 은거하며 권력의 동아줄인 '고려왕실'을 지켜내고, '조세'도 착실히 걷을 수 있는 최적의 입지인 강화도로 궁궐을 옮기게 된다. 그러면 육지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어찌 되는가? 최씨 무인정권은 몽골군의 침략과 약탈로부터 백성들을 지켜낼 방안이 있었단 말인가? 당연히 없었다. 무인정권이 백성들에게 당부한 것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산으로 도망가든, 섬으로 도망가든, 그도 저도 아니면 용감히 싸우든,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지시 뿐이었다. 그러다 몽골군이 물러나고 나면 '세금'을 걷으러 고을 구석구석 싸돌아 댕겼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이었다.

그런데도 몽골군은 고려의 백성을 온전히 약탈할 수 없었다. 곳곳에서 고려 백성들은 '침략자' 몽골군을 향해 저항을 계속했고, 실제로도 꽤나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렇게 40년을 맞서 싸웠다. 몽골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누구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해서 '천벌'이라고 불리던 악명 높은 군대였다. 그런 군대를 상대로 수십 년동안 대항했던 것이다. 물론 무신정권이 지키던 '강화도'도 꿈쩍하지 않았다. 연이은 침공에도 강화도는 끄떡 없었고, 몽골군은 작은 섬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패배를 밥 먹듯이 한 것이다. 그런 고려였기에 '몽골에 항복한 뒤에도' 몽골(훗날 '원')은 고려를 우대했다. 원에게 있어 고려는 분명 '속국'이었지만, '부마국(공주의 사위로 삼는 국가)'의 지위로 원 황실과 가깝게 지냈고, '조공국'으로 온갖 것들을 수탈 당하는 국가였지만, 고려의 것들을 빼앗아가고서는 '고려의 스타일이 유행하는' 고려양(樣)이 탄생했다. 오늘날로 치면 '한류열풍'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이 가운데 '고려의 처녀'를 공녀로 받치라고 강요하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끌려간 고려의 여자들이 원의 황실과 고관대작의 '정식아내'와 '후궁'이 되어 원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위치까지 올랐다고하니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가늠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고려의 공녀뿐 아니라 '고려 환관(내시)'까지 함께 대유행(?)을 해서 얼마가지 않아 자발적으로 '공녀'나 '환관'이 되어 출세길에 오르려는 고려인도 있었다고 하니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고려인들이 다방면에서 활약을 하며 '원나라의 황실'에서만 활약하는 고려인들이 전체의 1/4이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허나 이리 출세길에 오르려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더 많은 고려인들은 '자기 딸'을 머나먼 타향으로 보내길 꺼려서 일찍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이 성행했단다. 그 까닭은 딸자식을 키워야 노후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란다. 이는 고려 때 '데릴사위제'가 널리 유행한 까닭이기도 하단다. 딸자식을 평생 끼고 살아야 행복한 고려인들이었기에 원의 '공녀' 요구는 들어주기 힘든 사항이었고, 원으로서도 '고려 여자'를 처첩으로 삼지 못하면 권세가로 인정 받지 못했다고 하니 '고려 여인의 활약'이 대단하던 시기였다고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편, 원에 항복한 고려왕실은 원황실의 구색에 맞춰 '격하'되었다. 폐하라는 말을 쓰지 못했고, 전하라고 불러야 했으며, 태자도 세자라고 불려야 했다. 암튼 모든 것이 원보다 낮춰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원과 고려의 관계는 낮춰진 것 같지는 않다. 왜냐면 고려의 자주성은 크게 훼손되지 않은 반면에 고려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원나라가 앞장 서서 다 해주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분명 고려는 원의 속국인데, 어찌하여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이는 앞서 '원종'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몽골은 칸이 죽고 후임 자리에 '쿠빌라이'가 오르기 위해 다른 경쟁자들과 각축을 벌이던 때였다. 이때 원종이 한 발 앞서서 '쿠빌라이' 편을 들어 지지를 천명한다. 이에 크게 감명한 쿠빌라이는 '칸의 자리'에 오르고서 이때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몽골에 항복한 고려의 임금일 뿐인 '원종'이었지만, 쿠빌라이는 원종을 극진히 대우하며 모든 면에서 고려에 후하게 정책을 펼쳤던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쿠빌라이가 마냥 고려에 퍼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쿠빌라이로서 '숙원사업'이었던 '남송정벌'과 '일본원정'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일본원정'을 위해서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독려했던 것이 바로 쿠빌라이였기 때문이다. 이때 원종이 '원정의 불가함'을 피력하며 어떡하든 막아보려 했지만, 쿠빌라이는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1차, 2차 원정을 떠났지만, 얼토당토 않게 태풍(신풍, 카미카제)이 불어와 궤멸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쿠빌라이는 재차 일본원정을 추진하다가 수명이 다해 죽고, 원정길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원정을 위해 설치했던 '정동행성'은 끝내 고려에 남아 두고두고 고려내정의 간섭을 하는 원흉이 된다.

