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런 킹덤스쿨 6 - 바른 금융 vs 나쁜 금융 쿠키런 킹덤스쿨 6
김언정 지음, 이태영 그림, JA Korea(국제비영리청소년교육기관) 감수 / 서울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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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XXVII / 서울문화사 9번째 리뷰] 이번 이야기에는 '흥청망청맛 쿠키'가 등장한다. 젊은 시절에는 번듯한 직장에도 다녔고 갖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맘껏 살 수 있는 돈도 가지고 있던 쿠키였다. 그런데 '흥청망청맛 쿠키'는 그런 풍요로움을 '신용카드 할부'로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신용카드는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먼저 '물품'을 갖고 '대금'은 나중에 치룰 수 있는 편리한 도구다. 더구나 '할부'는 총 대금을 '일시불'로 납부할 필요가 없이 '주어진 기간'동안 나눠서 낼 수 있으므로 구매 부담을 덜어주는 효율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 '신용카드'의 장점과 '할부'의 장점이 만나면 실로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평소에 합리적인 소비습관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자산 보유능력 '그 이상의 소비'로 인해 엄청난 부채(빚)에 시달릴 수 있고, 자칫 '파산'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산을 하게 되면 '개인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아 일상적인 경제활동 자체를 할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에이, 신용카드 할부는 너무나도 흔한 일상인데, 그 정도로 '파산'을 당한다는게 말이 되요?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예시를 통해서도 그 위험성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으니 잘 보기 바란다. 요즘 가전제품은 200만 원을 훌쩍 넘어간다. 성능이 좋은 최신 상품의 경우에는 500만 원 이상인 경우가 태반이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용카드 할부금 납부'를 선택한다. 500만 원을 일시불로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12개월이나 36개월 할부로 나눠서 내게 되면 다달이 내야 하는 금액부담을 현저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12개월 할인납부라면 약 42만원씩, 36개월납이면 약 14만원씩 내면 된다. 그럼 월급이 300만 원인 경우라도 부담을 덜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편리한 수단이라도 너무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월급이 300만 원이면 42만원 짜리 상품을 몇 개까지 살 수 있을까? 많아야 7개 정도다. 그렇다면 최대 1년 동안 7개 이상의 제품을 '할부'로 구입하면 안 된다. 왜냐면 자신이 받는 월급의 한도가 그 이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1년 동안 7개의 제품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다. 월급을 받으면 각종 세금과 공과금, 관리비, 식비, 기타 잡비 등등 일정 금액은 이미 납부하고 있다. 그러고 남은 월급이 있다면 '저축'을 통해서 목돈으로 마련해야 할텐데, 그러고도 남은 돈이 있어 '할부'로 물품구매를 하게 된다면 1년에 1~2개의 제품을 사는 것이 최고치일 것이다. 그런데 더 사고 싶은 것이 있어서 3~4개, 그 이상을 할부로 구매하게 되면 먹는 것을 줄이고, 입는 것을 줄이고, 결국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까지 줄여야해서 금방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흥청망청맛 쿠키'가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니 신용카드 할부는 절대로 1년에 1개 이상을 하면 안 된다. 왜냐면 그 이상으로 소비를 하게 되면 결국 '부채(빚)'를 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채는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걸까?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거나, 사업자금이 부족하거나 하면 제법 큰 돈이 필요한 법이다. 이럴 때에도 빚을 지지 않고 자기가 보유한 자산만으로 충당하려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대출을 받아서 큰돈을 융통한 다음에 계획적으로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방법으로 금융계획을 짠다면 개인적인 부담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마치 '할부금'을 갚아나가듯 차근차근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리고 신용을 쌓기 위해선 '부채'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경우도 있다. 왜냐면 신용이란 것도 빌린 것을 제때에 갚았다는 '믿음'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적은 금액이라도 빌렸다가 제 날짜에 이자까지 쳐서 갚아나가는 실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용도'는 더 높게 책정될 수 있다. 그러니 부채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부채가 없는 것이 '신용도'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일부러라도 빚을 져야만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굳이 대출이나 부채를 지지 않아도 저절로 신용을 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게 바로 '신용카드 납부'다. 신용카드가 바로 '후불제'인 까닭에 일정 금액 빚을 졌다가 정해진 날짜에 쓴만큼 갚아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용카드 결제일에 '통장잔고'를 넉넉하게 채워넣는 습관이 바른 소비습관을 기르는 일이고, 신용도도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금융습관인 셈이다.

