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1 - 몽고의 영웅들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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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독서를 즐겨하기 시작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고3수험생 시절'이었다. 남들은 공부하느라 학원이다, 과외다, 정신없이 바쁘던 와중에 나는 천하태평하게 학교를 파하면 집에 가서 '만화책'과 '무협지' 삼매경에 빠졌다. 뭐 그래서 성적은 바닥을 쳤지만 어찌어찌 대학은 들어갔고, 졸업하고 취업하려 하니 때는 IMF 시절이라 '정규직'은 뽑아주지도 않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그마저도 4000: 1 이라는 그지 같은 경쟁률과 합격점수 백점 만점에 127.3점이라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통에 알바와 비정규직의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맞게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간병비'라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지나갔다. 이 시절의 나를 웃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우혁'과 '김용'의 소설들이었다. 그야말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아직도 집에 모셔서 있다.


  그 시절엔 <영웅문>라고 불렸다. 곽정과 황용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동사서독 남제북개'라는 네 명의 무림고수가 펼쳐내는 무협의 세계는 정말이지 판타스틱 그 자체였다. 고교시절에는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으로 이 책을 한권쯤 '독파'하고 난 뒤에야 공부에 탄력을 받을 정도였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면서 공부할 수 있었던 '각성제'가 바로 <영웅문 1, 2, 3부>였던 것이다. 지금에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그리고 <의천도룡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출간되었다. 그 가운데 1부에 해당하는 <사조영웅전>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사조영웅전>은 이전에 출간되었던 '해적판'과 달리 '정식라이센스'를 받아 출간한 '정본'이라고 한다. 하지만 초판이 나왔을 때만해도 오탈자를 비롯해서 파본이 엄청났었기에 그닥 '소장하고픈 책'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수정판'이 나왔으니 괜찮을 법도 하다. 그래서 꽤나 오랜 시일이 지났지만 다시금 읽고자 마음 먹은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리뷰'를 쓰지 못했으니, 다시 기억을 새롭게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써보려 한다. 암튼,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과거의 '해적판'과는 내용이 사뭇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읽었을 때 보니 <영웅문>에서는 곽정과 함께 했던 동물이 홍마, 흰수리, 그리고 칼새(?)까지 모두 세 마리였는데, <사조영웅전>에서는 홍마와 흰수리만 등장하고 작고 날쌨던 조그만 새는 등장하지 않았더랬다. 이번 '완역본'에서도 두 마리만 등장할 것 같은데, 더 달라진 것들이 있는지도 살펴보아야겠다.

  <사조삼부곡>이라 불리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는 각각의 주제를 담고 있다. 먼저 <사조영웅전>에서는 '영웅'이란 무엇인가? <신조협려>에서는 '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의천도룡기>에는 '정사(正邪)란 무엇인가?'다. 먼저 <사조영웅전>의 주제인 '영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할 것이다. <사조영웅전>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한다. 시대배경이 금에게 쫓겨 남송으로 내몰린 형국이고, 이야기의 주인공인 곽정은 초원에서 새롭게 등장한 '테무친(훗날 칭기스칸)'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다. 남송과 금, 몽골(훗날 원)의 세 나라가 각축을 벌이던 어지러운 시절이니 '난세의 영웅'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혼란한 시기에 굶주리고 핍박받던 백성들은 난세를 평정할 '영웅'을 고대하던 시절이었으니, <사조영웅전>의 주제가 '과연 '영웅'은 누구란 말이냐?'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세 나라 가운데 최종 승자는 몽골이니 '영웅'은 몽골인 중에서 골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세 나라 가운데 금과 몽골은 '오랑캐'니 진정한 영웅은 '한족출신'에서 골라야 한단 말인가?

