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팀장입니다 - 서툴고 의욕만 앞선 초보 팀장들을 위한 와튼스쿨 팀장수업
레이첼 파체코 지음, 최윤영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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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팀장이 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팀장 자신의 스킬이나 실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무엇보다 팀원들을 '잘 만나는 것', '잘 다루는 것', 그리고 '잘 이끄는 것'에 유능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팀장과 팀원의 궁합이 환상적으로 어울어져야 훌륭한 팀장도 될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우수한 팀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우수한 팀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팀장이 되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방법은 '있다'. 만약, 없다면 이 책이 존재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좋은 팀장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그저 좋은 팀장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팀장은 분명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그런 좋은 팀장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그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선, 좋은 팀장이 되기 위해서는 팀원을 잘 관리하고 코칭해야 한다. 그리고 팀원이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팀장의 안목'과 '탁월한 선택'으로 팀원의 자질과 사기를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실 '유능한 팀원'만으로 이루어졌다면, 이 부분은 그다지 필요가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능한 팀원'은 좋은 팀장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확률이 낮다. 그러니 '웬만한 팀원'을 데리고 잘 이끌어야 하는 것은 오로지 팀장의 몫이 된다.

 

  그럼, 팀원을 잘 다루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성과를 높이면 상을 줄 것이고, 그 반대면 패널티를 받거나 상을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알 수 있게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팀원이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기에 대한 '피드백'도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팀원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또는 부족한 것이 있는지 스스로 파악하고 솔선수범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팀원들 스스로 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적절히 해결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상벌을 받는 기준인 성과와 부진에 대해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여기서 팀원들에게 더욱 강조해야 할 부분은 바로 '동기부여'와 '책임감'이다. 일을 하면서 '동기'가 사라지면 일의 효율이 늘어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책임감'이 없다면 일은 진척되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팀장이라면 반드시 이 두 가지를 팀원에게 심어 놓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이제 어느 정도 팀원 관리에 성공을 했다면, 팀장 자신의 관리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좋은 팀장이 되기 위해선 '명확한 기준'을 바탕으로 자기 업무에 대한 '체계성'을 키워 나가야 한다. 모든 관리의 기본은 '절차'에서 비롯된다. 만약, 팀장 스스로 이 '절차'를 무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면 팀원들의 신뢰를 잃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절차는 미적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성과급을 줘야 할 때 미적거리거나 퇴사를 시켜야 할 사람을 바로 자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리스크'가 발생하게 되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응축과정'을 거쳐서 한 순간에 문제로 터져버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팀원을 잘 관리하는 비법을 알아야 할 때다. 개별적인 팀원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니 명심해야 한다. 첫째, 명확한 규범. 둘째, 팀원들끼리 공감하는 힘. 셋째, 공평한 발언권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이 잘 이루어져야 탁월한 팀워크로 우수한 팀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말은 없을 것이다. 다만, 실천이 힘들다. 이를 테면, 팀장이 팀원들에게 권위를 앞세우며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길 좋아한다면 우수한 팀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팀장에게 무거운 책임이 주어지고 실적에 대한 최종적인 결과도 팀장이 감수해야 하기에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팀원들을 닥달하기 마련이고, 규범에도 없는 업무를 지시하기도 하며, 팀원들의 발언권을 묵살하며 팀장의 고집만 내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수한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팀장 스스로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바로 팀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각오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팀장의 '권한'은 팀장 자신이 아니라 '팀원들'을 위해서 써야 팀원들의 사기가 진작된다. 그래야 팀원들의 성과가 팀장의 성공으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팀원들의 사기가 현저히 떨어지면 자연스레 팀장의 성공도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팀장은 가장 먼저 솔선수범 해야 하고, 팀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함께 성공하는 길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여기까지 대충 읽어봐도 어려운 내용은 없을 것이다. 이해 못할 부분도 전혀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실천'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무능력하고 제멋대로인 팀원을 만나면 더욱 대책 없는 상황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 십상인 자리가 바로 '팀장'인 탓이다. 그런 팀원을 만났는데도 '좋은 팀장 코스프레'만 하고 있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딱 좋다. 과감하게 밀어 붙일 땐 밀고 나가야 한다. 물론, 명확한 규범을 밝히고 공정한 절차로 신속하게 상벌을 내리며 팀원들의 불만에 경청하면서도 '규범과 절차'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잘라낼 것은 잘라내야만 한다. 그건 온전히 팀장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팀장의 자리에 오르면 팀원들의 고충을 미리 헤아려서 팀원의 사기을 진작시키고 일의 성과를 끌어올려 '성공하는 팀'을 운영한 다음, 팀장의 자리에 걸맞는 권위와 존경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팀장도 사람인지라 상사의 질책을 받은 다음에 팀원들에게 '좋은 팀장 코스프레'를 하기보다는 '받은대로 돌려주기'라고 하는 것처럼 팀원들을 들들 볶는 팀장이 되기 일쑤다. 또는 팀원들의 고생으로 얻어낸 성과를 팀장이 날름 낚아채서 독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팀들은 하나 같이 오래가지 못하고 해체되기 마련이다. 그런 해체 위기에 맞닥뜨린 당신에게 꼭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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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읽어드립니다 읽어드립니다 시리즈
김경일 외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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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그노벨상은 재밌거나 바보같은 연구에 수여하는 상이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런 연구를 한거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연구를 하는 이가 아니라면 이그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상에는 상금이 없다. 명예롭지 못한 상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신의 연구는 황당하고 하릴없으니 드리는 상입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상을 받은이가 훗날 노벨상을 수여하거나 되려 유명해지는 일이 빈번하단다. 심지어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이 상을 받는 것이 더 영광이라는 수상자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까닭을 물으니 노벨상을 수상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할 연구가 없는 '마침표' 같지만, 이그노벨상을 수상하면 더욱 분발하라는 응원을 받는 느낌이라 곧바로 또 다른 새로운 연구에 착수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는 연구자도 있다. 실제로 이그노벨상을 받은 황당한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더욱 넓히거나 깊이 연구한 결과 노벨상을 수상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쯤 되면, 이그노벨상은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하고 황당한 괴짜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특별한 상이 되어 버리고 만 셈이다.

