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고려사 3 - 무신정권과 반란의 시대 박시백의 고려사 3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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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에서 집중조명해야 할 시대는 어디일까? 개인적으로는 '무신정변'으로 본다. 학창시절에는 '무신의 난'으로 배웠는데, 어느샌가 '정변'이란 명칭으로 불리면서 한층 격을 높여 바라보게 된 것도 한몫 했다. 과연 '무신정변'은 고려시대에 무엇이었을까?

 

  고려의 지배층은 '호족'으로 시작해서 '문벌귀족'으로 성장한 뒤에 '무신정변 이후' 문벌귀족이 몰락하고 '무신'들이 권력을 차지하더니 '몽골항쟁 이후' 원간섭기에 접어들면서 원나라의 뒷배로 성장한 '권문세족'이 집권을 했다가 고려말에는 '신진사대부'가 등장해서 조선개국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를 좀더 들여다보면 집권층을 '문신과 무신'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호족(무신)-문벌귀족(문신)-무인정권(무신)-권문세족(문신)-신진사대부(문신)으로 도식화 해보면 무신보다 문신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신이 집권을 하던 시대는 '호족'과 '무인정권' 때 뿐인데, 호족들도 초기에만 무신이었을 뿐, 광종의 과거제 실시 이후에는 호족들도 과거급제를 해야 대접을 받을 수 있었기에 빠르게 '문신'으로 변신하였고, 이후 문신으로 완전탈바꿈한 '가문'끼리 서로 혼인을 하며 '문벌귀족화'에 성공하였기에 호족들도 마냥 '무신집안'은 아닌 셈이다. 이렇게 고려는 '문신'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고, 문신이 집권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무신정변'이 일어나면서 문신들은 태반이 제거되고 말았다. 고려의 의종이 조선의 연산군처럼 사치와 향락으로 일관하며 허구헌날 잔치와 사냥을 벌이는 통에 '무신'들은 임금을 비롯해서 환관과 내시, 문신, 그리고 기생들까지 호위하기 바빴던 것이다. 말그대로 날이 좋아도 '호위', 날이 좋지 않아도 '호위', 날이 적당해도 '호위'만 하느라 잔치는커녕 놀이에도 끼지 못해 임금의 '관심'은커녕 날마다 퍼주는 '하사품'조차 챙기지 못하니 불만이 커져갈 뿐이었다. 그러다 하급 문신이 대장군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벌어지자 무신들은 일제히 칼을 들어 문신들을 도륙하는 일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집권층이던 문신들을 깡그리 제거한 뒤에 무신들이 국정을 운영하려하니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일찍이 '문신'들이 도맡아서 하던 일을 어깨너머로 배웠다한들 '정치의 생리'조차 이해했을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신들이 나서면 무신들은 어김없이 단칼에 베어 없애버리고 말았다. 무신들이 단단히 화가 났고 불만이 오래도록 쌓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신집권층'은 이의방을 필두로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으로 이어지다가 최충헌 대에 이르러 '최씨무인정권(60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몽골항쟁을 하며 고려의 자존심(?)을 한껏 살리기는 하지만 끝내 '개경환도'와 함께 무인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4권에서 다룰 예정이니 잠시 뒤로 미루고, 3권에서는 '무인정권'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니 다시 집중하도록 한다.

 

  암튼, 고려시대에 무인정권은 '신분의 벽'을 허무는 시대였다. 무신정변의 주역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반란의 주역들'도 노비, 천민, 농민 등 신분이 낮은 계층에서 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는 외침이 여기저기에서 호응을 얻어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기 위해 수많은 민중들이 꿈틀꿈틀 대던 활기찬 시절이었던 것이다. 물론 왕조국가에서 '신분상승의 기회'라는 것은 대혼란을 뜻하기에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겐 너무나도 고통스런 시절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난한 백성들은 태평성대에도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은 떵떵거리며 잘 사는 시절일수록 가난한데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타고난 이들에겐 '비극'일 뿐이니 말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단 한 방에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부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는 '혼란기'가 반가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무인정권시대'에는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임에 분명했다. 물론 과거에도 '신분상승의 기회'가 되었던 혼란기가 있기는 했다. 삼국시대에 숱한 '전쟁'이 그랬고, 후삼국시대에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기도 했다. 허나 그시절에는 '골품제'라는 한계가 유능한 실력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인정받기 힘들었다. '장보고'가 그랬고, '최치원'이 그랬다. 후삼국시절에 '견훤'과 '궁예', 그리고 '왕건' 등이 호족이란 신분으로 임금의 자리까지 올라간 적이 있긴 했지만, 그들도 어느 정도 신분상의 우위를 차지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까지 결코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인정권시대'에는 그야말로 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도 '능력'을 인정받으면 제 실력껏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었다고 한들 그건 중요하지 않은 시대였다. 왜냐면 '대혼란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우리 민족이 맞이한 '최초'의 계층사다리가 무한정 제공되었던 셈이다.

