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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산책 17 - 오바마의 미국, 완결 ㅣ 미국사 산책 1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평점 :
[My Review MDCCCV / 인물과사상사 24번째 리뷰] 어느덧 미국사를 산책하는 내 여정도 마무리에 도달했다.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반 년동안 읽어 재꼈는데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이 먼저 든다. 허나 '읽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이 늘 더 많은 까닭에 나중에 '발췌독'으로마나 기억의 편린을 더듬으며 참고하는 방식으로 재도전을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런 까닭으로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총 17권)은 훌륭한 책이었다. 정통 '미국사'만을 조명한 책이 아니라 미국사와 관련이 있다면 유럽을 비롯해서 전세계의 역사적 이슈를 모두 아우르고, 역사 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 사회전반의 문화현상까지 다채롭게 조명한 까닭에 조금은 '난삽한 책'으로까지 보일 정도로 다양한 이슈를 총망라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다채로운 조명이 '역사분야 초보독자'에게 진입장벽(?)을 한껏 낮춘 결과를 낳기도 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읽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니 살짝 애매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직하게 읽어나가면 '미국사의 흐름'이 보일 것이기에 여타의 미국사 책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애초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까닭은 '한국인은 미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물론 내가 '한국인'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기에 어디까지나 '나만의 견해'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미국을 '어떤 나라'로 평가 내려야만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읽었다. 나 어릴 적 '반공교육'을 받을 때만해도 미국은 '우방'을 넘어 '맹방'이었고, '혈맹'인 나라였다. 한마디로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구한 '고마운 나라'였고,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켜낼 유일하고도 '위대한 나라'였다. 그러다 현대정치의 파란을 일으켰던 1987년 '6월 항쟁'의 진면목을 이해할 나이가 되자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반감과 함께 그런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방관했던 '미국의 실체'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더랬다. 그렇게 생긴 의구심은 계속 더해만 갔다. 6월 항쟁보다 앞선 '광주민주화운동'에서도 미국은 전두환 정권을 지지했고, '한일청구권협정' 때에는 박정희 정권을 압박해서 미국의 입장에서 더 유리한 '일본의 편'을 들었으며, '한국전쟁' 때에 우리를 도와주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미군철수 이후에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이며, 일제 패망 직후 한국에 상륙(?)한 미군을 열렬히 환호하던 한국인들을 사살해버린 일들하며, 훨씬 더 앞서서 고종이 '조미수호조약'을 근거로 일제의 야욕으로부터 미국의 도움을 절실히 원할 때, 미국은 이미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근거로 조선이라는 카드는 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이러한 미국이 과연 한국에 도움이나 되는 나라인가 말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한국은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것이 '사대주의'든, '숭미주의'든 상관이 없다.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는 미국을 철저히 이용해 먹을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장 궁극적으로는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낑겨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이다. 물론 북한도 무시하지 못한 상대이지만, 대한민국이 압도적인 위력으로 북한을 품을 수 없을 정도라면 애초에 다른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논할 가치조차 없기 때문에 북한은 논외로 놓는다. 실제로도 대한민국은 북한을 모든 면에서 압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북핵'이니 '종북사상'이니 공산주의 체제 자체를 두려워하는 부류가 있기는 한데,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본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더는 북한과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 발발한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대한민국을 건들고서 살아남을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북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감히,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심지어 미국 일지라도 대한민국과 전쟁을 벌이고서 살아남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대한민국 '군사력'은 세계 10위권 안에서도 자체적으로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군사강국이라 불리던 나라에서도 현재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있는데도 '무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오랜 평화로움이 가져온 부작용이었다. 그래서 안보를 위해서라도 '무기생산라인'을 풀가동시키고 있는데도 제대로 공급하기 위해선 2030년 이후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공백에 '무기수출'을 하며 방산수출 호황을 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세계에서 무기생산라인을 꾸준하게 가동하면서도 첨단기술까지 도입하며 최신예무기를 양산하고 있는 나라가 유일하게 대한민국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한민국은 '만들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못 만들 무기가 없는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춘 나라여서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다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런데도 이런 '강대국의 조건'을 갖춘 대한민국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쩔쩔 매고 있는 상황이 웃기다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눈치를 보며 지내야 하는가? 이제는 전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야 할 시점이 아니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대주의와 숭미주의에 젖어 있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실체'를 엿보고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미국사'를 다시금 들여다보려 했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역사는 매우 짧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가 보기에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을 한 미국의 역사는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미국은 불과 200여 년만에 전세계를 주름잡는 '초초강대국(하이퍼 파워)'이 되었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제국주의'로 팽창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빠르게 제국주의 대열에 뛰어들 수 있었던 원동력을 세 가지로 꼽는데, '국토의 축복', '선민의식',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한다. 국토의 축복은 말 할 것도 없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을 잇는 거대한 북미대륙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독립선언 당시의 초기 13개주의 영토를 가지고서 불과 100년 안 되어서 광활한 북미대륙의 절반을 자국의 영토로 차지했다. 