그렇게 원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던 때의 왕이 바로 '충렬왕', '충선왕'이다. 이들은 각각 원 황실의 공주와 혼인을 해서 '쿠빌라이의 사위', '쿠빌라이의 외손자'였다. 이들은 각각 원 황실의 공주인 '제국대장공주'와 '계국대장공주'와 혼인을 한 뒤에 고려에 들어와 왕이 될 수 있었다. 말이 좋아 부부이지, 원 황실의 공주들은 사실상 '원 황실의 스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 황실에서 떠받듦을 받으며 살던 공주가 이역만리 머나먼 땅으로 시집와서 '남편' 하나만 보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고달펐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이 공주들은 하나같이 성질 더러웠고, 툭하면 남편인 왕과 싸웠고,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 신하들을 원 황실에 '고발'해서 죽게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편, 이런 공주의 남편인 왕도 툭하면 고려를 떠나 원 황실에 알량거리는 것이 더 편했으니 '고려의 임금'이면서 원 황실에서 더 오래 머무는 기현상도 벌어지곤 했다. 더구나 원 황실에서도 '사위'이고, '외손자'인 충렬왕과 충선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었으니 두말 할 것도 없다.

이렇게 임금부터 천민까지 권력을 잡고 출세하기 위해 '원 나라'로 떠나는 시기가 바로 '원 간섭기'였던 것이다. 분명 원의 내정간섭은 불편한 것이었지만, 원 황실의 극진한 대접에 고려는 '원의 보호' 아래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온 백성이 출세하기 위해 원으로 떠나길 바라는 풍토가 만연했으니 '나라의 인재'가 모두 빠져나가는 공동화 현상까지 일어난 셈이다. 이런 국력의 누수는 원 황실의 다툼으로 인해 고려를 침공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과거에 고구려가 당 태종을 내쫓고, 고려가 거란을 물리치고, 대몽골 항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는데, 원 간섭기에 벌어진 '원 황실 잔당의 공격'에 고려가 맥없이 무너지고 만 것일까? 그건 나라를 잃어버려 '주인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원 황실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잔당들은 '원의 구원병'이 도착하고 난 뒤에야 진압할 수 있었다. '내 나라'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을 때는 어떤 국난도 극복하던 고려였는데, '내 나라'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려 임금'마저 원 황실에서 머무느라 고려에 오질 않으려 하니 백성들도 예전처럼 지키고 싸우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겠는가. 외국의 군대가 대한민국을 지켜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국 군대의 도움을 받으면 그 대가로 내놓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야 할 때인 것이다. 또한 온 국민들이 '내 나라'라는 생각을 갖지 못한다면 나라는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지배층'이 나라를 지킨 적은 거의 없다. 피지배계층이라고 온갖 핍박과 수탈을 당하던 '백성'들이 오히려 나라를 구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적이 비일비재하다. 오늘날에도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나 멋진 국민들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는 못할 망정 배신이나 때리는 정치인, 경제인, 공무원 등등은 각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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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 흔들리는 삶을 위한 괴테의 문장들
임재성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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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VI / 한빛비즈 151번째 리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누구나 들으면 다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풀네임이다. 아니 이름보다 더 유명한 소설이 있으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라는 책제목만 들어도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너무 유명해서 읽지 않았음에도 '다 읽은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질만큼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괴테는 소설가로 유명하기보다는 '철학자들의 스승'으로 더 유명하다. 그 유명한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괴테의 사상을 칭송하며 아낌없는 갈채와 존경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괴테 철학의 핵심은 바로 '올바른 삶'이다.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보다는 1분 1초라도 아껴서 '무엇이라도 사랑하라'고 말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긍정하라'고 말했으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괴테는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실천으로 옮겼다.

자신의 철학을 몸소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을 겪으며 세상살이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느냔 말이다. 그러면서 남들에겐 '철저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한'...그런 '내로남불의 삶'을 살아가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괴테는 달랐다. 남을 평가하기에 앞서 자신을 드러내놓고 먼저 평가받기를 바라며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고, 인생이 제 맘대로 풀리지 않을 때에는 깊은 고뇌와 사색을 통해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 증명하고자 했다. 이런 모범적인 삶을 살아서인지 괴테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평생을 살았다. 하긴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올바르지 않으면 행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니 얼마나 바른 생활을 했겠느냔 말이다.