 

  허나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은 못된다. 왜냐면 그렇게 애써 '신분의 벽'을 허물었지만, 그로 인해 고려사회에 바람직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닥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계층사다리'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빈부격차가 너무나도 심각해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극에 달해 흙수저는 결코 금수저가 될 수 없는 비극이 펼쳐진 암울한 현실을 살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사회는 끝내 비극적인 혼란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고려시대 불만과 울분을 터뜨릴 수 없었던 무신들이 한순간에 폭발해서 모든 것을 때려부수던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이런 비극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선 천지가 뒤바뀌는 개혁과 피를 부르는 혁명 뒤에 찾아온 '신분의 벽'이 허물어지고 어렵게 되찾은 '계층사다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써먹어야만 할 것이다.

 

  그럴 때 소위 '흙수저들'이 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썩어 문드러진 '고위층'을 제거한 뒤에도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부정부패를 일삼고 '저들만의 잔치'를 벌이던 고위층을 싹다 제거한 뒤에도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지 않게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아야 한다. 아니 애초에 비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채우고, 공정하고 안정하게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만 한다. 부패한 대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부도처리되어 무너진다한들 나라경제가 휘청거릴 걱정이 없게 경제적 건전성도 확보해두어야만 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싶겠지만, 어느 시대에나 '유능한 인재'는 차고도 넘치게 많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관건은 그런 인재를 잘 활용할 시스템이 없을까봐 걱정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무능한 정권'은 많았어도 '유능한 인재'가 부족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절로 통할 정도로 우리는 역사속에서 수많은 영웅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인재와 영웅들의 '인성'이 중요할 뿐이다. 뛰어난 능력을 갖췄는데도 '쓰레기 인성'을 갖고 있다면 가차없이 폐기처분하면 그뿐이다. 두 번 다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매장해버리는 건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면 된다.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입만 열면 시궁창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족속들을 그냥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우리가 '무신정변'을 다시금 살펴볼 적절한 시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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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2 - 전쟁과 외교, 작지만 강한 고려 박시백의 고려사 2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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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고려는 어떤 나라인가? 고구려 때만큼 대륙을 호령하지도 못하고 숱한 외적의 침략을 받거나 '원간섭기'에는 식민지로 전락한 적도 있었으며 홍건적과 왜구 등의 노략질에 변변한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다 500여년간 내우외환에만 시달리다 '조선'에게 나라를 내어준 별볼일 없는 나라로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박시백의 고려사>를 읽다보면 '뜻밖의 고려'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고려가 그저 문약하기만 한 나라로 으레 짐작했다가 전혀 그렇지 않고 대단히 강건하며 대외적으로 결코 무시 당하는 나라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주변국들이 고려를 '상국'으로 대접하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남의편'이라도 되지 못하도록 지극정성으로 고려를 대우하는 등 실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나라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중국쪽의 침략을 받았더랬다. 거란(훗날 요)의 세 차례의 침략이 그랬고, 고려의 동북면에선 여진족(훗날 금)의 침략이 날로 거세졌고, 끝내 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족(훗날 원)이 고려의 국경을 넘보더니 개경까지 집어삼키고 지독한 '원간섭기'를 겪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고려말엔 혼란한 정세를 틈타 '홍건적와 왜구'라는 도적떼들이 전쟁을 방불케하는 엄청난 규모로 고려를 괴롭혔지만, 고려는 이 모든 '외세의 침략'에도 멸망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며 때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시키는 저력을 뽐내며 500여 년간을 이어온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왕조가 200여 년을 넘기기 힘든데도 '고려 500년 역사'를 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려'를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두 번째 책으로 이 책, <박시백의 고려사 2>은 '거란과의 전쟁'에서부터 '묘청의 난'까지 다루었다. 역사책 한 권 분량치고는 꽤나 빠른 진행인데, 이 책을 '전 5권'으로 마무리하겠다고 저자가 밝혔으니 한 권당 '1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셈이다. 비록 세세하게 개별적 사건을 깊이 다루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박시백만의 안목'이 담겨 있기에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바로 '날카로운 비평과 균형잡힌 관점'말이다. 이 책에서 주목해서 봄직한 대목은 세 가지다. 하나는 '거란의 침략'에 대처하는 고려의 자세이고, 둘은 '여진의 성장'과 이에 대한 고려의 대응, 그리고 마지막은 '이자겸'과 '묘청'이 일으킨 두 차례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이다.

