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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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화려한 색채'에 끌린다고 한다. 모던한 화풍이 포인트인 책표지를 비롯해서 책속을 장식한 수많은 '도감'이 풍족한 것에 만족감을 넘어 '소유욕'을 자극한다면서 말이다. 이렇게나 예쁜 책인데 책내용을 들춰보면, 한 인물에 담겨진 '삶의 정곡'을 찌르는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오롯이 돋을새김하고 있어 다른 책들과 '비교불가'할 정도의 감동을 선사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더구나 '기행문' 형식의 글을 통해서 '인물의 발자취'를 더듬어 거슬러오르는 느낌을 받을 때엔, 마치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생생함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 책의 글쓴이는 '현지 가이드'가 되어 까막눈과 다를 바 없는 독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래서 '관심인물'이라면 특히 더욱더 이 시리즈의 매력에 풍덩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어찌 매력만 가득한 책일 수 있겠는가. 나처럼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기행문'은 더더욱 관심밖인 독자들에겐 '지식의 목마름'을 충분히 해소하기도 전에 '다른 곳', '빠듯한 일정'에 쫓기듯 따라가기 바쁜 여정이 마뜩찮기도 하다. 차라리 '한 곳'에 눌러 앉아 정지된 듯한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낯선 여행지'가 주는 감상을 충분히 만끽할 수도 있는데, 굳이 이리저리 질질 끌려다니며 녹초가 되는 '독서'가 피곤한 느낌마저 느껴질 수도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이 책만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린 나는 어쩐 일인 걸까?

 

