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사 산책 13 - 미국은 '1당 민주주의' 국가인가? ㅣ 미국사 산책 1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평점 :
[My Review MDCCLXXXIX / 인물과사상사 20번째 리뷰] 미국은 '다문화사회'다. 다양한 인종과 수많은 민족이 미국이라는 '하나의 사회'로 묶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바라보는 미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이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보수쪽은 이를 한데 섞여서 융화된 '용광로 사회'로 보았고, 진보쪽은 융화되기보다는 골고루 섞여 있는 '다양성 사회'로 보았다. 미국에서는 이를 '멜팅 스폿(융화)'과 '스뫼르고스보르드(공존)'라고 부른다. 허나 어느 시각으로 바라보던 '재미교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LA 흑인폭동(1992)'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이 폭동은 백인 경찰이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을 집단 폭행한 사건으로 촉발되었는데, 전형적인 흑백갈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는데도 폭력시위는 엉뚱하게도 '한인타운'으로 번졌고 끝내 '한국계 미국인 vs 흑인 미국인'의 양상으로 갈등양상이 폭발된 것이다. 물론 흑인들이 한인상가를 골라서 테러한 것에 대한 까닭이 있다. 바로 '두순자 사건(15살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 살해 사건)'이다. 한인상가의 주인이던 두순자가 매장에서 흑인 소녀가 '오렌지 주스'를 훔치는 것으로 오인해서 다퉜는데, 흑인 소녀가 두순자의 얼굴을 네 차례 폭력을 가하자 방어 목적으로 권총을 깨냈다가 오발탄이 그만 소녀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었다. 당시 권총이 '고장이 난 상태'였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두순자보다 훨씬 어린 소녀였으나 덩치는 월등히 컸던 탓에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다 '고장난 권총'으로 벌어진 사건이라 무죄 판결이 났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다수의 흑인들은 '미국땅'에서 성공과 출세만을 위해 백인들에게 알량거린다며 '한국계 미국인'들을 향해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고, 로드니 킹 사건으로 폭동이 시작되자 '백인 경찰'들은 백인거주지역에만 방어선을 형성하고 성난 폭동자들을 '한인타운'으로 내몰았다. 이에 LA한인사회는 밀려오는 폭동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방어에 나서게 되는데, 그로 인한 엄청난 사상자와 재산피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미국사회에서 백인들이 외면한 '소수인종간 갈등'으로 비화된 LA폭동은 이후 '한인사회'와 흑인 미국인간의 대화와 타협, 그리고 화해의 장을 마련하면서 수습되었지만, 이로 인해서 '한인사회'는 자신들도 미국사회에서 얼마든지 '차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교훈을 남겼다. 물론 백인들의 '아시아계 인종차별'은 수없이 받았고 익히 알고 있는 문제였지만, 같은 '소수인종'인 흑인들과 라틴계(폭동 당시 가장 많이 참여하고, 가장 많은 폭력과 약탈을 했다) 이주민들 사이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소외되고 미움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까닭인 즉슨, 재미교포들이 미국사회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백인처럼' 행세했다고 비춰진 것이다. 쉽게 말해, 백인처럼 땅을 사모으고 빈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며 '저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악착같이 성공과 출세를 위한 행보만을 보이는 경향이 강했던 탓이다. 백인도 아니면서 백인처럼 구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이 빈곤한 미국인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재미교포'들도 할 말은 있다. 근면과 성실이야 한국인들의 DNA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빈곤해서 겪는 어려움은 '나라 잃은 설움'과 '전쟁 발발'로 인해 뼛속 깊이 박혀 있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백인'을 따라하는 것이 무에 잘못이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빈곤한 소수인종들의 눈에는 그런 '한국계 미국인의 모습'이 가증스럽게 보인 것이다. 그렇게나 어려움을 잘 아는 소수인종이면서 고작 1달라 남짓한 오렌지 주스를 훔쳤다고 총으로 쏴죽이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고장난 권총'으로 인한 명백한 실수라 하더라도 억울함에 치밀어올라 분노에 휩싸인 성난군중들의 눈에는 '남의 땅'을 빼앗고, '인권'을 유린한 백인들과 한통속으로 비춰졌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사회에서 '융화'되지 못한 것일까? '공존'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당당히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어차피 미국사회는 '융화'되기 힘든 사회다.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데도 '인종차별'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으며, 수많은 민족이 이주해 갔는데도 '공존'은커녕 '각자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오늘날에도 미국사회는 '백인우월주의'가 팽배하다. 미국내에서조차 순수한 백인들이 점점 '소수'로 전락해가고 있는데도 미국 경제의 90%를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소수 엘리트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융화'과 '공존'을 떠들어봐야 그들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을 게 뻔하다. 그럼에도 미국내 다수의 유권자는 명백하게도 '유색인종'이다. 미국 인국의 절반을 넘은 지 오래이며 7~80%가 '유색인종'이며, 많이 봐줘야 백인유권자는 2~30%밖에 안 된다. 하지만 성공한 엘리트만 따로 본다면 여전히 백인들이 90% 이상이며, 꼴랑 10%도 넘지 못하는 '유색인종'만이 성공한 백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뿐이다. 미국사회도 경제적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심각해진 것이다. 거기다 경제성장 둔화로 인해 미국에서는 '빈곤한 노동자들'이 점점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빈곤층에 대한 '사회제도정책'마저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나날이 감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찍부터 이런 차별정책으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던 '흑인사회'에 '한국계 미국인'들이 불쏘시개를 던져준 것과 같은 효과를 낸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존'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사회에 녹아든 '융화정책'에 한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한국계 미국인'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 그래야 다시는 'LA폭동'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고 출세했을 때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도 '빈곤한 백인들을 위한 정책'을 시연하는 척해서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지 않았느냔 말이다. 물론 그 정책이 실제로 실현되었는지는 좀더 검증해봐야겠지만,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한국계 미국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인 지도자가 백인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흑인 지도자가 흑인을 위한 정책을 쏟아낼 때, 우리 '한국계 미국인' 지도자가 등장해서 모든 미국인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낼 준비가 되었을 때, 미국은 다시금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사회에서 융화와 공존을 넘어선 '한국계 지도자'가 정계와 제계에 두각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 흑인들도 하원의원을 배출하고, 상원의원을 배출한 뒤에 끝내 '오바마 대통령'을 선출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한국계 미국인'이 주류에 나서야 할 때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는 죄다 '백인의 몫'이긴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계속 있어왔다. 제3당의 출현은 언제나 미국사회에서 이슈를 몰고 다녔기 때문이다. 요원한 일이긴 하지만...