 

  익히 알다시피 고려는 태조 때부터 '북진정책'을 펼쳐 영토확장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하지만 고려의 북방에 '거대한 세력'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고려는 '북진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세력 가운데 첫 번째는 바로 '거란'이었다. 고려가 아직 후삼국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던 때에 북쪽에서는 발해가 든든히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며 버티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거란이 빠르게 성장을 하면서 송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자 발해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더랬는데, 발해가 터무니없게도 멸망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거란이 세력을 확장하며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더니 송나라와도 본격적인 땅따먹기(?)를 시동하였다. 이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로서는 거대해진 거란과 맞붙어 상대하기에 곤란한 지경에 이른 셈이다.

 

  이런 형국에 거란은 대대적인 송나라와의 전쟁을 치루기 이전에 '고려'에 본때를 보여주려 '1차 침입'을 했더랬다. 송나라 깊숙이(?) 공격을 했다가 송과 고려가 연합을 해서 거란을 협공이라도 하게된다면 곤란한 처지에 빠질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에 고려에서는 '서희'를 앞세워 강화회담을 열었는데, 그 결과 거란군의 퇴각과 함께 '강동 6주땅'을 고려에 넘겨주게 되었다. 고려의 염원이었던 '북진정책'이 서희의 말 한마디로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는 '고려의 역량'이 강력하지 않았더라면 성사될 수 없는 성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거란의 첫 침입에서 '고려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으며 고려를 정복하기 위해선 거란도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거란은 '강동 6주'를 고려에 내어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2차 침입'을 해서 개경까지 함락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쳐들어갔지만, 고려의 반격은 곳곳에서 완강했고, 끈질기게 이어졌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도 못하고 고려의 영토 깊숙이 쳐들어간 거란은 뒤늦게 '안전한 퇴각'을 약속받고 개경을 내어주고 되돌아섰지만, 돌아가는 길은 황천길이었고, 퇴각 중에도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져 거란으로 살아 돌아간 병사는 고작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온 것에 비하면 참패를 면치 못한 셈이다. 뒤이어 벌어진 '3차 침입'에서는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필두로 거란군은 고려의 영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의 전멸하고마는 수모를 당한 뒤에야 고려를 더는 침략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주변 강대국들이 결코 함부로 깔보지 못하게 만들고, 실로 깔보기라도 하면 호되게 당하고 만다는 처절한 기억을 뇌리에 박아놓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에게 각각 수나라와 당나라가 호되게 당했던 것처럼, 고려도 첫 번째 외세의 침략을 고구려 못지 않게 본때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런 성과는 훗날 여진과 몽골을 상대로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먼저, 여진은 아에 고려를 침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여진족이 완전히 통일하지 못한 채 부족별로 각자도생을 하던 시절에는 고려의 동북쪽 경계를 지속적으로 약탈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더랬다. 그때마다 고려는 달래기도 하고 토벌하기도 하는 등 양면정책을 펼쳤는데, 윤관이 '별무반'을 조직해 고려의 동북면을 정복해 '동북9성'을 쌓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애써 고려 백성들의 피와 땀을 바쳐서 '북진정책'을 완수해내었건만 계속되는 여진족의 침략에 고려가 '영토포기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꽁으로 내어준 건 아니다. 여진족에서 '영원토록 어버이로 섬기며 조공을 바치겠다'는 맹세를 받고, 더는 침략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이행한다는 약조를 받고 '동북9성'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진은 그후 침략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에 여진은 '완안부족'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을 통합한 뒤에 요나라(거란)를 대대적으로 공략하며 영토를 넓혀나갔다. 여진의 거센 공격에 거란은 고려에게 구원요청을 했지만 고려는 거절하였다. 조선 광해군이 이런 고려의 '실리적 정책'을 본따 명청교체기에 톡톡히 써먹게 된 것이다. 고려는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략적으로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나라였다. 아쉽게도 여진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이라 칭하면서 부모로 섬기겠다던 고려에게 '형제의 예'를 요구하고, 더하여 '군신의 예'를 요구하였고, 고려는 이에 '사대의 예'로 화답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금나라의 무례한(?) 요구에 '큰 나라를 섬기는 이치'를 설법한 이자겸과 김부식이 내심 괘씸하기도 하다. 허나 거란의 잇따른 침략으로 백성들의 삶이 팍팍해진 뒤였고, 동북9성을 쌓을 당시 여진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상당기간 '소모전'을 경험하기도 했던 고려로서는 빠르게 성장하며 대륙을 호령하게 된 신흥강국 '금나라'와 대립을 한다는 것은 실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은 금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고려가 굳이 '군신의 예'를 다하고 '사대의 예'까지 올리며 체면(?)을 챙겨준다는데 굳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고려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 현명치 못하다는 결단을 내린 셈이다. 이렇게 고려와 여진(금)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고려는 힘을 보여줄 땐 확실히 보여주고 실리를 챙길 때에도 확실히 챙기는 확실한 나라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이 없는 '태평성대'를 이루면 좋으련만 나라밖이 조용해지니 나라안이 시끄럽게 되었다. 바로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그것이다. '이자겸의 난'은 왕실의 외척이 권세를 갖게 되면서 나라를 어지럽힌 사건이었고, '묘청의 난'은 도참사상과 풍수지리를 앞세운 '서경파'와 안정적이고 과학적(?)인 정책을 밀고 나간 '개경파' 사이의 갈등으로 왕권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17대 임금인 '인종' 때 벌어진 사건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등극하였는데도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왕권을 안정시킨 훌륭한 임금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어린 임금이라 외척이 득세하여 정치를 말아먹고, 혹세무민하는 땡중이 요설로 현혹하여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무능한 임금'으로 생각하였는데, 다시금 살펴보니 국란의 위기에도 기죽지 않고 끝내 '왕권'을 지켜낸 '뛰어난 임금'으로 재평가받아 마땅하였다.