그럼 좋은 금융습관을 위해서 가지고 있는 돈은 모두 '통장'에 보관하고 있으면 될까? 하나의 통장에 모두 보관하고 있으면 '통합관리'가 되기 때문에 별다른 신경을 쓸 일이 없어 편리하긴 하겠지만, 그다지 효율적인 금융습관은 아니다. 일단 '급여(용돈)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이를 다른 3개의 통장으로 나눠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는 '지출 통장'이다. 이 통장에서 급하게 필요한 돈이 있으면 빼서 바로 쓸 수 있게 관리하면 된다. 다른 하나는 '비상금 통장', 또는 '목돈마련 통장'이다. 이 통장은 나중에 목돈이 필요한 경우에 쓸 수 있도록 장기간 돈을 묶어두는 통장으로 관리하면 좋다. 나머지 하나는 '투자 통장'이다. 요즘엔 어린이들도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투자는 일찍 시작하면 더 유리하므로 10년, 20년 동안 장기투자 계획을 세우고 차곡차곡 투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금융습관을 들이면 올바른 금융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때그때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무조건 사서 모으는 습관은 나쁜 금융습관의 표본적인 것이니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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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킹덤스쿨 5 - 통장 군단 vs 카드 병사 쿠키런 킹덤스쿨 5
김언정 지음, 이태영 그림, JA Korea(국제비영리청소년교육기관) 감수 / 서울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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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XXVI / 서울문화사 8번째 리뷰] 블루반 쿠키들의 모험이 일단락이 되고 무사히 킹덤스쿨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학생 쿠키들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데, 바로 '교환학생들'이다. 교환학생이란 친선과 문화의 교류를 위해서 다른 두 학교 사이에 학생들을 서로 보내서 유학생활을 하는 학생을 뜻하는데, '킹덤스쿨'에서는 다양한 쿠키 캐릭터를 늘려서 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용한 것 같다. 아무튼 기존의 학생들과 교환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킹덤스쿨 운동회'가 개최된다는데 1등 상금이 무려 100골드다. 과연 블루반 학생들이 1등 상금을 탈 수 있을까?

스토리와는 별개로 '<킹덤스쿨> 학습만화의 핵심'은 바로 알뜰살뜰한 금융정보를 캐내는 것이다. 이번에는 '통장예금'과 '신용카드'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비밀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경제지식인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비결' 말이다. 그 비결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지고 있는 돈을 '통장'에 저금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자(황금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금, 다시 말해, '저축'에는 크게 예금과 적금이 있는데, 예금은 다시 '보통예금'과 '정기예금'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적금은 일반적으로 '정기적금'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저축은 '보통예금'이다. 보통예금은 은행에 돈을 맡기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맡긴돈'을 언제든지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자(황금알)'은 가장 적게 준다. 요즘에는 은행이자율이 형편없이 낮아서 거의 이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자를 얻고 싶다면 '정기예금'이나 '정기적금'을 들어야만 한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일정기간' 동안을 돈을 찾지 못하고 은행에 묶어두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해약'을 해서 돈을 일시적으로 모두 찾을 수는 있지만, 정해진 기간을 다 채우지 않은 경우에는 '정해진 이율'만큼의 이자를 받지 못하고 아주 적은 금액만 받게 된다. 하지만 은행에 저축을 하면 '원금(원래 맡겨둔 돈)'만큼은 확실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은행이 망했을 경우에는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자.

