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의 티키타카 경제왕 4 : 어린이 주식대회! 드디어 시작 - 어린이 금융 습관 기르기 프로젝트 호야의 티키타카 경제왕 4
주언규 기획, 박종호 그림, 달콤팩토리 글 / 아울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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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IX / 아울북 26번째 리뷰] 호야와 친구들이 유튜브로 '업사이클 의류 사업'을 시작하더니, 사업에 이어 '주식투자'에 도전하고, 결국 TV 출연에 확정되면서 '어린이 주식대회'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어린이가 '의류사업'을 시작하고, 유튜브 채널로 '사업홍보'도 하며, 사업과 홍보에 동시에 성공하니, 결국 TV프로그램에 출연까지 하게 되는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어쨌든 '어린이경제 학습만화'를 표방하고 있는데, 어린이들도 쉽게 이해하고, 배우고, 따라할 수 있는 컨셉이면 좋으련만, 쉽게 이해하고 배우는 것까지는 가능한데, 어린이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사업과 채널, 그리고 주식투자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투기'와 '투자'의 차이점을 소개하면서 기업의 재무재표까지 조사하고 분석해서 올바른 투자를 익히는 방법을 소개한 것은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린이들이 '각 기업의 정보'를 직접 조사하고 투자할 수 있는 귀띔이라도 좀 해주는 것도 없이 '어른들의 투자 정석'을 고대로 '베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나마 '어린이 주식대회'에서 호야가 보여준 '가치 투자'와 '장기 투자'의 방법을 소상히 소개한 것은 아주 적절했다고 본다. 어린이들만이 할 수 있는 투자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장기 투자'다. 요즘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어른들처럼 '주식창'을 온 종일 들여다보며 '투자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적절한 투자시기'에 주식을 매입하고 매수하는 일을 간단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어린이들도 얼마든지 '주식 투자'를 공부한다면 핸드폰 어플을 통해서 간단히 주식매입과 매수를 직접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문가적인 방식이 아닌, 평범한 어린이들이 '장기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투자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펀드 투자' 방식이나, '분산 투자(ETF, 상장지수펀드)'를 하며 워렌 버핏처럼 장기 투자를 통해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 주식투자의 가장 큰 매력은 5년, 10년, 20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럴 때 '수익성'이 높은 주식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수 있지만, 그렇게 '투자의 기본개념'도 얻지 못하고 단순히 '높은 수익률'만 따지는 투자 방식으론, 결국 '투기 방식'만 배울 뿐일게다. 이렇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성공'을 해서 엄청난 수익을 거머쥔들 그 돈을 결국 허투루 쓰고 말 것이다. 마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얻은 '공짜돈'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가치 투자'를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어린이들의 꿈을 반영해서 '자기 꿈'과 관련이 있는 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럼 '자기 꿈'을 키우는 즐거움과 함께 '꿈의 회사'도 함께 성장하고 번창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를 테면, 패션디자이너가 꿈인 어린이는 '패션의류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럼 자신이 투자한 '패션회사'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자산도 함께 늘어날 것이니 더욱 뜻 깊은 투자방식이 될 것이다. 더구나 어린이 투자이므로 기본적인 '장기 투자'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투자를 했기에 자기 꿈과 관련된 회사의 '주인의식'도 더불어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투자방식은 어린이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어린이들의 꿈도 투자회사의 성장과 함께 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호야와 친구들은 '응원주'라고 명칭을 붙였다. 이런 '가치 투자'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교육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계점'도 있다. 투자는 황소처럼 오를 때도 있지만 곰처럼 내릴 때도 있다는 점 말이다. 더구나 어린이가 투자한 회사가 10년도 안 되서 '폐업'이나 '상장폐지'가 될 경우엔 큰 손실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응원주 투자방식'은 꾸준한 점검과 관리가 함께 해야 한다. '장기 투자'랍시고 그냥 묻어두고 관심을 두지 않다가 막심한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융투자 공부'는 꾸준한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희일비'하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투자의 기본은 '오르막내리막'을 잘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잘 판단해야 한다. 투자에서 본 손실은 그 누구도 온전히 보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를 잘 하는 사람은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투자의 세계에선 어린이라고해서 예외는 없다. 꾸준하고 꼼꼼한 경제공부만이 유일한 성공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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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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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VIII / 이야기장수 1번째 리뷰] 대학생 시절에 나는 한 살 많은 누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남자니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어"라고 말이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 남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살리자는 취지의 운동이 '페미니즘의 본질'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넌 남자니까' 본질적으로 페미니스트는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하는 누나의 말투가 '네 뜻은 가상하다만'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남자인데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도 전혀 없이, "감히 남자 주제에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반장'을 지지했던 나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도 아니다. 지금도 논술쌤으로 활동하면서 '여성인권'을 향상시키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녀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거나 열성당원처럼 광적인 집회, 시위에 참여해 강성한 의사표시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지지를 보내고, 약간의 후원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의 이런 모습에 여성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뿐이고, 남성들은 '역차별' 받는 게 억울하지도 않냐면서 툴툴거린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를 차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남자'도, '여자'도 모두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차별'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대우 받을 권리가 당연히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고서는 '차별'을 정당화시킨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그런 차별을 하겠냐면서 나보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차별'을 당연하게 여긴다. 안 그럴 것 같다고?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여성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찌찌가 그대로 존재감을 뿜뿜하는 의상을 입고 있다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물어보라. 대한민국 사람들 가운데 십중팔구는 '여성의 찌찌노출은 안 된다'면서 공공장소에서는 모든 여성들은 '브래지어'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법안까지 만들어야 하며, 이를 어기는 여성에게는 '경범죄'를 적용해서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를 높이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보수적인 남성들의 목소리만은 아니다. 보수적인 여성들도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 그럼 진보적인 남성들은 '괜찮다'고 말할까? 아니다. 자기와 상관이 없는 여성이 찌찌를 노출한다면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다가 '자기 엄마'가, '자기 아내'가, '자기 애인'이, '자기 딸'이 찌찌를 드러내는 '노브라 의상'을 입으면 질색팔색을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진보적인 여성들은 '브래지어 착용'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며 그나마 논리적인 찬반의견을 내놓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브래지어'는 왜 꼭 착용해야만 하는가? 일일이 이유를 다 밝히기에 지면이 부족할 정도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노브라는 너무 야해서', '성범죄를 유발시키므로', '그냥 부끄러워서', 그리고 '그냥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라는 답변이 많았고, 그 다음으로 많은 이유는 '어릴 적부터 착용을 해서 안하면 오히려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런데 '브래지어 착용'에 논란이 되는 부분은 또 다른 이유다. 남자의 찌찌는 부끄럽지 않은데, 왜 유독 여성의 찌찌만 부끄러워해야 하느냐로 시끄럽기 때문이다. 남자는 찌찌가 돌출되는 의상을 입든, 그냥 벗고 노출하든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 편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남성이 찌찌 노출에 대해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남성들 가운데에도 '여성형 유방'을 갖고 있는 분들은 찌찌 노출 뿐만 아니라 상의 탈의조차 꺼리는 분들도 많다. 이들조차 '남자답지 못한 가슴'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여성스런 가슴'을 가졌기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왜 '가슴(찌찌)'에 대해 이런 차별이 생겼냔 말이다.