  여기서 작가인 '김용'의 고심이 엿보인다. 오늘날의 중국은 수많은 '소수민족'을 포용(?)한 채 '한족' 중심으로 체제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한족'이 아니면 영웅대접 받기조차 버거운 실정인 것이 사실이다. 허나 '중국의 역사'는 한족만의 '단일'역사가 아니다. 역대왕조 가운데 수없이 한족이 아닌 '이민족'이 세운 왕조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그들 이민족 왕조가 끝내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왕조가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역사관이 '중화사상'을 넘어 이웃나라까지 '한족문화의 틀'안에 들어와 있었다며 자국의 역사를 한껏 부풀려 보려는 오만함마저 보일지경이라 '국제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판국에 한낱 <무협지>에 불과하지만, 자국의 역사를 시대배경으로 삼고 있기에 '객관적 서술'이 곤란했다고 작가 스스로 고충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그럼 독자의 판단에 맡기자니, '김용의 소설'이 동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한족출신 영웅'만을 고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민족의 나라였던 '금의 역사'도 중국사, '원의 역사'도 중국사인데, 어찌 '한족왕조의 영웅'만 돋보이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영웅'이 누구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겠기에 작가 나름대로 '주관'을 펼쳐냈으니, 한국의 독자 스스로 읽어가면서 그 답을 찾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작가도 '영웅'이 누구냐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니 정답은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영웅'이란 힘이 가장 쎈 사람일까? 역사적으로는 '칭기스칸'이 대륙을 통일하니 영웅이라 할만하다. 허나 무공으로 보면 '동사서독 남제북개'를 따라온 자가 없다. 이 네명은 그 유명한 '화산논검'에서도 실력을 겨루었으나 결판을 내진 못했더랬다. 허나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일 수는 없기에 강호의 무림고수들은 싸우고 또 싸울 뿐이다. 그러나 무림고수들도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기에 '내공'과 '외공', 그리고 권모술수에 능한 '지략'과 음험하기 짝이 없는 '독극물'까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자가 승리하는 강호의 세계에서 누가 가장 힘이 쎄다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때로는 '가위바위보' 대결처럼 승패가 엇갈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경우엔 누구를 승자로 삼을 것인지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영웅을 찾는 것도 찾는 것이지만 '기준'을 세우는 것이 가장 곤란하다.

  그렇다고 '영웅'으로 뽑는 기준을 도덕성으로 가를 수도 없다. 평범한 진리로만 따지면야 진정한 영웅은 가장 선한 영웅을 뽑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통일왕조를 세운 이를 영웅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런 영웅은 대부분 '전쟁영웅'이 대부분이고, 전쟁영웅은 거의 모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학살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사조영웅전> 말미에서도 전진교의 도사를 초빙해서 가르침을 얻으려는 칭기스칸이 전쟁중에 학살을 많이 하면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도사들은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하고 말았다. 물론 무능하고 포악한 군주에게 핍박을 당하는 불쌍한 백성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군대를 일으키고 정벌한 지도자는 영웅이라 불릴만 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정의로운 전쟁(침략)'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그러니 도덕성으로 기준을 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진정한 영웅 찾기 어려운 와중에 <사조영웅전>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남송 강남 우가촌에 곽소천과 양철심이란 의형제가 살고 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이라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을 정도인데, 이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 첫번째 사람은 전진칠자 중 한 사람인 '장진자 구처기'다. 구처기는 무림고수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애국심을 가졌기에 '금나라 사람'과 그들을 돕는 '역적' 무리를 대단히 싫어한다. 그가 이 한적한 마을로 방문한 이유도 '역적'을 처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금군이 구처기를 뒤쫓아 왔다가 그만 곽소천과 양철심이란 애국자가 애꿎은 희생을 당하고 만다. 구처기는 일면식도 없었던 자신을 돕다가 도리어 해를 당한 두 애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이 둘의 후손을 살려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이런 복잡한 사연으로 구처기는 '단천덕'이란 두 영웅을 죽인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뒤를 쫓았고, 이 과정중에 '강남칠괴'와 단단히 큰 오해를 사서 강남 취선루라는 곳에서 엄청난 무공대결을 펼쳤다가 엉뚱한 희생자를 낳게 되고, 서로 오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대결'을 약속하게 된다. 그 대결이란 다름 아닌 억울하게 숨진 '두 애국자의 후손'을 각각 찾아서 18년 뒤에 다시 이곳 '강남 취선루'에서 두 제자의 대결로 승부를 가리자는 것이었다. 큰 대결을 치룬 직후라 서로 피투성이가 되었고, 큰 오해를 사서 양쪽 모두 망신살이 뻗쳤으니, 18년 뒤에 승부를 다시 가리자는 말에 솔깃했던 것이다. 더구나 '애국자'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니 무림고수의 명예에도 도움이 되는 아주 좋은 승부라 여기자 '구처기'와 '강남칠괴'는 18년 뒤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두 애국자의 후손을 찾아 떠나게 된다. 여기서 영웅의 첫 번째 조건인 '나라사랑'이다. 흔히 말하는 '우국충정'이 영웅의 조건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한족의 관점'에서 영웅의 조건을 이야기하였다.