  무엇보다 '비하인드 스토리'에 솔깃해졌다. 영국이 자랑하는 셰익스피어의 매력이 어디 그가 남긴 글에서만 찾을 수 있겠는가. 그가 살던 동네, 그가 머물던 극장, 그리고 그의 생의 전반에 걸쳐 작품에 영향을 주었던 시간적, 공간적 배경들과 인물들에게서도 셰익스피어가 겪었던 삶을 관통하는 '멋'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뒤쫓는 '풍문'들의 진위를 글쓴이의 나름의 판단으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즐거움도 또 다른 재미였다. 특히, 그의 생애를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와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는 글쓴이의 주장은 매우 신빙성이 높았다. 다름 아니라 '앤 해서웨이'라는 아내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작품이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보다 8살이나 연상인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지 않고서야 스토리 전개조차 되지 않는 그 작품은 '상상의 산물, 그 잡채'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단다. 그도 그럴 것이 셰익스피어는 아내인 앤 헤서웨이와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게 잘 살았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너무나도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해설하고 분석한 내용은 이 책만의 '백미'였다. 누구나 알만 한 '4대 비극'과 '5대 희극'은 물론이고, 수많은 대본과 시까지 열거하며 일일이 '주석'을 달아놓은 점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궁금증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대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햄릿'은 우유부단의 대명사라 부를 수 없다. 왜냐면 복수를 할 때는 우유부단할지 몰라도 비난을 할 때는 신랄하고 열정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말하고, <맥베스>의 주인공은 맥베스가 아니라 그의 부인이었다. 왜냐면 맥베스가 '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왕의 가슴에 단검을 찌를 때조차 망설이고 머뭇거릴 때,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단검을 내리꽂은 이가 다름 아니라 그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란다. 아직 '문학'에 한해서는 스승도 없고 문외한에 불과한 나로서는 이런 번뜩이는 해석에 더욱 끌릴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만족할 여행객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잘 짜여진 계획에 충실하였다고 하더라도 '놓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똑같은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 법인데, 스치듯 지나친 첫 여행에서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난 하나의 풍경도 놓치지 않을 '느릿느릿'한 여정을 좋아하고, 갔던 길도 다시 되돌아가는 '반복적인 일상'을 좋아라 한다. 지겨울 것 같다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때론 '반복되는 일과'가 늘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물론, 좋아할 경우에만 말이다. 내겐 이 책, 이 시리즈가 그럴 것 같다. 그 여정이 빠르진 않을 테지만, 100권에 다다르는 그 길, 그 끝에 나는 서 있을 것 같다. 아직은 반(현재까지 31권 출간)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읽고 또 읽으며, 그 매력을 만끽하고 있을 테다. 물론 그 사이에 '셰익스피어 작품'도 좀 읽고 말이다. 셰익스피어, 좀 읽겠다고 다짐한 것이 재작년이구만, 아직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셰익스피어가 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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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비룡소 클래식 47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귀스타브 스탈 외 그림, 윤진 옮김 / 비룡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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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릴 적에 읽고 또 읽던 책목록이 있었으니,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 주인공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어야 할 결혼식날에 감옥에 갇히게 되고, 이유도 모른채 14년동안이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뒤에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고서,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 '배신자'들을 향해 치밀한 '복수극'을 펼치는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라는 것이 마뜩치는 않다. 더구나 '사적인 감정'이 가득 담긴 복수는 우리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어릴 적에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주인공의 복수가 너무나도 멋져 보이기만 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줄거리를 하나하나 꼬집으며 '책소개'를 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싶다. 