정기예금은 큰돈을 한꺼번에 맡겼다가 높은 이자를 원금과 함께 돌려받는 저축이고, 정기적금은 매달 일정한 금액씩 맡겨서 목표금액을 다 채우면 역시 높은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받는 저축 방식이다. 두 가지 모두 높은 이자(황금알)를 받을 수 있는 방식이지만, '일정기간' 동안은 돈이 묶여있기 때문에 여윳돈을 가지고 저축을 하는 것이 좋다. 만약 급한 돈이 필요할 경우에 해약을 하게 되면 애초에 약속했던 '높은 이자'를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소비습관도 계획적이어야만 황금알을 꾸준히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은행이자'가 너무 낮은 편이라서 아주 오랜 기간을 저축으로 묶어두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왜냐면 오랜 시간이 지나면 '화폐가치'가 저절로 떨어지는데, '은행이자'가 떨어지는 화폐가치보다 더 낮은 편이라서 은행에 큰돈을 묵혀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그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지 않을 목돈의 경우에는 '은행저축'보다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요즘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투자는 항상 '원금손실'이라는 부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물론 10년 이상의 아주 오랜기간을 보면 확실히 '은해이자'보다 '주식투자'의 이익이 더 크고, '우상향'하는 주가의 특성상 더 많은 이익이 거의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꾸준하게 성장하는 탄탄한 기업의 주식일 때만 맞는 말이다. 모처럼 큰맘을 먹고 주식투자를 해서 '장기투자' 모드에 돌입했는데, 투자한 회사가 10년도 안 되서 파산이나 폐업을 해버린다면 이자는커녕 원금도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식투자는 신중히, 또 신중하게 해야만 한다.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주식투자의 조언이 있는데, 바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말이다. 한 가지 종목에 몰빵을 하지 말고 다양한 종목에 골고루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투자를 하면 어느 한 쪽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다른 종목에서 이득을 볼 수 있고, 최종적으로 이익과 손실의 비율이 '51 : 49'가 되면 아주 우수한 투자성공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결을 바탕으로 '투자와 저축의 비율'도 균등하게 해놓으면 투자에서 실패를 했더라도 저축에서 '일정금액'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가장 안전한 자산운용 방법이 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 금융생활에 가장 기본이 되는 비결일 것이다. 초등학생이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기초이고 말이다.

한편, 카드의 종류도 알아두면 좋겠다. 초등학생이 '신용카드'를 만들어 쓰기에는 부적합하다. 왜냐면 일정한 소득이 없기 때문에 '신용'을 쌓을 기회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용'을 믿고 일정금액을 사용한 뒤 나중에 한꺼번에 결제를 하는 방식의 '신용카드'는 초등학생에게 적합한 소비패턴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일정금액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카드나 '통장'에 저축되어 있는 금액만큼 소비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며 합리적인 소비생활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렇게 '카드'를 사용해서 소비하는 습관을 들이면 무엇이 좋을까? 바로 매번 소비할 때마다 자신이 쓴 소비패턴이 모두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일일이 '용돈기입장'을 써가면서 따로 기록을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고, 통장잔고를 정리해보면 자신의 소비패턴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비생활 습관도 계획하기에 편리하다. 그러나 이렇게 '현금'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개개인의 '정보'가 낱낱이 기록되기 때문에 정보관리를 철저히 해야하는 수고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 만약 국가가 이런 '개개인의 정보'를 훔쳐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최악의 경우 '감시사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웃나라인 '중국'의 경우가 그렇다. 요즘 중국에선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두고 중국의 현대화가 되었고, 자동화가 되어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좋아라하는데, 그 편리함 이면에는 중국사회가 개개인의 정보를 함부로 들춰보는 '감시 사회'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중앙정부가 이러한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서 중국정부에 불만을 품었을 때 엄청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감시사회에서 살다보면 그런 자유가 박탈되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현금'만 쓰고 있으면 일상생활의 불편을 감수하며 살 수밖에 없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게 '개인의 자유'를 추구할지, '일상의 편리함'을 추구할지도 중요한 논제가 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루는 습관을 기르면 두 가지 방식의 '장점'만 챙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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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이명찬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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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이명찬 / 서울셀렉션 (2021)

