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위로 - 답답한 인생의 방정식이 선명히 풀리는 시간
이강룡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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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말은 생략하고, 과학공부는 왜 필요한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과학'을 몰라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물론, 과학자 못지 않은 명석한 두뇌로 '세상의 이치'를 척척 이해하고, 기술자 못지 않은 뛰어난 솜씨로 못 고치는 기계가 없다면 편리하긴 하겠지만, 그딴 걸 모르고 살아도 '서비스'를 받으며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골치 아픈 과학을 알아야만 한단 말인가. 또한, 애써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3달이면 '새로운 기계'가 등장해서 기존에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낡은 지식'이 되어 쓸 일이 없어지는데, 어렵고 복잡한 것 따위는 '전문가'에게 맡기고서 '문명의 이기'가 주는 혜택만 누리며 살아가면, 그뿐이지 뭣하러 골머리를 썩혀가며 힘들게 공부해야 한단 말이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과학공부'는 꼭 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학을 이해하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과학이 주는 큰 깨달음은 우리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를 테면, '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과 모자란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조차 큰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다. 세상은 점점 '과학지식'을 요구하는데도 '과학공부'와 담을 쌓고만 살아간다면 결국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조차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게 깜깜해지고나서야 뒤늦게 '과학공부'를 하려고 들면 힘든 것을 넘어 벅참을 느끼고 벽을 마주한 것과 같은 답답함을 느끼고 말 것이다. 나날이 세상을 달라지게 만드는 '새로운 전자기기'와 씨름만 하다가 점점 고립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말지도 모른다. 과학과 담을 쌓고 살게 되면 익숙했던 세상이 점점 '낯설게'만 느껴질테니 말이다.

 

  예를 들면, '양자역학 이론'으로 만들 수 있게 된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스마트폰을 원활히 쓰기 위해서 '양자역학'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대충이라도 '양자역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면 '내 손 안의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되는 것인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더나아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을 단순히 전화와 문자를 주고 받는 용도로 쓰는 것에서부터 일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임과 채팅 등과 같은 용도로도 쓰이고, 검색 기능을 통해서 전세계 '감염병'을 추적하고 백신을 개발하는 자료수집 용도로도 쓰이며, 더나아가 '외계지적생명체'를 추적하는 어플까지 작동시키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우주탐사'에도 보탬을 주기도 한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을 헤아리는 것이 더 쉬울 지경에 이르렀다. 이래도 '과학'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지낼 셈인가?

 

  딴에는 애써 관심을 주고 싶어도 어려운 것이 '과학'인 것도 사실이다. 과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서 모처럼 '과학책'을 들여다보고 싶은데도 '모르는 것'들도 가득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책, <과학의 위로>를 추천한다. 첫 챕터를 읽음과 동시에 '과학이 이렇게 쉽고 재밌었나'하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글쓴이가 해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맛깔나게 써내려간 덕분이다. 그러면서 글쓴이 스스로도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과학에 대한 참맛'을 깨닫게 되었다고 소감을 덧붙였다. 인생을 살면서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과학'이 위로를 건내주었더라면서 말이다. 특히, '난제'를 만났을 때 '어렵다'면서 좌절하고 포기하기보다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때도 '나이 마흔에 과학공부'를 할 때였다고 한다.

 

  물론, 삶의 위로가 되는 '대상'이 사람마다 다른 것일 수는 있다. 난 오늘도 관광버스에서 내리며 활짝 웃는 '임영웅 팬클럽 아줌마'들을 만났다. 근처에서 열린 '임영웅 콘서트'를 관람하고 열심히 응원하며 사진 찍고 팬싸인회를 성황리에 마친 뒤에 고기집에서 회식을 하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것과는 결이 다른 '과학공부가 주는 위로'는 지적 허영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감춰진 비밀을 캐내어 '알은 채'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났음이 주는 뿌듯함 말이다. 그래서 남들은 놀라워하는 와중에 나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을 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전율 말이다. 때로는 '지적 허영'을 재수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는 걸' 어쩌란 말인가.