 

  그런 이그노벨상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은가. 도대체 얼마나 엉뚱하고 황당하면 이 상을 탈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는지 말이다. 이에 우리 나라 대표 심리학자 세 명이 '이그노벨상의 진면목'을 요모조모 살펴 볼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서를 써냈다. 책내용은 이렇다.

 

  처음으로 소개한 연구내용은 '욕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전세계의 욕을 연구할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있단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공을 들여서 말이다. 이 연구의 핵심은 '욕을 하면 고통이 줄어든다'였단다. 실제로 욕을 시원하게 내뱉거나 누군가 쏟아내는 찰떡같은 욕을 들으면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욕도 잘만 쓰면 효용가치가 높아진다는 연구인 셈이다. 물론, 욕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는 상황에 적절한 욕을 쓰면 되려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늘상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큰 효과가 없단다. 이런 사람들은 욕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고 성품과 인품이 모두 나빠져서 품위 없는 무례한 사람에 불과하단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욕을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착한 사람이 욕을 한바가지 쏟아내면 자신에게는 스트레스 해소로 작용하고, 청중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어 '나쁜 말'을 들으면서도 기분은 좋아지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정말 엉뚱한 연구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누가봐도 별 것 아닌 연구를 심도 깊게 연구한 이에게 수여하는 것이 바로 이그노벨상이다. 그렇지만 만약 '욕에 관한 연구'가 여기서 그쳤다면 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연구내용은 또 이어진다. 바로 '손가락 욕'과 '외국어 욕'에 관한 연구다. 연구자는 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뒤에 '말이 아닌 욕'과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욕'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지 복잡다단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결과만 얘기하자면, 욕을 말로 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과만 봐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손가락 욕은 바로 품위 없는 행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교양인이 품위 없는 행동을 하고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또한, 알아 듣지 못하는 욕도 긍정적인 효과가 그다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욕은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효과나 나타난다는 얘기다. 이를 테면, 한국인에게 '뻔데기'라는 욕을 하면 자신을 능력을 비하하거나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어 상황에 적절할 경우에 모든 사람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할 수도 있지만, 외국인이 들었을 땐, 애벌레와 어른벌레 사이의 과정인 '번데기'가 왜 욕이라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떤가? 욕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를 수 년 동안 하고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것을 인정할 만 한가.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다. 연구내용은 '저주인형은 효과가 있을까?'다. 저주인형이란 직장인들이 종종 나쁜 상사에게 대놓고 화를 낼 수 없으니 대신 화를 내고 벌을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유발 원인 가운데 '상사의 부당한 일처리'에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에 대한 짜증이 상위권에 든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이럴 때, 못된 상사 대신에 할 말 다하고, 심지어 복수의 칼날을 내리 꽂을 수 있는 저주인형은 훌륭한 대안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그노벨상 수상자의 연구 핵심내용이다. 정말로 '저주인형'에게 대신 분풀이를 하면 속이 시원해질까? 하고 말이다.