 

  한편,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묘청'과 '김부식'을 평가하면서 묘청을 '독립운동가'에 비유하고, 김부식을 '매국노'에 빗대며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주장했더랬다. 근데 묘청의 서경천도를 '윤석열의 용산이전'과 비교해보니 좀더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두 사건은 모두 '풍수지리'를 앞세워 나라의 흥망성쇠가 마치 '서경천도(용산이전)'에 있다는 것을 설파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천도(이전)'를 하면 흥하고 안 하면 망한다는 논리를 믿어야 한다는 것부터 억지였다. 인종 때에는 '이자겸의 난' 때문에 개경의 궁궐이 거의 불타 없어진 핑곗거리라도 있었지만,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이전을 강행하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이렇듯 '서경천도'는 애초에 무리한 억지주장이었다. 그러나 인종이 스스로 '서경천도'를 없던 일로 하고 명석한 판단을 내렸는데도, 묘청은 '서경파'를 앞세워 군사를 일으키고 임금을 볼모로 잡아 서경천도를 강행하려 하였다. 이는 명백한 '반란'이었고, '역모'였다. 이런 사건을 두고 '독립당'과 '사대당'의 대결이라 비유한 신채호 선생은 시대적 아픔이 반영된 역사해석으로 보는 것이 맞는 듯 싶다. 실제로 김부식은 고려의 안녕과 실리적 이득을 위해 '사대의 예'를 끝까지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때론 실력행사를 할 때는 할 수도 있을 법한데도 '국가의 존심'보다 '개인의 영욕(실리)'에 더 치중하는 모양새를 계속 관철했던 것이 욕을 먹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암튼, 묘청의 난을 다시금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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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로 간 뇌과학 - 테스토스테론 조직, 세로토닌 리더, 도파민 팀원
프레데리케 파브리티우스 지음, 박단비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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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문화는 어느 회사에서 다 있다. 1인 회사가 아닌 이상 여러 사람이 모이고, '여려 성향'이 어울려서 성장을 해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까닭에 어느 회사나 훌륭한 '조직문화'를 갖추려 꽤나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위 '잘나가는 회사'에는 저마다 훌륭한(?)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는 것일까? 회사의 성과와는 별개로 '조직문화'는 정말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잘 갖춰진 조직문화로 뛰어난 '시너지 효과'를 내어 별 볼일 없던 회사가 대학회사로 거듭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잘 갖춰진 조직문화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잘 갖춰진 조직문화를 이루기 위해서 '뇌과학'적인 접근을 선보이고 있다. 바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향'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하고, 그 성향이 뇌에서 분비되는 '대표적인 호르몬'에 크게 영향을 받는 '신경 지문'을 사람마다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고서, 이런 성향이 골고루 갖춰져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아주 잘 짜여진 '조직문화'일 수밖에 없고, 그런 훌륭한 조직문화를 갖춘 회사가 승승장구할 것이 틀림없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그 4가지 호르몬은 바로 '도파민', '테스토스테론', '세로토닌', '에스트로겐'이다. 도파민이 높은 사람은 호기심이 많고 활기차며 미래지향적이며, 테스토스테론이 높은 사람은 강인하고 단도직입적이며 권력 휘두르기를 좋아한다. 반면에 세로토닌이 높은 사람은 믿음직스럽고 꼼꼼하며 신중하고 성실하며, 에스트로겐이 높은 사람은 공감을 잘하며 개인 관계와 공동체 구축에 능하다고 한다. 이런 4가지 신경전달물질(호르몬)뿐 아니라 더 많은 호르몬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개인적인 환경이나 경험, 그리고 성격에 따라서 호르몬에 강렬하게 반응할 수도 있고, 시원치 않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라고 할 정도로 잘 적용된다는 점에서 꽤나 '과학적인 근거'로 신뢰할 수 있는 분석일 수 있다.

