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란~ <한빛비즈> 100리뷰 달성 버튼이 도착했어요. 꺄아아~

그동안 열심히 리뷰 쓴 것밖에 없는데

이런 영광을 선사해주시다니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죠.

제가 웬만한 선물에도 눈하나 깜짝 안 하고

얼마나 손가락 놀리는 걸 귀찮아하는지..

제 귀한 손가락은 오직 <한빛비즈> 도서를 리뷰할 때만 꼼지락거린ㄷ...쿨럭쿨럭

 

암튼 <한빛비즈>에 이런 상패가 존재한다는 걸 널리 알려요~

저보다 더 많이 사랑을 아끼지 않는 '한빛비즈사생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이제 모든 SNS에서 '한빛비즈'만 가득하겠죠 ㅍㅎㅎ

저는 먼저 '200리뷰 달성'하러 갑니다((((((((((((((((((((((((((((( ")난멈추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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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1 - 인류의 등장과 고대 국가의 성립 처음 세계사 시리즈 1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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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의 열화(?)와 같은 '세계사 수업' 요청을 수락하여 급하게 마련하였다. 무릇 역사수업이란 '암기'가 아니어야 하지만 당장 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주입식/객관식' 수업이 아니고서는 학생들의 바람을 충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시험대비'로만 수업을 준비할 수는 없기에 '세계사의 맥락'을 빠르게 짚어보고 난 뒤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좀 더 깊이 읽기' 수업을 마련해 보려 한다. 그렇다면 하고 많은 책 중에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솔직히 말해 조금 시간이 많이 흘러 옛스러움마저 느껴지는 책이긴 하다. 하지만 역사는 그 내용이 방대한 까닭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것'에서부터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직접 '선택한 책'이라는 것이다. 아이들도 나름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해도 '선생의 관점'과는 달리 '학생들이 선호하는 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쉽게 읽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라 여겨서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권의 내용은 '고대사'에 해당하는 '세계4대 문명'의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의 역사'를 다루며 페르시아와 그리스 문명을 정리하면서 오리엔트와 서양(옥시덴트)이 융합해서 만들어진 '헬레니즘 문화'를 소개하고 고대 중국의 통일국가인 진과 한을 다루며 끝맺었다.

 

  전반적으로 꽤나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을 주는 까닭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초등학생만 읽기에 적합한 책은 아니다. 역사의 맥락을 잡지 못한 '초보자'라면 성인들도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한마디로 '알아두면 쓸데있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바탕에 깔린 책이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역사교사모임'에서 책을 집필하였기에 초등생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군더더기는 쏙 빼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 덕분에 '선생의 역할'이 중요한 책이기도 하다. 기초를 마련했으니 학생들은 책을 꼼꼼히 읽고, 선생은 그 탄탄한 기초 위에 튼튼한 역사를 쌓아올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직접적으로 비교분석하는 내용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개별적인 문명에 대한 '역사지식'이 알기 쉽게 정리되는 것에서 멈춰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선생은 두 문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해주면 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비교적 평탄한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중심으로 사방이 뚫려있는 '개방적인 지형'이고, 이집트 지역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옥토가 형성되어 있는데도 사방이 사막과 바다로 막혀 있어 외부의 침략을 막기 쉽지만 반대로 밖으로 나가기도 힘든 '폐쇄적인 지형'이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고 말이다. 그로 인해 두 문명은 '고대문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큰강 유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지형적 영향을 받아 각각 '외향적 사고방식'과 '내향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두 문명의 발전 방향이 서로 달라지게 되었다는 내용을 풀어주면 좋다. 간단한 예로는 '현세구복적인 종교관'을 가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내세지향적인 종교관'을 지닌 이집트 문명은 지구라트와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건축물이라는 점에선 공통점을 띠지만 '쓰임새'는 사뭇 다른 까닭을 알 수 있더라고 사고를 확장시켜주면 좋을 것이다.

 

  그밖에도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는 '아테네', '스파르타',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을 정리해주면서 '동서양을 아우리는 헬레니즘의 탄생'까지 살펴본 뒤에 그 의미를 짚어주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딛고 진시황의 통일과 한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루며 서양에 치우친 '세계사 수업'에 균형을 맞추어 주는 것이 좋겠다.

