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돈 버는 비즈니스 글쓰기의 힘 - 한 줄 쓰기부터 챗GPT로 소설까지
남궁용훈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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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시작한 블로그이긴 하지만 글쓰기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만만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난 뒤의 서평을 적어 기록으로 남겨놓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쉽게 손을 놓기도 어렵다.

책을 읽고 난 뒤의 추상적이고 막연한 감상만을 잠시 스치듯 느끼는 것과 그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 둘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힘든 작업이지만 이를 통해 사고를 하게 되고 생각을 정리하게 되면서 독서의 가치를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취미를 넘어선 그다음 단계를 꿈꾸게 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저런 핑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인 취미가 부업, 아니 더 나아가 전업이 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고 바람직한 직업이 어디 있으랴?!



2013년 골드만삭스에 켄쇼라는 인공지능이 입사했습니다. 켄쇼는 입사 후 3시간 20분 만에 600명의 트레이더가 한 달 동안 처리할 일을 끝냅니다. 그 결과, 598명이 퇴직했고 2명만이 켄쇼를 돕기 위해 남았습니다... '지금의 성인은 언제든지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 인건비가 대체비용보다 비싸지면 당장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배운 기술은 취업하기도 전에 사라질 수 있다. 취업했더라도 회사의 짧은 수명으로 바로 다음 직장을 준비해야 한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생존을 위해 언제나 배우고 익히고 준비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아직까지 우리 인간의 편의성에 도움을 준다는 느낌이 크긴 하지만, 종종 매장의 늘어난 키오스크를 보면 일자리의 변화가 조금씩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산업 혁명 이후로 수많은 직업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지만 최근의 4차 산업혁명만큼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고들 한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는 차치하고서라도 누구에게는 자신의 직장을 잃을 버릴 수도 있는 절박한 현실로 닥칠 수도 있다.

인공 지능의 경쟁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 고유의 장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얘기들이 많이들 나오고 있지만, 상호 융합적인 사고와 창의력이 그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능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적절한 것이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를 하는 것만으로 여러분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세속적인 부를 주지 않더라도, 인생에 그 이상의 기쁨과 충만함을 줍니다. 마지막은 고미숙 작가이자 고전 평론가의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인간이 손으로 창조한 것 중에 제일 멋진 일은 글쓰기다.'

학창 시절 방학 때 가장 힘들었던 숙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일기 쓰기였다.

매일매일 하지 않고 개학하기 직전이 되어서 한꺼번에 하려고 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글쓰기는 어린 나이에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의 필요성보다는 남이 시킨 글쓰기를 지금까지 해왔다.

학창 시절의 일기와 작문, 논술 숙제가 그랬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보고서 작성이 그랬다.

이런 수동적인 방식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있겠지만 자기 스스로 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으리라.

개인적인 일기가 되었든 직업으로써의 글쓰기가 되었든 글쓰기가 인간이 손으로 창조한 것 중에 제일 멋진 일이라는 것에



남들과 같은 시각으로 글을 쓰고 논리를 펴가며 비유한다면 아무런 감흥도 없고 깊이도 없습니다. 그냥 봐도 뻔한 글을 누가 읽겠습니까?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은 비판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판하는 중에 생각의 파편이 생기면서 많은 질문이 생깁니다. 이 질문들은 또 다른 생각 씨앗을 낳습니다. 비판 또한 생각의 원천 중 하나입니다... 비판의 정의에 논리적 기초를 밝힌다는 말을 가장 눈여겨봐야 합니다. 비판은 상대 주장에 논리적으로 지적합니다. 논리적이지 않으면 내 주장은 단순히 비난, 남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 됩니다. "논리적이다." 이 문장이 핵심입니다. 논리성이 들어가야 비판이 됩니다.

글을 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세 중의 하나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마다 담긴 저자의 생각을 무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냥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절대 발전을 이루기가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판이 타당하고 논리적인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을 보면 아무런 타당성 없이 무조건 반대하고 부정적인 의견만을 제시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건 비판이 아니라 꼬투리 잡기에 다름 아니다.

서두에 얘기했던 사고력의 강화 관점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직장인일수록 그리고 인생 바꾸기를 희망하는 사람일수록 책을 써야 합니다.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책 쓰기입니다.

글쓰기의 최종적인 종착지는 책 출간일 것이다.

베스트셀러 저자들의 수입을 보며 경제적인 자유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돈을 벌려는 목적에 사로잡혀 책 출간을 지향하는 태도도 좋지는 않다.

자기 이름을 내건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보람과 함께 일정 수준 이상의 목표를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이 독자에게 인기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요즘은 1인 출판, 이북 출간 등 예전보다는 확실히 출간의 문턱이 낮아지긴 했다. 이러한 바뀐 환경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의 새로운 길이 펼쳐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늦을지언정 한 걸음씩 전진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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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 엄마를 보내고, 기억하며 삶과 이야기 1
이상원 지음 / 갈매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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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와 함께했던 세 번의 여행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첫 번째는 배낭을 메고 떠난 1개월의 남미 여행이고 두 번째는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엄마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된 7개월의 이별 여행이며 세 번째는 엄마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찾아내 읽기 시작한 엄마의 글을 통해 그 삶을 새로 접하게 된 여행이다.