물론 부끄러워하는 것도 '개인의 성향'일 뿐이다. 그리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개인의 자유의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브래지어 착용'을 사회적으로 강요할 까닭이 전혀 없다. 그냥 '개인의 성향, 자유의지'에 맡겨두면 된다. 오히려 '여성의 찌찌'만 보면 거시기가 꼴려서 성적인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야만성'에 대해 사회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이런 논의를 공론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성의 몸'을 옭아매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인식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인식의 문제로 접근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남녀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여성의 몸'을 속박하는 방향, 즉 '브래지어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해결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심지어 '남성의 성욕'은 원래 인간의 본능이라면서 두둔하며 성범죄에 대해서도 '여성에게만 강제적인' 대처방안들을 내놓는 사회가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런 '페미니즘 논쟁'이 이 책 <가녀장의 시대>와 무슨 상관이냐고? 이슬아 작가의 경험담에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에서 '남의 찌찌에 상관 마'라는 소제목이 나와 있기에 화두를 던져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부장'이 아닌 '가녀장'이라고 표현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 집안에서 '가장'의 역할을 보통은 아빠가 담당하기 마련인데, 이슬아의 집에서는 '엄마'도 아니고, 딸인 이슬아가 '가장의 역할'을 도맡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상당부분이 '허구'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지만, 어쨌든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작가가 직접 겪은 경험에 비춰서 쓰였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슬아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기에 '팩트체크'도 할 겸 이 책에서 나오는 [낮잠출판사]도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찾을 순 없었다. 아마도 이슬아 가족이 직원으로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가 있긴 할텐데, 그게 '낮잠'은 아닐 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소설을 '그 잡채'로 즐기기 위해서 더 자세한 검색과 체크는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가족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마무리 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뭐가 중요한 것이냐? 이 소설에서 나오는 모든 상황이 그저 자연스럽게 읽히면 된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자가 사장이자 가장으로 등장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회가 되면 된다. 이런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면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근거이고, 이러면 아주 '중요한 것'이 된다. 아직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독자' 스스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문제'를 발견한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정작 '문제'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게 되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게 되는 것이 진정 문제이고, 이것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인식을 빨리 바로 잡지 못하면 크나큰 사회 갈등을 유발할 수 있으니, 이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녀장의 시대>를 아직도 '문제작'으로 인식하는 독자가 있다면 딴죽을 걸어주시길 바란다. 내가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조목조목 뜯어고쳐 주겠다. 대한민국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문제로 삼았던 <82년생 김지영>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 책도 그런 식의 비난을 하며 문제를 삼는 독자분들이 있다면..아니, 없을 것으로 믿는다.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대전제를 이해했다면 절대 그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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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통 만화 삼국지 2 - 간웅의 시대가 열리다
나관중 원작, 천웨이동.량샤오롱 글.그림 / WISDOM(위즈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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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VII / 위즈덤 2번째 리뷰] 동탁이 낙양을 불지르고 헌제를 볼모로 삼아 장안으로 천도하자, 각지의 군웅들은 허겁지겁 자신의 영지로 되돌아가 저들만의 세력을 규합하기에 급급해진다. 바야흐로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분명 한나라 황제가 건재한 상태지만 '임금이 임금답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니, 과거 '춘추전국시대'처럼 군웅들이 일어나 각축전을 벌이게 된 셈이다. 한편, 동탁은 중원땅에서 벗어나 서쪽에 치우친 장안땅에서 웅크리고 있으니 동쪽땅에선 여러 군웅들이 저들의 야심을 채우려 싸움을 벌인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원소 vs 공손찬'의 대결이다. 사실 이 대결의 승부는 원소가 싱겁게 승리하는 것으로 결말을 짓게 되지만, 주요 인물이 부각되는 장이기에 중요하게 다뤄지곤 한다. 바로 '상산 출신 조자룡의 등장'이다.

