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이 있는 구석방 (異之我_또다른나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31 Oct 2026 00:43:03 +0900</lastBuildDate><image><title>異之我_또다른나</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28876216393471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異之我_또다른나</description></image><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조조는 정녕 나쁜놈이어야만 할까?  - [전략 삼국지 12 - 남양의 공방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603393</link><pubDate>Fri, 30 Oct 2026 23: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6033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536370&TPaperId=176033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2/coveroff/k58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536370&TPaperId=176033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12 - 남양의 공방전</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12 : 남양의 공방전&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XXIX / 대현출판사 1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여덟 번째 리뷰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 &lt;전략 삼국지 12&gt;다. 11권 마무리에서 유비가 '조조의 품'으로 가 버린 뒤였는데, 12권 마무리에서는 유비가 다시 소패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 사이에 원술이 황제를 칭하자 조조는 원술 토벌의 기치를 내걸고 손책을 앞세워서 여포와 유비까지 대동하고 '남양 공략'을 시작한다. 그런데 '소설 삼국지'와는 사뭇 다른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통에 살짝 헷갈릴 정도였다. 만화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과감한 '건너뛰기'를 하나보다 싶었는데, 다시 이야기를 거슬러서 전후맥락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말았다. 아마도 '연재 당시'에 작가가 아차 싶었나보다. 뭐 어쨌든 &lt;전략 삼국지&gt;가 확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따질 게재는 아니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12&gt; 관점 포인트 : 앞서도 언급했지만 &lt;전략 삼국지&gt;는 '일본색'이 너무 강렬하다는 지적을 했다. 그 가운데 '무사도 정신'을 앞세워서 중국 한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그림에 나온 배경이나 전투 방식, 무구 장비 따위에 고증은 전혀 근거가 없다. 그래서 마치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를 보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 일으킬 정도다. 그리고 문제 삼을 것은 '폭력성'이 너무 짙다는 것이다. 하릴 없이 '전투 장면'만을 부각하고 전투 장면이 아니더라도 '살해 또는 학살 장면'만 포커스를 두어 그려내고 있다. 이 때문에 &lt;전략 삼국지&gt;가 비록 '만화 형식'으로 그려졌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들에게 장려하기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허나 일본의 만화로 그려진 덕분에 &lt;전략 삼국지&gt;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한 점이다. 과연 '애니메이션 왕국'이기에 가능했던 점이다. 그러나 그 애니메이션도 꽤나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와서 수많은 비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래저래 수작이라 할 수 있고, 의미도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대놓고 일독이나 시청을 권장하기에는 곤란한 작품인 것도 맞다. 그저 &lt;삼국지연의&gt;를 만화책으로 60권(애초에는 30권)으로 출간한 것은 한중일을 통틀어서 이 책이 유일하다 할 것이다.​12권에서 주목할 점은 조조가 장수의 항복을 받고 완성을 수월하게 점령했다가 장수의 형수인 '장제의 처 추씨'를 조조가 희롱한 덕분에 가가스로 죽음을 면했고, 그 때문에 호위무사였던 전위와 첫째 아들 조앙이 조조 대신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조앙의 죽음'을 다루지 않았다. '전위의 죽음'만 장렬하게 묘사하는데 그쳤다. 한편 장수 토벌에 실패한 조조는 여포 휘하에 있는 '진규 진등 부자'의 계략에 의해 필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원술은 '가짜 황제' 행세를 한 죄목으로 조조와 손책, 여포, 유비까지 합세한 총공격을 받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다. 한편, 조조는 남양 공략 당시에 자연재해로 진퇴양난에 빠지고 급기야 '병량부족 사태'까지 맞게 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병량담당자의 목을 대신 베어버리고 가까스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진땀승을 기록한다. 이로써 원술은 세력이 크게 위축이 되고 달아나버리는 꼴이 되었다. 다음에 계속.​나가는 글 : 이 대목에서 '진규 진등 부자'의 활약이 소설보다 더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서 나름 좋았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여포에 의해 서주성을 빼앗긴 유비를 돕기 위해 '진규 진등 부자'가 대활약을 펼치지만 끝내 서주가 조조에게 함락이 되자 '진규 진등 부자'는 마음은 유비에게 가 있지만, 몸은 조조에 속하는 상황에서 확실히 '조조의 편'을 드는 이랬다 저랬다 헷갈린 행보를 보여주는데, &lt;전략 삼국지&gt;에서는 애초부터 조조에게 귀의하는 형식으로 그려내니 훨씬 더 명확해지고, '진규 진등 부자'의 말과 행동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그렇다면 진규 진등 부자는 누구 편을 들었던 것일까? 여포에게 이익을 챙겨주기는 하지만 여포의 편을 든 적은 없다. 오직 여포의 손아귀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계책을 부린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최종적으로 조조에게 붙었으니 조조의 편이라 보면 좋을까? 그것도 아니다. 진규 진등 부자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조조에게 납작 엎드린 자세를 취하긴 하지만 조조를 맘속 깊이 우러 나온 충성을 바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유비의 편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진규 진등 부자'의 마음은 유비에게 기울어진 것이 옳다. 허나 유비는 서주를 스스로 지켜낼 힘이 부족했다. 그래서 진규와 진등이 계책을 써 여포를 배신하고 유비에게 서주를 되돌려주려 애썼지만, 결국 대세는 조조에게 있었기에 진규 진등 부자는 '조조의 품'에서 목숨을 부지하려 했다. 그럼 누구의 편이란 말인가? 오직 하나 '황제의 편'이었다. 왜냐면 그들 부자는 '한나라의 녹을 받는 충직한 신하'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조조에게 납작 엎드렸지만, 실제로는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기 우ㅣ해서 조조를 기만한 셈이다. 그럼 진규 진등 부자는 어찌하여 '유비의 편'을 들려 부단하게 애를 썼을까? 그건 다름 아니라 유비가 다스리던 서주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비는 황제의 숙부라는 명분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규 진등 부자는 유비에게 충성과 정성을 다 쏟고 싶었던 것이다.​한편, 조조가 군량이 부족했을 때 썼던 계책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리는 것이 좋을까? 30만 병사의 사기를 우선해야 할까? 군량담당자 단 한 명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까? 결론적으로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라면 군량담당자 한 명을 희생해서라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이는 매우 타당한 결정이었으며, 위급한 순간에 '딱 한 번'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기에 적절한 순간에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센스는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조조라는 인물이 '정말 비정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목숨을 빼앗는 방법을 조조라는 인물이 '높은 지략'을 소유하고 있다는 에피소드 정도로 소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냐는 것이다​물론, 이로써 나관중은 조조를 악역으로 만드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를 두고 지략이 높다느니, 실력이 좋다느니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합당하냐는 것이다. 매우 부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이지 않은가 말이다. &lt;삼국지&gt;에 이런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에 어린 독자들이 읽기에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여기에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폭력성'이 가미가 되니 더욱 극명하게 조조의 비정한 면모가 더욱 잘 드러나게 되었다. 거의 '여백사 살해 장면'과 맞먹을 정도의 비호감을 준단 말이다. 이렇게 조조를 악당으로 만드는 것이 정녕 옳은 일일까?​#리뷰 #에세이 #만화삼국지 #전략삼국지 #요코야마미츠테루 #가짜황제 #조조는나쁜놈 #책이있는구석방]]></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2/cover150/k58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4209</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손책과 여포는 닮은꼴?!  - [전략 삼국지 11 - 손책의 쾌진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601155</link><pubDate>Thu, 29 Oct 2026 2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6011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536370&TPaperId=176011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1/coveroff/k57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536370&TPaperId=176011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11 - 손책의 쾌진격</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11 : 손책의 쾌진격&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XXVIII / 대현출판사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일곱 번째 리뷰는 손책의 대활약과 유비가 조조의 품으로 숨어버리는 &lt;전략 삼국지 11&gt;이다. 유비의 시작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의병을 이끌고 패전을 모르고 대활약을 펼쳤지만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십상시들에게 뇌물을 건내지 않은 까닭에 쥐꼬리만한 '현위(현 지방파출소 소장쯤)직'을 받았으나, 그마저도 독우가 미처 받지 못한 뇌물을 챙기겠다며 찾아와 야료를 부리자 유비는 현위직을 내던지고 독우를 작살낸 뒤에 떠난다. 독우가 유비에게 현상수배를 걸자 유비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공손찬의 그늘'에 숨었다가 십상시의 난 이후에 다시 날뛰는 황건적 잔당들을 소탕하는 공을 세워 과거의 죄를 씻고 '평원 현령'을 지내게 된다. 이제 겨우 송곳만큼 세력을 키울 근거지를 갖게 된 것이다. 허나 세력을 키울 새도 없이 '반동탁연합군'이 일어나자 유비는 독자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lt;연의&gt;에서는 공손찬과 합류한 것으로 나오지만 '정사'에는 공손찬은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암튼 사수관과 호뢰관에서 연이은 대활약으로 유비삼형제는 널리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허나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를 하는 바람에 유비는 얻은 공도 없이 다시 평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조조의 아버지가 도겸의 휘하 장수에게 참살을 당한 뒤에 조조가 대학살을 하며 서주공략을 할 때 유비가 도겸의 편을 들어 조조의 공격을 중단시키고자 한다.​이때 여포가 빈집털이를 하면서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를 차지하게 되고 조조는 부랴부랴 퇴각한 뒤에 여포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결과는 일진일퇴 무승부라고 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허나 여포는 지구전에 약했다. 조조가 계략으로 여포를 압도하니 여포는 또다시 유랑길을 떠나야 했고, 그 사이 서주 태수가 된 유비의 품으로 들어가 소패성에 머물게 된다. 그럼 유비는 서주성을 차지하고 세력을 기를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럴 틈이 없었다. 조조가 천자를 허도로 데리고 오면서, 승상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조조는 황제의 명을 빌어서 주변 제후들에게 감놔라 배놔라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유명한 이호경식, 구호탄랑 계책으로 유비는 여포와 이간질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꾀가 부족한 여포는 이를 덥썩 물어버리고 유비가 원술을 공격하러 빈틈을 보인 틈을 노려 서주성을 빼앗아버린다. 그렇게 유비는 애써 안희에서 평원으로, 평원에서 서주로, 점점 세를 불려가는 듯 싶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여포에 이어 원술까지 유비를 공격하자 유비는 어쩔 수 없이 '조조의 품'으로 들어가고 만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길 바란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11&gt; 관점 포인트 : 손책은 아버지가 남긴 유물인 '전국옥새'를 원술에게 쥐어주고 약간의 병사를 빌려 '강동 평정'에 나선다. 손책은 파죽지세로 강동의 땅을 평정해나갔고, 유요에 이어, 엄백호, 그리고 왕랑까지 토벌하는데 성공하면서 강동 일대의 땅 전부를 손책이 차지하고 다스리게 된다. 이로써 그 옛날 패왕이라 불리던 항우에 필적하는 업적이라면서 손책을 '소패왕'으로 불리게 된다. 손색 없는 별칭이었다.​한편, 옥새를 쥔 원술은 황제에 걸맞는 지위를 얻기 위해서 주변을 평정하여 위엄을 널리 알리려 했는데, 마침맞게 손책이 빌려간 병사를 10배로 갚을테니 맡겨둔 '전국옥새'를 돌려달라는 전갈을 보낸다. 원술은 이 소식을 묵살하고 '정복야욕'을 드러낸다. 그래서 손책에게 공격을 지시했지만 주변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선다. 강동을 평정하는데 힘을 쏟았다가 도리어 여포에 의해서 '빈집'을 털릴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이다. 여포의 빈집털이는 어느덧 유명세를 떨쳤던 것이다. 조조의 연주을 털더니, 유비의 서주를 털었고, 이제 원술 차례가 될 수도 있다는 꽤 합리적인 이유를 들으면서 원술은 그럼 누굴 쳐야 좋은지 되물었다. 그러자 유비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여포가 유비를 도울 수도 있으니 지난 번에 약조한 '보상'을 챙겨보내주면서 유비를 치러가는데 길을 빌려달라 말하면 재물에 욕심이 많은 여포라면 반드시 유비 공략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말이다.​허나, 여포를 너무 만만히 보았다. 여포도 그 정도 계책쯤은 파악할 수 잇ㅇㅆ다. 아니 도리어 여포에 의해서 유비군과 원술군은 싸움 직전에 화해를 하게끔 기지를 발휘한다. 자신의 창을 100보 뒤에 꽂아두고 활을 당겨 맞추면 '하늘의 뜻'이니 전쟁을 멈추고 각 진영으로 군대를 되돌리는 것이 낫겠다고 다짐(?)을 받고 활을 쏘니 화살은 힘차게 날아가 여포의 창에 꽂혀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여포가 유비를 도와 원술군을 물러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으나, 장비가 여포의 말을 훔치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이 겹쳐서 으르렁 데다가 유비는 여포에게 쫓겨 어쩔 수 없이 '조조의 품'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음에 계속​나가는 글 : 손책도 그렇고, 여포도 그렇고, 정말 이들은 세력을 파죽지세처럼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다. 지략이 높고 낮은 차이점을 빼놓고 비교한다면, 손책과 여포는 매우 닮았다. 저돌적인 공격을 즐겨 사용하며 전투를 벌일 때에도 가장 앞선 자리에 가장 엄청난 공을 세우며 자신의 군대를 사납게 조련하는 방식 또한 그렇다. 그런 둘이기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것까지 닮았다.​만약 이 둘이 일찍 죽지 않고 유비나 조조만큼 오래오래 살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동오는 손권에 의해서 오래도록 지켜낸 강국이었다. 그런데 손권이 아닌 손책이었다면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조조보다 앞서서 장강 이남을 다 평정하고 오히려 조조의 뒤를 쳤을 것이다. 그래서 적벽대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장강이 아니라 황하가 주무대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한편 여포가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일단 관도대전의 주인공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여포가 오래 살려면 우선 '책사'가 절실했다. 만약 제갈량 같은 책사가 여포 곁에 있었다면 여포가 하북의 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싸움터에 나서면 '천하무적'으로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과감한 저돌적 맹공이 주특기인 손책과 여포의 무력 앞에서 다른 제후들은 벌벌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1/cover150/k57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4172</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문학책</category><title>결론이 좋다면 과정도 훌륭해야 한다  -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9090</link><pubDate>Wed, 28 Oct 2026 2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90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7754&TPaperId=175990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66/0/coveroff/k5521377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7754&TPaperId=175990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a><br/>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6년 04월<br/></td></tr></table><br/>&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gt;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6)[My Review MMCCCLXXVII / 넥서스Friends 1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여섯 번째 리뷰는 일본 작가가 쓴 판타지소설인데 대한민국 판타지 1위를 차지한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gt;이다. 뭐, 일본 오리콘 차트에 한국의 K-pop 가수가 1위도 하는 세상인데 그럴 수도 있지 싶으면서도, 우리 나라가 '판타지소설 분야'에서 우리 것으로 순위를 석권한 대표작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떠오르게 했다. 하긴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 지소설도 톨킨의 &lt;반지의 제왕&gt;과 롤링의 &lt;해리포터&gt;이니 우리 나라 판타지소설은 아니다. 아, 이우혁의 &lt;퇴마록&gt;을 판타지소설로 본다면 정말 세계적인 대표작이 될 만한데, &lt;퇴마록&gt;은 '호러·공포소설'로 분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긴 &lt;퇴마록&gt;을 좋아하는 나였기 때문에 '요괴'가 등장하는 레이코의 &lt;요괴의 아이&gt; 시리즈를 즐겨 읽었던 모양이다. 암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gt; 관점 포인트 : 요괴와 인간 간의 대전쟁을 끝낸 뒤의 이야기의 흐름은 '인간의 아이'가 좀 더 많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느낌을 준다. 그것도 '버려진 아이'의 이야기가 말이다. 사실 애초에 요괴 아이 돌보미를 맡고 있는 야스케도 '버려진 아이'였다. 그렇게 겨울 산속에 버려진 야스케를 구하고 살린 것은 센야라 불리는 대요괴 바쿠란이었고 말이다. 그 둘은 강한 끌림으로 서로를 끌어당겼고, 그렇게 맺은 인연은 끊질기게도 지금의 어른이 된 야스케와 다시 아이가 되어버린 센키치로 만나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릴 적 야스케가 센야에게 응석을 피우던 것처럼, 이번에는 센키치가 야스케에게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응석쟁이로 등장하면서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gt;라는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었다.​책 속의 내용은 대부분은 '요괴'가 등장하는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대전쟁'까지 벌어지는 판국에 다다르게 되자 '빌런'이라 부를 수 있는 '악당캐릭터'가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악당캐릭터는 대단히 비이성적이고 부도덕하며 결정적으로 '비인간적인 면모'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한껏 욕심을 부리는 캐릭터로 등장하곤 한다. 심지어 비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이들이 '인간캐릭터'라는 사실이 거의 충격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래서 책 내용을 읽다 보면 '인간이 요괴 같고, 오히려 요괴가 인간 같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도 악당이 악당짓을 하게 된 이유까지 밝혀지고 나면 악당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밝혀지면, 이게 또 악당이라고 막 미워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나 처지에 놓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게 말이다.​허나 그걸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남탓'이고 '환경탓'이다. 내가 나쁜짓을 하긴 했지만 '원래부터' 나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저놈이 날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니 '내탓'이 아니라면서 '남탓'을 하곤 한다. 또한 나는 선량한 사람이었는데 불우한 환경 때문에, 또는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어쩔 수 없이 나쁜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탓'이 아니라 '환경탓'이 더 크다. 듣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말이다. 착한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두고 '남탓'을 하지 않고 '자기탓'을 먼저 한다. 진짜 선량한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큰 잘못을 '자기가 부족한 탓'이라고 하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불우한 환경 탓'으로 떠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 멋진 사람은 그렇게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모든 것을 다 극복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일제시대 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하거나 매국에 앞장 섰다고 변명하는 사람도 있고, 그 시절이 너무 엄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얘기하며 선처를 바라는 뻔뻔한 사람도 있지만, 그 똑같은 처지와 상황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적어도 선처를 바라는 뻔뻔한 자들이 독립운동가를 모욕하거나 욕보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잘못을 저지른 악당을 선처하는 것은 둘째 문제고, 가장 처음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아무리 어려운 처지나 상황에 놓였더라도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지 않고 정의와 사랑의 이름으로 부끄럽지 않은 일을 했는지 여부다. 도덕과 윤리, 정의와 사랑은 어떠한 처지와 상황 속에서도 '절대불변'이기 때문이다.​나가는 글 : 이 책의 내용이 때로는 섬뜻하고 참혹할 정도로 불건전한 설정(특히, 어린 아이를 유기하거나 납치하는 대목따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즐겨 읽는 까닭은 바로 그런 처참한 이야기 속에서도 도덕과 윤리, 정의와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 '절대불변의 것'을 신념으로 삼고 온갖 부도덕하고 악의와 미움 따위를 처참하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어주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아름다운 마음을 갖도록 무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이 예뻐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괴 돌보미' 일을 하는 야스케의 모습이 더 없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다.​하지만 변덕스럽고 종 잡을 수 없는 '요괴들'이 펼치는 이야기라 지은 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형벌'로 단죄하기도 해서 경각심을 갖게 된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은 소중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어도 강한 힘으로 파괴하고 처단하며, 심지어 복수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려서 난도질을 하는 것에는 결사반대다. 그런데 이 책에는 종종 그런 장면들이 아무런 여과도 없이 그대로 연출되곤 한다. 아무리 악당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설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어린 독자들이 읽을 책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표현할 일이 있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선처나 용서도 없이 처벌만이 능사라는 식은 좀 자제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것이 아닐 대요괴의 분노라고 하더라도 말이다.​이런 서사는 일본 에도시대라는 '신분(계급)사회'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신분제가 엄격히 적용되었던 '시대극'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묘사한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 '그 시절의 독자'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독자는 '현대인'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시대극의 고증도 중요하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기에 불편함을 끼쳐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육아'라는 글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니 등장인물이 대부분 나이 어린 인물로 등장하는데, 10살 이하의 어린 인물이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깊고 깊은 원한을 품고 있으니 아무리 대요괴의 힘을 빌리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설정'은 좀 과했다고 본다. 어린이 독자들이 읽어서 탈이 날 것 같은 끔찍함은 배제했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6권에서 '말도 안 되는 부탁'과 '야만바의 아이'는 그 정도를 넘어선 듯 싶어서 좀 꺼려지는 내용이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부당한 권력의 힘을 사용해서 야스케의 모든 것을 앗아버리고 센키치는 '양아들'이란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노리개'감으로 삼으려 한 이야기나,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자신을 버리도록 만든 마을 사람들 전부와 친엄마와 친누이까지 모두 죽이고 마을까지 파괴해버리려는 복수심에 불타는 아이를 등장시키는 것도 많이 깨름직했다. 그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전개시켜놓고 엔딩은 '해피'하게 끝맺었다. '인과응보'와 '반면교사'라는 교훈적인 내용을 포함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런 교훈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토록 '폭력적인 방법'을 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주인공 야스케의 목숨까지 왔다갔다할 지경이었다.​암튼, 현재까지 나온 시리즈는 모두 리뷰를 했다. 작가가 1년에 한 권 꼴로 출간을 하는 것으로 보아 내년 2027년에 7권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10권까지 출간할 것이고 말이다. 기대가 된다.​#리뷰 #에세이 #요괴의아이를키우고있습니다 #히로시마레이코 #판타지소설 #요괴 #폭력적 #철학적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66/0/cover150/k5521377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660080</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문학책</category><title>자기가 잘못하고서 ‘남탓‘을 하면 지옥 간다 -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6839</link><pubDate>Tue, 27 Oct 2026 22: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68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0905&TPaperId=175968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07/0/coveroff/k2120309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0905&TPaperId=175968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a><br/>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5년 07월<br/></td></tr></table><br/>&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gt;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5)[My Review MMCCCLXXVI / 넥서스Friends 1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다섯 번째 리뷰는 대요괴들의 맹활약과 거대한 분노가 서린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gt;다. 히로시마 레이코의 작품 가운데 이렇게 대규모 전투씬(?)이 등장하는 것은 처음인 듯 싶다. 흡사 &lt;반지의 제왕&gt;에서 '종족간 전투'가 벌어지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물론 이런 대규모 전쟁이 벌어진 까닭은 앞선 이야기에서 '쓰쿠모가미' 요괴와 그 요괴가 깃든 물건을 소중히 다뤄줄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중매쟁이 주로'가 요괴들을 배신한 탓 때문이었다. 과연 주로는 왜 요괴들을 배신하고 '인간의 편'에 서게 되었나?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5&gt; 관점 포인트 : 이번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 vs 요괴의 전쟁'이다. 히메가미라는 무녀 출신의 인간 아이가 '요괴'를 도구로 삼아 '식신'이라는 꼭두각시 악귀로 만든 다음에 요괴들을 무차별적으로 보이는 족족 죽여버리려 했다. 그 까닭은 요괴 때문에 인간들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요괴를 박멸해야만 한다고 사람들에게 '세뇌'를 시켰고, 그 세뇌에 빠져든 사람들은 히메가미가 준 '식신'을 이용해서 힘이 약한 요괴는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 소멸시켰고, 요괴에 친하게 지내는 인간은 히메가미가 직접 나서서 '세뇌작업'을 한 뒤에 요괴를 죽이는 일에 앞장 서게 만들었다.​그래서 줄거리를 읽다 보면 '힘 없는 요괴'나 '힘 약한 인간' 들을 납치해서 소멸시키거나 잡아다 자신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감금시키고 '세뇌'시켜서 자기 편으로 만든 뒤에 요괴를 이용해서 만든 '식신'을 무기로 삼아 또 다시 요괴들을 잡아다 죽이려는 내용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히메가미라는 인간 아이는 왜 요괴를 그토록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건 자신이 인간이었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던 무녀의 삶 때문이었다. 히메가미의 원래 이름은 '리쿠'였다. 리쿠는 어린 나이에 무녀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막 세상사람들을 알기 시작했을 여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고독하고 정갈하게 살아가는 것을 강요 받는 무녀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재난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아직 어린 무녀의 신통함이 무뎌진 탓이라며 핍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것이 "다 네 탓이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리쿠는 그런 사람들의 핍박과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작은 몸짓'을 오해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 시체마저 절벽 아래로 던져지고 말았단다. 그 뒤에 마을은 더 큰 재앙이 찾아와 산사태가 일어났고 온통 흙더미에 묻혀 마을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그런데 죽임을 당한 리쿠는 자신이 죽은 것조차 '인간' 때문이 아닌 '요괴'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세상의 모든 요괴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히메가미'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어 자신의 부하로 삼고 요괴 퇴치에 나섰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요괴는 나쁘다는 '잘못된 신념'을 자신의 무리의 모토로 삼고 말이다. 그 뒤로 인간 마을에서 사라지는 요괴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앞선 마키의 요괴 엄마도 바로 이 무리의 꼬드김에 넘어가 '사악한 주술'로 포박 당한 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었다. 그럼 주로는 왜 배신을 했을까?​주로는 원래 인간이었다. 허나 인간으로서의 삶보다 요괴로서의 삶이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 기꺼이 요괴가 된 경우였다. 그렇기에 이런 주로가 요괴의 삶을 경멸하고 인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배신'을 했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들다.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다. 주로는 원래 '중매쟁이 요괴'였다. 인간들이 즐겨 쓰고 애정을 담아 소중히 다룬 '물건'이 쓰쿠모가미라는 요괴가 되는 것을 도와주는 요괴이며, 그렇게 쓰쿠모가미가 된 요괴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 '인연'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매쟁이 주로'가 하는 역할이다.​그런데 130년 전 주로가 처음으로 쓰쿠모가미 요괴를 만난 일이 이 대전쟁의 시작이었다. 바로 주머니칼 '키초'라는 쓰쿠모가미였다. 키초는 고귀한 아가씨를 위해 만들어진 호신용 칼이었는데, 그 아가씨가 그만 너무 일찍 죽고 만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키초는 '자신의 소임'인 아가씨를 지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에 아가씨의 무덤을 지키고 있다가 주로를 만나 새주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러다 주로가 리쿠를 만났을 때 외롭게 홀로 지내는 아이에게 딱 어울릴 만한 쓰쿠모가미라는 생각에 키초를 건내주었고, 리쿠와 키초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향해 강한 끌림을 느꼈고 함께 있어서 행복했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마을에 재난이 찾아왔고 이를 항의하러 온 마을 사람들에 의해 모진 일을 당하던 와중에 리쿠는 자신의 몸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키초'를 손에 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협한다는 오해를 하고서는 키초를 빼앗아 그대로 리쿠의 가슴에 꽂아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리쿠는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고, 키초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다른 사람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지만 새주인인 리쿠의 가슴을 찌는 것은 키초 자신이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고, 죽는 순간까지 함께였다. 그 뒤에 리쿠와 키초는 서로 '한몸'이 되어 히메가미가 되었고,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에 대한 원한보다 '요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이런 엄청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나가는 글 : 우리는 쉽게 '남탓'으로 돌리는 나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곤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대개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드는 '자기 이익'만 충족시키려는 헛된 욕심 때문에 그런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그래서 자신이 벌인 잘못인데도 '남탓'을 하면서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당장의 괴로움에서 쉽게 벗어나는 어리석은 짓을 벌이곤 한다. 이건 정말 비겁한 짓이다. 작게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짓이면서,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이면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불신'에 빠져들게 만들고, '혼란'을 부추기며,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위기'를 몰고 오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이렇게 무책임하고 자기 편한대로만 사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사람이 속한 집단과 단체, 그리고 사회나 국가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겁한 짓을 경멸하고, 때로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왜냐면 고작 한 사람의 욕심에서 시작한 '거짓'으로 인해서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무고하고 힘 없는 사람부터 엄청난 피해를 보고 심지어 애꿎은 목숨을 잃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을 저질렀다면 작은 일일 때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그에 걸맞는 벌을 받고 잘못을 뉘우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 작은 책임과 벌, 그리고 망신을 당하기 싫어서 '무책임하게 행동'한 뒤에 뒤수습마저 남에게 떠넘기는 짓을 하게 되면 결국 그 책임은 '다른 사람'이 대신 져야 하고, 그로 인해 '억울한 사람'도 발생하며,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대신 '희생' 당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는 일이 벌어질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정말이지 이런데도 '남탓'을 하며 자기가 한 행동에 '반성'과 '책임'을 회피하고 말 것인가? 그런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는다면 정말 구제불능이 되고 말 것이다.​솔직히 이 이야기에서 주로가 한 '배신'은 실로 엄청난 죄였다. 단순히 연인이었던 아세미에게 상처를 주고 실연의 아픔을 주거나, 대요괴들의 힘이 담긴 결정을 빼돌려서 달아난 죄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로가 애초에 '중매'를 잘못 서는 바람에 리쿠와 키초는 애꿎은 요괴들에게 '원한'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이 '원죄'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 죄책감을 해소하고자 다시 한 번 '배신'을 한 행위로 인해서 '인간의 도구'로 악용되는 요괴들이 희생 당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그로 인해서 '인간 vs 요괴' 사이에 대전쟁이 벌어져서 수많은 희생자와 살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렇게나 큰 죄를 지은 장본인이 바로 '주로'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렇게나 큰 죄를 지은 '죄인'에게 내려진 형벌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이게 또 어처구니 없는 것이 그렇게나 큰 전쟁이 벌어졌는데, 다친 사람과 요괴 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죽은 사람과 요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고, 납치되어 사라진 요괴들도 히메가미가 소멸함에 따라 주술이 풀려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죄에 비해 미약한 처벌을 내렸던 것이다. 오히려 주로가 배신과 범죄를 저지를만한 '사연'이 정상참작 된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야스케는 히메가미에게 '세뇌'를 당해 가장 사랑하는 센키치의 목을 조르며 죽이려 했다는 '기억'도 삭제해버렸기 때문에 더는 슬플 일이 없다. 그러니 주로에게 벌을 내려야 할 죄가 이미 사라졌으니 미약한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일단락해버린 셈이다.​허나 주로가 배신을 해서 '심리적 상처'를 받았던 수많은 요괴들은 어짜 할 것인가? 이들의 마음에 뻥 뚫린 상처를 남긴 것은 '죄목'에 없는 것인가? 또한, 주로는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 무리'에 잠입을 하려 했고, 그 때문에 '대요괴의 결정'을 담보로 넘겼으며, 그 엄청난 힘으로 인해 수많은 요괴들이 나쁜 인간의 '도구'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자신의 배신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 몇몇 '쓰쿠모가미'는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일도 발생했고 말이다. 이들도 요괴임에 분명하며, 이로 인해 '소멸' 당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애초에 '생명이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소멸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뭐, 어린이책에 나온 이야기를 '법정드라마'라도 보는 것처럼 시시콜콜 따지면서 볼 것은 없겠지만서도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마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이야기일수록 '결말'만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또한 아름다워야 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기상천외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마무리만 아름답게 포장한 듯 싶어서 그랬다.​#리뷰 #에세이 #요괴의아이를키우고있습니다 #히로시마레이코 #판타지 #요괴대전쟁 #남탓하지않기 #무책임은나쁜짓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07/0/cover150/k2120309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070016</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문학책</category><title>요괴도 모성애를 갖고 있는데 말이야!  -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4691</link><pubDate>Mon, 26 Oct 2026 22: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46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934293&TPaperId=17594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68/58/coveroff/k0629342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934293&TPaperId=175946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a><br/>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4년 11월<br/></td></tr></table><br/>&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gt;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4)[My Review MMCCCLXXV / 넥서스Friends 1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네 번째 리뷰는 요괴에게도 '모성애'가 있는 것인지 호기심을 자아내는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gt;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자기가 낳은 새끼를 옹야옹야하는 '모성애'가 있다는 뜻인데, 그럼 '요괴'에게도 모성애는 있는 것일까? 일단 요괴도 어미의 몸속에서 태어난 존재이므로 인간 못지 않게 '모성애'가 있다는 바탕 위에 이야기를 써갔다. 하긴 지난 3권에서는 '사랑'도 하고, 이미 전작인 &lt;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gt;에서 인간인 규조와 화사족 요괴 하쓰네가 서로 사랑의 결실을 맺어 혼인도 하고 아마네와 긴네 딸 쌍둥이도 낳아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와중이니 요괴와 인간의 차이는 일단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요괴의 모성애를 악용하여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는 악당이 등장했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4&gt; 관점 포인트 : 지난 3권부터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권에 여러 에피소드를 담고, 각각의 주제를 펼쳐보이는 방식으로 책을 써가고 있어서 리뷰도 어느 하나만 골라서 쓰기가 곤란해졌다. 그렇다고 리뷰를 책 한 권 분량으로 쓸 수는 없기에 그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집중적으로 쓰려 한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lt;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gt;을 읽는 느낌도 살짝 나기 시작했다. 그 시리즈에서도 전편에 흐르는 이야기 흐름에 '별개의 에피소드'를 속속 담아 놓은 것처럼 이야기를 끌어가더니 이 책도 그런 식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에 리뷰 쓰는 걸 달가워하지 않기에 살짝 삐쳤다. 어차피 '전천당'도 리뷰를 쓸 계획이기 때문에 워밍업 삼아 써보련다.​일단 이야기는 '두 남녀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태어난 축복, 아이'에 대한 것으로 시작했다. 