물론, 바쁜 현대인들의 눈높이로 본다면 '괴테의 삶'은 고리타분한 꼰대의 삶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도덕이니 윤리니, 질서니 신의니 이딴 것을 아무 것도 모른다해도 '돈'만 많이 갖고 있으면 평생을 플렉스(돈지랄(?))하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데 언제쩍 '도덕군자' 타령이나 늘어놓느냔 말이다. 다 필요 없고 '부자가 되는 방법'이나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나 알려주면 감사할 따름인 인생들이 허다한 세상이다. 그런데 말이다. 돈 지랄도 '있어 본 놈들'이 해야 멋있는 법이지 '없던 놈'이 돈 지랄을 하면 왜 그렇게 꼴보기 싫은 것일까? 한마디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부자들도 자기가 뼈 빠지게 일해서 한푼 두푼 모은 부자는 절대로 허투루 돈을 쓰지 않기 마련이다. 제 분수에 넘치게 졸부가 되었거나, 나쁜 짓으로 부당하게 번 돈이거나, 재벌 2, 3세쯤 되어서 엄청난 상속을 노력도 없이 꿀꺽 한 놈들이 '돈 지랄'을 그렇게 흥청망청 써 재끼는 법이다. 하긴 '돈에 대한 철학'뿐 아니라 '인생철학'도 없으니 그모양 그꼴로 살다 아무런 보탬도 없이 썩어버릴 몸뚱이를 함부로 굴려대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살다가 방황을 할 즈음에 '철학'을 찾기 마련이다. 굳이 유명한 철학자의 어려운 사상을 찾아야만 풀리지 않는 인생의 해답을 찾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우리에겐 전혀 어렵지 않은 '괴테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더러워도 살아갈만한 인생이라고 썰을 풀어주는 '쇼펜하우어'와 '니체'라는 철학자도 있다. 이 두 철학자는 '세상이 엿같다'는 염세주의자였지만, 그럼에도 '엿같은 세상 폼나게 살아보자'고 주장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런 긍정의 아이콘 같은 세 사람의 소중한 말씀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바로 <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란 책이다.

이 책은 '괴테'로 시작해서 '괴테'로 끝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괴테가 남긴 책 속의 '말씀'을 해석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려움을 쉽게 풀어내는 열쇳말이 담겨 있다. 괴테의 말씀 가운데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싶은 구절에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해석을 가미해서 책의 내용이 너무 딱딱하지 않고 말랑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그래서 책내용은 전반적으로 쉽다. 다른 '인문학책'아니 '철학책'처럼 읽고 이해하지 못할 내용은 전혀 없다. 하지만 내용이 쉽다고 인생이 쉬워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성공비결'이 담긴 책을 탐독했어도 성공하지 못한 인생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관건은 바로 '행동하기'다. 말씀을 듣고 깨달았으면 곧바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괴테의 삶이 그랬다. 그는 옳다는 판단이 서면 망설임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옳은 일이라면 반드시 실천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귀감이다. 또한, '해야 할 일'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괴테의 철학이 담긴 어느 문구라도 펼쳐 봐도 딱 이 두가지를 명심한다면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진리로 향하는 길'은 명확하다. 그런데도 어려운 것이 있다면 '옳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행동이요, '그르다는 것'을 절대 하지 않는 행동력이다. 이렇게나 간단한데도 우리는 의지를 잃고서 '건강'을 해치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몰염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도 무심결에 뱉어버리기 일쑤고, 남을 속이고 해치는 짓인데도 '제 잇속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자위하는 몹쓸 짓을 근절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끼지 말고 하라는 '사랑'과 '칭찬'에는 왜 그리 또 인색하기만 한 것일까...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 우리가 왜 그랬는지 말이다. 괴테는 '좋은 일'이면 망설이지 않았고, '나쁜 일'이면 수백, 수천 번 생각을 고쳐먹으며 끝내 하지 않으려 했다. 그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을 저지른 경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고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맘에 드는 구절을 찾기도 할 것이다. 내 경우에는 "가장 오래 버티는 사람이 결국 무엇인가를 성취해 내는 법이지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라는 구절이었다. 괴테는 평생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가 20대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공존의 히트를 치며 엄청난 인기를 끌지만, 그의 두 번째 소설은 그가 죽기 일 년전에 완성한 <파우스트>였다. 무려 60년 동안이나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 결과였다. 괴테는 왜 이토록 고통스럽도록 긴 저술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첫 번째 소설이 너무 큰 인기를 끌었기에 '부담감'이 작용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보다는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는 자살이 끊이지 않은 것도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괴테는 소설속 베르테르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 '덧없는 삶' 때문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그의 책을 읽고 젊은 나이에 삶을 종결짓는 철부지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이 때문에 괴테는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끌어내기 위한 역작 <파우스트>를 쓰는데 그만큼 오랜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 결과 60여 년이나 고뇌했다. 만약 괴테가 '오래 버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파우스트>는 끝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괴테는 <파우스트> 완결본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장롱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다 쓰고 난 다음에도 '고칠 것'이 없는지 망설인 까닭이다. 그렇게 망설이다 <파우스트>를 내놓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그가 세상을 위해 내놓은 역작 <파우스트>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결국 '인간은 이상적인 삶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마저 건다'는 숭고한 삶에 대해 피력해 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오래 버티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책 제목처럼 '인간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답지 못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짐승들이 판을 치는 현재에는 더더욱 그렇다.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자국이 이익'을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전쟁의 참상이 어떤가?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는 하던가? 