조운은 원소 휘하의 장수였지만 원소가 '출신성분'을 따지는 경향이 강한 터라 별다른 활약도 하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그러다 원소와 대결을 벌이는 공손찬 진영에 합류해서 대활약을 벌이지만, 공손찬 역시 동탁이 내리는 조칙을 받고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고 유비 진영에 합류하길 원했다. 허나 유비는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왜냐면 유비와 공손찬의 관계가 선후배 관계였기 때문에 '그의 사람'을 빼낸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비는 아직 이렇다 할 세력도 마련하지 못한 처지인데, 원소와 공손찬 휘하에 있다가 온 사람을 덜컥 받아버리면 훗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는 우려가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 조운 자룡의 인품 또한 확연히 알 수 없는 처지에 '유관장 삼형제'의 무리로 받아들이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아직 젊은 장수이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유비 처지에서는 '한 사람'이 아쉬울 때였으니 자신에게 달려온 젊은 장수를 내치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비는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믿음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사람이라면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훗날 '촉한'을 건설할 때에 조자룡의 역할이 막중했음은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한편, 원술도 세력확장을 위해 화려한 비상을 준비중이었다. 먼저 원소와 유표에게 말과 곡식을 지원요청했다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손견에게 밀서를 보낸다. 손견이 유표를 공격하면 자신이 원소를 쳐서 원수를 갚자는 내용이었다. 손견은 옥새를 뺏으려 했던 원소와 유표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에 응답을 하고서 형주로 원정을 떠난다. 그럼 원술은? 원소와 형아우 하던 사이 아니었던가? 사실 둘 사이는 '사촌지간'이었다. 그러니 한 가족과 같은 친밀함 따위는 없었다고 한다. 왜냐면 '원소의 그릇'이 작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자만 보면 사고를 치는 조조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은 '혈연과 부하 들'을 보는 것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게 원술은 원소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언제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허나 손견에겐 이 원정이 '황천길'이었다. 그렇게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영웅 하나가 스러져 갔다.

자, 이제 동쪽의 분란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고, 다시 장안을 둘러볼 때다. 사도 왕윤의 '연환계'가 동탁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수양딸처럼 기르던 기생 '초선'을 희생시켜서 폭정을 일삼는 동탁을 일거에 처단하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스토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과감히 생략하겠다. 일단 초선을 여포에게 시집 보내겠다는 약조를 한 뒤에 동탁에게 바친 뒤에, '초선의 미모'를 이용하여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서게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포는 동탁의 목을 베고 왕윤은 잠시나마 헌제를 중심으로 하는 '정상적인 국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럼 동탁의 죽음으로 '한 황실의 부흥'은 이루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왕윤의 착각이었다. 문제는 동탁만이 아니었는데, 왕윤은 역적의 우두머리만 처단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정상화될 것이라 순진하게 믿었던 모양이다.

사실 동탁의 폭정은 왕조시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십상시의 난'도 그렇고 '하진의 집권'도 동탁의 폭정 못지 않게 한 황실의 혼란을 부추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에도 사도 왕윤은 건재했고,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왜 동탁이 집권을 하니 문제라 여겼던 것일까? 사도 왕윤에게는 동탁이 '외부세력'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환관들이나 하진 등은 '내부세력'이었기에 자신들이 잘 알고 심지어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던 세력의 집권이었는데, 동탁은 왕윤, 자신들의 세력을 인정하지도 않고 도저히 컨트롤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자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하지만 왕윤은 '동탁'이라는 커다란 짐만 보고 동탁의 수하들이 장악하고 있던 '시스템'까지는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낙양'이 아니라 '장안'이지 않았던가. 동탁이란 폭정의 수괴가 사라지자 '이각과 곽사'라는 이두(두 명의 수괴)정치가 불거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왕윤은 수괴는 처단했으나 '시스템'까지 제대로 되돌리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헌제는 동탁을 대신해서 '이각과 곽사'의 볼모가 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한편, 초선이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왕윤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을 잘 했다고만 나와 있고, 이 과정에서 여포가 동탁의 시중을 드는 여인과 정을 통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여인을 <삼국지연의>에서는 '초선'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그것도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한 명으로 말이다. 서시, 왕소군, 초선, 그리고 양귀비가 그 미녀들이다. 하나같이 '경국지색'을 가지고 있다는데, 왜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나라가 망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것일까? 그나마 초선은 망할 나라(동탁의 폭정)를 망하게 한 긍정적인 면이 있기라도 하지만, 여인의 아름다움이 '남자'를 홀려서 큰 일을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표현이 너무도 많은 '중국문학'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지만, 고전작품에서 '시대적 한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어디 <삼국지>뿐이겠는가. 부족한 점이 있으면 '고쳐 읽는 능력'을 키우면 될 일이라고 생각을 고쳐 하기로 했다.