 

  물론 여기에 더해 '한국사'를 더해주면 금상첨화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발자취를 찾으며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내용을 다루며 우리의 역사가 세계사의 범주에서 맥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놓쳐선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동양의 역사에서는 중국과 인도에 편중되어 있고, 그나마 중동지역의 역사는 '서양사'에 편입하고마는 우를 범하곤 한다. 다시 말해,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의 역사를 서술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세계사를 배우는 아이들은 '대한민국 학생들'이다. 우리 학생들이 배우려면 '우리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풀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아직도 '서양의 우월감'을 밑바탕에 깔아두고 '세계사'와 '한국사'를 분리해서 가르치는 경향이 남아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세계사 공부의 목적이 서양의 찬란한 문명에 감탄하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식이라면 서양은 근대이전까지 동양에 비해 '야만의 역사'라고 폄하해도 무방할 정도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만해도 서양은 코흘리개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근대 혁명' 이후부터 서양은 급작스런 대외팽창의 기회를 잡았고, 야만인들(?)답게 무력으로 전세계에 욕망을 투영했고, 그로 인해 '서구열강들의 패권시대'가 펼쳐지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오직 힘만으로 일구어낸 업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오늘날의 세계는 아직도 분쟁과 갈등의 연장선에 놓여 있게 되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었고 말이다. 제국주의에 의한 '피해국가'였는데도 '가해국(일제)'이 받아 마땅한 '분단'이라는 벌을 대신 받게 만들고서도 나몰라라 하는 몰염치함을 선보이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이럴진데 '서양의 우월적인 관점'을 나열한 세계사를 배우며 알게 모르게 '서양국가'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는 수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젠 '대한민국'을 위한, '대한민국'에 의한 <세계사>를 가르쳐야 한다. 그런 세계사 교육이 무엇인지 아리까리하다면 '대한민국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모든 최상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 '세계사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어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전세계 역사선생님들이 감히 드러내놓고 가르치지 못하지만, 속마음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우리만 젊잖게 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계사'에 깊숙이 영향력을 발휘한 적(?)이 없으니 그런 식으로 가르칠 것이 없다는 변명은 때려치워라!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 '반만년의 역사'라고 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4000년 전의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실제로 만주지역과 요동 일대에서 고대 중국 황하문명보다 앞선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 지역에서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왜 우리 스스로 부정한단 말인가. 동양 최대의 제국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고구려와 신라의 역사를 왜 '한국사'라고 좁혀 배운단 말인가. 우리를 '코리아'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개방적인 고려가 세계적인 무역항 벽란도를 통해 문물을 주고 받은 덕분이다. 고려는 강했다. 거란을 끝내 몰락시켰고 몽골의 침략도 부지기수로 막아낼 정도였다. 오히려 조선시대가 '폐쇄적'이었다. 왜냐면 중국땅을 차지한 원과 명, 그리고 청나라가 거대해져서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인들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굴었다. 그 덕분에 우리의 근대가 뒤늦게 찾아왔고, 우리 스스로 뭘 하기도 전에 '외세의 간섭'이 심해져 끝내 나라를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런 모진 역경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다시금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적기를 맞아 '어떤' 세계사를 가르쳐야 하겠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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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간 잘 써오던 '독서기록'을 바꿀 때가 되었다.

더할나위 없이 좋았던 기록장이었는데

잉크앱이 '전면개편'에 들어가면서

더는 독서기록앱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한다.

2005년부터 2022년까지 나의 독서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앱인데 말이다.

이걸 모두 기록하는데만도 무려 3주가 걸렸었다.

그런데 '수익'을 앞세워 없애버린다고하니...

온라인과 디지털에 대한 배신감이 또다시 새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나의 독서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한 곳에만 남기다가는 어느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다고 원망할 수도 없게 될테니 말이다.

그간 1537권의 리뷰를 남겼다고 적혀 있지만,

잉크앱은 '여러 번 리뷰'를 남겨도 오직 '1권'만 기록으로 남기기에

실제로는 1600여 편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월평균 128.1권인데, 주로 '하반기'에 몰아서 읽고 썼던 흔적이 보인다.

잉크앱이 좋았던 것은

'작가', '출판사', 그리고 '장르'에 대한 나의 취향이 차곡차곡 쌓여서

한 눈에 보여진다는 것이었는데...

