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 잘하고 싶어 시작을 망설이는 세상의 모든 완벽주의자들을 위한 진짜 완벽주의 활용법,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윤닥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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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거의 대부분 '완벽주의'를 강요받고 있다. 완벽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급성장하게 된 '원동력'이기도 했고, 선진국들 가운데서도 거의 완벽할 정도로 '민주주의'를 확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우리 사회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공정에 대한 완벽주의, 정의에 대한 완벽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들은 제외다. 정말이지, 후진적이고 구태스러운 낡은 정치인들만 싹 갈아치우고 나면 대한민국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1등 국가이자, 모범국가가 되어 전세계인을 선도하는 멋진 나라가 될 것이다. 암튼, 이 책은 '심리학' 책이다.

 

  완벽주의는 심리학용어는 아니란다. 완벽주의가 병적인 증세는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주의'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다치는 일을 종종 당하고 있기에 '심리학자'들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중이라고 한다. 흔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결벽증'과 '강박증' 등과 같은 질병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완벽주의'는 개인적인 원인에서든, 사회적인 문제에서든 '이상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단다.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발전상을 가져온 원동력이 어쩌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된 것일까.

 

  남들 앞에만 서면 심장이 요동을 치고 손발이 벌벌 떨리며 땀을 비에 흠뻑 맞은 듯 흘리는 경험을 하면 '무대 공포증'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그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은 연습과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이겨보려고 하지만, 더 많은 연습, 더 많은 경험이 더 큰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단다. 왜 그럴까? 이들을 지켜보고 분석한 심리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완벽해지려는 마음가짐'이 더 많은 떨림과 불안, 긴장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었단다.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공황장애, 강박장애, 식이장애, 번아웃 등을 의심하며 병원을 찾아오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완벽주의'에서 찾을 수 있더란 말이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주위에서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들이 더욱더 완벽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이나 완벽하지 못한 '현재의 모습'을 개선하기 위해 '완벽한 계획'을 세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을 실행해나가는 모습 따위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치며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강요하듯 권장하기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병적인 증세로 보일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책망하며 더욱더 정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만다. 물론, 정반대의 양상도 있다. 정말 내노라할 정도로 대성공을 한 인물이 자신의 성공비결은 '완벽주의'에 있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인터뷰하는 모습을 정말 자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는 이런 '완벽주의'를 권장하며, 너희가 아직 성공하지 못한 까닭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체크리스트와 계획서를 들이밀면서 '완벽한 성공비법'에 어서 승차하라고 손짓한다.

 

  이렇듯 '완벽주의'는 우리에게 두 얼굴의 모습으로 늘상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도 '완벽주의'를 마음의 병으로 단정짓지 못하고, '관찰'만 하고 있는 셈이란다. 하지만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완벽한 사람만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뭐든 완벽하려고 들기보다 '즐기는 사람'이 가장 성공하는 법이라고 말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성향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 '성공의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고, 성공에 이르는 길도 달라야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성공을 향해 성장하는 이들에게 '완벽'을 강요하고,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완벽주의를 강요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완벽'이 필요한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테면,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험천만한 공사현장이나 작업환경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한순간의 방심이 대형재해를 일으키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늘 '완벽'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긴장된 채 8시간을 근무를 하면 '5일 근무'가 아니라 하루만 지나도 녹초가 되어 다음날 근무를 정상적으로 해낼 수 있는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충분한 휴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완벽한(?) '교대 근무'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강행군' 뒤에 꿀맛 같은 '휴식'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리 언성을 높이냐고? 바로 내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루 9시간 근무에 1시간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오전, 오후에 한 번씩 20분 몰아서 휴식을 하는 방식으론 정상적으로 근무를 이어가기 힘들단 말이다. 그런데 그게 '법정근로시간'에 저촉되지 않기에 합법이라는 것이 문제다. 하긴, 대통령이 주당 120시간 근무(주5일근무 기준, 24시간 노동)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마당에 뭔들...쿨럭쿨럭

 

  암튼, 우리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완벽주의'를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인생은 즐겁다는 본을 보여줄 때란 말이다. 더는 '네가 가난한 이유가 게을러서야'라는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적당히 게을러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이들조차 '여유'를 부릴 때 더 멋져 보인다. 그게 황새여서 그럴까? 뱁새 주제에 감히 황새처럼 여유를 부릴 생각을 하는 것이 가당찮아 보이는가? 황새가 유유자적하며 시냇가를 휘적휘적 걸어갈 때, 뱁새는 조막만한 날개를 부지런히 퍼덕여서 하늘을 날며 쫑알거리면 된다. 그게 더 뱁새다운 '라이프 스타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왜 뱁새에게 짧은 다리를 원망(?)하게 만들며 가랑이 찢어지도록 다리를 놀리라고만 강요하는가 말이다.

