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트리플 세븐 ㅣ 킬러 시리즈 3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평점 :
[My Review MDCCCXXXVI / 알에이치코리아(RHK) 1번째 리뷰] 이사카 고타로(伊板幸太郞)는 일본추리작가란다. 물론 난 처음 접한 추리작가다. 내가 주로 읽었던 추리소설가들은 대개 '고전작가'에 속한 탓이다. 애드가 앨런 포,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모리스 르 블랑, 앨러리 퀸 등등 말이다. 그나마 일본추리소설가로는 '에도가와 란포' 정도가 있는데, 이마저도 옛날 분이긴 마찬가지다. 이유는 한 가지다. 근래의 추리소설들이 그닥 내 취향이 아니었던 탓이다. 나름 추리에 '반전'을 주고, '교묘한 살인사건'을 일으켜 관심을 일으켜 세우긴 하지만, '추리소설의 맛'은 뭐니뭐니해도 독자로 하여금 범인을 잡으려고 '단서'를 쫓아 한발 한발 다가가듯 쪼이는 맛이 최고인데, 고전추리소설에 비해서 최근의 추리소설은 '기발함'에만 초점을 맞춘 탓인지 고전추리소설보다 그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 유명하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도 읽지 않았다. 읽으면 왠지 기대이하일 것만 같아서 말이다.
뭐, 조만간 읽게 될 것 같다. 그의 책을 몇 권 구했기 때문이다. 암튼 <트리플 세븐>이라는 추리소설을 읽었다. 헌데 읽다보니 '킬러 시리즈'라는 문구가 보였다. 과연 읽어보니 '킬러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했다. 킬러들에 대해선 강지영 작가의 <살인자의 쇼핑몰>에서 제대로 접해보긴 했다. '쇼핑몰'에서 등장한 킬러들은 전문업자라는 느낌보다 '용병'에 가깝게 느껴졌지만, 요즘에 등장하는 '킬러'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사체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청소부'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긴 옛날과 다르게 요즘엔 '신원정보'가 너무도 자세하게 들통나기 때문에 공공장소 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사체'가 나타나면 금세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킬러들도 활동하기가 난감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의 킬러들은 그야말로 '피바다'를 만들어놓아도 나몰라라하고 '현장'에서 내빼버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런 무책임(?)한 킬러들은 자격이 없다. 깔끔한 뒷처리를 도맡아서 하는 '청소부'와 함께 해야 미스테리가 완성된다.
어쨌든 <트리플 세븐>에서는 수많은 킬러들이 등장한다. 전설급으로는 피해자의 어깨를 탈골시킨 뒤에 꼼짝달싹할 수 없게 꽁꽁 묶은 뒤에 샌드백을 치듯 피해자가 괴로워하는 광경과 비명소리를 즐기면서 살해하는 킬러2인조가 있고, 피해자를 살아있는 채로 묶어놓은 뒤에 생선회를 떠내듯이 살점을 벗겨서 온몸을 시뻘건 살덩이로 만들어 죽이는 살인마가 있다. 그 아래급으로 '바람총'을 이용하는 꽃미남꽃미녀로 구성된 '6인조 킬러'가 있다. 일본에선 '총기'를 소지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총을 이용해서 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단다. 그래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 '독침'을 날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마비시킨 뒤에 죽을 때까지 축구공을 차고 놀듯 피해자를 두들겨팬 뒤에 죽이는 미치광이 살인마들이다. 거기다 복권에 당첨된 듯 갑작스레 '갑부'가 되어서 돈을 물 쓰듯 써버리는 악취미를 가진 '폭탄제조범 2인조'도 있다. 그리고 청소부 역할도 하는 2인조 여자킬러가 등장하는데, 살해하는 방법이 독특하다. '청소부'답게 호텔메이드로 분장을 하고서 피해자를 침대시트로 뒤집어 씌운 다음에 목을 비틀어 죽인 뒤에 그대로 사체를 청소용 트레이에 담아 깔끔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불운한 킬러'가 하나 있다.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를 일으키기도 하고, '사건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부지기수다. 그럴 정도로 재수가 없는 킬러인데도, 그는 운 좋게 끝까지 살아남는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재수탱이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절체절명의 현장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곤 한다. 과연 이 킬러는 재수가 없는 걸까? 억수로 운이 좋은 걸까?