 

  잠시 샛길로 빠졌지만...암튼, 이 책은 '읽기에 재밌고 이해하기 쉬운 과학책'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누구든 '학창시절'에 한 번쯤 배웠던 내용이라 그닥 색다른 내용은 없다. 다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 책을 읽은 '지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글쓴이가 과학지식에 해박한 덕분이다. 글쓴이의 '설명'에는 군더더기마저 없다. 심지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려운 공식을 풀어낼 실마리를 건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중고등학생에게 권해줘도 좋겠지만, 학창시절을 다 지나보낸 '어른들'에게 더 권하고 싶다. 왜냐면 '나이 마흔의 경험'이 아직인 학생들에겐 생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과학이 낯선 어른들을 위한 과학책을 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글쓴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과학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면 좋겠다. 설령 이 책을 읽어도 '과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해'보다 필요한 것이 '관심'이기 때문이다. 관심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왜냐면 '관심'이 있으면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바라보면' 듣기 마련이고, '듣다보면' 궁금해지고, '궁금하면' 한 번 더 물어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묻다보면 또 '궁금한 것'이 생기고, '관심'도 생기고...그러다보면 결국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고해도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최신과학'으로 오면서 전문가인 과학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다. 그러니 '관심'으로도 충분하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과학적 관심'으로 충만해진다면 '과학 강국'으로 발돋움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은 우주를 주름잡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과학적 관심'을 높여보자.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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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엔 업로드가 많이 늦었다.

독서앱이 바뀌면서 '기록'을 새로 시작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다.

하긴 1500편이 넘는 리뷰기록이 50편도 안 되는 숫자로 쫄아들고 말았으니...


암튼, 사라져버렸을 줄로만 알았던 '기록'이 되살아났다.

언제 다시 '사라져'버릴지 알 수는 없지만,

다시 힘을 내서 새출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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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4 : 칼 융 심리학과 종교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4
최현석 지음, 주경훈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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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과학적인 자세'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심리학자는 '객관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정신과 사람의 마음을 파헤쳐야만 한다. 하지만 정신과 마음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관계로 심리학자는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다른 것'을 통해서 연구를 해야만 했다. 이를 테면, 사람의 '행동'이 생각이나 마음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행동을 통해서 심리를 연구하는 '행동 심리학'이 발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특정한 행동이 늘 같은 '심리상태'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반기를 든 심리학자가 바로 '칼 구스타프 융'이다.

 

