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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10 : 오장원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평점 :
[My Review MDCCCXC / 코너스톤 11번째 리뷰] <삼국지> '완역판'이 대미를 장식했다. 부제목이 '오장원'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제갈공명의 죽음'으로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의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사실 공명의 죽음 이후에도 촉한은 30여 년간 역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삼국지연의'에도 그 지난한 촉한이 망해가는 과정을 다 보여주었고, 뒤이어 3년 뒤에 대위가 망하고 '사마씨 중의 사마염'이 진(晉)나라를 세우는 과정까지 세세히 이어나간다. 분량상으로 보면 10권 가운데 6권쯤에 공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4권에서는 진나라 건국까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나 사실상 <삼국지>는 유관장 삼형제가 진짜 주인공이고, 이들을 뺀 나머지는 '조연'에 불과하다. 그래서 유비가 죽게 되는 '이릉전투의 패전'으로 사실상 <삼국지>를 읽는 재미는 끝장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제갈량의 출사표'가 던져진 이후에 위촉 사이에서 공방전이 벌이는 것이 나름 흥미로울 뿐, 동오의 손권 진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흥미를 잃은 변방 취급 당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삼국지>를 필독으로 삼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이 책을 처음 읽고 리뷰할 때부터 던진 질문이었는데, 한(漢)나라의 패망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내볼까 한다.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었던 <초한지>에서 유방이 승리를 거두고 '한나라'를 세웠을 때만해도 대세는 한나라에 있었다. 진(秦)나라가 2대에 걸려 비교적 서두른 멸망에 이른 것도 대세가 한나라에 있었기 때문이다. 진시황과 달리 유방은 '유교'를 전반에 내세웠다. 법치사상이 진나라의 국력을 빠르고 탄탄하게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나도 융통성이 없는 '법치'에 사람들은 숨 쉴 구멍조차 없는 갑갑함을 느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에 한고조 유방은 유교에서 내세우는 '덕치'를 기본으로 나라의 기틀을 삼았다. 그리고 이는 백성들에게 살아갈 원천이자 태평성대의 탄탄한 기초가 되었다.
허나 '덕치'도 시일이 지나자 느슨해진 팬티 고무줄마냥 줄줄 흘러내리는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 한나라가 '전한'과 '후한'으로 나뉜 까닭도 바로 그런 망조가 들자 한 번 망했다가 다시 되살려낸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번 죽었다 다시 살아났으면 더욱더 깊이 반성하고 나라를 잘 이끌어나갔어야 하는데, 한 번 망조가 든 원인을 싹 도려내는 개혁을 차일피일 미루자 끝내 '십상시의 반란'과 같은 국정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십상시가 누구인가? 국정을 농단하고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고 나라가 망하든 말든 제 이익만 챙기면 그뿐이라는 파렴치한 놈들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말이다. 국정이 문란해지자 백성들을 살길이 막막했고, 끝내 '황건적'이 되어 전국에 도적떼가 들끓게 되었다. 이런 혼란을 타개하고자 각지에서 영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삼국지>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이렇게 한나라는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오로지 '힘'을 가진 자가 '권력'을 쥐는 패왕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그런 패왕들은 한결같이 '도덕이 밥 먹여주냐!'를 외치며 불의를 쉬이 저지르며 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영웅들 가운데 한나라의 후예를 자처하며 '덕치'를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그가 바로 훗날 서촉의 황제 지위에 오르는 '현덕 유비'다. 비록 경제의 후손을 자처하지만 시골구석에서 돗자리나 누벼서 팔아 근근히 먹고 살던 촌부에 지나지 않던 이가 '관우와 장비, 그리고 미축과 간옹'이라는 소소한 무리를 이끌고 도덕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밝게 비추겠다는 기치를 높이 세운 것이다.
반면에 대위(大魏)를 세운 조조는 어땠나?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란 점괘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권력찬탈을 호시탐탐 노리는 야심가에 불과했다. 그에게 운빨이 닿자 그는 결국 '위왕'이라는 지위까지 거침없이 올라 난세를 평정한 권세가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그에겐 '덕치'와 같은 국정철학 같은 것이 없었다. 오로지 '힘'을 과시하며 정적을 제거하고 역적을 숙청하며 무시무시한 권력욕을 유감없이 발휘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서촉과 동오를 제압하고 북위가 천하를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래가지 못했다. 왜? 힘으로 권력을 잡은 자의 말로는 결국 힘을 잃으면 모든 것을 빼앗길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을 빼앗긴 장본인도 자신이 애지중지 키우던 개(사마염)였다. 그리고 그 능력 있는 개가 통치하던 진나라도 오래 가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동오의 손권은 말할 가치도 없다. 강동의 비옥한 땅에서 누릴만큼 누리다 그대로 주저앉은 꼴이기 때문이다.