오히려 소중한 생명만 헛되이 사그라들게 만들지는 않던가? '경제위기'다, '기후위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똑똑하다는 정치가들이 내놓은 정책들은 허구헌 날 '쌈박질'하는 것밖에 내놓은 것이 없다. 마치 '쌈박질'이라도 해야 '열심히 일 하는 것처럼' 보이듯이 말이다. 그럴 바에야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일도 하지 않고 '나랏돈'을 축내는 몰염치한 일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참으로 열심히 '쌈박질~ing'이다. 차라리 괴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러면 눈이 번쩍 뜨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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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산책 17 - 오바마의 미국, 완결 미국사 산책 1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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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V / 인물과사상사 24번째 리뷰] 어느덧 미국사를 산책하는 내 여정도 마무리에 도달했다.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반 년동안 읽어 재꼈는데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이 먼저 든다. 허나 '읽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이 늘 더 많은 까닭에 나중에 '발췌독'으로마나 기억의 편린을 더듬으며 참고하는 방식으로 재도전을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런 까닭으로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총 17권)은 훌륭한 책이었다. 정통 '미국사'만을 조명한 책이 아니라 미국사와 관련이 있다면 유럽을 비롯해서 전세계의 역사적 이슈를 모두 아우르고, 역사 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 사회전반의 문화현상까지 다채롭게 조명한 까닭에 조금은 '난삽한 책'으로까지 보일 정도로 다양한 이슈를 총망라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다채로운 조명이 '역사분야 초보독자'에게 진입장벽(?)을 한껏 낮춘 결과를 낳기도 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읽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니 살짝 애매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직하게 읽어나가면 '미국사의 흐름'이 보일 것이기에 여타의 미국사 책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애초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까닭은 '한국인은 미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물론 내가 '한국인'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기에 어디까지나 '나만의 견해'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미국을 '어떤 나라'로 평가 내려야만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읽었다. 나 어릴 적 '반공교육'을 받을 때만해도 미국은 '우방'을 넘어 '맹방'이었고, '혈맹'인 나라였다. 한마디로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구한 '고마운 나라'였고,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켜낼 유일하고도 '위대한 나라'였다. 그러다 현대정치의 파란을 일으켰던 1987년 '6월 항쟁'의 진면목을 이해할 나이가 되자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반감과 함께 그런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방관했던 '미국의 실체'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더랬다. 그렇게 생긴 의구심은 계속 더해만 갔다. 6월 항쟁보다 앞선 '광주민주화운동'에서도 미국은 전두환 정권을 지지했고, '한일청구권협정' 때에는 박정희 정권을 압박해서 미국의 입장에서 더 유리한 '일본의 편'을 들었으며, '한국전쟁' 때에 우리를 도와주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미군철수 이후에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이며, 일제 패망 직후 한국에 상륙(?)한 미군을 열렬히 환호하던 한국인들을 사살해버린 일들하며, 훨씬 더 앞서서 고종이 '조미수호조약'을 근거로 일제의 야욕으로부터 미국의 도움을 절실히 원할 때, 미국은 이미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근거로 조선이라는 카드는 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이러한 미국이 과연 한국에 도움이나 되는 나라인가 말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한국은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것이 '사대주의'든, '숭미주의'든 상관이 없다.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는 미국을 철저히 이용해 먹을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장 궁극적으로는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낑겨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이다. 물론 북한도 무시하지 못한 상대이지만, 대한민국이 압도적인 위력으로 북한을 품을 수 없을 정도라면 애초에 다른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논할 가치조차 없기 때문에 북한은 논외로 놓는다. 실제로도 대한민국은 북한을 모든 면에서 압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북핵'이니 '종북사상'이니 공산주의 체제 자체를 두려워하는 부류가 있기는 한데,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본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더는 북한과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 발발한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대한민국을 건들고서 살아남을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북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감히,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심지어 미국 일지라도 대한민국과 전쟁을 벌이고서 살아남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대한민국 '군사력'은 세계 10위권 안에서도 자체적으로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군사강국이라 불리던 나라에서도 현재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있는데도 '무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오랜 평화로움이 가져온 부작용이었다. 그래서 안보를 위해서라도 '무기생산라인'을 풀가동시키고 있는데도 제대로 공급하기 위해선 2030년 이후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공백에 '무기수출'을 하며 방산수출 호황을 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세계에서 무기생산라인을 꾸준하게 가동하면서도 첨단기술까지 도입하며 최신예무기를 양산하고 있는 나라가 유일하게 대한민국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한민국은 '만들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못 만들 무기가 없는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춘 나라여서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다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런데도 이런 '강대국의 조건'을 갖춘 대한민국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쩔쩔 매고 있는 상황이 웃기다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눈치를 보며 지내야 하는가? 