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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세트 - 전10권 ㅣ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5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평점 :
간만에 <삼국지>를 정독하다보니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져서 리뷰를 쓰기 곤란해졌다. 그래서 간략히 줄거리만 따라가려 했더니, 그 또한 방대하기 그지 없어졌고, 방대해졌는데도 밋밋해져만 가서, 결국은 줄거리는 싹 들어내고 온전히 '내 생각'만을 담은 리뷰를 쓰려 한다.
흔히,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들 한다. 온갖 지혜가 담긴 역사적인 책이니만큼 그럴 듯한 소리로 들리긴 하지만, '중국의 지혜'라는 것이 '권모술수, 그 위아래'도 아닌 관계로 딱히 <삼국지>를 읽지 않았다고해서 뭐라 그럴 것은 딱히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런데도 <초한지>도, <수호지>도 아닌 <삼국지>를 콕 집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어릴 적부터 들었던 의문이기도 했다.
한때, 나는 <삼국지> 따위는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학부모들에게 설파했던 적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속고 속이는 '중국인들의 권모술수'가 그득한 책이자, 영웅들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전쟁광들의 허울 좋은 소리'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아이들에게 그다지 교훈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바람을 피다 못해 불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서 '삼류 막장드라마'보다 못하니 우리 어린이들의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으니 그닥 권장할 만한 책은 아니라고 얘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좋고 나쁨'이라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알아야' 나눌 수 있는 것이고, '알아야' 좋은 것은 행하고 나쁜 것은 금할 수 있다는 진리에 다다르자 다시금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설파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아래에 <삼국지>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귀띔, <삼국지>에는 굉장히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조조, 유비, 손권 등을 비롯해서 '위촉오, 세 나라의 걸출한 인물'만 대충 추려도 어언 100여명이 훌쩍 넘어가버린다. 그래서 <삼국지>를 읽을 때 어느 '인물'을 딱 하나만 찍어서 집중적으로 읽어도 좋다. 이를 테면, '상산의 조자룡'이란 인물에 매력을 느꼈다면, 조자룡이 등장하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읽고 나머지는 휘뚜루마뚜루 넘겨버리면서 읽어도 좋다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특정 인물'에 집중해서 읽다보면, 10권이나 되는 <삼국지>도 휘리릭 열 번도 넘게 읽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유비 진영'을 중심으로도 읽어보고, '조조 진영'에 집중해서 읽어보고, 때론 '무장'을 중점적으로 읽어보다가, '책사'를 집중해서 읽어보면,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빼놓지 말아야 한 인물이 바로 '헌제'라는 황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역사적 흐름'을 꿰고 '대의와 명분, 그리고 정의'에 대한 가치관을 깨우치는 것이다. 그리고 '전제왕권시대'와 '민주주의시대'에서 올바른 통치방식이 무엇인지도 생각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연이은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던 '군웅할거의 시대'에 최고의 통치자의 무능은 백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며, 올바른 통치방식이란 무엇인지, 평화의 소중함과 어떻게 하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혼란한 시대에 '유능한 통치자'와 평화로운 시대의 '바람직한 통치자'의 모습도 함께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왜 어른들이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두 번째 귀띔, <삼국지>는 대단히 '가부장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굉장히 '남성위주의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독자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삼국지>를 완독한 '여성독자'들도 꽤나 많고, 내가 가르치는 여학생들도 <삼국지>를 애정 가득한 표정으로 읽고 있으니 그다지 문제 삼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시대적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비판적 읽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삼국지>에서 '여성영웅'은 없다. 있더라도 '미모'가 뛰어나다던가, '지혜'가 남다르다는 정도에 그친다. 당시의 여성이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가졌다는 점에서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그런데도 무능한 남자들이 풀지 못하는 일을 '여자의 몸'으로 해냈다느니, 잘난 남자들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여자의 미색'이라느니, 멀쩡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채 망가지게 만든 것이 '여자의 짧은 소견'이라느니, 여자에 대한 서술은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것' 투성이라 여학생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까 걱정스럽도 하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내용'까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허락되어야 하는 걸까?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다만, '남성들의 편파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여성인물에 대한 묘사를 걸러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덧붙여주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특히, 동양의 '음양사상'은 서로 조화를 이뤄내는 것으로 부정적인 것을 타파하고 긍정적인 것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선조들의 지혜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왜냐면 '음양'을 자칫 '선악의 개념'이나 '남존여비' 등과 같은 잘못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양사상의 핵심은 지나치거나 모자른 것에 대한 문제점을 '서로의 상충하는 기운'으로 더하거나 덜어내는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전에서는 '남성중심적인 이야기'를 펴내곤 한다. 안타깝지만 현명한 독자들이 거르고 걸러서 바르게 읽는 슬기로운 독서법을 펼쳐야 할 것이다.