천하의 바람둥이 구로모리가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해 와서 야스케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는데, 구로모리의 아내인 하지카미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두 요괴가 대판 싸울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서가 아니라 구로모리가 그동안 바람을 피웠던 까닭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아내를 대신해서 '아이'를 낳아줄 대상을 찾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구로모리가 바람을 피운 것은 사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남겼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로모리가 납치(?)한 여자아이 '히루'가 문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히루는 어느 마을에 버려진 아이였는데, 마을 사람들은 히루를 죽지 않게 돌봐주면서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구박하고 쫓아내고 죽을 정도로 방치해 버린다. 그러다가도 히루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나서서 데리고 와 밥 먹이고 씻기고 편안한 잠자리까지 제공해주지만, 다시 몸이 회복되는 또 다시 구박이 시작되고 돌보던 집에서도 내쫓아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까닭인 즉슨, 마을에 가뭄이 들면 수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비가 오곤 했는데, 그때 제물로 바치던 것이 다름 아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산 사람'을 말이다. 어쩌다 그런 풍습이 생긴 것인지는 몰라도 버려진 우물에 '산 사람'을 던져서 죽이면 아무리 가물었다가도 비가 흠뻑 내리길 반복하니 마을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노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약한 사람'을 산 제물로 삼아 가차 없이 우물에 내던졌던 것이다. 다음 '산 제물'이 바로 히루였던 것이고, 그래서 히루를 죽지 않을 정도로만 데리고 있었고 도망가지 못하게 마을사람들이 감시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이 사실을 알아챈 히루는 스스로 제물이 되어 우물로 뛰어들었고, 수신에 버금가는 요괴였던 구로모리는 그런 히루를 불쌍히(?) 여겨서 구해내고 돌봐주려 한 것으로 모자라 자신과 아내의 딸로 키우려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간 우물에 버려졌던 사람들도 사실은 구로모리가 안전하게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누가 인간이고 누가 요괴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다음 이야기에서는 규조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마키'가 찾아온 이야기다. 마키의 엄마는 게이샤(기생) 아예였는데, 야에가 마키에게 말하길, 마키의 아빠는 규조라는 훌륭한 분이라고 얘기해왔기 때문에 자신은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밝혔다. 규조는 그런 마키의 이야기를 듣고 입이 쩍 벌어졌지만 야스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규조를 탓하며, 마키와 함께 아빠를 찾았던 아마네와 긴네는 아빠의 표정을 보고 놀랐지만, 더 놀란 사실은 그 뒤에 이어진 마키의 행동이었다. 자신이 당신의 딸이 확실하니 아마네와 긴네를 내쳐버리고 자신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규조는 그런 마키의 말을 듣고 단칼에 거절하며 널 내 딸로 인정할 수도 없고 너와 함께 사는 것은 더욱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마키의 등을 떠밀어 내보내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안 하쓰네는 규조를 탓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탓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딸, 마키'를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쫓아낼 수 있느냐면서 무정한 규조와 함께 살 수는 없으니 자신은 당분간 친정에 가 있겠다며 아마네와 긴네까지 데리고 떠나버리고 만다. 규조는 졸지에 홀아비 신세가 되어 야스케 집에 얹혀 살게 된다.​그런데 여기에도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사실 마키는 자신의 친엄마를 죽게 만들고, 요괴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요괴 엄마에게 부탁(?)을 해서 다 갖게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짓을 벌이는 나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조에게 쫓겨난 마키는 '요괴 엄마'에게 부탁을 하며 아마네와 긴네를 죽여 달라고 한다. 그래야 자신이 규조의 유일한 딸이 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럼 요괴 엄마는 나쁜 요괴일까? 그건 아니었다. 요괴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잃고 엄청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인간이 찾아와 아이를 잃어버린 요괴에게 주술을 걸어 '아이를 되찾아주겠다'면서 그 대가로 '눈'을 영원히 가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서는 그 주술을 건 인간이 '딸'이라면서 요괴 엄마에게 붙여주었는데, 그 딸이 바로 '마키'였다. 그리고 마키는 요괴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제 욕심껏 '부탁'을 했는데, 요괴 엄마는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곤 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이면서 말이다. 이게 바로 '주술의 힘'이었다.​다시 말해, 주술의 정체는 '요괴'를 노예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사악한 주술이었던 것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에 빠진 요괴의 마음을 파고들어서 '음흉한 거래'를 하게 만들고, 그 거래에 응답한 요괴는 '노예'처럼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함부러 부려지다가 생명이 다하면 버려지게 되는 나쁜 주문이었다. 그리고 인간 소녀였던 마키는 그런 나쁜 주술을 건 인간의 꼭두각시가 되어 '요괴 엄마'를 이용해서 제 욕심을 채우는 나쁜 짓을 일삼았고 말이다. 마키는 자신의 엄마마저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말이지 구제받지 못한 아이였다. 이런 아이였기에 사악한 주술을 걸어 '요괴의 힘'을 악용하는 음흉한 주술사에게 철저히 이용 당한 것이다.​나가는 글 : 그러나저러나 큰일이 난 것은 규조를 비롯해서 '힘이 약한 요괴들'이었다. 음흉한 주술사에 의해 '노예'가 되어버리면 죽을 때까지 이용만 당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그냥 버려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스케도 돌보미 일을 잠시 멈출 정도가 되었다. 행여나 그 주술사가 변장을 하고 야스케의 집을 찾아온다면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요괴 가운데 강력한 힘을 가진 '대요괴'가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의 힘이 담긴 '부적'을 만들어서 요괴들이 가지고 다니면 아무리 사악한 주술이라하더라도 막아낼 수 있겠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장장이 요괴 아세비에게 부탁해서 '대요괴의 힘'이 담긴 정수를 이용해서 부적을 만들게 했고, 아세비는 그 일에 열심이었는데, 그녀의 연인 '주로'가 대요괴의 힘이 가득 담긴 '정수'를 빼앗아 달아가게 되는데... 어째 이야기가 점점 더 스케일이 커져간다. 전작에서도 이러다가 급격하게 마무리가 되어 버렸는데 말이다. 아직 4권에 불과한데 벌써 엔딩이라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암튼, 이번에 이야기해 볼 주제는 '모성애'다. 사실 과학적으로는 '모성애는 없다'는 결론이 나긴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따뜻한 감성을 부정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삭막해지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모성애의 존재여부를 '과학' 따위에 의지하고 맹신해서 실망부터 하지는 말자. 나를 낳고 길러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모성애'는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뜨겁게 말이다.​그런데 이 책에서 요괴 엄마에게도 '모성애'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신선했다. 더구나 인간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밥맛'으로 등장하니, 차라리 '요괴 엄마의 모성애'가 더욱더 절절하고 뭉클해졌다. 한편 인간 캐릭터는 비정하고 매정하게 매번 등장을 하니 요괴들이 주인공이면 악역은 인간이 도맡게 되는 것은 당연한 전개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참주제는 '인간과 요괴의 대결'이 아닌 '둘 모두의 공존'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어차피 요괴라는 것도 '인간의 마음'속에서 투영되어 만들어진 존재인 까닭에 비록 '다르게' 표현되었을지라도 '인간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임을 잊어선 안 된다. 인간끼리도 서로 '차별'하면 안 되는 것을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해서 차별이 당연하다는 것은 절대 성립할 수 있는 논리다. 이 책이 이렇게 훌륭한 주제를 품고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는 너무 잔혹하고 처절한 '설정'을 전제로 깔고 있어서 많이 아쉽다.​#리뷰 #에세이 #요괴의아이를키우고있습니다 #히로시마레이코 #판타지 #요괴 #모성애 #부적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68/58/cover150/k0629342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685823</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인문학책</category><title>자연과 더 가까이하는 건강한 뇌생활  - [뇌는 자연을 원한다 - 환경신경과학 석학이 밝혀낸 지친 뇌를 가장 빨리 회복하는 방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2408</link><pubDate>Sun, 25 Oct 2026 20: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24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1591&TPaperId=175924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71/88/coveroff/k1021315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1591&TPaperId=175924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뇌는 자연을 원한다 - 환경신경과학 석학이 밝혀낸 지친 뇌를 가장 빨리 회복하는 방법</a><br/>마크 버먼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10월<br/></td></tr></table><br/>다산초당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lt;뇌는 자연을 원한다 : 환경신경과학 석학이 밝혀낸 지친 뇌를 가장 빨리 회복하는 방법&gt;  마크 버먼 / 김미선 / 다산초당 (2026) [원제 : Nature and the Mind][My Review MMCCCLXXIV / 다산초당 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세 번째 리뷰는 혹사 시킨 현대인의 뇌를 찐으로 깨우고 참으로 회복시켜주는 최고의 방법을 알려주는 &lt;뇌는 자연을 원한다&gt;다. 도시에서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은 늘 지쳐 있다. 그래서 지친 몸을 회복시키려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휴일 내내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하루종일 게으르게 지내도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길에 나서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는데 왜 지쳐 있는 걸까? 진정한 휴식을 취하려면 몸 뿐만 아니라 '뇌'도 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뇌 활동'을 멈추고 뇌에 휴식을 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수면시간'이라도 7~8시간 정도 일정하게 지켜준다면 뇌 휴식에 도움이 되겠지만, 현대인들, 특히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침대맡에 놓인 '스마트폰' 때문에 뇌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이른 아침에 울리는 알람소리와 한밤중에도 나를 찾는 톡 알림소리 따위에 '5분대기조' 마냥 항시 '준비태세'를 갖춰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족한 잠 때문에 각성하지 못한 뇌를 깨우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모닝커피'를 달고 산다. 그렇게 억지로 뇌를 각성시키는 것이 날마다 반복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각성제에 '중독' 증상이 일어나서 각성 효과가 떨어지고 복용양은 점점 늘어나고 휴식이 필요한 뇌는 더욱 지치게 된다. 그렇다면 지친 뇌를 확실히 회복시켜줄 방법은 어떤 것일까?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뇌는 자연을 원한다&gt; 관점 포인트 : 모처럼 느긋한 아침을 맞이한 당신이 깨어나서 처음 하는 일이 무엇인가? 아마도 우아한 음악을 틀어놓은 거실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TV화면부터 켜고 세상 돌아가는 뉴스나 놓쳐버린 드라마나 영화 화면을 틀어놓고 멍한 뇌를 억지로 깨우려 모닝커피부터 찾아들고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 앉아 TV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그대로 소파에 누워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부스스 일어나면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음날에도 큰 변화 없이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고자 일상을 반복하지만 정작 휴일이 다 지나도 '회복'은 안 되어 있다. 왜 그럴까?​정답은 '뇌 휴식'을 해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저 멍 때리고 수면 시간을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뇌 휴식'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여전히 '뇌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쉬어야 하는가? 이 책 &lt;뇌는 자연을 원한다&gt;에서는 이렇게 답을 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쳐다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라"고 말이다. 우리의 뇌는 '타고나기'보다는 '만들어지는' 쪽으로 진화되어 왔단다. 다시 말해, DNA 유전자로 뇌가 '확정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 따라 뇌는 '경험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 인간은 내가 살고 있는 주위 환경이 좋은 곳이어야 '웰빙'을 챙길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두를 필요 없이 차분하게 읽어나가면서 우리의 뇌를 건강하게 살아서 숨쉴 여유를 갖게 해주면 좋을 것이다.​그럼 뇌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연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다면 더욱 좋겠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게 그럴 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을 감안한 대처방안을 제시했다. 바로 '나무 한 그루'부터 시작하라고 말이다. 잠깐의 휴식시간에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도 그리 어려운 '제안'은 아닐 것이다. 도시에서 들려오는 '소음 공해'로부터 벗어나면 더욱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에는 사무실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나무나 꽃 등 '자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바라보거나 가까이 곁에 있거나 직접 만져보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의 뇌는 분명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온단다.​우선 그렇게 '기분전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변화'가 시작된다. 나무가 더 많은 곳을 찾아 잠시라도 그곳에서 머문다면 더욱 효과를 볼 수 있단다. 왜냐면 나무는 '천연 항우울제'이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나오는 성분이 무엇인지 굳이 알 필요도 없다. 당신이 과학자라면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 것으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성분이 무엇인지 몰라도 효과는 확실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말이면 나무가 더 많은 곳을 찾아가면 좋다.​그 다음에 할 것은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단순히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도 효과는 시작되지만, 자연의 품속에서 '자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연습을 하면 좋다는 얘기다. 마치 엄마나 연인의 품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반복하면서 우리의 뇌 속에 '자연'을 품을 수 있게 해주면 효과만점이란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행동'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인류가 남긴 수많은 고전과 경전에서 말한 지혜와도 상통하는 내용이 아니던가. 바로 그것이다.​나가는 글 :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무엇일까? 바로 '도시와 자연의 공존'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것을 실현시켰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거닐면서 조금만 시선을 멀리하고 둘러보면 높은 빌딩숲 사이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기다 서울의 한복판에는 '남산'이라는 자연공간도 있다. 또 외국인들이 깜짝 놀라는 '한강'과 '청계천'이 도심 한 가운데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하면서 흐르고 있다. 이제 도쿄나 파리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가본 적이 없다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검색'을 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도시들에는 건물만 있고 자연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도 않고 편평한 도심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건물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결국 이 책이 필요한 곳은 바로 그런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그럼 우리에게는 이 책이 필요 없을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멋지게 '자연'을 품고 있지만, 정작 그 아름다운 '공존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나무가 가까이 있는 환상적인 도시에서 살고 있으면서 '자연'을 머릿속에 품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뇌'를 그저 혹사시키고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서히 병 들어가고 우울해져 간다. 치료법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도 말이다.​우리는 어릴 적부터 자연속에서 맘껏 뛰어 놀 수 있어야 한다. 숲이 교실이 되어야 하고, 나무를 벗 삼아 살아가는 지혜를 가꿔 나가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서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뇌'가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 숨쉴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수명은 대폭 늘어난데 비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는 너무나 벅찬 삶을 살고 있다. 이대로는 오래 살아도 잘 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법은 '자연속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리뷰 #에세이 #뇌는자연을원한다 #마크버먼 #건강한뇌생활 #건강한심리학 #우울증치료법 #자연과가깝게 #나무한그루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71/88/cover150/k10213159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718817</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지략대결, 삼국지를 읽는 무한한 재미  - [전략 삼국지 10 - 서주의 모략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0660</link><pubDate>Sat, 24 Oct 2026 2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06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536370&TPaperId=175906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1/coveroff/k44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536370&TPaperId=175906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10 - 서주의 모략전</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10 : 서주의 모략전&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XXIII / 대현출판사 1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두 번째 리뷰는 조조를 상대하기 위해 유비는 여포를 품으려 하는 &lt;전략 삼국지 10&gt;이다. 여포의 최후가 다가온다. 여포는 '정사 삼국지'에서 '비장'이라고 소개될 정도의 맹장이었다. 날아다니는 장수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만인지장'이라고 소개되는 장수도 있는데, 바로 장비와 관우다. 만 명의 적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장수란 뜻이다. 그럼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lt;삼국지연의&gt;에서는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조조는 그런 여포에게 기습을 당해 '빈집'을 빼앗겼고, 지략으로 되찾는데 성공하지만, 그 사이에 여포는 유비의 품으로 가버린다. 이제 조조는 유비 하나가 아닌 여포까지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유비가 여포를 품은 것이 잘한 일일까?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10&gt; 관점 포인트 :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만 연속으로 보여주던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본격적인 '전략 싸움'을 펼칠 대목에 이르자 '만화 삼국지'다운 영웅들 간의 '지략 대결'을 선 보여주었다. 그 첫 대결이 바로 조조가 지략으로 '두 마리의 호랑이를 서로 싸우게 만든다'는 '이호경식지계'를 펼친 것인데, 바로 유비와 여포를 서로 싸우게 만든 뒤, 어느 쪽이 이기든 조조는 구경만 하다가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계략이었다. 허나 이를 간파한 유비는 오히려 여포에게 조조의 밀서를 보여주며 조조가 우리 둘 사이를 '이간질' 시키려 한다며 속아 넘어가지 말자고 굳게 의리를 다진다.​그러자 조조는 유비에게 어명을 전달하며 '황제의 명으로 전하노니, 원술을 공격하라'는 정식 명령서를 전한다. 유비는 이 역시 조조의 간계라는 것을 간파하지만 '황제의 명'을 어길 수 없다며 출격하게 된다. 바로 '구호탄랑지계'다. '호랑이가 표범을 잡으러 간 사이 주인 없는 굴을 이리가 노린다'는 계략이었던 것이다. 이 계책은 성공을 거둔다. 유비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여포가 의리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허나 유비 측에도 큰 실수를 저지른 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장비'가 술을 마시고 서주성의 경계를 허투루 지키는 바람에 여포에게 무방비로 빼앗기고 만 셈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서주성을 빼앗긴 장비는 원술과 싸우고 있는 유비를 찾아가고, 원술은 여포에게 유비의 뒤를 공격하면 엄청난 보상을 주겠다며 꼬셔서 유비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포위 공격을 당한 유비는 협공을 피해 도망갔고, 여포는 원술에게 약속한 보상을 당당히 요구했으나 원술은 유비가 도망갔다며 보상은 나중에 주겠다며 딱 잡아뗀다. 이에 여포는 유비를 불러들여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지만, 유비는 여포의 신의를 믿을 수 없어 서주성을 여포에게 넘기고 자신은 소패성으로 가겠다며 한 발 물러서게 된다.​한편, 강동의 호랑이 손견이 죽고 그의 아들 손책은 원술의 휘하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손책은 아버지의 유산을 고스란히 되찾기 위해 원술에게 병력을 요청하지만 단박에 거절 당한다. 그러자 손책은 원술에게 '전국옥새'를 담보로 잡고 병력을 빌려 강동땅을 개척하러 떠난다. 그곳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며 '손책'이란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는데, 마침 유요의 휘하에 머물던 '태사자'라는 장수와 맞닥뜨려서 한 판 승부가 벌어졌다. 과연 그 승패는 어떻게 될까? 다음에 계속.​나가는 글 : 이제 겨우 '만화 삼국지' 다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전투씬만 즐비한 대목에서는 지나친 '폭력성'과 '잔혹함'만 보여주었는데, '지략대결'을 보여주는 대목에 이르니 &lt;삼국지&gt;다운 이야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점점 늘어날수록 인물캐릭터의 특징이 고갈되었는지,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책 등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등장인물을 제하고는 다 비슷비슷한 유형으로 외모를 표현하고 있어서 차별점이 두드러지지 않아서 밋밋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주요 등장인데도 등장시키지 않고 과감히 '삭제'된 캐릭터가 종종 발생했다. 대표적인 예로 여포의 책사로 합류했던 '진궁'이 사라지고, 평범한 '책사'가 여포에게 계략을 알려주는 것으로 대체했다. 또한 조조에게는 책사도 무수히 등장하는데, 조조에게 계책을 알려주는 캐릭터도 이름도 밝히지 않고 그냥 퉁쳐버리고 말았다. 분명 '순욱', '순유', '정욱' 등 굵직굵직한 책사 캐릭터인데도 일일이 밝히지 않은 것이다. 그밖에도 '1회성 출연'하고 바로 사라져버리는 캐릭터들은 인물그림도 앞서 나왔던 캐릭터와 비슷하게 처리하며 빠르게 지워버리는 과감성을 보여주었다. 나름 교묘하고 현명한 '표현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lt;삼국지&gt;를 정말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아쉬움이 클 것이다.​한편, 유비는 왜 여포를 품으려 했을까? 다들 아시다시피 조조가 여포를 궁지로 몰아 사로잡은 뒤에 처형을 결정하는 순간에 유비는 조조에게 여포가 '배신자 캐릭터'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처형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차없이 죽일 여포였는데, 왜 그런 배신의 아이콘과 손을 잡으려 했고, 소패성에 이어 서주성까지 내어주며 환심을 사려 애썼던 것일까? 그건 오직 '조조'를 상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대비책이었다. 조조는 서주를 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아버지의 복수를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그건 둘째 문제고 서주만 차지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조조는 '서주 대학살'까지 감행한 것이다.​왜일까? 그건 유비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유비의 장점은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마법을 부린다는 점이다. 유비의 매혹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조조는 감히 그런 방법으로 유비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주 백성들에게는 철저히 유비와 정반대의 전략을 감행했다.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뿐이라는 공포를 심어놓은 것이다. 그 덕분에 유비는 서주 백성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강력한 조조의 군대를 상대할 힘이 부족했던 것이다. 아무리 서주 백성이 조조가 아닌 유비를 원한다고 해도, 민심만으로 서주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는 조조를 상대하기 위해서 여포와 손을 잡은 것이다.​이는 여포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각과 곽사의 군대에 쫓겨 달아나 원술에게 기댔으나 단칼에 거절 당했고, 원소에게 기대보았으나 푸대접만 당했다. 그렇게 갈 곳이 없자 아무런 힘도 없는 유비를 찾아갔지만 뜻밖에 '환대'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여포였다. 그러면서 은근히 유비가 사람을 대접할 줄 안다면서 유비가 서주를 얻을 수 있었던 공도 사실 여포, 자신에게 있었다며 공치사를 하며 소패성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여포에게 지혜가 있었다면 이때 유비와 더욱 돈독한 정을 나누며 세력을 더욱 탄탄하게 기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여포에게 이런 '천하이분지계' 같은 큰 그림을 그릴 능력은 없었고, 유비는 여포를 컨트롤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왜냐면 여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만약 이때 유비 곁에 제갈량이 계책을 내어주며 여포를 컨트롤 하는 책사로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 당시 제갈량은 '10대 소년'에 불과했다. 아무리 천재소년이었더라고 하더라도 '어른들의 싸움'에 뛰어들기에는 너무 어렸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이렇게 '가정'을 하면서 읽으면 더 흥미롭고 재밌는 것은 사실이다. '만화 삼국지'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리뷰 #에세이 #만화삼국지 #전략삼국지 #요코야마미츠테루 #이호경식 #구호탄랑 #지략대결 #책이있는구석방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1/cover150/k44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4158</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승자독식, 반쪽짜리 지혜로 인생을 논할 순 없다 - [전략 삼국지 9 - 조조의 대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0659</link><pubDate>Sat, 24 Oct 2026 2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906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536370&TPaperId=175906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0/coveroff/k41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536370&TPaperId=175906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9 - 조조의 대두</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9 : 조조의 대두&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XXII / 대현출판사 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한 번째 리뷰는 동탁 사후에 혼란한 정국이 펼쳐지다 조조가 새롭게 두각을 드러내는 &lt;전략 삼국지 9&gt;다. 사실상 이 시기에 한 나라는 망했다. 천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 전부였고, 실제 권력은 천자를 볼모로 잡고 있는 군벌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로 압축되었다. 흔히 이 시기를 '군웅할거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다른 말로 '영웅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9&gt; 관점 포인트 : 조조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연주에서 병력을 끌어모아 서주 공략에 나섰다. 이때 서주태수 도겸을 도와 조조의 성난 복수를 잠재우고자 유비가 앞장을 서자, 때마침 떠돌던 여포가 '빈집털이'를 시도했고 적중했다. 그래서 조조는 단숨에 서주를 복속시키고 자신의 영지로 만들려던 계획을 틀어서 여포와 힘겨운 한 판 승부를 펼친다. 그야말로 '조조의 지략 vs 여포의 무력'이 승부를 가르는 일진일퇴가 펼쳐진 것이다. 조조와 여포가 한창 싸우고 있을 때 도겸이 죽고 유비가 서주태수를 넘겨 받는다. 허나 아직 황제의 위임을 정식으로 받은 것이 아니기에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한편, 동탁 사후에 장안의 집권세력은 당연히 동탁을 직접 죽인 여포가 틀어쥐고 있어야 했으나, 여포는 연이은 '배신'으로 인해 인심을 잃었고, 여포의 뒤를 받쳐줘야 할 왕윤조차 이각과 곽사 등 동탁군의 잔당이 남아 심하게 저항을 하고 끝내 헌제마저 볼모로 사로 잡힐 판국이 되자 왕윤은 성문 꼭대기에서 자결을 하는 것으로 황제의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 여포도 이각과 곽사의 군대에 쫓겨 원술에게 달아나버렸고, 이제 장안은 동탁 잔당군에 의해 통치되는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게 된다. 특히 이각과 곽사는 툭하면 싸움박질을 하는 통에 헌제는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벌벌 떨며 지내게 된다. 이에 헌제는 낙양으로 되돌아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는데, 그렇게 몰래 탈출한 것이 유효해서 낙양까지 도망오는데 성공한다.​허나 낙양은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였다. 백성들도 터전을 잃고 유랑을 했고 장락궁은 성문이 부서지고 성벽이 허물어져 '방어'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래서야 뒤쫓아오는 이각과 곽사의 군대를 상대로 막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급히 불러들여 자신을 지킬 자를 찾게 되는데, 조조가 가장 빨리 도착해서 동탁 잔당군을 퇴치하는데 성공한다. 허나 여전히 낙양에서 버틸 수는 없기에 조조는 헌제에게 '허도'로 다시 한 번 천도하길 요청한다. 헌제는 어쩔 수 없이 윤허를 하며 '조조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과연 조조는 충신으로 남을까? 아니면 희대의 간웅이 되어 한 나라를 꿀꺽 집어 삼킬까?​나가는 글 : 이 시기는 그야말론 '혼돈, 그 자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었고,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두 가지'를 얻기 위해 각지의 군웅들이 무단으로 힘겨루기를 하던 시기다. 그야말로 '무법 천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 그 두 가지란 무엇일까? 바로 '군대'다.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힘' 밖에 없다. 아무리 정의를 외치고, 도덕과 윤리를 지키자고해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힘 있는 자가 힘으로 빼앗으려 들면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힘 대 힘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는 세력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권력의 상징이자 권위의 상징인 '황제'다. 아무리 무법 천지라 하더라도 '왕가의 혈통'을 함부로 어찌 할 수 없던 시대였다. 특히 역대 중국 왕조에서는 황제는 '하늘의 아들(천자)'이라는 개념을 신봉했기에 하늘이 정해준 왕가의 핏줄은 오직 '하나'이며, 이를 무시하고 멋대로 왕조를 개창하며 '황제'라 주장을 해도 누구도 따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더구나 뻔히 '황제'가 버티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면 '역적'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할 때까지 다구리를 당할 수도 있으니 괜히 헛물켜다가는 망하기 딱 좋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황제를 볼모로 잡아두고 '황제의 명'을 빌려 제 욕심을 챙기는 방법이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다 나라가 안정이 되면 힘 센 영웅이 그 권력을 '황제'에게 되돌려주고 물러난다면 오래도록 충신으로 남을 것이고, 황제를 핍박해서 그 자리를 탐하면 '찬탈자'가 되어 총공격을 당할 것이고, 그 공격마저 다 물리치고 천하를 일통하면 새 왕조를 개창한 '개국군주'로 떠받들여질 것이다.​자, 이렇게 때는 무르 익었다. 하야흐로 '군웅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룰은 딱 하나다. 가장 힘 쎈 사람이 누구인지만 가리면 된다. 황건의 난에 이은 전국적인 '전란의 시대'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한 책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lt;전략 삼국지&gt;다. 숨 가뿔 정도로 전투에 전투가 이어지는 대목이라 그런지 서로 속고 속이는 계략이 난무하는 가운데 오직 '승자'만이 주목을 받는 그런 이야기가 펼쳐지니 꽤나 진지하게, 아니 '진심'을 다해서 그리고 또 그린 모양이다. 퍽 자연스럽다. 허나 &lt;삼국지&gt;를 이런 방면으로만 읽게 되면 '하나만 읽고 둘 이상을 읽지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오직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만 불태우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기면 좋고 지면 나쁘다'는 뻔한 지혜만 가지고 인생을 논할 수나 있겠느냔 말이다. &lt;전략 삼국지&gt;는 그 한 가지에만 너무 집중을 하고 있다. 그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지혜'를 읽어내는 힘이 없다면 되려 '승자독식이라는 폭력을 정당하게 여기는 주장만 옳다'는 반쪽짜리 지혜만 얻게 될 것이다. 다음에 계속.​#리뷰 #에세이 #만화삼국지 #전략삼국지 #요코야마미츠테루 #승자독식 #폭력의정당화 #반쪽짜리지혜 #책이있는구석방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0/cover150/k41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4086</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문학책</category><title>너무 많은 캐릭터 등장으로 과외가 필요해! -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89268</link><pubDate>Fri, 23 Oct 2026 2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892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937996&TPaperId=175892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62/52/coveroff/k6529379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937996&TPaperId=175892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3</a><br/>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3년 12월<br/></td></tr></table><br/>&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3&gt;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3)[My Review MMCCCLXXI / 넥서스Friends 1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두온 번째 리뷰는 이야기 서사의 깊이보다 캐릭터의 다채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더 좋은지 고민하게 만드는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3&gt;이다. 일본 문학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어릴 적부터 즐겨보았다. 그 정도의 풍월로 일본 문학도 나름의 감상법(?)으로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일본 문학에서 추구하는 경향은 '캐릭터의 다채로움'이 전부는 아닐 런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싶으면 '회차'가 기약 없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서 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에서도 그런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닐테지만, 대개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소설들은 '주인공이 겪는 서사'를 다채롭게 하면서 동시에 서사의 깊이를 추구하며 읽는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장편소설을 읽는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판타지소설의 원조격인 &lt;반지의 제왕&gt;이나 교과서라 부를 만한 &lt;해리포터&gt;에서도 주인공이 다채로운 서사를 겪으면서 '성장'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그에 걸맞는 답을 찾아나가며 '인생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어서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더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일본 문학에서는 '문학적 깊이'를 추구하기보다 '캐릭터의 다양성'만을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3&gt; 관점 포인트 : &lt;반지의 제왕&gt;에서 주인공은 '호빗 종족'이다. 그 외에도 인간, 엘프, 드워프, 오크 종족 등이 등장하지만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서 떠나는 '반지원정대'에 속한 주인공 일행의 서사에 주목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이렇게 주인공 캐릭터는 '한정' 되었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다들 조연급으로 밀려나기 때문에 수없이 등장하지만 결국 '서사'를 풍성하게 해주는 들러리나 하객일 뿐이다. 결코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서사를 등장시켜서 독자의 시선을 빼앗지 않는다. &lt;해리포터&gt;시리즈가 7편까지 나왔지만, 주인공은 해리포터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로 압축된다. 그 외에 호그와트에서 함께 이야기를 펼쳐가는 조연급 캐릭터들도 각자의 포지션에서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서사를 돋보이게 할 뿐이다. 그런데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gt;에서는 어떨까? 분명 야스케와 센키치가 주인공인 것은 불변의 진리인데,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등장하는 '서브 캐릭터(조연)'의 서사도 일일이 다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서사는 풍성해지지 않고 빈약해져 버리고, 도리어 조연급 캐릭터의 서사가 강렬하게 인식하게 된다.​&lt;미소녀전사 세일러문&gt;(1992)을 예로 들어 보자. 일단 시작은 '달의 요정 세라'가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으로 변신을 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다가 홀로 적들을 감당하지 못하자 '동료'를 맞이해야 한다면서 '세일러 머큐리'가 합류한다. 그래도 모자라서 '세일러 마르스'가 합류하고, 곧이어 '세일러 비너스'와 '세일러 주피터'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싶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소녀전사를 도와주는 '턱시도 가면'이 등장하더니,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세일러 새턴', '세일러 우라노스', '세일러 넵튠', 그리고 '세일러 플루토'까지 결국 나올 수 있는 등장인물은 다 나오게 된다. 물론 주인공은 '세일러 문 세라'다. 하지만 이야기가 자꾸 겉돈다. 세라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서사보다 '서브 캐릭터'를 띄워 주고, 심지어 '빌런 캐릭터'의 별도의 서사까지 다 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다. 중심 방송보다 '지역 방송'이 더 많은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서사에 집중하기 어렵고 새로 합류한 캐릭터를 외우고 또 외워야 하는 일의 반복이 되고 만다.​&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gt;는 전작인 &lt;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gt;의 후속작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변화가 있었다. '돌봄'에서는 센야와 야스케가 주인공이었지만, '키움'에서는 야스케와 센키치가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센야가 모든 요력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아이처럼 변한 모습이 센키치이므로 큰 변화는 아닌 셈이다. 여기까지는 준수하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조연급 캐릭터들'이 점점 늘어난다. 1회성 단발 출연만 하는 캐릭터인줄 알았는데, 계속 출연하다가 결국 '고정'이 되어버린 캐릭터도 많다. 게다가 이야기의 핵심이 '돌봄'과 '키움'이다보니 고정캐릭터들 가운데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해서 캐릭터 풍년이 되었다. 거기에 서쪽 지궁 봉행소 캐릭만으로 부족해서 동쪽 지궁 봉행소 캐릭터까지 늘어나 버렸다. 그렇게 캐릭터 천국이 되고 만 것이다.​물론 요괴 캐릭터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그나마 간추려서 이만큼인 셈이다. 이야기를 다채롭게 꺼내기 위해서 '캐릭터 풍년'이 되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고, 그렇게 수많은 등장인물간에 얽히고 설킨 '갈등 구조'가 감상과 감동의 깊이를 더해주는 필요충분조건일테니 즐겨 읽는 독자로서 오히려 환연해 마지 않아야 할 조건들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연과 조연의 역전 현상'이 너무 자주 벌어진다는 것이다.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면 등장인물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채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할 시에는 대체로 '1인칭 주인공시점'이 딱 좋다. 독자로 하여금 '집중할 캐릭터'가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주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시점이 역전되어 있다. 주인공을 조연급으로 등장시키고 딱 한 번 등장하고 말 '조연급 캐릭터의 시점'으로 주인공이나 그 일행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심한 것은 '외전'으로 나와야 할 조연급 캐릭터가 '주연급'으로 둔갑한 이야기도 종종 등장시킨다는 것이다.​물론 이야기 시리즈에 흠뻑 빠진 열혈 독자들에게는 이런 다채로움이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주는 서사적 감동에 목마른 독자들이라면 이런 다채로운 시도는 오히려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어떤 캐릭터에 집중하면 좋을지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뭔가에 집중 좀 할라치면 '딴 이야기'를 하는 통에 좀 산만한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나가는 글 : 반면에 '이런 맛'을 즐기는 독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깊이보다는 흥미와 오락적 성향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게는 취향저격일 것이 틀림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색다른 캐릭터들'이 계속 등장하니 재미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일본 문학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다채로움'을 선보이는 경향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장편시리즈가 이런 맛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출판사들이 꾸준히 '이런 맛의 책'만 계속 출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는 '등장하는 인물'을 전문적으로 소개해주는 코너를 따로 만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주는 책도 출간할 정도다. 