이제는 전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야 할 시점이 아니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대주의와 숭미주의에 젖어 있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실체'를 엿보고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미국사'를 다시금 들여다보려 했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역사는 매우 짧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가 보기에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을 한 미국의 역사는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미국은 불과 200여 년만에 전세계를 주름잡는 '초초강대국(하이퍼 파워)'이 되었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제국주의'로 팽창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빠르게 제국주의 대열에 뛰어들 수 있었던 원동력을 세 가지로 꼽는데, '국토의 축복', '선민의식',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한다. 국토의 축복은 말 할 것도 없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을 잇는 거대한 북미대륙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독립선언 당시의 초기 13개주의 영토를 가지고서 불과 100년 안 되어서 광활한 북미대륙의 절반을 자국의 영토로 차지했다. 이런 축복(?)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강대국은커녕 가난한 농업국가를 면치 못했을 지도 모른다. 현재의 남미국가들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땅덩어리가 크다고 해서 모두 강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선민의식'이라는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미국의 영토확장 야욕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하느님'이 미국인들에게 준 선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인들에게만'이라는 의식을 덧붙이게 되면 미국식 선민의식이 된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벤치마킹한 것이기도 하지만, 선민의식에 더해서 '예외주의', '캘빈주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등등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을 모두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논리로 포장만 하면 다 되는 만능주문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미국이 하는 일은 다 옳다'는 생각이 미국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미국사의 발전과정이 딱 여기에 들어맞는다. 미국은 '프론티어(개척, 도전) 정신'을 내세워 영토를 넓혔고, 자신들의 사상을 전세계에 각인시켰으며, 무수히 많은 전쟁을 벌이면서 미국의 패권을 확고히 했다. 이렇게 '한 손엔 당근, 다른 손엔 채찍'을 들고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야마는 미국인들이 있었기에 불과 200여 년만에 세계를 제패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모습이 어째 익숙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업적과 일맥상통하지 않느냔 말이다. 바로 '압축 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 근대화 이후에 미국이 보여줬던 성공비결을 고스란히 벤치마킹한 대한민국이 전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한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단 말이다. 이를 두고서 강준만은 미국의 역사를 '제2의 한국'라고 평가내렸다. 미국의 역사보다 한국의 역사가 더 오래되었으니, 한국이 미국을 베낀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을 베꼈다고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성장발전'에 미국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보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급성장하였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어떠해야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선진국 대열'에 낑겼다. 더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수준 낮은 '면피용 명함'을 내밀고서 얍쌉하게 성장발전할 수 있는 꼼수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다른 선진국이나 강대국 들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는 행보를 걸어야 하며, 동시에 '코리아 스탠다드'를 다른 나라에게 강요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경제적, 군사력 위력을 앞세워서 무조건 따르다는 '제국주의 열강시대'는 저물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기준을 표명하고 따르도록 꼬셔야 한다. 여기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 있다. 바로 '한류열풍'이라는 'K-컬쳐'가 전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이라는 점도 한류열풍에 순풍을 달게 했다. 과거의 제국주의가 무력을 앞세워 식민지 쟁탈을 벌였던 것에 비해 대한민국의 한류열풍은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제스쳐로 압도하고 있기에 더욱 위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순풍에 돛을 활짝 펴고 전세계에 '대한민국 스탠다드'를 널리 홍보한다면 더욱더 성장발전하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이 전쟁도 불사하며 겨우 얻어낸 것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것이 더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류열풍'과 'K-컬쳐'의 대유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은 조심해야 한다. 앞서 우리가 미국과 한국의 성공비결로 꼽은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이 한국에서는 대단한 효율을 냈지만, 그로 인해 '사회적 문제'도 만만치 않게 팽배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불과 100여 년 전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세계대전을 방불케 한 전쟁으로 온국토가 폐허가 된 경험을 했다. 그런 뼈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배고픈 시절'을 극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한민국을 이토록 성장발전 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허나 '성장발전'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랜 시일을 두고 조금씩조금씩 고쳐나가는 지난한 과정도 동시에 겪었지만, 우리는 '압축성장', '물질주의', '각개약진', 그리고 '승자독식'이라는 것을 내세워 이런 발전속도에 따라오지 못한 이들을 그대로 방치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국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묻어두고 방관한 결과라는 점을 무시하면 안 된다. 오랫동안 미국을 '성장모델'로 삼고 뒤쫓았던 한국이기에 이런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하지만 '똑같은 역사'가 연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비슷해 보이는 귀결적 역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원인', '다른 상황'에서 기인하고 '다른 결과'를 도출하곤 한다. 그런데도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다름 아닌 '사람의 실수' 때문이다.