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순의 천일야화 4 - 하렘의 여왕을 기억하라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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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눈은 '지니(정령)에게 홀린 자'라는 뜻을 지녔는데, 이 책에서는 인간의 몸에 들러붙어 정기를 빼앗는 마신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거꾸로 마신의 몸에 인간이 스스로 들러붙는다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단다. 이때 완전하게 합일이 되면 마신의 힘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불완전할 경우에는 마신이 깨어나서 마신의 본성대로 인간을 잡아먹게 된단다. 이렇게 마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융합시킨 경우를 '역마주눈'이라고 부른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바로 스스로 '역마주눈'이 되어 반드시 지켜야만 할 소중한 사람이 생긴 자의 최후가 밝혀진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나일 땐 불완전하였다가 둘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되는 아름다운 일체를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혹은 어느 한 쪽의 사랑이 더 큰 경우이거나 말이다. 그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채로 사랑을 하면 언젠간 한쪽이 지치고 나가떨어질 것이 뻔하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번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비록 그것이 삶을 송두리채 앗아가는 비극일지라도 사랑이었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랑을 말이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격투사'다. 바로 역마주눈이 되어 끝없이 싸움터에서 목숨을 건 격투를 벌여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내가 있다. 그 사내에게 돈이 필요한 까닭은 한 노예소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 소녀를 노예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 사내는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격투에 나선다. 그리고 비록 패배하더라도 '파이트머니'는 받을 수 있기에 소녀에게 사줄 진주목걸이를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할 때까지 계속 격투에 참가한다. 지고 또 지고, 또 졌지만 끝내 진주목걸이를 사서 소녀에게 건내줄 수 있었다. 비록 '모조품'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사내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아비가 도박으로 큰 빚을 지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자 엄마는 남편이 진 빚을 갚기 위해 노예처럼 일을 해야 했다. 결국 남편이 진 빚을 다 갚았지만 아비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엄마도 몸을 혹사 당한 탓에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병에 걸리고 말았지만, 소년은 아픈 엄마에게 치료약이라도 얻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만다. 사람을 죽이라는 청부를 받은 것이다. 그것도 온가족이 보는 앞에서 '한 남자'를 찔러 죽이라고 말이다. 소년은 차마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지만, 아픈 엄마를 떠올리자 마음을 다잡고 죽여야할 남자를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그 남자의 아내와 아직 어린 아들딸이 다 보는 앞에서 말이다. 사내는 그때 한 소녀가 자신의 아비를 찔러죽이는 사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돌아왔는데도 약을 먹은 엄마는 기력이 다해 죽고 만다. 사내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어느 덧 청년으로 자란 사내는 아무런 의지도 목적도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는 것이 더 편한 탓인지 사내는 의미없는 싸움을 이어나가는 격투사가 되어 있었다. 그날도 사내는 피투성이가 된 채 두들겨맞고 누워 있었다. 그때 노예소녀가 사내 앞에 나타나 시중을 든다. 첫 눈에 사랑에 빠진 걸까? 사내는 소녀의 시중을 받으며 처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힘겨운 나날을 지낸다. 그러다 노예소녀의 목에 값비싼 진주목걸이를 보게 되었다. 사내는 소녀에게 물었다. 그 진주목걸이가 좋으냐고 말이다. 소녀는 돈 많아 보이는 남자가 선물로 주었다고 지나가듯 말할 뿐이었다. 그날로 사내는 돈을 마련하려 격투에 나섰다. 지고, 지고, 또 지고...한 번이라도 이기면 진주목걸이를 살만한 돈을 마련하련만, 사내는 별볼일 없는 실력이었던지라 계속 질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모은 돈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진주목걸이를 사서 소녀에게 건내주었다. 이거랑 그 목걸이랑 바꾸자면서 말이다. 노예소녀는 한눈에 '모조품'이란걸 알았지만 그자리에서 목걸이를 바꿔 걸었다. 사내는 두들겨 맞아 퉁퉁 부은 눈에 웃음을 걸고서 쓰려지듯 잠에 빠졌다.