동탁이 죽고 한 황실은 '이각과 곽사의 체제' 아래 놓이게 되자, 반 동탁을 외치던 군웅들은 이제 호시탐탐 '헌제'를 노리게(?) 되었다. 헌제를 볼모로 잡으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원소 진영'이었다. 원소 휘하에 곽가, 순욱 등 훗날 조조의 세력하에서 크게 활약을 했던 모사들이 발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허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원소의 그릇'은 너무 작았다. 그는 한복과 공손찬의 세력을 차지하고서 한껏 만족하고 있었기에 '헌제'를 잡아야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는 책략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조조가 '세력확립'을 하지 못하고 서주의 도겸을 공격하고, 여포에게 뒤통수를 맞아 연주땅을 빼앗기고, 그 틈을 노려 유비는 서주를 취하는 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기에 바빴던 터라 원소에게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조조는 여포를 복양땅으로 밀어내고, 유비와 원술 등으로 여포를 견제하게 만든 뒤에 '이각과 곽사'의 품에서 벗어난 헌제를 '허도'로 모시는 쾌거를 거둔다. 이로써 '조조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한편, 유비는 겨우 서주땅에서 거점을 만들고, 여포와 원술의 틈바구니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문제는 '조조'였다. 유비의 세력은 아직 안정을 이루지 못했는데, 불안정한 여포와 불안한 '동거'를 하면서 조조의 세력을 견제하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심 많은 원술도 호시탐탐 서주의 풍족한 곡창지대를 노리고 있었기에 유비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판국에 조조가 헌제의 명령을 빌미삼아 원술을 공격하라하니 유비는 조조의 뻔한 수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천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한 황실의 충신 코스프레를 충실히 해낸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여포에게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는 소패로 이사(?)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왜냐면 조조도 완성에 도사리고 있는 '장수 세력' 때문에 뒤통수가 근질근질 했기에 유비를 직접 손보지 않고 여포와 원술을 통해서 자중지란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이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조조는 사방으로 적들이 즐비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슬기롭게 그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내고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조조 휘하'에 맹장과 모사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쟁명'을 부르짖는 사상가들이 등장한 것처럼 후한말은 혼란의 시기였고, 이런 난세에 영웅의 등장은 필연이었는데, 그런 영웅들이 가장 선호한 '군웅'이 바로 조조였던 것이다. 그럼 왜 조조에게 몰려 들었을까?

사실 조조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세력은 '원소'였을 것이다. 허나 원소는 신분이 높고 확실한 인재만을 골라 받는 '엘리트주의자'였다. 그런데 난세에 엘리트들은 야심가는 있을지언정 실력자는 드물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조'는 달랐다.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실력'이 있으면 누구라도 환영했다. 심지어 다른 군웅일지라도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후하게 대접할 정도로 통이 컸다. 장수 세력의 책사였던 '가후'는 조조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무서운 계략을 짰던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후의 실력을 인정했기에 자신에게 항복한 뒤로는 크게 중요하여 큰 업적을 남기는데 유용하게 써먹었다. 여포의 휘하 장수였던 '장료'는 어떤가? 비록 적장이었지만 '실력'대로 인정하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업무환경(?)을 만들어주는 조조에게 귀의하여 죽는날까지 충성을 바치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처럼 어지러운 시대에는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지도자가 인기가 많은 법이다.

그에 반해 유비는 어떤가? 그가 쌓은 명분은 '도덕'이었다. 한 황실의 종친이라는 '당위성'을 갖췄지만, 그의 세력은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관우와 장비 같은 걸출한 인재가 있고, '도덕적 명분'에 있어 타의추종의 불허할 정도로 명성과 인망을 두루 갖췄지만, 정작 '책사'는 변변치 못했다. 서서와 제갈량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록 '간옹', '손건', 그리고 '미축' 같은 책사들이 곁에 있긴 했지만, 조조 곁에 있는 곽가, 순욱, 순유, 정욱 등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다 못해 여포에게도 '진궁'이라는 책사가 있었을 정도인데, 왜 유비 세력에는 유독 책사가 꼬이지 않았던 것일까? 그건 유비가 내비친 캐치프레이즈가 별볼일 없는 것이라는 평가였다고 짐작된다. 유비는 겸손을 떠는 것인지 좀처럼 '자기 세력'을 굳건히 지키는데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관우와 장비, 간옹, 손건, 미축 등은 유비를 따라서 이곳저곳을 떠돌이처럼 유랑해야만 했다. 한때 서주성에 머물 때 뛰어난 모사꾼이었던 '진규, 진등 부자'가 유비를 도와주기도 했지만, 이들조차 유비가 서주를 떠나면서 빠빠이하고 조조의 품으로 가버렸다. 이런 떠돌이 유랑집단에 합류하고 싶은 책사는 없을 것이다. 전장을 누비는 장수들이야 '방랑 생활'이 별일 아닐 수 있지만, 모략을 짜내는 책사들에겐 '평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터전'이 없는 것은 그야말로 생고생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여포 곁에 있던 '진궁'이 바로 그런 경우 아니던가. 그나마 진궁은 역적 조조를 처단하기 위한 일념으로 그런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그랬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고 말이다.