이런 축복(?)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강대국은커녕 가난한 농업국가를 면치 못했을 지도 모른다. 현재의 남미국가들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땅덩어리가 크다고 해서 모두 강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선민의식'이라는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미국의 영토확장 야욕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하느님'이 미국인들에게 준 선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인들에게만'이라는 의식을 덧붙이게 되면 미국식 선민의식이 된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벤치마킹한 것이기도 하지만, 선민의식에 더해서 '예외주의', '캘빈주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등등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을 모두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논리로 포장만 하면 다 되는 만능주문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미국이 하는 일은 다 옳다'는 생각이 미국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미국사의 발전과정이 딱 여기에 들어맞는다. 미국은 '프론티어(개척, 도전) 정신'을 내세워 영토를 넓혔고, 자신들의 사상을 전세계에 각인시켰으며, 무수히 많은 전쟁을 벌이면서 미국의 패권을 확고히 했다. 이렇게 '한 손엔 당근, 다른 손엔 채찍'을 들고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야마는 미국인들이 있었기에 불과 200여 년만에 세계를 제패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모습이 어째 익숙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업적과 일맥상통하지 않느냔 말이다. 바로 '압축 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 근대화 이후에 미국이 보여줬던 성공비결을 고스란히 벤치마킹한 대한민국이 전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한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단 말이다. 이를 두고서 강준만은 미국의 역사를 '제2의 한국'라고 평가내렸다. 미국의 역사보다 한국의 역사가 더 오래되었으니, 한국이 미국을 베낀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을 베꼈다고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성장발전'에 미국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보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급성장하였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어떠해야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선진국 대열'에 낑겼다. 더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수준 낮은 '면피용 명함'을 내밀고서 얍쌉하게 성장발전할 수 있는 꼼수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다른 선진국이나 강대국 들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는 행보를 걸어야 하며, 동시에 '코리아 스탠다드'를 다른 나라에게 강요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경제적, 군사력 위력을 앞세워서 무조건 따르다는 '제국주의 열강시대'는 저물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기준을 표명하고 따르도록 꼬셔야 한다. 여기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 있다. 바로 '한류열풍'이라는 'K-컬쳐'가 전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이라는 점도 한류열풍에 순풍을 달게 했다. 과거의 제국주의가 무력을 앞세워 식민지 쟁탈을 벌였던 것에 비해 대한민국의 한류열풍은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제스쳐로 압도하고 있기에 더욱 위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순풍에 돛을 활짝 펴고 전세계에 '대한민국 스탠다드'를 널리 홍보한다면 더욱더 성장발전하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이 전쟁도 불사하며 겨우 얻어낸 것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것이 더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류열풍'과 'K-컬쳐'의 대유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은 조심해야 한다. 앞서 우리가 미국과 한국의 성공비결로 꼽은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이 한국에서는 대단한 효율을 냈지만, 그로 인해 '사회적 문제'도 만만치 않게 팽배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불과 100여 년 전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세계대전을 방불케 한 전쟁으로 온국토가 폐허가 된 경험을 했다. 그런 뼈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배고픈 시절'을 극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한민국을 이토록 성장발전 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허나 '성장발전'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랜 시일을 두고 조금씩조금씩 고쳐나가는 지난한 과정도 동시에 겪었지만, 우리는 '압축성장', '물질주의', '각개약진', 그리고 '승자독식'이라는 것을 내세워 이런 발전속도에 따라오지 못한 이들을 그대로 방치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국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묻어두고 방관한 결과라는 점을 무시하면 안 된다. 오랫동안 미국을 '성장모델'로 삼고 뒤쫓았던 한국이기에 이런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하지만 '똑같은 역사'가 연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비슷해 보이는 귀결적 역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원인', '다른 상황'에서 기인하고 '다른 결과'를 도출하곤 한다. 그런데도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다름 아닌 '사람의 실수' 때문이다.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또다시 전쟁이 벌어지는 까닭은 '역사'를 통해서 배웠던 지혜를 까맣게 잊고서 '실수'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던가. 그런데 '강대국들이 저지른 실수'까지 똑같이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나아가야 할 운명을 지녔다. 전세계 선진 강국들은 모두 '무력'을 앞세워서 이뤄낸 성과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무력'이 아닌 '문화'를 내세워 평화적으로 선진 강국이 되지 않았느냔 말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경제성장을 위해 '베트남 파병'을 보내고, '방산무기수출'을 하며 무력적인 모습을 띤 것도 있다. 허나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이후 '단 한 번도' 선제공격을 하며 침략적 정책을 추진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언제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외관계를 유지하며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나라다. 이는 반만년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인 '미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사대주의나 반미주의의 근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조차 철저히 이용해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이 그얼마나 대한민국의 등골을 빼먹었는지 잘 안다면 미국을 곱게 되돌려보내줘서도 안 된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이젠 대한민국이 미국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어야 한다. 덩치가 크니 빨아먹을 게 얼마나 많겠냔 말이다. 그러려면 '미국'을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이 대한민국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갑을 열고 마음껏 돈을 펑펑 쓸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해내야 할 일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