[My Review MDCCCLXXXV / 서울셀렉션 1번째 리뷰]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침략전쟁을 일삼았으면서도 되려 '피해국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과거의 잘못이 명명백백 드러나는데도 사죄는커녕 이미 '다 지나간 일'을 들춰내 평화로운 양국(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훼손할 작정이냐면서 도리어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선진국의 너그러움'인냥 한일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한국인들의 국민성이 너무나도 낮아서 선량한 일본 국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앞으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여 찬성을 하는 것만이 한국에도 유리한 결정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훈계하곤 한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일본이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앞선 나라일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가 말이다. 마치 일본의 말을 듣지 않는 한국은 큰코 다칠 것이 뻔하다는 듯이 으름장을 놓는 일본의 정치인과 경제인, 그리고 사회유명인사들의 발언을 듣고 있으면 화딱지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것은 '우리 언론'이다. 이른바 '보수 언론(조중동한문)'은 일제히 일본의 발언을 종합해서 한국 전반에 고~대로 퍼뜨리기에 바쁘다. 마치 '상전의 노여움'에 벌벌 떠는 몸종들마냥 말이다. 일본의 발언이 맞는지 틀리는지 '기본적인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내뱉는 말들에 관한 '유/불리'를 따지지도 않고 일본은 선진국이니, 그들이 하는 말은 틀림 없는 사실일거라 지레짐작하고서 그저 '낮은 자세'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아니 왜들 이 모양이란 말이냔 말이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나 어릴 적이던 70년대, 80년대에는 분명 일본은 한국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잘 사는 '선진국'이자 '경제대국'이 틀림없었다. 그때는 나도 국산품보다 '일제'를 선호했고, 실제로도 조잡한 국산 학용품보다 일제의 샤프가 더 튼튼하고, 볼펜이 슬슬슬슬 더 잘 써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워크맨'은 너무나도 갖고 싶은 1순위 전자제품이었다. 일본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서 살았던 것이 90년대까지의 나의 철없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가 넘어서자 사정은 달라졌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지자 더는 '일제'를 선호하거나 '일본의 문화'를 동경하는 일은 사그라들었다. 점점 한국의 전자제품을 쓰게 되었고, 한국의 영화, 드라마, 노래를 보고 들으며 지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다. 때마침 일본에서도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한일간의 달라진 위상을 직접 피부로 와닿게 되었다. 그렇게 2000년 이후에 '일본의 것'을 거의 대부분을 손절한 나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잘난 척을 한다. 아니 그 정도만 한다면 그냥 애교로 봐서 넘어가줄 만도 한데, '혐한'을 외친단다. '재특회'를 조직해서 재일조선인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테러 수준의 범죄까지도 심심찮게 벌인다고 한다. 아니, 일본인은 다들 선량하다면서 왜들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의 인식속에는 한국(조선)을 '제2국민' 취급을 한다고 하는 믿을 수 없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도 아닌데, 웬 '제2국민' 소리냐고 의문을 가졌지만, 일본 아베 총리의 발언들이 나온 근본원인을 따지고보면 그러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베 총리의 (한국을 향한) 조치들을 본 일본인들이 총리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일본 총리를 일본국민들은 지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베 총리측의 부정부패가 들통이 나서 자민당의 인기가 추락하자 이제는 아베 총리도 물갈이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베 총리에 대한 일본국민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았고 견고했다. 일본인들은 모두 멍청이들인가 싶었는데,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불쌍해질 정도였다.

그 까닭은 역대 일본 정부가 '근현대사 역사공부'를 국민들에게 전혀 시키지 않은 결과이고, 그 결과, 일본 국민들도 특히 젊은 세대층에서 '정치적 무관심'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본의 정치인들은 젊은 세대를 뺀 '장년층 이상'의 늙은 세대에게만 맞춘 정책을 내세운다고 한다. 그것도 '여성 비하'가 일상이 되어버린 일본에서는 '늙은 남성들'이 현재의 일본 정치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 '늙은 남성'들이 누구냐면 과거 '잃어버린 30년 이전 세대'인 일본이 경제대국이던 시절에 2030대를 보낸 이들이란 얘기다. 현재의 일본 50~60대 이상의 남성이 일본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자민당 집권세력은 오직 이들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을 내놓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10대, 20대, 30대 젊은이들이 '한류'에 빠져 살고, 40대, 50, 60대 늙은 여성들이 '욘사마'를 외치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일본의 늙은 꼰대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은 왜 이렇게 '잃어버린 30년 체제'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이 책 <한일역전>은 그에 대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인 이명찬 교수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이 직접 증언한 자료를 토대로 이런 사실에 대한 명백함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확고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제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역전'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정신을 못차리고 한국을 자신들의 발 밑에 존재하는 냥 치부하는 것은 정말이지 잘못된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잘못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일본의 행태를 지적하고 있는데도, 오직 일본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일본은 불행하다고 말할 지경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아직도 한국에 뒤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일까? 이를 두고서 저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아직 한국과 일본의 격차가 크지 않아서 '일본의 추락'을 일본이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허나 이미 '갈라파고스화' 되어 버린 일본에 미래는 추락밖에 남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만 남은 셈이다. 