다시 촉한으로 돌아가자. 초대 황제였던 유비가 죽자 공명이 그 유훈을 받들어 '한나라의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애초에 '위촉오 삼국시대'를 만든 것도 그의 아이디어라지 않은가. 이른바 '천하삼분지계'는 젊은 공명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학계(아마도 '사마휘의 제자들')의 중론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이를 실현시킨 것은 '공명의 공로'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초려'에서 나와 유현덕과 손을 잡은 까닭도 바로 한고조가 내세웠던 '덕치'를 바탕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포부였을 것이다. 그렇게 '도덕이 밥 먹여주냐!'라던 혼란스럽고 파렴치한 세상을 밝게 비추던 빛이 바로 '촉한이 가진 진정한 힘'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촉한의 정당성이 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일까? 바로 구심점이 될 '리더의 부재'와 위업을 달성할 원동력인 '인재의 부족' 탓이었다. 실제로 유관장이 차례대로 죽자 촉땅으로 들어갈 당시만해도 위풍당당했던 유비의 장수와 책사들은 하나둘 사그라들고 만다. 이미 입촉도 하기 전에 '방통'이 죽었고, 촉한에 들어서자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이에 복수를 가려던 장비가, 복수전을 펼치던 유비가, 황충이 죽었다. 그리고 마초도 허무하게 세상을 달리한다. 이에 공명은 '남만정벌'을 통해 촉한을 안정적으로 만든 뒤에 천하통일을 차근차근 준비하려 했지만, 그의 수명이 그 긴 시간을 허락치 않았다. 더구나 공명은 천하를 통일할 정도의 넉넉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만다. 왜냐면 '인재의 부족난'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첫 번째 출사에서부터 '읍참마속'을 하는 등 가뜩이나 부족한 인재난에서 공명은 헤어날 수가 없었다. 반면에 위나라에는 인재가 차고도 넘쳤다. 그나마 잘난 인재는 '사마의, 하나 뿐'이라 할지라도 중간 이상의 평가를 받는 장수와 책사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최종적인 승리는 위나라가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촉나라에 인재가 넉넉했더라면 상황은 완전 달라졌을 것이다.
자, 결국 촉한의 멸망으로 '도덕'은 패배하고 말았다. 오로지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권력찬탈자'들만이 횡행하는 혼란의 문이 열리고 말았고, 대륙은 또다시 '5대10국'이라는 대혼란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백성들의 열망은 철저히 외면 받으면서 말이다. 우리가 오늘날 <삼국지>를 다시 읽고, 읽어야 하는 까닭은 바로 '도덕'이 땅에 떨어진 세상에서 온 국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다시금 '도덕'으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정의로운 세력이 들고 일어서는 그 꿈이 실현되길 바라는 염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비록 유교사상은 수천 년전의 낡은 사상일지 몰라도 유교가 내세우는 '인의예지'라는 기본은 한국인의 마음속 깊이 아로 새겨져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에게는 뛰어난 리더십과 더불어서 넓은 아량과 포근한 마음씨로 국가를 잘 다스려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그 밑에서 보좌하는 국무위원들은 뛰어난 행정실무로 대통령을 뒷받침하며,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은 제 몫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국민들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서 불철주야 해주길 바라며, 사법부의 판사와 검사 들은 그 누구보다 청렴결백하여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정의의 사도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이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주주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질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은 '십상시의 난'을 비롯해서 국정을 폭력적으로 쥐고 흔들려는 '동탁의 집권기'와 마찬가지다. 다행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명하고 선량하기 때문에 '황건적'이 될 생각조차 하지 않을 뿐이다. 더구나 '전한'과 '후한'의 예처럼 집권 여당이 되기만 하면 '탄핵정국'으로 국가를 혼란케 만드는 '망조'가 든 정당이 등장했다. 그런데도 염치도 없이 한 번 잡은 권력을 내놓으려하지 않는다. 진짜 나라를 망하게 만들려 작정했나보다. 나라가 망하면 '그들'은 절대 피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든 어디든 '돈'을 잔뜩 짊어지고 도망갈 '플랜 B'가 있는 년놈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는 대한민국을 끝까지 지키는 '국민들의 몫'이다. 이런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이라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이름 없는 국민들 하나하나가 모두 영웅들이다. 그 영웅들이 거리를 물들이는 '응원봉'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밝힐 것이며, 이를 지켜본 전세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함을 칭송하게 될 것이다. 국격은 '한 사람의 무능'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수많은 국민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다시 만들어내는 새로운 국격을 뽐내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이 지닌 진정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