 

  결론은 의외로 대단히 효과적이라고 나왔단다. 우리는 나쁜 감정을 함부로 분출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이를 어기면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고 으레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처럼 '나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게 되면 병이 되어 버리고 마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우리 나라 여성들에게서 자주 발생한다고 해서 이름도 '홧병'이 된 것도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지 못하고 쌓아두게 되어 생긴 병이라고 한다. 이때, 저주인형에게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 이그노벨상 수상 이유였단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어떤 것이 가장 좋을까? 말로만 해야 할까? 날카로운 바늘을 인형에 꽂는 행위는 효과가 없을까? 놀랍게도 모든 방법에 효과가 좋았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꼭 맞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았다면 그대로 시도해도 무방하며, 색다른 해소 방법이 떠올랐다면 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릴 때까지 하면 효과가 직방이라고 한다. 그럼 저주인형은 '저주대상'과 꼭 닮아야 할까? 라는 연구를 한 결과는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냥 대충 그린 그림에 '이름'이나 '별명'을 붙여놓고 저주의 대상을 '상상'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한다. 되려 저주인형을 저주대상과 꼭 닮게 만들면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까닭은 실물과 꼭 닮을수록 폭력을 가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쌓이기 때문이란다. 역시나 이그노벨상을 받기 위해선 재미와 흥미를 넘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밖에도 '소변을 참으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거나 '설명서는 왜 안 읽을까?', '사이코패스 진단법' 같은 흥미롭지만 굳이 왜 이런 걸 연구할까 싶은 연구를 아주 심각하게 다루는 연구자와 저자를 만날 수 있는 재미난 책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감춰진 '심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유용한 책이기도 하다. 한 가지만 더 소개하면서 마무리 하련다. 이 책이 얼마나 유용한 책인지 판가름 해보길 바란다.

 