명절이나 생신 때 부모님을 뵐 때면 언제나 한결같을 줄 알았던 모습이 점점 노쇠해 지시는 걸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자식도 나이를 먹어가면 당연히 부모님도 동일할진대 왠지 부모님은 자연법칙의 적용 예외 대상으로 생각되곤 한다.

만남이 있으면 그 뒤에 이별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하지만 결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그 성당에서 내려오면서 성 선생님이 어느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레콜레타처럼 예쁜 묘지를 관리하던 한 묘지기가 자신도 그 묘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고, 그리하여 평생 죽어라 일만 한 끝에 마침내 죽을 즈음에는 필요한 만큼의 돈을 모아 그 묘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그러가는 "그 삶이 대체 무엇을 위한 거야?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덧붙였다. 나는 그저 "뭐 소망을 이뤘으니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니었을까요."라고 짤막하게만 대답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위해 현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묘지의 자그마한 땅에라도 묻히기 위해 평생을 죽어라 일만 한 묘지기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내다보지 못하고) 남의 괴롭히고 악행을 저지르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많은 사람들의 삶보다는 분명 더 나아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내일 당장 삶이 다한다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과연 세상이 얼마나 바뀔까?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삶 자체를 포기하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내달리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리라.

도대체 이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엄마는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의사는 하는 수 없이 동의하면서 "다음에 오실 때는 정리 다 하고 오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집에 다녀오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울음이 터졌다. 2월 중순 말기 암 선고 이후 적어도 엄마 앞에서는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난 엄마 없이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

"다 살 수 있어."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준비가 됐다 싶은 때는 없어."

울음 섞인 내 말에 엄마는 침착하게, 마치 남의 일인 양 대답했다.

무언가를 하기 마음먹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준비가 되지 않아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한편으론 신중함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우일뿐이다.

특히나 이별은 늘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다. 준비가 안됐다고 외쳐봤자 하늘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나마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고사가 생각난다.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내가 좀 더 시간이 있으면, 내가 좀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부모님에게 더 잘 할 텐데라는 말은 그냥 핑계일 뿐이다.



엄마는 여든, 만으로는 78세에 떠났다. 요즘 기준으로는 이른 나이다. 엄마의 평생지기 동갑내기 친구들 중에서도 첫 번째 순서였다. 하지만 그걸 애석해하기보다는 함께 보낸 세월에 감사하기로 했다. 나는 엄마와 서른 살 차이 나는 딸로 태어나 50년을 함께했다. 1년 넘게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으니 온전히 50년이다. 모녀의 인연으로 맺어져 서로의 편이 되고 벗이 되어 50년을 지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이를 먹을수록 감성적으로 되어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별 관련 소재는 늘 가슴 한편을 헛헛하게 만든다. 애써 생각하고 느끼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아픔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일은 부모님께 안부 전화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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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 본 금강반야바라밀경
황동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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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교리를 적은 책을 우리는 '경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불경이라 함은 불교(석가모니)의 교리를 담은 책임을 알 수 있다.

불경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할 수 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줄여서 '금강경'이라고도 부르는 주요 불경 중의 하나이며, 현재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가장 큰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이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삼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기도 하다.

종교마다 남겨진 경전을 문자로만 접하는 우리는 문자 안에 담긴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진리는 말이나 글로 통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소통으로만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 환경, 마음의 상태에 따라 반복하여 읽다 보면 문득 작은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른다.

몇몇 구절을 살펴보자.



제5분 진리를 바로 보다(如理實見分)

처한 곳을 분명하게 깨달아 진실을 보면

거울 속 면목이 자기의 몸이라네

온갖 상을 다 집어 들겠다고 말하지 말라

다만 지금 각자의 주인이면 그뿐

진실을 보려면 내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주변의 환경, 타인의 말 등 외부적인 것에 시선을 뺏기다 보면 정작 내가 처한 현실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특히나 요즘처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 환경, 아바타, SNS의 유행은 자신의 현실을 애써 망각한 채 가상의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위로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 직시는 고통을 수반하게 마련이지만 외면해서는 절대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남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번뇌를 내려놔야 한다.

이것저것 다하겠다고, 다 없애겠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제23분 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라(淨心行善分)