놀랍게도 6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이 원작의 문장은 고스란히 남긴채 줄거리만 대폭 추려낸 '축약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대략 2000여 쪽이 훌쩍 넘는 '원작'을 리뷰하며 줄거리를 꼬집을 기회는 많을 것이기에 후일을 약속하는 바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적인 복수는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에드몽 당테스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단지 '편지'만 전해주었을 뿐인데 '사상범'으로 내몰려 '종신형'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는 나폴레옹 황제가 실각을 하고 엘바섬에 귀양을 갔을 때이고, 당시 프랑스는 공화국을 거쳐 황제정에서 다시 '왕정복고'를 실현한 어지러운 정국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 '편지'라는 것이 나폴레옹이 섬을 탈출할테니 지지자들은 결집하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당시 집권자였던 '왕정복고자'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암튼, 그런 복잡한 역사는 쏙 빼고 읽어도 에드몽 당테스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전날에 감옥에 갇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그 뒤에 다들 알다시피,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몬테크리스토(그리스도의 섬)라는 섬에서 엄청난 보물을 찾게 되고 '처절한 복수극'을 펼치게 된다. 에드몽 당테스는 엄청난 부를 갖게 된 뒤에 스스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 칭하며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배신자'들을 찾아 나섰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는 댕겅댕겅 '피의 복수'를 저지르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동안 배신자들은 대단한 출세를 해서 제각각 '엄청난 부'와 '명예'와 '지위'를 한껏 드높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몬테크리스토는 그들에게 '파멸'이라는 선물을 아주 신중하게 준비했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파국을 맞이했을 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어렵게 쌓아올렸을 명예와 지위도 스스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복수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에게 닥친 불행은 너무나도 슬프고 끔찍한 만큼 그가 펼치는 '복수의 칼날'은 화려하고, 그가 내세운 '도덕적 명분'은 맑고 깨끗하기에 독자들은 누구라도 몬테크리스토의 복수를 응원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이렇게 '사적인 복수'가 자행이 되고, 이를 허용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되고 말 것인가? 복수는 끝없이 되풀이 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복수'가 실현되면, '또 하나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고, '한 쪽의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 '다른 쪽의 복수'는 서막이 열리게 된다. 이래서는 '복수'가 복수를 낳는 되풀이만 반복할 뿐이다. 더구나 '공적인 복수'가 아닌 '사적인 복수'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니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사법 절차'를 밟아 정당하게 신원을 회복하고 억울함을 풀어나가야만 했을까? 아쉽게도 이런 방법으로는 속시원한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권력'을 차지한 세력들끼리 '봐주기식의 처분'만이 남발할 것이 분명하고, '억울한 이의 하소연' 따위는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오직 '법치주의'만을 내세워 정당한 절차를 거쳤음을 애써 강조하며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다'는 엉터리(?) 판결로 종지부를 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라 국정이 혼란한 시국에는 '뻔한 결말'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수많은 독자들이 바라는 명쾌한 결말은 '도덕의 승리'다. 부도덕한 짓을 일삼은 무리는 마땅한 벌을 받고, 억울한 누명으로 쓰고 불행에 빠진 이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도덕적인 명분'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이며, 복수를 행하는 이에게도 '도덕적 흠결'이 발생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애초에 부도덕한 짓으로 부와 명예를 얻은 이들은 개망신을 당해도 싸니 처절하도록 낭패를 보면 볼수록 분이 풀리고 속이 시원할 것이 틀림없다. 현실적으로도 수많은 대중들이 바라는 '복수의 귀결'은 이렇듯 소박(!)하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해피엔딩'과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주제가 환영받는 이유도 우리네 서민들이 순하고 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배신과 복수, 그리고 처절한 응징이 뒤따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손에 땀을 쥐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드몽 당테스의 타락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이다. 다시 말해, 복수에도 '올바른 방도'가 있고, '응징의 수준'도 적절해야 한다는 말이다. 분명 에드몽 당테스는 억울한 옥살이로 삶의 비참함과 온갖 불행을 다 겪었고, 지난 14년간 죽을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극적인 탈출'과 동시에 '엄청난 부'를 거머쥐면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보상'은 대부분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일 것이다. 다만, 그동안 아버지가 굶어죽고, 사랑하는 약혼녀를 빼앗기는 등 '복수할 꺼리'는 남아 있다. 그리고 자신이 불행했던 동안에 '행복'을 누리던 배신자들에게 응당 복수할 이유도 마땅하다. 그러니 배신자들의 행복을 앗아가는 '정도'의 복수는 허용된 셈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처절한 응징을 하게 된다면 몬테크리스토의 복수는 정당성을 잃게 되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짐과 동시에 외면과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일반 대중이 원하는 '통쾌한 복수'란 딱 '받은 만큼'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준하는 복수다.