유튜브 영상에서도 '등장인물 정리'만 해주면 헷갈리는 줄거리도 단박에 이해가 될 정도로 '다수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모든 캐릭터가 다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개는 '장편소설'의 경우에 복잡한 캐릭터관계도를 정리할 필요를 느끼는데, 일본 문학은 길고 긴 시리즈를 거듭하더라도 이야기 서사는 대체로 '단편소설' 분량인 것을 보면, 결국 '서사'로 승부하기보다 '다수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상품성만 높이는 경향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일본 문학에서조차 '캐릭터 상품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본 책을 판매한 수량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가 많다.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gt;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그렇다고 캐릭터를 더 추구하는 경향이 나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무 문제' 없다. 이건 장단점의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난 야스케는 별로야. 대신 견신 쓰즈미마루가 더 좋아. 이유는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야"라면서 캐릭터 컨테스트를 펼칠런지도 모른다. 캐릭터 상품화로 더 큰 수익성이 보장된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게 별로다. 캐릭터 천국은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리뷰 #에세이 #요괴의아이를키우고있습니다 #히로시마레이코 #캐릭터천국 #다채로움 #추구미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62/52/cover150/k6529379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0625206</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문학책</category><title>‘다름‘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 [날고양이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87460</link><pubDate>Thu, 22 Oct 2026 2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874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26420&TPaperId=175874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7/85/coveroff/89920264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26420&TPaperId=175874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날고양이들</a><br/>어슐러 K. 르귄 지음, S.D. 쉰들러 그림, 김정아 옮김 / 봄나무 / 2009년 04월<br/></td></tr></table><br/>&lt;날고양이들&gt;  어슐러 K. 르 귄 / 김정아 / 봄나무 (2009) [원서 : Catwings][My Review MMCCCLXX / 봄나무 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아홉 번째 리뷰는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의 판타지소설 &lt;날고양이들&gt;이다. 요즘 방정리 겸 책정리를 하고 있는데 예전에 리뷰를 썼던 책들도 다시 읽고 있다. 그 덕분에 '읽고 써야할 책들'조차 잠시 멈춤 신호등을 켜놓고 부랴부랴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다 오래전 2011년에 쓴 이 책의 내 리뷰도 다시 읽게 되었다. 벌써 15년이나 흘렀다니 내가 참 늙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 르 귄의 판타지 &lt;어스시의 마법사&gt;도 우연한 계기로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줄도 모른채 집어 들었다가 반납일 하루를 남기고 뚝딱 읽어버렸던 책으로 기억한다. &lt;반지의 제왕&gt;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lt;반지의 제왕&gt;보다 더 강한 흡인력으로 빨아들이는 몰입력을 발휘하는 책이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책도 다시 읽고 리뷰하련다. 그 시절에는 책을 읽기만 하던 시절이라 리뷰를 전혀 남겨놓지 않은게 아쉽기도 하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날고양이들&gt; 관점 포인트 : 르 귄은 시리즈를 많이 낸 작가다. 그래서 이 책도 '날고양이' 시리즈로 열두 편을 썼다는데, 그 가운데 4편을 엄선해서 이 책 &lt;날고양이&gt;로 '국내최초 완역본'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연재시기는 1988년부터 1999년까지란다. 고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지만, 나는 이 시절을 살아본 경험이 있기에 굳이 '고전'으로 분류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분류하면 나조차 '고전'으로 불려야 할테니 말이다.​이 책의 주제는 '다름'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날개 달린 고양이들'이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을 때 '고양이들에게 왜 날개를 달아주었나?'라는 질문은 적절치 못하다. '날개'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고양이'에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날개가 있든 없든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란 말이다. 그리고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다름 아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왜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덧붙여야 할 내용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삶'을 사는 고양이는 단 한 마리도 없는데도, 왜 '조금 다른 모습'으로 '조금 다른 삶'을 사는 고양이의 평범한 삶을 침해하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날개'가 달렸다는 사실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날개를 달았다는 것은 '더 나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모자란 '장애'나 '질병' 따위가 아니라 무려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단 말이다. 이 뜻은 그냥 평범한 고양이들보다 훨씬 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도 평범한 고양이보다 더 천대받고 위험한 삶을 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왜 그래야 하나? 그게 '정상'일까?​물론 주류 사회에 속하기에 '부족'하거나 '특출'난 뭔가가 있으면 사회구성원으로 원만한 삶을 누리기에 문제가 많을 수는 있다. 그런데 부족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해하기 쉬워도 특출난 무엇 때문에 '소외'를 당해야 하는 것은 왜일까? 이 문제는 조직사회를 살아본 경험에 비추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한 집단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가 새로 합류하게 되면 그 뛰어난 인재 덕분에 조직이 발전할 가능성이 높을까?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을까? 놀랍게도 조직이 발전하기는커녕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조차 '평범하게' 변화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무능력한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 능력자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조직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무능한 조직의 생명연장(?)'을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어른들만 그럴까? 놀랍게도 초등학교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튀어나온 못이 먼저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낭중지추'라고해서 뛰어난 재능은 주머니에 싸서 감추려고해도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튀어나온 못'은 두들겨 패서라도 튀지 못하게 만들고야 만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사회 현주소를 보면 '이민 문제'가 참으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거의 모든 사회문제를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트럼프 정부의 기조 덕분(?)에 미국에 정착한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 이민자들에게 온갖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강제추방'까지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비롯한 '백인'들도 초기에는 이민자였는데도 말이다. 흔히 '인디언'이라 불리는 아메리카원주민을 대학살하고서 '미국땅'을 차지한 백인들이 원주민이자 주인행세를 하는 꼴이 우스울지경이지만, 그 문제의 심각성은 너무나 끔찍할 정도다. 우리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기술자도 그런 푸대접을 받지 않았느냔 말이다. 저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려고 막대한 투자금과 기술력으로 '공장'을 세워주고, 그 공장의 기계를 관리할 수 있는 '고급 기술교육'까지 시전하려 간 우리 국민인데 말이다. 고마워하기는커녕 '범죄자 취급'을 하며 쇠사슬로 묶고 강제연행한 뒤에 인권보장조차 하지 않고 구타와 모욕 따위를 함부로 사용하며 굴욕감을 주었다. 이게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lt;날고양이들&gt;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와서, 평범한 아빠와 엄마 고양이에게서 '날개'를 달고 태어난 새끼고양이 네 마리가 있었다. 아니 아빠 고양이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니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갖춘 고양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 고양이에게는 '날개'가 없다. 그렇게 평범한 엄마고양이는 네 마리의 새끼를 애지중지 키웠지만, 스스로 날 수 있을만큼 자란 새끼들에게 이제 엄마 곁을 떠나서 너희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살도록 하라며 이야기한다. 엄마는 날개가 없으니 따라갈 수 없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이웃에 살고 있는 숫고양이와 '재혼'해서 살테니 엄마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네 마리 새끼고양이는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현실에 울먹이지만 더는 엄마를 힘들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날지 못하는 '날개 달린 새끼 네 마리'를 홀로 키우느라 얼마나 힘든 고생을 했겠느냔 말이다. 가장 힘겨운 것은 '다른 고양이들의 편견어린 시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 품을 훌쩍 떠나서 한적한 시골마을에 무사히 정착하는 이야기가 첫 번째 이야기다.​두 번째 이야기는 엄마와 헤어져서 그리움에 사무친 새끼고양이들이 어느덧 '어른 고양이'가 되어 다시 엄마를 찾아 도시의 쓰레기통 곁으로 되돌아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 그 도시를 떠날 때에는 아직 나는 법이 서툴러서 힘들게 고생했는데, 그동안 훌쩍 성장한 날고양이들은 아주 멋진 비행으로 엄마곁으로 날아간 것이다. 물론 네 마리 전부는 아니었다. 두 마리만 모험을 떠난 것이었는데, 그렇게 다시 돌아와 만난 고양이는 엄마가 아니라 아주 귀여운 깜장 새끼고양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귀여운 고양이에게도 날개가 있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훨훨 날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새끼고양이는 혼자였다. 그리고 덩치도 작고 굶주림에 지쳐 곧 죽을 것 같았다. 곁에 있던 '시궁쥐'가 더 커보일 정도로 말이다. 두 날고양이는 깜장이를 정성껏 돌봐주어 함께 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시킨 뒤에 엄마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찾아낸 엄마는 맘씨 좋은 할머니와 함께 편안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깜장이는 엄마의 새끼였다. 다시 말해, 날고양이들의 '씨 다른 형제'였던 것이다. 엄마는 깜장이를 오빠와 언니에게 맡기며 잘 돌봐달라고 전한다. 여전히 도시에서는 날고양이들이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날고양이 식구는 다섯이 되었다.​세 번째 이야기는 '날개 없는'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다. 모험심 많은 새끼고양이였지만 처음으로 집 나간 모험에 거대한 트럭에 쫓기고 무시무시한 강아지에게 쫓겨 나무꼭대기로 도망가는데 성공해 겨우 목숨은 살아났지만, '내려가는 방법'을 알지 못해 꼭대기에서 벌벌 떨다가 하늘을 훨훨 날아서 온 깜장이와 만나서 무사히 나무 밑으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너무 멀리 나온 뒤에 정신 없이 쫓기고 쫓긴 탓에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깜장이와 함께 날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 이야기였다. '날개가 있든 없든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마지막 이야기는 깜장이의 모험 이야기다. 깜장이도 어른 고양이가 되자 집 주변에서만 남 몰래 날아다니는 '평범한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멀리 자유롭게 날아가는 꿈을 꾸게 된다. 물론 지금도 만족스런 삶이지만 말이다. 언니 오빠들이 있고, 사랑하는 '날개 없는' 고양이도 함께 있는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깜장이는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하늘을 훨훨 날아 모험을 떠난다. 더 자유롭게 말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은 시골이 아니라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의 삶'이 더 안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도시에 도착하니 깜장이는 너무 기뻤다. 그리고 도시의 고층 빌딩 사이에 '열린 창문'을 통해서 우아하게 착지한 다음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공격적이지도 위협을 가하지도 않고 깜장이를 예뻐하면서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먼 거리를 날아온 터라 고되고 지쳤는데 잘 돌봐주는 남자에게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깜장이의 마음에 쏙든 남자는 깜장이를 하늘에서 날아온 천사소녀라며 추켜세우고 가볍게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고 맛난 음식을 계속 챙겨주었다. 그리고 남자는 깜장이에게 어울리는 예쁜 목걸이를 채워주고 '열린 창문'을 꼭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 뒤의 삶은 TV에 출연한 연예인 아이돌 못지 않았다. 번쩍번쩍 사진을 찍어대고 고리 같은 것을 던지며 날아서 통과해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그걸 성공하면 엄청난 박수소리에 깜짝 놀랐고, 그 뒤에는 맛난 음식을 제공받고 편안한 잠자리를 돌봐주는 남자의 배려가 뒤따랐다. 어느날 TV 화면에 '날개 달린 고양이'가 등장했다. 깜장이는 언니 오빠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곡예를 펼치는 날고양이라는 소개와 함께 말이다. 깜장이는 이런 삶이 싫증났다. 너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이었지만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창문 단속'을 하면서 깜장이가 탈출하지 못하게 꼼꼼하게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몰랐다. 깜장이가 '날개'만 달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깜장이는 남자가 손님과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정신 없을 때 감시가 소홀한 '현관문'을 통해서 다른 남자가 문을 나설 때 함께 나가 멀리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 곳곳을 다니며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엄마고양이도 잘 살고 계셨다. 그리고 깜장이는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갔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나가는 글 : 다시 '다름'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자신과 '다른 존재'와는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는가? 솔직히 불편하기는 할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면 서로 배려하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배척하고 공격할 이유가 있을까? 나와 달라서 불편한 것만으로도 힘든데, '능력'도 출중해서 늘 비교 당하고 무시 당하는 일이 생기면,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상대적 박탈감'만 생겨도 함께 어울려 살기에는 너무 불편한 '다름'일 것이기 때문이다.​다시 미국 사회를 드려다보자. 미국에 살고 있는 '백인'들이 왜 뿔이 났을까? 그들은 왜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를 배척하고 공격하며, 심지어 범죄자로 낙인 찍어 '강제추방'까지 서슴지 않는 것일까? 가장 단순한 이유로는 '그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저들이 '내 밥그릇'까지 빼앗아 간다고 철떡 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이민자를 강제추방하는 일은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미국 주류 사회에 살고 있는 '백인들'은 그런 이민자들을 강제추방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 다수다. 오히려 '백인'인데도 비주류 사회에 살고 있는 가난한 서민들이 강제추방에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이민자들이 오지 않았어도 저들은 비주류로 밀려나서 먹고 살기 힘든 삶을 살 운명(?)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능력이 없어서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으니 '애먼 화살'을 돌려서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들에게 쏴버린 것이다. 이게 본질적으로 '다름의 문제'일까?​평범한 고양이들도 '날개 달린 고양이들'을 시샘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일 때 '날개를 꺾어버리자'고 선동하는 고양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니 엄마고양이가 새끼를 품에 안지 못하고 서둘러 떠나보낼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평범한 고양이들이 날개 달린 고양이들 때문에 '손해'보는 것이 뭐가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엄마고양이는 새끼를 떠나보내는 결정을 서둘러 내린다.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날고양이들에게 닥칠 어려움은 '고양이들' 뿐만 아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도 선보였지만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자유를 빼앗기고 '배부른 돼지'처럼 날개를 꺾고 길들임을 당할 우려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이처럼 '다름'은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없게 하고 심지어 '자유'조차 빼앗아버리는 무시무시한 형벌처럼 다가온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다름'을 애써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는 '존재가치'를 손상시키는 무관심이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눈앞에 '다름'이 존재하는데 애써 안본척, 못본척, 없는척 하면 그건 '무시'라는 더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그러니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그냥 '인정'하는 것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가져올 '긍정적인 면'을 찾아나서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일 것이다. 단순하고 쉬운 해결법 같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긍정'보다 '부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른 존재'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 많이, 더 빨리 부각시키며 좋지 않은 결말을 가져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부정적인 면을 찾았다하더라도 긍정적인 면을 더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해결법에도 문제는 있다. 바로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을 열심히 찾으려 노력하다 지쳐버리면 '반감'이 더 크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럼 진정한 해결법은 무엇일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문제'로 축소시켜 애써 갈등을 축소하고 봉합하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너무 철저히 '다름의 문제'를 인지하고 발본색원하는 마음가짐으로 사사건건 시시콜콜 문제를 삼으면 도리어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다르다고? 그게 무슨 큰 문제가 있나?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어쩌라고? 너랑 나랑 겉모습은 달라도 모두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잖아. 설마 너랑 다르면 난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지 말고, 넌 저걸 잘하고 난 이걸 잘하니 서로 힘을 합해서 잘 해보자" 이런 정도의 마인드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정 불편하면 마주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리뷰 #에세이 #날고양이들 #어슐러르귄 #판타지 #다름의문제 #이민자문제 #사회통합 #배려관용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7/85/cover150/89920264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78516</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문학책</category><title>육아와 교육을 단번에 해결? 그건 판타지!  -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87066</link><pubDate>Thu, 22 Oct 2026 2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870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831670&TPaperId=175870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869/5/coveroff/k70283167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831670&TPaperId=175870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2</a><br/>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3년 01월<br/></td></tr></table><br/>&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2&gt;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3)[My Review MMCCCLXIX / 넥서스Friends 1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여덟 번째 리뷰는 본격 요괴 육아 판타지를 담은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2&gt;다. 말 그대로다. 이 소설은 '육아 판타지'를 그려 놓았다. 아주 이성적인 이상향을 담아서 말이다. 어쩌면 '일본의 육아 교본'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을 참고로 삼아서 자녀를 육아해보겠다면 곤란한 일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왜냐면 '인간의 아이'가 아닌 '요괴의 아이'를 육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귀엽다고 여긴다니 '요괴의 아이와 엄마아빠'라고 해도 자기 새끼를 키우는 정성은 가이없을 것이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2&gt; 관점 포인트 : 바쿠란이란 대요괴가 있었다. 엄청난 요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어떤 요괴도 바쿠란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그런 바쿠란이 스스로 자신의 힘을 봉인하고 있었다. 자기 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한 아픈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봉인한 채 홀로 살아가던 어느 날 깊은 산속에서 '인간의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야스케 였다. 둘의 만남은 그렇게 우연이었다. 하지만 인연은 깊고 진하게 이어져 버렸다. 깊은 산속에, 그것도 한 겨울에 남자 아이 하나가 얼어서 굶주려서 기력이 떨어져서 생명의 근원이 사그라져가고 있었다. 그런 야스케를 발견한 바쿠란은 무엇보다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요괴도 아닌 '인간의 아이'를 살려냈다. 그리고 이름을 '센야'로 고치고 인간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대요괴인데도 '인간처럼' 살아가며 야스케를 키워냈다.​이렇게 요괴가 인간의 아이를 키운 이야기가 &lt;요괴의 아이를 돌봐 드립니다&gt;라는 시리즈고, 이 책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gt;는 그 시리즈의 후속작으로, 이번엔 인간 야스케가 센이치(센야의 속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겉모습은 어린아이로 변했다)라는 '요괴의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설정이 뒤바뀌었다. 다시 말해, 후속작인 까닭에 전작의 이야기설정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 말이다. 거기에 뒤바뀐 설정을 보완하기 위해서 더 많은 등장인물이 나왔다. 한마디로 이야기거리는 더 풍성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이야기소재'는 쪼그라든 느낌이다. 육아 이야기를 하다보니 '태교하듯' 경건한(?) 이야기거리만 다루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센이치가 좀 더 자라서 '중2병'에 걸린 사춘기를 겪는 시절이 된다면 또 달라지겠지만 말이다.​이야기의 주인공은 세 명의 아이로 좁아졌다. 물론 전작처럼 다양한 요괴의 아이들이 야스케의 집으로 놀러오거나 잠시 맡기러 찾아오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기본 줄거리는 야스케의 아들(?) 센이치와 규조와 하쓰네의 쌍둥이 딸 아마네(언니)와 긴네(동생)까지 세 명의 아이가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작보다 덜 어수선한 느낌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 덕분에 이야기가 단조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다. 더 지켜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말이다.​1권에서는 '가짜신(허신)'이 깜짝 등장해서 긴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아마네와 센이치까지 모두 가찌신의 먹잇감이 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변태 도룡뇽(영원) 구로모리 덕분에, 아니 야스케의 헌신(?) 덕분에 센이치와 아마네, 긴네는 무사히 구출될 수 있었다. 물론 가찌신을 처치한 것은 동쪽 지궁의 봉행 쓰쿠요가 짜잔하고 나타나서 해결했지만 말이다. 암튼 까딱 잘못 되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일을 겪은 센이치는 2권 첫 부분부터 사쿠노미야를 찾아가 자신은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사쿠노미야는 견신족의 대요괴로 현재 서쪽 지궁의 봉행을 맡고 있다. 애초에 가짜신을 처치해야 할 의무가 사쿠노미야에게 있었으나, 그녀가 활약을 펼치기도 전에 쓰쿠요가 나타나서 가짜신을 대신 처치하는 일대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센이치가 위기의 순간에 '호명'한 대요괴가 사쿠노미야가 아니라 쓰쿠요였던 탓이 크지만, 어찌 되었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탓에 일이 꼬여 버렸다.​그러나 저러나 꼬여 버린 일은 의외의 사건으로 해결되어 일단락이 되고 만다. 센이치가 사쿠노미야를 찾아가 '주술'을 배우고 싶다며 제자로 받아들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센이치의 요청 사실을 안 아마네와 긴네도 재밌겠다면서 센이치와 함께 제자가 되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세 명의 요괴 아이는 사쿠노미야가 거주하는 서쪽 지궁에서 주술 수련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쿠노미야가 어렵사리 제자를 받아주었건만 센이치가 배우는 거라고는 사쿠노미야의 간식을 만드는 수련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간식 만드는 일만 하고, 조금 더 지나서는 사쿠노미야의 네 호위무사인 '사련'들과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수련의 전부였다. 아마네와 긴네는 그런 배움만으로도 즐겁게 지냈지만 센이치를 그렇지 못했다. 왜냐면 센이치가 주술을 배우고 싶었던 까닭이 야스케를 위기에서 구해줄 엄청난 힘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가짜신 사건 때 야스케가 위기에 빠졌는데도 센이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해야 "쓰쿠요!"라는 외침 뿐이었기 때문이다. 센이치는 사랑하는 야스케를 지키고 싶다는 일념으로 강한 힘이 담긴 주술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사쿠노미야는 주술 수련을 곧바로 시작하지 않고 '다른 허드렛일'을 시키며 인내심을 시험한다. 주술 수련을 하는데 인내심(참을성)이 필요한 까닭은 강한 힘이 생겼을 때 그 힘을 함부로 쓰지 않고 꼭 필요할 때 써야만 하겠기에 그랬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런 까닭을 알게 된 센이치는 온갖 불만과 심통을 접고 사쿠노미야의 제자로 다시 예의를 갖췄다. 그 길고 긴(?) 시련을 극복한 센이치에게 사쿠노미야는 첫 번째 주술을 가르쳐 준다. 이름하야 '천향의 술'이다. 뜻을 풀이하면 '천 가지 향기를 뿜어내는 주술'인 것인데, 센이치는 보기 좋은 솜씨로 첫 주술을 어렵지 않게 성공하지만, 곧바로 배움을 끊어버린다. 고작 냄새 피우는 주술을 배워서 어떻게 야스케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래서 센이치는 학원(?)을 끊겠다며 동쪽 지궁을 찾아가지 않고 땡땡이를 치게 된다.​그 무렵 수달 요괴 모녀 쓰오와 지오가 야스케의 집을 찾아온다. 한쪽 다리가 아픈 딸을 고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약재가 있는데, 그걸 구하려면 위험한 장소로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린 딸과 함께 갈 수 없어 야스케에게 돌봄을 부탁하러 왔던 것이다. 그렇게 떠난 수달 요괴 엄마 쓰오는 필요한 약재를 다 구했지만 인간 퇴마사에 의해 구술에 봉인되고 마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센이치는 쓰오가 봉인된 구술을 구출(?)하게 되지만, 봉인에서 풀려난 쓰오는 억울한 심정과 엄청난 고통 속에 휩싸여 분노에 잠식된 탓에 스스로 타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쿠노미야는 그런 쓰오가 안쓰러워서 최선을 다해서 쓰오를 구해주려 했지만, 약한 요괴였지만 아픈 딸 지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재를 구하러 했을 뿐 인간들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퇴마사는 밑도 끝도 없이 '요괴 퇴치'라는 명목을 내세워 쓰오를 구술에 봉인했던 것이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던 쓰오는 분노에 잠식 당해 스스로를 타락시키며 저항했지만 결국 봉인되고 말았다.​그러나 쓰오에게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쓰오는 엄마였기에 아픈 딸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 못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엄마'이기에 당연한 일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엄마'라는 이름이 프리패스인 것도 아니다.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했고 힘들다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픈 딸을 고칠 수 있는 방도가 있다는 사실에 그 힘듦과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또다시 한 달음에 달려가 필요한 약재를 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봉인'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아픈 딸을 치료할 약재를 모두 구한 그 시점에 말이다. 쓰오는 봉인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안위보다 아픈 딸을 더 걱정했을 것이다.​이런 쓰오의 사정을 쓰오가 뿜어내는 '냄새'를 통해서 알아챈 사쿠노미야는 전력을 다해서 쓰오를 구하려 애쓴다. 그러나 한 번 타락한 쓰오는 자신의 생명력을 다할 때까지 '타락의 요기'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아픈 딸을 치료할 희망에 목매다가 겨우 치료법을 찾아내 이제 곧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걸 앞뒤 분간도 하지 못한 퇴마사가 다짜고짜 봉인을 해버렸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 때문에 쓰오의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못했고 타락의 요기는 쓰오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이제 쓰오는 이대로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그 순간 센이치는 '천향의 술'을 발휘해서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나가는 글 : '육아' 이야기를 하다가 주술 '수련' 이야기로 빠져들고 뒷이야기는 '봉인'을 해제하는 등 이리저리 왔다갔다 정신 없긴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요괴의 아이'를 기르는데 모두 경험할 수밖에 없는 다채발랄(?)한 육아스토리인 것이다.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공감하실 것이다. 아이 한 명 때문에 온 집안 식구가 총출동하는 일이 다반사고, 외출 한 번 할라치면 '이삿짐'을 싸듯 싸짊어지고 나설 수밖에 없고, 이제 좀 컸다고 부모의 감시망(?)을 요리조리 피해서 탈출한 뒤에 사건사고를 몰고다니는 바람에 골머리를 썩히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에 반듯한 어른으로 성장시키고자 '사교육'이라도 시킬라치면 천문학적인 비용 문제는 둘째치고 진득하니 '배움'을 닦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굴뚝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이런 이유로 가기 싫고, 오늘은 저런 이유 때문에 안 가고 싶고, 내일은 제발 좀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그냥 가주기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을테니 말이다.​이 책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2&gt;는 그런 부모님의 속사정을 뒤로 한 채, 오직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육아/교육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결말 부분에서는 꼭 어른스러운 교훈적인 마무리를 하고 있어서 정말 '판타지'가 맞구나 싶다.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가? 눈치가 백단이고 어른들 머리꼭대기에서 노는 '천상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들의 속사정과 깊은 뜻을 단박에 깨우치고 '겸양'을 배우고 실천한다니. 그것도 단 한 번의 사고를 친 뒤에 말이다. 정말 판타지에서나 등장할 법한 교훈적인 이야기다. 혹시 일본의 육아/교육 시스템은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절대불가다. 다음에 계속.​#리뷰 #에세이 #요괴의아이를키우고있습니다 #히로시마레이코 #요괴소설 #판타지 #육아 #교육 #주술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869/5/cover150/k70283167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8690571</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문학책</category><title>권선징악이 아닌 필상필벌이라 아쉽다 - [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85413</link><pubDate>Wed, 21 Oct 2026 22: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854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838575&TPaperId=175854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43/58/coveroff/k3628385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838575&TPaperId=175854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1</a><br/>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미노루 그림, 김지영 옮김 / 넥서스Friends / 2022년 06월<br/></td></tr></table><br/>&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1&gt;  히로시마 레이코 / 김지영 / 넥서스Friends (2022)[My Review MMCCCLXVIII / 넥서스Friends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일곱 번째 리뷰는 요괴의 아이를 돌보던 야스케가 센야의 영혼을 간직한 아이 센키치를 키우는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1&gt;이다. 그러고 보면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 제목은 대체적으로 '직관적'이다. '이상한 과자점'이라든지 '요괴의 아이'를 돌보거나 키운다든지 말이다. 하긴 최근의 일본 만화제목을 보면 꽤나 서사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으니 히로시마 레이코만 그런 것은 아닌 듯 싶다. 암튼 전작 &lt;요괴의 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gt;에서 야스케는 봉인된 기억을 깨뜨렸고 그로 인해 센야는 어겨서는 안 되는 약속을 깨뜨리는 바람에 영원히 소멸될 운명이었다. 허나 '해피엔딩'이라고나 할까. 비록 센야는 사라졌지만 '센야의 영혼'을 고스란히 간직한 요괴 아이가 남겨졌다. 마치 센야와 야스케의 운명적 만남이 재현된 듯이 말이다. 그래서 야스케는 그 요괴 아이를 제 손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고, 센야가 야스케를 사랑과 헌신으로 키워줬듯이 야스케도 센키치를 사랑과 헌신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자, 이렇게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gt;는 새롭게 시작한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1&gt; 관점 포인트 : 애초에 '성인소설'로 써낼 작정이었던 작가 히로시마는 &lt;요괴의 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gt;의 시작을 꽤나 폭력적이고 야시꾸리(?)하게 설정하며 풀어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어린이책'으로 분류하지 않고 그냥 '소설책'으로 분류할 정도였다. 그런데 새롭게 시작한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gt;는 애초에 어린이 독자를 위해서 쓰고자 했던 것인지 상당히 '순화(?)'된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요괴'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잔혹하고 끔찍한 설정'이 담겨 있긴 하지만 적어도 '전작'에 비해서는 그나마 어린이 독자가 읽어도 좋을 정도로 여겨질 정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암튼 주된 이야기는 야스케가 요괴 아이 센키치를 사랑과 헌신으로 잘 키운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매 화마다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서 야스케와 센키치를 이상하고 요상한 사건에 빠져들게 만드는 '서브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관계로 전작인 &lt;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gt;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전작에서는 '센야와 야스케'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야스케와 센키치'로 바뀐 것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고 어린 야스케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요괴 아이 돌보미'로서가 아닌 '요괴 아이 보호자'로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것이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그래서 전작에서는 '아이의 심정'으로 사건을 대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부모의 마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진 것이다.​한편, '입장'이 달라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전작에서는 요괴 아빠(센야)가 인간 아이(야스케)를 기르는 상황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 아빠(야스케)가 요괴 아이(센키치)를 키우기 때문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이 차이가 참 묘하게 작동한다. 왜냐면 아이를 돌보거나 보호하는 아빠의 '능력'이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센야는 요괴 가운데서도 출중한 능력을 갖춘 나름 능력자였지만, 야스케는 고작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괴 아이를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능력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전작에서는 야스케가 사고를 치면 센야가 손쉽게 해결해내곤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센키치가 사고를 쳐도 인간인 야스케가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능력이 없다. 그래서 전작에 비해서 '인간 야스케'를 돕는 캐릭터(등장인물)가 더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인간 야스케는 아무런 능력도 없이 요괴 아이 센키치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인간인 야스케에게 부족한 것이 많긴 하지만, 딱 하나 그 누구보다 출중한 능력이 있다. 바로 인간이든 요괴든 야스케를 돕고 싶게 만드는 '선량함'이다. 단순히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요괴를 구분하지 않고 아무런 편견도 없이 '똑같이' 대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야스케가 '버려진 아이'였지만 온갖 요정과 신, 그리고 요괴까지 야스케를 살려내려 애썼고, 야스케도 그런 존재들의 배려에 부족함 없이 '선함'으로 보답을 하는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lt;요괴의 아이를 돌봐드립니다&gt;와 &lt;요괴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gt;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것이다.​나가는 글 :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을 읽으면 그냥저냥 '일본소설의 느낌'에서 그치지 않아서 좋았다. 기괴하다 못해 끔찍하고 참혹한 '이상한 이야기'만 쓴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에게서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선량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과응보라는 것이 작용해서 '나쁜 짓'을 일삼은 악당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잔혹한 처벌(?)을 내리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끔찍한 겉모습에 해쾨망측한 짓만 하고 다니는 요괴에 대한 잘못된 편견만 부각하지 않고, 요괴일지라도 인간 못지 않은 '선량함'을 가지고 있다고 밑바탕에 찐하게 깔아놓았다. &lt;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gt;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lt;요괴의 아이&gt; 시리즈에서도 그런 착한 마음씨가 엿보여서 좋았다.​그래서 이해하기 쉽게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또 우리의 정서와는 좀 달랐다. 한국고전소설에서 주로 표현되는 '권선징악'은 착한 마음을 권하고 나쁜 마음에는 벌 준다는 뜻이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고 무작정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착한 마음씨를 '권'한다는 마인드란 말이다. 또한 벌준다는 뜻에도 나쁜 마음씨를 '경계'하고 '멀리'하라는 뜻이지 나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끔찍하고 잔혹한 형벌을 내려서 고통을 줄지언정 죽여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갱생'하도록 따끔하게 혼을 내는 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국의 권선징악은 착한 마음씨에 '좋은 결말'이, 나쁜 마음씨에는 '나쁜 결말'이 뒤따른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강하지, 처벌을 내리고 완전히 '격리'시켜 버리는 내용은 극히 드물다.​그런데 히로시마 레이코의 '권선징악'은 착하게 살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줄거다. 후회하지 말고 나쁜 마음씨를 고쳐 먹으라. 이렇게 경고했는데도 어기면, '넌 죽음', '넌 소멸', '넌 파국'..이런 식이다. 이러면 죽기 싫고 불이익 당하기 싫어서라도 끝까지 저항하고 죽을 때까지 발악을 하고 말 것이다. 이건 진정한 '권선징악'이라 부를 수 없다. 오히려 '약육강식'의 다른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쁜 놈이 '강자'여도 힘 없고 선량한 약자는 괴로워하고, 착한 이가 '강자'여도 힘 없고 악독한 약자는 저항해봤자 죽을 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 속에서는 '용서'와 '관용'의 이야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용서해줄 수 있는 '선'을 넘어버리고, 관용을 베풀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겨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용서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관용을 베풀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쉽다.​그렇기에 히로시마 레이코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일본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은 착한 이에게는 '상'을 주는 것으로, 나쁜 놈에게는 '벌'을 내리는 것으로 엔딩을 장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인물 가운데 악당은 대부분 '다음 화'에 나오기 힘들다. 