분명 일본의 기술은 '세계 최고'였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면 언젠간 뒤떨어진 기술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일본에는 '개선'만 있고, '혁신'은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소니의 '워크맨'은 최고의 기술이었다. 카세트테입만한 크기의 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일본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세트테입을 넘어선 '혁신'을 찾아볼 순 없었다. 세상은 카세트테입을 버리고 'MP3'로 갈아탈 때도 일본은 여전히 '카세트테입'의 크기를 줄이는 개선책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술력이 낙후된 일본의 기업들은 하나둘 폐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이밖에도 일본의 '도장문화'로 대표되는 아날로그화는 일본의 생산성을 현저히 떨어지게 만들었다. 기차역의 승차권을 인식시키는 '개찰구'를 아무리 개선시켜도, 승차권 예매시스템을 '온라인'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디지털화의 생산성을 절대로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전세계가 'AI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서 활개를 치고 있는데도, 일본에서는 어처구니 없게도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고서 왜 '전자결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냔 말이다. 언제까지 '종이서류'에 '도장'을 찍는 사내문화를 전통이랍시고 끌어안고 있을 거냔 말이다. 일례로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도 '밀집, 밀접, 밀폐'된 장소를 피해 '재택근무'를 하던 직원이 목숨(?)을 걸고 결재를 받기 위해서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던 일본이다. 한국이라면 '이참에' 전자결재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사무실까지 팔아버리고 전직원이 '재택근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40년, 5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향후 2045년이 되면 전세계는 '특이점'을 맞아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닐때 일본은 그때까지도 '도장'을 만들어서 결재하는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을 것이란 상상이 간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현실보다 나은 것일테다. 이미 그런 도장을 찍을 일본회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거란 상상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우려가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이 21년에 나왔으니 한국의 문재인 정부와 일본의 아베 정권이 한창 첨예한 갈등을 보이던 시점이다. 그때 이미 일본은 나락에 떨어져 있었다. 현재 24년의 일본은 어떤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뭔가 달라지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데, 별로 된 것이 없다. 4차 산업분야에서 한국보다 한참 뒤쳐진 일본은 '라인'을 강탈하려다 실패했고, 반도체를 팔아보려 애쓰는데 실현가능성은 여전히 '제로'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어처구니없는 헛발질을 보여 나락으로 떨어진 일본경제꼴이 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정말이지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는 일본의 경제보다 더 우위에 서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분명 비상계엄사태를 맞이한 한국은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왜냐면 멍청이 같은 '윤석열 정권'이 더 빠르게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란죄를 저지른 마당에 내란수괴 윤석열을 지지한 제2당 국민의힘도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탄핵정국의 혼란을 틈타 혹시나 '탄핵'이 불발이 될지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극복해낼 것이라는 사실을 전세계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바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그동안 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개선'만으론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일본국민이 깨달았다면 '혁신'이 아닌 '혁명'이라도 치뤄서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현재로서는 그럴 의지조차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습관처럼 말하는 것을 고대로 돌려줘야 할 때인 듯 싶다. "이런 이웃을 둔 우리가 불행해질까 두렵다"고 말이다. 그러니 제발 정신 좀 차려주길 바란다. 일본사람들~ 너희는 지금 이대로 가면 후진국이 될 뿐이니 말이다. 지금도 후진국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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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21 15호 - Vol 15 : 우주를 생각한다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15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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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XXIV / 바다출판사 10번째 리뷰] 계간지 <스캡틱>에 이어 또 하나 꽂힌 잡지가 바로 <뉴필로소퍼>다. 물론 잡지의 세계에서 잡지는 대개 다 거기서 거기라는 비평에 딱히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문학잡지'보다는 '과학잡지'가 훨 낫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그건 어찌 보면 내가 '이과'를 선택한 '공대생' 출신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딱히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 서른 살이 되어서 '논술쌤의 길'을 걸었고, 지천명이 다 된 현재까지 '문과생'보다 훨씬 더 많은 '문사철' 관련 서적을 더 많이 읽었다 자부한다. 그런데도 잡지는 '과학분야'를 읽어야 제맛이다. 왜 때문일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딱히 그 까닭을 모르겠다.