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또다시 전쟁이 벌어지는 까닭은 '역사'를 통해서 배웠던 지혜를 까맣게 잊고서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던가. 그런데 '강대국들이 저지른 실수'까지 똑같이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나아가야 할 운명을 지녔다. 전세계 선진 강국들은 모두 '무력'을 앞세워서 이뤄낸 성과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무력'이 아닌 '문화'를 내세워 평화적으로 선진 강국이 되지 않았느냔 말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경제성장을 위해 '베트남 파병'을 보내고, '방산무기수출'을 하며 무력적인 모습을 띤 것도 있다. 허나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이후 '단 한 번도' 선제공격을 하며 침략적 정책을 추진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언제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외관계를 유지하며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나라다. 이는 반만년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인 '미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사대주의나 반미주의의 근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조차 철저히 이용해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이 그얼마나 대한민국의 등골을 빼먹었는지 잘 안다면 미국을 곱게 되돌려보내줘서도 안 된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이젠 대한민국이 미국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어야 한다. 덩치가 크니 빨아먹을 게 얼마나 많겠냔 말이다. 그러려면 '미국'을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이 대한민국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갑을 열고 마음껏 돈을 펑펑 쓸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해내야 할 일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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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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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IV / 민음사 18번째 리뷰] '카프카로 가는 길'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까? 카프카가 쓴 길지 않은 소설들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문구들의 연속이지만, 뜻밖에도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난해한 문구 하나하나를 '해석'하고 싶어지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벌써 3일째 '카프카의 문학'을 읽고 있다. 하지만 딱히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꽤나 '자전적인 소설들'을 쓴 탓에 그의 고독한 일생만을 단편적이나마 읽어낼 수 있다는 것뿐, 여러 날을 읽었는데도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그리 어려운 것 같지도 않은데, 딱히 이렇다할 '무엇'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카프카의 소설들을 '난해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책에서 반복해서 읽은 소설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먼저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했다는 표현을 이 책에서는 '흉측한 해충'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골의사>를 비롯해서 카프카의 소설들을 연구할 때에는 '현미경 눈'으로 카프카가 소설을 썼다는 점을 감안하라는 점도 크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우선 '벌레 vs 흉측한 해충'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사실 '벌레'나 '흉측한 해충'이나 같은 말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넘어가자. 하지만 누군가 "너의 어깨에 '벌레'가 있다"와 "너의 어깨에 '흉측한 해충'이 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느껴지는 느낌은 사뭇 다를 것이다. 물론 '벌레'가 대부분 흉측하고 징그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모든 벌레가 '해충'은 아니기에 징그러운 느낌은 들지언정 경악을 할 정도로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에 '흉측한 해충'은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을 당할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소스라치게 놀랄 가능성도 매우 높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자기 '흉측한 해충'의 모습이 되었다는 표현은 <변신>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또한, 해충이란 표현에서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받은 충격이 단순히 '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로 품을 수조차 없는 '구역질 나는 외모'라는 점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변신>에서 그토록 성실하고 사랑받던 그레고르 잠자가 하루 아침에 가족에게서마저도 철저히 '외면' 받게 된 것인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해준다.

한편, <시골의사> 같은 한마디로 헷갈리는 소설을 마주한 독자에게 '현미경 눈'과 같은 문체로 써내려간 카프카라고 설명을 덧붙이니, 참으로 찰떡같이 이해가 되었다. 어느 평론가는 '카프카의 소설'을 읽을 때에는 너무나도 자세하고 선명한 문장표현인데도 '전체맥락'을 파악하려 들면 곧바로 어지럼증을 잃으키게 만든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니냔 말이다. 우리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면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전체를 조망하기에 '현미경'은 절대로 어울리는 도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카프카의 소설들이 그렇다. <시골의사>만 보아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급히 마차를 타고 떠나야 하는 상황묘사가 아주 일품이다. 그런데 멋들어진 마차를 끌고 갈 '말'과 '마부'가 없는 상태다. 그렇게 의사는 오도가도 못할 상황에 처해 있는데, 몇 번의 '장면전환'이 이루어지자 '말'을 마차에 매어있고 '마부'도 출발준비를 마치고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떠나려는 참인데 홀로 집을 지켜야 하는 어린 하녀를 걱정하는 찰나에 마차는 출발을 하고, 온몸이 근육질인 마부는 출발하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하녀가 문단속을 한 의사의 집안으로 뛰쳐들어가고 만다. 의사는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웠고, 어린 하녀가 당할 봉변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마차를 멈추어야 했지만, 마차는 어느새 환자가 머무는 집에 당도해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의사는 환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환자를 살펴보았지만, 환자는 치료가 필요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에게 당신은 건강하다고 말하는 순간, 환자의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피를 흥건하게 쏫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의사는 환자치료에 전념하게 되는데...