 

  허나 분석은 어디까지 분석일 뿐이다. 조직문화는 '호르몬'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마디로 아무리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해도 인간은 그런 호르몬의 영향조차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저마다 갖추고, 상황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과거에 유행했던 '혈액형별 성격테스트'라든지 요즘도 유행하고 있는 'MBTI 성향검사'나 아직도 굳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사주팔자(명리학)' 따위가 아무리 신뢰도가 높아도 이런 성향분석들은 거의 대부분 '통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호르몬에 따른 성향분석'도 결국엔 '통계'에 근거한 분석일 뿐이라는 말이다. 물론, 훌륭한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데 이런 분석결과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로 따질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맹신'은 금물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도 수많은 성공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성공'에 이른 회사와 더욱 뛰어난 조직문화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고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 책의 핵심내용을 정리하면, 훌륭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남성성(도파민, 테스토스테론형 인간)'과 '여성성(세로토닌, 에스트로겐형 인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져야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를 테면, 남성성(성별이 남자냐 여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남성성이 강한 여자도 분명 존재하고,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으로 충만한 회사에서 '여성성'을 지닌 조직원은 조직문화에 섞여들거나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다. 다시 말해,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 강한 리더들 틈바구니에서는 활동적이고 강도 높은 일을 장시간 죽어라하는 사람만을 '최고'로 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초회사에서 여유를 즐기거나 자기주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조직원이 있다면 일만 하다 지쳐 녹초가 되기 십상이거나 일찌감치 사직서를 던지고 퇴사할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이다. 반대로 여성성이 강렬한 회사라면 개인의 성과보다는 공동체 유지에 더욱 힘쓸 것이고, 일과 관련이 없는 것까지 꼼꼼히 챙겨야 하기 때문에 '성과중심적인 목표달성지향형 조직원'은 이런 회사에서 크게 활약을 하기는커녕 일에 적응도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어느 회사나 나름이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조직문화에 잘 스며들기 위해 '자신의 신경 지문'이 어떤 유형인지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자신이 꼼곰한 성향의 테스토스테론과 공동체를 위해 언제든지 희생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에스트로겐의 융합적인 성향(신경 지문)을 지녔다면, 자신이 조직에서 가장 활약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서 회사조직에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점검해보라는 것이다. 만약,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나의 신경 지문'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나에게 딱 맞는 조직'을 찾아 떠나는 것도 자신의 삶을 성공에 이르게 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란 말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면에서 '조직문화'에 스며들 때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한 내용은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바꾸려하지 말고 '상황'을 바꾸라고 조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앞서 열거한 '신경 지문'이 워낙 고유한 것이고, 좀처럼 바꾸기 힘든 성향이기 때문에 '사람'을 바꾸는 것으로 훌륭한 조직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꾸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상황'이다. 일이 잘 되게 만들기 위해서 매번 '사람'을 자르고 다시 채용하는 일을 반복한다면 일의 성과목표에 다다르기도 전에 조직이 먼저 엎어지기 일쑤다. 반면에 '주변환경'을 바꾼다든지 '회사 분위기'를 바꾼다면 소위 '일할 맛'이 샘솟기 마련이다. 이렇게 바뀐 '상황'이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 꼭 신경써야 할 것은 바로 '신경 지문의 다양성'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한가지 성향만으로 조직인원을 채우기보다 4가지 성향의 조직인원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면 '상황'을 바꿨을 때 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단연 '관리자의 몫'이다.

