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 오늘을 만끽하는 이야기 (양장본) 오늘을 산다 2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새의노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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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산다 2]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 오늘을 만끽하는 이야기>  마스다 미리 / 박정임 / 새의노래 (2024) [원제 : ヒトミさんの戀]

[My Review MMLVI / 새의노래 1번째 리뷰] 정말이지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는 차고 넘친다. 온라인 서점에서 단순검색하는 것만으로도 200개가 훌쩍 넘어가는 수를 자랑한다. 20여 년 동안 그녀의 책들이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더구나 대부분 '평점'도 높은 편이다. 가볍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일까? 30대 여성들의 고민을 대신 해준 덕분일까? 그렇지만 남자인 내가 읽었을 때엔 '문제의식'만 있고,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답답한 책이었다. 뭐랄까? 여자들의 수다를 세 시간 넘게 들으며 깔깔대고 웃고 떠든 느낌이랄까? 정말 재밌는 수다였는데, 정작 헤어지면 우리가 무슨 얘기를 나눴던 거지? 하면서 씁쓸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도 그랬다. 띠지에는 [기대도 없이 절망도 없이, 오늘을 산다'면서 마스다 미리 월드의 정수 <오늘을 산다> 시리즈 2편]이라고 적혀 있다. 기대도 없고, 절망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40살의 여성대표, 사와무라 히토미 씨의 삶'을 이렇게 적어 놓았던 것이다. 너무 부정적이지 않은가? 여자 나이 40살이 뭐 어때서 말이다.

앞서 '수짱 시리즈'나 '내 누나 시리즈', 그리고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시리즈' 등에서 '30대 독신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성도 자기계발을 위해서 대학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해외연수도 다녀오고 그러면 취업도 늦어지고, 승진을 하기 위해서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미루다보면 '30대 독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흔한 요즘이라고 썰을 풀었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는 20대를 정점으로 찍고서 30대로 접어들면 무엇을 하든 '늦었다'는 꼬리표가 붙어서 우울해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늦은 것'을 두고서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짐을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부담'을 더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몇 자 적기도 했는데, 마스다 미리의 책에서는 '부담'을 덜기는커녕 일본사회 전체가 여성의 늦은 결혼, 늦은 임신, 늦은 출산, 늦은 육아를 탓하는 것을 넘어 '싸움에 진 개(けんかに負けた犬)', [줄여서 '負け犬(마케이누)'라고도 함]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고 굉장한 불쾌감을 느꼈다. 이건 완전히 '인권모독'에 해당하는 언어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일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고, 심지어 여성들끼리도 자신들을 그렇게 부르며 '20대에 결혼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수짱도, 히토미도 자신을 '싸움에 진 개' 신세가 된 것에 우울감을 표현할 뿐, 이렇게 독신이 된 것에 대한 '사회문제'는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몫', '여성의 몫'으로 전가하고 만 셈이다.