책의 제목이 <트리플 세븐>이라 '도박장'이나 '카지노'가 주요 배경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그런 것하고는 일절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살해사건의 '복선'에 해당하는 주요 소재이니 그냥 알아만 두면 읽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말그대로 '7'이 연속으로 3개가 나타난다는 뜻으로 카지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롯머신'의 잭팟(큰 상금을 얻게 되는 것)을 터뜨리는 것을 일컫는다. 슬롯머신이 뭔지 모르는 독자라면 책의 앞표지를 보면 된다. 오른쪽의 손잡이(레버)를 아래로 잡아당기면 앞으로 보이는 가운데 3개의 회전판이 빠르게 돌아가고 아래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누를 때마다 회전판이 한 개씩 멈추고, '같은 그림'을 짝짓게 되면 그에 해당하는 상금이 쏟아지는 게임기다. 그 가운데 '7'이라는 숫자가 가로로 세 개가 짝지어지면 잭팟이라는 글자와 함께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면서 엄청난 액수의 동전이 아래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게 된다. 그런데 책 속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장난감 슬롯머신을 가지고 노는데, 단 한 번도 '7'이라는 숫자가 단 한 개도 나온 적이 없다며 자기만큼 불운한 사람도 없을 거라도 속상해 했단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속상해하는 마음을 달래주려고 "이런 곳에 운을 쓸 필요 없어. 더 중요한 순간에 운이 따를 거야. 걱정하지마"라고 답해주었단다.
흔히, 평생에 3번의 행운이 찾아온다고들 한다. 그 감당 못할 행운이 '초년'에 올지, '중년'에 올지, '장년'이나 '노년', 언제 찾아올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단다. 중요한 것은 그 3번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여러분은 감당할 수조차 없는 큰 행운이 언제 찾아오면 좋다고 생각하는가? 기왕에 찾아온다면 '초년'에 3번이 한꺼번에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왜냐면 그래야 중년 이후에도 그 행운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최고의 행운'은 건강하게 오래도록 부족함 없이 평온하게 살다 죽는 것이었다. 첫 번째 행운은 '건강'이었고, 두 번째 행운은 '장수'였으며, 마지막 행운은 '돈 걱정'하지 않고 사는 여유로움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부자일 필요도 없다. 몸만 건강하다면 돈은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모아놓은 돈을 다 쓸 때까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도 큰 행운이고, '돈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잔잔하게 여생을 누리는 것이 마지막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행운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사람을 죽이는 '킬러 소설'에서 행운을 운운하는 것이 살짝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 방법을 자세하게 나열하는 대목에서 눈쌀이 찌푸려지곤 했다. '나쁜놈'을 '죽어 마땅한 놈'으로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는 알겠는데, 굳이 그렇게나 잔혹한 방법을 '자세하게' 묘사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어린 독자들의 '모방범죄'의 가능성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일반 독자들의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킬러들은 '살해목적' 따위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죽여나갈 뿐이라서 더욱 반감이 들곤 했다. 왜 죽는지도 모른 채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똑같지 않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탁월한 점은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기 위해 탈출한다는 스토리 전개였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면서도 끝내 살아남아 그때의 '무용담'을 별것 아닌 것처럼 나레이션을 읊조리는 장면을 상상할 때는 내 몸속에 얼마 없는 근육세포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잔혹한 킬러들에게 쫓기는 주인공이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통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말이다. 결국 1층 로비를 통해서 '단 하나 뿐인 로비 게이트'로 나가 탈출하면 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백미를 꼽으라면 바로 이런 흥미진진한 '탈주장면'이었다.
간만에 읽은 '추리소설' 덕분에 내 몸속 호르몬들이 요동을 치고 있다. 조만간 '또 다른 추리소설'을 꺼내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