강력한 미국을 제창했던 레이건 대통령 시절을 이어받은 '아빠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강한 미국을 표방했지만 '경제지표'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클린턴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제42대 미대통령은 '빌 클린턴'이 당선되었다. 그 유명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말이다. 이로써 90년대 미국은 경제대국으로 다시 발돋움 했을까? 여전히 초강대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미국이었지만 '경제문제'만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이기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관세무역 장벽을 없애고 궁극적으로 미국경제의 회복을 위한 무한이기주의의 발효였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기술, 캐나다의 자원, 멕시코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단일 통합 시장'을 구축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언제나 주도권을 잡는 쪽은 '거대자본'을 대는 쪽이었고, 주도권을 잡은 쪽에서 온갖 이권을 챙기기 마련이었다. 허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라, 값싼 자원과 노동력이 제공되자 상대적으로 미국내 자원가격 하락과 노동시장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높은 기술력'으로 얻은 이익보다 심해진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만 심각해질 뿐이었다. 그나마 90년대에는 큰 문제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 문제가 두드러지게 된 셈이다.
이렇게 경제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와중에 '클린턴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주목을 끈 사태는 '아이티와 북한'에서 비롯되었다. 아이티 사태는 프랑스와 미국을 종종 곤란하게 했는데, 이는 따지고 보면 프랑스와 미국이 자초한 일이다. 제때에 아이티를 독립시키고 경제안정을 이룬 뒤에 민주정권이 들어서게하여 안정시켰다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독재정권의 등장'과 '자연재해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인데, 아이티에서 이 두가지 문제로 곤란을 일어날 때마다 미국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대표적인 문제가 '아이티 난민문제'다. 독재정권에 맞서다 가까운 미국으로 망명하는 것도, 경제난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것도 '처치곤란'하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한편, 1994년 북한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며 영변 핵실험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서구사회가 이를 방해한다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것이며, 이로 인해 한반도는 다시 통일되겠지만, 남한의 핵발전소과 파괴될 것이며 미군을 비롯해 남한 인구 100만 명이 몰살 당한 뒤에야 가능할 일이라며, 미국의 전쟁시나리오 추진에 북한이 극렬한 반응을 내비치게 되었다. 이에 미국의 CIA는 북한의 발언이 괜한 발언이 아니라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클린턴 행정부'에 속속 보고를 올리고 있었단다. 이에 평화의 해결사로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각각 '아이티'와 '북한'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결론만 놓고 보면 카터의 특사파견은 대성공이었다. 아이티의 독재정권이 '반미정책'을 철회하였고, 북한 김일성도 한미 경제지원을 받는 대가로 '핵시설 가동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과도 잠시 '김일성 사망'으로 인해 북한은 김정일 후계자 구도의 혼란으로 남북관계는 다시 불안해졌으며, 아이티의 경제난도 하루 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여전히 문제는 '현재진행중'이었다.
그나저나 미국사회는 끊임없는 총격사건으로 인해 '폭력문제'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총기사고로 죽어나가는데도 '총기소지'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총기를 들고 싸우는 강한 미국인의 이미지만 더 강해질 뿐이었다. 이러한 '마초 기질'은 강한 남성에 대한 동경을 부추겼고 이로 인한 '섹스 스캔들'과 '선정성'은 텔레비젼을 통해 '안방'까지 침투했다. 특히, 90년대 TV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선정성과 폭력성은 극을 달릴 정도였다. 수많은 평론가와 사회운동가 들의 지적에도 <베이 워치>와 같은 드라마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해변에서 수영복 하나 달랑 입고 젊은 남녀의 몸을 클로즈 업하다가도 매회마다 '충격적인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살인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데도 미국민들의 '섹시한 등장인물들의 강한 액션'에 환호했다. 또한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로보캅>과 <다이하드>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여과없이 연출되었고, <쥬라기월드>처럼 호대형 블럭버스터 영화가 연이어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은 점점 폭력과 섹스로 물들어갔다. 그로 인해 '픽션'이 아닌 '논픽션'인 현실에서도 똑같이 살인, 강간, 성폭력 등등의 테러가 끊이질 않았다. 과연 이것이 미국인들이 진정 바라는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