 

  그날 이후 소녀는 자취를 감췄다. 사내는 소녀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노예주인에게 소녀의 행방을 물었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화가 나서 주인을 협박했지만 돌아온 것은 호위무사에게 흠씬 두들겨맞는 일 뿐이었다. 그러다 소녀가 도박장의 주인인 '검은 칼리프'에게 잡혀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사내는 소녀가 '검은 조직'의 손아귀에 잡혀갔다는 생각에 소녀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역마주눈'이 된다. 허나 형편없는 실력에 마신이 완전히 들러붙질 않았다.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에서 소녀를 찾기 위해 '검은 칼리프'가 있다는 도박장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그속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도박빚을 지고 갚지 못한 사람들이 갇혀 있고, 돈을 다 갚지 못하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에는 마신들이 우굴우굴 거렸던 것이다. 사내는 그 소굴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 소녀를 잡아갔다는 '검은 칼리프'를 찾아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쎈 마신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사내는 맥을 추지 못하고 헤맬 뿐이었다. 그러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한 빚쟁이 하나와 만나게 된다. 비록 잠시 도박의 꾐에 빠져 이모양이지만은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간절한 남자를 말이다. 처음엔 빚쟁이 주제에 가당치도 않은 소원을 갖고 있다고 냉소했지만, 어찌어찌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사내는 남자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을 들게 되었다. 자신도 소녀를 위해서 이 모험에 뛰어든 것 아닌가. 이 남자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감옥에서 살아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사내는 이 남자를 반드시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목숨을 건 승부 끝에 사내는 마신들을 물리치고 천신만고 끝에 남자를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남자도 자신을 위해서 목숨받쳐 싸워 자신을 가족에게 돌아가게 해주었기에 '생명의 은인'으로 대접하며 극진하게 보살핀다. 그렇게 사내는 남자의 집에서 편하게 쉬며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가장 행복해보이는 그때 남자에게 무참하게 칼로 찌르는 '소년'을 바라보게 된다. 사내는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아 당혹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자신이 구한 남자를 찔러죽인 소년은 분명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었다. 그렇게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노예소녀의 행방을 쫓아 돌아다니다 끝내 '검은 칼리프'의 정체를 알아내고야 말았다. 검은 칼리프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이고, 그를 대신해서 '한 여자'가 검은 조직의 우두머리를 맡아 '검은 칼리프' 행세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자는 얼마 뒤에 권세가의 아내가 되어 곧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그때 '검은 칼리프'를 만나볼 수 있을테니 가보라고 한다. 사내는 '검은 칼리프'를 만나 노예소녀를 풀어달라고 간청할 생각으로 결혼식이 한창인 그곳으로 향했는데, 권세가의 아내가 될 사람이 바로 그 '노예소녀'였다. 사내는 당혹스러웠다. 자신은 '검은 칼리프'를 찾아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이는 결혼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이자 그토록 찾아헤맨 '노예소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현듯 자신이 소년시절 처음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던 곳에서 마주친 '소녀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자신이 무참히 파괴해버린 한 가족의 끔찍한 비극에서 마주한 눈망울을 말이다. 사내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홀로 숲으로 들어가 삶의 의지를 잃은 채 식음을 전폐하고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그순간 불완전했던 마신이 깨어나고 사내를 한 입에 먹어치웠다.

 

  세라자드의 이야기가 끝나자 샤리아르 왕은 말이 없었다. 자신의 왕국을 방문하겠다는 삼촌은 분명 '역모'가 틀림없다. 그리고 왕국 안에서는 자신에게 불만을 품었던 세력이 호응을 해서 '반란'을 일으킬 것도 틀림없다. 그런데 세라자드의 이야기속의 사내는 '믿었던 존재'가 다름 아닌 자신을 파멸시키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 사내의 비극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만약 사내가 남자를 죽이지만 않았더라도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샤리아르도 폭군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깊은 상처를 받아 스스로 폭군이 되고 말았다. 이제 반란은 기정사실이다. 샤리아르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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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3 - 마도서의 저주, 누군가 한 명은 죽어야 한다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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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리아르 왕도 이상한 낌새를 채기 시작했다. 새로 들인 왕비들과 첫날밤을 치루고 나면 어김없이 처형을 하던 일상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라쟈드를 처형하기는 고사하고 함께 수라를 들며 사소한 일에도 웃음보를 터트리는 자신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왕의 변화를 낌새챈 것은 총리대신도 마찬가지였다. 왕국의 처녀들을 학살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처형하던 폭군이 대장군의 딸인 세라자드는 처형하지도 않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정탐의 보고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폭군의 모습을 쭉 유지했더라면 '반란'도 쉽게 이뤘으련만, 왕이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성군 흉내라도 내게 되면 곤란해지는 것은 반란을 주도한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조만간 샤리아르 왕을 몰아낼 방책을 서두르는 총리대신이었다.