  한편, 두 애국자(영웅)의 후손은 곽정과 양강이다. 곽소천과 양철심 두 의형제가 한시에 두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정강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곽정, 양강'이라고 이름 짓자고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일대 혼란이 벌어지면서 두 명의 아내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곽소천의 아내 이평은 저 먼 북쪽의 초원에서 '곽정'을 낳았고, 양철심의 아내 포석약은 동북의 금나라 황실 안에서 '양강'을 낳게 되었다. 1권에서는 곽정의 어린시절만 나오고, 2권에서야 양강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암튼, 곽정은 몽골의 초원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리고 여섯살 무렵에 강남칠괴와 만나게 된다. 그렇게 곽정은 일곱명의 사부와 만나게 되어 무공을 익히게 된다. 12년 뒤에 있을 대결을 위해서 말이다.

  또다시 한편, 양철심의 아내 포석약을 탐한 금나라 여섯번째 황자 완안홍열은 곽소천과 양철심을 죽인 원흉이었다. 비록 그의 두손으로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미녀 포석약을 얻기 위해서 몰래 사주했으니 불구대천 원수임에 틀림없다. 허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포석약은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금나라 황궁에 머물게 된다. 그런 개인적인 일을 마무리한 완안홍열은 주변국을 정탐할 목적으로 몽골의 초원으로 행차한다. 그곳에서 완안홍열은 몽골 부족의 추장 '테무친(훗날 칭기스칸)'과 조우한다. 그리고 금나라의 가장 큰 적은 남송이 아니라 몽골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몽골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웃한 금나라가 송나라를 격파하고 크게 위세 떨치자 금나라에 사대를 하며 속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테무친'을 비롯해서 몇몇 부족들은 주변 부족들보다 훨씬 탄탄한 세를 과시할 수 있었다. 아직 금나라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정예병'이라고 할만한 강한 기병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몽골인들은 서로 '신의'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길만큼 순박하고 착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거짓을 품거나 약속을 어기면 부족끼리 똘똘 뭉쳐서 '부정한 짓'을 한 무리를 무너뜨리는 소수민족의 결기를 보여주었다. 과거의 여진족 시절엔 금나라도 그러한 '탄탄함'을 보였지만, 대륙을 정복한 뒤에 나태하고 나약해진 '금나라 군대'는 겉모습만 웅대하고 거창할 뿐, 내실은 조금도 몽골의 전사보다 허약할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완안홍열은 간파했더랬다. 이런 강건한 몽골의 기운을 고스란히 머금은 순박한 '한족 소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곽정'이다.

  여기서 영웅의 두 번째 조건이 나타난다. 영웅은 '민족'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차피 주인공은 '한족'이다. 허나 금나라에도, 몽골에도 '영웅의 기질'을 타고난 인물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오롯이 밝히고 있다. 심지어 '역사속 인물'뿐 아니라 소설속' 가공의 인물'일지라도 가리지 않았다. 아직 초반이라 무림고수는 '전진교'와 '강남칠괴'만이 등장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무림인들 중에서도 '영웅의 기질'을 가진 이들이 속속 보인다. 그리고 영웅의 반대쪽 편에 서있는 '악당'도 등장했다. 바로 진현풍과 매초풍이라는 '흑풍쌍살'이라는 악당이다. 이들은 사실 동해 도화도주 황약사(동사)의 제자들이었으나 괴팍한 스승 덕분에 문파에서 파문을 당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이 스승님 몰래 사랑을 나누고, 그 죄를 물을까 무서워 황약사가 보관중이던 <구음진경> '하권'을 몰래 빼돌려 섬에서 도망쳐 나왔기 때문이다. 그 후 그 둘은 스승님이 자신들을 찾을까 무서워 몰래 숨어져 훔쳐온 비급을 연마하며 지냈으나, 워낙 고도의 절기가 담긴 '무공비급'인지라 함부로 연마하지 못하고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이라는 두 가지 무공만 간신히 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무공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쎘다. 암튼, <무협지>라서 무공 얘기로 새고 말았지만, 영웅은 특정 민족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공평한(?) 조건을 작가는 내세웠다. 심지어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도 않는다.