 

  또한, 사람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성공만 하며 빠르게 출세를 한 이들이 '단 한 번의 실패'로 심한 좌절로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보다는 '칠전팔기'를 외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깨달은 이들이 성공가도를 탄탄하게 다지며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렇기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나온 것일테다. 마찬가지로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거나 너그럽게 대하는 환경속에서 자란 아이가 큰 실패에도 주눅들지 않고 재기에 성공하며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는 인물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특히,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그렇다. 과학실험은 수많은 실패 위에 '단 한 번의 성공'을 쌓아올려 '과학혁명'을 이루는 법이다. 이처럼 실패와 실수의 저변을 깔아두어야 빛나는 성공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비단, 과학에서만 통용되는 성공비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심리학> 책이다. 그래서 '완벽하지 못해서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 '어떤 유형의 완벽주의자'인지 체크하고, 유형별로 자신의 완벽을 다스리고, 완벽을 내려놓는 방법을 제시하며 '심리적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허나 진짜 '완벽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스스로 체크하는 것이 적절치 않는 분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체크'하기에 앞서, 완벽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먼저 인지하고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충분히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헤집듯이 분석하는 내용을 읽다보면 막상 '완벽주의자'들은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 역시 꽤나 '완벽주의', 아니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관리에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뭘 할 때마다 '강박증세'에 시달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려놓기'를 실천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늘 부족한 '무엇'을 찾으며, 그것을 채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살면서 고쳐지지 않는 단 하나가 바로 그것이니 말이다.

 

  완벽한 모습도 '나'이고, 쫌 부족한 모습도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만 잊지 말자. 그리고 늘 완벽할 수도 없다. 긴장의 끈을 조금쯤 느슨하게 잡고 있어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여유'를 부리면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이 쌓이면 문제가 발생해도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고, 문제가 생긴 다음에 해결해도 전혀 늦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완벽한 사람'이란 문제를 하나도 발생시키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생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잘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느슨한 완벽주의' 또는 '여유만만 완벽주의자'가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가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완벽주의는 모두 나쁜 것이 아니란다. 완벽해지려 할수록 한 텐포 '쉼'을 가질 여유를 가지려 노력하고, '긍정적인 완벽주의'도 얼마든지 있음을 잊지 말라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 다가올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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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1 - 서남전쟁과 위구르 봉기 본격 한중일 세계사 11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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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이어, 일본의 '명치유신'이다. 일왕 명치(메이지)가 신정부의 수장이라고는 하나, 직접 통치하는 권력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입헌군주국'이라고 하기에도 좀 뭣하지만, 암튼, 일왕은 '명예회장'쯤 되고, 수상은 '바지사장'쯤 되지만, 실권은 바지사장에게 있는...따지고 보면, 과거 막부시절에도 일왕과 쇼군의 관계와 비슷한..암튼, 그렇다.

 

  어쨌든, 명치유신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신정부'가 이끄는 신일본은 하루가 멀다하고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들불처럼 저항이 일어났는데, 그 마지막 저항인 '서남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볼작시면, '불평사족(신정부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하급 사무라이들)' 때문이었다. 신정부가 일본의 전통적인 '신분제'를 파기했지만, 여전히 '사무라이 계급'에게는 봉작을 하사하는 등 '과거신분'에 따른 차별은 여전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기만 하는 '사무라이 계급'에게 지급한 봉작이 문제가 되었다.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개혁'을 실시하고 있는데, '들어갈 돈'이 얼마나 많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화족'이니 '공경귀족'이니 떠세를 부리면서 '정부의 세금'을 호로록 퍼드시고 계시니, 나라의 곳간이 텅텅 비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정부'는 사무라이에게 지급하던 '봉작'을 명예퇴직금 지급하듯이 '일정 금액'을 퉁쳐서 일시적으로 지급하고, 더는 주지 않겠다고 일방적인 선언을 해버리니 문제가 점점 커져버리게 된 셈이다. 그나마 높으신 사무라이들은 그 액수라도 많아서 몇 년간 버틸 여력이라도 있었겠지만, 애초에 '하급 사무라이들'에게는 지급조차 하지 않았으니, 사무라이 체면에 '농사'를 지을 수가 있나, '장사'를 할 수가 있나..그저 쫄쫄 굶어죽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불만이 점점 커져만 가고 불평은 날로 늘어만 가니, 이것이 바로 '불평사족의 난'이다.

