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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십이야 ㅣ 셰익스피어 희극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재남 옮김 / 해누리 / 2017년 12월
평점 :
<십이야>는 무슨 뜻일까? 로맨스 희극이니 남녀 주인공이 벌이는 알콩달콩한 '열두 밤' 이야기일 것 같지만, 그리스도교의 대축일이 가운데 하나인 '주현절(1월 6일): 주님이 모습을 드러낸 날'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성탄일(12월25일)로부터 12일 뒤가 바로 주현절(1월6일)인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의 제목으로 '십이야'를 선택한 유래는 1601년 1월 6일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탈리아 오시노 공작을 환영하는 만찬을 겸해서 궁정 초연을 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십이야>의 주된 줄거리도 이탈리아의 설화에서 착안했고, 등장인물 가운데 '오시노 공작'이 등장하는 것 등 여러 모로 보아 '헌정 희극'으로 볼 수 있다. 암튼 제목의 유래와 희곡의 내용은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만 알았으면 그뿐이다. 굳이 유추하자면, "공작님이 왕림하신 날이 마침 성스러운 날이니 당신을 주님을 보듯 환영합니다. 더불어 재미난 연극을 상연해보이겠나이다. 보는 내내 즐거우시길 바랍니다"로 해석해도 될 듯 싶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꼽으라면 단연 <십이야>를 꼽겠다. 세 남녀의 물고 물리는 심리묘사로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어 놓고서는 '남장여인'이 알고 보니 미녀였고, 놀랍도록 닮은 '쌍둥이'가 등장해서 벌이는 헤프닝은 요즘 <로맨스 소설>에서도 곧잘 써먹는 단골소재로 꼽힐 정도로 달콤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셰익스피어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는 독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아버리는 매력이 넘친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대표작은 <베니스의 상인>을 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십이야>가 더 희극스럽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악당 샤일록이 등장해 갈등을 유발하지만, <십이야>에서는 그런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에 진지한 남녀주인공들을 돋보이기 위해 조연들이 벌이는 유쾌한 코미디가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작품 전체가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낭만이 흐르고 유쾌한 코미디가 펼쳐지기로는 <한여름밤의 꿈>도 만만치 않지만 '사랑의 묘약'보다는 '남장여자'와 '쌍둥이'가 개인적으로는 취향저격이라고나 할까? 어디까지나 개취다.
줄거리는 여행 도중 배가 난파한 뒤 생이별을 하게 된 세바스티앙과 비올라 두 남매는 서로 죽은 줄로만 알게 된다. 그렇게 따로 떨어져 생존한 두 남매 가운데 여동생은 '여자'임을 숨기고 오시노 공작을 찾아가 시종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물론 옷차림은 남자로 꾸몄고, 이름도 비올라에서 세자리오로 바꾸고 말이다. 한편 오시노 공작은 백작 가문의 딸인 올리비아에게 한창 구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상중이라는 핑계를 대며 구혼을 애써 거절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시노 공작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마침 새로운 시종 세자리오를 구혼사절로 보내며 이 혼인을 꼭 성사시키길 명령(!)했다.
그런데 사실은 비올라는 오시노 공작을 사모하고 있었다. 오빠와도 헤어지고 홀로 지내고, 몸을 의탁하고 있는 처지인데다 '남장'까지 하고 있는데도 자신을 도와주고 잘생기기까지 한 공작에게 마음을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신분을 감추고 '남장'을 하고 있기에, 감히 '사랑고백'을 하지는 못하고 오시노 공작의 명령을 받아 올리비아에게 찾아가 공작을 대신해서 사랑고백을 하는 처지가 된다.
근데 올리비아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남자다운 오시노 공작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매력을 품어내는 시종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올리비아는 단박에 그 '남자'에게 빠져들었고, 오시노와 올리비아, 그리고 세자리오(사실은 비올라) 세 남녀는 서로 얽히고 얽힌 사랑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사랑의 작대기'로 정리하면, 오시노는 올리비아에게, 올리비아는 세자리오에게, 비올라는 오시노에게 작대기를 가리키고서는 요지부동인 상황에 빠져버린 셈이다. 이는 다시, 미남은 미녀에게, 미녀는 '남장여자'에게, '남장여자'는 미남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게 되니, 극중 당사자들은 안타까움을, 무대관객과 독자들에게는 사랑의 알콩달콩함을 선사한 셈이다.
여기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오빠 '세바스티앙'이 등장하게 된다. 비올라와 세바스티앙은 남내지간인데도 놀랍도록 외모가 닮았다는 설정이 또한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셰익스피어도 이런 설정을 아주 '극적인 상황'으로 연출해서 관객과 독자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말이다. 물론, 어설픈 장치도 눈에 띈다. 오시노 공작과 세바스티앙은 전쟁터에서 대적했던 사이였으며, 세바스티앙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오시노 공작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는 설정으로 '적대적 관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해소시켜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해피엔딩'이 완벽하면 덜 감동적이긴 하다. 두루뭉술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더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이야>를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두 남녀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춰서 읽으면 진정한 '희극의 맛'을 느낄 수 없다. 조연들의 향연이 <십이야>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토비와 앤드류의 술주정 뿐만 아니라 말볼리오와 마리아, 페이비언, 그리고 페스테라는 광대가 펼치는 대소동은 대폭소를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사랑이야기로 달콤해진 관객과 독자들에게 짓궂은 장난으로 무대 전체를 웃음바다로 풍덩 빠뜨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셰익스피어 특유의 '말장난' 같은 대사가 분위기를 한창 업그레이드 시켜버리기 때문에 정말 흥미진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십이야>는 희곡대본으로 만나는 것보다 연극무대에서 '직관'하는 것이 한층 더 신명나게 될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톡톡 튀는 대사들이 배우들의 무르익은 연기력에 더해져서 뿜어져 나올 때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책으로만 만날 수 있다면 '상상력'을 발휘하시길 바란다. 무대 위에서 한바탕 펼치는 대환장 폭소와 가슴 저미는 애뜻한 사랑이야기에 푹 빠지면서 말이다. 물론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슴은 따뜻해질 것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