이젠 '나의 취향'을 제대로 알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독서기록장을 마련했다.

'북플립'이라는 앱이다.

우선, 2023년부터 이후의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나중에 맘에 쏙 들면 1600편을 몽땅 올릴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서현황'이다.



23년 1월과 2월의 기록인데, 역시나 '인문학(8권)'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소설(문학, 6권)'이 바짝 쫓아왔는데,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진 독서취향이 반영된 탓일게다.

예전에는 '어린이/청소년' 분야의 책들이 주를 이루었고,

'과학/역사' 분야의 책들로 가득한 취향이었을텐데,

부족했던 '문학 분야'에 치중한 덕이 크게 작용한 것일테다.

확실히 달라진 '카테고리'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기록장'이라서 '1년동안의 기록'만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해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또 다른 기록'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연간독서기록'을 중점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출판사 카테고리'가 따로 없어서

내가 사랑하는 출판사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잉크앱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출판사 데이터'였는데 말이다.



앞으로는 '나의 독서기록'이 이런 모양새를 띨 것이다.

'책의 표지'로 장식되고 '내가 준 별점'까지 드러나니...나름 좋긴 하다.

근데 뭐랄까..'여백의 미'가 강조되어 좀 휑한 느낌이 들어 허전하다.

별점기록을 없애는 기능도 있긴 한데,

그러면 '책표지'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달력의 세로 길이가 줄어든다.

가로의 공백은 여전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짜리몽땅해지고 너부대대해지니...

별로다.

암튼 새친구 '북플립'을 만나서 반갑다. 좀더 데이타가 쌓이면 분명 좋아하게 될 거다.

내 풍성한 '독서기록'은 어딜 내놓아도 멋질테니까(--)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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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일리아스 - 트로이의 노래 한빛비즈 교양툰 22
동사원형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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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문화의 원형이라 불리는 <일리아스>는 '고전 중 고전'이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고전이란 제목은 알지만 읽지 않은 책'이라는 고전에 대한 정의가 딱 맞아 떨어지는 책이기 때문이다. 분량이 너무 많은 탓도 있지만 대부분 읽다가 지쳐버린 경우가 더 흔할 것이다. 솔직히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일리아스>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자랑하는 책들을 섭렵했던 분들마저 <일리아스>는 읽다가 도통 '무엇'에 관심을 쏟아야 완독할 수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물론 나도 여기에 속한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은 얼추 다 알고 있어서 '맥락'은 파악하고 있지만, <일리아스>를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더랬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니, 주제가 바로 '분노'란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분노'가 점층되었다가 한순간에 '해소'가 되면서 이야기를 끝맺는 '그리스식 연극'을 이해하면 <일리아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간파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듣는 순간, 무릅을 탁 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읽기에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까닭도 지은이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쓸 때, '그리스인들'을 대상으로 썼던 탓에 '그리스인이라면 다 알만한 상식'적인 내용은 행간에다 숨겨두고 맥락만 남겨놓아 '상식'이 부족한 독자들이 읽을 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 있었다. 결코 내가 멍청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무식'했었을 뿐이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시 한 번 <일리아스>에 도전할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리아스>에는 왜 '분노'를 담았던 것일까? 어차피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쪽은 그리스쪽이었으니 '환희'를 담아도 좋았을텐데 말이다. 10년이나 질질 끈 전쟁이었고,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 전쟁이었으나 '트로이 목마'를 심어두고 끝내는 승리를 거두었지 않느냔 말이다. 그토록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초반의 고전과 역경을 지나 끝끝내 달콤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기쁨'을 노래하면 되었을 것을, 왜 하필 '분노'를 담았느냔 말이다.

 