 

  이런 '불평사족들'의 근거지는 명치유신의 주역이었던 조슈와 사쓰마였다. 그밖에도 여러 곳에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고위 유신지사들의 고향이기도 했던 '조슈'와 '사쓰마'가 반란을 일으키니 유신지사들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정부군은 저항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제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왜냐면 '반란군'의 주역들이 중앙정계에서 '권력다툼'을 벌어다 여의치 않자 '고향'으로 내려간 유명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불평사족의 난'이었지만, 내부로는 신정부의 '유신지사들끼리의 권력다툼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게 조슈지사들이 쳐발리고, 이제 사쓰마지사들이 똘똘 뭉쳐 '서남전쟁'을 일으켰다.

 

  어차피 결과는 '신정부군의 압승'이다. 하지만 '서남전쟁'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까닭은 전쟁의 양상이 <라스트 사무라이>와 판박이처럼 똑같았기에 그렇다. 애초에 유신지사들은 '존왕양이'를 외치며 일왕에게 충성을 바치며 서양세력을 몰아내자는 명분을 내세워 '막부의 목숨줄'을 끊어놓았다. 막부의 정체가 바로 '사무라이 정신'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유신지사들이 스스로 '서양화'한 뒤에, 권력다툼을 벌였고, 권력에서 밀려난 이들은 낙향을 해서 '새로운 사무라이 정신'을 드높였던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래서 신정부군은 '서양의 신식무기와 전술'을 도입해 불평사족들을 발라버리고, 불평사족들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무기체제로 어쩔 수 없이 '발도(칼을 뽑아 듦)대 편제'를 구성해 전쟁을 치루니, 애초에 전쟁의 승패는 결정이 난 셈이었다.

 

  하지만 저항은 끝없이 이어지고 명치유신을 이끌던 유신지사들은 하나둘 죽거나 죽임을 당했고, 그 뒤에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였던 것이다. 천한 하급 사무라이 계급이었으나, '조슈 파이브'의 일원으로 일찍이 해외유학으로 외국인 친구도 많았고, 능수능란한 처세술과 달달한 달변으로 주위에 적보다는 친구가 더 많으며, 여자친구(?)는 더 많은 난봉꾼...쿨럭쿨럭...어쨌든, 이등박문의 등장으로 '개혁 드라이브'는 강경 이미지보다 부드러운 유화 제스처를 취하며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진행되어 간다.

 

  한편, 청나라의 서쪽 변방인 '신장 위그르 지역'은 좌종당의 평정으로 안정(?)을 얻었는데, 평화(?)를 되찾기까지 '중앙아시아'를 두고 펼쳐진 영국과 러시아 간의 '더 그레이트 게임'이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펼쳐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할 수 있다. 그레이트 게임이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영국의 방해작전'을 총괄해서 일컫는 말이다. 러시아는 팽창정책을 펼치며 동쪽으로 국경을 광활하게 넓혀가지만, 정작 '부동항'을 얻지 못해 강대국의 필수요건인 '해군력'을 보유할 수 없어 곤란을 겪기 일쑤였다. 그렇게해서 '2차 아편전쟁'의 틈을 타서 연해주 지역까지 꽁으로 먹게 되지만,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도 역시 일년의 3/4는 얼어붙어 있었기에, 러시아는 호시탐탐 '남하정책'을 펼치게 된다. 그러다 우연찮게 흑해연안의 '동그루지아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멀지 않은 곳에 '인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농담처럼 러시아가 인도를 차지하면 '부동항'을 어럽지 않게 얻을 수 있다는 꺼낸 말이 실제로 벌어지게 되면서 '더 그레이트 게임'의 연장전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로 새롭게 눈을 돌린다.

 