  융은 인간의 심리는 '무의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한 대표적인 심리학자다. 이를 두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비슷하다거나, 혹은 함께 연구했던 시절이 있었던 탓에 프로이트의 '제자'라고 곧잘 설명하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건 아니란다. 칼 융의 '분석 심리학'은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정신분석학'이 성도착증을 예로 들면서 인간의 욕망 가운데 하나인 '성욕'을 무의식의 원천으로 삼은 것에 반해, '분석 심리학'은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예로 들면서 '종교'를 중심적으로 분석하며 설명한 것으로 보아, 둘의 연구는 사뭇 다른 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프로이트와 융은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은 탓에 융이 자발적으로 학회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학자로서 '공동연구의 장'을 박차고 나온 것은 서로 연구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암튼, 칼 융은 프로이트의 '야한(?) 분석'에 심히 반감을 보이며, 독특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다름 아니라 '종교'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었다. 그것도 주류 종교보다 비주류에 속한 '무속신앙'이나 '연금술' 등에 걸쳐 다방면의 연구를 하였으며, 자신의 연구를 보다 '객관성'을 띄게 하기 위해 '무신론적인 서술'까지 서슴지 않아 종교계의 지탄을 받기도 했었단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은 융은 끝까지 소신을 지키며 내린 결론은 '나, 자신'이 곧 '신'이 될 수 있다는 자존감이었다. 다시 말해, 현대인이 신경증과 같은 심적 고통을 받는 까닭은 '구시대로부터 답습한 도그마(독단적 억압)'를 타파하지 못한 경향이 크다면서, 신경증과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특정 종교에 심취하라는 조언 대신에 '고통의 원인'이 되는 '무의식 세계'속의 '자기(Self)'를 마주할 용기가 핵심이라면서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말을 덧붙인, 칼 융은 심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들에게 '천편일률적인 치료법'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람들마다 '무의식'을 형성한 '원형'이 서로 제각각일텐데 어떻게 이를 일률적으로 묶어서 '똑같은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니 환자가 자각하고 있는 '의식의 세계'를 통해서 고통을 호소하는 경향은 비슷할지라도, 그 고통의 원인이 되는 '무의식의 세계'는 제삼자가 알 수 있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환자가 떠올려 말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면밀히 살펴서 알맞은 치료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꿈의 해석'이 매우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성도착적인 성욕을 '무의식의 핵심'으로 보았던 프로이트와는 달리 칼 융은 매우 '종교적인 분석적 방법'으로 꿈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몇 가지 핵심적인 점만 소개하자면, '콤플렉스'와 '사위일체'다. 먼저 '콤플렉스'는 복잡하다는 뜻이지만, 심리학적인 뜻은 '마음속의 응어리'로 이해하면 좋을 듯 싶다. 융은 겉으로는 멀쩡하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내면속에 간직한 콤플렉스가 있을 수 있다면서, 콤플렉스는 누구나 지니고 있다고 단정지었다. 또한, 콤플렉스는 의식적인 것보다 무의식적인 경우에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성적으로 불완전할 때 정신병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칼 융은 이와 달리 타고난 소질과 경험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수많은 나'로 콤플렉스가 드러난다면서,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은 이렇게나 많고 독립적인 '콤플렉스' 때문에 증세가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위일체'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눈에 띄었는데, 흔히 알고 있는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을 일컫는 '삼위일체'에 또 하나를 더한 '사위일체'를 칼 융이 말한 내용이다. 말 그대로 '성스런 아버지', '성스런 아들', '성스런 영혼'을 하나로 뭉뚱그린 '삼위일체'는 온통 '남성성'만 가득하기 때문에 완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과거에 큰 힘을 발휘했던 '기독교'가 오늘날에 와서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까닭은 바로 '여성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달리 해석하면, 성부와 성자, 성령은 '선한 존재'만을 가리키고 있어,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중세인들은 고해성사나 고행을 통해서 어찌어찌 경건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착하게 살라'고만 말하는 교회나 교리를 통해서 평안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왜냐면 바로 '우리 맘속의 악마'를 부정하고 없애기만을 바라고 있기에 계속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게 뭔 소린고 하면, 남성의 내면에는 '여성적인 면'을 갖추고 있기에 '의식적'으로는 남성성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감춰진 여성성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를 두고 융은 '아니마(여성성)'라고 지칭했다. 반대로 여성의 내면에도 무의적인 남성성을 갖추고 있으며 '아니무스(남성성)'라고 가리켰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내세운 기독교적인 교리속에선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남성성'만을 드러내고 있으니, 여기에 '성모 마리아'를 집어넣어 '여성성'을 갖춘 '사위일체'를 말한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론 우리의 내면에는 '선한 마음'도 있지만 '악한 마음'도 갖고 있기 마련이라면서 과거처럼 종교적인 교리를 앞세워 '내 안의 악마'를 꾹꾹 누르기만 해서는 현대인이 가진 복잡한 고민을 해결할 수 없다고 융은 말했다. 그럴 바에는 '내 안의 악마'를 인정하고 '악한 마음'마저 적절히 다스릴 수만 있다면 선과 악의 균형을 찾아 정신적인 평온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를 두고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악마'를 넣어 균형잡힌 영혼을 가지게 될 때 심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평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논란과 비난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연구내용도 담겨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칼 융의 '연구방식'이 퍽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획일적인 만병통치약을 만들기보다 '개별적인 치료법'을 제시한 점이 학자로서 꽤나 '열린 자세'를 갖추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콤플렉스나 사위일체 연구에서도 복잡하기만 한 콤플렉스를 획일적으로 뭉뚱그리지 아니하고 '자율성'을 부여하고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해 수없이 많은 '나'를 만나게 된다는 얘기나, '삼위일체'의 완벽성을 고집하지 않고 '부족함'을 드러내면서 채워넣어야만 할 '무엇'을 첨가한 점도 매우 참신했더랬다. 비록 그 무엇을 '여성성'과 '악마성'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칼 융이 꼭 그렇게 단정지은 것만은 절대 아니다. <심리학과 종교>라는 책에서 비유한 내용이 그렇다는 얘기지, 그 무엇이 꼭 '무엇'이어야만 한다고 단정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훗날 연구를 이어나갈 이의 몫이기도 하고, 현재 마음속의 고통으로 아파하는 이들이 채워넣어야할 몫이기도 하다.