  우리는 2년 사이에 세 차례의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그런데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백신을 맞았을 것이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던 백신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는가? 내 기억으론 수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백신은 '값이 비싼' 백신이었고, 그닥 선호하지 않은 백신은 반대로 '값이 싼' 백신이었다. 그러면서 왜 자신에게는 '비싼 백신'을 놔주지 않느냐면서 불만을 쏟아냈던 사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백신의 효능은 가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개인적인 면역력에 딱 맞는 적절한 백신을 맞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는 결론이 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비싼 백신'이 더 좋은 효능을 낼 것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쯤해서 연구할 수 있는 내용이 바로 '싼 게 비지떡일까?'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의 '기능'보다 '가격'에 더 민감하다는 사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가격이 높을수록 좋은 물건이라는 상식이 부추기는 점이 없지 않지만, 진실이 밝혀져서 가격에 거품이 잔뜩 낀 물건일지라도 비싸게 주고 샀으니 만족해버리는 경우가 흔히 벌어지곤 한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사실'을 믿기보다는 '믿음'이 사실이길 바라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경험이 쌓이면 '믿음'이 그대로 '진리'가 되어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단다. 바로 '플라세보 효과'가 그렇다. 가짜 약이 불치병을 낫게 하는 놀라운 기적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역기능도 있다. 철떡같은 '믿음'이 동반되지 않으면 플라세보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짓'이라도 '진실'로 믿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도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재밌는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한 책을 소개해보았다. 별 것 아닌 주제를 평생에 걸쳐 연구하는 모든 이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비록 이그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하더라도 당신들의 연구가 결코 헛된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이그노벨수상자 가운데 소똥으로 바나나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술을 연구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아무도 먹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가 그 기술이 인류의 고민을 해결해줄 열쇠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릴없다고 쓸모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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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 새로운 세상을 꿈꾼 25명의 20세기 한국사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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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위인을 얼마나 공정하게 평가하고 있을까? 친일 논란이 많은 위인(?)들이 아직까지도 떠받들 듯 칭송되고 있는 반면에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애국애족하던 수많은 열사와 의사 들은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역사에서 지워진 채, 우리 기억에서조차 잊혀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편, 수많은 위인들을 공정하게 평가내리지 못하는 원인을 꼼꼼히 볼작시면,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날조되고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아전인수격으로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또한 이것이 대한민국 주류언론에서 벌이고 있는 꼼수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느낄 수 있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 위인들의 평가를 다시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대한민국 103년'이라는 시점에 말이다.

 

  그럼 우리가 재평가해야할 위인들은 어떤 분들일까? 무엇보다 '여성위인'에 대한 폄하를 걷어내야 한다. 전근대 뿐 아니라 근현대사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남자들을 보필하는 것으로 한정하며, 좋게 말해서 '내조'라고 일컬으며 남자들이 양지에서 활동할 때 여성위인들은 음지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인의 평가는 '남녀의 차이'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평가를 내려야할 것이다. 일제시대에 나라 잃은 슬픔이 '남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3·1만세혁명 당시에 '독립만세'를 목놓아 부르고 외쳤던 이들은 '우리 민족' 전부였고, 일제 치하 한민족의 설움을 느껴 손에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울분을 쏟아내고 자주독립이라는 열망을 꿈꿨던 이들도 '우리 민족' 전체였다. 그런데도 독립운동을 했던 위인들은 대다수 '남자'만을 기리고 '여성'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뿐더러, 유관순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을 정도다.

 