 

  수라를 마친 샤리아르는 세라자드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복달거렸다. 세라자드가 풀어낸 이야기는 조금은 묘한 '흡혈마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흡혈귀에 관한 전설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피는 생명의 원천이고, 그 원천을 생명에너지로 삼아 쭙쭙 빨아들이는 귀신은 어쩌면 당연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영국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전해져내려오던 '드라큘 성주'의 이야기에 애뜻한 사랑이야기를 담아 공포소설의 대명사 <드라큘라>를 발표하였다. 그렇게 '드라큘라 백작'은 여인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아 흡혈을 하고, 흡혈 당한 여인도 흡혈귀가 되는 '전염의 법칙'을 만들었다. 양영순은 이에 20년간 흡혈의 욕망을 억제하면 '상급 마신'이 될 수 있다는 흡혈마신을 구상하고, 흡혈귀에게 물린 왕비가 왕을 해하고 흡혈마신에게 왕국을 통째로 넘겨버리는 이야기를 샤리아르 왕에게 들려주는 스토리 라인을 구현한다.

 

  이제 샤리아르의 운명은 어떻게 펼쳐질까? 세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 치료는 단순히 재미와 흥미를 넘어 무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점점 더 샤리아르 왕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앞 전의 이야기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절절한 이야기를 펼치더니, 이번엔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흡혈 마신과 왕비'이고, 이미 흡혈 마신에게 목덜미를 물린 왕비는 자신의 지아비인 왕을 '식물인간'처럼 만들고서 흡혈마신만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고 있었다. 그것도 왕궁 안에서 말이다. 샤리아르도 자신의 왕궁에서 왕비가 노예와 '그짓'을 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샤리아르의 잠자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세자라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모험'을 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바로 왕비를 사랑한 '또 다른 남자' 이야기를 말이다. 그 남자는 현재의 국왕과 절친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의 친구인 '국왕'과 혼인을 한단다. 이 남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왕비는 흡혈마신을 사랑했고, 국왕의 친구는 왕비를 사랑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사랑'이 있다. 국왕의 친구를 사랑했던 '노예소녀'였다. 현 국왕과 친구를 먹는 사이였던 남자의 신분은 고귀한 귀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귀족을 사랑한 소녀는 천한 노예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소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하는 사타부대의 훈련원을 자처한다. 남자의 몫이었던 '입대'를 대신할 사람이 구해졌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왕비를 몰래 사랑하던 찌질한 남자는 여인의 몸으로 '호위무사'가 되어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무예를 갖추고서 말이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사랑이야기는 다름 아닌 '짝사랑'이었다. 노예소녀는 귀족소년을, 귀족소년은 왕세자비를, 그리고 왕세자비는 노래하는 악사로 위장한 흡혈마신을 말이다. 왕세자는 왕세자비를 사랑했지만, 훗날 왕비가 된 뒤에는 왕국의 궁안에 흡혈마신을 숨겨두고 몰래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나중에 국왕에게 발각이 되자 국왕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흡혈마신을 살리기 위해 '마도서'도 훔치고 시녀들까지 피의 재물로 갖다 바치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훔친 마도서로 흡혈마신은 드디어 놀라운 힘을 얻게 되지만, 모든 사실이 밝혀지면서 흡혈마신은 정체가 들킬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정말 세라자드가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 치료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 걸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알 수 없게 되어 간다. 원작에 충실하자면, 샤리아르에게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며 샤리아르로 하여금 살육을 멈추고 성군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건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샤리아르의 분노를 점점 부추기는 내용이 되어 간다. 혹시 '충격요법'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 끔찍하고 충격적인 내용을 부각시킴으로써 샤리아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게 만들 목적으로 말이다. 허나 폭군에게 '반면교사 수법'은 득이 되기보다 독이 되기 십상이다. 불난데 부채질이고,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 붓는 격이란 말이다. 뜨겁다 못해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펄펄 끓는 곳에 섣불리 차가운 물을 부어봤자 사방으로 튀는 뜨거운 물방울에 화상을 입기 딱 좋다. 세라자드는 샤리아르 왕의 분노를 멈추게 하고, 폭군에서 성군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한편, 이야기속에서 짝사랑으로 끝맺음을 한 이들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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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2 - 아무도 이 섬을 벗어날 수 없다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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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야화>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마신'이 등장한다. 그래서 마신의 특징을 이해하면 '천일야화'속의 이야기에 더욱 매료될 수 있다. 1권에서 등장한 마신은 '이프리트'였는데, 보통은 불을 다루는 정령으로 곧잘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이는 게임속에서 구현된 모습이고, 대다수의 설화속에서는 여성을 납치했다가 영웅에게 당하는 캐릭으로 많이 등장하는 마신이다. 그래서 능력치는 그닥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지니 계열'의 이프리트로 등장할 경우엔 꽤 강력한 마신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인간으로 변신할 때는 불에 탄듯한 새까만 피부색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래서 아랍권에서는 '이프리트'를 '아프리카인'을 가리킬 때 쓰기도 했단다. 한편, '지니 계열의 마신'중에 '마리드'는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푸른색을 띠고 있다고 한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속 '지니'가 바로 가장 강력한 '마리드 계열'의 마신이었던 셈이다.