한편, 손견의 죽음으로 인한 '강동의 세력'은 어떤 상황이었나? 손견이 불귀의 객이 되자 손견 진영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충신들이 손견의 아들 '손책'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과거의 세를 자랑할 수는 없을 정도로 세력이 쪼그라들었다. 이는 손책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책은 부득이하게도 아버지의 원수인 '원술의 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전국옥새'를 담보로 군사 3천과 말 5백을 빌어 정보, 황개, 한당 등과 함께 강동을 평정하러 떠난다. 그리고 의형제를 맺었던 주유와 합류하여 장소, 장굉 등의 인재도 함께 등용한다. 그리고 유요와 엄백호, 그리고 왕랑을 물리치고 '강동땅'을 평정하게 된다. 이로써 손책은 '소패왕'이라 불리며 아버지가 못다한 위업을 이루게 된다.

그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도리어 원술쪽이었다. 이에 원술은 손책이 더 크기 전에 견제를 하려 했으나, 원술의 뒤를 노리고 있는 조조, 여포, 유비가 눈엣가시다. 이에 원술은 여포와 유비를 이간질 시키려 기령을 보내지만 도리어 여포 옆에 있는 진궁의 꾀에 놀아나 10만 군사를 되돌릴 수밖에 없게 되고, 여기에 굴하지 않고 원술은 여포의 딸과 혼담을 나누며 유비를 공략하니 유비는 여포의 공격에 패주하여 '조조의 품'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조조는 유비와 손을 잡고 여포를 궁지로 내몰아 끝내 여포의 숨통을 끊어버리게 된다.

여기까지 정리를 하자면, 조조는 '헌제'를 붙잡아 천하를 호령하려 들었고, 이를 못마땅해하는 원소는 조조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저멀리 강동에선 손책이 대세를 잡고 '소패왕'으로 명성을 쌓게 된다. 불쌍한 유비는 아직도 마땅한 세력을 규합하지 못하고, 여포와 원술의 등쌀에 견디다 못해 자존심도 버리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는 처지가 된다. 그 와중에 조조는 '장수'를 처단하여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 하나를 제거해버리고, 또 하나의 걸림돌이었던 여포까지 처단하게 된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도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는 세력은 '형주의 유표'였다. 유표는 젊은 시절을 그렇게 평온하게 보내다 나이가 들자 건강상의 문제로 자신에게 찾아오는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여포와 유비, 그리고 원술까지 대충 정리한 조조는 '하북지역의 패권자, 원소'와 한판 대결을 준비한다. 그 유명한 '관도대전'이다. 3권에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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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웨이동 만화 삼국지 1 (흑백 한정판) - 천하를 꿈꾸는 영웅들 천웨이동 만화 삼국지 (흑백 한정판)
천웨이동 글, 량샤오롱 그림 / WISDOM(위즈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My Review MCMVI / 위즈덤 1번째 리뷰] 천웨이동(陳維東) 만화가는 1969년생 중국 출생이다. 중국 4대 고전을 '만화'로 그려내었다고 한다. 중국 4대 고전은 <삼국지연의>(나관중), <수호지>(시내암), <서유기>(오승은), 그리고 <금병매>(난릉소소생)이다. 무려 6년 간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의 방대한 작업량이라고 하는데, 그건 그거고. 어쨌든 '중국판 삼국지'를 리뷰할 필요성을 느껴 천웨이동의 <삼국지>를 선택했다. '만화'라서 진면목은 파악하기 어려울 듯도 싶지만, 오히려 '만화'이기에 중국사람들이 묘사하는 '삼국지'에 대한 느낌(이미지)은 더 생생할 것이라 판단했다. 서론이 길어지는 것은 '길고 긴 줄거리'에 대한 예의가 아닐테니 이쯤하고, 최대한 느낌적인 느낌만을 리뷰에 담아 보려 한다.

중국인들은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 않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서문에 그 답이 적혀 있다. 아마 <수호지>의 저항정신과 <삼국지>의 모략(지혜)을 두려워한 지배계층의 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중국의 명청 왕조와 중국 공산당의 눈치를 봐야했던 '지식인들의 반어법'에서 비롯된 해석인듯 싶은데,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더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삼국지>는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연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삼국지>의 시간적 배경은 후한 말기의 황제 '영제'의 치세부터 시작한다. 그야말로 혼란의 시대였다. 조정은 무너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황제는 환관 '십상시'에 둘러싸여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백성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도적의 무리에 합류하니 '황건적의 난'이 바로 그것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궁여지책으로 도적이 되었는데도 황제는 이를 해결할 의지도 없어, 세상은 날로 피폐해져만 갔다. 이런 난세에는 영웅이 태어난다고 하던가? 유비 현덕, 관우 운장, 장비 익덕이 등장해서 황건적을 물리쳐 백성을 구하고, 십상시를 처단해 황실을 구하려 세 사내가 의형제를 맺으니, 바로 '도원결의'다. '중국판 <삼국지>'는 이렇게 시작하는가 보다.