암튼 이 책 <뉴필로소퍼>는 인류가 축적한 웅숭깊은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 '보다 충실한 삶'의 원형을 찾고자 출간의 뜻을 두었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래서 잡지의 성격이 '철학사상'을 주로 다룬 인문잡지일 듯 싶은데, 읽다보면 과학적 탐구방식으로 각 주제의 논점을 풀어내고 있기에 '과학잡지'의 성격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뭐, 이번 주제가 '우주를 생각한다'로써 과학적 접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과학적인 주제를 꽤나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우주를 개발하면서 '한껏 욕심'을 부리고 있는 점에 일침을 놓았기 때문이다. 첫 서문부터 공격적이다. 바로 '행성 B는 없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우주를 탐사하는 목적이 '인간이 거주 가능한 또 다른 행성'을 찾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탐사 결과로는 꽤나 절망적이다. 인간이 거주 할 수 있는 지구 이외의 행성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인간이 거주하려면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을 찾아야 하는데, 결론은 없었다. 그래서 탐사범위는 더욱 확대하고 탐사목적은 확 줄였다. 바로 '물의 존재'와 '탄소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냐면 생명이 활동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물'이고, 활동 가능한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유기체', 다시 말해 '탄소화합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모든 우주속을 다 뒤지다시피해서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수색했지만,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행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행성은 단연코 '화성'이다. 지구보다 조금 더 멀리서 태양을 공전하고 있고, 지구보다 조금 더 작은 행성이고, 화성의 극지방에 다량의 물이 '얼음(빙하)'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이 활동하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왜냐면 '산소'가 부족하고, '평균기온'이 영하 60도로 너무 낮으며, 토양이 매우 척박해서 농작물이 자라기 어렵고, 그래서 생명체가 살기에 부적합한 곳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구에서 돈 많은 기업들이 이런 척박한 화성에 '지구인'을 쏘아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공짜로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말이다. 일단 가면 되돌아오는 계획은 아예 없다. 현재 과학기술로는 그럴 방법도 없고 말이다. 만약 그런 기술이 있다손치더라도 가는데 1년, 오는데 2~3년이 걸리는 오랜 시간 아주 좁은 우주선 공간에서 최소한의 식량만으로 버텨야만 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으므로 화성에 도착하면 그냥 버텨야 한다. 근데 '우주복'은 절대로 벗을 수 없다. 벗는 순간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서로 가겠다고 신청을 했고, 이미 마감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최초의 화성정착민이 되어 2차, 3차, ... N차 이주민을 받을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단순히 '숨 쉬고, 밥 먹고, 잠자는 문제'만 해결한다고 완벽히 갖춰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더러운 곳에서는 절대 살 수 없다. 그런데 첫 번째 화성정착민이 안전하고 도착하고 생존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를 무사히 설치하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고해도 그곳에서의 생활은 결코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하루...아니 몇 초 단위로 '버티고, 또 버티는 극한생존'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먹고 마신 지 몇 시간이 지나면 '똥과 오줌'으로 배설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곳에 첨단기지를 설치한다고해도 '깨끗한 화장실'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오물'이 넘쳐나게 될 것이고, 그런 오물을 분해하고 정화시켜줄 '미생물'이 전혀 없는 화성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설물 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머지 않아 '후발대'가 도착한다고 해도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걸 과연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 이렇게 단순한 문제조차 해결하기 쉽지 않은 '우주공간'에서 또 다른 지구인 행성 B를 찾는 노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짓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찾아냈다하더라도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을 것이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이 개발된다고 한들 가장 가까운 '항성계(알파센타우리)'가 약 4광년, 다시 말해 빛의 속도로 4년을 날아가야 한다. 더 먼 우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등장할 것이다. 칼 세이건도 지적했지만 우주는 정말 광활하고, 정말이지 너무나도 비효율적으로 텅빈 공간이다. 그렇게나 광대한 우주속에서 '창백한 작은 점'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구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살기에 가장 적합하고, 다른 곳을 찾을 수 없을 것으로 확실한 아주 소중한 우리 모두의 보금자리 말이다. 이쯤 되면 답이 나와야 정상이다. 정녕 '행성 B'를 찾으려 천문학적인 돈을 펑펑 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그보다는 '하나 뿐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환경을 파괴하고 동족을 살상하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는 편이 나을까?