 

  2권에서 등장하는 마신은 '구울'이다. 널리 알려진 바로는 '썩은 시체를 먹는 식인귀'로 알려져 있어 '좀비'와 같은 종류로 알려져 있으나, 구울이 살아있는 사람을 물었다고 해서 전염되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좀비'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사실, 좀비도 '죽은 시체'가 아닌 것처럼 구울도 '죽은 귀신'이 아니라 '격이 높은 악마'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구울을 완전히 죽이기 위해선 드라큘라처럼 '은십자가'를 심장에 꽂아야만 하는 것처럼 구울도 '정해진 무기(시미터-중동에서 널리 쓰이는 휘어져 있는 칼)'로만 심장을 정확히 꿰뚫어야만 죽일 수 있단다. 또한 구울은 변신능력도 있기에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데, 남성 구울은 털이 많고 시커멓게 등장하기도 하지만, 여성 구울은 매우 아름다운 미녀로 곧잘 등장한다고 한다. 이처럼 구울은 꽤나 잘 생기고 능력도 뛰어난 마신인데, 시체나 뜯어먹는 식인귀로 곧잘 등장해서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고도 한다.

 

  2권의 핵심적인 줄거리가 바로 '구울과 벙어리소녀의 사랑이야기'다. 이 이야기속에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서도 다시 살아나게 되면 더욱 뛰어난 능력을 갖춰나가는 모습으로 '구울'을 묘사했는데, 마지막 단계로 치명상을 극복하면 '백발귀'가 되어 불사의 마신이 된다고 설정하였다. 한편,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 치료를 계속하는 세라쟈드는 '인면어', 다시 말해, 사람의 얼굴을 한 물고기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꿈속에서 '인면어'가 잡힌 호수로 일행이 모험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인어와 맞닥뜨리게 된다.

 

  인어는 매우 아름다운 종족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상반신이 사람의 모습인데 반해서 하반신이 물고기라서 성격이 매우 포악한 종족에 속한다. 더구나 뱃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에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선원들을 꼬여낸 뒤에 물속으로 끌어들여 잡아먹는 '식인습성'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인어를 만났을 때에는 절대 '외모'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애초에 다가가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인면어가 살고 있는 호수에 도착한 왕의 일행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사람이 인면어로 변하는 까닭이 궁금했을 뿐인데,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인어떼가 왕이 몰고온 배들을 선착장에서 멀리 빼앗아가 가버리고, 자신의 형제를 죽인 '뭍에 사는 마신'을 잡아오는 조건으로 배를 온전히 되돌려주겠다고 협박을 받게 된다. 그때 마을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생존자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느닷없이 인어형제를 죽인 '마신'을 잡아오라니...그런데 마침맞게 생존자인 '노파'를 찾게 되었고, 그 노파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구울'이라는 마신을 잡아달라고 왕에게 요청한다. 이래저래 왕의 일행은 '구울'을 잡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구울을 잡기 위해선 창으로 정확히 심장을 꿰뚫어야만 하는데, 만약 심장에서 비켜나게 되면 단박에 죽이지 못하게 되고, 다시 치유가 되어 살아나게 되면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 마신으로 거듭나게 된다고 한다. 이 마을사람들과 인어까지 죽인 구울은 이미 여러번 죽다 살아나서 꽤나 강력한 마신이 되었고, 만약 한 번만 더 죽다 살아나게되면 '백발귀'가 되어 불사의 몸을 갖게 된단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한편, 구울은 말 못하는 소녀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 소녀는 이미 병색이 짙어져서 오래 살지 못할 듯 싶다. 그런데 병든 소녀를 치료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구울이었다. 마을사람들을 몰살시킬 정도로 사악한 구울이 어찌하여 벙어리소녀는 애뜻하게 보살피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구울과 소녀는 서로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서로를 살려준 사이였고, 그렇게 둘은 모두의 미움을 받으며 외따로 살고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사랑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구울은 마신이라는 이유로 배척을 받으며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고, 벙어리소녀도 마을사람들에게 '벙어리'라는 이유만으로 도둑이란 누명을 쓰고 '변명'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모진 매질을 맞아야 했더랬다. 그렇게 천대를 받던 벙어리소녀를 겁탈하려다 구울에게 죽임을 당한 두 사내가 있었는데,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노파가 바로 그 사내들의 엄마였던 것이다. 노파는 자신의 아들이 소녀를 겁탈하려던 것도 다 알았지만, 그조차 '천박한 소녀'의 잘못으로 누명을 씌우고 자신의 아들들을 살리고자 소녀를 죽여서 입막음하려던 것을 구울이 발견하고 구해줬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소녀를 죽일 수 없게 되자 노파는 '인어의 피'를 구해 마을 우물에 뿌려 마을사람들을 다치게 만들었고, 그 독을 푼 것이 바로 '구울의 짓'이었다며 마을사람들을 부추겨서 구울과 소녀를 한꺼번에 죽이려 들었던 것이다. 왕의 식탁에 오를 뻔한 '인면어'는 바로 그렇게 우물에 인어의 피가 뿌려져서 갈증을 참지 못하고 독이 든 우물을 마시고 '인면어'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고 말이다.