난 이게 몹시 불편하다. 그래서 일본의 문화에 대한 정보를 여러 모로 검색해보니 일본의 정치가들은 '저출생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말'이라는 썰을 접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일본의 '초고령화 진입 시기'를 조금 늦추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는데, 이게 잘한 정책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본이 이렇게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해서 '사회문제'를 완화(?)시킬 즈음, 대한민국은 초고속으로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말았다. 물론 우리 나라도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정치선동가들에 의해서 '젊은 여성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일이 종종 벌어졌으나, 우리 여성들은 그따위 발언을 한 시키들을 가만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발언'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마스다 미리의 책들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양상이 참으로 기괴한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물론 몰상식한 일본정치가의 발언을 두고 마스다 미리 작가 한 사람을 탓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작가도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면, 문제적 발언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차원에서 뭔가 액션을 취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만약 마스다 미리의 책에서 그런 발언을 찾았다면 '내 마음'에 쏙 드는 작가였을텐데 말이다. 그저 수다를 떠는 정도의 이야기꺼리로 '에피소드'화 시켜버린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뭐, 일본 사회 전체에 그런 '문제의식'이 공론화 되지 않는 이상에 굳이 그걸 문제로 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고 싶다. 이 책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의 주인공인 '사와무라 히토미'는 40대 독신여성의 삶을 살면서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인가? 어쩌다 보니 결혼적령기를 놓쳐 버렸고, 직장생활을 20년 넘게 하고 있지만, 남자직원에 비해서 '승진'이 빠른 것도 아니고 여전히 남자직원의 '보조역할'에 만족하는 '오피스레이디(OL)'의 삶으로 만족하고 있나? 이야기 속에서 히토미의 아버지 사와무라 씨는 82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것으로 설명했다. 그렇게 70대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40대 독신여성의 삶에 자조 섞인 뉘앙스만 잔뜩 담아 놓은 내용을 읽으며 '행복'을 말한다면, 그 일상에 충분히 공감할 젊은 여성들, 그리고 히토미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은 또 얼마나 공감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50대 독신남성'으로 접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기대'를 품고 살고 있으며, '절망'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고 있다. 연애나 결혼이 거의 불가능한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기대'를 접지는 않았다. 비록 건강에 부쩍 신경을 쓸 정도로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적어도 '나이'보다는 젊게 살려고 애를 쓰고 있으며, 그런 덕분에 '기대'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무슨 일이든 의욕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그 때문에 '절망' 따윈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려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는가? 그 절망감은 오히려 30대에 더 컸다. 흙수저로 재산이라고는 '몸뚱이' 하나 뿐인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계층사다리를 올라서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릴 때가 더 많을 때에 '절망감'이 절정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한 30, 40대를 지나고 나니, 오히려 삶을 즐기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운'이 찾아오지 않은 아쉬움은 털어버리고 내 주위에 널려 있는 '행복'을 찾아내어 만족한 느낌을 얻는 지혜였다.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으면 묘한 '동질감'을 느낄 때도 있다. 국적은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또래'가 주는 그런 느낌 말이다. 같은 세대를 살았구나 싶은 그런 느낌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고 싶은데, 너무 주변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인물들의 묘사가 가득해서 마뜩찮다. '그걸 굳이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싶은 대목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일본어에는 '상대의 기분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참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걸 좋게 표현해서 '배려심이 많다'고도 하는데, 그건 너무 피곤하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표현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넌 그게 문제니까 좀 고쳤으면 좋겠어"라고 지적을 해줘야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분명히 잘못하고 있고,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그걸 '직접적'으로 지적으로 하면 기분 나쁠테니까 좋게 좋게 돌려서 말을 하면, 어느 세월에 문제를 고쳐서 더 나은 사회가 되겠느냔 말이다. 일본인들끼리는 그렇게 돌려서 말을 해도 잘 알아들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소리도 자주 하던데, 그렇게 잘 알아 듣는 것 같지도 않다. 정작 '외부의 쓴소리'에는 귀를 닫고서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더 많으니 하는 소리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에서는 강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약자에게 허리를 펴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미덕이고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논리에 순종하는 모습에서 나는 '행복'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뭐 그리 심각하게 읽느냐고? 성평등시대에 '사회적 약자'인 여자가 남자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서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야만 '여성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히니까 하는 소리다. 이건 안 될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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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3 (무선 보급판) 퇴마록 (반타)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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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 외전 3>  이우혁 / 반타 (2025)

[My Review MMLV / 반타 4번째 리뷰] <퇴마록 : 말세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멈춘 지 20여 년이 흘렀다. '세기말 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퇴마사들의 퇴마행이 21세기 초엽(2001년)에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팬들이 '종결'을 아쉬워했고, '뒷이야기'를 바랐다. 그러나 저자는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나름 '열린 결말'이었기에 퇴마사들의 최후를 나름의 상상력으로 반추를 거듭했지만, 어느 것 하나 흡족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갈피를 잡지 못해 더욱 안달이 났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래서 또 다른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을 때도 큰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오탈자를 잡거나 미흡하거나 흡족하지 못했던 내용의 '줄거리 수정'만 있었을 뿐,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고 '후속작'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적어도 '말세편의 외전'이라도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외면(?)해버린 저자에게 솔직히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드디어 <외전 3>가 나왔다. 그리고 '말세편의 뒷이야기'가 정리되었다. 솔직히 저자의 고심 따위(?)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철저히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퇴마록이 쭈욱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각설하고, <외전 3>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드디어 말세편의 진정한 결말 내용'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두루뭉술한 '열린 결말' 따위가 아니라, '닫힌 결말'이었고 진정한 '말세편의 종결'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준후가 '징벌자와 구원자의 탄생'을 확인하고, 세상을 종말로부터 구원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박신부와 현암, 그리고 승희가 벌이고 있는 '최후의 결전장'으로 서둘러 달려가는 것으로 끝맺음을 했었지만, <외전 3>에서 그 '뒷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그리고 준후가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박신부의 죽음, 그리고 현암과 승희가 손을 꼭 잡고서 놓지 않고 있던 '두 사람의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오열했다. 결국 세상을 구원하길 바랐던 퇴마사들의 염원이 하늘에 가 닿았고, 그 바람이 이루어졌음을 모두가 알게 되었을 때, 3명의 퇴마사들은 끝내 죽음을 맞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말세의 예언'이었던 탓에 전세계의 능력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나름 저마다 말세의 도래를 막기 위해서 둘로 갈라져 싸웠으나, 끝내는 퇴마사들의 말이 옳았고, 그들의 행보가 가장 옳은 길이었음을 재확인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싸운 결과는 가장 '선하게 살았고', 가장 '옳은 일만 했던' 퇴마사들만의 죽음이었다. 그런 퇴마사들을 믿지 못해 막으려 하고, 방해하고, 심지어 공격했던 이들조차 살아남았는데, 세상의 말세를 막아내고 온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큰 공을 세운 '3명의 퇴마사들'만이 죽고 말았던 것이다.