자잘한 악당들은 한 회 딱 등장한 뒤에 사라지고, 아주 강력한 '대악당'의 경우에는 끝까지 살아남아 '마지막 보스'로 등장해서 최후까지 발악을 하다 장렬하게 죽거나 사라지는 것으로 끝맺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점이 참 아쉽다. 다음에 계속​#리뷰 #에세이 #어린이책 #요괴의아이를키우고있습니다 #히로시마레이코 #일본요괴 #권선징악 #약육강식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43/58/cover150/k3628385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6435872</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동탁도, 초선도, 그리고 죽는 장면만 계속 된다 - [전략 삼국지 8 - 여포와 조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8979</link><pubDate>Sun, 18 Oct 2026 1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89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536370&TPaperId=175789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0/coveroff/k48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536370&TPaperId=175789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8 - 여포와 조조</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8 : 여포와 조조&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XVII / 대현출판사 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여섯 번째 리뷰는 읽다보니 '죽고 죽이는 장면'만 클로즈 업을 하고 있는 &lt;전략 삼국지 8&gt;이다. 천웨이동의 &lt;중국정통 만화 삼국지&gt;라는 책을 봐도 '죽이는 장면'이 나오고, 우리 나라의 &lt;고우영 삼국지&gt;에도 '죽고 죽이는 장면'은 나온다. &lt;삼국지연의&gt;가 태평한 시기도 아닌 전국시대만큼이나 혼란한 왕조교체기였으니 어찌 전투나 전쟁 묘사가 없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태평한 시대에도 궁중암투로 벌어지는 정치싸움에서도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연출된다. 하지만 전쟁은 그 양상이 더욱 심하기에 그런 혼란한 시대를 '만화'로 그리는 작업을 할 때에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유독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여기는 '인명경시 풍조'가 엿보여서 불편한 점이 있다. 그래서 앞서 천웨이동과 고우영 화백을 예로 들은 것이다.​천웨이동은 &lt;삼국지연의&gt; 속의 '명장면'을 한컷 한컷 예술적으로 승화시켜서 묘사하고 나머지 줄거리는 과감히 스킵(건너뛰기)하는 방식으로 압축과 생략의 묘미를 잘 살려냈다. 거기다 장수와 장수의 대결은 가장 멋진 각도(!)로 조명하여 '삼국지팬'이라면 두 주먹이 불끈 쥐고 손에 땀이 찰 정도의 두근거림을 느끼게 해줄 정도의 쾌감을 선보인다. 반면에 고우영 화백은 '인명 살상'이 벌어지는 장면을 그릴 때 '감정적 묘사'가 뛰어나다. 그래서 '사람 vs 사람'의 대결이지만 '의 vs 불의'의 싸움임을 분명히 밝히고, 의가 승리할 때에는 '정의'가 살아 있음에 환호하게 만들고, 의가 패배할 때에는 슬픔과 비통, 그리고 분노가 일어나게 그려낸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독재자'가 폭정을 일삼고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 따위다. 그런데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장수 대 장수'의 명대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도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사람의 목숨을 끊어내는 장면을 '클로즈 업'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챙챙 칼부림을 하다가 악하고 죽는 장면,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단칼에 목을 뎅겅 자르는 장면, 힘 없는 노인과 아이는 달아나는 도중에 등을 찔려 죽고 젊은 여인들은 겁탈을 당하고 죽여버리는 잔악한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은 날카로운 무기와 찔리거나 베이는 동작, 그리고 효수된 머리 따위를 흐릿하게 처리했을 뿐이다. 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일까?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8&gt; 관점 포인트 :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인물들이 죽어 간다. 동탁이 폭정 끝에 여포에게 배신을 당해 죽임을 당하고, 조조가 연주에 정착하고 아버지 조숭을 모셔오는 과정에서 도겸의 초대를 받아 환대를 받은 뒤에 '도겸의 부하 장개(황건적 출신)'에게 죽임을 당하고, 조조는 이 때문에 원한을 갚겠다며 '서주의 백성'을 도륙한다. 하지만 요시키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에서 조조의 서주대학살 장면이 누락된 때문인지, 요코하아 미츠테루도 이 대목을 그냥 건너뛰었다. 대신 조조가 서주 공략을 위해 연주를 비운 사이에 여포가 조조의 근거지를 빼앗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조조와 여포의 대결'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여기까지가 &lt;전략 삼국지 8&gt;의 줄거리 전부다. 설명이 너무 간단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 자체가 그렇다. 그저 죽고 죽이는 장면 묘사에만 치중할 뿐, 왜 서로 죽고 죽이는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책으로 처음 &lt;삼국지연의&gt;를 접하는 독자라면 '고전의 깊이'를 전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유비가 주인공이구나. 조조가 악당이구나. 그런데 유비의 꿈이 결국 실패하는구나. 그 정도의 감흥밖에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무능하고 어리석은 지배자로 인해 국정이 문란해지면 결국 힘 없는 백성들만 개고생을 한다는 비판의식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저 약육강식, 적자생존, 힘 있는 사람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비정한 현실만을 느끼게 해줄 뿐이다. 그나마 &lt;삼국지연의&gt; 등 여러 책을 먼저 읽고 주제와 깊이 등을 잘 알고 있는 독자들만이 '이런 식으로 &lt;삼국지&gt;를 즐길 수(?)도 있구나' 싶은 감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깊이 &lt;삼국지연의&gt;를 즐기는 독자들이라면 이런 거친 방식으로 '만화 삼국지'를 펴낸 것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이런 '폭력'에 길들여지고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것을 '가스라이팅' 당한다고 한다. 일본은 이를 국가적으로 강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름다운 전통이라느냥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어지럽고 무질서한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한 지혜로 볼 수도 있다. 일본이 그토록 자랑하는 '사무라이'가 정권을 잡고 일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막부정부'가 일왕정권을 대신했던 시절에 '사무라이의 말'은 바로 법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높은 신분은 누리고 낮은 신분은 억압받고 빼앗기는 것이 당연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고전작품'을 오늘의 우리가 읽고자 권장하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고전은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그 가치가 있기에 읽히는 것이고, &lt;삼국지연의&gt;도 바로 그 때문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럼 그 가치는 무엇일까?​적어도 '전란의 시대'에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생생히 살려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과 새 나라를 만들려는 웅지를 품은 영웅들의 등장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국가란 무엇이고, 영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 바로 정의롭게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나관중은 &lt;삼국지연의&gt;를 통해서 원말명초 때 오랑캐들에게 짓밟힌 '한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려 한족 영웅들의 이야기를 추려냈던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의로운 영웅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역사의 승자였던 조조가 아닌, 비록 패자였지만 그가 세우려 했던 나라를 보여주며 그 뜻을 기리고자 '촉한정통론'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 &lt;전략 삼국지&gt;에 아쉬움이 큰 것이다.​나가는 글 : 90년대 이 책을 어렵지 않게 접하고 읽던 친구를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낱권으로 구매하기도 힘들었고 구매하려면 '전권 60권'을 다 사야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부자친구들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던 시절이라 선뜻 책을 빌려 달라는 말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그런 추억이 있었기에 이번에 '도서관 대여'를 통해서 읽을 수 있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다른 책도 밀어둔채 이 책부터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서 솔직히 당황스러운 심정이다. 그 시절에 어깨 너머로 훔쳐볼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말이다.​하긴 90년대의 일본은 대단한 나라였다. 부러운 나라였고 굉장히 앞선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이 과거의 잘못도 반성하지 않고 뻔뻔하게 구는 자세를 취해도 '실력'에서 앞서지 못했기에 당당히 꾸짖지 못하고 주눅 들어 있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다. 특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나에게 그 수많은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손쉽게 구해서 볼 수도 없는 '한계'가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고 이젠 '제한'없이 볼 수 있게 되었건만 보면 볼수록 '기대이하'로 다가오기에 실망이다. 어릴 적에 동경했던 나라가 겨우 이 정도였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lt;철인 28호&gt;, &lt;바벨 2세&gt;, &lt;요술공주 세리&gt;...요코야마 미츠테루라는 작가 이름도 모르고 즐겼었는데 말이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고 뚜껑을 함부로 열지 말았어야 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40/cover150/k48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4018</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손견도 죽고, 동탁도 곧 죽을 예정 - [전략 삼국지 7 - 강동의 파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7553</link><pubDate>Sat, 17 Oct 2026 2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75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536370&TPaperId=175775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9/coveroff/k45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536370&TPaperId=175775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7 - 강동의 파란</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7 : 강동의 파란&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XVI / 대현출판사 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다섯 번째 리뷰는 강동의 호랑이 손견이 일어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만 &lt;전략 삼국지 7&gt;이다. 지은이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1934년 생으로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단다. 고베는 일본 교토에서 남서쪽, 오사카에서 서쪽에 위치한 개항지로 유명한 곳이다. 한창 어린 시절인 10대에 일본이 패전하는 모습도 생생하게 보았을 것이고, 그뒤로 청년기에는 일본이 고도로 발전하는 모습도 생생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다 불혹의 나이에 &lt;전략 삼국지&gt;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니, 그는 '일본인의 자긍심'을 뼛속 깊이 새기며 일본의 중흥을 꿈꾸며 만화를 그려왔으리라 짐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그린 만화 가운데 상당수가 '고증'이 필요한 역사만화였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고전 &lt;삼국지&gt;, &lt;수호지&gt;, &lt;항우와 유방&gt;, &lt;사기&gt;, &lt;석가모니&gt;, &lt;칭기스칸&gt; 등과 야마오카 소하치 원작의 소설 &lt;도쿠가와 이에야스&gt;(국내제목 '대망'), &lt;도요토미 히데요시&gt;, &lt;오다 노부나가&gt; 등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극화하는 등 꽤나 다작을 펴낸 화려한 경력을 보아도 그렇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읽어보면 그 시절에 그린 '일본의 품격'(?)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못해 적나라한 성적 묘사와 잔혹한 장면 묘사에 치중한 경향이 엿보여 난처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절대 산책을 하면서 읽지는 못하겠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7&gt; 관점 포인트 : 줄거리는 빠르게 진행된다. 손책이 반동탁연합군에 참전해서 활약한 덕분에(?) 얻게 된 '전국옥새'를 손에 쥐고 강동으로 돌아가 '제왕의 꿈'을 키우려던 때에 원소의 지령을 받은 유표의 예상 못한 공격에 손견은 크게 낭패를 보고 그만 죽고 만다. 이로써 손견이 꾸던 꿈은 맏아들 손책이 이어받게 되는데, 손책은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잠시 묻어둘 수밖에 없게 된다.​한편, 동탁은 천자를 볼모로 삼아 장안 천도에 성공한 뒤 자신이 황제라도 된 듯 세상을 호령하며 군림하였다. 이런 동탁의 만행을 두고 보면서 한나라에 충성을 바칠 충직한 신하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동탁 곁에는 늘 여포가 있었기에 감히 반항이나 저항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도 왕윤이 딸처럼 키운 '가기 초선'에게 엎드려 부탁을 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네 한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겠냐고 말이다. 초선은 자신을 귀하게 대접한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자, 왕윤은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시킬 무시무시한 '연환계'를 실행하려 든다.​왕윤의 그런 계책이 착착 들어맞을 찰나 동탁의 모사 이유의 눈에 동탁과 여포 사이에 벌어진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동탁이 새로 들인 계집 '초선' 때문이란 것을 간파하자, 이유는 동탁에게 '절영지회'의 고사를 들려준다.​중국 춘추전국시대 춘추오패 가운데 하나인 초 장왕과 신하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화로 '갓끈을 끊고 연회를 즐기다'라는 뜻이다. 장왕이 신하들과 함께 연회를 즐기던 와중에 밤이 깊어 등불을 환히 켜놨는데, 느닷없이 강풍이 불어 연회장의 등불이 모두 꺼지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 혼란한 틈을 타서 장왕이 총애하던 여인의 입술을 훔친 남자가 있었고, 그 여인은 자신의 절개를 꺾지 않겠다는 의지로 어둠속에서 그 남자의 '갓끈'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장왕에게 "저를 희롱한 남자가 있으니 벌해 주소서. 그 남자의 갓끈을 끊어 놓았습니다"라고 일러바쳤다. 그 말을 들은 장왕은 등불을 밝히기에 앞서 연회장에 참석한 이들에게 말하기를, "불을 켜기 전에 모두 갓끈을 풀어라. 오늘 술을 마시느라 모두 취했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실수'로 내가 총애하는 여인의 입술을 훔친 자가 있다고 한다. 허나 작은 실수로 충직한 신하들을 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내가 총애하는 여인이 정절을 잃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 또한 죄인이 누군지 밝히려 드는 '큰 실수'를 저지를 게 분명하다. 그리니 오늘 일로 우리 모두가 실수를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테다." 그렇게 사건은 유야뮤야 처리가 되었고, 범인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처벌하는 일도 없었다. 몇 년 후, 진나라와 벌인 전투에서 초 장왕이 위기에 빠졌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장왕을 구한 장수가 있었다. 초 장왕은 그 장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자. 그 장수가 자백을 하며, "예전에 저의 실수를 감싸 주어 죽을 목숨을 구해주셨기에, 저는 그때부터 목숨을 바쳐 은혜에 보답하려 했을 뿐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죽었다.​이유는 동탁에게 이 고사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부하의 사소한 실수를 포용한 지도자에게 부하는 감복하여 충직으로 보답한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그러니 '초선'을 여포에게 주고 주공은 '천하'를 얻으시라 권하자 동탁은 그제서야 마지 못해 그러겠다고 대답한다.​나가는 글 : 여기까지의 줄거리만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수미쌍관' 구조를 보이며 아주 멋드러진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손견과 동탁이 둘 다 '천하'를 꿈꿨지만 끝내 허탕을 치고 죽게 된다는 사실은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적나라한 전투 장면과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음흉한 시선을 던지는 장면 등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어린이 독자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만 강조하고 넘어가도 충분할 텐데,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끈적끈적한 시선을 노골적으로 집중조명한 까닭을 묻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숱한 '만화 삼국지'를 보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한국 작품'과 '중국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오직 '일본 작품'에서만 이런 묘사가 극화될 뿐이다. 그 가운데 요코야마의 &lt;전략 삼국지&gt;는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 물론 '성인 만화'라는 딱지를 붙였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어린이 청소년용'이라고 소개하고 광고하면서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않겠냐는 말이다.​일본은 '사무라이(무사) 정신'을 동양 문화의 정수이자 일본의 자긍심으로 삼는 모양인데, 그러면서도 철저히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 역사'에는 눈을 감고 오로지 '상품성'만을 강조하며 '사무라이 정신'을 판매할 뿐이다. 최근에야 이런 문제점을 깨우친 서양인들이 '사무라이'와 맞서 싸운 전쟁에서 전승 무패를 자랑한 '이순신 장군'을 접하고서 열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참혹한 전쟁을 치루면서도 "이 전쟁은 무엇을 위한 전쟁입니까?"라는 왜장의 물음에 "의와 불의의 싸움이지"라고 대답하는 영화속 대사를 보면서,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표하곤 한단다.​그러면서 서양인들이 한동안 열광했던 '사무라이'가 사실은 그저 '살상 기계'와 다를 바 없고, 그저 오락용으로 베고 또 베는 장면만 보면서 희열(카타르시스)을 만끽하는 것으로 소비하고 있던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이순신 장군의 한마디'로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새삼 자신들이 '사무라이 정신'으로 녹여낸 영화 &lt;7인의 사무라이&gt;, &lt;스타워즈&gt;, &lt;킬 빌&gt; 등과 같은 영화를 소비하는 행태에 대한 반성도 하고 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그런 까닭으로 2026년의 관점에서 &lt;전략 삼국지&gt;의 폭력성과 참혹한 장면 묘사는 살짝 거르고 감상하는 방법을 터득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9/cover150/k45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3935</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조자룡이 ‘미소년‘이 아니라고?  - [전략 삼국지 6 - 옥새의 행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4072</link><pubDate>Thu, 15 Oct 2026 2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40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536370&TPaperId=175740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8/coveroff/k33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536370&TPaperId=175740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6 - 옥새의 행방</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6 : 옥새의 행방&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XV / 대현출판사 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네 번째 리뷰는 오랜만에 이어서 리뷰하는 &lt;전략 삼국지 6&gt;다. 본의 아니게 리뷰를 열흘이나 쉬게 되었다. 늙어서 체력이 뒷받침 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읽고도 좀처럼 리뷰쓰기가 잘 되지 않았던 책이 있어서 '번민의 시간'이 길었던 탓이다. 앞으로 쭉쭉 리뷰를 할 예정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6&gt; 관점 포인트 : 일본의 만화가 대부분 그런 편이라 물색없이 읽어나가려 하지만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lt;전략 삼국지&gt;는 '폭력성'과 '잔혹함'에 있어서 다른 '만화 삼국지'보다 월등하다. 애초에 후한말의 혼란한 시기에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며 전쟁을 일삼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전쟁의 참혹함'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만화 삼국지'에 비해서도 그 정도가 심하고 노골적이기에 우려스러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국내에 소개될 때에는 잔혹한 장면과 끔찍한 무기에 대한 장면 묘사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겠는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모자이크'에 무덤덤해질 정도로 많다는 것도 문제다.​암튼, 6권의 줄거리는 도읍을 옮기기 위해서 낙양을 불지르고 장안으로 내빼는 동탁을 단독으로 뒤쫓는 조조가 대패를 하는 바람에 겨우 목숨만 살아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반동탁연합군이 해체한 뒤에 각각의 영지로 돌아간 원소와 공손찬이 기주를 둘러싸고 혈투를 벌인 '반하의 전투'에서 무승부를 거둔 두 진영은 싸움을 거두고 '화의'를 청하는 대목까지 이어졌다.​사실 이 책 &lt;전략 삼국지&gt;에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를 제외하고 나머지 군웅들은 죄다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가운데 최고는 '조조'다. 그래서 조조는 등장하면서부터 '대마왕의 표정'으로 묘사되었고 어딘지 모르게 음침하고 음습한 표정으로 대놓고 묘사하곤 했다. 그래서 조조 못지 않게 악인으로 등장해야 할 '동탁'이 덜 악하게 그려질 정도다. 그러다 보니 원작인 '소설 삼국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몰입감이 확 떨어지게 된다. 적어도 조조가 동탁을 뒤쫓아 군사를 몰고 갈 때만큼은 '악인'이 아니라 한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충신'의 모습이 확실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악인(동탁)'의 뒤를 쫓는 영웅(조조)의 모습을 천하를 독차지하려는 듯한 '음습'한 표정으로 뒤쫓고 있으니 어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만화속 캐릭터가 '통일성'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띤 모습'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조는 타고난 악인으로 묘사하는 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황제의 혈서'가 발각이 되고 조조를 역적으로 내몰고 죽이려던 사건 때문에 조조가 대폭발하여 대대적인 숙청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조조는 '충신'으로 그려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반영되지 않고 시종일관 '악인'으로 묘사되는 조조는 아쉬울 따름이다.​한편, 반동탁연합은 조조의 패배 이후 해체되어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 와중에 손견은 우물속에서 '전국옥새'를 찾아 대사를 도모하려던 순간 원소에게 발각이 되어 곤혹을 치루게 된다. 원소가 맹주된 이유를 대며 '옥새'는 황제에게 돌려줘야 한다면서 자신이 맡아두었다가 황제에게 돌려드리겠다며 손견에게 대놓고 달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손견은 발뺌을 하며 서둘러 자신의 영지로 되돌아가려 했다. 이에 원소는 유표에게 밀서를 보내 손견이 가는 길을 막고 옥새를 빼앗으라 한다. 하지만 옥새를 빼앗는데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애꿎은 손견의 목숨만 빼앗게 된다. 이렇게 유표와 손씨 가문은 대대로 원수를 지게 된다.​한편, 원소는 자신의 영지로 되돌아가다 한복이 차지하고 있는 '기주'를 탐하게 된다. 왜냐면 기주는 곡창지대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차지했다가는 다른 제후들에게 욕을 먹기 십상이니 공손찬에게 밀서를 보내 '기주'를 반씩 노나먹자고 제안하고 군사를 끌고 오라고 제안한다. 그러자 공손찬의 군대를 두려워한 한복이 원소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원소는 아무런 힘을 쓰지도 않고 기주를 혼자 차지하게 된다. 뒤늦게 원소의 계략임을 파악한 공손찬은 동생 공손월의 죽음에 분노하며 북방의 오랑캐를 정벌할 때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 '백마진'을 앞장세워 원소를 공략한다. 서로 일진일퇴를 거듭한 두 진영은 길어진 전투로 손해가 막심하자 전쟁을 잠시 멈추자는 '화의'를 요청하게 되는데...​나가는 글 : 반동탁연합군에서 서로 같은 진영으로 동탁과 맞서 싸웠던 원소와 공손찬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눴다. 어릴 적에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대목이기도 하다. 왜 '같은 편'끼리 서로 적대시하면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지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다. 설령 '같은 편'이었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다가 끝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곤 하는 일 말이다. 지금 동맹을 넘어 혈맹이라 여겼던 '한미관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고, 오히려 적국과 친해질지언정 감히 '동맹국' 주제에 미국의 이익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칼을 빼들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철저히 '힘의 원칙'에 따라 강대국이 약소국을 맘대로 휘둘러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는 목적에 따라 '편'은 언제든지 갈아탈 수 있는 셈이다. 원소와 공손찬의 대결은 그렇게 해서 벌어진 것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공손찬이 '자멸'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원소 입장에서는 '힘겨운 승리'였다고 할 수밖에 없을만큼 공손찬이 만만찮은 상대였는데도, 반하 전투 이후 공손찬은 성안에 틀어박혀서 지키기만 하다가 '자결'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이 책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공손찬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살려준 '상산의 조자룡'이 등장하는 대목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것도 아주 '노안'으로 말이다. 조운이 첫 등장할 때가 약관(20세)의 나이가 채 되지 않은 소년 장수로 등장해야 마땅한데,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아주 노련하고 다부진 얼굴에 건장한 체격으로 듬직한 캐릭터로 만들고 말았다. 뭐, 조자룡이 '미소년'이나 '미남자'라는 기록은 없어도 못생겼다는 기록도 없는데 너무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나중에 유비와 같이 그려놓은 장면에서는 되려 유비가 더 젊게 보일 정도다. 이건 좀 심하지 않았을까?​#리뷰 #에세이 #만화삼국지 #전략삼국지 #요코야마미츠테루 #반동탁연합군 #반하전투 #백마진 #책이있는구석방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8/cover150/k33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3845</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인문학책</category><title>이대로 대한민국은 멸종할 것인가? - [2026 대한민국 인구보고서 : 시한부 지방 인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2257</link><pubDate>Wed, 14 Oct 2026 2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22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1690&TPaperId=175722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76/33/coveroff/k4021316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1690&TPaperId=175722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26 대한민국 인구보고서 : 시한부 지방 인구</a><br/>계봉오 외 지음 /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 2026년 09월<br/></td></tr></table><br/>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lt;2026 대한민국 인구보고서 : 시한부 지방 인구-지역이 낳고, 수도권이 삼킨다&gt;  계봉오 등 /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2026)[My Review MMCCCLXIV /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세 번째 리뷰는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은 결국 '멸종'하고 마는 것인지 심층 분석한 &lt;2016 대한민국 인구보고서&gt;다. 현재 대한민국의 전체 인구는 5천만 명이 조금 넘지만 앞으로 20~30년 뒤에는 4천만 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단다. 이유는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저출생, 고령화' 사회문제 때문이다. 고작 인구 1천명 줄어드는 것이 그리 큰 문제도 아닌 듯 싶지만, 거기서 한 세대가 더 지나면 인구는 1천만 명대로 급감하기 때문에 큰 문제인 것이다. 왜 그럴까? 저출생 문제 때문이다. 100명의 남녀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하지 않아 절반만 결혼해서 아이를 출산한다고 가정했을 때 다음 세대는 몇 명이 될까? '절반'이라고 했으니 50명이 될 것 같지만, 아이는 남녀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일쑤다. 그래서 남자 50명, 여자 50명 가운데 '절반'만 결혼을 해서 아이 1명씩 낳으면 25쌍(50명)의 가정에서 25명의 아이를 낳게 되니, 100명이 25명이 되는 것이다. 저출생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나 큰 것이다. 여기서 더 암울한 것은 다음 세대로 남은 25명 가운데 절반이 쌍을 이뤄 아이를 낳게 되면 고작 6명이 된다. 100명에서 25명, 그리고 6명이 되는 것이다. 겨우 두 세대만에 말이다. 그럼 이 책의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올 것이다. '시한부 인구' 말이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2026 대한민국 인구보고서 : 시한부 지방 인구&gt; 관점 포인트 : 앞서 '저출생'이 가져올 사회 변화를 단순한 수식으로 점쳐 보았다. 그리고 '저출생 문제'를 심각하게 경고한 것은 2000년 초반이었고 말이다. 그럼 그때 전체 인구와 지금 현재의 전체 인구에 큰 변화가 있었을까? 다행히 큰 변화는 없다. 100명이 25명이 된다고 했는데, 왜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까? 전체 인구에는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 수'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도 죽지 않는 고령자 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50~60년대 '1차 베이이붐 세대'와 60~70년대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전체 인구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90년대 이후 출산율이 계속 줄었는데도 전체 인구수는 그리 줄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베이비붐 세대들이 50대가 다 넘어섰다. '고령자'들이란 말이다. 아직까지 마지막 70년대 생들이 전체 인구수를 받쳐주고 있지만, 이들이 향후 20~30년 사이에 모두 사망하고 나면 눈에 띄게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그럼 이대로 대한민국의 인구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말 것인가? 그건 아니다. 사망자만큼 출생자가 채워주면 되기 때문이다. 헌데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압도적인 '저출생 국가'다. 합계출산율이 한때 0.6대를 찍었고 이제 다시 반등해서 0.8대로 올라섰으나 1.0을 넘지 않기 때문에 전체인구수는 여전히 줄어들 전망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결혼과 출산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때는 이를 두고 '여성만의 문제'로 보다가 확장해서 '모든 청년들의 문제'라고 심각하게 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 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게 된 원인이 어느 한 쪽만의 문제가 아님을 '공감'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제 시각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목 &lt;시한부 '지방' 인구-지역이 낳고, 수도권이 삼킨다&gt;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수도권 인구는 큰 변화가 없는데 반해서 각 지역의 인구는 점차 감소하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합계출산율은 서울이 0.6명, 전남이 1.1명이란다. 그럼 수도권 인구가 줄어들고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야 할텐데, 현상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구 이동'이 활발하게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럼 대한민국 국민은 왜 이동하는가? 이런 질문이 뒤따라올 것이다. 답도 어렵지 않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쉬운 곳이 지역이 아니라 수도권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살기 좋은 곳'도 지역보다는 수도권이 그렇기 때문이다. '놀기 좋은 곳'도 역시다. 한마디로 '안정적인 직장', '학교와 병원 등 편의시설', '유흥이나 공원 등 즐기고 쉴 수 있는 시설' 등이 모두 수도권에 편중되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를 전국으로 고루 퍼뜨리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 위와 같은 것들을 충분히 마련하면 해결될 일이다.​하지만 말이 쉽지 이런 인프라 구축을 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일자리와 편의시설과 위락시설'을 완비했다고 하더라도 '접근성'까지 좋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주거공간'을 위해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해야 하고, 더구나 이 아파트 부동산 가격도 꾸준히 상승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나야 비로소 '서울 수도권'에 편중된 인구가 각 지역으로 고루 퍼지게 될 것이란 말이다. 가능하기는 할까? 그래도 나름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와 같은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허나 부산조차 인구수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대구, 광주, 울산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세종시를 비롯한 충청도가 점점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단다. 아마도 '행정수도'라는 위상이 한 몫한 덕분으로 보인다.​그럼 왜 부산를 비롯한 대도시조차 인구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일까? 사실 서울의 인구수가 줄어드는 이유와 같다. 요즘 청년들은 단지 '일자리'만 보장된다고해서 한 곳에 머물러 살지는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단다. 일자리를 구했더라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약기간에 따라 1~2년 내에 이직이 가장 많았고, 일자리를 따라서 이리저리 이동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 못하니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연애조차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이다. 더욱이 여성들은 더 기피현상이 심하다. 결혼을 하고 출산과 육아를 하는 것이 힘든 것은 둘째고, 자신이 그간 쌓아온 '커리어(경력)'이 단절되어 다시 복귀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기 때문이다. 물론 '일과 사랑'을 동시에 해내는 여성들도 많지만,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단함을 옆에서 지켜보며 '결혼에 대한 환상'이 산산히 부서진 여성들이 더욱더 외면하고 만다. 그리고 여기에 한 몫을 더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정책'이 이들 남녀청년들의 고민을 원천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하고, 그저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무식한 정책으로 인해 큰 실효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서 더욱더 기피를 부추기고 있다.​20대 청년들에게 '데이트 자금'을 주면 연애를 더 자주하게 될까? 20~30대 청년들에게 '결혼 자금'을 주면 결혼을 선호하게 될까? 신혼부부에게 '출산장려금'을 주면 아이를 더 낳게 될까? 한마디로 실효성이 없다. 청년들이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인 '정규직'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년 대부분이 안정된 일자리를 너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면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해도 더 자주할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돈이 없으면 간소하게 비용을 절감해서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다. 문제는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담 없는 대출금과 이자로 '아파트 장만'을 할 수 있다는 희망만 있다면 허리띠를 졸라서라도 맞벌이로 열심히 일해서 '내집 장만'에 성공하고, 편안한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니 결혼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집'도 구할 수 없고, '노후'도 보장할 수 없으니 애초에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출산은 왜 포기할까? 아이 셋을 낳고 '타이어 공짜'로 받을 수 있으면 숨풍숨풍 아이를 낳게 될까? 차라리 줄려면 '아기 명의'로 20억 상당의 아파트 한 채씩을 국가가 보장해주라. 그럼 출산율이 당장에 떡상하게 될 것이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내집 장만'을 할 걱정에 출산을 포기하는 부모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란 말이다.​지역 소멸이 걱정되어 '각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나름의 정책을 마련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지역의 청년'을 빼내어서 돌려막기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니, 진정 효과적인 정책을 연구해서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들게 하지 말고, '지역'에 남아서 평생 잘 살 수 있는 정책에 올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으로는 '인구 감소'를 면하기 힘들다. 이미 20~30년 전부터 '저출생 문제'가 대두되었던 탓에 현 상태의 청년세대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삶의 질'을 높여 좋은 여건에서 살게 되어 결혼, 출산, 육아에 적극 참여한다고 해도 향후 20~30년 뒤에나 인구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세대를 잃어버린 대한민국 사회를 든든히 받쳐줄 '세대의 빈 공간'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외국인 이주'를 적극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그것도 20~30대의 청년들로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주'를 넘어 '정착'할 수 있게 한다면 대한민국은 인구 감소로 인한 불안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게 된다.​다행스러운 것은 '한류열풍'과 'K-문화' 붐으로 인해서 대한민국에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관광' 목적으로 왔다가 첫눈에 반해서 '이주'하게 되고, 그렇게 몇 년 동안 살면서 아주 눌러앉아 '정착'하게 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에 반갑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런 외국인 청년들이 대한민국에 눌러앉아 살게 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제때에 마련되지 않고 있는 점이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물론 우수한 외국인 인재에 대한 영입 등에는 적극적인 면도 있지만, 다른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국가에 비해서 매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또한 한국인과 결혼을 한 뒤에 '귀화'해서 정착하는 경우도 지원정책이 미흡한 점이 많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은 아직 '다문화사회'를 넘어 '다문화국가'로 넘어서는데 큰 제약을 갖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매력에 끌려 찾아오는만큼 큰 불편함 없이 이주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각 지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외국인들을 통해서 인구가 증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이니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나가는 글 : 마지막으로 살펴볼 대목은 2050년 AI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인구 감소 위기는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 강대국이자 선진국인 나라들이 모두 겪고 있는 위기다. 그럼 '인구 감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인구 감소로 인한 사회 문제를 AI가 대신 해결해줄 수는 있을까? 현재로서는 50대 50이다. 현재로써는 '전망'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AI 기술발전의 현주소는 그닥 나쁘지 않다. 하지만 AI는 기술발달만이 전부가 아니다. AI로 어떤 '기능'들을 뽑아 쓸 수 있는지, 쓸 데는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줄어든 '노동력'을 AI 로봇이 대체해서 국가소득을 높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그나마 나은 전망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일자리마저 AI 로봇이 모두 '대체'해 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일자리를 잃은 인간은 '돈 벌 수단'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의 주체인 '가계'가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에, 인간은 그야말로 '놀고 먹는 것'만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미래라면 인간은 '살 가치'를 잃어버리고 방황에 빠질 수도 있다.​그렇기에 인간의 노동력을 AI 로봇이 완전대체를 하지 않는 선에서 '보완'을 하고, 국가 경제발전에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과 AI가 서로 '공존'하는 사회를 만듦과 더불어서 그 공동경제구조가 수도권 밀집이 아니라 '각 지역'에 골고루 분산되게 된다면 AI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전체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면서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존과 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 이상을 잡아낼 수 있는 '방향성'을 제대로 갖출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 인구가 조금 감소하더라도 큰 문제 없을 것이다.​물론 어디까지나 전망일 따름이다. 지금 현재로써는 다가올 미래를 '비관'해서도 해선 안 되고 '낙관'은 더더군다가 금물이다. 모든 관점을 두루 살피며 문제는 해결하고 결과는 더 나은 방향으로 끝없이 가다듬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지향하는 바일테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는 이런 일련의 연구와 노력들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때다.