 

  이렇게나 복잡한 사연의 '원흉'은 다름아닌 노파의 이기적인 복수심 때문이었다. 왕은 그 사실을 밝혀내고 노파에게 벌을 주려 했으나, 그러자니 구울의 분노가 무서웠고, 구울도 노파를 죽이고자 했으나 병든 소녀를 살리기 위해선 왕의 일행과 함께 큰 도시로 가야 살릴 희망이 있었으며, 그러자니 인어에게 빼앗긴 배를 되찾아야만 했고, 배를 되찾으려면 인어형제를 죽인 '구울'을 산채로 잡아가야만 했다. 그런 까닭으로 구울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왕의 일행에게 붙잡혀서 인어에게 재물로 받치게 되었다. 순순히 재물이 된 구울이 사라지자 노파는 자신의 아들의 원수인 소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어의 독'이 든 물을 마시려는 극악한 짓을 벌인다. 다행히 왕의 일행이 먼저 그 꾐을 알아채고 소녀를 위기에서 구해내지만, 이미 구울이 인어의 재물이 되어 호수속으로 던져진 사실을 알고서 그 독이 든 우물을 마시고 '인면어'가 되어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불사의 몸'이 된 구울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너무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샤리아르 왕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을까? 사랑에 배신을 당했다는 이유로 무참하게 처녀들을 하룻밤 사이에 참살해버린 무도한 폭군이 이미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샤리아르는 과연 진정한 사랑에 눈을 떠서 세라쟈드를 살려내고 정식으로 새왕비로 맞아들이게 될까? 양영순의 <천일야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원작에 충실한 이야기를 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줄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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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순의 천일야화 1 - 첫날밤의 맹세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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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사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의 요술램프', '신드밧드의 모험' 등이 대표적으로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제목으로 묶여 나오곤 한다. 그렇지만 <아라비안 나이트>만으로는 이 책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원래의 제목은 <천일야화>, 다시 말해, '천하룻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야화'라는 말에서도 느낌이 팍팍 오듯 <천일야화>는 세상의 모든 야한 이야기는 다 담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한 뿐만 아니라 꽤나 폭력적이기까지 한 탓에 '진정한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소개해도 모자를 정도다.

 

  이토록 야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라면 '양영순 작가'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누들누드>로 널리 알려진 양영순 작가는 우리 나라 '웹툰의 선구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이 '단행본'으로 나오긴 했지만 애초에 '웹툰'으로 그려진 탓에 '스크롤'을 휙휙 내려가며 읽는 맛이 일품인 작품이기도 하다. 허나 <양영순의 천일야화>가 연재될 당시에는 웹툰이 그닥 활성화되던 시기가 아니었던 탓에 '수익'을 그리 낼 수 없었고, '단행본'으로 출간을 해야 겨우...쿨럭쿨럭.. 어디서 주워 들은 풍월은 있어서 나불거렸지만, '그쪽'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암튼, <천일야화>를 만화로 그린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양영순'만한 작가가 더는 없다고 봐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천일야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왕국을 다스리는 임금이 잠시 궁을 떠나 업무 겸 여행을 다녀온 사이에 아름다운 왕비가 '식스팩의 꽃미남 노예'와 놀아나곤 했는데, 임금이 깜빡 잊고 온 것이 있어 다시 궁으로 되돌아가보니 '자신의 궁'에서 '자신의 여자'가 '자신의 노예'와 '자신의 침실'에서 껴안고 뒹굴고 있는 장면을 직접 확인하고 난 뒤에 '여자에 대한 신뢰'는커녕 '여자'라는 존재를 절대 믿지 못할 짐승처럼...아니 '짐승'이라면 주인의 말에라도 절대 복종할 줄 알기에...짐승보다 못한 천박한 암컷으로 확신하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런 충격은 받은 임금은 그날부터 '첫날밤'을 치룬 뒤 자신의 아내인 왕비를 아침에 목을 댕강 잘라 처형해버리는 잔혹한 짓을 벌이기 시작한다. 왜냐면 왕국을 다스리는데 '국모의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죄다 '남편 몰래 불결한 짓거리를 일삼는 천박한 암컷'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임금은 왕국의 처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죽여버리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왕국 안의 처녀란 처녀는 다 죽을 지경에 이르자 왕국의 병력을 총괄하는 대장군의 여식인 '세라자드'가 임금의 새왕비가 되겠다고 자청을 한다. 당연히 대장군은 반대하지만 세라자드는 자기만의 꿍꿍이가 있다며, 다음날 아침, 임금과 혼례를 올리고 '첫날밤'을 보낸다.