  또한, 재평가의 기준을 바로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 한국전쟁 당시의 영웅들을 추켜세우는 일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분이 바로 '백선엽 장군'이다. 그분의 업적을 꼽으라면 너무나도 많아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웅 중에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숱하게 잡아다 가두고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우리는 이렇듯 시대적 아픔을 겪고 격동의 시절을 지내며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인 시절에는 '일제의 수탈'보다 '북괴군의 만행'이 더 끔찍했을 지는 몰라도, 민족적 관점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평가를 하자면,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상처가 우리 민족 내부의 분란으로 벌어진 상처보다 더 치욕스럽게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 본다면, 친일의 과오를 반공의 위업으로 덮어버리고도 남는 우리 현실은 이상하게 여겨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논리를 앞장 세워서 과거에 대한 잘못조차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너그럽게 용서하자면서도, 북한은 같은 민족인데도 사상과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니,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북한과 하는 것보다 일본과 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마지막으로 바로 잡아야 할 시급한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기준'을 고정사실로 못박아놓고 '고정불변의 진리'인 것 마냥 퍼뜨리고 있는 주류언론의 행태다. 언론은 '여론형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도맡아 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망각해버린 듯한 행태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피해국인데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기는커녕 '가해국 일본'을 대신해서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버린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미소냉전'이라는 강대국의 논리로 귀결된 잘못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강대국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자국이기주의'가 팽배해진 마당에 강대국들이 잡고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잘잘못을 따져 바로 잡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셈이다.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주류언론'이라면,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지금이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온 국민에게 알리며 선진국에 걸맞는 시민의식을 키우는 '바른 언론'으로 활동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언론이 저지르는 행태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줏대없는 약소국에 불과하다는 듯,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경제발전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며, 혈맹으로 맺어진 미국에게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임하며 미국의 요구는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마땅히 추진해야 한다고..그리 하지 않으면, 쬐끄만 북한에게 집어삼겨질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급급하다. 더구나 옆나라 중국에 대해선 대한민국의 이익을 생각지도 않고 할말 못할말을 다 지껄이면서도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선 '종속'해야 이득이라는 논리를 펴며 중국의 해괴망측한 온갖 짓거리(동북공정, 한한령, 중국꺼라 우기기 등)에는 그저 수수방관만 일삼고 있다. 이런 엉터리 언론이 제대로 된 위인들의 평가에 소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정도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위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선진국에 걸맞는 대한민국 시민의 이름으로 평가를 내리기 위해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 고심해야만 한다. 가장 바람직한 판단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식이 선결되어야 한다. 분란이 생겨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막무가내로 공격하고 흠집을 내며, 그도 모자라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대처방안을 내는 저급한 말과 행동은 일절 금해야 한다. 이미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그러므로 '세계시민'이라는 큰 안목으로 인류공영의 이상향을 내세워 '우리 문제'도 해결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과거의 잘못된 이념갈등과 사상검증이라는 낡은 가치관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지나간 잘못은 '철저한 사과와 반성'을 거쳐 '관용과 포용'이라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또한 폭력에 관해서는 냉철한 처벌을 내리고, 그 처벌을 달게 받은 이에 대해선 관대한 용서로 다시금 보듬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위인들을 평가내린다면, 이 책에 언급된 '25명의 위인'이 제대로 보이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독립'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배운 리더들이 저마다 꿈꾼 '아름답고 멋진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노선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런 과정에서 각각의 노선 사이에 시기와 반목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분열적 사고방식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라서는 '좌우합작'을 통해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우리 독립운동가 중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계열'의 위인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 남북으로 갈라지는 아픔의 시절을 겪은 탓에 이들에 대한 평가가 소홀해지고 말았다.

 

  더구나 여성 위인들은 남자들에 가려져서 그 빛을 밝히지도 못하고 사그라 든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도 하나 뿐인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때로는 남자들도 감히 할 수 없는 업적을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며 당당하게 해낸 훌륭한 분들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이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해 유복자를 키우며 온갖 힘든 일을 하던 남자현 의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일본 총독을 암살하려 앞장 서기도 했다. 이를 모티브로 삼아 만든 영화가 전지현 주연의 영화 <밀정>이다. 그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을 바란다는 혈서를 작성해서 세계열강에게 호소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생각하면 손가락은 아깝지 않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 여성 위인이다. 이런 위인을 수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따라 엉터리 여론을 형성하기에 급급한 '주류언론'의 방만한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국민의 알 권리'를 실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인데, 대한민국의 주류언론은 당연한 '그 권리'를 기득권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만 활용하는 '선별적 알 권리'를 내세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진실을 알리기보다는 '저들의 세계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편협한 폄하와 왜곡까지도 일삼곤 했다. 조선노동자의 고통과 설움을 알기에 하나 뿐인 목숨도 아끼지 않고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 단식농성을 벌였던 강주룡 열사를 알고 있는가? 또, 일패 기생으로 유명세를 떨친 정칠성 열사는 3·1만세혁명을 계기로 투철한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고, 독립을 위해서 한 몸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독립운동가로 삶을 마쳤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한 평가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지붕 위에 올라간 상황에는 관심조차 없고, 그가 청상과부의 몸으로 살았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다. 또한, 천한 기생 주제에 성스런 독립운동에 가담하다니 독립운동가들에게 오점을 남길 뿐이라는 논조로 깎아내리기 급급할 뿐이다. 일제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이 해방 이후의 언론들도 비슷한 논리로 여성 위인을 발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디 이뿐인가. 조선독립운동의 트로이카로 불렸던 주세죽, 허명숙, 고명자는 사회주의 계열의 공산당이자 해방 이후에는 월북해서 숙청 당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알릴 이유조차 찾지 않고 말았다. 같이 활동했던 박헌영의 활약은 생생하게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도 대접받아 마땅한 위인들을 재평가하고 재발견하는 일에 소홀하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몰랐던 위인들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제대로 평가받길 바라는 것이다. 이 책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은 자신의 뜻대로 살면서도 자신보다 모두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한 이들을 알리기 위해서 펴낸 책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의 뜻'대로 살기도 힘든데, 그 뜻이 개인적인 이득보다는 우리 모두의 이득을 위해 뜻을 펼쳤다면 존경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앞서 말한 '잘못된 기준'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지금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늦지 않게 제대로 평가받아 마땅한 위인들을 널리 알리는 길은 다름 아니라 바로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는 방법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위인을 알아보고 제대로 평가해주길 바랄 뿐이다.