  또한, 당시 중앙아시아는 여러 민족이 섞여 살면서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정점으로 티벳고원과 파미르고원이 연이어 있고, 그 사이에 타클라마칸 사막이 펼쳐진 황량한 '중앙아시아'는 의외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고원지대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이 강을 이루고 군데군데 오아시스가 조성되었기에 '유목민' 일찌감치 터를 잡고 살았으며, 소박하지만 농사를 지어 먹고 살만한 지역이었다. 이런 '중앙아시아'에 카자흐스탄과 우즈벡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키르기스탄 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동 키르기스탄'이 오늘날의 '신장 위그르 지역'에 포함되어 있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이 중요한 까닭은 '이슬람 종파의 종교분쟁'과 '중국의 민족차별과 인권 유린'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만, 오늘날에는 이 지역에 '전세계 면화 생산량 1위', '중국 전체의 석유, 가스 매장량의 1/3', '금을 비롯해 수많은 희토류가 매장된 곳', 그리고 인도와의 국경분쟁 등등 중국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보물지도'가 가득 쌓이고 묻힌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미래를 보장할 천혜의 자원과 보물이 가득한 '중국의 목숨줄'이란 말이다. 그러니 중국이 순순히 이 지역을 내어줄 까닭은 절대로 없다. 이런 '중앙아시아'의 정황을 일찌감치 알았기에 중국이 탐을 낸 것은 아니고, 이 지역이 안정되어야 중국이 평안할 수 있었기에 얼마간 무리가 있었다고 해도 끝내 놓치지 않고 차지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중앙아시아 민족'은 왜 강대국들의 등살을 견디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던 것일까? 원래 이 지역은 '비단길(실크로드)'에서도 살짝 벗어난 곳이었고, 황량한 초원만 펼쳐져 있었기에 '유목민들의 터전'에 불과했다. 과거의 강대국들도 이 지역을 차지해봤자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에 건드리지 않고 평화롭게 지냈었는데, 일찍이 '이슬람 문명'이 전파되면서 '계파간 종교갈등'이 심심찮게 일어나던 것이 '민족 갈등'으로 번지며, 화합보다는 분쟁이 더 일상이었던 지역이었다. 그렇게 '내부적 갈등'으로 여러 왕조가 일어서고 들어섰으며 망했다가 다시 뭉치는 등 복잡한 나날을 보냈다가 청왕조가 힘을 길러 이슬람 세력을 밀어내고 차지한 뒤로는 '청나라 땅'으로 오랫동안 자리잡혔다.

 

  그 사이에 '중국 한족'도 이슬람화하여 무슬림이 되는 등 지리적으로 꽤나 멀었던 곳이었으며, 시간적으로도 외딴 곳이 되었던 셈이다. 그러다 억세게 운이 좋은 '미소년 무용수' 출신의 야쿱 벡이 등장하면서 '신장 지역에 새로운 이슬람 왕조'를 만들었다. 마침맞게 러시아의 남하정책이 펼쳐지면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벡키스탄, 키르기스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를 경계하던 영국이 개입하면서 '야쿱 벡 왕조'는 두 강대국의 완충지역으로 자리잡으며 안정을 누렸다. 여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야쿱 벡'은 이슬람의 원조격인 '오스만제국'에게서도 인정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왕국을 이어가려 했지만, 청왕조가 태평천국의 난을 얼추 정리하고, 염군의 난과 둥간 혁명까지 진압하고 나자 서서히 '신장 위그르 지역'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보내고 있었다.

 

  청나라의 등장에 '더 그레이트 게임'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게 된다. 영국과 러시아는 굳이 분쟁을 일으켜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이 넘어가는 것을 꺼리며 '야쿱 벡 정권'을 인정하고 안정을 꾀하는 한편, 청나라 조정을 압박해서 군대의 진군을 막아보려 했으나, 청나라의 군대는 멈추지 않고 진격해나가기만 한다. 눈에 보이는 승리를 앞에 두고 멈추는 바보는 없을 것이라는 속셈이었던 것일까? 어쨌든, '야쿱 벡'은 청나라의 공격에도 별다른 반격을 하지 않으며 끝까지 '강대국들의 원조'를 기다리며, 청왕조에도 공격을 멈춰줄 것을 거듭 요청하지만, 이미 시작된 전쟁을 되돌리기엔 너무나도 빈약한 평화의 외침이었다. 끝내 청나라 군대의 공격을 눈앞에 두고서 '내분'에 빠진 야쿱 벡 정권은 그대로 청나라에 흡수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신장 위그르 지역'은 이렇게 중국영토가 되었다.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이 지역'에 과연 평화로운 독립의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인가?

 

  일본도, 청나라도 모두 큰 혼란을 겪고 난 뒤에 '마침표'를 찍으려 하는데, 과연 잘 찍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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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 - 인류의 역사에 스며든 수학적 통찰의 힘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4
김민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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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수학시간'에 과학과 역사를 만날 수 없는 것일까? 7차 교육과정(1997년) 이후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교과통합'이고, 수학교과에서는 '스토리텔링'과 '스팀수학'으로 큰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학시간에 배우는 것은 '수학문제'를 풀고, 또 푸는 '무한반복'일 뿐이다. 다시 말해, '단순연산문제'에서 실생활과 밀접한 익숙한 문제에 이야기를 입혀 놓고, 이를 '서술형답안'으로 작성하는 방식으로 바꿔 놓았을 뿐, 여전히 수학시간에는 '문제풀이'만 열심이란 말이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하긴, 수학문제풀이만 하기에도 벅찬 시간이긴 하다. 학교수업시간으로도 모자라서 학원으로 달려가고, 밤늦도록 '문제풀이'만 하다가 집에 가서도 '문제풀이'를 숙제로 반복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시간이 모자라서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부족한 학습을 채우고, 예습, 복습을 하는 등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만에 하나 '여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 '수포자'로 낙인을 찍히며 평생 수학과 담을 쌓고 살아야만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곤 한다. 정말로 수학은 그토록 어려운 학문이란 말인가?