 

  암튼, 학자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끝없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학업적 성과를 자랑하거나,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고 강요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권위적인 자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에서 옳다고 믿는 것을 흔들리지 않고 연구한 칼 구스타프 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의 서적만을 읽고서는 알 수 없었던 점인데, 이 책을 읽으니 문득 깨닫게 된 점이었다. 종교를 연구했음에도 '신'을 찬양하기보다 '신을 닮으려 애쓰는 인간'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얻어낸 것도 흠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실수'를 했더라도 크게 개의치 말고 거듭거듭 실수를 해도 좋다고 말했다. 사람은 흔히 실수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법이라면서 말이다. 정말 멋진 말 아닌가. 누구나 자기 '내면의 신'을 일깨우는 순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비록 신을 일깨우지 못했더라도 신을 닮아가려 애쓰는 모든 순간이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한 것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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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2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20주년 개정판)
J.K. 롤링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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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마법사의 돌'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볼 작정이다. 익히 알다시피 <해리포터 시리즈>는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1학년부터 7학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각 학년마다 해리와 그의 친구들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데, 단순히 1, 2, 3...으로 나열하지 않고 각 학년마다 '고유의 제목'을 달아놓았다. 1학년은 '마법사의 돌', 2학년은 '비밀의 방', 3학년은 '아즈카반의 죄수', 4학년은 '불의 잔', 5학년은 '불사조 기사단', 6학년은 '혼혈왕자', 그리고 졸업반인 7학년은 '죽음의 성물'이라고 말이다.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제목만 읊어도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고 말 것이다. 다름 아니라 '제목'에서 해리가 겪게 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언급한 제목은 줄거리는 물론 핵심 사건과 그 개요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로 작용하고 있어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1권에서 해리는 해그리드를 만난 뒤에 '다이애건 앨리'에서 입학 물품을 산 것을 기억할 것이다. 마법세계를 처음 경험하는 해리에겐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갖기 위해 '마법세계의 화폐'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린고트'라는 도깨비 은행에 먼저 들른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곳에는 해리의 부모가 남긴 막대한 유산이 있었고, 해리는 더는 가난하지 않고 부유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1학년이자 열한 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해리에게 그닥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필요한 돈'만 꺼낸 뒤, 나머지는 금고에 남겨두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해그리드가 덤블도어의 심부름이라면서 그린고트에서 찾아온 물건이 있었다. 2권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그 물건이 바로 '마법사의 돌'이었던 것이다.

 