 

  이에 따라 '사적인 복수'는 허용하되 '도덕적 결함'이 없는 순수한 복수만을 허용할 뿐이라는 '단서조항'을 달아야 할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허구적인 이야기'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결코 '사적 복수'를 허용해선 안 될 것이다. 왜냐면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이 사람들마다 들쭉날쭉 제각각이기 때문이고, 문서조항으로 '명문화'하기에 매우 까다롭고, 이를 '해석'하는 것도 애매하고 모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도덕이라는 것이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마음가짐을 다루는 것이기에, 이를 '규율'로 삼아 분명히 하고자 하려면 '남의 물건을 훔친자는 10배로 물어주거나, 징역 3개월형에 처한다'라고 정한들, 재벌집 도련님은 남의 물건 400만 원을 훔치고서도 4000만 원 물어주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20억 원짜리 남의 집을 빼앗고도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1년 판결을 받아 뻔뻔스레 부를 자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이란 것이 그렇다. 가난한 이의 근검절약은 지지리궁상인 것이오, 부유한 이의 돈지랄은 플렉스한 것이다.

 

  그렇기에 도덕의 화려한 변신이 필요하다. 일명 '가진 자에게 걸맞는 처절한 응징'이 필요한 법이다. 즉, '잃을 것'이 있는 이에게 도덕에 반하는 행동을 할 시에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제거'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명예를 가진 자는 명예를 빼앗고, 재물을 가진 자는 재물을 빼앗고, 잘생김을 가진 자는 못생김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빼앗길 것'이 두려워 처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검사출신이라고 거들먹거린다면 '개검사' 딱지와 함께 전재산몰수 과태료를, 재벌이라고 돈 무서운줄 모른다면 '한량'이라는 딱지와 함께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금지시킴을, 잘생겼다고 사람을 우습게 깔보면 '국민밉상'이라는 딱지와 함께 평생 쪽팔림을 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무죄로 밝혀지면 '원상복구'시켜주면 그뿐. 그러나 '도덕적 흠결'로 인해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할 것이다. 이 정도면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답지 않은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사적 복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복수'의 짜릿함은 알게 모르게 허용하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속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우리네 서민들의 슬기로움이랄 수 있을 것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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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논술대비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명작 7
나사니엘 호손 지음, 한은선 옮김 / 지경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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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 문학수업을 위해 '두꺼운 원작'이 아닌 '축약본'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 출판사의 책들 선별하고 있는데, 일단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전집류의 도서'들은 과감하게 제외했다. 이유는 한꺼번에 구매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또한, 아동전집류의 책목록이 천차만별이어서, 정작 꼭 읽어야 할 목록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업을 위해서 선별해야 할 책은 '낱권 구매'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똑같은 책이어도 '이책'은 이 출판사가, '저책'은 저 출판사가 더 나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뭐, 어찌 되었든 '나만의 초등문학수업책의 목록'도 꽤나 길 것이기 때문에, 이책 저책 가리지 않고 '비교분석'해볼 참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지경사책'으로는 <주홍글씨>를 골라보았다. 그동안 여러 번 읽은 책이기도 하고 다양한 출판사를 겪은 뒤이기 때문에 '비교분석'을 하기에 적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가의 기준'은 첫째, 줄거리 요약이 적당한가? 둘째, 초등생이 이해하기 적합한 주제선정을 했는가? 셋째, 삽화는 초등생에게 한 눈에 잘 들어오며 책의 이해를 적절하게 잘 돕는가? 이렇게 세 가지다.

 

  먼저, 줄거리 요약은 아주 훌륭했다.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리면서 '핵심내용'을 놓치지 않고 아주 잘 덜어내었다. 간혹 무리한 줄거리 요약으로 '축약'을 넘어 '각색'을 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책에선 그러지 않았다. 주제선정도 탁월했다. 줄거리 요약이 잘 되면 책의 주제도 크게 '변질'되지 않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내용을 거르고 덜어내다보면 종종 '원래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 원작과는 별개의 '교훈적인 이야기'로 탈바꿈 되는 경향도 있는데, 이 책은 애초에 '원작'이 출중한 탓인지 '간통'이라는 낯뜨거운 소재에도 초등생이 보기에도 크게 부끄러운 내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삽화는 아쉽게도 '초등저학년' 수준에서 더 낮춰진 듯 싶었다. 