세 번째 귀띔, 중국의 '후한시대'는 백성들이 '누런 두건'을 쓰고 도적질을 일삼던 혼란이 극심하던 시절이다. 이런 혼란한 시절에는 '전쟁'이 일상이 되는 아픈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삼국지>의 이야기 대부분이 '전쟁이야기'다. 이렇게 전쟁이 일상이 되면 '마초적인 사고방식'이 정당화 되기 십상이고, 폭력이 합리적이다 못해 합법적이 되고 만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짜릿함과 전율을 느낀다면 스스로 '마초'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흔히, '군대이야기'로 불리는 마초들의 사고방식의 문제점은 '허세'가 쩐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과장이 심하다는 이야기인데, 이해하기 쉽게 '~라떼는 말이야'로 퉁쳐서 이해해도 크게 상관이 없겠다. 한마디로 허세 가득한 묘사는 걸러서 읽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조자룡 헌 창 쓰듯'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의 유래가 신야에서 유비가 조조에게 쫓기는 와중에 부인과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자룡이 위험을 무릅쓰고 유비의 아들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명장면 중에 명장면이겠지만, 100만이 넘는 조조군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칼과 창, 그리고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탈주를 하기 위해선 '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진실로 수많은 군사들에 내지르는 무기들을 감당해냈다면 '갓난아이'는 품속에서 지켜냈다하더라도 어찌 말 한 마리가 버텨낼 수 있었겠냔 말이다. 그렇다면 말도 없이 '맨몸'으로 적진 한복판에서 돌파구를 찾아 사나운 짐승마냥 미친듯이 뛰어다녔다는 말이 되는데, 자기 몸에 꼭 맞게 입은 '갑옷' 속에 갓난아기보다는 컸을 유비의 아이를 넣었다는 것이 안 되고, 설령, 넣지 않고 안았든, 업었든 간에 '두 손'이 자유롭지 못했다면 적진을 돌파하지 못했을 것이니...이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자룡이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진실'이겠지만 책속에서 묘사된 것처럼 '허세' 가득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란 말이다. 그저 '위험천만한 일'을 해낸 위대한 장수의 업적을 존경스러울 정도로 드높인 '결과물'이란 말이다. 이밖에도 관우의 '오관육참', 유비의 말이 '절벽'을 단숨에 뛰어오른 일화, 제갈량의 신묘한 전략 등등 뻥에 가까운 '과장법'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과장법'이 종종 '승자의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해야만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행위'를 감추기 위해 신비하고 영험한 이야기로 교묘히 가리고서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작으로 널리 쓰인다는 점을 있지 말아야 한다. 특히, '춘추필법'처럼 실제보다 축소시키는 경향으로 서술하며 중국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이웃나라(그들이 말하는 오랑캐)에게는 불리하게 서술하는 위험성과 마찬가지로 하릴없이 '과장되게' 묘사하는 것도 위험천만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삼국지>의 명장면이라면서 아무런 '거름장치' 없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옳을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은 '일본의 대문호'가 쓴 '일본판'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원작'의 내용을 토대로 쓰되 '(일본독자의) 입맛에 맞게' 각색해서 펴냈다는 점을 떠올리면 좋겠다. 물론, '스토리'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인상적인 구절'은 더욱 흥미진진해진 장점도 있다. 허나 '원작'과는 다르게 '왜색'적인 묘사와 전개도 다른 <삼국지>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눈에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취향의 차이'일 수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책을 읽으면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기회가 되면 이 책과 더불어 '다른 작가의 책'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요시카와의 <삼국지>'는 30여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이다. 어릴 적에 읽었던 추억을 더듬는 것도 재미난 요소였지만, 한중일의 <삼국지>를 모두 읽은 지금의 내가 읽은 <삼국지>는 좀더 완숙한 흥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역시 '읽는 맛'으로는 요시카와가 최고다. 깊이를 느껴볼 새도 없이 '진격'하는 스토리가 손에서 책을 놓치 못하게 만드니 말이다. 아쉬운 점은 '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탓에 '촉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과 끝을 맺어버린다는 점이다. 그 뒤에 벌어질 '사마씨의 진나라' 이야기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오장원에 떨어진 별', 다시 말해,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서둘러 스토리를 끝맺고 말았다. 그런 까닭에 아직 <삼국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거나 '초보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좀더 '깊이'를 다룬 <삼국지>를 느끼고 싶다면 '한국 작가의 것'을 권하고,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고 싶다면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권한다. 그밖에도 '삼국지' 관련책이나 해설집 등이 즐비하게 많으니 일독을 하면서 '분석적인 접근'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하겠다.
자, 이제 <삼국지>를 읽어볼 마음이 생기게 되었나? 아직도 왜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안 읽어도 무방하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할지라도 먹어야 약효를 볼 수 있는 법이다. 다만, 그 좋은 약을 권하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조금의 관심만이라도 보였으면 좋겠다. 언제고 그 '좋은 약'이 필요할 때가 틀림없이 올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십대 후반'에 찾아왔더랬다. 기성세대들의 교묘한 꼼수가 <삼국지>의 범위에서 그닥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을 깨우치자 '내 나름의 처세술'을 <삼국지>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어렵지 않게 깨우칠 수 있다. '대륙의 꼼수'라는 것이 알고 보면 별거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국지>를 필독해야 할 이유는 '중국의 허세'를 간파해 대륙을 대한민국의 발아래 두기 위함이라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