<br>​#리뷰 #에세이 #대한민국인구보고서 #시한부지방인구 #지역을살려야대한민국이산다 #저출생고령화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76/33/cover150/k4021316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763327</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문학책</category><title>폭력 문제는 결코 남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 [핫초코는 달콤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0543</link><pubDate>Tue, 13 Oct 2026 2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705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1487&TPaperId=175705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85/27/coveroff/k4121314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1487&TPaperId=175705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핫초코는 달콤하다</a><br/>박현숙 지음, 하니 그림 / 한솔수북 / 2026년 09월<br/></td></tr></table><br/>한솔수북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lt;핫초코는 달콤하다&gt;  박현숙 / 한솔수북 (2026)[My Review MMCCCLXIII / 한솔수북 2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두 번째 리뷰는 '수상한 시리즈' 이야기로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시킨 박현숙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 &lt;핫초코는 달콤하다&gt;다. 어른들은 말한다. 폭력에 굴하지 말고 용감하게 맞서라고 말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폭력 앞에 비굴하게 굽신거리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어른들도 하지 못하는 걸 어린이들에게 '강요'하듯 말하는 것은 진정한 조언이 아닌 셈이다. 그럼 용감한 어른은 어떤 어른이고, 그런 어른으로 자랄 용감한 어린이는 어때야 하는 걸까? 책속으로 풍덩 바져 보자.​&lt;핫초코는 달콤하다&gt; 관점 포인트 : 이 책의 기본 줄거리는 '학원 폭력'을 당하는 태윤이와 '가정 폭력'을 당하는 미로가 우연한 계기로 아파트 위층과 아랫층에 살게 되면서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사실 '폭력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폭력이 벌어지게 된 양상'이 천차만별이고, 그 때문에 '폭력문제 해결방법'도 천편일률적으로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폭력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지 결코 남이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애초에 폭력 상황이 벌어진 것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인데, 남의 도움을 받아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스스로 '용기를 내는 것'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한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폭력 문제의 해결 주체는 언제나 '자기 자신뿐'이다. 주위에서 도와주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자신이 해결하려는 의지도, 행동도, 전혀 없다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태윤이가 당한 '학원 폭력'은 전문 용어로 '삥을 뜯긴 것'이다. 학원에 다니는 또래 친구와 잘못 엮여서 학원에서 만나는 날마다 '편의점 핫초코'를 태윤이 용돈으로 사줘야만 하는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날마다 사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친구의 기분까지 달래줘야 하며 뒤통수와 엉덩이, 종아리 등 그 친구의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맞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윤이도 처음부터 맞고 다닌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친구는 '지우개'도 빌려주는 좋은 친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지우개를 빌려준 것을 빌미로 태윤이에게 자꾸 '부탁'을 하게 되었고, 처음엔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기에 친구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태윤이는 늘 들어주는 편이었는데, 그렇게 엮이다보니 어느새 태윤이는 날마다 그 친구에게 '편의점 핫초코'를 사줘야만 했고, 집 방향도 서로 다른데 그 친구네 집으로 바래다주어야만 했으며, 가는 내내 그 친구의 못된 손찌검과 발찌검을 당해야만 했다. 순전히 그 친구가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말이다.​태윤이는 그 친구에게 당하는 '폭력'이 너무 싫어서 엄마에게 학원을 바꿔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 학원이 얼마나 좋은 학원이고, 얼마나 어렵게 다니게 되었는데, 다른 학원 다닌다고 하는 거냐며, 그 이유를 물었지만, 태윤이는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엄마가 걱정을 하실 것이 두려웠으며, 사실을 안 엄마가 학원으로 달려가 원장과 그 친구와 그 친구 부모님에게 당장 사과하고 보상하라며 노발대발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태윤이는 자기 문제로 일이 그렇게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학원을 바꿔서 그 친구와 만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뿐이었다.​한편, 미로는 어느 날 태윤이네 윗층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같은 학교 같은 반'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미로는 그날부터 태윤이를 가까이 대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녀야 했다. 왜냐면 밤마다 엄청 시끄러운 '층간소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윤이 엄마는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당장 윗층으로 올라가 따져물을 거라며 화를 냈지만, 윗층에 사는 미로가 태윤이와 한 반 친구라는 것을 알고서 태윤이를 윗층으로 보내 밤마다 '층간소음' 문제를 일으키 말아달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태윤이는 내키지 않았지만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미로네 집 초인종을 누르려는 찰나, 무시무시한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실을 알게 된다. 미로가 후드티를 머리 위로 뒤집어 쓰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까닭을 말이다. 그 아저씨가 미로의 아빠였고 밤마다 시끄러운 소음의 정체는 '부부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를 온 까닭도 '아빠 몰래' 왔던 것인데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왔던 것이라면서 말이다.​두 사람은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서로의 고민과 '폭력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며 '공감과 연대'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의 문제에 맞는 가장 좋은 해결방법을 찾아낸다. 미로는 태윤이에게 "너랑 그 친구랑 싸우면 태윤이 네가 이길 것 같던데? 그렇다고 맞서서 싸우라는 얘기가 아니라 너에게 함부로 대하면 그러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해. 뭣 하면 내가 도와줄테니까 말이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라며 어른스럽게 조언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친구가 태윤이를 또 괴롭히자 태윤이와 미로는 그 친구의 팔을 하나씩 잡아 비틀며 다시는 태윤이 괴롭히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받아낸다.​그럼 미로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어른들의 문제이고, '가정 내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린이가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결국 미로의 엄마는 다시 한 번 아빠 몰래 이사를 가기로 결심하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그렇게 미로와 태윤이는 이별하게 된다. 마지막 날 둘은 서로 만나서 응원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가정 폭력'은 정말 힘든 문제다.​나가는 글 : 그럼 이렇게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일까? 문제를 '진단'하고 '원인 분석'하는 것이 끝이 될 수는 없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해결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 폭력'과 '가정 폭력'은 너무 다른 양상이라 '똑같은 대안'을 내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공통된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다. 바로 '용기'를 내는 것이다. 나도 학창시절에 '깡패학교'로 유명한 중학교를 다녔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숱한 '부부싸움'을 겪어야 했고 두드려 맞기도 엄청 맞았다. 그런 경험 때문이 이 책의 내용이 나에게 '책속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현숙 작가로 '에필로그'에 폭력을 당한 친구를 목격한 경험담을 이야기 올려놓았는데, 그처럼 우리 주변에는 차마 말 못할 폭력을 온몸으로 겪으며 고통받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나도 경험자 가운데 한 명이니 말이다.​그런 경험을 간직하고 있으니 '해결법'도 잘 알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어릴 적 나를 도와준 어른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극적인 주인공이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 해결법을 찾아 활로를 모색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태윤이가 썼던 '문제회피'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전학을 간 것은 아니고 폭력을 쓰는 친구들 무리와 '거리'를 두는 방법이었다. 천성이 착했던 나는 학급에서 모난 짓을 한 적도 없고, 나름 성적도 우수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늘 '선생님'과 가까운 포지션에서 놀았다. 그 시절에는 적어도 폭력 학생이라하더라도 선생님은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선생님이 예뻐하는 법이라 그런 친구들이 나를 함부로 건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다 다행히 중2부터 살집이 붙고 힘 깨나 쓸 수 있는 '건장한 청소년'의 겉모습을 갖추자 더는 나를 건드리는 친구들이 없게 되었다.​한편, 가정폭력 문제는 답이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생이 된 나에게 손찌검하는 일이 점점 줄고, 아버지 나이가 환갑이 넘으시고 '기력'이 떨어지니 부부싸움도 덜 하게 되었다. 이런 걸 두고 '해결방법'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기력한 나였지만, 그래도 몇 번은 '용기'를 내어 폭력에 저항한 적이 있다. 물론 그렇게 저항하고 난 뒤에 무지하게 얻어 터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 뒤에는 나에게 찝쩍대는 친구들도 확실히 줄었고, 아버지의 폭력도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완벽한 해결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하지 말라!"고 저항을 하니 상황이 달라진 것이었다. 그 경험이 이 책에서 비슷하게 전개되어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다시 확인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끝으로, '폭력 문제'에 완벽한 해결법은 없다. 그리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방법은 별로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깡패와 싸우는 나, 아버지와 맞서 싸우는 나, 그 방법을 써보기도 했지만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방법이었고, 그 결과가 별로 좋은 방법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부당한 일에 용기를 내니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분명히 친구가 친구를 때리는 일도 옳은 일일 수 없어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일도 절대 옳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폭력'이 멈춰지고 지속적인 '평화'를 안착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난 경험했다. 옳지 못한 일 앞에서 "부당하다"고 외치는 용기만이 부당함을 잦아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왜냐면 사람들은 '옳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면 스스로 나쁜 짓인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쁜 짓을 하는 까닭은 '이익'이 생기기 때문이고, 아무도 '나쁜 짓'이라고 지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다. 그런데 나쁜 짓을 할 때 콕 집어서 "나쁜 짓을 하면 안 돼!"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외쳐주기 마련이다. 바로 이 첫 번째 목소리를 낸 사람이 바로 '용감한 사람'인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이 '용기'를 내어준 덕분에 다음 사람들도 함께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용기'를 낼 수 있게 북돋아주길 바란다. 특히 '폭력 문제'는 남이 해결해줄 수 없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면서 용기를 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법이라고 말이다. 박현숙 작가의 '용기'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쓸 수 있었다.​#리뷰 #에세이 #핫초코는달콤하다 #박현숙작가 #하니그림작가 #동화 #학교폭력 #가정폭력 #용기 #친구 #우정 #한솔수북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85/27/cover150/k4121314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852744</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인문학책</category><title>AI시대에도 인문학 공부는 중요하다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 - 일본 서브컬처 캐릭터로 나만의 페르소나 챗봇 만들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66327</link><pubDate>Sun, 11 Oct 2026 2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663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1474&TPaperId=175663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7/62/coveroff/k7321314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1474&TPaperId=175663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 - 일본 서브컬처 캐릭터로 나만의 페르소나 챗봇 만들기</a><br/>김유영 지음 / 브라운출판사 / 2026년 09월<br/></td></tr></table><br/>브라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lt;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 : 일본 서브컬처 캐릭터로 나만의 페르소나 챗봇 만들기&gt;  김유영 / 브라운출판사 (2026)[My Review MMCCCLXII / 브라운출판사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한 번째 리뷰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기적을 구현할 수 있는 &lt;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gt;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AI 제작만을 위한 책이라고 보면 아쉽다. 왜냐면 'AI 시대의 인문학적 교양'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인문학자를 위한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적인 내용도 다루고 있지만, 그저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긴 하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제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AI 실습&gt; 관점 포인트 :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은 '복불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대로 고른 책도 있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엉뚱한 내용 때문에 깜짝 놀라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게 그런 경우인데, 오로지 '인문학'이라는 세 글자만 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그럼 지금부터 AI로 챗봇 만들기 실습을 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급당황했다. 내겐 코딩을 다루는 지식도 없고, 컴퓨터공학은 말할 것도 없고, 전자공학적 수식을 다루는 능력은 더더군다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명령어'가 튀어나오고 '파이썬 코드' 같은 것들이 지면을 장식하면서 AI 실습을 하겠다고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책에 대한 실망을 할 즈음에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적 감성'이 담긴 교양지식이 흘러나오면서 당황함을 반가움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그래서 이 책에서 'AI 실습'하는 과정은 두 눈을 뜨고 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문학과 역사, 철학, 언어학, 문화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만족할 정도의 고급진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더구나 지은이가 '일어일문학과'를 전공하고 오사카대학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까지 땄으며, 현재는 동덕여대에서 일본어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며, 뒤침(번역)과 문화평론까지 두루 섭렵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실력자였기에 그 내용이 수준급이었다. 이런 프로필도 모른채 책을 읽을 때에는 한국사람이 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챗봇을 만들려고 그러나? 한국 애니메이션도 현재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적인 캐릭터로 AI 챗봇 실습을 해도 충분할텐데? 라면서 비꼬면서 읽어나갔는데, 나중에 확인하고서야 그랬구나 싶었다. 암튼, 기대하지 않았고 당황했는데도 다 읽고 나니 뿌듯한 경험을 선사한 책이었다.​이 책의 핵심 내용은 '좋아하는 캐릭터와 실제 대화를 할 수 있는 AI 튜터를 만드는 것'이다. 상상을 해보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내 손으로 만들어서 매일 대화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에스파의 카리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캐릭터가 '내 컴퓨터', '내 스마트폰', '내 워치' 등에서 실제로 프라이빗한 대화를 실제로 나눌 수 있다는 상상 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것이 상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AI 챗봇'으로 실제 구현이 가능하다면 어떻겠는가? 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왜일까? 하나의 캐릭터를 내가 좋아하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더듬어 보면 알기 쉽다. 그 캐릭터가 만들어진 '배경'부터 시작해서 '성격', '인성', '교양', '취향', '말투' 등등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냥 '겉모습'만 카리나라고 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를 AI 챗봇으로 구현하려고 하면 거의 완벽한 '인문학적인 정보'를 다 때려넣어야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실제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방대한 정보를 담을 그릇(하드디스크, 저장장치)은 또 얼마나 커야 할 것이며, 그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다루기 위한 메모리칩은 또 얼마나 성능이 좋아야 하는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그런 까닭에 여기서는 이런 구현이 실제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실패'를 밑바탕에 깔고서 효율적인 '실습'을 해보자는 것이다. 만에 하나 성공하면 대박인 것이고, 실패해도 실망하지 말고 성공할 때까지 한 번 해보자는 '도전정신'과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충분한 '소스'가 제공되어 있다고 보면 좋겠다. 적어도 이 책을 따라하다보면 분명히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 AI에게는 '똑같은 질문'을 던져도 항상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변수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적 교양'을 더욱 풍부하게 제공하고, 감안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럼 성공한다는 가능성을 믿고 이 책에 나온 설명에 따라 실행해보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나가는 글 : 처음에 읽을 때에, 기왕 AI 실습을 하기 위함이라면, 굳이 '일본어'로 실습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실패한 데이터라도 '한국어'로 실습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일텐데 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은이가 '일본문화' 전공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랬구나 싶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이니 '그런 예시'를 들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실습은 '일본어'로 구현했지만, 능숙해지면 언제든 '자신만의 취향'에 따라 적용시키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소견을 밝히고 있었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아무리 AI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한 인문학적 교양을 갖춰야 한다'는 언급이었다. 아무리 인공지능 AI가 똑똑해지고 '간단한 명령어'만으로도 모든 것을 쉽게 해결해 주는 시대가 되었더라도 '주어진 정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AI의 정보처리가 서툴 수밖에 없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치고 수정하는 작업을 '인간'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디테일한 작업을 인간이 꼼꼼하게 해주는 것은 지금의 AI기술 수준이 미미하기 때문이고, 다가올 미래에는 이런 힘든 작업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똑똑한 AI'가 등장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세상이 도래하면 결국 인간은 쓸모 없어져서 도태 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많이 있다.​이런 무시무시하고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인간만이 가진 재능이다. 그것도 안전하게(?) 암울한 미래를 말이다. 만약 AI가 실제로 그런 어두운 미래를 구현하게 되면, AI는 가차없이 인간부터 제거하려 들 것이다. 물론 그런 미래가 도래하도록 냅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실제로 AI가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은 까닭은 인간은 할 수 있는데, AI는 할 수 없는 것이 딱 한가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창조하는 능력'이다.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AI가 구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AI의 작동방식이 '주어진 정보'에서 인간이 풀기 힘든 난제를 쉽게 푸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반론을 던지는 과학자들은 '초지능'을 갖춘 AI는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에 더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나갈 것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까지 AI는 서슴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까지 여러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초지능'을 갖춘 AI를 그냥 방치하게 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끝장이 날 것이기 때문에 감히 그 마지막 단계를 넘어서지 않으려 하고, 막으려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마치 '핵폭탄'을 만들었지만, 감히 '함부로' 쓰지 않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더 끔찍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초지능 AI'가 그런 제약까지 훌쩍 넘어버리고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하지만...당분간은 그런 상상을 발휘하지는 말자.​암튼,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내 최애 캐ㅣ릭터'와 실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AI 챗봇을 구현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방대한 '세계관'을 주입해야 하고, '언어학'적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깨알같이 '알고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캐릭터를 구현하고 실제 대화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인간이 일일이 '조작'해줘야 제대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할 소양이 바로 '인문학적 교양'인 것이다. 간단한 질문으로 방대한 지식정보를 AI가 쉽게 찾아주는 세상인데도 인간이 '방대한 인문학적 교양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단순히 AI에게 "~을 만들어줘"라는 질문으로 뚝딱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이 일본 서브컬처 캐릭터가 한 대사의 일부로 유명하다는 것 같긴 한데, 내가 그쪽으로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생소하지만, 틀림 없이 그런 느낌으로 써놓은 제목 같기 때문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7/62/cover150/k7321314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176217</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인문학책</category><title>성공적인 주식투자는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 [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 - 월가의 정보를 수익으로 바꾸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64638</link><pubDate>Sat, 10 Oct 2026 20: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646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863&TPaperId=175646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1/48/coveroff/k4521388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863&TPaperId=175646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 - 월가의 정보를 수익으로 바꾸는</a><br/>박종훈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04월<br/></td></tr></table><br/>&lt;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 : 월가의 정보를 수익으로 바꾸는&gt;  박종훈 / 한빛비즈 (2026)[My Review MMCCCLXI / 한빛비즈 18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아흔 번째 리뷰는 서학개미들의 주식투자 일타 강사 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노하우가 담겨 있는 &lt;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gt;다. 평생을 절약과 저축만 하고 살았던 나에게 '주식투자'는 너무도 어렵고 넘기 힘든 벽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코스피가 4천, 5천, 6천, 7천을 넘어 9천까지 치솟자 '나도 함 해볼까?' 싶어서 소심하게 ETF 상품에 뭉칫돈을 넣었다가 현재 6천선에서 '박스권'이 형성되어 오도가도 못하고 상황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다행히 대출이나 융자를 받아서 주식투자를 한 것은 아니기에 그냥 내돈 손해만 보고 있기는 한데, 수년 동안 아끼고 안 쓰고 모은 돈이 불리지도 못하고 깎아먹고 있는 상황이라 그냥 피눈물 쬐끔 흘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린이'인 나도 주식투자를 제대로 배워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gt; 관점 포인트 : 솔직히 주식관련 책을 여러 권 읽기는 했다. 하지만 주식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고 있다. 왜냐면 내 투자성향이 '주식'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기투자' 말이다. 나는 '적금'이나 '예금' 같은 작지만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안정형 투자성향'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냥 묻어두고 신경도 쓰지 않다가 필요할 때 꺼내쓰는 걸 좋아한다. 물론 '공격형 투자'를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넣다 뺐다를 반복하며 '차익'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는 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길래 그렇게 확신에 찬 투자를 하고 엄청난 수익을 챙기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즐겨보는 동영상은 무엇인지, 주식관련 뉴스는 어디를 보는지도 궁금해했다. 그래서 직접 챙겨 보기도 했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를 빼놓고는 들어도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그리고 한편으론 생각도 해봤다. 누구나 보고 접할 수 있는 '뉴스정보'를 가지고 투자를 하면 이미 '레드오션'이라 수익이 나더라도 조금 날 뿐이며, 끝물이라 손실을 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그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고급 뉴스'를 챙겨봐야 '블루오션'에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엄청난 수익을 챙길 수 있을텐데, 그런 고급 정보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 거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도 좋은 주식투자 방법은 아니었다. 왜냐면 나 같은 '주린이'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인데, 시장에 민감한 '투자현실'에서 통할 방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출처도 불분명한 뉴스를 통해서 콕콕 집어주는 '종목'에 투자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말이다.​그즈음에 이 책 &lt;박종훈의 미국주식투자 레시피&gt;를 읽으니, 내 짐작이 대부분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제대로 된 주식투자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박종훈이 말하는 방법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돈으로 내 이익을 챙기는 것이니 '자기만의 방식'으로 투자를 해야 손해를 봐도 아깝지 않고, 좋은 공부를 했으니 '수업료'를 톡톡히 치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투자를 하면 그냥 '도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운빨에 맞기면 그건 '돈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뉴스'를 읽으라는 말이다. 투자의 거장 '워렌 버핏'도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첫 번째 일이 바로 '뉴스 챙기기'란다. 모름지기 투자자라면 '뉴스'는 날마다 챙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날마다 '뉴스'를 보면 투자에 도움이 되는 '시그널'과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노이즈'로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고 한다. 그럼 '시그널'과 '노이즈'의 구분법이 궁금해진다. 그 구분은 바로 '시장의 흐름'을 바꾸면 시그널, 바꾸지 못하면 노이즈로 판단할 수 있단다. 물론 백발백중은 아니지만 대체로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으면 투자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 가운데 박종훈은 '시그널'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 다시 말해,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단서로 '금리 정책'과 '경제지표', 그리고 '실적발표와 가이던스(기업의 실적전망)'을 꼽았다. 여기에 하나 더 '오피니언 리더'를 꼽았다. 말 한마디로 주가를 크게 요동치게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이를 테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의 돌출행동 같은 것 말이다.​여기까지는 '투자의 기본'이니 너무 당연한 얘기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주식투자도 기본에 기본을 충실히 따를 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방법이다. 더구나 미국주식투자는 전세계 경제인들이 모이는 거대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겠느냔 말이다. '불확실성'에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거대한 시장일수록 투자자들의 성향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뿐이다. 돌발변수가 생기면 증시가 출렁거리고, 그러면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큰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그러니 거대시장일수록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 또 조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제교과서'처럼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가 예측하는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시장이 바로 '미국주식'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도 기본에 기본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물론, 뉴스 속에 숨은 신호를 읽어라. 레거시 미디어를 즐겨찾기 하라. 뉴스는 단순 정보전달이 아닌 해석과 전망을 중점으로 읽어야 한다. 레딧이나 X 계정 활용법. 꼭 확인해야 할 월가의 경제지표들. 연준과 정부와의 관계에 집중하라. 트렌드가 시장을 장악한다. 그런데 시장을 읽고 싶다면 '월가의 포지션'을 먼저 보라. 다시 말해, 월가가 베팅하는 곳을 주목하라. 등등등 이런 깨알 꿀팁 같은 정보도 이 책에 가득하다. 모두 '기본'에 해당하고 투자전문가들이 매일 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문제는 이런 투자의 기본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 중에도 수익을 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나가는 글 : 그에 대한 답을 말하기 전에, '바빌론의 부자들'이 돈을 모으는 방법부터 짚어보자. 이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쓰는 돈'을 '버는 돈'보다 적게 하면 반드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급 100만원을 버는데 한달에 90만원을 쓰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월 10억을 벌어도 한달에 12억을 쓰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근데 이를 실제로 실천하게 되면 돈이 차곡차곡 모이게 된다. 내가 그랬다. 나는 한 달 수입으로 300만원을 넘겨본 적이 없다. 첫 월급은 67만원이었고 그 뒤로는 150만원 정도를 벌었고, 현재는 200만원 안팎을 벌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현재 서울 인근에 30평짜리 아파트를 내집으로 장만했고, 통장잔고도 쓸만큼은 있다. 물론 빚은 한푼도 없고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앞서 말했듯이 내 투자성향은 '안정형'이다. 그래서 은행에 적금이나 예금을 드는 방법을 주로 했다. 월급이 적은 시절에는 '푼돈'을 모았다. 하루에 1000원씩 출근할 때마다 가까운 은행에 가서 날마다 입금하고 또 입금했다. 그렇게 한 달을 모았더니 2만원이 되었고, 일 년을 모으니 24만원이 되었다. 이자가 붙어서 24만 몇 천원이 되었고 말이다. 그걸 예금으로 묶어 놓고 또다시 '푼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월급이 조금 올라 넉넉해지니 1000원을 2000원으로, 5000원으로 늘려 나갔다. 그러다 지금은 한 달에 10만원씩 '적금'을 붙는다. 그렇게 1년을 모으면 또다시 '예금'으로 묶어 놓고 적금을 2개, 3개, 거의 매달 만기가 찾아오는 '적금'을 붙고 있다. 그러니 한 달에 120만원 상당은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적금'으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예금'은 계속 불어난다. 120만원씩 묶어 놓고 또 묶으며 10년, 20년이 지나면 상당한 목돈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아파트를 구입할 때 대출을 받았다. 그 대출금도 그런 식으로 모은 돈으로 메꿀 때도 있지만, 매달 여유가 생기면 꼬박꼬박 저축액을 불려가며 대출금 상환을 앞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본'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안정적으로 돈을 불려 나가는 방법의 기본은 이렇게 아끼고 안 쓰고 모아서 불려나가는 방식으로 하는 거란 말이다. 만약 내가 일찍부터 '주식투자'에 눈을 떠서 이렇게 푼돈을 모아 '삼성전자'에 꼬박꼬박 투자했다면 지금은 이재용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늦게 나마 차곡차곡 주식투자금을 늘려나가며 안정적인 '우상향 성장주'에 적으나마 투자금을 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주식이 폭락해서 '마이너스' 신세지만 말이다.​하지만 주식투자는 이런 기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더 다양한 투자방법이 있고, 시장을 읽어내는 기본기만 닦으면 그 방법에 눈을 뜰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실전경험'이 없다는 것일뿐,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더욱 확신이 선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공격형 투자형'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확실한 투자성공을 배우려 노력하련다.​#리뷰 #에세이 #박종훈 #미국투자레시피 #주식투자방법 #시장읽는법 #부자되는법 #한빛비즈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1/48/cover150/k4521388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514821</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인문학책</category><title>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는 3가지 만능열쇠  - [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63193</link><pubDate>Fri, 09 Oct 2026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631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3562&TPaperId=175631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3/21/coveroff/k00203356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3562&TPaperId=175631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a><br/>최태성 지음, 이성원 감수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11월<br/></td></tr></table><br/>&lt;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gt;  최태성 / 프런트페이지 (2025)[My Review MMCCCLX / 프런트페이지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아홉 번째 리뷰는 '소설 삼국지'를 읽는 가장 쉬운 공식을 일러주는 &lt;최소한의 삼국지&gt;다. 최태성의 한국사 특강을 듣고 본 수강생만 무려 7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일타 강사'라고 소개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런 최태성이 이번에는 '소설 삼국지'를 꺼내 들었다. 일단 최태성이라는 '네임벨류'만으로도 기대치가 샘 솟는다. 허나 너무 쉬운 강의가 독이 되었을까나? 대한민국에 '삼국지 매니아'가 너무 많은 탓에, 이 책이 고수들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너무 '기초'적인 설명이라 아쉬움도 컸다. 허나 제목에도 적혀 있다. &lt;최소한의 삼국지&gt;라고 말이다. 그럼 '소설 삼국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공식을 살펴보러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최소한의 삼국지&gt; 관점 포인트 :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적 기초 교양은 &lt;삼국지&gt;로 통한다. 그만큼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쓴 &lt;삼국지연의&gt;가 조선 중기 16세기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무려 400여 년간 인기몰이를 해온 것이다. 우리 민중들이 즐겨 듣던 '판소리 열두 마당'에도 '적벽가'가 널리 불렸을 정도로 그 인기는 꾸준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다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대신 '소설'보다는 '유튜브' 등에 짧은 쇼츠를 통해서 다채로운 '삼국지 강의'가 선보이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쇼츠를 비롯한 동영상 강의만 보다보면 '깊이'가 부족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10권짜리 장편대하소설을 읽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그래서 출판계가 꺼내든 것이 다름 아닌 '한 권짜리' &lt;삼국지&gt;다. 이 책 &lt;최소한의 삼국지&gt;도 그 일환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무려 '최태성'이다. 이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무한히 높아질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 부문 '일타 강사'로 소문난 분이니 말이다.​그렇다면 책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소설 삼국지'에 빠삭한 독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lt;삼국지연의&gt;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삼국지 3대 대전'으로 초집중 요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이 그것이다. 왜 이 세 차례의 전쟁이 '소설 삼국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공식일까? 물론 엄청 큰 규모로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소설 삼국지'는 그냥 허구적인 내용으로 창작한 소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이해가 쉬운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중점적으로 봐야할 대목이 무엇일까? 바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해야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역사 공부 좀 해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을 아무리 외워봐야 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관 관계'부터 사건의 앞과 뒤에 벌어진 '인과 관계'와 '결말 연계'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역사공부가 즐거워지고 성적도 쑥쑥 오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일타 강사'들은 그저 달달 외우는 공식만 알려주지 않는다. 그 공식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주면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자, 그러면 &lt;최소한의 삼국지&gt;를 다시 보자. 왜 '관도대전'이 중요할까? 단순히 조조와 원소가 싸워서 조조가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7만 조조군 vs 70만 원소군'이라고 보면 조금 이해가 쉬워진다. 그리고 조조가 '어떻게' 10배 차이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는지 이해하면 '소설 삼국지' 초반에 벌어지는 여러 군웅들의 치열한 싸움이 이해되고, 관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조조가 어떤 결과와 이득을 챙겼는지 분석 가능하면 '인문학적 교양'이 쌓인 것이고, 일상 대화에서도 '관도대전'과 비슷한 국제뉴스가 나오면 국제정세의 판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진짜 교양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애초에 조조가 원소를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면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수 vs 다수'의 싸움에서 소수가 대승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관도대전'은 그 유명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승리의 비결이 같기 때문이다. 작은 소년이 거인을 상대로 승리한 비결은 '힘의 대결'이 아니라 '지략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슬링어(돌팔매)'라는 무기로 거인을 제압했던 것이다. 단순히 돌을 잘 던졌다가 아니라 '적재적소'에 급소를 찌르고 아군의 빈틈을 솔직히 '인정'하고 적군의 빈틈을 전력을 다해 몰아부친 결과 70만이었던 원소군은 고작 7만에 불과한 조조군에 완패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군은 원소군의 숨통을 조여 완전히 전멸시키고 '하북의 진정한 주인'으로 일어섰다. 그 결과 조조는 '중원'의 참주인이 되었고, 명실상부한 황제보다 더 황제 같은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도대전의 승자'가 된 조조는 더는 자신의 암살시도 같은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황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마찬가지로 '적벽대전'을 살펴보자. 황제처럼 군림하게 된 조조가 남쪽을 정벌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래서 강동의 손권을 치기 위해 먼저 '강동의 길목'에 해당하는 형주땅을 차지하려 들었다. 그런데 마침맞게 그곳에 '유비'가 있었다. 