사실 '정사'에는 도원결의의 내용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뒤이어 벌어진 '반동탁연합'에서 적장 화웅의 목을 베고, 여포와의 대결에서 큰 활약을 벌인 '유관장 삼형제'의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로 화두를 여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이는 사실 '한중일 삼국지' 전부 이러한 서사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기에 유별난 점은 아니다. 그런데 '정사'에는 실리지도 않은 이 에피소드를 소설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은 왜 유달리 부각시킨 것일까? 그 까닭은 역사의 승자인 '위나라의 조조'가 아닌 역사에서 패배한 '촉나라의 유비'에서 더 큰 명분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천하통일의 위업에 있어 첫째 조건은 '힘(실력)'이 아니라 '도덕(의리)'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힘이 쎈 사람'이 모든 것을 독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백성의 처지에서는 '강자의 독식'이 그닥 달갑지만은 않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등장한 '강자'는 백성을 도와주기보다는 더욱더 억업하고 수탈하기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던 시절(1522년)도 '명나라 가정제' 때였다. 바야흐로 명나라가 안팎으로 내우외환을 받으며 국운이 쇠락해가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가정제 때 명나라는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고, 왜구와 몽골의 끝없는 침략으로 온나라가 혼란했던 시절이다. 마치 후한말의 사회상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 시절의 나관중은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가치를 내세웠을까? 바로 '도덕'이 바로 선 나라였을 것이다. 지배계층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피지배계층은 그 덕을 바탕으로 서로 화목하게 살아나가는 태평천하를 꿈꿨을 것이다. 그렇기에 '힘'을 내세운 조조가 아닌 '덕'을 추구한 유비를 정통으로 삼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려 했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어, 의병을 일으킨 삼형제는 황건적을 쳐부수며 '동탁과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삼형제는 황건적에게 쫓겨 패주하는 동탁을 위기에서 구하고 크게 승리하는데 빛나는 공을 세우지만, 목숨을 빚진 동탁은 삼형제를 '관직'도 없는 잡군 취급을 하며 돈 몇 푼 쥐어주는 것으로 승전의 공로를 갈취하려 든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장비가 동탁의 예의 없음을 탓하며 단칼에 처단하려 들지만 유비가 이를 말리며, 도리어 동탁의 군대에 의해 쫓겨나는 푸대접을 받는다. 이런 장면만을 '빠르게' 보여주는 '천웨이동의 의도'는 무엇일까? 바로 유비에게 혼탁한 세상을 구할 '명분'이 명백하게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삼국지>를 즐겨 읽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대의명분'이 합당하다는 것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명분에 '삼형제의 실력'도 만만찮음을 은근히 내비친다. 비록 '의병'에 불과한 초라한 힘이지만 '삼형제'가 애초에 갖고 있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뛰어든 전장마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뒤이어 벌어지는 '반동탁연합군'에서 보여준 '삼형제의 활약'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군을 이끌고 참전한 원소와 조조, 손견 등등을 다 제치고 '화웅의 목'을 베고, '여포와의 맞대결'을 펼친 것은 그들 연합군의 실력보다 '삼형제'의 실력이 훨씬 뛰어났음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반동탁연합군'에 참여한 18개의 제후(영웅)들은 대의명분에서조차 '삼형제'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독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도덕'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유관장 삼형제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나관중의 의도는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반면, 서량 출신 '동탁'은 어떤 인물인가? 그도 어지러운 세상을 발판으로 삼아 제대로 실력발휘를 한 영웅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나 그는 정의로운 영웅은 아니다. '십상시의 난'과 '황건적의 난'을 일거에 평정하는 실력을 갖췄으나 '하진의 실각'으로 인한 황실의 혼란을 틈타 어린 '소제(유변)'와 '진류왕(유협, 훗날 '헌제')'을 인질(?)로 삼아 낙양에 입성한 뒤에 '헌제'를 옹립하고 스스로 상국의 자리를 차지하여 국정을 제맘대로 쥐락펴락 하는 못된 짓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제 이익만을 탐하는 악당을 자처한 셈이다. 이런 동탁의 횡포에 '충의'의 깃발을 들고 일어선 영웅들이 있었으니 바로 '반동탁연합군'인 18로군이다. 각지의 18명의 영웅들이 저마다의 힘을 짜모아 '악당'을 쳐부수러 등장했으니, 분명 '정의의 영웅'이어야만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왜일까?

그건 '반동탁'이란 공통의 기치를 높이 세우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악당 처치'가 주목적이 아니라 혼란한 정국을 틈타서 '자기 세력'을 늘려보려는 야심만 가득찼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올바른 뜻'을 보여준 것은 오직 '공손찬의 객장'으로 참전한 '유관장 삼형제' 뿐이다. 선봉에 나섰던 손견은 군량미 운송을 담당했던 원술의 고약한 심보로 죽다 살아나는 위험을 겪어야 했고, 선봉에 실패한 연합군은 화웅과 여포에게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무력함을 보여주었으며, 화웅이 죽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동탁의 만행 앞에서도 의기투합하지 못하고 총대장의 실력발휘조차 하지 못하는 원소의 무능함과 그의 무능함에 기대어 호시탐탐 '이득'을 챙길 궁리만 하고 있는 18로군에 참여한 영웅들은 그저 '소인배'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동탁의 뒤를 쫓아 추격전을 벌인 '조조'가 진정한 영웅이었을까? 그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한마리 짐승에 불과했다. 어릴 적 친구였던 '원소'는 18로군의 총대장에 올라 대군을 지휘하는 실력이라도 발휘했지만,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겨우 몸만 빠져 나와 '반동탁연합군'을 편지 한 장으로 끌어모은 실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정작 전장에서의 실력발휘는 하지 못해 그에 걸맞는 '명성'을 쌓지 못해 서둘러 공을 세우려는 '공명심'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는 참혹한 패전이었다. 훗날 조조의 성공(?)에 비추어서 악당 역을 맡은 동탁군을 홀로 처단하려했다는 '정의감'을 보여주는 척 했지만, 조조의 추격은 무모할 뿐이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모한 용기는 안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텐데 말이다.