우주여행은 '공상과학'에서 상상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일이 결코 아니다.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 '낭만'은 사라지고 오직 '생존'만이 우리 앞에 놓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주여행은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써는 어쩔 수 없으 '우주모험'만이 가능할 뿐이다. 먼 옛날 목숨을 걸고 대항해로 모험을 떠난 것처럼 말이다. 저 푸른 망망대해 너머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채 무작정 떠났던 선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가도 가도 바다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때의 두려움은 둘째치고, 목 마르고 배고프고 짜증나는 '일상'을 버티기 모드로 견디다가 생존 위협과 맞닦뜨리는 순간 폭력적으로 바뀌는 배 안의 사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그 항해는 몇 달만 버티면 운 좋게 육지를 발견하고 두 발을 땅에 디디는 순간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운 나쁘게 무인도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면 그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었을테니까 말이다. 비록 '낯선 땅'일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광활한 우주에서는 그런 상상이 되질 않는다. 몇 달만 버티면 '되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지구밖에는 정녕 '아무 것'도 없다. 적어도 태양계 안에서는 '생명체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태양계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데, 태양계 밖은 너무 멀다. 천문학계의 이론이 광활한 우주를 여행가능하도록 도와준다고 해도 몇백, 몇천 광년이다. 이벤트 호라이즌(사건의 지평선)으로 순식간에 우주의 이쪽과 저쪽을 통과할 수 있고, 웜홀이 발견된다면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지만...그걸 아직까지 찾지도 못했고, 인공적으로 발생시킬줄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혹시 발견되었다하더라도 '인간의 몸'이 버텨줄지 모른다. 그런 장치(?)가 인간의 몸을 '세포 단위'도 아닌 '원자 단위'로 쪼개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차곡차곡 '재배열'을 해야 할텐데, 만에 하나 '시공간의 왜곡'이 발생해서 내 몸을 이루는 세포 원자가 잘못 배치되기라도 한다면...과연 '생존가능'할 것인가?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우주여행은 지구에서 머릿속으로만 '공상'을 떠올리는 것이다. 왜냐면 '지구밖'은 위험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우주개발'을 원천적으로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 기지'부터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곳에 인간이 안정적으로 '정착' 가능해진다면 달보다 조금 더 먼 행성으로 도전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달까지 가기에는 '며칠'이면 가능하니까 말이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며칠'만에 보내줄 수도 있구 말이다.

그러나 이게 가능해지는 순간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과연 '달'은 누구의 소유가 될까? 현재까지 우주개발이 가능한 나라는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까지 개발에 참여한다해도 20개국이 될까 말까다. 여기에 기술적, 경제적으로 넉넉한 나라를 꼽으면 한 손으로 겨우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런 나라들이 '달'을 선점하는 것이 온당할까? 전세계가 '남극'에 깃발을 꽂지 않는 것은 선언한 것처럼 '달'에도 서로 깃발을 꽂지 말자고 합의한 내용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달에 엄청난 지하자원이 있고, 그걸 '선점'하고 '독점'하는 순간 막강한 패권을 잡게 될게 뻔한데, 그걸 달에 오지도 못하는 가난한 국가들과 공평(?)하게 노나먹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게 될까? 그럴 가능성이 '제로'라는데 윤석열 열 손가락을 건다. 어쨌든 '우주전쟁'이나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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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 한강의 기적에서 헬조선까지 잃어버린 사회의 품격을 찾아서 서가명강 시리즈 4
이재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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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LXXXIII / 21세기북스 30번째 리뷰] 이 책이 출간된 해가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퍼지기 전이었다. 대한민국은 '박근혜 탄핵'을 거쳐 '문재인 정부 2년차'의 성적표를 놓고서 옥신각신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쓰여진 책이다. 당시 젊은이들은 불신, 불만, 불안이라는 '3불 사회'속에서 일할 의욕을 잃고 깊은 시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더불어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 사그라드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을 때였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주식과 코인 열풍에 빠져들었고, '영끌족'이 등장해서 부동산 매매에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았고, 그 돈으로 아파트 매매, 주식투자, 코인 사재기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왜냐면 모든 것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불안해졌던 것일까?