더욱 화가 나는 사실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죄악을 미워하되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일념으로 저들의 목숨을 앗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악랄한 공격을 그저 묵묵히 막아내기만 할 뿐, 결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는 않겠다면서 그 처절한 상황에서도 절대 끔찍한 살인행위를 하지 않다가 '생의 끝자락'에서 숨이 다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사그라들었을 뿐이다. 아무런 원망도 없이 말이다. 세상에 이런 고귀한 죽음이 있겠는가?

그러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준후는 분노한다. 세상의 말세를 부추긴 '원흉(?)'들은 버젓이 살아 숨쉬는데 왜 말세를 막고 세상을 구원한 이들이 '대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느냔 말이다. 이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저들은 살아서 숨쉴 '권리(?)'가 정말이지 요만큼도 있을 수 없었기에 준후는 분을 참을 수 없다. 그런데 고작 10대 소년 하나가 분노한다고 해서 두려울 것이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만 비췰 것이겠으나, 준후는 고작 '소년'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온세상이 사라질 뻔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퇴마사'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세상의 이치, 곧 '섭리'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그렇게나 위대한 일을 행했으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전지전능한 신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이런 일을 해낸 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질 능력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애초에 멸망했어야 마땅할 세상을 구해냈으니, '그 세상'을 멸할 수 있는 능력, 즉 '말세의 권능'을 장준후에게 준 것이다. 애초에 퇴마사 네 명에게 골고루(?) 노나 주었어야 하겠으나 생존자는 준후 한 사람이었으니 준후에게 그 권능이 몰빵(?)된 것도 있다. 그리고 준후는 그렇게 주어진 권능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써버린다. 퇴마사들을 되살리라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리 <퇴마록>이 '판타지소설'이라고는 해도 그렇게까지 막가지는 않는다. 준후가 얻은 '그 권능'으로 세상을 멸할 각오를 했으나, 일단 살아남은 능력자들에게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도가 있는지 물었던 것이다. 만약 '없다면' 바로 그 즉시 세상을 멸할 각오였고, 반대로 '있다면' 그 방도를 서슴없이 시행할 각오였다. 허나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방도라는 것이 있을 턱이 만무하다. '부활'이 실제로 가능했다면 그간 있었던 싸움이 무색할 정도로 다시 되살려내었을 테니 말이다. 이 사실을 준후라고 모를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말세가 온 지경'에서도 저마다의 욕심을 놓지 않았던 저 어리석고 맹목적인 능력자들을 그냥 순순히 일상으로 되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던 준후였다. 이젠 '퇴마사'들도 죽고 없는 마당인데, 또다시 저들이 서로의 능력을 사용하며 반목할 경우에, '말세'는 다시 돌아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권능'을 갖게 된 장준후도 이번 말세를 막기 위해 엄청난 주술적 힘을 낭비(!)한 덕분에 남은 생명이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더욱 독하게 나갔다.