하여튼,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를 한 뒤에야 불타버린 낙양에 입성한 '연합군'은 뒤늦게 자신들이 늦었음을 한탄하지만, 애초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할 의지도 없었고, 악당인 동탁은 너무 쎘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힘'을 과시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목적은 다 이룬 셈이다. 애초에 이들이 '정의로움'이 없었다는 것은 낙양 입성 뒤에 벌인 행태에서 잘 알 수 있다. 손견은 우연히 '전국옥새'를 차지하자 그날로 고향땅 강동으로 내빼고, 그 사실을 알아챈 원술과 원소 형제는 '옥새'를 빼앗기 위해 손견을 공격하고, 그로 인해 손견은 연합군에서 빠져 퇴각하지만, 원소의 편지를 받은 형주의 유표에게 공격을 받고서 끝내 요절하게 된다. 나머지 제후들도 '반동탁'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의 연고지로 되돌아 가지만, 금방 본색을 드러내고 저들끼리 싸우며 '세력 확장'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 가운데 백미는 바로 곡창지대인 '기주' 지역을 두고서 원소와 공손찬이 잠시 연합했다 서로 치고 받으며 싸우는 대목이다. 이 전투는 2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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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인원 - 끝없는 진화를 향한 인간의 욕심, 그 종착지는 소멸이다
니컬러스 머니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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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V / 한빛비즈 164번째 리뷰] 제목이 너무 섬뜩한가? 이 책이 2019년에 쓰여졌을 때 책 내용에 대해서 '냉소적'이었던 사람들은 불과 5년만에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준 자연재앙을 마주하고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2025년 1월인 '지금', 미국 'LA 카운티'에 번진 산불은 헐리웃 유명배우들의 값비싼 저택마저 홀랑 불태우고 피해액만 통계 합산 '1경 원'이 넘는다고 한다. 19년 당시만해도 '기후변화'로 불리던 것이 25년에는 '기후위기'로 불리고 있는 것만 봐도 <이기적 유인원>의 지적이 날카롭지 않았는가 말이다.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고도 '자신들 탓'이 아닌 '남탓'만 하려드는 인간을 '이기적'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자, 다시 <이기적 유인원>을 읽어야 할 때다. 물론 지구온난화는 이미 기정사실이 된 지금,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생태계 파괴는 점점 가속화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 뻔하지만,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지구 생물체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쓰러울 뿐이다. 그런데 어찌하겠느냔 말이다. 지금 현 세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이 분류해놓은 '멸종위기동물' 목록 가운데 '적색목록'에 인간이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정확히 표현하자면 '호모 사피엔스'가 목록에 오른 것이지만 말이다. 그럼 왜 현생인류로 불리는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위기종에 오르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먼저, 인류의 기대수명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부터 언급해야겠다. 한마디로 잘 죽지 않고 오래 살아가는 것이 '현생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이 지구를 더 빨리 '황폐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목한다. 왜일까? 그건 인간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너무 많아지니 그 많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을 새롭게 개발해야 하고,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더 넓은 지역을 새로 개발해야 하며, 그렇게 넓은 지역을 '인간의 몫'으로 만들고자 수많은 생태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파괴된 생태환경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왜냐면 '생태계'도 함께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먹이그물'은 꽤나 복잡해서 인간이 개입하면 '먹이사슬의 고리'가 끊어지게 되고, 그렇게 끊어진 고리가 연쇄적으로 파괴되며 '환경변화'에 취약한 개체부터 절멸하게 되면서 전체적인 생태계에도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부로 훼손된 생태계는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데 그 긴 회복의 시간을 인간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사이에 인구는 더 늘어났을 것이며,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챙기기 위해 '개발'이란 미명 아래 지구환경파괴는 끝없이 계속 된다.

그런데 지구환경파괴는 단지 '자연경관'만 망가지는 것에 그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지구온난화'가 바로 그 증거다. 한 번 파괴된 지구환경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기후변화'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 변화를 견딜만 한가보다. 이미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기온이 '1.5도'가 넘어가면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었는데, 이미 '2도'가 훨씬 넘은 상태다. 이제 '지구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다는 얘기다. 지금이라도 '탄소배출 제로'를 시도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최대한 늦출 수는 있을지언정 지구온난화로 인한 '연쇄적 재앙'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정치가들은 과학 전문가들의 경고를 애써 무시하며 '지구온난화'는 괴담이나 가짜뉴스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다. 25년 1월,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 LA는 산불을 진압할 수 없어서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찌어찌 산불을 진압하고 나서는 '자연의 재앙 앞에서 또다시 인간이 승리한 쾌거'라며 어떤 어려움도 인간은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널리 퍼뜨리려 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자연재해, 아니 자연이 주는 재앙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고, 더 빈번해질 것이다. 그렇게 전지구가 불타오르고 드디어 인류가 절멸에 이르고 난 뒤에도 과연 '인간의 승리'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보자고, 저자는 말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인간은 언젠가는 절멸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0세기만 해도 태양의 수명이 다하고 '적색거성'이 되는 10억 년 뒤에 절멸하게 될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이런 과학자들의 전망은 '핵폭탄'을 만들어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과학적 쾌거를 달성하자 10억 년 뒤가 아니라 '지금, 바로 2분 뒤에'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이른바 '종말시계'말이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인류는 그야말로 끝장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핵전쟁은 '아닌 것' 같다며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자 전세계는 너나할 것 없이 전부 '개발 붐'이 일어나게 된다. 특히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던 아시아, 아프리카 후발 주자들이 경제개발을 앞세워 자연환경파괴를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이는 이미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이 먼저 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 '지구온난화'라는 화두를 꺼내며 경제개발에 나선 나라들에 자연환경을 더 이상 훼손하면 안 된다는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했다. 선진국인 자신들은 '지구환경 파괴'를 하지 않고도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놨으니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는 조치였지만, 이제 막 개발에 눈을 뜬 나라 처지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기초 과학도 없고, 경제를 발전시킬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자연환경'을 훼손하며 거칠고 투박한 방식의 개발을 하겠다는데 막느냐며, '기술 이전'을 공짜로 해주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갈 길을 막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선진국들도 '먹고 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누굴 도와주겠느냔 말이다. 그렇게 전세계는 '자연파괴'를 하며 서로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려 더욱더 '지구환경파괴'를 자행했다. 이른바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말이다.