  어줍잖은 지식을 나름 풀어본다면, 내 생각엔 '그리스인들의 기질'이 달달한 해피엔딩보다는 카타르시스를 뿜뿜할 수 있는 비극을 좋아라하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여기저기 그리스의 저작들을 살펴보면, 유독 '비극적인 요소'만을 참으로 좋아한다는 걸 느낄 정도 거의 대부분이 '비극'이다. 그리고 그런 '비극'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론도 한결같이 '그리스인들의 삶'이 녹록치 않았던 탓에 그들의 현실보다 더 잔혹한 비극을 보면서, '아, 내 현실이 비참하다고 여겼는데, <비극>에 비하면 슬픔 축에도 끼지 못하겠구나. 그나마 '내 현실'은 아름다웠어'라고 새삼 깨닫는 효과를 낳는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탓에 대승리를 거둔 '트로이 전쟁'에서 기쁨과 환희를 쏙 빼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승리에서 기쁨과 환희를 빼면 '분노'만 남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분노만 남았기에 쓴 것이 아니라 '분노'를 통해서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들의 분노는 왕왕 '인간에게 재앙을 내린다'로 귀결되곤 한다. <일리아스>에서 신들은 '그리스편'과 '트로이편'으로 나뉘어 다툰다. 하지만 신들끼리 '직접적'으로 싸우진 않는다. 어차피 '불멸의 존재'인 신들이 서로 싸운들 '불멸'로 남을 것이고, 그러면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싸움은 '한정적인 삶'을 사는 인간들의 몫이다. 이건 필시 '필멸자들의 싸움'이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사실 '분노'라는 감정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신들에게 분노는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간 '멈춰야' 하는데, 불멸의 존재가 분노를 거두어들이는 모양새가 어쩐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멸자들의 분노'는 좋은 이야기꺼리가 된다. 분노를 적절히 다스리지 못하고 지나치면 '죽음'이고, 반대로 분노할 상황에도 적절히 분노하지 못하면 '치욕'이니, 분노했다가 적당한 때에 사그라들게 할 수 있다면 '화해'와 '용서', 그리고 '관용'이라는 멋진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다시 <일리아스>로 돌아가서, 첫머리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서막을 찢어버리고 나서 대단원에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그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에게 되돌려주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다. 이로써 '그리스인'으로 분한 아킬레우스가 분노하면 얼마나 무서운 존재가 되는지 잘 보여주었다가 적당한 때에 분노를 거두어 정말 멋진 인간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반적인 주제가 '그리스인들은 참 멋져'로 장식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하지만 그건 2000년도 훌쩍 지난 옛날에나 먹힐 수법이고, 오늘날에도 <일리아스>가 널리 읽혀야만 하는 까닭이라고는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럼 오늘날에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서양문화의 현재를 이해하는 '거울'로 삼기 위해서일 것이다. <일리아스>는 전쟁 서사시다. 죽고 죽이는 잔혹한 노래라는 얘기다. 그리고 죽을 것 뻔히 알면서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싸우다 끝내 죽는다. 그리고 죽어서 차갑게 식어버린 주검을 높은 단 위에 올려놓고 온갖 영예로운 행위를 짜아낸다. 명예로운 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끔 말이다. 비장하고 거룩하기까지 이를 데가 없을 정도로 짜낸다.

 

  그런데 그토록 수많은 영웅들이 '명예'롭게 죽어가는 이유가 고작 '그리스 최고 미녀, 헬레네' 때문이란다. 최고의 미녀를 납치 당했으니 모든 영웅들을 이끌고 되찾겠다고 나선다. 전쟁을 벌인 '그리스의 변명'치고는 너무 빈곤하지 않은가. 한편, 전쟁의 빌미를 내어준 트로이도 기왕 빼앗은 미녀를 되돌려주면서 전쟁을 멈추려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다. 처음엔 그럴 마음도 있었지만 '직접' 보니 '전쟁'이 날만도 하다는 듯 공감해버린다. 이러면서 '분노'를 노래한다. 화가 나니 풀어야겠다. 죽을 때까지 싸우다보면 화가 풀릴 듯 싶다는 '공격측'과 덤빌테면 덤벼봐라. 네놈들의 어처구니 없는 공격에 당하고보니 열받아서 네놈들을 씹어 먹어야 분이 좀 풀릴 것 같다는 '방어측', 둘 모두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양쪽 모두 웬만큼 죽고나서야 '이성의 끈'을 찾아 화해의 재스처를 내민다.

 

  여기까지 <일리아스>는 대단원을 내렸지만, 실제 '역사'는 트로이의 몰락을 맺고 '오디세우스의 방황'과 '아이네이아스의 모험'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주인공인 아킬레우스는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렇게 트로이는 망하고 그리스는 흥했지만, 트로이의 후손인 아이네이아스는 로마의 뿌리가 되어 다시금 그리스가 몰락하게 되는 '흥망성쇠의 바퀴'를 돌릴 뿐이다. 그 거대한 바퀴 아래서 '분노'는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말이다. 마치 사마귀가 수레바퀴 앞에서 폼 잡고 서는 것 같지 않은가.