  어쨌든, 1권의 내용은 18년 뒤의 대결을 위해서 강남칠괴에게서 무공을 배운 곽정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마무리 하였다. 곽정과 평생을 함께 할 '홍마'와 '흰독수리'도 순탄하게 등장했고 말이다. 아직 1권에서는 그밖의 달라진 내용이 크게 없었다. 다음 2권에서는 곽정과 황용의 만남과 함께 '동사서독', 그리고 '북개'가 등장할 것이다. 2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파란만장한 무협의 세계로 빠져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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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진 날 저학년 읽기대장
고정욱 지음, 이예숙 그림 / 한솔수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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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없으면 아이가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 큰 어른일지라도 살기 힘들어진다. 어디 그뿐일까. 핵가족화된 현대인들은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사회가 존속할 수 없게 되고 국가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전세계를 다스리는 건 '남성 지도자들'이 대다수이지만, 그들도 '엄마'가 사라진다면 국가를 운영할 수 없게 될 것이 틀림없다. 왜냐면 '엄마'가 사라지면 한 가정이 황폐해지고, 가정이 황폐해지면, 사회가 위태롭게 되고, 사회가 위태로우면 국가는 결코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엄마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국가가 존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잔소리'는 듣기 싫다.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새로운 잔소리를 한다면 들어줄 법도 한데, 그러면 애초부터 '잔소리'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은 날이면 날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또 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하루라도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푸념이 들릴 만도 하다. 실제로 '엄마가 외출'이라도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물론 외출에서 돌아와서는 '폭풍 잔소리'가 시작될 게 뻔하지만, 아이도, 아빠도, 잠시잠깐이나마 엄마가 사라지는 것을 그렇게 반길 수가 없다.

  그런데 간절한 소원대로 엄마가 사라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 재미난 상상을 한 책이 있다. <엄마가 사라진 날>이라는 이야기책이다. 이 책에선 전세계의 엄마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아니 , 정확히 말하자면 '웃음 바이러스'라는 병에 걸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던 것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된 엄마들'을 격리병동이나 요양원에 가둬버리고 국가의 철저한 감독 아래 갇혀 지내게 된다. 당연히 '가족면회'도 금지 당했다. 일단은 '아이를 낳은 여성(엄마)'만이 세계적인 감염이 된다고 알려졌지만, 언제 어느 순간에 모든 사람에게 폭발적인 감염을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도 '웃음 바이러스'의 감염원인을 찾으러 백방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증세가 더욱 심해지기만 할 뿐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가 없는 집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된다. 청소며, 빨래며, 식사까지 엄마의 손길이 사라진 집구석은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아빠는 '회삿일'도 바쁜데 '집안일'에 '아이돌봄'까지 하느라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아직 아이가 어린 남편들은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아이를 안고 업고 '출근'을 하기에 이른다. 전국 곳곳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원장과 보모들의 태반이 '병원'에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여성인력'을 많이 쓰는 직장이나 가게는 속속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일손이 부족해진 공장도 가동을 멈추고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이젠 '국가시스템'까지 망가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물론 이야기는 기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엄마'가 되돌아왔다. 그런데 엄마가 없는 '빈자리'가 이렇게나 크다는 것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그간 엄마들은 스스로를 '헌신'하고 '희생'했으면서 왜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않았던 걸까? 아니다. 엄마들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알고도 '모른체' 했고, 듣고도 '못들은체'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잔소리'를 더 크게, 더 자주 했었는지도 모른다. 해도해도 고쳐지질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제라도 '엄마의 잔소리'를 달콤한 초콜릿처럼 들어야겠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기에 앞서 '알아서' 척척 해야 겠다. 그래도 엄마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을 거다. 엄마가 '하는 일'은 너무 많고 너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해도해도 끝이 나지 않는 것이 전세계 엄마들이 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면 온세계가 아프게 된다. 제발 엄마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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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사라진 날 저학년 읽기대장