그러자 저마다 나름의 방도를 내놓기 시작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퇴마사들의 영혼을 다시 불러온다고 해도 그들의 '육신'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되살릴 방법이 전혀 없다는데 있었다. 박신부는 자신의 기도력을 다 끌어모아서 대악마 아스타로트가 불러낸 악령들을 소멸하고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고, 현암과 승희는 저들의 능력으로 충분히 '재래식 무기(총이나 폭탄 등)'를 사용하는 군인들을 상대할 수 있었고, '원소력'을 사용하는 아네스 수녀의 공격만 방어하면 그럭저럭 준후가 '징벌자와 구원자의 탄생'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버틸 수도 있었으나, 문제는 현암과 승희가 지닌 엄청난 능력으로 다가오는 군인들과 수녀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는데 있었다. 그저 잠시 기절시키고 무기를 쓰지 못하도록 망가뜨리는데 능력을 소모하다보니, 수없이 빗발치는 총알과 폭탄 세례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력이 다하자 그만 지쳐쓰러지고 만 것이다. 더구나 현암은 빗맞은 총알과 파편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승희를 업고 있었고, 마지막 힘을 다해서 현암의 오른손을 꼭 쥔 승희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그저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그저 막기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천정개혈대법으로 전신으로 공력을 보낼 수 있었기에 이처럼 버틸 수 있었을 뿐, 일반적인 능력자였다면 진작에 죽고 말았을 공격이었다. 그러다 공력이 다해서 쓰러진 현암과 승희을 향해 '확인사살'을 하기 위해서 아네스 수녀는 C4(고성능 폭약)를 던져놓으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온전한 시신이나 남기지 못하고 '두 사람의 꼭잡은 손목'만이 남아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녕 퇴마사들을 되살릴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때 쥐어짜듯 내놓은 방법이 바로 '시간역행'이었다. 쉽게 말해서 '시간'을 되돌려서 박신부와 현암, 그리고 승희가 죽지 않게 도와주면 된다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무엇'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냔 물음이다. 그런데 그 '무엇'이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바로 준후가 세상을 구하고 얻은 '권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권능으로 퇴마사들을 구해내고 준후는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되돌아오면 되는 방법이 제안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역행'은 물리적으로 실행불가한 이론이다. 물론 '양자역학 이론'으로 접근하면 불가능한 방법이 아니고, '팽행우주', '멀티버스'로 입각해서 계산(?)하면 완전 불가능한 방법도 아니었다. 더 안전한 방법으로 '육신'을 가지고 시간역행을 하지 않고 '영혼'만 시간을 되돌린다면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는데 큰 걸림돌도 없어 보였다. 물론 그런 능력이야 여기 모인 사람들에겐 얼마든지 가능한 능력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시간의 패러독스(인지 부조화)', 다시 말해, 얼핏 맞는 것 같지만 일부만 맞고 더 큰 문제점이 드러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이를 테면, 아무리 '질량'이 없는 영혼이라지만, 아주 적은 질량일지라도 시간역행과 같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을 일으키게 되면 우주적인 차원에서 볼때 결코 적지 않은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없던 일'을 '있던 일'로 바꾸는데 들이는 에너지를 무엇으로 바로 잡을 것이냔 말이다. 이는 절대불변의 물리법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일이라 그 파장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장준후는 시간역행을 해서라도 퇴마사들을 살리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권능'을 그런 일에 쓰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악을 물리치는데 그치지 않고 옳지 않은 일을 옳게 바로 잡는데 온 능력을 다할 뿐, 아무런 사욕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놓는 '퇴마사'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서 장준후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부여된 권능으로 '시간역행'을 시작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곳은 '천기 수호자'가 있는 곳이었다. <왜란종결자>에서 다루었던 '우주 팔계(신성광생사유환마)'를 다스리는(?) 그런 분들 말이다. 여기서 왜 뜬금없이 <왜란종결자>가 등장하느냐고 의아해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이다. 전혀 의아해 하실 필요가 없다. 바로 '뉴 퇴마록'이 새롭게 시작할 '분기점'이 되는 지점이니, 의아해 하기보다는 '그런갑다'하고 여기는 것이 더 속 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따지기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서 '작가의도'를 밝히자면, '뉴 퇴마록'을 새롭게 집필할 각오를 하면서 기존에 보였던 <왜란종결자>나 <파이로매니악> 등의 '세계관'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하는 것 같다. 물론 '흡족'해질 때가 아니면 여간해서 책을 내놓지 않는 고집불통 작가인 점을 감안하면 그리 쉽게 독자들이 원하는 소설을 홀랑홀랑 내놓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암튼 '뉴 퇴마록'을 내놓을 당위성(!)은 마련해놓았으니 독자들은 기다리기만 하면 될 듯 하다. 이제 '판'을 깔렸고 '시작'만을 기다리면 된다. 20년도 기다렸는데, 몇 년을 더 못 기다리겠는가. 내놓기만 해라. '읽을' 준비는 이미 마쳤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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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사이클
레이 달리오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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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사이클>  레이 달리오 / 조용빈 / 한빛비즈 (2025) [원제 : How Countries Go Broke : The Big Cycle]

[My Review MMLIV / 한빛비즈 171번째 리뷰] 전세계 경제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와중에 투자자들이 '방황'을 하고 있는 것에 더 큰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시점이다. 무엇에 투자해야 '안전자산'을 확보할 수 있고, 어디에 투자해야 '소득진작'에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안갯속을 걷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이럴 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레이 달리오의 한마디는 너무나도 소듕할 것이다. 그런 시점에서 레이 달리오가 내놓은 <빅 사이클>은 투자자들에게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레이 달리오는 확언하듯 말한다. "이 책은 '대규모 부채 사이클'의 비밀을 파헤치는 예언서가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읽은 이 책은 글쓴이의 말대로 '예언서'처럼 읽혔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말이다.