이처럼 <시골의사>의 문장 하나하나는 매우 구체적이며 상황묘사가 선명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문맥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쌩뚱맞는 전개를 펼쳐낸다. 없던 말을 등장시키고, 없던 상처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독자를 당혹시킨다. 마치 '현미경 눈'으로 세세한 것을 살펴보다 살짝 움직여진 샘플로 인해서 현미경의 렌즈는 전혀 다른 세상을 펼쳐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카프카의 문체는 선명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되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소설'을 자아내곤 한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어쩌면 카프카의 소설들은 '미완성'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프카는 '유언'으로 자신이 죽거든 자신이 쓴 글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그 친구가 카프카의 유언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탓에 오늘날의 우리는 '카프카의 소설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혹시 카프카가 그런 유언을 남긴 까닭이 바로 자신이 쓴 글들이 '미완성작'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직 '수정'과 '퇴고'를 거치지 않은 거칠고 미완의 소설들이었기에 세상에 발표되는 것을 꺼렸던 것은 아닐까? 사실의 진위를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미완성작'이라는 말을 꽤나 설득력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카프카의 소설들'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가 펼쳐내는 색다른 걸작을 감상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의 작품들이 '미완'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눈썹이 사라져버린 '모나리자'도 우리는 최고로 아름답다며 감상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해석'을 즐기라고 말했다. 난해한 만큼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나 많은 '해석'들 가운데 무엇을 '정답'으로 꼽을지도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답'이 없다면 '오답'도 없는 셈이다. 그러니 틀릴 걱정은 염려 붙들어매고서 자신만의 '정답'을 즐기듯 풀어내면 그뿐이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답'이 옳은 답일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해석'을 하는 수고를 했다면, 한 가지 수고를 더해야만 한다. 바로 상대를 '설득'해서 '공감'을 끌어내는 일이다. 그럴 듯한 정도를 넘어 '논리성'을 갖추고, '추론'까지 가능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카프카에게로 가는 길'을 담담히 걸어갈 수 있게 된다. 장담컨대, 그 길을 걷는 사람은 매우 '용감'한 사람이 분명하며, 그렇게 장착한 '용기'로 다른 문학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실력(안목 혹은 눈썰미)'까지 갖추게 될 것이 틀림없다. 카프카의 문학을 이해하고 즐길 정도면 여러 문학을 읽어나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쌓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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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카프카 단편선 세계의 클래식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세훈 옮김 / 가지않은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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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 권세훈 / 가지않은길 (2007)

[My Review MDCCCIII / 가지않은길 4번째 리뷰] 카프카의 문학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대부분 절망적인 비극으로 끝맺음을 하거나 매우 우울한 마무리로 독자들을 당황케 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실제로 카프카의 책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독자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널리 알려진 터다. 그런데도 수많은 독자들은 '카프카 읽기'에 도전한다. 무엇보다 그가 쓴 <변신>이라는 소설이 너무나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토록 난해한 소설들 가운데 가장 읽을 만한 내용이기도 하고, 그나마 읽고 난 뒤에 이해가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이해'는 사람들마다 제각각이다. 심지어 문학전문가들조차 색다른 '해석'을 내놓기 일쑤인 카프카의 문학을 일반 독자가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이런 '무모함'이 카프카 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 매력을 좀 더 비약시킨다면, 저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카프카의 문학은 '재구성'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정답'은 없지만, 누구라도 '정답'이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문학'은 늘 신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 '가지않은길'에서 내놓은 <변신>에는 3가지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순서대로 <선고>, <변신>, 그리고 <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이다. <변신>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으련다. 먼저 <선고>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카프카가 '하룻밤'만에 집필해 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혼을 앞둔 주인공과 그 소식을 전달받을 친구, 그리고 주인공의 아버지가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친구는 주인공과 아버지의 대화에서 나타날 뿐,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 친구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러시아에서 '예술가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문제의 발단은 주인공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줄까? 말까?로 고민하였지만, 결국 전해주기로 결정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하면서 두드러진다. 그 까닭은 아들과 아버지 사이가 소원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아버지는 그 손을 야멸치게 거부하였고, 아들의 결혼이 자신을 더욱 '소외'시킬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각인시키며, 급기야 그동안 '불효'했던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려버린다. 이에 아들은 아버지의 '선고'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던 아들에게 어찌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고, 아들의 결혼으로 인해 자신은 홀로 집에 남겨져야 하며, 그로 인해 더욱더 고독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불효'를 이유로 행복해야할 아들의 미래를 짓밟을 수 있느냔 말이다. 더구나 아들은 아버지의 선고에 따라 행복해야 할 결혼을 앞두고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란 말인가?

카프카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되도록 멀찍이 떨어져서 읽어야 한다. 왜냐면 카프카의 글은 '세부적인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앞뒤 문맥이 이상하리만치 '맥락'도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아들이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결혼소식'을 전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대뜸 역정부터 내더니, 그동안의 서러움을 토해내다가 끝내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려버리고 만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아버지의 속상함이 매우 컸구나 싶을 정도로 마무리 되었으련만, 아들은 아버지의 '사형선고'를 듣자마자 몸을 던져 생을 끊고 만다. 아무리 불효막심한 아들이었기로서니 '죽어 마땅할 죄'로 보이질 않았는데 말이다.