  육신을 잃어버린 볼드모트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 '새로운 몸'이 필요했고, 완벽한 환생을 위해서 '마법사의 돌'이 꼭 필요했지만 해리 포터의 활약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때 해리에게 힘을 보태준 것이 바로 '마법사의 돌'이 가진 원초적 힘이었고, 그 힘을 탐냈던 당사자인 볼드모트는 퀴렐 교수의 몸과 함께 사그라들게 되었다. 물론 볼드모트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암튼, 마법 초보자인 해리가 무시무시한 어둠의 힘을 내뿜는 볼드모트를 꺾게 만들었던 '마법사의 돌'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돌은 오래전 '연금술사'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귀한 돌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실체는 없으며, 때문에 아무도 본 적도 없고, 형태도 알지 못하며 '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물질'이다. 하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연금술'에 꼭 필요한 재료였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연금술'은 아직까지 누구도 실현시키지 못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 재료인 '마법사의 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마법사의 돌'은 실체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 어떤 물건이라도 '값비싼 황금'으로 만들 수 있는 핵심재료이긴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금술사라면 누구라도 '마법사의 돌'을 발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더랬다. 그렇게 연금술사들의 지혜가 모이고 쌓여가면서 '마법사의 돌'은 점점 '현자의 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실체가 없는 '상상의 물질'이 되면서 연금술사들의 갖추어간 지혜가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당시 최고의 '지성'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따라서 연금술사가 황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황금에 못지 않은 '새로운 물질'과 '해박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니 연금술사의 노력이 헛된 것만은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과거의 연금술이 오늘날에는 '화학'이라는 이름으로 재정립이 되었고, 현대는 '화학물질'이 없었다면 첨단제품은커녕 일상생활조차 누리지 못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학문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법사의 돌'이 가진 힘은 실현불가능한 일조차 거뜬히 해내는 힘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의 제목으로 '마법사의 돌'이 선정되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이룰 수 있는 힘의 원천을 갖게 된다면 무슨 소원을 빌겠는가? 책속에서 해리는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아직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1학년 꼬마아이의 소원으로 너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그 힘을 그런 식으로 쓰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순리를 거스른 댓가를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을 거라며, '죽은 자'를 되살리는 소원은 내려놓으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볼드모트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는 과정을 해리 포터는 쭉 지켜보게 된다. 물론 '죽음조차 초월하는 엄청난 힘'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가지게 되지만, 그보다는 친구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엄청난 힘'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대신 '사랑과 행복'을 얻게 되는 과정을 매 학년마다 꾸준히 보여준다.

 

  당신도 그럴 수 있겠는가? 죽음조차 초월하는 '최강의 힘'을 포기하고, 친구의 우정과 가족의 사랑,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어른들은 감히 '선택'할 수 없지만 해리와 그 친구들은 우정을 지키기 위해 '마법사의 돌'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욕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마법사의 돌'이 힘을 제대로 발휘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해리가 아닌 어른들이 '마법사의 돌'로 해결하려 들었다면, 볼드모트의 부활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어쩌면 '또 한 번의 마법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성장 동화>를 읽다보면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어른들이 '직접' 해결하면 될 일을 가지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아이들이 모험을 떠나고, 아이들이 악당을 물리치는...도대체 왜 '힘든 일'은 죄다 아이들에게 맡겨놓고 어른들은 무책임하게 '방관'만 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해리 포터>를 읽다보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은 일을 해결하기는커녕 사태를 악화시키기 일쑤라는 것을 말이다. 도무지 양보라는 것도 모르고 대화와 타협도 할 줄 모르며, 오직 싸우고 뺐고 이기는 것에만 열을 올리고마는 어리석기 그지 없는 족속이 바로 어른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현명하다' 싶을 정도로 사건의 핵심을 파고들고, '욕심'을 포기할 줄도 알며 '싸움'을 멈출 줄도 안다. 아이들조차 알고 있는 이런 지혜를 왜 어른이 되어선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일까. 다음 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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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1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20주년 개정판)
J.K. 롤링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년 전의 추억을 다시 꺼낸다는 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마치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며, 때로는 군데군데 빈곳을 채우지 못해 그대로 방치해 버리기 일쑤인 탓이다. 심지어 왜곡되고 윤색되다 못해 '거짓'을 진실인냥 새로 채워넣기도 한다. 없던 사실마저 있었던...아니, 있었음직한 '허구'적 사실로 변질되곤 하니..애초부터 꺼내지 아니하는 것보다 못한 일이 태반일게다. 허나 '오래전 책'을 다시 꺼내드는 일만큼은 아무런 부담이 없다. 심지어 옛 기억과는 사뭇 달라도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다르면 다를수록 '읽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니 매우 유익한 일이기도 하다. 그 오래전, '공전의 히트'를 쳤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마침맞게 '새 뒤침(번역)'이 나왔으니 더할나위 없겠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가난한 미혼모였던 롤링 작가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소설임과 동시에 '판타지 소설'의 교과서가 되어 버렸다. 마침 <해리포터>가 유행하던 시절에 '논술교사' 자격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아주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해리포터> 이전에 '판타지의 교과서'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었더랬다. 물론, 아동문학에서 다루는 '판타지 소설'의 계보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판타지 장르'의 개척자는 분명 톨킨이었다.