예언서라는 것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이야기 속에 '숨겨놓은 뜻'을 찾아내어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에 대비할 수 있는 총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역할을 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 <빅 사이클>은 분명 '미래 경제 예언서'라고 소개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 2.0 시대가 개막하고, 미중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전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관세전쟁'은 전세계 경제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으며, 그로 인해 조만간 '국가 부도 위기'가 찾아올 나라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 가운데 '미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레이 달리오는 경고를 높이고 있다. 그 근거로 미국의 '부채'가 급증해서 2035년에는 무려 50조 달러가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25년 현재 미국의 부채는 35조 달러인데, 이는 2010년에 불과 10조 달러가 조금 넘은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은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부채가 늘어나도 '중앙은행'에서 통화를 찍어내면 그뿐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런 일을 벌이면 '인플레이션'이 나타나 경기가 침체되고 경제가 악화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만,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부채'가 늘어난다해도 그리 큰 악영향을 끼치는 일까진 일어나지 않고, 다시 경기가 호황을 맞을 때까지 '버티기'를 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채를 탕감할 시간적 여유를 미국은 더 많이, (어쩌면 '미국 맘대로') 더 연장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축통화'의 장점이다.

그러나 레이 달리오는 가까운 미래에 미국이 더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지니게 되어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부도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경기가 더 나아질 거라는 전망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부채'는 반드시 탕감해야만 할 빚이다. 그 '부채'를 영원히 탕감하지 않을 국가의 화폐를 누가 갖고 싶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미국이 아무리 '기축통화'를 지닌 국가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경기 진작을 통해서 '부채탕감'을 해나가는 노력을 보여줘야 미국이 '국가 부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예언한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현 대통령이 이런 노력을 전혀 벌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관세'를 통해서 일시적으로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전략은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정도라고 지적하는 경제전문가들이 너무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왜냐면 '관세'를 올리면 일시적으로 세수가 올라 흑자가 되거나 적자의 폭을 줄일 순 있겠지만, 상대국도 바보가 아닌 이상, '보복관세'로 맞불을 놓아 미국에 타격을 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미국의 역사'만 들춰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게 관세를 자국에 유리하게 매겼다가 폭망한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대영제국'이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렇게 영국이 폭망한 뒤에 미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인데, 미국이 영국의 전철을 밟고서 폭망의 길을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과거의 미국은 '첨단기술력'을 앞세워서 관세정책을 없애고 전세계를 '자유시장'으로 만드는 세계화에 앞장 섰던 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국이 걷어들인 이익이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을 그새 잊은 것인가?

더구나 현재의 미국은 '첨단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시대도 아니다. 중국을 비롯해서 유럽, 인도,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일부분이긴 하지만 미국의 원천기술보다 훨씬 좋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충분히 높인 상태다. 그런 미국의 처지가 안쓰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세전쟁'을 벌여서 미국이 얻을 이익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냔 말이다. 오히려 이런 '정황'들이 미국의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고, 굳이 다른 '경제지표의 악화'를 전문적으로 이해하지 못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 <빅 사이클>은 너무 심오하다 못해 전문적이어서 일반 독자들은 반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단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대략적인 '큰 그림'을 살펴보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큰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미국만 위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고, 중국과 일본도 레이 달리오가 말하는 '빅 사이클'에서 절체절명의 경제위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레이 달리오는 그의 <원칙>에서 "걱정하지 않는다면 걱정해야 하고, 걱정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책 <빅 사이클>에서도 그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경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면, 그에 따른 각국의 '대비'가 진행중일테니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걱정해야 할 부분은 현 상황을 '낙관'하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적절한 대비를 하고 있는가? 여기에 '물음표'를 제기하고 있는 이들이 많아서 걱정이 큰 것이다. 뭐 아무리 미국이라도 망할 때가 되면 망할 수밖에 없다. '한 국가'가 폭망한다고 해도 '다른 국가'가 그 자리를 대체할 테니 그리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영국이 폭망하자 미국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현 시점에서 과연 어느 나라가 '미국'을 대체할 수 있을까? 미국처럼 '엄청난 소비'를 해대는 나라가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미국의 소비가 멈추면 '기후 위기'도 잊어버릴 정도로 지구 환경은 깨끗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올스톱을 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 공장은 가동을 멈출 것이고, 물류이동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럼 자연스레 소비도 위축되고 전세계 경제는 결국 멈추게 될 것이다. 그렇게 경제가 멈춰버린 지구 곳곳에서 '경제위기'도 같이 사라지면 좋을 텐데, 오히려 '국가 부도'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고,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점점 커져서 끝내 '전쟁 발발'로 이어지는 지옥문이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면 전세계는 '부채'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실물경제에서 어느 정도의 '부채(빚)'는 부담이 아니라 '경기호황'을 부르는 호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세계는 자국의 경제안정을 위해서 약간의 '물가상승'을 유도했고, 그로 인한 '소규모 인플레이션'을 경제성장의 지표로 내세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현재는 '그 부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늘어나서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심지어 '기축통화'인 달러를 보유한 미국경제마저 말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준비된 대안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바로'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 지금은 그런 노력을 보이는 것조차 훌륭한 대안처럼 보일 정도로 위급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이 생각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과연 이번에도 레이 달리오의 예언은 적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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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2 : 국내편 (무선 보급판) - 완결 퇴마록 (반타)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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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 국내편 2>  이우혁 / 반타 (2025)