 

  오늘날의 서양문화는 '패권국가'로 거듭나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지쟁탈, 그리고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비극 위에 군림하고 있다. 아직도 '힘의 균형'은 서양에 기울어 있지만, 인류의 평화와 공영을 위해서 바람직한 모양새는 아니다. 그들의 찬란한 기술문명은 대량살상무기를 손에 쥐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손에 쥔 위험한 무기를 어쩔 셈인가? 아킬레우스 앞에 무릅을 꿇은 헥토르의 아버지처럼 용기를 내야만 한다. 분노에 사로잡혀 명예로운 이의 주검을 욕보이는 만행을 저지른 아킬레우스도 끝내 '인간다움'을 되찾고 용서를 베풀었다. 강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행동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일리아스>가 보여준 '분노'를 직관하면서 '분노'를 삭힐 줄 아는 인간다움을 깨달아야 한다. 인류는 어리석게도 '분노'를 해결의 실마리로 선택하곤 하지만 '분노'로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을 잘 안다. 오히려 '분노'를 내려놓음으로써 일이 잘 해결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익히 알고 있다. <일리아스>에선 신들이 정해놓은 운명에 따라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운명의 수레바퀴'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혹여 '운명'이 있다한들 오로지 인간들의 '선택'에 좌지우지될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렸다는 말이다.

 

  고전의 위대함을 맹목적으로 암기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고전을 읽되,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하게끔' 되살려 읽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오늘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전이라면 읽을 필요도 당연히 없다. 그런데 수많은 이들이 <고전>은 필독서라고 부른다. 왜일까? 오늘의 문제를 풀기 위해 어제의 참고서가 필요한 까닭이다. 내일 이루어질 '해결'을 미리 알 도리는 없기에 우리는 '과거'를 더듬어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전>은 필독서라 불린다. 그리고 꼭 읽어보고, 읽기 힘들면 '해설서' 찾아보고, 선배들의 '조언'도 귀담아들어보고, 그런 뒤에 '나만의 생각'으로 <고전>을 해석하고 정리하길 바란다. 물론 정답은 없다. 오직 당신의 생각만이 옳을 뿐이다. 다른 이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생각의 빛'이 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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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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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명강' 시리즈를 구매한 지도 꽤나 오래전에 지났고, 책꽂이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장식해두었건만, 좀처럼 읽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출근길에 '책등'을 바라보며 읽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상기시키곤 하지만, 늘 다른 책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다. 쟁여두고 읽지 않은 책이 어찌 이 책뿐일까. 허나 요즘 오래 묵힌 책장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책정리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가뿐해진 마음으로 휘릭 읽어보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본다.

 

  저자 박훈은 '일본사'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불편한 이웃이라하더라도 '알아야' 대비할 수 있으며, '알아야'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고작 '일본따위'에게서 배울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생각에도 일침을 놓는다. "어느 나라 역사이건 간에 배울 것이 없는 역사는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기왕 배울 요량이면 '철저히' 배우려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한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더없이 옳은 말이라서 다시금 '일본사'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보기로 했다.

 

  허나 '일본사'가 좀 껄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천 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옆에서 알짱거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허를 찌르며 알멩이만 날름 빼가며 '받은 것 없이 주기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얻는 것 없이 빼앗기기만' 한 것도 같아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우리보다 열악하다 못해 조악할 지경이라 솔직히 배울 것도 없고, 이후로는 배은망덕하게도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치욕스런 수모를 겪게 만들었기에 '일본사'는 배우다가 열폭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일본사'를 꼭 배워야 한다면, 저자는 '명치유신(메이지유신)'부터 공부하라고 귀띔해주었다. 확실히 일본이 급속도로 '변화'를 보이며, 빠르게 '발전'을 하고 있어 배울 맛이 나는 지점이기도 하고, 오늘날의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기 때문이란다. 역시나 이 말에도 수긍해버렸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명치유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임진왜란 이후 대략 360년간 실제적인 권력을 갖고 있던 '에도 막부(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의 왕(천황, 이하 '일왕')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이양(대정봉환)하면서 '근대 일본'으로 변환됨과 동시에 점점 조여오는 '서양의 침탈'과 극심한 '내부의 혼란'을 대외 팽창으로 극복해보려는 의욕과 야심이 복합적으로 표출된 일대 개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는 '명치유신'을 4인방을 중심으로 해부하고자 했다. 바로 '요시다 쇼인'과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다.