등장인물의 '감정'과는 동떨어진 예쁜 표정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이야기 전개와도 그닥 상관이 없는 '그린이의 상상력'이 동원된 딴 그림이 그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읽는 책에 '삽화'는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의 '상상력의 밑천'이 되는 까닭에 아주 잘 그려주어야만 한다. 차라리 '줄거리요약'이 엉망진창이어도 '삽화'만 훌륭하면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적으로는 꽤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줄거리 요약'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기나긴 '원작'을 읽는다면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내용이해'를 충실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했다. 그로 인해 <주홍글씨>의 핵심인 '반성하는 삶이 주는 행복'을 초등생들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서는 '죄의식과 구원'에 중점을 두었지만, 어린 학생들은 이 책을 '종교적인 주제'로만 이해하기보다는 '실수와 반성', '상처와 복수', '화해와 용서'라는 일상적인 주제로 이해했으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수를 한 뒤에는 '두 갈래길'을 가게 될 것이다. 한쪽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 반성하면서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고 '철저한' 반성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성찰하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감추고 덮어버려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는 길이다. 일단 이 길을 선택하게 되면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언제 들킬지 조마조마하게 살 것이고, 행여 들통이 나서 개망신을 당하는 않을지 걱정만 늘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자책을 하고 속으로 뉘우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여전히 조마조마하기 마찬가지고, 걱정과 후회만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수를 밝히고 철저히 반성하는 사람에게 '화해와 용서'를 하는 삶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관용정신'은 진정한 화해와 용서로부터 나오는 것일테다.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화해와 용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설령, 실수를 감추고서 온갖 근심과 걱정에 휘말려 있는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건전해지고 살 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남에게 받은 상처'를 절대 잊지 못하고, 그에 응당한 '복수'를 준비하며 끝장을 볼 때까지 남에게 해코지하겠다는 심보로 산다면 최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일단 '복수심'에 불타오르면 남만 끝장이 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불태워버리기 십상이다. 피해를 본 만큼 되갚아주면 '당장'은 속이 시원하겠지만, 되갚음을 당한 이가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또다시 '복수'를 하겠다고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런 복수심에 눈이 멀어버리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으며 오직 '자신이 받은 상처'만을 부각시킬 뿐이다. 남 또한 자신이 받은 상처처럼 아프고 쓰린 곳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채, 오로지 '되갚아주겠다'는 것에만 열을 올릴 뿐이니, 주고 받는 복수로 인해 '주변사람들'까지 불편하고 위태롭게 만들기 십상이라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주홍글씨>에서 초등생이 다뤄야 할 주제는 요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깊은 주제로 들어가버리면 아이들과 토론을 하기에도 부담스럽고 민망한 이야기가 오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덕적인 삶과 남을 도와주는 삶, 그리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에 대한 양성평등적인 개념을 일러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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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삼국지 톡 - 세상에서 제일 빠른
심 쌤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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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삼국지>가 재밌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입 아플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재밌는 책이 시중에서는 대부분 '10권 분량'으로 나왔으니 긴 호흡이 필요한 장시간의 독서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물론 정말로 재밌기 읽는 분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안다. 허나 아직 '대작의 맛'을 접해보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무조건 재밌으니 읽어보라고 권하는 건 실패할 확률이 더 크다. 실제로 '유비의 매력'에 흠뻑 빠진 학생이 호기롭게 <삼국지>를 읽다가 '조조'나 '손권'의 이야기가 나오자 맥이 풀려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닐테고, 성인독자들도 쉬이 겪는 어려움일 것이 분명하다.