고정욱 지음, 허구 그림 / 한솔수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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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의 승패를 보면서 '학교'가 사라질 거라는 상상을 했더랬다. 왜냐면 단편적인 지식은 더는 '암기'할 필요가 없어지고 '검색'만 하면 누구나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대'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인공지능' 덕분에 힘든 노동을 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단순 노동'의 경우에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24시간 쉼없이 일을 '대신'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공지능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만 감독하면 그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인간이 단순 암기의 고통과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면 마냥 놀고 쉬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직업'을 갖는 까닭이 바로 '임금'을 얻기 위해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는 인간이 필요치 않게 되면 '노는 인간'은 임금을 한 푼도 벌 수 없게 되고, 그러면 '경제'의 주체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공장에서 물건이 만들어져도 그 물건을 살 수 있는 '소비자'도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몇몇 소수만 풍족하게 살아가고 나머지는 살아갈 쓸모도 없고, 의욕도 잃게 되어 끝내 버림받고 말 것이다. 더구나 멀쩡한 사람도 버림받을 지경에 이르면, 장애를 갖고 있거나, 병들거나 늙은 '사회적 약자'들은 아예 폐기처분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발달'을 멈추거나 늦추자는 주장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에서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학교'가 사라지고, 배움을 잊은 사람들이 오직 '인공지능의 명령'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초등 저학년을 위한 어린이책이므로 그보다는 조금 덜 심오하게 '학교가 사라져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지만, '학교'가 사라지고 난 뒤의 슬픈 현실을 조금이나마 미리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왜냐면 학교를 대신해서 집에서 '인공지능이 짜준 스케쥴' 대로만 따라야 하는 일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의 첫번째 의무'는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인 까닭에 집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막으며 '현관문'을 잠궈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인간을 위한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조차 감시하고 짜여진 계획표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끔찍한 감옥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런 갑갑하고 끔찍한 곳에서 아이들은 하나둘 탈출해서 옛날 학교가 있던 자리의 '지하창고'로 모이게 된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학교가 필요없는 곳이란 '판단'을 내리게 되자 인공지능은 '학교'를 철거하고 그 위에 '공장'을 만들어서 어른들의 직장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도 즐겁진 않다. 그 공장에서도 '인공지능의 감시(?)'는 물 샐 틈도 없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하창고에 '또 다른 교실'을 만들어서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학교를 만들자 아이들은 좋아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은 하나둘 사라지는 아이들이 늘어나자 '아이들이 모여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고, 그곳에 경찰을 투입해서 어린이들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또다시 '감옥'으로 되돌아오게 된 아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깐따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깐따야'는 누규?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책이 사라지고, 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들은 왜 즐거워하는 걸까? 작가 고정욱은 책도 좋아하고, 학교도 좋아하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사라져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는 이야기를 전개했다. 그렇지만 현실의 어린이들도 그럴까? 십중팔구 아닐 것이다. 어른들이 책과 학교가 소중하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그것들의 진정한 즐거움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른들도 책을 안 읽고, 학교 가기 싫어한다. 그런데도 어린이들에겐 그렇게나 싫을 것을 '강요'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이들에게 '왜' 책읽기가 즐거운 일이고, 학교에 가서 '어떻게' 해야 재미난 곳인지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책과 학교'는 모르는 것을 알고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니 몰랐던 것을 '알아내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면 된다. 