 

  솔직히 말해, 세상 어디에도 '학문의 길'은 쉬운 법이 없다. 내노라하는 석박사들조차 '학문의 길'은 어렵다고들 한다. 자신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늘 부족하다고 말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겸손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학문은 늘 높고 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는 까닭은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학문의 재미'를 학생들에게도 전해주면 좋지 않을까? 깊고 깊은 수학의 세계에 푹 빠져야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아니라 살짝 맛만 보여주어도 '흥미로움'이 절로 느껴지는 그런 것 말이다.

 

  우리가 '스포츠의 재미'에 푹빠져서 열광하는 것이 늘 '프로의 세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때론, 아마추어 경기가 흥미진진해서 볼 만한 경우도 많다. 심지어 '경기의 규칙' 따위는 몰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스포츠의 진면목이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게 '관심'이 생겨서 더 많은 경기를 찾아보게 되고, '경기 규칙'도 익히게 되어 더욱 흥미진진해지게 되며, 프로선수들의 명경기, 명장면을 직관하면서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되면서, 스포츠의 세계에 점점 빠져드는 것처럼 말이다. 수학공부를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해보려 한다. 학창시절에는 지루하기만 했던 '역사공부'가 어른이 되니 갑자기 재밌어지는 경우를 겪기도 한다. 이는 머리가 커지면서(경험이 쌓이면서) '안목'이 늘어나며 '보이는 것'들이 많아져서 그런 경우가 많다. 학창시절에는 경험이 미천한 탓에 무작정 암기해야만 했던 '역사적 사건들'이 어른이 되니, 매우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뒤늦게 역사공부 삼매경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마찬가지로 학창시절에는 그닥 중요하다고 생각지 못했는데, '과학의 발전'이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깨닫고 '국가경쟁력'이 과학의 힘에 달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과학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과학상식을 깨우치려 열심히 늦깍이 학생들이 참 많은 요즘이다. 대한민국이 우주로켓(누리호) 발사에 성공하고, 달탐사(다누리호) 우주선을 직접 만들어 쏘아보내는 광경을 보면서 느끼는 짜릿함을 학창시절엔 모르다가 어른이 되어 자긍심으로 다가오게 되는 경험을 하면 묘한 느낌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작 수학공부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은 있는가?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되지 미적분까지 어렵게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만 들지는 않는가? 그런데도 왜 우리는 학창시절의 절반 이상을 '수학공부'하는데 써야만 하는가..하고 억울해하는 어른들이 태반일 것이다. 여전히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문제풀이' 이외에 다른 수업을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학이 중요한 과목이라는 것은 알아도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공감하기 힘들 것이 틀림없다.

 

  서론이 장황했다. 이제부터 이 책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에 담긴 이야기를 하련다. 이 책은 '수학의 재미와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사책이다. '수학의 역사'라고 하니 제목부터 지겨워지는 것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로 진행되는 까닭에 흥미롭기 그지 없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와 고대 로마의 아르키메데스의 일상으로 시작해서, 갈릴레이, 케플러가 펼쳐낸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바로 '수학'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으며, 우주의 신비를 품고 있는 과학을 이해하는 도구가 바로, '수학'이라는 사실을 통해 '과학의 혁명'이 곧, '수학의 혁명'이었다는 진실을 새삼스레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며 '양자역학'을 풀어내는 핵심, 또한, '수학'에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활약상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고대의 수학자들이 쓴 '시'를 읽으며, 후대의 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영감을 얻게 되었으며, 그를 통해서 인류에게 보탬이 되는 업적을 남기게 되었는지 알게 되다면 '수학의 필요성'을 넘어 '수학의 중요성'까지 단박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수학시간'에 이런 것들을 맛볼 수가 없다. 문제풀이에 매몰된 학생들은 '시'를 통해 수학을 맛볼 수도 없고, '과학'을 통해 수학의 묘미를 깨달을 수도 없으며, '우주의 신비'가 오로지 수학의 발달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었다는 진리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어제도 풀고, 오늘도 풀고, 내일도 풀기만 하는 지겨운 수학을 할 뿐이다. 이젠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기왕 '통합교과'로 교육과정이 바뀌고, 문이과 통합까지 한 마당에, 수학문제만 고집스레 풀려들지 말고 '수학이야기'를 나누며 진정한 '수학의 세계'로 재미나게 여행해보면 안 될까? 먼저, 이 책으로 살짝 맛 본 뒤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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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 30년사 - 버블에서 아베노믹스까지
얀베 유키오 지음, 홍채훈 옮김 / 에이지21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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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지난 30년사'를 살펴보는 두 번째 책으로 선정해보았다. 첫 번째 책이 정치, 경제 등 '일본의 사회문화 전반'을 다뤘다면, 이번 책은 90년대이후 일본 경제의 30년사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다. 흔히, 일본의 경제 현주소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30년간 일본정부는 일본경제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기사회생'을 꿈꾸며 '개혁을 통한 발전'을 약속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소소한 '회복'은 있었을지 몰라도 확실한 '반등'은 없었다. 이대로 일본경제는 침몰하는가?