 

  원래대로라면 임금은 세라자드도 날이 밝으면 죽여버려야 했지만, 임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면 '첫날밤'이 지났지만 '첫날밤'을 치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금은 '둘쨋밤'에 '첫날밤'을 치루고 처형하려 했으나, 그도 역시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셋째밤', '넷째밤', 그리고 '천밤'이 지나고, '천하룻밤'이 되었을 때야 '첫날밤'을 보낼 수 있었으나, 임금은 세라자드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 길고도 긴 '천하룻밤'동안 임금은 '재미난 이야기'를 듣느라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사연인 즉슨, 세라자드는 첫날밤부터 천밤까지 밤마다 임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신드밧드 선원 이야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의 이야기도 모두 여기서 나왔다. 그밖에도 각양각색의 섹스와 폭력이 난무한 이야기로 임금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임금의 '거시기'까지 세웠다 죽였다 다시 세웠다를 무한반복한 덕분에 임금은 그동안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세라자드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렇다면 <양영순의 천일야화>는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만화를 전공 삼아 대학을 다닐 때부터 "섹스와 폭력이 난무한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기 때문에 원작소설을 능가하는 작품을 펴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아니다. 원작에 충실했으나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도 그랬다. 그도 '순수창작'이 아닌 원작을 베낀 작가였을 뿐이었으나, 그의 작품은 늘 '원작'을 뛰어넘는 '무엇'으로 가득한 것처럼, 양영순도 섹스와 폭력이 난무한 <천일야화>의 골자는 고스란히 빌려왔으면서도, 양영순만의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그의 천일야화 1권을 살펴보자.

 

  매일밤 악몽을 꾸는 샤리아르 왕이 있다. 그가 절대권력을 갖춘 왕인데도 악몽을 꾸는 까닭은 딱 하나다. 사랑했던 왕비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에 죽여버렸고, 그 이후에 들인 새왕비들조차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모조리 다 죽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샤리아르 왕은 '폭군'이었다. 그래서 매일밤 악몽을 꾼다.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말이다. 그러고보면 샤리아르 왕도 아주 나쁜놈은 아닌 셈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대장군의 딸 세라쟈드가 자진해서 왕의 새왕비가 되길 청한다. 물론 죽으러 가는 건 아니다. 끝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자신을 죽을 틈조차 없게 만들 생각으로 갔다면, 너무 뻔한 스토리일 것이다. 그래서 세라쟈드는 '이야기 치료사'라는 설정을 가져왔다. 매일밤 악몽을 꾸던 샤리아르 왕은 새로 들인 왕비가 '이야기 치료'를 할 줄 안다는 말을 듣고, 미심쩍지만, 치료를 받아보기로 한다. 이야기는 시작되고 샤리아르 왕은 꿈속인듯 현실인듯 인식하지 못하는 '이야기'속으로 곧장 빠져들고 만다.

 