그런데 그런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가르쳐준 것을 무조건 '암기'시키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치루고 평가를 내린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고, 상을 주고 벌을 내린다. 옛날처럼 모른다고 때리진 않지만 안다고 상을 줘도 그 '즐거움'이 오래가지 않는 것이 문제다. 또한 '배운 것'은 적절하게 써먹어야 배움의 즐거움이 새록새록 솟아날텐데, 써먹기는커녕 외우고, 또 외우고, 또또 외우고, 장장 12년 동안 외우기만 시켜놓고 '수능(사고력)시험'을 치르고, '취직시험'을 또 치른다. 그렇게 어렵사리 회사에 취직을 하면, 그동안 배운 것은 써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고서는 또다시 새롭게 배워야 한다. 당췌 왜 외웠는지도 모를 지식만 잔뜩 머리에 남을 뿐이다. 이러니 '책과 학교'가 재미나 즐거움이 가득할리 없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좀 나아질까? 우선, 단순암기 평가는 무의미하므로 '기존의 지식'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의성', 이것과 저것을 어떻게 해서 뭐라도 만들어내는 '융합성'을 평가의 새로운 잣대로 삼아야 하겠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능력'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기초지식'을 배우는 학교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적어도 '초등학교'까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교육현장의 모습은 많이 바뀔지라도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생활하는 '학교'는 분명히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학교에는 기본적으로 '책'을 교과서로 삼을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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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라진 날 저학년 읽기대장
고정욱 지음, 서현 그림 / 한솔수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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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들에겐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 제격이다. 그래서 '교훈'보다는 '재미'를 앞세운 책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책시장'은..특히, '어린이책시장'은 오직 재미만을 추구한 책이 많이 없다. 거의 대부분이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미성숙한 인격체'라는 편견이 가득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 나라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길' 좋아해서 그런 것일까? 물론 어린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비교육적인 요소들'은 빼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건전'해야 하고 '도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외국의 '어린이책' 가운데에는 '재미'를 추구하다보니 위험천만한 장난질을 저지르기도 하고, 귀신과 괴물 등 상상력의 '도'를 넘어서기도 하며, 어린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력'을 다룬 내용도 심심찮게 보이는데, 그런 것들은 애초에 '가져오질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책이 사라진 날>은 재미보다는 '교훈'적인 내용에 치중하여서 좀 안타까운 어린이책이다. 그래도 '비교육적인 요소'는 쏙 빼놓았기에 비교적 '건전한 도서'라고 볼 수 있다. 줄거리도 너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저학년 어린이'도 어렵지 않게 책을 읽고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더라도 아무리 저학년을 대상으로 삼았더래도 '너무 뻔한 내용'인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펼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격이 될테니, 조금쯤은 심오한 철학이야기를 담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줄거리는 느닷없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시작하지만, 그 때문에 세상의 모든 책들을 빼앗겨 버린다는 '설정'은 탁월했다. 그래서 온세계의 아이들은 외계인 덕분에 하루종일 놀기만 하면 된다. 학교를 갈 필요도 없고,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외계인의 명령을 어기고 '책'을 읽다가 들키는 날엔 외계인 광선총에 맞아 '미생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그저 놀기만 하면 된다.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

  그런데 '놀기'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두 명의 어린이가 있다. 그 어린이들은 세종대왕처럼 책을 다 빼앗긴 뒤에 병풍 뒤에 남았던 '책 한 권'을 몹시 바랐다. 그래서 외계인들이 책을 뺏아다가 쌓아둔 '책산'을 향해 몰래 잠입해 갔다. 그리고 감시망이 소홀한 틈을 타서 '책 한 권씩' 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마다 몰래몰래 책을 읽다가 '책산'의 내부를 마치 피라미드 속의 미로처럼 파고 들어가 손전등에 의지해 책을 무지하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엔 외계인들에게 발각이 되고 두 명의 어린이는 '미생물'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두 어린이는 책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외계인들도 책속의 '지식' 덕분에 고향별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면서 끝을 맺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책속에 무슨 비밀이 담겨 있었길래 지구인과 외계인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게 된 걸까?