 

  일본 경제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은 언제나 두 갈래다. 이웃나라가 경제적으로 흥하는 것이 바람직할 건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폭망하는 것이 나을 것인가? 그렇다면 흥했을 때 우리가 취할 자세는 무엇이고, 그 반대일 경우에 우리가 반면교사로 얻을 것은 무엇이냐? 하는 물음을 주로 묻곤 한다. 그리고 한결같이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경제교류'는 연관짓기 꺼리는 쪽을 전제로 깔아두는 편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에 이득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일본도 그렇게 생각할까? 다시 말해, 일본도 대한민국이 가난하지 않고 선진국으로 발전해야 일본에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천만에! 일본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일본의 식민지'쯤으로 여기고 자국의 2등국민 취급하는 야만국가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표가 일본보다 한국이 앞서고 있는 지금도 "일본은 한국의 형님뻘이다"라는 망발을 하며, 국제적 외교결례를 일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일본을 곁에 두고서 '반면교사'를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겸손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무례한 일본에게는 따끔한 일침이 합당하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경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침을 가할 땐 가하더라도, 왜 일본경제가 추락하고 있는지, 내리막길을 무한질주하고 일본에 어떤 방식으로 일침을 가해야 효과적일지 연구해봄직한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경제학자가 분석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일본경제의 현주소'를 파악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본의 경제가 침몰하기 시작한 90년대는 '주가와 땅값의 거품 꺼짐현상(버블 붕괴)'가 주된 원인이었고, 2000년대는 '경제회생을 위한 구조개혁의 실패'가 원인이었으며, 10년대에는 '아베노믹스의 무능한 대응'이 일본의 경제회생을 가로막은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이런 '개혁의 원동력'이 사라지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일본, 그 자체에 경제침몰의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 이후, 일본경제는 어떻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나? 80년대 일본경제가 미국에 이어 '경제대국 2위'에 오를 수 있었던 중요 원인은 '가파른 주가상승'과 '더 가파른 땅값 상승' 덕분이었다. 시쳇말로 '도쿄의 땅'을 다 팔면, 그 돈으로 '미국의 주' 하나를 통째로 살 수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통하던 시절이었단 말이다. 때마침 미국 하버드 대학교수인 '에즈라 보겔'이 쓴 책 하나가 일본의 자존심을 더욱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일본은 넘버원(Japen as Number one)>(1979)이란 책이다. 그러나 '거품 꺼짐현상'이 지속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런 자부심만 가득차 있던 일본은 '내리막길'을 면치 못하면서 '일본은 괜찮아'라는 심정으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일본의 경제정책은 연이어 '헛발질'을 해댄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이즈미 내각'은 '구조개혁 카드'를 내걸고, 일본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전면적으로 실시했지만, 여지없이 참패를 면치 못했다. '신자유주의 경제'란 '수정자본주의'를 말하는데, 90년대 이후, 공산주의 경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경제가 승리를 거둔 시점부터 '경쟁상대'를 잃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수정보완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이때부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복지정책' 등 사회보장시스템이 크게 후퇴하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는 등 세계적으로 경제가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경제'를 도입하겠다는 일본의 정책이 일본 서민들의 삶을 크게 후퇴시켜서 '내수 성장'이 원동력을 잃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집권당이던 '자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민주당의 약진'이 성공하면서, '경제개혁의 바람'이 새롭게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9~2012년, 사이의 잠깜이었다. 민주당 정권은 큰 기대와 함께 탄생했지만, 연어이 터지는 부정부패사건으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더니, '소득세(부가가치세) 인상'으로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어차피 '소득세 인상'은 불가피했다. 경제회생에는 큰 돈이 드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은 꼭 필요했지만, 가뜩이나 곱지 않은 내각이 세금 인상을 시도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라는 것이 부자보다는 서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에 '조세저항'은 거세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민주당은 자멸하고, '아베 노믹스'가 찾아왔다. 아베 정권이 핵심적으로 내세운 경제정책은 '일본을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자'였다. 이를 위해 '법인세 인하' 등 대표적인 '부자감세 정책'을 뻔뻔스럽게 전면에 내놓으며, 직장인들의 월급은 '임금 동결'시키며 무려 30년 전과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되었고,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월급쟁이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본의 경제가 성장하기라도 했으면 덜 욕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 노믹스'는 환장할 만큼 대실패했다. 이 책이 일본 현지에서 2019년에 출간되었으니 '코로나 이전'의 데이터만을 참고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아베 수상은 대한민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며, 수출금지국가로 선정해 일본경제를 더욱 추락하게 만들었으며, 판데믹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베 노믹스'를 그대로 전승한 후임 내각의 헛발질도 여전한 형국이다.