 

  요시다 쇼인은 근대일본의 상징 같은 존재다. 일본의 '명치유신'을 이끌었던 인물들이 거의 '쇼인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스승이라는 작자가 가르친 덕목 가운데 하나가 '침략'이었으니, 근대 일본이 제국주의에 물들어 '이웃나라'를 침공한 원흉이 바로 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가르쳐도 부족할 판에 제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가르쳤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도 일본의 극우파들은 '쇼인의 사상'을 내세우며 일본의 단결을 주장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말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망언을 일삼곤 한다. 우리가 일본의 침략본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을 철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렇게 유명인사는 아니었으나 일본의 국민작가로 알려진 시바 료타로가 쓴 <료마가 간다>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개혁인물이다. 료마는 근대일본의 핵심인물을 많이 배출한 조슈번과 사쓰마번 출신이 아니라, 도사번 출신이다. 하지만 료마는 일찌감치 '번 탈주'를 시도해 '낭인' 신분으로 명치유신의 한복판에서 대활약을 했으니 '아싸'와 '인싸'를 오가는 대활극을 보여준 유명인이다. 하지만 쇼인과는 다르게 '대외무역'을 주장하면서도 '침략'에는 동조하지 않은 인물이라 우리로서도 호의적인 인물로 봐도 무방하단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도 일찍이 '료마'를 존경한다고 표방했고, 료마가 말했다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꼭 집어 예를 들었다고 한다. 만약 근대일본이 료마의 사상으로 나아갔다면 '동양의 평화'를 이루는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우리가 주목하기에 바람직한 인물이라고 보면 좋겠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라스트 사무라이'로 곧잘 표현한다. 그는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서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정작 '일본의 전통'을 지키는 쪽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상반된 활약을 보여주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어찌 보면 '극단적인 인물'로 중간이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테지만, '명치유신'의 주역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거침없이 시도했으면서도 끝내는 '사무라이'로 남아 죽음을 자초한 인물이다.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우호적인 듯 싶다가도 품속에서 칼을 꺼내들고, 속내를 알 수 없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도 난데없는 헛발질로 사람을 놀래키는 것이 '일본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고 당췌 이해할 수도 없는 일본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꼭 연구해야 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근대일본'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다. 도중에 암살을 당하긴 하지만, 일본은 끝내 도시미치의 구상대로 '진격'을 한다. 그래서 친구였던 다카모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개혁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해 완성을 시켜나갔다. 그의 모토는 '서양을 배워 강한 일본을 만들자'였고,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도시미치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 우리가 보기에 그가 '정한론'에 반대한 점을 들어 보기에 좋은 느낌도 들지만, 그가 반대한 까닭은 어디까지나 '아직 준비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막부의 잔당들이 일으킨 '사무라이 봉기'에 싹쓸이 작전을 펼치는 잔혹함 면을 확연히 드러냈지만, 이후 '대만 문제'에서처럼 신중한 모양새를 띤다. 허나 준비를 마치자 '청일전쟁'부터 1945년 패망 때까지 줄기차게 전쟁을 일삼는데, 이게 '도시미치의 계획'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근대일본의 방향키를 알 수 있는 '명치 유신지사들과 일왕의 속셈', 더 나아가 '일본국민들의 속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유명한 '4인방'을 중심으로 분석을 해나갔지만, 일본국민들이 유독 '4인방'에 주목하는 까닭을 짐작해보면 얼추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웃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찌해야 할까? 무엇보다 '평화적인 해법'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분이 풀리고 일이 손쉽게 해결할 것처럼 보이는 '전쟁'과 '팽창'은 근대일본의 패망에서 보여지듯 망조만 가득한 해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은 인류의 공영과 평화의 선두주자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주목하는 까닭도 바로 이 점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쓰지 않고도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으니, 인류의 공영과 평화도 '그런 방식'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실현시킬 것인지 말이다. 그 어려운 일을 또 해내는 대한민국을 떠올리며 '일본사'를 낱낱이 파헤쳐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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