  세라쟈드가 들려준 첫번째 이야기는 '마신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상인 이야기'다. <천일야화>에서 등장하는 '마신(魔神)'은 신도 아니고 악마는 더욱더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램프의 요정, 지니'를 떠올리면 좋을 듯 싶은데, 이게 디즈니가 요상하게 변형시켜 버려서 '마신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암튼 악마는 아니지만 악마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이면서, 결코 신(이슬람교는 유일신 알라뿐이다)도 아니지만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춘 존재라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양영순은 '마신'을 괴물같은 존재로 그려놓았다.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믿고 이야기에 몰입해야만 한다. 어느날 상인이 우연히 던진 돌에 맞아 '마신의 아들'이 죽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아들이 죽은 마신은 분노에 겨워 상인을 단박에 잡아먹어버리려 하지만, 상인은 울면서 용서를 빌며 자신에게는 세 딸이 있으며 그 딸들에게 자신이 '죽는 이유'라도 알리고, 자신이 '죽기 전'에 처리해야할 일들을 다 할 때까지만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이 조건을 수락한 마신은 상인을 약속대로 살려준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돌아온 상인은 마신과 한 약속대로 일을 처리하고서 다시 마신을 찾아가 죽기로 각오하지만, 사랑하는 딸들과 만나고나니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되려 마신을 잡아서 죽일 수 있는 '마신사냥꾼'을 고용해서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고 한다. 허나 '마신사냥꾼'은 마신보다 더 나쁘고 사악한 놈들이었다. 그놈들은 순진한 상인을 속이고 난 뒤에 '약속대로' 상인의 목숨은 살려주지만, 상인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세 딸들을 '마신사냥꾼'들이 가로채서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써 상인은 가진 재물도 모두 잃고 사랑하는 세 딸도 빼앗기고서 겨우 목숨만 살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다 듣고난 샤리아르 왕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흔히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정작 목숨을 지키고나니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상인과 마신은 '순진한데' 반해서 마신사냥꾼들은 이렇게 순진한 존재를 속이며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마신'은 샤리아르 왕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빼앗긴 것에 분노해서 빼앗아간 원흉에게 '죽음'을 내놓으라고 명령을 내리는 무서운 존재였지만, 그런 마신 또한 '마신사냥꾼'에게는 속여먹기 딱 좋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였을 뿐이다. 만약 샤리아르 왕을 가리키는 인물이 '상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우연한 사고로 하나 뿐인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허나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모두 빼앗기고 빈털털이가 되고 보니, 자신이 품었던 알량한 분노가 하찮게 보일 지경이었다. 과연 세라자드는 이 모든 것을 간파하고 샤리아르 왕에게 감히 '직언'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세라쟈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 권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가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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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어벤저스 1 : 전염병, 응급 센터를 폐쇄하라! - 어린이 의학 동화 의사 어벤저스 1
고희정 지음, 조승연 그림, 류정민 감수 / 가나출판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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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이 되자 논술공부방을 접어야만 했다. 급작스럽게 대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아이들과 '대면수업'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시휴업'과 '수업재계'를 반복하다가 이듬해에 공부방을 잠시 닫고 병원에 취직을 했다. 그렇게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에 나는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돈은 벌어야 했기에 말이다. 물론 '전문의료진'으로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비의료진'이고 '비정규직'이었을 뿐이다. 대한민국 남성 가운데 마흔을 훌쩍 넘기면 '정규직 채용'이 가능한 곳이 거의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99% 노동자가 겪는 슬픈 현실이다. 비정규직은 언제든 쉽게 '해고 가능'한 것이 기업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동인권' 같은 배려는 눈을 뜨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다. 그저 쉽게 채용해 쓰다가 편리하게 해고해 버릴 뿐이다. 암튼, 큰 병원에서도 '비정규직' 근무자가 많다는 사실만 알아두면 병원을 조금 더 유용하게 이용하실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에 다시 말해보자.

 

  이 책, <의사 어벤저스>는 '어린이책'이지만, 어렵고 복잡한 '의료지식'과 더불어서 '병원근무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려주는 훌륭한 책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크게 '전문의료진'과 의료진들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비의료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의료진은 의료현장에서 마주치는 '의사', '간호사'와 병원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전담하는 '상급부서'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다. 이들은 진료와 의료활동에 대한 지식을 갖춘 '전문인'이기 때문에 이들의 빠른 진료와 치료로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료진들만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의 업무를 보조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간호사'인 것처럼, 간호사의 업무를 도와주고, 병실의 청결 및 관리를 위해서 일하는 필수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비의료진'들인데, 우리는 이들을 흔히 '조무원', '미화원', '경호원', '수납원', '관리원' 등등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서, 병원업무는 의사와 간호사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의료진'들의 감춰진 헌신에 의해서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병원의 일상을 살짝 들여다보자. 수술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헌신을 다하는 현장을 상상해보라. '의학드라마'를 재미나게 보셨을테니 상상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환자가 입원을 하고 병실을 배정받고 수술일정과 예약, 그리고 수납까지 수많은 병원업무는 '누가' 할까? 병실에 입원한 환자를 수술실까지 옮기는 일은 '누가'할까? 수술실에 정전이 되지 않게 하려면 '누가' 철저히 준비해야 할까? 수술실에 있는 수많은 기기들이 고장이라도 나면 '누가' 고칠까? 수술이 끝나고 난 뒤에 다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99.9% 무균을 유지하기 위해 '누가' 깨끗하게 청소할까? 수술실 밖에서 보호자들이 애타게 기다리다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난동이라도 부리게 되면 '누가' 이들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통제할까? 이런 수만 가지 '잡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바로 'ㅇㅇ원'으로 끝나는 비정규직들의 숨겨진 노고 덕분이다. 물론 작은병원에서는 '의료진'들이 이 모든 일들을 다하지만, 대학병원 같은 '대형병원'은 너무 크기 때문에 '의료진'만으론 병원업무를 모두 다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대형병원에서 조금이라도 불만이 생기면 의료진들에게 직접 대면해서 하소연할 수가 없다. 이들은 칭찬받을 때에만 잠시 얼굴을 보여줄 뿐, 비난 받거나 불만을 토로하면 가장 먼저 뒤로 빠진다. 그리고 '비의료진들'에게 떠넘겨지면서 온갖 쓴소리를 다 듣게 만든다. 그렇게 대형병원에 방문하게 되면 가장 먼저 '비의료진들'과 대면을 하게 된단 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담당자, 불러와~!"라고 언성을 높이면 높일수록 더욱더 '비의료진들'만 만나게 된다. 그래서 원만하게 해결이 되지 않으면, 병원은 그 책임을 가장 먼저 '비의료진'에게 물으며 '해고통보'를 한다. 왜냐면 가장 쉽게 자를 수 있고 '다시 뽑아 쓰면' 되기 때문이다.