 

책드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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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기 전에 알면 좋은 사실들
홍태화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이런 좋은 책은 널리 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이 도리어 '강자의 유용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현실에서 가해자의 2차 폭력을 막고 피해자를 법의 울타리 안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널리 알리는 일은 '지식인들의 의무'이자 '교양인들의 상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언론 제보'와 'SNS 폭로' 등으로 자신이 받은 부당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방법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을 밝힐 때 유용한 팁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거나와 '언론 제보'를 할 수 있는 채널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명', 그리고 '관련 법규'까지 소상히 일러주어서 정말 알면 알수록 좋은 상식을 누구나 쉽게 읽고 따라 할 수 있게 정리 되어 있다.

 

  더욱 유용한 까닭은 '관련 사례'를 조목조목 달아놓아서 자신이 받은 부당한 사례나 직장 갑질, 성폭력 등 따위를 대기업으로부터 명예훼손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기에 피해자인데도 가해자로 인해 '가해자로 둔갑'하는 황망한 일을 당했을 때 유용한 도움을 얻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현직 대통령도 언급한 말이지만,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며,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법적조치를 받을 수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법대로 따르면' 국민 누구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일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을 다루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다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들에게 훨씬 유용하도록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법과는 거리가 먼 '선량하기만 한 서민들'은 힘 있는 자들의 고소, 고발만 받아도 '사형선고'를 받는 것마냥 벌벌 떨기 일쑤다. 특히, '명예훼손'과 같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함부로 쓰여지는 '법적 횡포'에 법과 친하지 않아 '소외되고 문외한이 되어 버린 약자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가해자로 또다시 처벌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래선 약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도리가 없게 된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사실조차 약자들에겐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법'과 '법률'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만 한다. 그래서 최소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가해자들의 횡포에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당신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비정하고, 법이 '힘 있는 자들'에게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약자들의 위한 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을 잘 몰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명확한 '피해 사실'과 명백한 '피해 증거'만 확보해두면 당신을 도와줄 사람과 단체, 그리고 기관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사실 관계'에 근거해서 '언론 제보'와 'SNS 폭로'를 통해 강자와 대기업의 횡포에 당당히 맞서고 피해자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게 된 사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OO 유업 불매운동'이다. 대기업의 갑질로 대리점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언론 제보'를 통해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그 사실을 인지한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펼쳐서 가해자가 더는 악질적인 행위를 하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개선이 되지 않자, 결국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촌극이 벌어지고 나서야 겨우 일단락이 된 사례도 있다.