 

  이 책은 이렇듯 기존의 자기계발서가 중요시 여기는 '사람 바꾸기'가 아닌 '상황 바꾸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책이기도 하다.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는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바꾸길 권장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보다는 우선적으로 '상황 바꾸기'를 통해 저마다 고유한 '신경 지문에 따른 성향'의 장점이 '시너지 효과'를 크게 내기 위해 '성향별'로 골고루 조직을 가꾸어나가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유별나지만 독특한 책임에 틀림없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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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6 : 성은 우리를 다르게 만든다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이고은 글, 김현민 그림 / 아울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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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에 '5권 리뷰'를 쓰고서 이제사 6권 리뷰하다니 많이 소홀했다. 하지만 아직 쓸 리뷰가 많이 밀린 관계로 조금 더 미룰 수밖에 없을 듯 싶다. 암튼, 6권이다.

 

  이 책,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는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지 못한 '뇌과학'을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펴낸 책이다. <과학 콘서트>로 일찍이 유명세를 떨친 '정재승'이기에 믿고 볼 책이기도 하지만, '뇌과학'이란 것이 그렇게 어렵거나 낯선 과학이 절대 아니라는 '잘못된 편견'을 단박에 없애줄 유익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재승'이란 이름 뒤에 '글쓴이'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요즘엔 교과서도 '스토리텔링'으로 쓰여진 탓에 웬만한 [어린이교양책]은 거의 대부분이 '이야기형식'으로 쓰여지고 있다. '과학학습만화'로 유명한 <Why?>시리즈도 그렇고, 학습만화계의 밀리언셀러인 <마법천자문>도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면 자연스레 '과학'도 배우고, '한자'도 익히게 되는, 그런 식이란 말이다.

 

  이 책의 '스토리라인'은 외계행성의 '아우레 종족'이 소행성 충돌로 파국을 당하기 전에 아우레인이 살만 한 행성을 물색하던 중, '지구'라는 행성을 발견했고, 지구에서 살고 있는 '지구인'이 아우레인과 함께 살 수 있을지, 없을지 탐사를 하며 '인간탐구'를 진행시켰는데, 이런 '아우레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구인의 생태(?)'를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내용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어 지난 5권에서는 '바바의 비밀보고'로 인해 아우레 행성의 본부에서는 '지구인 섬멸'을 명령했는데, 그 비밀보고의 내용이 '지구인의 생태가 아우레인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달았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아우레인과 '감성적'인 지구인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성급한 결론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이번 6권에서는 '또 다른 아우레인'이 인간탐구를 위해 투입되게 되었다.

 

  이렇게 '스토리라인'을 잡고서 펼쳐낸 '뇌과학적 주제'는 인간의 '성', 그리고 '사춘기'다. 다시 말해, '사랑'에 빠진 인간을 탐구한 내용인데, 이를 '뇌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사랑=호르몬 파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테스토스테론, 에스토르겐 등등에 의해 대환장 파티가 벌어져서 발현되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눈에 뵈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각종 '호르몬'이 대방출이 되니 시야는 좁아져서 '한 남자(한 여자)'만 보이게 되고, 심장은 두근네근 가만히 있질 못하며,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서 손만 대도 톡하고 터져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 '사춘기'라는 시기까지 접목시키게 되면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고 마는 것이다. 아직 미성숙하다못해 '2차 성징'이 이제 막 돋아나는 시기에 '호르몬 대방출'과 '감각기관의 대환장'을 겪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냔 말이다. 뇌과학적으로 첫사랑의 짜릿한 기억에 왜 평생 남는지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셈이다.