 

  하지만 톨킨의 판타지는 어린이들이 '접근'하기에 쉬운 장르는 아니었다. 너무 많은 종족이 등장하고, 너무 방대한 서사를 품고 있었으며,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 난해한 '세계관'을 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시대상도 너무나 옛날이었다. 중세시대의 기사들이 등장하는 <원탁의 기사> 풍의 '성배 이야기'가 주된 모티브이면서, 온갖 몬스터급의 괴물종족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중세보다 훨씬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이 등장하기 이전의 세계라야 '오크', '난쟁이(드워프)', 그리고 '엘프' 등과 같은 종족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시대에는 온몸에 갑옷을 두르고 말을 타는 '기사'는 없었다. 그래서 톨킨의 세계관은 '어른의 영역'이었다.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그 속에서 묘한 호기심과 동경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경험을 거친 닳고 닳은(?) 어른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 까닭에 <해리포터>의 등장은 어린이들에게 반가운 일이었다. 일단 시대상이 '현대물'로 친근했고,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이 어린이 독자들과 '같은 또래'였다는 것이 가장 잘 먹혀들어갔다. 그런데도 어딘선가 들었을 법한 '익숙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법사와 마녀들의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갔으니 당시 어린아이들의 호기심이 대폭발했던 것이다.

 

  이렇게 인기를 거듭거듭 급상승하게 되자 '판타지 교과서'라는 그럴 듯한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판타지 세계'를 그린 작품의 완성도는 [현실세계-판타지세계-다시 현실세계]로 되돌아오는 '완성형 구성'으로 짜여져야 하는데 <해리포터>가 딱 그렇다는 얘기다. 거기다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이어주는 분명한 통로가 등장해야 한다는데, <해피포터>에서는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이라는 명확한 통로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영국의 낡은 기차역인 '킹스 크로스'역은 <해리포터> 덕분에 인기 관광명소가 될 정도였단다. 뭐, 직접 가본 적은 없기 때문에 '팩트체크'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암튼, 이렇게 인기를 끌던 소설이었는데 요즘 어린이들은 조금 시들한 모양이다. 심지어 <해리포터>를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격세지감이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서론은 이쯤하고, <해리포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몇 자 적어보려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1권에 해당하는 <마법사의 돌>은 뒤에 이어질 7권까지의 내용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법사의 돌>을 철저히 분석하면 술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편으로 나뉘어진 <마법사의 돌> 가운데 1편인 이 책은 외롭고 불쌍한 해리 포터가 자신도 모르는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머글(평범한 인간)들이 사는 현실세계와 마법사(위저드)와 마녀(위치)들이 사는 마법세계가 존재한다는 환상적인 세계관을 펼쳐 멋드러지게 작가는 그려냈다. 이렇게 광대하게 펼쳐낸 세계관 속에 '외롭고 불쌍한 줄' 알았던 해리 포터가 실상은 '인기절정의 유명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비극적인 탄생 배경'과 묘한 어우러짐을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나중 일이지만 현실과 마법세계, 모두를 구해낸 영웅이 고작 '열한 살의 어린이'라는 사실에 어린이 독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별로 어렵지도 않고 다분히 평이한 '세계관'으로 전세계 어린이 독자들을 단번에 사로잡게 된 비결은 과연 이뿐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해리포터>에는 현실에서 곧잘 마주하게 되는 '차별'이라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름을 말해선 안 되는 존재'의 등장이다. 모두가 알면서도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래서 종종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문제이기도 한 '차별문제' 말이다. 다름 아닌 <순종 vs 잡종>이 이 책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핵심문제다. 다시 말해, 순수한 혈통이 우월하다는 저변의식 때문에 마법세계를 뒤흔드는 대사건이 벌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잡종에 해당하는 '혼혈'과 '머글(마법을 할 줄 모르는 평범한 인간)'은 사라져줘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살육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 바로 '볼드모트'였으며, 그런 '악의 화신'과도 같은 이를 따르는 '순수한 혈통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부릴 줄 모르는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죽음을 선물했던 것이다.