 

  그러니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당당하게 알려야만 한다. 여기에 '안전하게'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유용한 안내서가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법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겐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며, 법적인 상식이 필요한 예비 교양인들에겐 필독서가 될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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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5대 희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셰익스피어 연구회 옮김 / 아름다운날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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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셰익스피어를 읽겠노라고 다짐해놓고서 미적거리다가 이제사 다시 책을 들었다. 그간 여러 모로 사정이 있긴 했지만 그조차 구구절절 변명일 것 같아 길게 하지 않으련다. 당장은 어머님 병간호로 인한 백수 신세를 면하고, 다시금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겠기에 리뷰에 소홀할 지도 모르겠으나, 책은 늘 내 곁에 있을 것이기에 리뷰도 끊이지 않고 써나갈 것이다. 어쨌든 '다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은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다. 4대 비극과 함께 '상식문제'로 곧잘 나오는 것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일 뿐이고, 우리가 기대하는 '희극'에 걸맞는 명성을 갖춘 작품이냐고 되묻는다면, 글쎄요..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직접 읽어보면 그다지 웃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베니스의 상인>은 골탕을 먹는 '악당 샤일록'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전재산을 잃어버리는 통쾌한 내용이 담겨 있기에 '희극'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선 기 쎈 여자를 남자들에게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서 지역사회를 평안하게 만들었다는 웃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요즘 독자들을 웃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신들의 장난에 의해 어긋나 버린 사랑이야기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희극적인 요소를 띤 '요정의 장난'이 오늘날의 독자에게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할 듯 싶다. 왜냐면 셰익스피어 희극의 장점은 바로 '익살스런 대사'에 있는데, 아주 오래 전에 유행했을 법한 익살과 재담이 요즘 독자들에겐 식상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뜻대로 하세요>에서는 로잘린과 올란도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끝내 해피엔딩으로 끝맺고, <십이야>에서는 세바스찬과 바이올라라는 일란성 쌍둥이 남매가 우여곡절 끝에 각자의 사랑과 맺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배꼽 잡을 정도로 웃긴 작품이 아니다. 그의 비극이 모두가 파멸로 끝을 맺는 '새드엔딩'이라면, 그의 희극은 몇몇 악당을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희극'이라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희극인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해서 피땀눈물, 그리고 고생을 아끼지 않는 것을 생각하며 <5대 희극>을 접하게 되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감동적인 서사를 음미하면서 읽게 된다면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는 '반전없는 매력'에 푹 빠져 감상한다면 더욱 맛깔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베니스 상인>을 빼고는 '수동적인 여인의 모습'을 당연하다 여기고, 심지어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는 남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맞아도 싸고, 굶어 죽어도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희극속에서 카타리나는 여인들을 모아놓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설교하며 마무리하고 있는 장면에선 기겁을 할 지경이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순종이란 말인가? 차라리 천방지축에다 안하무인으로 살던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 말이다. 나머지 작품에선 모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속만 끓이다 '남자'가 겨우 사랑을 알아보고 '알은 채'를 한 뒤에야 행복해진다는 결말을 말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자아 냈다. 여자가 먼저 사랑고백을 하면, 아니 '내 사랑'을 쟁취하는 적극성을 보이면 '여자답지' 못한 것일까?

 

  딴에는 <베니스의 상인>을 비판적으로 읽으며 '유대인'을 모욕하는 것에 관심을 쏟기 일쑤인데, <5대 희극>을 나란히 놓고 보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지혜롭기까지 한 포셔의 등장이 단연 돋보여서 가장 희극다운 희극으로 보일지경이다. 앞서 <햄릿>을 소개할 때도 셰익스피어의 여성관이 부정적이라며 비판을 했었는데, <5대 희극>에서는 더욱더 부정적이라서 놀랐다. 이런 작품을 두고, 여전히 '명작'이라 불러야만 한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셰익스피어를 '여성관' 하나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문호가 전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보지 않고 '당근만 골라내는' 편식쟁이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대함과는 별도로 오늘날의 가치관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면, 지적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다루면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문호의 명성 앞에서도 당당히 꾸짖는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이 평가해놓은 '잣대'에만 길들여져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명작을 읽는다고 해도 아무 짝에 쓸모 없는 시간낭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야 공들여 책을 읽는 수고는 무엇하러 하느냔 말이다. 그저 남들이 평가해놓은 얄팍한 '지침서'만 읽어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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