[My Review MMLIII / 반타 3번째 리뷰] <퇴마록 소장판 전권 세트>를 구했다. 이미 20여년 전에 '들녘'출판사에서 출간한 초판본을 소장하고 있고, '들녁'판으로는 구하지 못했던 <퇴마록 외전 1, 2>는 '엘릭시르'에서 구해서 전체를 완독하고 리뷰까지 다 썼지만, '소장판'을 너무 갖고 싶었다. 그래서 구매 계획까지 세우고 거금 336,600원을 지르려던 차에 '소장판'을 별도로 구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그 책을 다시 읽고 있다. 그리고 '리뷰'도 다시 쓰려 한다. 될 수 있으면 빠른 속도로 쓰려 한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이왕지사 '초판본'까지 함께 읽으며 리뷰를 따로 쓸 예정이라 그리 속도는 내지 못할 듯 싶기는 하다. 그렇지만 가을이 오기 전까진 팍팍 진도를 뽑아볼 작정이다. 늘 그렇지만 '건강'이 발목을 붙잡지 않으면 말이다.

'소장판'은 디자인이 정말 화려하다. 아니 수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초판본(들녘)'은 검정 바탕에 하얀 띠로 포인트를 주었고, '개정판본(엘릭시르)'은 무채색에 가까운 '모노톤'이라 단조로웠는데, '소장판(반타)'은 검정 바탕에 '붉은 글씨'로 포인트를 주었고, 붉은 토양으로 '국내편'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그리고 줄거리는 이미 '개정판본'에서 많이 손을 보았기 때문에 크게 손을 댄 부분은 없었다. 허나 '초판본'의 거친 내용 전개보다는 좀더 부드러운 줄거리로 전개를 시켜서 차분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미 '개정판본(엘릭시르)'에서 볼 수 있던 개선사항이기 때문에 별도로 다른 점을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초판본(들녘)' 리뷰에서 좀 자세히 다뤄보려 한다.

소장판 국내편 2권에서 다루는 내용은 1권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생명의 나무'를 시작으로 '영을 부르는 아이들', '낙엽이 지는 날이면', '귀화(鬼火)', '아무도 없는 밤', '초치검의 비밀', '밤은 그들만의 시간', '쌀', '그네'로 총 9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4명의 퇴마사를 비롯해서 엄청난 수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초치검의 비밀'이 국내편 2권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분량면에서도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에 당연한 거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방대한 분량에 못지 않은 방대한 스케일은 한국을 넘어 일본의 고대사까지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때 등장한 '캐릭터'들은 상당수 '말세편'에서 다시 등장해서 세상의 종말을 막는데 큰 역할을 맡게 된다. 그렇기에 국내편이라고 소홀히 읽고 등장인물을 까먹어버리면 곤란하다.

지금 '소장판'을 구매하고서 <외전 3권>부터 읽은 분들도 꽤나 많을 텐데, 그분들도 어쩔 수 없이 '국내편'부터 다시 읽고 있을게 틀림없다. 왜냐면 <외전 3권>의 스토리가 '말세편' 마지막 장면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개정판본(엘릭시르)'을 읽은 분들조차 10년 전에 읽으셨기 때문에 전체 줄거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처음부터 읽고 계실 것이다. 그나마 내 경우엔 '작년'에 전체 줄거리를 다 훑어보았기 때문에 그나마 발빠르게 리뷰를 올리고 있는 셈이고 말이다. 조만간 <외전 3권>부터 리뷰를 올릴 계획이라서 현재 읽고 있으니 조만간 읽어보실 수 있을 것이다.