 

  허나 '마법의 실력'과 '순수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탓에 '볼드모트와 그 추종자들'을 제압한 마법사와 마녀들이 있었으니 호그와트 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 출신의 '선한 의지'를 갖춘 정의의 사도들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호그와트의 교장을 지내고 있는 알버스 덤블도어다. 덤블도어는 볼드모트 패거리들과 대등하게 싸우며 '악의 무리들'을 무찌르고 있었는데, 볼드모트가 해리포터의 부모를 죽이고, 어린 아기였던 포터까지 악랄한 저주 주문으로 죽이려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죽고 말자.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하나둘 모습을 감추고, 기회를 봐서 변절하고 배신을 하는 등 '정의의 사도' 측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마법세계'는 평화를 되찾았고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암튼, 그런 비밀을 간직한 채 포터는 더즐리 이모부의 집에서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열한 살 생일 즈음에 해리포터에게 '편지'가 배달 된다. 처음엔 한 통이었지만 나중엔 셀 수 없이 많던 바로 '그 편지' 말이다. 그 편지엔 '호그와트 마법학교 입학을 허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로 인해 해리 포터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마법사'로 말이다. 물론 아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 마법사'지만 말이다.

 

  이쯤해서 호그와트 학교를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이 학교는 마법사와 마녀들을 가르치는 유서 깊은 학교로 '네 개의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기거하며 여러 마법을 배우는 곳이다. 기숙사는 각각 용감한 그리핀도르, 선량한 후플푸프, 정의로운 레번클로, 그리고 지혜로운 슬리데린으로 나뉘어 있다. 어느 기숙사에서 배우든지 훌륭한 마법사가 되는 것에는 분명하지만, 호그와트 학교 내에서는 기숙사간에 '선의의 경쟁'을 통한 '배움의 장'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해리 포터를 비롯해서 수많은 학생들이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며 훌륭한 마법사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기숙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순종과 잡종'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학생들 간의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심지어 교수들조차 그런 편견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는 '그 사람(볼드모트)의 추종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특히, 볼드모트가 머물며 마법을 익혔던 '슬리데린'은 여전히 '순수한 혈통의 마법사'만이 마법을 배워야 한다며 해리 포터 일행을 괴롭히고 곤란하게 만들곤 한다.

 

  분명, 마법 실력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왜 이런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끝끝내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일까? 이는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과도 쉽사리 연상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어린 독자들까지도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바로 '우월의식'이 저변에 깔리게 되면 좀처럼 고칠 수 없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순수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박탈 당해 마땅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쉬움과 동시에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 또한 쉽게 떠오르게 만든다. 허나, 그러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서 문제다.

 

  왜냐면 '순수'가 어느 정도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쉽게 혹하는 속성을 악용해서 '미움'을 차별하고, 나아가 '제거'하기까지 하려들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도 쉽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움받는 존재'가 아름다움과 맞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테면, 잘 생긴 애가 못 생긴 애를 아무 이유도 없이 때렸는데, 못 생긴 애는 맞아서 울고 잘 생긴 애도 덩달아 따라서 울고 있다면 당신은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심지어 잘 생긴 애가 울면서 자신이 맞았다고 '거짓말'까지 하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못 생긴 애가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하려해도 좀처럼 믿지 않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그런데 해리 포터가 당당히 '못 생긴 애(혼혈)'의 편을 들어주려 한다. 마법세계의 인기절정의 꼬마법사가 '잘 생긴 애(순수한 혈통)'들과는 반대의 편에 서서 마법세계의 문제점을 바로 잡으려 한단다. 이야기가 점점 재밌어지지 않겠는가? 다음 편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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