그렇게 만든 '인류 문명'은 참으로 찬란했다. 세계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며 잘 사는 듯 싶었다. 그런데 '경제위기'는 종종 발생했고, '기후변화'는 뽀나스였다. 거기다 '팬데믹'까지 겪게 되니 인간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다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어리석음은 바로 '지구환경파괴', 더 정확히 말하면 '회복불가능한 파괴'를 계속 일삼고 있더란 말이다. 단순히 산림을 파괴하고, 지형을 바꾸는 파괴 뿐만 아니라 '생태계 복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생물종 절멸'까지 서슴지 않더란...아니, 그 심각성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다양한 생물의 생태계 유지'는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단 한 종의 멸종이라도 전체 생태계 복원에는 아주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왜냐면 '하나의 종'은 수많은 생물종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먹고 먹히는 먹이그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지금까지 수많은 생물종을 절멸에 이르게 했다. 도도새, 여행비둘기, 버팔로, 늑대, 고래 등등 수많은 동물들은 '그림'이나 '옛이야기'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절멸을 시켜도 무슨 문제가 일어나는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기적 유인원> 같은 책들이 '경고'를 던지고 있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인간도 결국엔 절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생태계가 망가지면 결국 인간도 '사라질 동물 목록'에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이 그 목록에 '절멸'했다고 등록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인간종'은 절멸했다고 기록할 새로운 지적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구에 70억이 넘는 인구가 살았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지구에서 인간이 멸종하고 나면 지구는 끝장이 날까?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에 '여섯번째 대멸종'과 같은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긴 하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구는 다시 생물이 번성하는 활기찬 모습을 다시 회복할 것이다. 과거 캄브리아기, 페름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의 초기 모습이 그랬다. 엄청난 대재앙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구에는 '새로운 종'이 출현해서 미치도록 아름답게 번성했더랬다. 그런데 신생대 '홍적세' 이후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가 출현한 지 10만 년 뒤에 인류는 '이토록 빠르게 스스로 절멸하는 유일한 종'으로 기록에 남게 될 것이다. 길고 긴 지구의 역사 46억 년을 '1년 동안의 시간'으로 나타내면 '인류의 출현'은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8초쯤 된다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다. 그런데 그 인류는 고작 2초 뒤에 '스스로 절멸'을 해버리는 초고속 대멸종 시나리오를 장식하게 된다. 너무 멋지다고 표현해야 할까? 모르긴 몰라도 지구로서는 '나이스'한 일일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이렇게 인류는 초고속으로 스스로 절멸을 할 불쌍한 운명을 타고 난 것인가? 이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없다고 한다. 단지, 지금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절멸의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방법'만이 남았다고 한다. 그 예정된 시간이 불과 100년도 남지 않았다면 최대한 늦출 방법에 적극 참여할 생각이 있는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가 가능하다면 그 예정된 시간은 200년으로, 300년으로, 늘어날 수도 있고, 대재앙으로 인해 받는 피해를 조금 더 줄일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몇몇 사람들은 '예정된 절멸'을 대비해서 저 혼자만 살겠다는 꿍꿍이를 벌이며 흥청망청 놀고 자빠지는 사람 아닌 것들도 있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첨단과학도 대자연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데 도망가봐야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는가? 설령 '지구밖으로' 우주선을 타고 도망가려는 꿈도 꾸겠지만, 글쎄..지구밖에서의 생활이 호락호락 할 것 같지는 않다. 하나 뿐인 지구도 '초고속'으로 파괴하는 인간들이 지구밖에 만든 '인공구조물'을 파괴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테니 말이다. 그때에도 돈으로 해결하려 들 것인가? 정말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이기적인 생각'을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당신의 유전자속에 담긴 '이기적 유인원' DNA를 컨트롤하지 않는다면 예정된 절멸의 순간은 더 빨리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적어도 당신은 아니겠지만, 당신의 '자식'가 맞이할 가능성은 50% 이상이며, 당신의 '손자'가 맞이할 가능성은 99%가 넘는다. 이 사실만 꼭 알아주길 <이기적 유인원>의 저자는 간절히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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