<퇴마록> 가운데 '국내편'이 차지하는 분량은 그리 크지 않지만, 국내편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바로 '퇴마사들의 존재 이유'가 소상히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겠다]는 퇴마사들이 목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토리 전개가 다소 투박한 것이 국내편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물론 '세계편' 이후부터 퇴마사들의 능력도 점점 뛰어나게 되어 큰 활약과 더불어서 화려한 스킬(?)을 선보여서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애초에 퇴마사들이 자신들이 지닌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또는 '명성'을 날리기 위해서 퇴마행을 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죽을 위기를 겪어가면서 구해낸 세상에서 '자신들이 한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하는 헛수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생명의 나무'에서 악신 브리트나를 물리친 일이나 '초치검의 비밀'에서 일본의 만행을 낱낱이 밝힐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밝혀내고도 세상에 이를 드러내지 않고 그대로 묻어버리고 만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세상의 평화 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도 퇴마사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아무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고 한다.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지켜낸 세상인데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멍청이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게 <퇴마록>을 읽는 독자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가 되었다. 비록 퇴마사들이 세상을 구한 일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퇴마록>을 읽은 독자분들에겐 가슴 깊이 아로 새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간된 지 30년 이 넘은 이 책이 지금까지 수많은 독자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1/5이 읽었다지 않은가. 이런 엄청난 팬들이 다시금 <퇴마록>을 붙잡았으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퇴마록'도 후속작을 빠르게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원작소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선보일 것이다. 이미 개봉한 첫 작품조차 원작과 이야기의 흐름이 굉장히 달랐다. 단순히 '스마트폰'의 있고 없고의 차이를 넘어선 '보다 확장된 세계관'을 선보여줄 것으로 예상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현승희'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힘을 보여주는 능동적인 캐릭터로 선보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보여진다. 왜냐면 애니메이션 첫 장면에서 '대악마 아스타로트'가 성당에서 박신부를 공격할 때 승희의 몸속에 감춰진 '애염명왕'이 힘을 발휘해서 박신부를 구해주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에서는 '애염명왕의 힘'은 철저히 봉인된 채로 나올 뿐, 승희의 몸 밖으로 그 힘이 발현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힘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서 '다음 편'에서부터 현승희만의 초능력을 선보여주는 당당한 캐릭터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승희의 아버지조차 '염동력'을 발휘하는 초능력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승희가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그리 많지 않았다. 유일한 독심술 능력마저 '세크메트의 눈'이 그 능력을 대신해서 능력의 힘이 반감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작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스마트폰'이 없었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스마트폰'까지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손쉽게 연락이 가능한 시점에서 '세크메트의 눈'뿐 아니라 현승희의 독심술 능력만으로는 제대로 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없기에 '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초능력 캐릭터로 활약할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장준후의 애늙은이 캐릭터도 많이 손을 볼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리 '청학동 출신'이라고 신분을 감춘다해도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한복만 입고 긴머리를 땋고 다니는 고리타분한(?) 캐릭터로만 보여주기에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재 신동으로 등장함과 동시에 '현대문명의 이기'도 빠르게 습득하고 잘 다루는 천진난만한 말썽꾸러기 캐릭터로 바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PC통신을 쓰던 시절보다 훨씬 더 강력한 SNS를 사용하는 시대인데, 언제까지나 '신비 컨셉'을 잡을 순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현암과 승희는 MZ세대로 대표되는 캐릭터일 것이 틀림 없으므로 지고지순한 짝사랑이 아닌 '연애는 OK, 결혼은 NO'라는 당당한 커플로 보여지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암은 무뚝뚝하고, 승희는 날라리 컨셉을 보여주는 것이 꽤나 심리묘사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처럼 시각적으로 스토리를 전개시킬 때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젊은 남녀 캐릭터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은 있지만, 그 감정을 '현실'로 실현시키기엔 좀 거북한 상황연출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딱 맞는 캐릭터가 바로 '월향'이다. 현암과 승희 사이에 '월향'이 삼각관계를 형성하거나 둘의 사랑을 훼방놓는 말괄량이(?) 캐릭터로 질투와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마치 '토르와 묠니르(망치)'의 관계처럼 말이다.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리뷰에서 쏟아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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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리와 함께 떠나는 부자 여행 5 : ETF가 뭐예요? 존리와 함께 떠나는 부자 여행 5
존 리 지음, 동방광석 그림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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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리와 함께 떠나는 부자 여행 5 : ETF가 뭐예요?>  존 리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23)