그래서 첫 시작을 유비가 지키고 있는 '신야'부터 조지고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유비가 달라졌다. 조인을 상대로 가뿐히 승리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유비에게 '책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서서' 말이다. 그간 유비에게는 변변한 책사가 없어서 서주나 여남 등 '거점'이 생겨도 지켜내지 못해 지리멸렬 했었는데, 서서라는 책사가 생기자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유비에게 책사를 빼앗으려 했다. 그렇게 서서를 잃은 유비는 망연자실 했지만, 삼고초려를 통해서 '제갈량'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천하삼분지계'를 얻었다.​이 '천하삼분지계'가 '적벽대전'의 앞과 뒤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촉오 삼국이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적벽대전'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적벽대전 직전과 직후를 살펴보면, 유비에겐 여전히 '거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대전 이후에 '형주땅'을 차지하고, 나아가 '익주땅'까지 꿀꺽하여 촉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게 바로 '천하삼분지계'의 묘미였고, '제갈량의 대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하나의 묘미는 '적벽대전'에서 실제로 전투를 벌인 것은 '100만 조조군 vs 10만 손권군'이란 사실이다. 유비는 직접적인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서 '유기의 영지'였던 강하에 틀어박혀 있다가 조조군이 적벽에서 대패를 하고 퇴각하는 길목인 '화용도'에서 조조군을 뒤쫓아 전리품을 챙겨 이득을 보았던 것이다. 그 뒤에 찾아온 주유를 속여서 '남군성'을 차지하고, 강릉과 양양까지 유비의 영지로 차지한 뒤에 영릉, 장사, 계양, 무릉까지 확장시켜 '형주땅'의 주인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이렇게 싸움은 조조와 손권이 하고, 이득은 유비가 차지하는 것이 '적벽대전'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그럼 '이릉대전'은 왜 일어났을까? 적벽대전에서 유비가 모든 것을 날로 먹은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손유동맹'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관우의 실책'이 한 몫했고, 포로로 붙잡힌 관우를 손권이 '죽임'으로써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그래서 조조와 맞서기 위해서 동맹을 맺은 유비와 손권은 자중지란을 일으켰고, 그대로 '이릉대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싸움은 장기전으로 들어갔는데, 초반에는 유비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유비의 분노가 컸던 덕분이고 손권쪽에 주유와 여몽 사망 이후에 변변한 인재가 없었던 탓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다 '육손'이란 약관의 총대장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수세에 몰리던 손권군이 패배하지 않고 '수성'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활발했던 초반의 승리와 달리 전투도 없이 서로 대치하는 상태로 오랜 시일이 지나자 먼저 지친 쪽은 대군을 거느린 유비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순간의 실책으로 유비군은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숲속으로 '영채'를 옮기고 일자로 길다란 '장사진'을 펼치자 육손은 드디어 때가 왔다며 '화공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장사진을 펼친 유비군의 측면을 노려 '소수 병력'으로 '대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나가는 글 : &lt;최소한의 삼국지&gt;는 이렇게 '3대 대전'의 맥락을 한 눈에 파악하게 해줌으로써 방대하고 길고 긴 '소설 삼국지'를 독파하는데 든든한 '지렛대'가 될 수 있는 만능열쇠를 쥐어 준다. 그러면서 최태성은 하나 더 던져준다. '소설 삼국지'를 읽는 키워드로 '절제'를 꼽은 것이다. 한마디로 '참고 견디는 자가 끝내 승리를 거둔다'는 진리를 풀어준 것이다. 3대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군을 몰고온 관도대전의 원소군, 적벽대전의 조조군, 이릉대전의 유비군은 결국 패배했다. 그리고 반대로 소수였던 조조군, 손권군(주유), 손권군(육손)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만약 소수의 열세인데도 참지 못하고 맞붙었다면 결국 패배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잘 참고, 잘 버티고, 잘 극복해준 덕분에 끝끝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고, 이후에 벌어진 '판도'에서 유리한 이점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소설 삼국지'를 읽다 보면, 3대 대전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비도 어려움과 고난을 잘 버티고 극복한 결과 '촉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지 않은가. 그래서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가 생기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한 눈에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라"다. 이는 단순한 횟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포인트'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 삼국지'를 열 번 읽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줄거리만 달달 외울 뿐, 사건와 인물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읽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물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소설 삼국지'를 몰라도 상관이 없다. 보통 10권의 분량이고, 한 권에 300쪽이면 무려 3000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열흘이나 걸리고, 사흘에 한 권씩 읽어도 한 달 내내 읽어야 한다. 뭐, 재미가 있으니 그렇게 읽어내는 분들도 많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걸 세 번이나 읽으라면 석 달 내내 '소설 삼국지'만 들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충 100일 동안 읽게 될텐데 할 수 있겠는가? 웅녀도 삼칠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되었으니 굳은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더구나 무려 2000년 전에 벌어진 이야기를 왜 현재의 우리가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답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소설 삼국지'에 엄청 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하더라도 해묵은 정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소설 삼국지'는 여성을 폄하하고 남성들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등 오늘날의 올바른 젠더 가치관에도 어긋나는 불편한(?) 내용이 가득하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수천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하는 일이라고는 '전쟁'과 '사기' 등 남의 등을 치는 등 '속임수'가 판을 치고, 서로 뺏고 뺏기는 '도덕불감증'이 여실한 내용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부정적인 내용이 가득한 책인데도 '필독서'라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고 또 읽어야 할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한편으론 맞는 말이다. '소설 삼국지'는 요즘의 정서와 가치관이 추구하는 '올바름'과는 거리가 먼 축에 끼인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는다. 부정적인 내용일망정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보면 정말이지 '혼돈, 그 자체'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마치 후한말 황제가 무능해서 환관들이 국정농단을 벌여 세상이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삶이 고달퍼지자 여기저기 난이 일어나고,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해서 천하가 뒤바뀌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실수'는 계속 똑같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힘이 부재하는 순간 깨어지기 마련이다. 황제의 권한이 강하면 국가는 안정되겠지만 반대가 되면 국가는 어지러워지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강했기에 평화가 지속될 수 있었는데, 그 반대가 되니 평화가 깨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무능한 지도자'가 똥뽈을 차는 순간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이런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영웅의 등장'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영웅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가?​물론 '소설 삼국지'가 예언서는 아니기에 일대일 대응하듯 매칭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속고 속이는 계책과 뺏고 뺏기는 전쟁이 한가득 펼쳐지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지혜와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필독서'로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방대한 소설이라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면, 이 책 &lt;최소한의 삼국지&gt;가 대신 할 수도 있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73/21/cover150/k00203356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732124</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중등/고등 문학책</category><title>소중한 자녀의 성장을 위한 ‘나만의 책‘을 찾아서  - [이슬라의 아이들 3 - ‘온새미로의 서’를 찾아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55947</link><pubDate>Mon, 05 Oct 2026 1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559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034145&TPaperId=175559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6/0/coveroff/k53203414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034145&TPaperId=175559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슬라의 아이들 3 - ‘온새미로의 서’를 찾아서</a><br/>양수련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6년 01월<br/></td></tr></table><br/>책이라는신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lt;이슬라의 아이들 3 : 온새미로의 서를 찾아서&gt;  양수련 / 책이라는신화 (2026)[My Review MMCCCLIX / 책이라는신화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여덟 번째 리뷰는 시를 빼앗아 금지시켜버린 곳에 다시 시를 찾기 위해서 '시인 중의 시인'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펼쳐지는 &lt;이슬라의 아이들 3&gt;이다. 지각변동이 일어나 온세상이 모두 바다에 집어삼켜져 버린 후 '대륙'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섬'만 남아버린 시대의 이야기다. 그 섬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최적의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감성보다 이성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었고 '이슬라'라는 섬을 다스리는 카이는 섬에서 '시'를 금지시켜 버렸다. 하지만 인간에게 감성을 빼앗아버릴 수는 없는 법. 아무리 이성을 추구하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감성의 소유자가 바로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오션맨 소녀 '야니'다. 야니는 이슬라에 들러 '아루'를 만나 아이들에게 시를 빼앗긴 시를 가르쳐 주었다. 그래도 금지하니 '법정'에까지 서서 시를 되찾으려 했다. 그러다 시를 금지했던 카이가 돌연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슬라를 다스려온 위대한 통치자 카이였는데 말이다. 이슬라 사람들이라면 단 하루라도 카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나 카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이가 되기 위해서는 '카이의 혈통'을 이어받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슬라 주민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카이가 될 사람을 물색하던 중에 오래전 이슬라를 떠났던 '12대 카이의 누나' 아모를 찾아나섰다. 힘들게 찾아 모셔왔지만 아모는 카이가 될 생각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 누가 카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이슬라의 아이들 3&gt; 관점 포인트 : 다행히 아모가 낳은 딸이 있단다. 어릴 적에 버려두고 떠난 비정한 엄마이긴 하지만, 이슬라 주민들이 그토록 '카이의 혈통'을 찾아헤매는 것이 맞다면 그 아이를 찾는 것이 시급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아모가 낳은 딸이 사실은 '오션맨 야니'였단다. 지난날 아슬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바로 그 당돌한 소녀 말이다. 그렇게 얼떨결에 야니는 '13대 카이'가 되었고, 이슬라를 다스리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날 버리고 떠난 엄마가 '아모'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울 일인데, 이제 고작 18살이 된 어린 나보고 '카이'가 되어 이슬라를 통치하라고??? 충격에 충격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충격에 휩싸여 멍 때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슬라를 통치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막중한 임무를 어떻게 하라는 거냔 말이다. 누가 좀 가르쳐줘요.​암튼 그건 그거고. 야니에게 닥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먼저 카이의 막중한 임무는 '최고위 주무관'에게 일단 맡기고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나가면 될 일이고, 다음으로는 평생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엄마가 다름 아닌 '아모'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그런데 친엄마인 아모가 나를 버리고 떠난 까닭이 모든 이들의 스승인 '가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내 엄마가 평생을 '가온의 행적'을 쫓아다녔단 말이야? 도대체 가온이 누군데? 자기가 낳은 딸조차 팽개치고 떠날 만큼 소중한 사람이냐고? 문득 야니는 '가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평생을 그리워한 엄마가 평생을 찾아 헤맨 스승이라면 대단한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온은 '시 중의 시, 온새미로의 서'를 썼고, 딱 그 한 편의 시 때문에 '시인 중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단다. 어떻게 시 한 편으로 그런 명예를 얻을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 듯 싶다.​그래서 야니는 '가온'을 찾아 떠나는 '가온 원정대'를 꾸리기로 결심한다. 섬 중의 섬 이슬라를 통치하는 절대자 카이의 명령으로 '가온'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내려도 될 일이지만, 왠지 가온에게는 그러면 안 될 일 같다. 더구나 가온은 현재 살아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조차 불가능항 상태다. 가온의 추정 나이는 170~180살 정도다. 마지막으로 가온을 실제 목격했다는 사람이 40~50년 전이고, 그 당시에 나이가 백 살이 훌쩍 넘어 보였다고 했으니 지금 추정할 수 있는 나이가 그 정도인 것이다. 가온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고도 남을 고령의 나이임에 틀림 없지만, 가온과 같은 '현자'들은 다른 평범한 사람의 수명보다 훨씬 길다고 한다. 현자들 가운데에는 300살을 넘게 산 사람도 있다고 하니 실낱 같은 희망이긴 하지만 충분히 찾아볼 가치는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문제는 카이가 이슬라 섬을 한 시도 떠날 수 없는 막중한 자리라는 것이다. 더구나 가온의 행적은 알 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저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방법밖에 없는 셈이다. 어딘지도 모르고 언제까지일지도 모를 '긴 여정'을 떠날 것이 분명한데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카이'가 원정대의 선장이 되어 훌쩍 떠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반대하는 와중에 아모가 '조건'이 붙였다. 가온 원정대를 꾸리는 것을 허락하되 딱 100일 간만 원정하기로 말이다. 그 이상이 되면 이슬라 주민들이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불안하다면 애초에 못 가게 막으면 좋으련만 왜 허락했던 것일까? 그건 아모의 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찾아다녀도 찾지 못했던 '가온'을 딸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못다한 꿈을 딸이 대신 이루어줄 것이라고 말이다.​암튼 가온원정대는 출항준비를 했고, 대원들도 반강제(?)적으로 모였다. 과연 이들만으로 이루어질지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이지만 말이다. 이제 곧 출정이다.​나가는 글 : 단 한 척의 배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선택과 방황을 눈여겨 볼만 한 청소년책이다. 하는 일마다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를 것이 더 많지만, 그 속에서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을 찾는 지혜를 배우면서 말이다. 이것을 흔히 '성장'이라고 부른다. 요즘 부모들은 소중한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대신해주고 힘들지 않도록 대비해주는 부모들이 많다. 한때는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을 '마마보이' 또는 '마마걸'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헬리콥터맘'이라 부르면서 부모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온종일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아이의 스케줄을 대신 챙겨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겪는 온갖 문제를 아이 스스로가 아닌 '부모의 능력'인냥 주변에 과시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심지어 군대에 간 아들을 위해서 부모가 '중대장 면담'을 신청하고 군부대안까지 영향력을 행사해서 군 기강을 흐트러뜨리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고 한다. 이건 제대로 된 '성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아이들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 지혜를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물론 실패보다는 성공을 하는 것이 더 성취감이 높고 뿌듯함도 많이 느낄 것이다. 허나 성공만 해서는 '온전한 지혜'를 익힐 수 없다. 왜냐면 그건 '반쪽짜리 지혜'이기 때문이다. 시험 문제를 풀고 난 뒤에 '맞춘 문제'와 '틀린 문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기억에 남던가? 대개 아쉽게 틀린 문제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맞춘 문제는 기억도 나지 않고 말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맞춘 문제는 '성공한 경험'이고, 틀린 문제는 '실패한 경험'이다. 만약 인생을 올백으로 살아왔다면 그건 헛된 삶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아쉽게 틀린 문제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 '실패한 경험' 덕분에 '성공한 경험'까지 더불어 기억에 되새길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왜냐면 실패한 경험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이들을 한층 더 '성장'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는 정반대로 실수투성이에 패배한 경험만 가득한 아이에게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한 경험'을 갖게 해주면 그 기쁨과 환희로 인해서 삶의 희망을 갖게 되고 더욱 정진하는 '성숙'을 경험하게 된다.​그러니 부모들은 아이들을 소중히 키우고 싶다면 '성공과 실패'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게 '마당'을 펼쳐서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마당이 너무 넓어서 '모험'까지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생명을 위협받는 '위험'까지 감수하라는 말은 아니다. 소중한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주되 아이가 맘껏 뛰어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큰 울타리를 제공해야 하라는 것이다. 결코 '방치'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아니 모험을 할 정도로 큰 마당을 마련하고 큰 울타리를 쳐놓고서 어떻게 '방치'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왜냐면 '관심'을 주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돌아와 아빠나 엄마 앞에서 쫑알쫑알 이야기할 때 바쁘다고 밀쳐내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관심이 지나쳐서 '간섭'이 되면 안 된다.​정말 힘들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경험'을 다 할 수도, 다 하기에도 너무 벅차기에 독서교육이라는 '간접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어떤 '직접 경험'보다 훨씬 더 좋은 경험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간접 경험'에 한계는 없다. 또한 위험할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안전한 모험이기도 하다. 이처럼 훌륭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독서를 미루는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 된다.​그럼 이 책은 훌륭한 '독서 경험'을 쌓게 해줄 좋은 책인가? 딱 한 가지를 더 고려해봐야 한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좋은 책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나만의 책'이 최고로 좋은 책이다. 내 취향에 맞고, 내 수준에 맞는 '나만의 책'을 쌓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모쪼록 이 책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나만의 책'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86/0/cover150/k5320341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860011</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유관장 삼형제, 호된 고난기를 극복하라  - [전략 삼국지 5 - 동탁 토벌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54427</link><pubDate>Sun, 04 Oct 2026 21: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544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536370&TPaperId=175544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8/coveroff/k38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536370&TPaperId=175544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5 - 동탁 토벌군</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5 : 동탁 토벌군&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VIII / 대현출판사 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일곱 번째 리뷰는 드디어 반동탁연합의 기치가 오르고 18제후가 군대를 모아 낙양으로 향하는 &lt;전략 삼국지 5&gt;다. 삼국의 '만화 삼국지'를 모두 보았다. 중국의 천웨이동 삼국지는 '유명한 인물과 사건'을 한컷 한컷에 큼직하게 그려내면서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그래서 세세한 설명이나 묘사는 건너 뛰고 '장면 하나'에 초집중을 해서 전체 줄거리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면서 '인상적인 장면 한 컷'만을 살려내는 식으로 진행을 하는 것이 매우 역동적이면서 인상적이었다. 반면에 한국의 고우영 삼국지는 위트와 풍자가 해학적인 해석과 어우러지면서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게 해주었고, 또한 이희재 삼국지는 소설이 아닌 만화만이 줄 수 있는 압축과 빠른 전개를 통해서 '삼국지'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일본의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는 지나치게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면서 특히 '폭력적 장면'을 부각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살해 장면이 너무 많다. '한국판'으로 출간되면서 모자이크 처리를 하여 처참한 장면을 가리는 수고를 하긴 했지만, 모자이크 처리를 했음에도 어렵지 않게 연상을 할 수 있어서 하나마나한 작업이지 않았나 의심마저 들었다. 차라리 참혹한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전쟁이 왜 나쁜 것인지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려는 노력(?)이라면 감추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뻔 했을 정도다. 더구나 잔혹하게 살해 당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뿐이었다. 나쁜 놈들을 그리 죽였다면 그러려니 싶기라도 했을 텐데, 힘 센 장수들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무기에 동강뎅강 잘려나가는 것은 힘 없는 '병졸'이나 무고한 '백성'들이었고, 더 연약한 '여자'들은 전리품 취급을 하며 이놈 저놈이 차지하려 욕심내는 대상으로 삼았다. 만화라는 '한정된 분량'을 왜 이런 묘사들로 가득 채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들만 좀 '삭제'하거나 '생략'하거나 '검열'이라도 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그러면 아주 얇고 다이제스트한 단행본이 되었으려나? 암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5&gt; 관점 포인트 : 가까스로 동탁의 수배를 피해 고향에 도착한 조조는 그 길로 '반동탁'의 기치를 내걸고 전국 각지의 제후들에게 '격문'을 보낸다. 이에 화답한 의로운 군대들이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하더니 모두 18개 방면에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이 가운데에는 유관장 삼형제도 있었는데, 공손찬 휘하의 장수로 합류하게 된다. 이렇게 모인 군사들이 낙양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목인 '사수관'에 다다르자 동탁군도 장수를 보내서 막아내는데 다름 아닌 '화웅'이었다. 이에 반동탁연합군에서는 '손견'이 선봉으로 나서 사수관 함락을 위해 덤벼드는데 초반에는 승기를 잡았으나 병참을 맡았던 '원술'이 제때 식량보급을 해주지 않자 굶주리게 되고 끝내 퇴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그러자 적장 화웅이 기세등등하게 연합군을 도발하게 되는데, 몇몇 장수가 나가보았으나 화웅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치거나 죽임을 당했다. 이에 관우가 나서보겠다고 말하자 원소는 반가워 하지만, 이내 '듣보잡'이었던지라 어디의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관우는 자신을 "유비 휘하의 동생"이라고 소개한다. 그러자 원소는 "유비는 누구냐?"고 되묻자, 공손찬이 나서며 자신과 같이 왔으나 관직은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자 원소는 격분하며 관직도 없는 졸병 주제에 화웅과 맞서서 싸운다면 적들이 우리 연합군을 얼마나 하찮게 보겠냐면서 당장 물러서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조조가 만류하며 자신이 있으니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겠냐며 총대장 원소를 달래고, 관우에게는 술 한 잔을 주며 나가서 싸워라고 권한다. 관우는 그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적장 화웅에 맞서 싸우러 나간다. 이때 조조의 속마음은 '졸병'이 나가서 볼품없이 죽어도 그만이고, 반대로 이기고 돌아온다면 적들은 졸병에게 당했으니 '연합군의 기세'를 무서워할 것이라며 손해볼 것은 없다고 속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 와중에도 셈을 하고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조조였다.​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관우는 적장 화웅의 목을 베어 돌아온다. 이에 동생 장비가 만세를 외치며 총공격을 외치지만 연합군은 아무도 장비의 외침에 화답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소 등 다른 장수들이 그런 외침은 '졸병'이 아닌 자신들이 선창을 해야 한다며 장비를 면박줄 뿐이었다. 그러자 유비가 동생들이 예를 몰랐다며 뒤로 물러났고, 그제야 연합군은 기세 등등하게 사수관을 통과하고 호뢰관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호뢰관을 지키고 있는 적장은 여포였다. 여포의 위용 앞에 연합군은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갈 뿐이었고, 연합군은 또다시 발이 묶여 한발짝도 나아가질 못한다. 이를 보다 못한 장비가 나서서 여포와 맞서 싸우니 여포도 장비의 무력을 꺾지 못하고, 여기에 관우와 유비까지 합세해서 싸움이 붙으니 여포는 불리함을 깨닫고 도망치고 만다. 이렇게 유관장 삼형제가 큰 활약을 보이며 기세를 올리지만, 연합군은 저들이 잘나서 여포를 혼쭐낸 것처럼 자화자찬에 빠져 유관장 삼형제를 홀대한다.​한편, 동탁은 사수관과 호뢰관에서 연합군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자 '천도'를 계획한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낙양을 버리고 동탁의 근거지와 가까운 장안으로 천자를 잡아가려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는 모조리 죽여버리고 재산을 빼앗았다. 동탁이 함부로 그러니 아랫사람들은 어찌했겠는가? 낙양은 하루아침에 아비규환에 빠지게 되고 살육과 약탈이 벌어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동탁은 천도를 갈 준비를 마치자 낙양에 남아 있는 것들이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고자 모조리 불태우라고 지시한다.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아깝긴 하지만,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은 더 아깝기 때문이다. 또한 몰래 숨어서 낙양에 남으려 했던 사람들을 깡그리 불태워 죽이려는 심보에서 벌인 짓이기도 하다. 물론 궁극적인 목적은 붙잡아가는 천자에게 돌아올 명분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동탁은 정녕 악당 중에 악당이었던 것이다. 그런 동탁을 '따르고 복종하는 이들'도 쳐죽일 놈이긴 마찬가지고 말이다.​뒤늦게 낙양에 도착한 연합군은 불타는 낙양을 바라보며 망연자실에 빠진다. 반동탁의 기치를 세우고 동탁을 타도하고자 애써 힘을 모았는데, 얻은 것도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조는 서둘러서 동탁의 뒤를 쫓자고 말한다. 서둘러 떠나는 동탁군이니만큼 방비가 허술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총대장 원소를 비롯해서 다른 제후들은 머뭇거린다. 그러자 조조는 혼자서 동탁의 뒤를 쫓기로 한다. 그러나 동탁은 이미 추격을 대비하고 있었고, 여포와 서영 등에게 호되게 당하고 겨우 목숨만 건져 달아나게 된다.​나가는 글 : 약육강식에 철저한 일본의 작품이라 그런지 '약자'에게 가혹한 시련을 감당케 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 70년대 '순정만화'도 이런 내용이 참 많았다. '고아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모진 시련과 고난을 다 극복한 뒤에 훌륭하게 성장한 뒤에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스토리가 정말 인기 많았던 시절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정말 모질게 구는 '악역들'은 너무 무서울 정도였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고생을 다 이겨내고 홀로 꿋꿋하게 잘 사는 것으로 끝마쳐도 충분할텐데, 마지막 마무리는 늘상 '백마 탄 왕자'가 등장해서 멋지게 성장한 여성을 가로채(?)서 철저한 가부장제의 보잘 것 없는 '아내'로 족쇄(!)를 채우는 스토리도 많았다. 마치 그런 처절한 운명이 '여자의 숙명'인 것처럼 말이다.​이 책에서 유관장 삼형제가 바로 그런 '약자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유비 주위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못된 역할을 맡은 '악역'처럼 등장한다. 이걸 '삼국지의 재해석'이라고 해야 할까? 어릴 적에 &lt;캔디 캔디&gt;를 정말 재미나게 읽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 추억에 푹 빠져서 어렵게 다시 구해서 읽어보니 옛 추억이 와장창 깨져버린 경험이 있다. 만약 내가 어렸을 적에 이 책 &lt;전략 삼국지&gt;를 완독했던 경험이 있었더라면 '최고의 만화'였다고 한껏 추켜세웠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 이 책을 읽으니 정말 아쉬운 대목이 너무 많아서 당혹스러울 정도다.​그렇다고 이 책이 '최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름 '명작'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면 수많은 독자들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만화 삼국지'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꼼꼼히 다시 읽어보니 적어도 '최고'라는 수식어는 빼야겠다. 더구나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권장'할 책이라는 소개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보기에도 민망하고 지나친 느낌을 확 받는데, 어린 독자들에게 이런 걸 권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8/cover150/k38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3820</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조조는 충신에서 악당으로 변심하는 맛으로 읽어야 제맛  - [전략 삼국지 4 - 난세의 간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52830</link><pubDate>Sat, 03 Oct 2026 2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528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536370&TPaperId=175528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2/coveroff/k23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536370&TPaperId=175528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4 - 난세의 간웅</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4 : 난세의 간웅&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VII / 대현출판사 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여섯 번째 리뷰는 치세의 충신 난세의 간웅이라 불리는 조조가 등장하는 &lt;전략 삼국지 4&gt;다. &lt;삼국지&gt;에서 조조의 첫 등장은 황건적을 토벌할 때 붉은 갑주를 두르고 화공작전을 펼쳐 적들을 일거에 소탕하는 멋진 장면으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조조와 유비의 첫 만남'이라는 것이 골자였기 때문에 휘리릭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는 '십상시의 난'이 벌어지기 전에 대장군 하진에게 원소와 함께 호위를 맡은 역할로 등장하는데, 이때도 하진과 원소가 주목을 끌뿐 조조는 조연과도 같은 역할이었다. 그래서 조조의 화려한 첫 등장은 다름 아닌 '동탁 암살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동탁 암살을 시도하기까지의 전체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4&gt; 관점 포인트 : '십상시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동탁은 하진의 밀명을 받들어 환관들을 소탕하러 군사를 몰고 왔다. 하지만 낙양 도성안으로 곧장 들어오지 않고 근처에 진영을 세우고 대기할 뿐이었다. 그 사이에 하진이 장양 무리에게 속아 목이 베어지고 하진의 부하들이 이를 기회로 삼아 궁궐내 환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십상시의 난'이 벌어진다. 이렇게 권력의 핵심이었던 '환관'과 '외척' 세력이 동시에 나가떨어지고, 어린 황제마저 환관 장양에게 궐밖으로 납치되어 '권력의 공백' 상태가 되자, 대기하고 있던 동탁이 그제사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히 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황제와 진류왕'을 호위(?)하고 들어오는 영예를 갖게 되자 낙양은 삽시간에 '동탁의 군대'에 장악되어 버리고 '동탁의 전횡'이 시작된다. 이에 비슷한 시기에 자기 군대를 끌고 도성으로 들어온 정원에 의해 동탁의 전횡(소제를 폐위하고 진류왕을 황제에 올리려는)에 반기를 들게 된다. 이에 동탁은 정원을 그 자리에서 참수하려 했지만, 정원의 뒤를 지키는 봉선 여포의 무시무시한 힘에 눌려 천하의 동탁도 꼼짝을 못하게 된다.​이에 동탁은 여포를 꼬드길 수 있는 방법을 꾀하자. 사위인 이숙이 나서 여포에게 '적토마'를 주고 꼬여 온다. 그냥 온 것도 아니고 양부였던 정원을 목 베어 죽이고 '개인의 영욕'을 위해서 배신한 것이었다. 이렇게 승냥이 같은 동탁에게 이리 같은 여포까지 합류하게 되니 더는 무서울 것이 없게 되고, 끝내 황제마저 갈아치우는 무시무시한 폭정을 시행한다. 이에 남아 있던 충신들은 동탁의 폭정에 하나같이 비분강개 하지만, 동탁의 군대가 무서워서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이때 사도 왕윤이 나서서 동탁의 폭정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여러 인사들을 초빙해서 논의를 하지만, 역시나 쉽게 나서는 이가 없다. 그때 침묵을 깨고 나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조였다.​조조는 자신이 동탁의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에 늘 동탁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다면서, 왕윤에게 날카로운 보검 칠성보도를 빌려주시면 내가 기필코 동탁을 암살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이에 왕윤은 젊은 영웅이 등장했다며 칠성보도를 아까워하지 않고 건내준다. 조조는 그 길로 동탁에게 달려가 찔러 죽이려 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성공하지 못하고 동탁에게서 달아나 버린다. 그렇게 한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된 조조는 동탁의 수배령에 딱 걸려서 체포가 되고 감옥에 갇혀 죽기만을 기다렸는데, 그때 조조를 구해준 이가 나타났는데, 바로 '진궁'이었다. 진궁은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려 하고 나아가 한 황실을 되살릴 충의지사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현령이라는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기꺼이 조조와 함께 행동하길 선택했다.​그렇게 함께 도망을 가는 도중 '여백사'라는 분의 도움을 받아 지친 심신을 풀 수 있었다. 여백사는 조조의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친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조조와 진궁은 지친 몸을 방안에 뉘이고 삽시간에 잠이 들고 말았는데, 잠결에 칼을 갈면서 하인들이 나누는 말을 듣게 된다. "어떻게 죽일까?", "묶어서 죽이자" 이 말을 들은 조조는 모골이 송연해졌고 진궁을 급히 깨워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고, 둘은 순식간에 집안에 있던 사람들 8명을 모두 죽여버리고 만다. 그렇게 한동안 참혹하게 살육을 벌이고 난 뒤에야 뒤뜰에서 꽥꽥거리며 울부짓는 돼지 한마리를 보게 된다. 그제서야 자신들이 오해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챘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였다. 조조와 진궁은 그 길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서둘러 달아났는데, 마치맞게 고개 넘어에서 술 한 동이를 나귀에 싣고 돌아오는 여백사와 마주친다. 여백사는 왜 그리 바삐 가느냐며 좋은 술을 마련했으니 마시고 가라며 붙잡지만 긴장한 조조는 쫓기는 몸이라 마음이 급해 일찍 떠난다는 변명만 남기고 떠나버린다. 그렇게 한참을 갔을 때 조조는 진궁에게 잠시 기다리라며 발걸음을 돌리더니 여백사마저 죽이고 돌아온다. 진궁은 왜 그랬냐며 따져 물었지만, 조조는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할 수는 없다"는 말로 진궁을 설득한다. 진궁은 이 말을 듣고 후회를 한다. 동탁을 암살하려 했다기에 충의지사인줄 알았는데, 간사한 영웅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허나 이미 엎지른 물이었기에 진궁은 곤히 잠든 조조를 찔러 죽이지도 못하고 지켜볼 뿐이었다.​그렇게 어렵사리 고향땅에 도착한 조조는 서둘러 '반동탁연합군'을 조성하기 위해 서두른다. 그러자니 엄청난 군자금이 필요했는데, 마침 고향 마을의 부자였던 '위홍'이란 사람이 있어서 군자금을 융통하려 한다. 폭정을 일삼는 동탁을 토벌하는 대의명분을 얘기했는데도 순순히 군자금을 내놓지 않으면 죽여서라도 빼앗겠다는 심보로 말이다. 허나 일이 잘 풀리려고 했는지 위홍은 선뜻 조조에게 막대한 군자금을 융통해주었고, 조조는 그 덕분에 '반동탁연합군'을 불러모을 격문을 돌리고, 자신은 '황제의 밀명'을 받아 군사를 일으킨다고 소문을 내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군대에는 '충'과 '의'라는 깃발을 세워 높이 들게 했다. 다음에 계속.​나가는 글 : 4권에 접어드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며 자중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동탁의 폭정과 여포의 횡포는 여전히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로 살벌한 스케치로 그려내고 있지만, '소설 삼국지'에서도 이런 살벌한 묘사가 나온 대목이니 어쩔 수가 없다고 보여진다. 그만큼 동탁이란 '악당'을 잘 그리기 위함이니 어쩔 수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헌데 요코야마는 '조조'마저 악당을 낙인을 찍어놨다. 적어도 '헌제의 혈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조조도 충신으로 남고 싶어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 '심경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을 아예 포기하고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으로만 조조를 그려 놓은 것이다.​일본의 '소설 삼국지'인 요시카와 에이지의 작품속에서도 조조는 처음부터 '악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요코야마도 어쩔 수 없이 따랐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래도 요시카와의 소설이 40년대이고, 요코야마의 만화는 70년대인데 '원작'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대단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이 21세기 대한민국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어울리지 않는 까닭은 이런 '전근대적'이고 '전형적'으로 고정된 이미지로 연출했기 때문이다. 나쁜놈을 나쁘게 그리고 악당을 악당처럼 그려낸 것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추리소설로 유명한 일본이라면 '범죄심리'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게도 '살인 동기'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악인을 그리면서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 넣지 않는다면 '앙꼬(소) 없는 찐빵'이 아니겠는가 말이다.​더구나 조조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다. 나관중이 조조라는 사실적 '역사 주인공'을 내리고, 유비라는 가상 역사적 '소설 주인공'을 내세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더구나 '소설 삼국지'에서는 초반에는 조조를 주인공으로 삼고, 후반부는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평가하는 이가 많을 정도다. 그런데도 조조를 등장부터 '악인'으로 설정하고 변화도 없는 '전형적인 악역'으로 고정해버리면 재미는 둘째 치더라도 독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할 우려가 크다. 더구나 만화는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한정하고,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단점이 두드러지는 장르인데, 이렇게 등장인물을 단순한 구도로 표현하는 것도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2/cover150/k23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3274</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반면교사로 삼을 지혜가 없다면 읽지 마라  - [전략 삼국지 3 - 한실의 풍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8622</link><pubDate>Sun, 27 Sep 2026 00: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86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536370&TPaperId=175386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1/coveroff/k20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536370&TPaperId=175386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3 - 한실의 풍운</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3 : 한실의 풍운&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VI / 대현출판사 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다섯 번째 리뷰는 개인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 독자들에게 권장하기에 부족함이 많은 책이라 생각하는 &lt;전략 삼국지 3&gt;이다. 일본의 것이라고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나쁜 것'을 본다고해서 전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나 어릴 적에도 '이런 것'들을 수두룩하게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색' 가득하고 '끔찍한 장면 묘사'가 수두룩하다고 해서 절대로 보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왜' 불편하고 나쁜 것인지 그 이유를 알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냥'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쟁'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나쁜 것이지 좋다는 얘기인가? 