  아이들은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좋아하던 시절이 지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좀 더 어려운 책', '좀 더 글밥이 많은 책'으로 확장해가며 읽으려 들지 않는다. 왜냐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머리가 커지게 되면 '책 읽으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억지로 읽기는 하지만, 결국엔 '만화책'과 '게임'에 푹 빠지고 만다. 무언가 '징검다리'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림책과 동화책은 정말 재밌다. 하지만 10살(초등3학년쯤)이 넘어가면 점점 '글밥'이 많은 책을 읽으라는 강요가 시작되는데, 이때 그 많은 글밥이 '무슨 내용'이 담겨 있고,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책읽기'는 엄청난 스트레스 유발 원인이 되고 만다. 그래서 책읽기를 할 때는 '선생님'과 '학부모'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렇게 초등어린이들에게 적절한 '독서교육'을 시키기 위해선 선생님도 책을 읽어야 하고, 학부모님들도 부지런히 책을 읽어줘야 한다. 그래야 '같은 책'을 읽고 공감하기도 하고, 토론(이야기)을 나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절대로 '교훈'을 억지로 주입하려 들거나, '정답'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딴에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책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상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들의 표현에 '맞장구'를 쳐주기 바란다. 어른들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어쩌구~", "현실적으로 저쩌구~"라는 토씨는 절대로 하지 말길 바란다. 그저 아이들의 상상력에 함께 뛰어들고, 흠뻑 젖어들며 재미난 이야기에 빠져들길 바란다.

  물론 '시간'을 정해놓는 것은 좋다. 10분, 30분 동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면 '일상'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서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구분이 되지 않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상상'보다는 '현실'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고, 그 경계에 '문'을 만들어서 언제든 스스로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놀이'를 할 때나 '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 정하기'는 그래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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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1 : 세계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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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마록>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세계편'일 것이다.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퇴마사'들의 캐릭터도 좀 더 분명해졌고, '블랙서클'이라는 대립적인 세력이 등장해서 '퇴마사'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여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좀비나 흡혈귀, 늑대인간 등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서양귀신'들이 총출동을 하니 더욱 즐거울 수밖에 없다. 글쓴이가 밝히길 '들녘본'과는 다르게 '엘릭시르본'에서는 후반부의 이야기를 새로 썼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퇴마록 세계편 1>에는 좀비가 등장하는 '비어 있는 관', 유체이탈 능력자가 등장하는 '그 남자는 매일 밤 나를 부른다', 그리고 세계편에서 가장 화려한 연출을 장식하는 '세크메트의 분노'가 실려 있다. '비어 있는 관'에서 처음 '퇴마사'들은 '블랙서클'과 만나게 된다. 이들을 '블랙서클'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아직 밝혀지지 않지만, 그 멤버에 속한 인물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 '검은 회오리'가 발생하면서 영혼도 남기지 않고 빨아들이고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랙서클'에 관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서 미스테리하다. 1편에서는 좀비를 다루는 호웅간이 등장하는데, 요즘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좀비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원래 '부두교'에서 조종하는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약물에 취해서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얼마나 죽은 듯 싶은지 의사조차 '사망선고'를 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호웅간에 의해 좀비가 된 사람은 '생체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일을 해도 전혀 피곤해하지 않는 노동자로 부려 먹는다고 한다. 아직 살아있기에 '음식'도 먹고, '잠'도 자지만,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하고, 오직 '주술사'의 명령에만 복종하기 때문에 힘든 노동에 부려먹기 딱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죽은 시체'를 되살려내서 부려먹는 악질적인 호웅간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죽은 시체'를 되살려낸 경우엔 살점이 썩어들어가고 뼈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럼에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죽은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좀비의 경우에는 '소금'을 아주 미량이라도 섭취하게 되면 주술에서 풀려나 정신을 되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부두교가 활발한 '아이티'에서는 정신적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소금을 일부러 먹이는 관습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암튼, '퇴마사'들은 이번 편에서 좀비들과 대환장 결투를 벌이며 '블랙서클'이란 조직에 대해 처음 인지하게 되고, 이렇게 거대한 검은 세력과 맞서기 위해서 '검사출신'인 백호라는 인물과 조우하게 된다. 