 

  현재의 일본경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일 것이다. 펄펄 끓는 물에 개구리를 '첨가'하면 살아있는 개구리는 펄쩍 뛰어 '위기'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겠지만,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속에서 개구리는 평온하게 '온천욕'을 즐기며 '아직은 괜찮아'를 외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일본경제의 위기는 '일본은 넘버원'이라는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국민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이 책은 비판한다. 경제정책에서 연이은 헛발질을 계속 하는 '무능한 내각'에 일침을 놓치 않는 국민들의 수준 이하의 국민의식이 일본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이다.

 

  이런 일본경제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있다면, 단 하나'다. 바로 '무능한 정권'에게 표를 몰아주는 교양없고 몰상식한 국민들에게 각성을 주는 것이다.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았다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무능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몰상식한 국민이 깨어나지 못하면, 나라는 망할 수 있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책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일본경제 침몰을 보면서 대한민국 경제정책에 참고할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일본경제정책을 참고 삼아 뭘 시도하는 위정자가 있다면 경계할 일이다. 일본경제 침몰의 가장 원인이 '무능한 내각'을 지지하는 '몰지각한 일본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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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 강화도조약 Ominous 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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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명치유신'이후 내부혼란이 가중된다. 근대화라는 가닥은 잡았으나 권력에서 밀려난 '사무라이 집단들'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서는 형국이고, 우여곡절 끝에 '서구식 신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서양열강에는 미치지 못하고, 전통적인 동양국가들 사이에서도 위세를 떨치지 못하는 것에 자존심이 점점 상하고 있던 것이다. 특히, 청나라와 조선과의 관계 계선에 크게 공을 들이지만 '그만큼의 성과'를 아직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신정부의 위신'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럴수록 외교에 박차를 가해 '달라진 위상'을 보이며 '국제관계'에 있어서 확실히 달라졌음을 만천하에 알리는데 노력하려 했겠으나, 19세기 제국주의시절이었던 탓에, 국제관계는 오로지 '힘의 과시'로만 성립될 수 있었고, 힘을 과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오직 전쟁'밖에 없었던 터라, 일본, 아니 일본제국도 그런 절차를 밟게 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힘을 뽐내려 했던 곳이 지금의 '대만'이다.

 

  당시, 대만은 청나라의 섬이었으나 대륙 안에서 벌어지는 일만으로도 벅찼던 청왕조는 빈약한 해군을 앞세워 섬을 정복할 여력이 없었던 탓에 그저 '복속'한 섬으로만 치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파이완족'이라는 원주민들이 대만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산맥을 경계로 삼아 그 동쪽에 살면서, 서쪽 평야지대로 이주해온 한족과 별개로 비교적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류큐(유구국, 현재의 오키나와)의 주민이 태풍에 떠밀려 표류했다가 파이완족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일본의 신정부가 이를 트집 잡아 청왕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허나 청왕조는 애초에 '류큐인'이 일본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류큐가 아닌 일본에게 손해배상이 할 것이 없다고 나왔고, 일본 신정부는 류큐는 엄연히 일본의 섬이니 '일본인'이라는 억지주장을 하며 청에게 손해배상을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류큐국의 대표는 나설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이를 틈타 일본이 '파이완족'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청왕조는 '관할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조를 하니, 일본의 첫 해외원정인 '대만침공'이 되겠다. 어쨌든, 전쟁은 일본군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일본군의 사상자가 너무 커지자 자진철수를 결정하는데, 그냥 철수를 할 수는 없고, 청에게 '전쟁배상금'을 요구했지만, 전쟁에 들인비용에 터무니없는 적은 액수를 받고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중엔 별다른 피해 없이 완승을 거뒀지만, 주둔을 하면서 '풍토병(말라리아)'에 걸려 사상자가 속출하니 급히 탈주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일본은 자국 국민들에게 '전쟁승리 소식'만 대대적으로 홍보할 뿐, 그밖에 '불리한 소식'은 은폐하면서 일본제국의 첫 단추는 잘못 끼우게 된 셈이다.