지금 젊은이의 '부모세대'는 에코 세대라 불렸고, '조부모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라 불렸다. 이들은 젊었을 때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이 보장(?)된 축복받은 세대였는데, 현재의 젊은 세대는 오히려 '부모보다 더 쪼들린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 불안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호황을 맞았었다. 뭘 해도 경제가 쑥쑥 성장을 했기에 일 할 맛이 나는 사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는 성장하긴 했지만, 앞선 세대보다 둔화된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며 중산층이라 불리던 계층이 점점 사라져갔고, '저출생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의 수는 점점 줄어만 갔다. 이로 인해서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 되어야 할 '젊은 세대'가 점점 줄고 사회적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노년층'은 점점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또다시 '베이비붐'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야 할 판인데,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젊은 세대들은 돈이 없어서 출산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연애까지 포기하는 '삼포 세대'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내집 마련'도 포기하고, '취직'도 포기하는 등등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세대라고 'N포 세대'라고 불릴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사회속에서 젊은이들은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대구지하철 사고(2003)', '세월호 사고(2014)' 등등 대형재난이 겹치자 대한민국은 더이상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특히 재난사고 때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할 정부가 제기능을 다하지 않고 사고를 수수방관하다 더 큰 피해를 입고 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자 온국민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도 대통령은 '자리'를 비웠고, 정부관리들은 '제 일'을 하지 않았으며,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는 '비정규직'이어서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처지였고, 정작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은 사고를 수습하기는커녕 '부정부패비리'를 감추려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200명이 넘는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서 구조를 기다리는데도 말이다.

과연 이런 나라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2020년이 되자 대한민국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펜데믹 상황을 맞이했는데 '대한민국'만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방역체계가 잘 갖춰진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경제적 타격도 가장 적어서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서 '박근혜 탄핵 정국'의 혼란함 속에서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세계적인 모범이 되어 '민주주의의 교과서'라고 극찬을 받기에 이른다.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를 맞았는데도 국민들은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를 보여주었으며 단 한 건의 폭력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대통령 탄핵'을 가결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평화적인 집회 시위 문화는 이번 '윤석열 탄핵' 때에도 어김없이 보여주었으며, 그때보다 더 위중한 '비상계엄선포'라는 선진국이자 민주주의가 완성된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계엄령이 시행되었는데도, 국회의원은 국회 담장을 넘어 '비상계엄 무효'를 만장일치로 선언했고, 이를 막는 계엄군의 총부리와 장갑차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는 국민들의 모습은 전세계로 생중계되며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의 모범국이라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사고들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잘 알고 있다고 보인다. 선진국이라고해서 무조건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풍요로우며, '사회'가 밝고 희망찬 것만은 아니다. 사회적 갈등은 없을 수 없고, 어느 국민이건 불평불만은 쏟아낼 수밖에 없다. 단지 그런 '부정적인 요소'만으로 대한민국이 살기 나쁜 나라라고 단정지을 순 없을 것이다. 요는 '갈등해소'를 해결해 나가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느냐다. 우선, 정부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는 공정함을 보여야 한다. 국회는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평함을 실현시켜야 한다. 그리고 법원은 국민들에게 한점 의혹도 남기지 않는 투명함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안심을 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진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처럼 불공정을 일삼는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원내국회 제1당 더불어민주당과 제2당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당리당략의 싸움은 '이전투구'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이권 다툼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어찌 국회의 공평무사함을 신뢰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법원은 '위헌적인 요소'를 싹 걷어내고 오직 대한민국 헌법에 적시되어 있는 그대로 꿋꿋하게 나아가야 한다. 이번 '검사공화국'에서 벌어진 편파판결을 지켜본 국민들은 사법부를 더는 신뢰할 수 없는 '이익단체'쯤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탄핵 정국을 맞아 '헌법재판소'로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번 윤석열 탄핵심판에 국민들의 염원대로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아울러 '내란동조'를 한 이들에 대한 마땅한 처벌도 명명백백 밝혀주길 바란다.

그래야 대한민국에 태어난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민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탄핵정국의 후폭풍은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정치는 더욱더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경제는 더욱 암울해질 것이다. 더구나 외교적 실추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다시 '위기'를 맞아 힘을 한데 모았고, 그로 인해서 전세계가 또다시 부러워하는 명실상부한 선진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멋진 나라에서 살고 싶어 찾아오는 세계인들 앞에서 당당해질 대한민국 젊은 세대들에게 더욱더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 또한 '두 번째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 그들의 불신, 불만, 불안이 모두 해결되는 일이 벌어지길 바란다. 이런 대한민국이라면, 나는 다시 태어나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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