그게 아니라 우리가 영웅이라고 여기는 안중근과 이순신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3&gt; 관점 포인트 : 공자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삼을 만한 이가 있다고 말이다. 왜냐면 그중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에게서는 분명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배우려고 노력해야 마땅한 일이고 말이다. 그런데 나보다 못난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니라 '저런 못난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와 같은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 '반면교사'가 있다. 말 그대로 '나쁜 점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이다. 이런 선생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그런 나쁜 선생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내가 어릴 적에 TV방송에서는 온통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오곤 했다. 그런 만화들은 으레 적들을 무찌르고 쳐부수고 때려잡는 '정의의 용사'가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정의의 용사가 나쁜 악당을 혼쭐 내주고 쳐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동네친구들과 함께 환호성을 외치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난 다음에는 골목길로 나가서 방금 본 장면들을 흉내내고 따라하며 '악당 역할'을 맡은 친구를 쳐부수는 시늉을 하며 놀곤 했다. 정말 재밌고 즐거운 한때였다.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어릴 적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죄다 '일본'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영웅들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일본의 것이었다니 말이다. 당시만해도 '왜놈 것은 무조건 나쁘다'고만 배우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분명 '한국말'을 썼는데 어떻게 일본 것이라는 거지? 하면서 궁금해하기도 했다.​그러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른이 되니 '일본의 것'이 왜 나쁜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악당이라고해서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무조건 때려잡고 쳐부수고 잡아다 죽이면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만화는 때려 죽여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좀 더 찾아보니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 '무사도' 같은 것을 '일본적인 것'이라며 숭상하는데, 이런 정신의 핵심이 '체면'을 몹시 중시하며 체면을 훼손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체면을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기는 풍습이 일본인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자기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 발생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칼을 뽑아들고 체면을 손상시킨 당사자와 결투를 벌여야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만약 체면 상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상대가 너무 강해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서 절대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이다.​이걸 좀 더 확장시키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스미마셍'을 남발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의 체면을 상하게 만들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미안합니다)'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란다. 그런데 상대가 '스미마셍'을 받아주지 않으면 도리어 '내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니 나도 참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두 사람이 서로 싸우지 않으려면 한 쪽이 '스미마셍'이라고 얘기하면, 상대방도 '나 역시 당신의 체면을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라는 뜻으로 '스미마셍'이라고 대답해야 한단다. 이런 까닭으로 일본인들은 별일 아닌 것으로도 서로 '체면 존중'하는 척하며 스미마셍을 연발한다. 하지만 상대가 자기보다 '급'이 낮거나 존중해야 할 '체면'조차 없다고 판단되면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가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사무라이 계급일 때 기분이 나쁘면 칼을 뽑아들고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면 가차 없이 목숨을 빼앗아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단다. 누구도 그 일을 두고 탓하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그게 일본인들의 오래된 풍습이다.​물론 일본인들도 '사람'인 이상,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함부로 칼을 뽑아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해도 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나쁜 짓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 그렇다면, 애초에 '나쁜 짓'이라 규정을 하고 나쁜 풍습을, 나쁜 사상을, 나쁜 정신을 없앴으면 될 것이 아닌가? 왜 나쁜 짓인 것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냅뒀던 것인가? 일본 헌법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면서 명백히 '위법'으로 규정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본의 전통사상이라면서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살인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건 좀 문제가 아닐까?​나가는 글 : 책의 내용은 '십상시의 난'이 벌어지기 직전인 '하진의 죽음'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 고전인 &lt;삼국지연의&gt;의 내용에 충실한 내용이지만 불필요한 '살해장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한 컷으로도 충분할 것을 '한장 두장'이 넘치도록 죽이고 또 죽이는 장면의 연속이다. 물론 혼란스러웠던 그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일 수 있다. 그래도 너무 과하다. 이런 식의 '일본 만화 삼국지'는 이 책 말고도 많을 것이다. 또한 이런 일본색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따라 그리는 다른 나라의 '만화 삼국지'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 일일까?​분명 이런 만화책은 불온하니 멀리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허나 부득이하게 봤더라도 문제는 없을 수 있다. '반면교사'로 삼고 앞으로 이런 식의 표현은 걸러서 바르게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남는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그대로 모방하고 흉내내는 몰상식한 사람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거장의 필치로 삼국지의 매력을 가장 잘 그려냈다'는 식의 문구는 자제해애 할 것이다. 반드시 빼야 할 문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든든한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다. 일본인들에게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일지라도 한국인에게는 아니기 때문이다.​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면 반론으로 '안중근'도 이등박문을 죽인 테러리스트고, '이순신'도 풍신수길의 군대를 몰살시킨 잔혹한 살인마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맞다. 안중근도, 이순신도 사람을 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영웅이다. 왜냐면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와 모든 인류의 안녕을 위해하는 이등박문'을 죽였고, 이순신은 죄 없는 조선백성들을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들어서 함부로 아프게 하고 굶주려 죽게 만들었으며 마구잡이로 잡아가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기에 '내 나라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다. 이들을 함부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도 구분할 줄 모르는 몰상식한 사람과 더 대화를 이어가야 하겠는가? 굳이 찍어서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아둔한 경험론자'라면 대화 사절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31/cover150/k20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3148</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인문학책</category><title>지금은 ‘한국 중심의 세계사‘로 공부할 굿 타이밍  - [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 1910 망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8118</link><pubDate>Sat, 26 Sep 2026 2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81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0432&TPaperId=175381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67/52/coveroff/k1420304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0432&TPaperId=175381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 1910 망국</a><br/>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08월<br/></td></tr></table><br/>&lt;본격 한중일 세계사 20 : 1910 망국&gt;  굽시니스트 / 위즈덤하우스 (2025)[My Review MMCCCLV / 위즈덤하우스 4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네 번째 리뷰는 그동안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치우친 세계사에서 벗어나 대한민국과 그 주변국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풀어낸 &lt;본격 한중일 세계사 20&gt;이다. 무려 8년 동안의 대장정이었다. 1839년 아편전쟁부터 1910년 한일강제병합까지 70여 년간의 한중일 동아시아사를 중심으로 동시대 서구열강의 속내까지 모두 20권에 오롯이 담았다. 솔직히 이 책으로 '동아시아사'만 따로 빼내어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가깝고 먼 주변국들의 역사를 바라본 관점은 참으로 신선했다. 그래서 모두 30만 원이 넘는 작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시리즈가 출간할 때마다 매 번 구매를 해서 이처럼 완독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앞부분의 내용은 읽고 또 읽기도 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완간'하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만큼 '읽는 맛'이 최고인 역사만화였다. 그래서 굽시니스트를 '검색'하고 다른 작품도 병행해서 읽기도 했지만 이 책을 제외하고는 죄다 '병맛'이라...쿨럭쿨럭. 암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본격 한중일 세계사 20&gt; 관점 포인트 : 20권의 시작은 러일전쟁의 중반을 넘어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일전쟁이 종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일제의 만행과 고종의 무능력함, 그리고 나라를 팔아먹는 길을 '애국'이라, 아니 '시대조류'라 철떡같이 믿은 친일파와 그런 세력을 처단하고 나라 잃은 망국의 설움을 '결기'로 보여준 의병의 활약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역사만화는 언제나 '한정된 분량'이라는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하기에 어떡해서든지 20권으로 마무리하려는 '억지'가 보여 아쉽긴 하지만, 1권 더 추가해서 '구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적당히 마무리해주셔서 작가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 까닭은 어찌 되었든 '망국'이라는 새드엔딩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새드엔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방을 넘어, 전쟁을 넘어, 독재를 넘어, 그리고 외환위기와 월드컵4강신화, 세 번의 대통령탄핵이라는 큰 산봉우리를 넘어 지금의 미란전쟁까지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선진국과 강대국을 넘어 진정한 선도국가가 되기까지 지난한 현대사를 모두 설파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21권이 아니라 100권이라는 '역사만화의 금자탑'을 새로 쓰게 되었을 것이다. 20권 쓰는데 8년이 걸렸으니 100권을 넘기려면 40년을 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굽시니스트라는 작가가 죽기에 앞서 독자인 내가 먼저...쿨럭쿨럭​사실 20권의 내용은 역사를 조금 공부한 이들이라면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라 특별할 것은 없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피의 일요일'을 기점으로 점차 나락행 열차를 탄 것도 너무 유명한 일화이고, 일본군은 되도 않는 작전으로 만주벌판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을 쌩으로 갈아버린 것도 너무 잘 알려진 뻘짓이었으며, 미국의 중재로 가까스로 러일전쟁을 마무리한 일본이 '포츠머스 조약'에서 얻은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 국민들의 여론이 추락하고, 이를 기점으로 일본제국은 '조선침탈'을 본격화하고 그 결과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드는 결말로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듯 싶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궁금한 것은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 되었고, 서구열강 각국이 조선을 도와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종'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인지다. 물론 '헤이그 특사 파견'을 하긴 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긴 상황에서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갔다고 한들 달라질 것이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차라리 그럴 힘이 남았다면 군대가 해산되고, 경찰이 해산되기에 앞서서 조금이라도 '저항'이라는 것을 해보던가. '의병'과 손을 잡고 망국의 길로 순순히 따라가는 길만큼은 막으려 했어야 하지 않은가 싶다. 그런데 고종은 애써 한 것이라고는 '을사늑약'이라는 종이쪼가리에 옥쇄를 날인하지 않은 공로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종이쪼가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라는 빼앗길지언정 조선황실의 안녕을 보존해주겠다는 대목에서 '진정성'이 의심이 들기도 한다. 과연 헤이그특사를 보내서 일제의 만행을 만국에 알리고, '을사늑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함이 통했을 거라고 보는 것인가? 아무리 좋게 본다고 한들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물론 '계란으로 바위치기'도 약자가 강자에게 개망신을 주고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기에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도덕과 윤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국내상황'에서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냉험한 기류가 대세로 작동하는 '국제관계'에서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이 망국을 코 앞에 맞이한 군주가 할 일인가 말이다. 또한, 고종이 꿈틀해서 온 백성에게 몸이 부서질지언정 일제와 맞서싸우라고 명을 내려 일제와 전쟁을 독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이미 동학농민전쟁 때 '우금치 전투'에서 일제의 압도적인 무기 앞에서 산산조각이 난 적이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고종의 무력함을 변호할 수도 있겠다. 실력차이를 인정하고 쿨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스스로 '망국의 군주'가 된다한들 백성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에서 '애민정신'...쿨럭쿨럭..을 찾을 수 있겠냔 말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기한'이라도 정하고 그 기한내에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기를 방법을 제시하든가. 자신을 '구국의 구심점'이 되어 고종 자신부터 온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했다면, 그에 대한 평가가 어렵고 복잡하진 않았을 것이다.​나가는 글 : 어쨌든 우리 민족은 고종의 무력함을 넘어 새 나라를 건설한다면 '민주공화국'을 세우겠다는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중에는 '근왕병'을 이끌고 일제와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공화국'의 새 나라를 꿈꾸며 스러진 왕조를 되살리는 것이 아닌 온 백성이 '주인'되는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된다. 그 계기가 1919년 3월 1일 고종황제의 인산일 이틀 전이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현재에는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황태자와 사랑을 꽃 피우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지금도 입헌군주국을 표방하는 나라들이 엄청난 세금을 낭비하며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대한제국이 '고종의 무력함'으로 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물론 딱 한가지 '사상적 분열'로 인해 해방 이후 남북이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끝내 분열되고 만 안타까운 현대사를 '황제'라는 구심점으로 냉혹한 냉전도 극복하고 남북갈등을 사그라들게 만들고 '통일한국'으로 해방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분단이란 아픔을 겪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의 나래는 펼쳐본다. 하지만 그런 상상조차 '세종대왕'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충만한 임금일 때라야 가능했을 것이다. 또는 '정조대왕'처럼 과거의 아픔은 묻어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탕평책'을 실현시키는 진취적인 군주였어야 가능했을 것이다.​암튼 지난 역사에 태클을 거는 것은 별로 소득이 없는 뻘짓일 것이다. 망상에서 얻을 것은 '시간낭비'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역사에 태클을 거는 것은 하릴 없을지 몰라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전세계를 보면 답은 명확하다. '역사교육의 부재'가 지금처럼 전세계가 '극우세력'에게 정권을 내주고 나라가 폭망하는 꼴을 보여주고 있으며, '역사왜곡'의 결말은 현재의 중국과 일본처럼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결말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역사는 '바로 보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국에게 부끄러운 역사라고 감추고 조금만 바꾸면 멋져 보일 거라고 왜곡을 일삼으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균형 있는 감각으로 당당히 마주 설 수 있을때 비로소 올바른 역사교육의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된다.​그동안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배운 서양인들이 처한 꼬락서니를 보란 말이다. 그들이 지금 열광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중심에 선 진실된 역사'다. 인류역사 반만년 동안 제대로 된 '정복의 역사'를 가져본 적이 없는 한국이지만, 숱한 침략을 받고도 막아내고 견디고 지켜낸 '불굴의 역사'를 보여줬고, 약소국을 침략해서 식민지 경영을 하지 않았는데도, 좁은 국토에 변변한 지하자원도 갖고 있지 않은데도 '기술강국'으로 발돋움하여, 마침내 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지금 전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앞으로 인류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답도 바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찾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속의 한국사'에서 '한국 중심의 세계사'로 관점을 전환해서 역사공부를 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전 인류의 미래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리뷰 #에세이 #본격한중일세계사 #굽시니스트 #위즈덤하우스 #한국사 #근현대사 #세계사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67/52/cover150/k1420304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675277</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일본은 왜 약육강식을 미화하는 것일까?  - [전략 삼국지 2 - 황건적 토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6913</link><pubDate>Fri, 25 Sep 2026 23: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69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536370&TPaperId=175369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24/coveroff/k10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536370&TPaperId=175369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2 - 황건적 토벌</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2 : 황건적 토벌&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IV / 대현출판사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세 번째 리뷰는 '만화 삼국지'의 원조이자 일본 만화계의 거성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15년에 걸쳐 완성한 불후의 걸작 &lt;전략 삼국지 2&gt;다. 수식어가 거창하지만 2026년 지금의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걸러야 할 것이 많은 문제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1971년으로 이때만해도 '일본의 부흥기'였고, '일본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선진국답다고 널리 알려진 시기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일본 만화는 '일본색'이 너무 강해서 문제였다.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의 자랑이던 시절이었기에 장면마다 '사람을 난도질'했고, 불필요한 사실적 묘사를 남발해서 '잔혹한 장면'도 거침없이 드러내곤 했다. 그래서 이러한 '일본색'은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척하는 비굴함을 '약육강식'이라는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하여, 자신들(일본인)은 강한 편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뭉게버리는 식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문제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날 일본의 세계적 위상이 하락하면서 생겨났다. 과거의 일본이나 현재의 일본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 과거에는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했던 문제가 오늘에 와서는 날선 비판을 넘어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을 향해서 '후진적인 행태'라며 비난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도 되는 책인지 살펴보려 한다. 1권에서도 강조했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lt;전략 삼국지 2&gt; 관점 포인트 : 먼저 줄거리를 말하자면, 1권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뜻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그런 뒤에 첫 출전을 하게 되었다. 크게 활약했고 초라한 겉모습에 비해서 실력이 뛰어난 의병군이라는 소식이 퍼져 나갔다. 그 가운데 유독 돋보이는 이는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비다. 그는 중산정황의 후손으로 황족 출신인 탓에 어딜 가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엄'을 보이고 다녔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의병들을 변변한 갑옷과 무기도 없이 초라한 복색을 하고 있어 '거지 군대'라고 놀림을 받더라도, 이들을 이끄는 유비의 당당한 모습에 처음엔 놀리던 사람이라도 유비를 모습을 보기만 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위엄을 엿볼 수 있었다. 유비의 뒤를 따르는 관우와 장비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그래서 유비의 의병군은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황건적 토벌에 참전할 때면 늘 선봉을 맡아 큰 공을 세웠다.​그렇게 청주성으로 가서 옛 스승인 노식을 구했고, 달아나던 황건적 잔당을 화공지계로 퇴치하면서 붉은 갑옷을 입고 등장한 조조와도 대면했다. 유비와 조조는 서로를 '영웅'으로 인지하고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며 헤어진 뒤에 유비는 다시 주준 장군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당시 주준은 '철문협'이란 곳에서 '지공장군 장보'와 대치하고 있었는데, 철문협이란 이름에 걸맞게 좁고 가파른 협곡을 지나야 황건적이 숨어 있는 소굴로 들어갈 수 있기에 주준이 이끄는 관군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때 마침맞게 유비의 의병군이 다시 돌아오자 주준은 유비를 앞세워 관군의 희생을 줄이려 공략을 맡기게 된다.​그렇게 유비는 돌아오자마자 군대를 정비할 틈도 없이 또 다시 전투에 나서지만, 이번엔 장보가 펼치는 요술 때문에 첫 전투는 보기 좋게 패배를 하고 만다. 하지만 유비는 협곡이란 지형 때문에 강하게 불어오는 맞바람이 패배의 원인이었지, 그 바람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적들이 뿌려대는 종이와 돌멩이 사이로 화살이 날아오는 탓에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유비는 닭과 개, 양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동물의 피'를 잔뜩 준비해놓고 제례의식 비슷한 것을 치룬 다음에 "이로써 장보의 술법은 파괴되었다. 이제 더는 요술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라면서 의병과 관군의 사기를 진작 시킨 뒤에 장비로 하여금 협곡의 정반대에 위치한 절벽을 기어올라 적들의 방비가 약한 틈을 공략해 기습공격을 감행하게 했다. 장비가 가파른 절벽을 올라 기습에 성공하자 때를 맞춰 유비와 관우는 군대를 이끌고 정공법을 택하자 황건적은 패배하고 말았다.​헌데 사투 끝에 승리를 거두자 이번에는 주준이 몸이 달았다. 장각을 공략하던 황보숭 군대가 장각을 죽이는 성과를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번에 유비가 장보까지 죽였으니 황건적 토벌은 거의 마무리가 된 셈이다. 그런데도 주준은 자신의 손으로 공을 세우지 못하고, 유비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승전을 했으니, 한편으로는 유비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큰 공을 세운 유비에게 시기와 질투심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준은 유비를 곤경에 빠뜨릴 작정을 하는데...다음에 계속​나가는 글 : &lt;전략 삼국지&gt;의 전체 줄거리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를 고대로 답습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인 작가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요시카와가 소설을 집필한 것은 1940년대이고, 요코야마가 만화를 그린 것은 1970년대다. 약 30년의 차이가 있었는데도 &lt;삼국지연의&gt;의 원작에 해당하는 '모종강본'을 따르지 않고 '요시카와본'을 따른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의 자긍심이 작동해서 애써 '중국의 고전'을 깎아내리려는 처사로 볼 수도 있겠다.​하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소설 삼국지'도 꽤나 수작이고, 재밌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만화를 그리면서 '황건적의 난'이라는 혼란스런 정경을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낼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후한말의 혼란한 상황은 말그대로 아무런 힘도 없는 무고한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은 '참혹한 내전'이었다. 정규 관군과 의병 군벌과 핍박받던 백성들의 무리인 '황건적'이 한데 어우러져서 피를 튀기며 싸운 전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황건적은 새로운 왕조를 세울 꿈까지 꾸었으니 '반란군'이자 '역적'이었다. 그러니 싸움의 성격은 더욱 끔찍하고 잔혹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곳곳에서 공략해오는 '관군과 의병들'을 상대로 대충 싸울 수는 없는 셈이다. 그래서 거의 발악에 가까울 정도로 극렬하게 전쟁에 임했다.​이는 관군과 의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정규군이고 의롭게 일어선 '명분'은 드높을지 몰라도 황건적에 비해 '수적 열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1명 vs 10명'의 싸움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관군도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황건적 토벌은 고대의 전쟁 답게 '장수와 장수'가 일대일로 맞붙어서 싸우다가 한 쪽이 승리하면 그대로 패배를 인정하고 패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낭만적인 전투는 없었다. 수적인 압도를 이용해서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개싸움이 펼쳐졌고 관군을 이끄는 장수가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사람에게 밟혀 죽는 처참한 꼴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장수들은 갑옷을 단단히 여미고 적들이 쏘는 화살과 웬만한 창칼의 공격은 튕겨낼 수 있고, 단단하고 긴 창을 주로 사용하면서 말 위에서 아래에 위치한 적 보병의 얼굴을 썰어버리는 방식으로 적들의 가장 앞과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어서 일기당천하는 용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적들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사기를 떨어뜨려 흩어지게 만드는 작전이 주로 쓰였던 것이다.​그러니 전투의 양상이 얼마나 처참했겠는가? 그래서 '소설 삼국지'에서는 짤막한 전투양상을 묘사하고 어떤 장수가 크게 활약해서 적진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뒀다는 식으로 전투장면을 서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쯤해도 충분히 끔찍하고 살벌한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만화는 칼과 창으로 사람의 목을 베고 썰어버리는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의 몸뚱이가 썰리면서 피가 튀기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낱낱이 묘사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집필된 '고우영 삼국지'에서도 충분히 끔찍한 장면묘사가 담기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끔찍한 장면일수록 풍자와 해학을 담아 적다히 포장(?)할 줄 알았고, 너무 끔찍한 대목에서는 '단 한 컷'으로 압축해서 참혹했었다는 느낌만 강조할 뿐이었다. 한편 중국의 만화가 천웨이동의 &lt;중국정통 만화 삼국지&gt;에서는 잡졸들끼리의 개싸움은 개미처럼 작게 묘사했고, 주로 장수들간의 일대일 전투로 화려하고 장엄한 &lt;삼국지&gt; 속 전투 명장면을 아름답게 포장했다. 그런데 요코야마의 &lt;전략 삼국지&gt;는 불필요할 정도로 강한 장수가 약한 병졸을 베어내는 장면을 여러 컷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묘사하며 피 튀기는 살벌함까지 낱낱이 그려냈다. 역시나 '강자'가 '약자' 앞에서 냉혈한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말 그대로 '약육강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본색'이 너무 진하게 작동했다. 왜 일본 만화는 굳이 이렇게 '약자가 강자에게 살육당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일까?​과연 이런 참혹함을 '고전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어린이와 청소년 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할텐데 말이다. 다음에 계속.​#리뷰 #에세이 #전략삼국지 #만화삼국지 #요코야마미츠테루 #황건적의난 #일본색이짙어서문제 #책이있는구석방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24/cover150/k10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2446</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유아/초등 비문학책</category><title>꿈꾸는 어린이들 덕분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 [5학년 1반 꿈 도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6422</link><pubDate>Fri, 25 Sep 2026 17: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64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1668&TPaperId=175364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50/36/coveroff/k0821316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1668&TPaperId=175364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5학년 1반 꿈 도둑</a><br/>김연희 지음, 이경석 그림 / 지구별아이 / 2026년 09월<br/></td></tr></table><br/>지구별아이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lt;5학년 1반 꿈 도둑&gt;  김연희 / 지구별아이 (2026)[My Review MMCCCLIII / 지구별아이 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두 번째 리뷰는 어린이들에게 꿈에 관한 자기계발을 스스로 형성하는데 도와주는 &lt;5학년 1반 꿈 도둑&gt;이다.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자주 묻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다. 그럴 때 어린이들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때부터 심장이 터질 듯이 방망이질을 쳤고 뭐라고 대답을 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몰라서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한참만에 어렵사리 말문을 연 것은 '그럴싸한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왜냐면 그런 첫 질문을 들었을 때 내 기억속의 첫 대답은 "노란 택시운전사요"였는데, 주위에 있던 어른들에게 엄청 비웃음을 당했고 아버지에게도 두고두고 혼꾸녕이 났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의 난 '장난감 자동차'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 뒤로 당겼다 놓으면 쏜살같이 달려가는 값비싼 자동차를 갖고 있었는데, 없는 살림에 부모님도 장만하기 힘든 비싼 장난감이었고, 그 덕분에 내 평생 유일한 장난감이었는데, 그 자동차의 색깔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그 때는 서울 택시의 색깔이 노란색이기도 했다. 그래서 온가족이 택시를 타고 외식을 나갔는데 택시운전수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길래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답했던 것인데,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근데 '택시운전수', 아니 '택시기사'가 되는 것에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을 할테지만 정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5학년 1반 꿈 도둑&gt; 관점 포인트 : 이 책은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에서 뽑은 어린이 분야 으뜸책 시리즈 가운데 세 번째 책이다. 쉽게 말해 어린이를 위한 자기계발서다. 그리고 이번에는 '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밤에 잠을 자며 꾸는 꿈이 아닌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하고픈 것'을 말할 때의 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잘못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참 많다. 흔히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는데, 이렇게 물으면 많은 어린이들이 잘못된 대답을 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묻는 '어른들의 의도'가 헷갈리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하고픈 것(꿈)'과 '하고 있는 일(직업)'이 동일한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꿈=직업'이라는 공식을 정해놓고 어린이들에게도 그런 의도를 품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또는 어린이들에게 나중에 '훌륭한 일을 하는 어른이 되렴'이라고 가르쳐놓고서는 '훌륭한 일'을 돈 많이 버는 일,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 따위로 '한정'하는 선입견 가득한 의도를 갖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어린이들은 그에 딱맞게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대통령이나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유명 연예인(아이돌), 심지어 그냥 뭉뚱그려서 부자라거나 콕 집어서 건물주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말하곤 한다. 과연 자기 자식이 이런 대답을 하면 뿌듯한가?​이런 장래의 꿈에 대해 이런 대답을 듣고 있으면 뭔가 '속물스런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면서 기왕 꿈을 꾸려면 '일찍' 꿔야 한다는 둥,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둥, 그래야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성공의 지름길'을 갈 수 있다면서, 예를 들더라도 꼭 돈 많은 부자인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이재용 따위를 열거하기 시작한다. 그게 아니면 성공(?)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저렇게 성공하려면 어릴 적부터 꿈을 키워야 한다"고 닦달하고 들들 볶기 일쑤다. 물론 그런 꿈도 꿈이 맞긴 하다.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은 특별한 꿈이긴 하지만 말이다.​그걸 잘 알기에 어른들은 '플랜 B'를 마련해서 적당히 둘러댄다.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고 말이다. 그렇게 큰 꿈에 도전을 해야 실패하더라도 적당히 덜 큰 꿈에 얻어 걸리는 법이라면서 애초에 '중도포기'할 것을 예언이라도 하듯 조언한다. 딴에는 그럴 듯 하게 들린다. 애초에 1등을 목표로 달려야 5등이라도 하게 되고, 처음부터 5등을 목표로 달리면 10등도 겨우 턱걸이한다면서 말이다. 이를 공식까지 써가며 돈을 쓸어담은 책이 있는데 바로 &lt;꿈꾸는 다락방&gt;(이지성, 차이정원)이란 자기계발서다.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꿈꾸는 능력이다'라는 명언도 남겼는데 10년이나 지난 유행어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잘못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꿈'이라는 말 대신 '성공'이란 말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꿈=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려면 '꿈이란 성공의 다른 말이다'를 뒤집어도 성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성공이란 꿈의 다른 말이다'은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좀 어색하지 않은가? 그건 '꿈'이라는 말에 담긴 뜻이 '성공'이란 뜻을 초월해서 훨씬 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꿈'을 펼치기에 앞서 '성공'이란 잣대로 꿈의 크기를 조절하고 간섭하려 들어도 되겠냔 말이다.​결론적으로 어린이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할 때는 '정답'을 정해놓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지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한 '최종 목적'이 될 수 없고 '유용한 수단(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갖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면 '진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상당히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돈이면 다 되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속에 살면서 '많은 돈'과 그 돈을 융통하기 쉬운 '높은 지위'는 참으로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계적인 위인 가운데 '부자'보다 '덜 부자'가 훨씬 더 많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인류 공영을 위한 개혁의 선두주자가 되어 '위대한 혁명가'가 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평범한 영웅들'을 더 쉽게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환상의 꿈'만을 어린이들에게 계속 꾸게 강요할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나가는 글 : 평범한 영웅들을 만나기에 앞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최근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느껴지지 않은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기술력으로도 대한민국은 손으로 꼽을 만큼 상위 클래스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이 궁금해서 세계 강대국들이 대한민국을 분석한 뉴스가 속속 들어오고 있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왜 그럴까? 우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데 말이다.​강대국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과 100년 전만해도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였고, 해방 뒤에 이어진 전쟁으로 온 국토가 황폐했던 나라가 불과 70여 년만에 세계적으로 우뚝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던 것이고, 과거 총칼로 위협하며 '자국의 위대한 문화'를 세계 여러 나라에 심어주고자 했는데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데, 대한민국의 문화는 그런 위협도 없고, 정부 정책으로 밀어붙인 적도 없는데, 세계 여러 나라가 앞다퉈서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현상에 놀라워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한국은 무엇이 다르기에 전 세계가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는 것일까?​일본의 어린이들은 자국의 히라가나보다 '한글'이 더 편하다며 '한자'를 버리고 '한글과 일본어'를 섞어쓰는 '한본어'가 대유행하고 있다. 요즘 미국의 어린이들은 'K-POP 데몬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세대가 '한국의 음악'을 비롯해서 '한국의 음식', '한국의 전통', '한국의 의복' 등등 전반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이와 더불어서 이웃으로 '한국인'이 이사를 오면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반기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문화대국이란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유럽 각국에서는 아침식단으로 '빵과 우유'를 먹지 않고 '밥과 국'을 먹기 위해 새벽부터 한식당 앞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들 나라에 대한민국이 강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저 한글을 편리하게 쓰는 'K-드라마'를 만들어서 보여줬을 뿐이며, 귀에 쏙쏙 들어오는 'K-POP', 'K-푸드', 'K-컬쳐', 'K-패션' 등등도 같이 보여줬을 뿐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보니 그게 좋아보여서 따라할 뿐이다.​자,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지만 여기서 강대국들이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문화'가 자국의 문화를 밀어내고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비결 때문인지 강대국들은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높은 교육열'이었다. 초중고 12년동안 대한민국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과외까지 배우는 높은 교육수준 덕분에 한국사람들은 '의무교육'만 받아도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월등히 똑똑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벌고 세계적인 일류 기업은 죄다 '다른 나라'에 있다. 왜 그럴까? 그건 그들 나라가 대한민국보다 '인구'도 많고, 대한민국보다 잘 살던 기간이 훨씬 더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이제 겨우 5천만이고 선진국으로 올라선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강대국들은 인구가 1억 이상이며, 선진국이었던 기간도 100년이 훌쩍 넘는 나라들이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그들이 세계를 석권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떨까? 