 

  이런 사춘기에 접어든 등장인물들 간의 '사랑의 열병'이 한창일 때, 아우레인들은 '지구인 섬멸'을 결정하기 위해 먼길을 달려온 셈이다. 과연 아우레인들은 지구인을 모두 죽이기로 결정하게 될까? 다음 7권이 나온 것을 보면 결과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2차 성징'이 나타나게 된 청소년들에게 '성'과 '사랑'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다시 말해, '성교육'은 어디까지 해야 좋단 말인가? 현명한 부모라면 자녀에게 '성교육'도 능숙하게(?) 잘 해야 마땅하겠지만, 그 순간의 민망함을 생각한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교육전문가에게 믿고 맡긴다는 것도 쫌 그렇다. 성교육전문가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면, 남자선생님은 여학생을 가르치기 민망하고, 여자선생님은 남학생을 가르치기 껄끄럽단 말이다. 그렇다고 성교육한답시고 '남탕여탕' 갈라서 하는 것도 '반쪽짜리'인 것에 불과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한데 섞어서 가르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 정녕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성 이야기'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열린마음'이 전제된다면 방법이 없지도 않다. 사랑하고, 연애하고, 섹스하는 이야기가 감춰야만 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인정하고나면 그 뒤는 순풍에 돛단 듯이 잘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아이들도 알만한 건 다 알고 있다. 정작 궁금한 것은 '실전경험(?)'일 것이다. 그렇다고 청소년들에게 사랑과 연애, 섹스를 '권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청소년들이 직접 궁금해하는 것을 민망하지 않는 표현으로 능숙(?)하게 잘 설명해주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단,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만 할 것이다. 과연 10대에 '하고 싶은 것'을 다 경험했을 때, 나중에도 후회하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후회'할 것 같다면, 조금 시간이 흘러 20대에 사랑하고, 연애하고, 섹스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경험자의 조언'을 곁들여주면 더욱 좋을 듯 싶다. 지금 청소년들은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을 세대가 아니다. 차라리 속시원히 까놓고(?) 얘기하는 것이 더욱 절실히 와닿아 청소년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청소년이 있다면 '책임(?)'질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자신 없는 어른(학부모, 교사)이라면 마땅히 책임을 지어야 할 '당사자'가 직접 성교육시키시길 바란다. '남'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지 마시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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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7 : 순자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7
김세라 지음, 이인섭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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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전국시대는 수많은 사상가를 낳은 시대였다. 비록 지배자인 왕과 신하들은 무능했고 피지배자인 백성들은 잦은 전쟁과 큰 혼란으로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제자백가'로 일컫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해서 저마다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였기에 학문적으로 매우 소중한 시대였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동양사상'이라 불리는 수많은 사상들이 중국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유가사상'은 중국을 비롯한 한중일 동양삼국의 '공통분모'로 작용할 정도로 밑바탕이 되어 '문화적 동질성'을 띄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유교'는 세 나라의 고유한 특성으로 발달하며 전통문화로 자리잡아 '공통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물론 정치, 경제 등의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해 갈등이 심해지기도 하지만, 정작 세 나라의 국민들은 눈빛만 보아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근원이기도 하다.

 