 

  이럴 때, '한 권'으로 정리가 잘된 <요약집>이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실제로 시중에 '그런 책'들이 종종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책'의 대다수는 '줄거리'만 축약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정작 '삼국지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마련이고, 걸작 영화를 '미리보기, 예고편'만 보고서 다봤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잘 정리된 <요약집>도 골라서 보는 센스가 필요한 법이다. 여기 <3분 삼국지 톡>은 그런 점에서 부족함이 없는 책이라 소개드린다.

 

  내 경우엔 이 책을 실제 '논술수업'에 써 본 경험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수업'에 차질이 생기자 대부분은 '줌수업'으로 온라인 수업을 준비했더랬는데, 나는 책제목이 그렇기도 해서 실제로 '톡수업'을 진행했더랬다. 약 5일간 정해진 수업시간에 '단톡방'을 열어놓고 아이들을 초대한 뒤에 <삼국지>의 줄거리를 톡으로 올리면서 중간중간에 '독서퀴즈'를 내어 아이들이 집중력을 놓치지 않도록 수업 커리큘럼을 짰고, 실제로 톡수업을 진행했다. 그 당시 '필독서'가 바로 이 책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서 퀴즈를 풀려고 노력했고, 정답은 모두 '이 책' 안에 있으니 실시간으로 아이들이 책을 뒤적거리며 '정답'을 맞추려 했으니 지금도 아이들은 그 당시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물론 <삼국지>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사실, 책내용도 <삼국지>를 잘 아는 남편과 잘 모르는 아내의 '대화체(카톡체)' 형식이라서 질문과 대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갔기 때문에 '이해도'가 매우 높아지는 <요약집>이 분명하다. 그래서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대작의 맥락과 이야기 전개의 흐름을 파악해서 읽지 않았는데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고, 잘 아는 사람이 읽으면 방대한 내용에서 핵심적인 내용만을 잘 정리했다는 느낌이 들어 꽤나 호감이 갈 책이라 여길 것이다. 더구나 중간중간 '간략한 지도'와 '도표'를 첨가한 덕분에 낯선 지명이나 복잡한 세력구도로 난삽한 정황묘사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시의적절하고 이해쏙쏙하게 길라잡이를 하고 있어 '초심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삼국지>는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꼭 읽어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번 드렸지만, '꼭 읽어야 한다'고 다시 답을 드리고 싶다. 물론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책들을 힘이 닿는데까지 다 읽으라고 권하는 바지만, 그 가운데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 있다면, 단언컨대 <삼국지>라고 말하고 싶다. 한때 '중국4대기서'라고 해서 시내암의 <수호지>, 오승은의 <서유기>, 난능소소생의 <금병매>, 그리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필독서로 삼기도 했지만,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것은 <삼국지>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름 아니라 '시대불문 필독서'라는 자리매김을 하할 정도의 매력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삼국지>는 '역사'라기보다는 '신화'에 가깝다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삼국지>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적이 분명 '역사'에 등장하긴 하지만 200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는 베일에 살짝 감춰진 '이질감'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각축을 벌이는 여러 군웅들의 손발놀림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이 넘쳐나지만, 너무 오래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낯선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쟁이 일상인 극심한 혼란의 시대를 그린 작품이기에 전쟁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러니 '신화'를 읽듯 재미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삼국지>를, '신화'에 열광하는 오늘날 읽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뿐 아니다. <삼국지>에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혜가 담겨 있다. 아니 '지혜롭지 못한 인물'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하는 험악한 세상이 펼쳐져 보이는 것이 바로 <삼국지>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다. '사람 가운덴 여포, 말 가운덴 적토'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여포'는 인물 중에 인물이었다. 허나 그의 끝이 어땠는가? 허무하다할 정도로 '비굴한 죽음' 아니었느냔 말이다. 영웅답게 제 뜻을 이루지도 못했고, 무사답게 전장에서 맹렬히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조조의 공격을 받던 중에 '부하의 배신'으로 포로로 끌려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기까지 한다. 일찍이 자식처럼 거두어 길러준 은혜를 배신으로 되갚더니 정작 자신도 배신을 당해 그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만약 여포에게 '지혜'까지 겸비하는 재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지혜로운 책사가 여포를 도와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보통의 지혜'만 갖추었더라도 비참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세상을 살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가장 부럽다면 <삼국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꼭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삼국지>를 접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한다.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책이라 '선택'한 뒤에도 후회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흔히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이 책으로 '도전'해보길 권한다. 단언컨대, 이 책만 '세 번' 읽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난 벌써 '두 번' 읽었다. 물론 '10권'짜리로도 이미 세 번 넘게 읽은 나지만..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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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완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이윤기의 책'만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가 뒤침이(번역가)로 오래 활동한 까닭에 오비디우스의 <변신>, '토마스 벌핀치의 신화책'을 비롯해서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 <그리스인 조르바> 등의 소설도 소장하고 보니 모두 '이윤기의 손'을 거친 책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EBS강의를 통해서 '신화강연'을 시청한 뒤에, 이 책의 시리즈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이윤기'라는 이름을 각인하게 되었다. 특히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을 만났을 때의 충격은 여운이 오래 갈 정도였다. 신화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라는 색다른 관점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시리즈의 리뷰를 다시금 정리하고자 '1권'을 찾아보았지만, 어느 구석에 쳐박혀있는지 당최 보이질 않는다. 아쉬운대로 '거꾸로 리뷰'를 쓰련다. 쓰다보면 온 책장을 다 뒤적일 수 있을테고, 그럼 1권도 찾게 될 것이니 말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책이 고인의 '마지막 책'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편집'도 세련되지 못하고 거친 흔적이 엿보이고 '내용'에도 서툴고 들쭉날쭉한 부분이 보인다. 그래도 이윤기만이 뽑아낼 수 있는 '신화의 매력'은 충분히 맛볼 수 있으니 그리 큰 아쉬움은 아니다.