대한민국은 서구열강들이 압도적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그 발전력이 가진 힘은 다른 강대국들이 감히 뒤따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렇기에 기존의 강대국들이 대한민국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발전 정도를 가늠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더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의 압도하고 있는 것들이 '자국에는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음악', '전통', '문화', '음식', '패션' 등등 다 가지고 있고 오래도록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것인데, 현재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압도 당하며 크게 위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찌감치 '산업혁명'을 이룩하며 앞선 '기술력'을 자랑했는데, 그렇게 자부하던 기술력마저 한국에 뒤쳐지고 있는 것이 더 놀라운 것이다. 그것도 인구가 1억도 안 되는 조그만 나라인 대한민국에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찾아온 관광객들은 한국의 첫 인상에 놀라고 해마다 계속 찾아오고 있다. 너무 살기 좋고 편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라고 침이 마를 새 없이 칭찬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자국은 너무 불편하고, 더럽고, 위험한 나라라면서 '한국 배우기'에 앞장 서고 있다.​여기서 평범한 영웅들을 소개 해야겠다. 너무너무 살기 좋고 편리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든 주역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늦은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점포를 열고, 대중교통을 담당하고, 거리의 청소를 도맡아 하고, 치안을 담당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다들 잠자는 시간에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이 수고를 해주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위대한 분'들은 아니고 그저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인데, 그분들이 고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에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고 편리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분들을 위대하다고 하지 않다면 누굴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이런 분들이 없기 때문에 그런 편한 일상을 보낼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그런데 이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바로 '합리성'과 '효율성'에 지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합리적'이거나 '비효율적'인 일이 일어나면 절대로 참지를 않는다. 이런 것들도 모두 '교육'을 통해서 다 배웠다. 그래서 국가가 정책을 추진할 때에도 국가발전을 위해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온 국민이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조금이라도 합리적이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을 그토록 빠르게 발전시킨 원동력이 된 것이다.​그럼 다시 돌아와서 꿈 이야기를 해보자. 나 어릴 적에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지금은 비록 대한민국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약소국'에 불과하지만,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분명 '강대국'이 되고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때의 어른들이 말씀하신 꿈 이야기를 그분들께서는 분명 실행에 옮겼고 결국 해내셨다. 지금의 대한민국 어린이들은 그때의 가난과 설움을 전혀 겪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강대국들마저 부러워할 정도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그 때 어른들이었던 분들은 과연 무슨 '일'을 하셨을까? 돈 많이 버는 '직업'과 남들이 부러운 '직업'을 가진 분들의 꿈이 실현된 걸까?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충실했을 뿐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셨을 뿐이다. 그런 꿈들이 모여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그럼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떤 '꿈'을 가지라고 말해줘야 할까? 지금껏 위에 열거한 이야기 중에 '정답'이 보이던가? 맞다. 꿈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꿈꿀 뿐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꿈을 꾼다고해서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꿈을 꿨다가 저런 꿈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다만 '꿈을 꾸는 것'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왜냐면 어른들도 꿈을 꾸기 때문이다. 어릴 적 꿈을 이뤘다고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꿈'을 꾸면서 삶의 의욕을 불태우고 꿈을 실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 '꿈 도둑'이 나타났다. 어른들의 잘못된 편견으로 가득한 '엉터리 꿈'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 '좋은 꿈'과 '나쁜 꿈'이 있는 게 아니다. '꿈을 꾸는 사람'과 '그 꿈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함부로 남의 꿈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고, 자기 멋대로의 기준으로 남의 꿈을 비웃는 사람이 바로 '방해자'다. 세계 여러 나라가 대한민국을 부러워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꿈꾸는 사람들'이 많고, '꿈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고, 무엇보다 '꿈을 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건강한 사회를 든든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희망찬 까닭도 바로 그런 '꿈꾸는 어린이들'이 많기 때문이다.​#리뷰 #에세이 #5학년1반꿈도둑 #김연희 #지구별아이 #꿈꾸는어린이 #꿈에는정답이없다 #꿈꾸는삶이즐겁다 #꿈은대한민국의희망 #자기계발서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50/36/cover150/k0821316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503686</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인문학책</category><title>한국어 열풍을 따라 ‘국뽕‘에 흠뻑 빠져들며  - [K를 가르칩니다 - 한국어 선생님이 말하는 K라는 멋진 신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1529</link><pubDate>Tue, 22 Sep 2026 2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315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0340&TPaperId=175315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85/67/coveroff/k1921303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0340&TPaperId=175315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K를 가르칩니다 - 한국어 선생님이 말하는 K라는 멋진 신세계</a><br/>서민선 지음 / 헤르츠나인 / 2026년 09월<br/></td></tr></table><br/>헤르츠나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lt;K를 가르칩니다 : 한국어 선생님이 말하는 k라는 멋진 신세계&gt;  서민선 / 헤르츠나인 (2026)[My Review MMCCCLII / 헤르츠나인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한 번째 리뷰는 전세계인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한국어, 그리고 그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의 속사정이 담긴 &lt;K를 가르칩니다&gt;다. 요즘 대한민국은 정말 강대국이 되었다. 딴에는 우리가 일취월장해서 강대국이 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강대국들이 쪼그라들어서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이 강대국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진단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 있다. 왜 하필 이때에 '한글'에 유독 관심이 많고, '한국어'만을 배우려 하는가 말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 안달이 난 까닭은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를 구해줬던 인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미국이란 나라가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전세계인이 강요도 하지 않았고 배우고 숙달시킨다고 딱히 매리트도 없는 상황인데도 '한국문화'에 푹 빠져서 한국어를 배우려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바로 대한민국이 진짜 강대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K를 가르칩니다&gt; 관점 포인트 : 이 책은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서민선 작가가 썼다. 서민선 작가의 꿈은 '나이가 들어도 읽고 쓰는 노인이 되는 것'이란다. 정말 대단한 꿈이다. 이게 왜 대단한 꿈이냐면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기 때문이다. 나도 젊었을 땐 '늙는다'는 것이 이토록 불편한 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젊어서 쉽게 하던 '동작'이 늙으니 결코 쉬운 동작이 아니었고, 젊어서는 하나도 힘이 들지 않던 '일'이 늙으니 쉬운 일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나이가 벌써 쉰 살이 넘은 50대가 되니 늙는다는 것이 이토록 '불편'한 것인줄 처음 알았던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불편한 것은 바로 '시력 감퇴'다. 어릴 적엔 맨 눈으로 별을 관측하고 동 틀 때에는 '인공위성'도 찾아내던 나다. 그래서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어도 불편함이 없었고 마흔 살이 넘어서도 늘 그러고 지냈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점점 시력이 감퇴 되기 시작하더니 이젠 '작은 글자'로 인쇄된 책은 돋보기의 도움이 없으면 읽기가 불편해졌다. 그렇게 종이책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해서 '전자책'을 즐겨 읽었는데, 전자책이라 '글자크기'를 맘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편하기는 했는데, 온종일 전자책만 보고 있으려니 시력은 더욱 감퇴 되어서 이젠 정말 안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불편해지고 말았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도 읽고 쓰는 노인'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냔 말인가.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오니 책읽기도 시들해지고 글쓰기는 더욱 감감 무소식이 되고 말았는데 말이다. 암튼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 책 &lt;K를 가르칩니다&gt;는 한국어교육을 하는 선생님의 희노애락애오욕이 다 담겨 있는 수필책이다.​최근 들어 '한국어 수강생'들이 정말 많아졌다고 한다. 오직 '한국어 수업'을 듣기 위해서 한국을 찾는 학생과 젊은이들이 많아졌고, 언어와 더불어서 '한국문화'까지 마스터하려는 열정을 가득 품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아오길 갈망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관광'까지 겸사겸사 계획을 짜고 도장깨기하듯 실천에 옮기다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코스로 방문을 했다가 결국 수 년째 눌러 앉아버린 외국의 젊은이들도 꽤나 많다고 한다. 이러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로 선정 되는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실제로 그런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단다. 영어를 잘 할 줄 모르는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소통'을 위해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그러나저러나 25년, 26년에 이런 '한국어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이유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애니메이션 &lt;K-POP 데몬헌터스&gt;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 애니가 넷플릭스를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수많은 사람들이 'K-POP'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했던 캐릭터나 소품, 배경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게 되면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궁금증으로 폭발적인 영향력을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열풍' 아닐까 한다. 줄여서 '국중박'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 박물관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것도,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부는 것도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궁금증이 일지 않는가? '한국어 교육원'에서 외국인 학생들(교사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많다고 한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배우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에는 바로 그런 풍경과 일상이 활짝 펼쳐져 있다. 일단 기본적인 교육 코스는 '급수'를 따면 윗 단계로 오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단다. 초급인 1급부터 고급인 6급까지 '6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한 학기는 3개월 코스이며, 1년에 4학기를 운영하고 있단다. 윗 단계로 급수를 올리기 위해선 '자격 시험'에 통과해야 하며, 우수한 성적을 따지 못하면 '유급 판정'을 받고 재수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인(네이티브 스피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의사소통도 가능한 6단계까지 통과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물론 요즘에는 수강생이 많이 늘었다고 하니 최종 졸업까지 성공한 학생 수도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다.​한국어를 배우러 '교육원'이나 '어학당'을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국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온 '대학생 이상의 나이'인 탓에 대부분 성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들도 미성년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반말'로 가르칠 수는 없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운다고 한다. 더구나 한국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확연하기 때문에 선생님으로서는 다 큰 성인이기도 하고 품위 있는 한국어를 '기본'으로 삼아 가르치려고 노력하는데, 간혹 아주 초보가 아니라 어느 정도 '한국말'을 배워서 찾아온 학생들도 있는데, 하필 '반말'로 배워서 선생님에게조차 "응", "알겠어" 등으로 대답을 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더 힘들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암튼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 재밌는 사연도 많고, 가슴 따뜻해지기도 하고, 때론 미어지도록 가슴 아픈 사연이 소개될 때는 함께 눈물 흘리는 대목도 있었다.​나가는 글 :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느꼈던 점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이었다. 흔히 말하는 '국뽕'은 아니지만, '국뽕'이라고 불러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들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이웃나라들인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언어'를 전세계에 보급하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였냔 말이다. 심지어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공하면 중국과 일본에서 장학금을 전액 지원해주는 곳도 많고, '어학연수'를 위해서 지원금을 보조해주는 것에서부터 '취업 알선(?)'까지 풀코스로 해주고 있단다. 그런데도 그 오랜 세월동안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공하는 학생의 숫자는 적정 수준 그 이상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무런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역대 정부에서 지원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지원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대학에서 강의를 개설하지 못해 청원과 항의까지 봇물이 터진 상황이란다. 급기야 각 대학에서 한국에 '한국어 강사'를 초빙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어찌 '국뽕'으로 보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더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이 자조적인 논조로 '자국의 문화'가 한국에 비해 뒤쳐졌고, '한국의 문화'를 알면 알수록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좀 얼떨떨할 정도다. 미국의 어느 중년은 '한국 문화'가 미국 사회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면서 걱정을 늘어놓기도 했는데, 그 중년의 마지막 멘트가 히트였다. "그래도 '한식'은 너무 맛있어서 끊을 수가 없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식은 너무 '건강식'이라면서 한식을 모르고 살 때에 자신은 '쓰레기(정크푸드)'를 사랑하며 즐겨 먹었다는 사실에 너무 부끄러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한편, 유럽의 젊은이들은 '아침 식사 풍경'이 빵과 수프에서 밥과 국으로 바뀌었다면서 이젠 아침을 '(한식으로)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하루를 버틸 수가 없다며 '한식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식후에 디저트조차 '붕어싸만코', '메로나', '월드콘'이 아니면 먹은 것 같지 않다면서 비싼 가격은 둘째치고 '마트 매대'에 재고가 쌓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동이 나는 일상이 반복되어, 이젠 '한 사람당 몇 개'만 살 수 있게 정책을 바꿀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마트에는 '한식'이 들어오는 시간에 자동적으로 긴 줄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는 유럽 사람들의 자존심을 와장창 무너뜨리게 만든 것이란다. 그들은 명품 매장 앞에서 '동양인'들이 루비비통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을 혐오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자긍심 쩌는 유럽인들이 '한식 코너'와 '한식당' 앞에서 자신들이 긴 줄을 만들어 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든 분들은 긴 줄을 서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면서 일장 훈계를 하면서도 자기 차례가 되어 '김밥'이 든 포장을 소중히 들고서 계산대로 빠르게 간다고 한다.​이런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더 깊숙이 이해하고 젖어들고 싶어서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한다. 처음에 '한글'을 배울 땐 쉽지만 '한국어'를 익힐 땐 멘탈이 붕괴되는 일을 겪으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한국어 공부'를 포기할 만도 한데, 그 어려움이 또 묘한 승부욕을 불러 일으켜서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고, 그렇게 열심히 배운 '한국어'로 더 깊고 넓은 '한국 문화'를 탐구하다보니 이토록 찬란하고 숭고하며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도 없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100여 년간 나라가 망하고 제국열강에게 식민지를 경험하고 전쟁으로 온 국토가 황폐했던 바로 그 나라가 해방한 지 80년이 지나서 세계 10위 권으로 우뚝 서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단다.​어디 그뿐인가? 미국과 유럽은 자신들이 식민경영을 해본 경험이 있는데, '식민지'였던 한국은 여느 식민지 국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언어'를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문화'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남김 없이 빼앗긴 '무'의 상태에서 '기술 강국'으로 '유'를 창조한 유일한 나라였던 것이다. 더 기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대한민국의 '언어'를 배우러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들고, 대한민국의 '문화'를 만끽하며 감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기술'이 없으면 세계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교육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의 풍경과 일상을 읽으면서 '국뽕'에 빠져 있었다. 언젠가 '한국어'로 세계가 소통하는 그 날을 꿈꾸며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85/67/cover150/k192130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856788</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인문학책</category><title>단예, 이젠 네가 부럽지가 않아  - [천룡팔부 2 - 육맥신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18806</link><pubDate>Tue, 15 Sep 2026 22: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188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9116X&TPaperId=175188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159/54/coveroff/893499116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9116X&TPaperId=175188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천룡팔부 2 - 육맥신검</a><br/>김용 지음, 이정원 옮김 / 김영사 / 2020년 05월<br/></td></tr></table><br/>&lt;천룡팔부 2 : 육맥신검&gt;  김용 / 이정원 / 김영사 (2020)[My Review MMCCCLI / 김영사 3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여든 번째 리뷰는 아버지가 뿌린 씨앗(?)을 열심히 거두는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lt;천룡팔부 2&gt;다. 소개가 너무 거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뿌린 씨앗'이라는 게 결국 '불륜'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도 모자라서 그의 아들인 '단예'가 사랑하는 여인들이 죄다 단예와 애정 관계로 맺어졌고, 그 가운데 한 여인과는 '혼인'을 약속했고, 또 다른 한 여인과는 피치 못할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아버지가 사랑했던 '과거의 여자들'이 딸을 낳았으니 모두 '그의 친딸'이었다. 그럼 단예와는 무슨 사이가 되는 걸까? 이래도 괜찮은 걸까?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천룡팔부 2&gt; 관점 포인트 : &lt;천룡팔부 2&gt;의 부제는 '육맥신검'이다. 대리국 황제 단씨의 '가전무공'으로 심후한 내공으로 점혈권법을 발휘할 수 있는 '일양지'를 응용해서 손끝에 내공을 주입해서 검기를 서리게 만들어 검술을 부릴 수 있는 독특한 무공이다. 그렇다고 열 손가락 모두 검기를 서리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른손 다섯 개와 왼손 소지(새끼손가락) 한 개를 더해 모두 여섯 개의 검기로 검술을 부릴 수 있는 무공이다. 기왕이면 열 손가락 다 검기를 서리게 하면 될터인데 왜 여섯 개일까? 그건 손끝에 검기를 서리게 하기 위해서 순전히 심후한 내공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공수련을 오래 했다고 하더라도 10년 수련에 손가락 한 개꼴로 검기를 서리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6개의 검기를 서리게 만들려면 적어도 60년 동안 수련을 해야 하니, 사람의 수명이 더 길고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더 많은 검기를 서리게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칠맥신검'이나 '팔맥신검'이 아닌 '육맥신검'으로 설정했을 것이다.​더구나 한 개의 검을 수련하는 것도 심혈을 기울여 집중을 해야 수련할 수 있을 터인데, 한 손에 하나의 검을 들고 모두 2개의 검술을 수련하는 검술도 있지만, 그 이상의 수를 사용하는 검술을 수련한 이들은 '현존'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거에도 들은 바가 없다. 그나마 중국 경극에 등장하는 '연개소문 역할'을 하는 배우가 항상 등 뒤에 5개의 검을 달고 연기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당태종과 연개소문이 전쟁을 벌였을 때 당나라가 패배한 까닭이 연개소문이 너무 뛰어난 전략을 사용했고, 심지어 연개소문의 무공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에 천하의 당태종이라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래되었으며, 이때 연개소문이 당태종과 싸울 때 칼을 다섯 자루가 들고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선보였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단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에도 '경극 무대'에서 연개소문과 당태종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연개소문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는 등 뒤에 칼을 5자루나 꽂은 채 등장한다고 한다. 이는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에 해당한다. 경극에서도 당태종은 연개소문에게 패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당태종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바로 '칼 5자루'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육맥신검'은 무려 여섯 개의 검을 한 사람이 사용하는 검술 무공인 셈이다. 가장 검을 잘 다뤘다는 연개소문보다 1개 더 많게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여섯 개의 검술을 시연할 수 있는 것일까? 무협소설에서는 손가락을 단련하여 무공을 펼치는 무술이 여럿 등장하지만, 그나마 강시처럼 손톱을 길게 길러서 쓰는 정도다. 그러나 육맥신검은 무려 '검기'를 부리는 무공이다. 손 끝에서 나온 검기가 아무리 짧아도 '은장도'보다는 길 것이다. 보통의 은장도 길이가 '젓가락 길이' 정도이니 대략 '한 뼘 정도의 길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손 끝에 젓가락을 달아놓고 다섯 개를 이리저리 휘둘러 보면 정말 힘들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손가락에서 나온 검기가 내력을 조절하여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오른손 검기 하나, 왼손 검기 하나를 이용해서 마치 '이도류 검술'을 펼치고, 오른손에서는 다섯 손가락에서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검기가 출수할테니 그야말로 기묘하고 예측이 힘든 검술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묘한 검술을 무술도 하나 할 줄 모르는 '단예'가 배우지 않고도 배우게 되었다. 이는 단예가 본격적으로 강호로 나서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이고, 또한 단예와 의형제를 맺는 교봉과 허죽을 만나기 위한 설정일 것이다.​이렇게 '무협소설'다운 스토리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김용의 소설에서는 여기에 '애정소설'이 더해진다. 그래서 김용 소설을 즐겨 읽는 여성독자들도 많다고 한다. 남녀 주인공들이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허나 무협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애정이야기'는 &lt;로미오와 줄리엣&gt;과 같은 낭만적인 느낌은 덜 하다. 그저 '일일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파극 느낌'마저 들기 때문에 그냥 '20세기 사랑공식'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듯 하다. 분명 더 오래전 '시간적 배경'을 갖고 있는 소설인데 '현대적 사랑공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대적 배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송나라가 건재하던 10~11세기 시대 배경을 바탕에 깔아두고 있다. 그나마 송나라 때가 '유교 전통'이 강요되었기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연애'가 아니라 '중매'다. 그래서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부모의 허락이나 중매쟁이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던 답답한 시대였다. 그나마 이런 전통에 얽매이는 것은 '중원'으로 한정하고, 중원에서 벗어난 곳에서는 조금 허용을 해주며, 여기에 '강호'라는 프리미엄이 더 붙어서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름 교양을 갖춘 사대주 집안이라면 응당 '격식'을 따르는 것이 사람된 도리로 여겼다.​그런데 단예의 아버지 단정순은 젊은 날 진홍면과 사랑을 나눠 목완청을 낳았고, 뒤이어 감보보와 사랑에 빠져서 종영을 낳았다. 나중에 더 밝혀지지만 단정순이 뿌린 씨앗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런데 문제는 단정순이 낳은 유일한 아들인 '단예'가 무술을 배우라고 강요하는 아버지가 싫어서 가출한 김에 강호 유람을 떠났다가 아리따운 아가씨들과 첫눈에 반하고, 여러 위기를 함께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젊은 남녀 사이의 애정이 싹트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급기야 피치 못할 강박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혼인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랑이 결실을 맺어 단예와 목완청은 부모님 앞에서 혼인을 허락 받고 약속을 지켜질 찰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들을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게 만들고 말았다. 아니 더욱 친숙한 사이가 되게 만들었다. 왜냐면 단예와 목완청은 '친남매' 사이로 확인 되었기 때문이다.​사실 단정순은 아직 황위에 오르진 않았지만 형님인 보정제가 슬하에 자식이 없어 대리국의 황위를 동생인 단정순에게 넘기기로 약속을 했다. 근데 그 약속이 맺어지지 전에 단정순은 황위에 오를 자격이 없는 황자였으니 궁궐 안에 있기보다 강호를 떠돌며 유람을 즐겼던 것이다. 단정순은 무술 실력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미남자'였기에 가는 곳마다 염문을 뿌렸고 그때마다 찐한 사랑을 나눴다. 그렇게 여러 미인과 사귀게 되었는데 '정력'도 타고났던 모양인지 그렇게 미인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자식을 쑴풍쑴풍 잘도 낳았다. 하지만 단정순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왜냐면 임신을 하고 자식을 낳을 때까지 미인과 함께 했던 것이 아니라 오래 사귀지 못하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보정제와의 약속을 맺고 지키기 위해서다. 황제가 될 수 없었던 황자였는데, 이제는 황제가 되어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황제에 걸맞게 '정실부인(왕비)'을 맞이해 정식 혼인도 해야만 했다. 그게 바로 단예의 엄마 '도백봉'이었다. 이렇게 해서 단정순은 사랑보다 황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예전에 사귀었던 미인들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그런데 의아할 것이다. 황제에게는 후손을 번창시킬 '의무(?)'도 있었기에 정식부인 말고도 첩에 해당하는 '후궁'을 여럿 들이는 방법도 있었을테니, 이전에 사랑을 나눴던 미인들을 모두 황궁으로 불러 들여 후궁이나 귀인으로 삼으면 될 것인데, 왜 도백봉 한 명만을 부인으로 두고, 과거의 연인은 모두 내치고 말았을까? 그 비밀은 단정순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미인들'에게 있다. 바로 여인들끼리 서로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다는 '전형적인 설정'을 짠 것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이 아닌 '근대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띠어 일부일처를 고집하고, '다첩제'를 결사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송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람직한 여성상은 가문의 후손을 생산하여 번성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인데, 어찌 하늘같은 지아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자 여인들끼리 시기, 질투, 복수까지 일삼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김용의 소설이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적 여성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한 셈이다.​나가는 글 : 허나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20세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21세기에는 말할 가치도 없는 '진부한 사랑이야기'로 보일 뿐이다. 더구나 여인들이 향하는 사랑은 '한 곳'만을 바라볼 뿐인데, 남자들이 사랑하는 방식은 '사방팔방'이다. 이런 사랑공식이 요즘에도 통할 듯 싶은가? 여성독자들도 외면할 뿐만 아니라 남성독자들도 이런 사랑을 원치 않는다. 왜냐고? 요즘 젊은 남자들 경제적으로 '자립'은커녕 '자족'하기에도 빠듯한데 언제 연애하고 데이트하고 사랑 나누고 결혼해서 애낳고 돈까지 모아 차사고 집사겠냔 말이다. 이렇게 한 명의 여자를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인데, 바람피우고 불륜 저지르고 다닐 수나 있겠는가. 그러니 이런 '문어발식 연애'는 남자들도 노땡큐다.​그런데 김용의 소설에는 이런 '애정소설'에 관한 내용이 참 많다. &lt;사조영웅문&gt;의 곽정, &lt;신조협려&gt;의 양과, &lt;의천도룡기&gt;의 장무기, &lt;소오강호&gt;의 영호충, &lt;녹정기&gt;의 위소보 등 한 명의 남자 주인공에 여자 주인공이 여럿 등장하고 매칭시키는 방식이 김용 스타일이기도 하다. 반면에 김용과 동시대를 살았던 &lt;백발마녀전&gt;의 양우생 작가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펴냈다. 그의 작품 &lt;명황성&gt; 3부작에서는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두 '제 짝'을 만나 일편단심으로 끝까지 인연을 맺는 사랑공식을 펴내서 비교가 된다.​그런 까닭에 80~90년대에 김용의 소설을 읽었을 때와 지금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 시절에는 단예, 교봉, 허죽 의형제 가운데 '단예'가 많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거고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아련하고 가장 하고 싶은 사랑은 단연코 '교봉과 아주의 사랑'이다. 교봉은 훗날 친부를 찾고 '소봉'이라 이름을 고치지만, 이름을 고치게 된 사연보다 아주와 인연을 맺고 사랑을 확인하는 그 장면이 너무도 애뜻했기 때문이다. 벌써 30년도 더 넘었는데 지금도 그 대목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이제 곧 그 장면을 만나게 될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 다음에 계속.]]></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159/54/cover150/893499116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1595496</link></image></item><item><author>異之我_또다른나</author><category>일반교양 비인문학책</category><title>‘일본색‘ 가득한 만화 삼국지를 읽어야 할까?  - [전략 삼국지 1 - 도원결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16697</link><pubDate>Mon, 14 Sep 2026 22: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8876216/175166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536370&TPaperId=175166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15/coveroff/k0325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536370&TPaperId=175166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략 삼국지 1 - 도원결의</a><br/>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2월<br/></td></tr></table><br/>&lt;전략 삼국지 1 : 도원결의&gt;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My Review MMCCCL / 대현출판사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lt;책이 있는 구석방&gt; 일백일흔아홉 번째 리뷰는 '만화 삼국지'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만화책이었던 &lt;전략 삼국지 1&gt;이다. 한때는 '만화 삼국지'를 읽는다고 하면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lt;전략 삼국지&gt;를 의미할 정도로 정말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 보다시피 판권이 소멸하여 한국에서 정식유통이 되고 있지 않으며, '60권 전집(흑백)'에 한해서만 판매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한창 때에는 흑백판으로 된 &lt;전략 삼국지&gt;를 몇 권 읽긴 했는데, 시리즈 전부를 사모을 정도로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던지라 사서 볼 엄두는 내지 못했고, 서점에서 몇 권 읽고, 친구에게 빌려서 몇 권 읽다가 말았던, 개인적으로는 '인연'이 없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다 '소설 삼국지'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만화 삼국지'도 함께 읽고 있는데 이곳 저곳 탐방을 하다가 도서관에 '60권 전집'이 모두 소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번 기회에 완독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에는 '대현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에 '표지 사진'이 없는 관계로 부득이 AK(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 출판사의 '표지 사진'을 걸었다. 현재는 이곳에서 '60권 전집'을 판매중인 것으로 나오지만, 개별 낱권으로는 판매하지 않고 있었다. 아쉽게도 구매하기 번거롭게 되었는데, 성심껏 리뷰를 작성할테니 리뷰를 다 읽고 난 뒤에 구매여부를 결정해주시길 바란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쓸테니 말이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lt;전략 삼국지 1&gt; 관점 포인트 : 저자인 요코야마 미츠테루부터 소개해야 할 것이다. 정말 유명한 만화가였고 대표작은 &lt;철인28호&gt;, &lt;바벨 2세&gt;, &lt;요술공주 세리&gt;다. 역사물을 좋아하는 저자였기에 &lt;전략 삼국지&gt; 이외에도 &lt;만화 사기&gt;, &lt;만화 초한지&gt; 등을 펴냈다. 현재 나이 40~50대 독자분들은 어린 시절에 그의 만화책을 읽지 않은 분이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소개는 이쯤하고,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쎄'라고 답하고 싶다. 일본 만화가인 탓에 일본의 대표적 '소설 삼국지'인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을 기본 줄거리로 삼아 작화를 했다. 그런데 에이지의 소설보다 더욱 '일본색'이 두드러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릴 적에는 늘 읽던 만화책이 으레 '일본의 것'이었기에 딱히 '일본색'이란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수십 년이 흘러 다시 읽으니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일본색'을 띤 만화책이라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만화 삼국지'를 주로 읽는 독자층이 어린이와 청소년일테니 조금이나마 '잘못된 인식(편견)'을 형성할 우려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럼 '일본색'이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일까? 1권에 핵심은 '도원결의'이고, 그렇기에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황건적 토벌이라는 공동의 목표로 뜻을 합쳐 의형제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종강본에서 '도원결의'는 나라가 혼란해진 탓을 '십상시의 난'에서 시작해서 나라꼴이 엉망이 된 까닭에 백성들이 고초를 겪었고, 그 때문에 나랏님을 믿고 따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구원의 빛처럼 등장한 '장량의 무리'를 추종하는 과정에서 '황건적의 등장'을 이루게 되었고, 이들이 저지르는 혼란이 극심해지자 결국 혼란을 일으켜 나라를 어지럽히고 망할 지경에 이르자 '의용군'을 부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때마침 유비, 관우, 장비가 뜻을 모으니 이들 삼형제를 주축으로 '의병'을 일으켜 황건적 토벌에 큰 활약을 한다는 줄거리를 정식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십상시의 난'에 대한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황건적의 횡포'만을 강조하며 토벌해야 할 대상으로 강렬하게 인상지어 주고 있을 뿐이다.​황건적이라 부르지만 애초에 '선량한 백성들'이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살기 위해서' 한나라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꿈을 꾸었던 무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그저 '무법자'로 그리고 마땅히 '토벌할 대상'으로 삼아 거리낌없이 죽이는 묘사를 하고 있다. 아직 1권에서는 본격적인 황건적 토벌에 나서지는 않지만, 유비가 어머니께 드릴 차를 구하러 갔다가 황건적 두목 '마원의'에게 붙들렸다 장비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데,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그 황건적의 나쁜점만 드러낼 뿐,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되어야 했던 사연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걸 '삼국지'라고 할 수 있을까?​한편,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소설 삼국지'의 도입부가 너무 재밌고 인상적인 탓에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70년대 이전까지 '소설 삼국지'나 '만화 삼국지'를 그릴 때 '에이지의 소설'을 따라서 모방하는 경향이 셌다. 그래서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이 '황건적 토벌'을 결심하면서 의형제까지 맺게 되었다는 스토리를 보여주었는데, 그래도 에이지조차 '십상시'가 후한 말기에 나라가 어지럽게 된 원흉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황건적의 만행'만을 부각시키며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뜻을 모은 '유관장 삼형제'를 거의 영웅적인 등장으로 화려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의병장이 된 유비는 이미 '황제'가 된 듯 황금색 갑옷을 갖추었고 존엄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거기에다 관우도 고향에서 부패한 관리를 살인을 하고 탁현으로 몰래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매한 인품을 지닌 미남자로 본 실력을 감춘 신비의 무장으로 그려냈다. 장비는 더욱 가관이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손오공'이다. 머리에 '긴고아(또는 금고아라고 부른다)'를 낀 채 사람을 한 손으로 들어 냅다 던지고 주먹을 휘두르면 단 한 방에 골로 보내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의 소유자로 그려냈기 때문이다.​뭐, 암튼 '그림체'와 '성격'은 그렇다치고 에이지의 소설에서도 그랬지만 '도원결의'를 하면서부터 관우와 장비가 유비를 '주군'이라 칭한 것이다. 유비가 중산정왕 유승의 후예이기 때문에 이미 '황손'으로 신분이 자신들과 다름을 들어서 '주종관계'를 맺은 것이다. 관직도 없는 유비를 '주군'으로 삼고자 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어차피 촉한의 황제가 될 운명임을 강조하는 '복선'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일본색'이 엿보인다. 무리를 지으면 '수평관계'보다 '수직관계'를 선호하고, '상명하복'에 철두철미한 일본의 군사문화가 십분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분제 사회'였던 시대적 배경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 유비는 돗자리나 짚신을 짜던 시골 촌부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황족의 후손'이고 난세를 구할 '영웅적 운명'을 타고 났으며, 그렇게 본색(?)을 드러내자 하루아침에 '존엄한 존재'로 거듭난다는 설정은 아무리 만화라지만 너무 과한 설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나가는 글 :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lt;전략 삼국지&gt;는 1971년부터 약 15년간 연재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89년에 자유시대사에서 처음 출간했고, 93년에는 대현 출판사가 판권을 승계해 출간했으며, 2009년에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출판사에서 출간했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일본의 부흥기에 출간된 &lt;전략 삼국지&gt;가 '일본색'이 충만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그런 책을 대한민국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읽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문제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우리 나라 '만화 삼국지'가 더 많고 더 재밌다. 앞으로 60권을 읽어가면서 그 점을 중심으로 읽어 가보려 한다. 과연 여전히 읽을 만한 책인가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1/15/cover150/k0325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31153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