이러한 괴이한 결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결혼에 실패'한 카프카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끌어들여 설명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작품 <선고>가 쓰여질 당시 카프카는 사랑에 빠졌었고, 오래지 않아 사랑과 결혼 모두 실패하고 만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그 뒤로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고 41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기에 <선고>는 카프카의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행복해야 마땅할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카프카는 평생 '고독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곤 하는데, 글쎄...

한편, <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은 카프카의 '마지막 작품'으로 유명하단다. 여타의 작품들이 '개인적인 내용'을 품고 있는 반면에, 이 작품에선 '종족 전체' 또는 사람으로 빗대어서는 '민족 전체'를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작품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줄거리는 변변찮은 게 없다. '여가수'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녀가 부르는 노래라는 것은 노래라고 할 것도 없는 '찍찍!'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쥐의 종족이었던 요제피네라는 여가수는 '쥐의 언어'인 찍찍거리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얼핏 들으면 노래라기보다는 '쥐의 울음소리'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수많은 쥐들이 자신들의 여가수의 찍찍거리는 노랫소리를 듣기 좋아했다. 그래서 여가수는 청중을 향해서 '찍찍'거렸고 수많은 쥐들은 여가수의 '찍찍'거리는 노래를 듣고 환호했다. 하지만 노래가 너무 짧은 것인지, 쥐의 생애가 너무 짧은 것인지, 수많은 군중들은 자신들의 여가수의 노랫소리를 듣기 위해 모이려 하지만, 여가수는 하나이고 군중은 너무 많아서,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려는 '찰나'에 수많은 군중들이 다 모이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로 인해 여가수는 무작정 '긴 기다림'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신경질과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를 듣기 좋아했던 군중들은 그녀의 신경질과 짜증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하지만 여가수는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자신이 군중들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홀연히 공연장을 떠났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은 더는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뭘까? 카프카가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바는 말이다. 어쩌면 살아생전에 작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카프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은 아닐까? 너무나도 짧은 자신의 소설들을 '찍찍'이라는 짧은 노래로 비유하고,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던 군중들은 '카프카의 독자들'을 상징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소설속에서나마 '카프카의 단편들'이 크게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인기가 자신을 향한 '존중'이 되질 못하고, 그만큼의 인기가 '영예'롭지 못하다고 느낀 탓에 홀연히 떠나버린 여가수처럼 카프카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선고>도 그렇고, <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도 그렇고. 카프카의 단편들의 '결말'은 언제나 예측불가다. 아니 엉뚱하다고나 할까? 분명 독자로서 '기대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기대이상'이 아니라 '기대이하'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는 점에서 카프카는 절대고독과 더불어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느끼는 대문호 '프란츠 카프카'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프카의 이런 '엉뚱발랄함'이 충분한 매력일 것이다. 기왕 엉뚱한 김에 '카프카의 문학'을 비극적이고 우울하게 읽지 말고, 희극적이고 유머와 해학으로 읽으면 아주 색다를 것이다. <선고>에서 생을 마감한 아들을 죽어 마땅한 불효자이기 때문에 '죽음'으로 그 죄를 달게 받아 생을 마감한 것이라면서 '슬랩스틱'을 하며 단단히 삐친 아버지 앞에서 '과장'된 죽음을 연출하는 해학적 요소를 첨가했다고 말이다. 그러니 실상은 죽지 않았지만 불효한 죄에 대해서 '죽음'으로 깨우쳤으니 앞으로는 살뜰히 아버지를 챙기겠다는 다짐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이해해보는 것이다. <요제피네...>를 읽을 때에는, 심각하게 진지하게 읽지 말고, 수많은 쥐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한 마리의 여가수'가 진지하게 폼을 잡더니 '찍찍'하는 로래를 부르자 100만 구름관중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상상을 해보잔 말이다. 먼 옛날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마이크를 붙잡으면 수많은 군중들이 숨을 죽이며 가수를 지켜보다 "기도하는~"이라는 노랫소리가 울리자마자 수많은 관중들이 일제히 "오빠! 꺄아~"하고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나는 꽤나 귀엽고 깜찍한 상상을 하면서 읽어 나갔다.

물론, 이처럼 카프카의 문학을 '익살과 해학'으로 유머스럽게 읽는다고해도 어렵고 난해하긴 마찬가지다. 그 까닭은 '카프카의 문학'에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앞뒤 문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설명이 태부족이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철저히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스리슬쩍 이야기를 넘겨버리곤 한다. 그리고서는 끝내 '비극적이고 우울한 끝맺음'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허탈감'을 넘어 '문학적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은 카프카의 기발함에 집중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분명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정답'이 없기에 저마다 '색다른 해석'으로 다른 이들의 '동의'와 '공감'을 얻어내기에 용이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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