 

  5권의 내용은 '영웅 이아손의 모험'이다. 신화에는 영웅들의 모험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만 이아손의 모험이 특별한 까닭은 '죽음을 초월한 존재'가 아닌 인간의 모험을 다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목숨을 걸고 떠나는 인간의 고뇌와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에로스(큐피드)와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뿌려놓은 '달콤한 덫'이기도 하다. 그 '사랑'은 인간이기에 거부할 수 없고 영웅이라도 헤어나올 수 없는 숙명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재미나다. 하지만 사랑이 어찌 달콤하기만 할까? 쓰디쓴 '배신'이 단짝처럼 뒤따르고 사랑이 깊었던 만큼 분노 또한 깊을지니 '연인의 배신'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아손의 모험을 한낱 '금양모피'를 얻는 것에 한눈을 팔 수 있단 말인가?

 

  신화의 매력은 '목적달성'에 있지 않다. 오히려 목적은 '핑계'에 가깝다. 영웅들이 모험을 떠나는 '과정'에 집중해야 신화의 진면목이 제대로 보인다. 이아손을 주축으로 한 '아르고 원정대'는 황금빛 양털을 되찾아 이아손에게 돌아가야할 왕좌가 정당하고 당연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다. 진정한 영웅이란 '주위의 떠받듬'이 아니라 '스스로 증명'하는 것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왕국의 백성들에게, 아니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되찾은 왕위에 올라서도 '안정적인 통치'를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코 쉽지 않은 모험을 받아들였고, 죽을 위험이 가득한 모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당히 떠나려 한 것이다. 물론 '보험'은 들어야겠기에 '그리스 영웅'을 죄다 긁어모았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해서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알만한 영웅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영웅들이 제각각의 능력을 펼쳐보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런 영웅들의 힘찬 발걸음도 '사랑'이라는 달콤한 덫에 빠지면서 지지부진하게 된다.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은 렘노스의 섬의 여인들과 미소년 휠라스를 데리고 가버린 물의 요정들, 그리고 조국을 배신하고 사랑을 선택한 여인 메데이아의 마법 등이 '아르고 원정대'를 온통 휘감듯 덮어버리고 그들의 운명조차 한치 앞도 알 수 없게 만든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어버리기 마련이다. 사랑은 결말이 어떨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게 만들고 '죽음'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폭발적인 황홀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사랑'에 눈 먼 이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난 아직 그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무구무구

 

  암튼, 영웅 이아손은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던 흑해 탐험에 성공했다는 '역사적 가치'를 안겨주는 인물인 동시에 이올코스의 왕위와 금양모피라는 보물을 찾은 뒤에 파멸에 이르는 '신화적 가치'를 증명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얻고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험에 뛰어든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만, 정상에 안주하지 못하고 더 많은 탐하는 욕망의 부추김을 외면하지 않아 끝내 비극으로 결말을 맺고 마는 어리석음에 눈물을 쏟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이아손의 모험담'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신화를 접하다보면 '세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르곤 한다.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찾아온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아무리 강렬하게 보내도 어리석은 인간은 끝내 '비극이 잉태함'을 막지 못하고 만다. 또, '유혹'에는 어찌 그리 쉽게 빠져들고 마는 것일까? '내 것'이 아니면 탐하지 않으면, 그뿐인 것을...이처럼 '신화'는 우리네 인생에 큰 가르침을 전하며 그 속에 지혜가 있음을 넌지시 가르쳐준다.

 

  우리가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었던 '신화시대'에는 신화만큼 과학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것도 없었다.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오랜 지식은 우리의 일상에 꼭 필요한 지혜로 전해준다. 단지 그 지혜가 '암호화' 되어 있기에 적절히 풀어서 설명해줄 '신화전문가'가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이런 전문가는 너무나도 많기에 걱정할 것이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전문가들 가운데 '누굴' 골라야 할지 난감할지경이니 문제다. 그 문제에 난 '이윤기'를 추천한다. 비록 전문적인 신화학자는 아니지만 신화를 정말 사랑해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신화적 메시지'로 읽는 힘을 전달해주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이윤기의 신화이야기 속으로 함께 여행해볼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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