 

  암튼, <의사 어벤저스> 1권에서 다루는 내용이 '코호트 격리'에 이르게 된 '어린이 전문 응급센터'다. 다시 말해, 전염병으로 인한 '환자 확산'을 막기 위해서 병원 폐쇄라는 강력한 조치가 취해졌다는 말이다. 우리 나라도 '메르스', '코로나19'로 인해 이러한 '격리 조치'가 전국적으로 취해진 경험을 직접 겪었으므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21년이라 '코로나19'의 변종인 '코로나알파바이러스'에 따른 병원 폐쇄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그런데 가뜩이나 병원 수가 적은 '어린이병원(소아전문응급병원)'이 코로나알파 감염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니 매우 급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린이 의사'인 강훈, 장하나, 이로운, 구해조, 4면의 어벤저스가 활약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실제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사실적'으로 펼쳐져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의학지식'만 다룬 것이 아니라 감염병으로 인해서 벌어질 수 있는 '병원업무'부터해서 '언론', '매스컴'을 비롯한 '병원홍보'까지 다루고 있어 웬만한 '의학드라마'를 초월하는 생생한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심지어 20세 이하의 어린이의사들인데도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적인 일이다보니 어른들이나 겪을 법한 '직장내 스트레스'까지 다루고 있어서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서 어린이책에 걸맞지 않은 안타까운 '노동현실'을 리뷰에 담아본 것이다.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 '감춰진 일들'이지만 말이다.

 

  다행히 응급으로 방문한 환자는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고,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위급한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한 의료진 덕분에 일상으로 빠르게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해피엔딩'이 가능했던 까닭도 바로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아낌없는 협조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현장 메뉴얼'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면 바로 이 세 가지가 모두 절실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나 '의도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진위파악'이나 하고 있고, '책임자 추궁' 따위만 일삼고 있으면, 사고는 일파만파로 퍼지고 더 많은 희생자만 만들 뿐이다. 또한, 사고 해결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비도덕적으로 조롱하고, 비상식적으로 악담하며, 비이성적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데 열을 올리는 또라이들도 있다. 거기에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할 정부관계자가 '일이 되게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는커녕, 사고 해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현장방문 사진찍기', '브리핑 준비' 따위로 경호인력과 언론인들을 몰고 다니고, 이들을 '접대(?)'하기 위해 현장관리자들이 하릴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따위는 정말이지 대가리에 총 맞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한편, 병원에서 '고마운 일'을 겪었을 때에는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었으면 한다. 병원이라는 곳이 기쁜일보다 마음 아픈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장소다. 더구나 '대형병원'에서는 여전히 '마스크의무착용'이라는 것도 기억해두자. 팬데믹은 종식을 선언했다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코로나', '독감' 등과 같은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더욱이 '감염에 취약한 환자'가 더 많은 법이다. 그러니 잠시동안 불편을 감수하고 '마스크'만이라도 꼭 착용해주길 바란다.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여전히 온종일, 그리고 일년 365일, '마스크착용중'이다. 그래서 환하게 웃는 표정조차 지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병원근로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야말로 활력소가 될 수밖에 없다. 99분이 따뜻한 위로를 전해도 딱 한 명의 '진상짓'을 하는 내원객 덕분에 마음에 상처를 받으며 수명을 깎아먹기 일쑤다. 그러니 제발 '같은 노동자 처지'까리 서로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고마운 일을 겪게 되면 조금 귀찮더라도 '칭찬카드'라도 써주면, 쉽게 잘리는 '비정규직'일지라도 조그만 혜택을 주니, 정말 고마운 일을 겪게 되면 아낌없이 칭찬해주시길 바란다. 그게 '고용불안'으로 걱정이 많은 비정규직들에게 가장 큰 보탬이 되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헌신을 다해 생명을 살리는 '의료진들'의 노고에도 박수 쳐주시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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