이 인물은 향후 '말세편'까지 퇴마사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 엄청난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뒤이은 '그 남자는 매일 밤 나를 부른다'에서는 유체이탈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등장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바로 '언어학의 천재, 서연희'가 퇴마사들과 합류하기 때문이다. 퇴마사들이 세계 여행(?)을 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캐릭터인데, '12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천재지만 퇴마사들과는 달리 '영적 능력'이 전혀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하지만 아무런 영능력이 없지만, 두 가지 특기를 발휘할 수 있어서 퇴마사들의 '짐'이 되지는 않는다. 하나는 '심연의 눈'이라는 능력이다. 특히, 블랙서클의 일원에게는 톡톡히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바로 '연희의 눈'과 마주치게 되면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려 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승희의 투시력(독심술,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연희의 심연의 눈이 활약을 하게 되면서 당당하게 '퇴마사들과 함께 하는 동료'가 된다. 다른 하나는 '염체가 담긴 낡은 구리십자가'다. 염체는 '사념(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소설속이 아닌 '실제'로도 가능한 능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념이 가득한 '생각'을 담아 물체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고, 살아있는 생명체와 똑같은 존재를 만들어서 조종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연희가 갖고 있는 구리십자가에 바로 그 '염체'가 담긴 것이고, 그 염체가 '연희의 수호신' 역할을 하며 위기 때마다 도움을 주곤 한다. 그런데 그 '염체'는 바로 블랙서클의 일원이었던 어떤 남자가 전해준 것이다. 처음 등장했을 땐 악당으로 등장했으나 연희의 '심연의 눈'과 마주한 다음에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선한 마음(좋은 추억)'만을 담은 염체를 만들어 자신의 유일한 유품이었던 '닳아빠진 구리십자가'에 담아서 연희에게 '마음의 정표'로 전해준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인 '세크메트의 분노'에서는 다시 한 번 퇴마사들이 총출동을 하며 '고대 이집트 유물'을 둘러싼 비밀을 풀어내고, 깨어나면 인간에 대한 증오가 분노로 온 나라를 피바다로 만들어버린다는 '세크메트'를 깨우려는 블랙서클과 이를 막으려는 퇴마사들 간에 엄청난 대결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대결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세크메트의 심장'에서 나온 '세크메트의 눈'이란 보석이다. 이 빨간 보석은 길쭉한 반달모양인데 길쭉한 방향으로 둘로 쪼개져 있다. 그렇게 나뉜 두 조각을 하나씩 서로 다른 사람이 손에 쥐고 있으면, '서로의 생각'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를 테면, '텔레파시' 같은 능력인데, '정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아무 조건도 없이 거리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서로 말없이 생각만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도구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세크메트의 눈'은 승희의 능력을 통하게 되면 '승희의 투시력'으로 제3자의 생각까지 함께 엿볼 수 있게 되며, 연희의 능력을 통하면 '천재적인 언어해독력'으로 별다른 통역 없이도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준후의 능력을 통하면 준후가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감각'으로 퇴마사들을 노리는, 혹은 퇴마사의 도움이 필요한 '영적 존재'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편이 왜 중요한 것인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크메트의 눈'만 있으면 그 어떤 제약과 구속을 받지 않고 '세계관'을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퇴마록 세계편>은 이렇게 퇴마사들의 특징을 더욱 돋보여주는 '고대유물'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런 유물의 등장은 '세계편' 뿐만 아니라 '혼세편'과 '말세편'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도구로 쓰일 뿐 아니라, 퇴마사들의 '능력치'를 더욱 높여주는 용도로도 쓰이게 되니 꼭 알아두면 유용하다.

  자, 이제 퇴마사들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나아간다. '세크메트의 분노'를 해결한 퇴마사들은 국내를 넘어 세계 저편에서 울부짖는 억울한 영혼들의 아우성을 달래주러 떠난다. 그들이 바라는 건 돈도, 명성도 아니다. 어지러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이 끝닿는 데까지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니 대단한 것 같지만, 뚱뚱한 신부 하나, 조폭 건달처럼 생긴 깍뚜기 하나, 불과 번개를 다루는 한복 입은 꼬맹이 하나, 그리고 앙칼진 눈매에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날라리 아가씨 일 뿐이다. 이렇게 '이세상'에서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지만 '저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네 사람이다. 이들이 바다 건너 섬나라 '영국'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 편을 기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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