  암튼, 유가사상의 대표는 '공자'와 '맹자'로 꼽는데 반해 '순자'는 흡사 이단자 취급을 받는 듯이 홀대받기 일쑤다. 가장 큰 이유는 '순자'의 학통을 이어받은 이가 '한비자'와 '이사'로 '법가사상가'이기 때문이란다. 거기다가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학자들에게 눈엣가시처럼 밉보일 수밖에 없었던 탓에 '순자'는 오래도록 핍박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평가가 사뭇 달라졌다. 유가사상이 너무 '이상'만을 쫓는데 반해 법가사상이 오늘날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만큼 실용적인 덕분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법가사상가인 '한비자'의 스승인 '순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실제로 <순자>는 <논어>, <맹자>를 비롯한 다른 유교경전보다 '현실적인 내용'이 반영되었기에 재평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순자>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순자'도 유학자였기에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순자'는 유독 맹자의 '성선설'을 조목조목 비판했는데, 그 까닭은 인간은 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타고 났다고 하기에는 춘추전국시대의 현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먕자의 말마따나 '선한 본성'을 타고난 이들이 어찌하여 허구헌날 전쟁을 일삼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지도 않으며 저마다 제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했느냔 말이다. 이런 현실을 직접 겪어본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결코 선하지 않으며 악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를 두고 '성악설'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순자가 인간이 마냥 악하다고만 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선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순자도 그런 사실을 절대 부정하지 않았으며, 그런 '성인'은 올바른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말해, 순자는 인간은 태어날 때는 '악한 본성'을 타고 나지만 올바른 훈육과 교육, 그리고 개인적인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훌륭한 인성을 갈고 닦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악설의 핵심'이다. 또한,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고, '성인'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면 애초에 타고난 본성이 '소인'이었던 탓에 바른 인성과 훌륭한 교육, 그리고 뛰어난 노력을 성실하게 갈고 닦으면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선설'을 주장한 여타의 유학자들처럼 '선한 본성'을 타고난 인간에게 적당히 교화만 시킬 수 있다면 나쁜 짓을 일삼지 않을 것이니 '덕치'가 중요하다고 본 것과는 다르게, 순자는 '예치'를 주장하며 끊임없이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스스로 수양하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법치'를 주장하며 엄격한 법과 무거운 형벌 만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법가사상가'들과 일맥상통한 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보면, '순자'는 유가와 법가를 이어주는 '중간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순자는 일반적인 유가의 '왕도정치'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힘의 논리를 인정하는 '패도정치'도 불가피한 것이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순자의 유학은 꽤나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논어>, <맹자>보다는 <순자>가 읽기에 수월하며 공감가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순자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사상이 꽤나 '합리성'과 '논리성'을 중요시하는 근대적인 사상과도 잘 맞아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자>에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져봄직 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순자>도 '비판적인 읽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순자'도 어쩔 수 없는 유학자인 까닭이다. 철저한 신분제도를 고집했으며, 오늘날에 적용하기에는 곤란하거나 고리타분한 '제도와 형식, 그리고 태도'를 강조하는 낡은 사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상인 '도가', '묵가', 그리고 가장 많이 비판한 '법가', 심지어 같은 유학자들의 '유가'도 비판의 대상에 올려, 얼핏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모두까기의 일인자'로 오해하기 딱 좋은 면모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것이 '단점'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특히, 마지막에 언급한 다른 사상가의 '실명'까지 언급하며 비판한 내용에 대해서는 '순자의 고뇌'가 얼마만큼 깊은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순자, 자신의 사상'에 비추어 다른 사상가들의 근거가 얼마나 부족하거 허황된 것인지 조목조목 따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순자'가 얼마나 학문에 진심이었는지도 엿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누구와도 '토론'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는지 알 수 있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자>의 내용에는 '헛똑똑이들'을 경계하는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면서 '순자, 자신'이 얼마나 자기학문에 노력과 공을 들였는지, 그렇게 결실을 본 <순자>라는 책이 결코 허술한 책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케 하기 때문에 현대의 학생들의 귀감이 되는 대학자임에 틀림없다. 정말이지 공부를 한다면 '순자처럼' 해야 한다는 말이 딱 적절할 듯 싶다.

 

  근래에 '서이초'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져 수많은 선생님들이 슬픔에 빠져 있다. 비단 선생님들뿐 아니라 '교육'에 진심인 모든 분들이 애통해 마지않은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과연 이런 비극이 '누구의 탓' 때문일까? 나는 <순자>를 읽으며 '예의범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은 제자를 사랑으로 대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그 기본'이 왜 사라지고 만 것일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비극을 두고 공자와 맹자는 인의를 따지며 '덕치'를 강조할 것이고, 한비자와 이사는 강력한 '법치'를 내세울 테지만, 순자는 우리 모두에게 '예치'가 사라진 비극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최소한의 예절'만 잊지 않았어도 선생님에게 무례하게 대드는 학생도 줄어들 것이고, 무한이기주의에 빠진 학부모들의 얼빠진 행태도 사라질 것이며, 스승도 제자에게 더욱 사랑하지 못한 죄를 부끄럽게 여겨 '우리 교육의 현실'이 이처럼 무참하게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더욱이 정치권에서는 이 비극을 두고서 "전교조의 망령이 부활했다"는 얼토당토 않은 시빗거리를 주절거리지도 말았어야 했다. 얼마나 몰상식하고 부끄럼도 모르는 망언이란 말이냐. 교사가 현실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하는 제자를 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을 조금이라도 사려 깊게 생각할 줄 아는 정권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위로가 먼저다. 죽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출 줄 모르는 야만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순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군주가 예의를 알면 백성이 저절로 군주를 믿고 따른다'고 말이다. 아무리 '악한 본성'을 타고났더라도 선한 마음을 갈고 닦으면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는 순자의 가르침을 '정치인'이라면 더욱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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