 

  이렇듯, 안팎의 불만을 잠재울 마땅한 카드가 딱히 없던 일제는 '정한론'이라는 카드를 스물스물 꺼내들기 시작한다. 마침, 조선이 일본이 보낸 국서에 적힌 '일본국의 황제 직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전통적인 양국관계와 사뭇 다른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는 일본관원의 무례한 점을 꼬집으며 조선의 관원이 일본을 향해 '무법지국'과 다를 바 없다고 발언한 것을 꼬투리 삼아 '정한론의 정당함'을 표방하니, 이른바 '운요호 사건'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이란 서막이 오른 것이다.

 

  애초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부산 왜관'을 열어 무역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일본의 국서는 곧바로 조선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대마도주'를 거쳐서 대신 전하게 되어 있었는데, 새로운 정부를 설립한 일본은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며 '직접' 통교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은 이전과는 다른 태도에 '형식적인 문제'를 내세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외교관계를 이어나가자고 요구한 것이다. 일본은 바로 '이런 점'을 꼬투리 삼아 조선국이 대일본국에게 무례하다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애초에 '부산 왜관'에 머무는 일본인은 '왜관밖'으로 한발짝도 나설 수 없게 되었으나, 그 경계를 함부로 넘나들지를 않나, 칼을 찬 무사들이 조선인들에게 위협을 가하질 않나, 신식군대를 태운 군함을 부산항에 보내 위협을 가하질 않나...말로 다 할 수 없는 '무례한 짓'을 일삼았기에 '무법지국'이라고 에둘러 훈계를 한 셈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힘의 과시'를 하겠다며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니, 식수를 얻으려 했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조선군의 경고사격을 빌미로 강화도 초지진을 선제공격한 것으로도 모자라 강화도 남쪽의 영종진에 군대를 상륙시켜 주민들을 몰살시키는 만행을 일삼는다. 이를 시작으로 '강화도 회담'을 열라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고, 조선의 관원이 '사건의 진상'을 조목조목 따지며 일본의 무례함을 지적하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다 '전쟁 아니면 조약'을 요구하며 깽판을 놓았다. 이미 조선과 일본 사이에 오랜 왕래를 하고 있는데 따로 무슨 조약이 필요하냐는 물음에 일본은 답한다. 서양인들이 말하는 '만국공법에 따른 근대식 조약'이 새로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맺게 되니, 조선이 맺은 최초의 근대식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이었다. 조선이 어리석었기 때문이었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조선은 전통적인 양국 관계에서 통용되었던 내용을 '조약문'을 작성하고 싸인하는 것으로만 알았지만, 그 '조약문'에 함정이 있다는 것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과 일본, 양국의 관계는 선린우호 관계로 맺어진 전통적 가치를 서로 존중해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 뒷통수를 치고 '사기로 가득한 조약문서'를 내밀며 일방적인 억지를 주장할 빌미로 삼은 것은, 그간 일본이 서양의 힘에 굴복해 당해온 수법을 고스란히 조선에 되돌려 이득을 보려한 못된 심보였던 것이다.

 

  조선이 어쩌다 이런 통수에 당하게 된 것일까? 먼저, 국제정세에 눈을 감고 외면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개항을 주장하며 일찌감치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화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적어도 이런 '불평등조약'을 맺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대원군의 몫'이 가장 클 것이다. 대원군은 애초에 '자신의 몫'이 아니던 권력을 독차지하며 개혁을 시행하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내부용'이었을 뿐, '국외용'으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둔 것이 없었다. 게다가 고종이 성장하여 자연스럽게 '친정'을 하게끔 도와주어야 마땅했는데도, 권력의 욕심이 앞서 '아들'과 권력다툼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며느리'와의 갈등으로 번지고 말았으니, 나쁜 아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말았다. 이런 내부갈등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판국에 '나쁜 나라'인 일본이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을 착착 준비해 야욕을 드러냈으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전개되고 만 것이다.

 

  암튼, 조일수호조규 이후, 조선은 일본에 '수신사'를 보내 일본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자 했으나 '미흡한 준비'와 '일본의 꼼수'에 넘어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끝마치고 돌아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이런 실수를 만회할 겨를도 없이 '대원군의 역습'이 기다리고 있으니...다다음권에 계속될 것이다. 커밍순...아니, '인커밍' 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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