[My Review MMLII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5번째 리뷰] 투자는 '현재의 가치'를 담보로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수익이 항상 '플러스'로만 귀결된다는 보장은 없기에 불확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투자는 철저한 '준비'와 '대책'을 가지고 해야 실패했을 때 큰 충격을 막을 수 있고, 성공했을 때 더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모험'을 떠나는 기분으로 설렘만 가득 품고 위험천만한 도박처럼 뛰어든다면, 그건 올바른 투자가 아니라 명백한 투기에 빠진 것이 분명하니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운'에 맡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에서는 죽거나 실패하면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만, 인생은 전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투자는 늘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없으면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 남들이 투자한다고 따라서 하는 것은 절대 '올바른 투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도 말했다. 주식은 자신이 잘 아는 종목에만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잘 모르는 종목에 투자하는 건 행운을 바라고 뛰어든 도박판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책 <존리와 함께 떠나는 부자 여행>도 어느덧 마무리를 해야 하기에 초심을 되짚어보자는 취지에서 몇 자 적어 보았다. 나는 지금도 '주식'을 하지 않고 있다. 왜냐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올바른 투자를 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러나 '존 리'를 비롯해서 수많은 주식투자자들이 말하는 '주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공부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알면 알수록 더 머뭇거리게 된다. 이는 '투자자의 성향'이 투자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얼마나 많이 반영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안정형'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은행적금'이 가장 만족스럽다. 이자는 적더라도 '원금손실'이 전혀 없다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금리'보다 '물가상승'이 훨씬 더 많이 치솟고 있는 현재에 내 경제생활은 전적으로 '마이너스', 즉 '손해'를 보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통장에 적힌 잔고의 액면가는 점점 불어나고 있지만, 물가가 더 빠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에 '현금의 가치'는 더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 리는 '주식투자'를 해야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투자'는 리스크(위험성)를 감수해야만 한다.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그 말에 공감하고 투자를 하려고 해도 도대체 '어떤 종목'을 사두어야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기투자가 아닌 '장기투자'를 하면 손실보다 이익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하니 솔깃하긴 하지만, '장기투자'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있다보니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 셈이다. 내 경우에 '지인'의 소개로 [변액연금보험]에 가입했는데, 매달 일정액(25만원)을 불입하고 10년 만기가 되면 적어도 원금에 130%의 이자가 붙을 거라면서 '장기투자'를 해보라고 했는데, 결국엔 만기를 채우고도 130% 상승은 고사하고 80~90% 선에서 더는 정점을 찍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져서 결국엔 원금에서 300만 원을 손해본 시점에 그냥 해약해버리고 말았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시작할 즈음이었는데, 더는 '장밋빛 미래'를 점칠 수 없어서 손해를 감수하고 해약해버린 것이다. 우상향 그래프를 기대했으나 좀처럼 '우상향'을 찍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잠시나마 104%를 찍은 적도 있었지만, '경제위기'는 계속 휘몰아쳤고 더는 오른 적이 없기에 부득이 손해를 감수한 것이다.

물론, 존 리라면 좀 더 안정적이고 확실한 '투자 종목'을 선별했더라면 그런 손해를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 조언해줬겠지만, '내 눈'에는 그런 투자종목이 보이질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결국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지금은 '은행계좌'를 통한 수익을 엿보고 있다. ISA니, IRP니, 각종 연금과 예/적금을 적극 활용하며 수익을 창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바로 ETF다. 이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 '상장지수펀드'라고 불리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주식과 펀드의 장점만을 따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 종목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ETF는 개별 종목에 집중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분산투자'를 유도한다. 그래서 보통은 10종목 이상의 주식이나 펀드를 골고루 사모으게 되고, 심지어 그런 주식과 펀드마저 '여러 종목'으로 나누어서 '분산투자'를 한다는 것이 큰 특징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개별 종목의 등락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장점이 있고, 전체 주가지수의 흐름을 쫓기 때문에 '변동성'도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렇게 '안정적'인 방식이다보니 단기간에 큰 수익을 얻기는 힘든 투자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ETF는 1년 단위로 '배당금'을 지급하는 종목도 많기 때문에 '투자종목'을 잘 꾸려놓으면 매년 배당받는 '수익금'만으로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는 투자자들도 많이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미국 ETF 종목'에 효과적인 투자를 해서 '월 200만 원' 상당의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있으며, 현재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자기가 하고 싶던 '개인사업'을 조그맣게 꾸려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분들도 있단다. 그러나 내 귀에 솔깃한 내용은 '배당금'이었다. 연간 2400만 원 상당의 배당금을 받을 정도라면 초보 투자자의 경우 'ETF 상품'에 소액투자를 하면서 매달 25만 원 상당의 배당금만 챙길 수 있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부수입'으로 말이다.

물론, 현재 세계정세가 불안정하고 '러-우 전쟁'에다가 '이스라엘-이란 전쟁'까지 확전되려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배당금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가 망쳐놓고 있는 '미국경제'로 인해서 세계경제까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주식공부'는 놓칠 수 없다. 그리고 큰 수익을 얻는 주식투자자들은 한결같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적극적인 투자를 하곤 했지 않은가. 세계정세가 불안정한 지금에 딱 맞는 투자처를 찾아내는 것이 현명한 투자자일 것이다. 그렇다고 위험천만한 공격적 투자를 권장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설령 '공격적 투자 성향'이라 하더라도 철저한 주식공부의 결과로 이어진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투자하길 바란다. 그래야 실패했을 때에도 다시 일어설 힘이 있지 않겠는가. 불확실한 세계정세를 똑바로 읽어내고 올바른 투자를 실천에 옮겨서 성공에 이르는 지혜가 함께 하길 바란다. 나의 경제공부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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