자신의 가슴에 때가 낄 틈이 없도록 할 뿐

장단이나 시비는 남에게 맡기라

눈 속에 모래가 박히고 귀에 물이 차면

묘행이 여여해져 도를 아는 것과 같나니

선을 행하라는 말은 구도자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일 하며 살아라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자라왔다. 이것은 그만큼 잘 안되고 하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음에 전혀 때가 끼지 않는 상태인 청정심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남의 평가나 시비를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주위의 자극이 있으면 번뇌가 생길 것이므로 오감의 자극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특히 시각과 청각 말이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도를 아는 것과 같다고 금강경은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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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 호모사피엔스에서 트랜스휴먼까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열 가지 키워드 묻고 답하다 5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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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을 통한 의학의 발달과 각종 신약의 생산은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였지만, 정작 본인이 직접 아프지 않은 이상은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은 이러한 생각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다. 물리학, 전자공학 등 우리 삶의 편의성을 극대화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생명과학도 그 어떤 학문보다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엔데믹의 분위기와 더운 여름 날씨로 인해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며 이제는 코로나와 안녕이구나 하는 안도감에 잠시 경각심을 내려놓는 사이 다시금 급증하는 확진자 수를 보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의 위세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닥칠 제2, 제3의 팬데믹을 위해 우리 인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저는 수업 시간에 "교육은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생각하는 힘의 핵심은 이질적인 아이디어를 색다르게 결합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기에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과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소양을 균형 있게 쌓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과학과 인문학, 역사와 생명과학.

언뜻 생각해 보면 학교의 교과 과정이 문과, 이과로 독립적으로 나누어져 있듯이 두 학문은 서로 별반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각자의 영역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면 충분히 전문가의 소양을 가질 수 있고 또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AI가 등장하며 시대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인간이 AI와의 경쟁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학문의 상호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인문학 소양을 균형 있게 가지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달리 말해 선별적 생식을 통해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 종의 자질을 제거하면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생각은 20세기 들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과 소련, 유럽 일부에서는 정신 질환자,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로 분류된 사람을 강제로 불임 수술까지 시켰습니다.

무분별한 이념과 가치를 탑재한 과학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편견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우생학은 20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널리 유행했으며, 독일 나치에 이르러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가장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우생학은 생물통계학과 유전학 분야를 아우르는 복합적이고 실천적인 응용 학문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적격자 선택과 부적격자 배제의 원리를 토대로 작동하는 사이비 응용과학일 뿐입니다. 우생학적 주장들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에 관여하는 어떠한 생물학적 본성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사이비 과학과 정치가 결합되어 발생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수한 혈통인 게르만족의 번영이 곧 인류를 위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사실을 보면 잘못된 과학과 신념이 결합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

유전학과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학의 신기원도 이뤘지만 지능이나 키, 외모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가지게 되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미래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아무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를 향한 인간의 욕심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그럼에 따라 역사는 늘 반복되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간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한 장면을 표현했습니다. 그림에는 사슬에 묶인 채 독수리 한 마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는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사슬로 묶어 놓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낮 동안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이 다시 자라났기 때문에 날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제우스는 죽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죽음의 고통을 느끼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영혼과 생명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나 마음이 인간의 장기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까지도 명쾌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문명사회는 심장이 아니라 간에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간이 다른 장기에 비해 크고 우리 몸의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또 혈액이 풍부하여 붉은빛을 띠고 있다는 점이 영혼, 마음, 열정 등으로 연결 짓기에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 고대 설화인 별주부전에도 간이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고 특히나 간과 관련된 많은 속담들이 있다.

거기다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서도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내리는 형벌이 간으로 되어 있는 사실을 보면 간이 영혼과 생명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분명했던 것 같다.

동서양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간에 대한 인식이 서로 비슷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 Plagues and Peoples>에서 인류의 역사가 바로 전염병의 역사라고 강조했습니다. 인류는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하고 기후 환경에 적응할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전염병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인류의 끊임없는 이주와 교류가 전염병의 세계화를 불러왔던 셈입니다... 전염병이 바꾼 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스페인의 아즈텍과 잉카 제국 정복 이야기도 빼놓을 수도 없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에서 다루어 유명해졌지요. 에르난 코르테스는 550여 명의 군사로 아즈텍 제국을,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고작 168명의 군사로 잉카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스페인은 상대 인구의 90퍼센트를 줄였을 정도로 강력한 두창(천연두)이라는 무기가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사에 등장했던 페스트, 천연두 같은 질병이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만 국한되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코로나의 등장과 함께 21세기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말이다.

자동차, 배, 기차, 비행기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교통수단과 교류의 속도가 코로나의 확산에 가장 큰 일조를 했듯이 과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개척, 전쟁 등을 통한 두 문명의 접촉은 필연적으로 역병을 불러왔다. 감기와 같은 단순한 질병으로 그쳤다면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아즈텍, 잉카 문명은 서양으로부터 온 천연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며 결국 문명의 붕괴로까지 이어졌다.

코로나가 발병하며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리라 예측하고 있다.

특히나 최근 많이 대두되고 있는 기상 이변은 기후 변화에 따른 극지방의 빙하 감소가 그동안 빙하 안에 잠들어 있던 고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깨울 수 있다는 영화 같은 시나리오가 점점 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오싹해지기도 한다.

학문의 양대 산맥인 과학과 인문학.

인류의 보다 균형 있고 내실 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두 이 학문의 상호 감시(?)와 경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도 두 학문의 사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깊이 있는 사고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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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일하는 방식을 바꿔라 - 문제해결보다 문제발견이다
이병주 지음 / 가디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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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가 촉발시킨 AI로의 거대한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는 새로운 기회일 수 있지만 또 어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시대의 변화를 부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신기술이 나오면 기술자가 가진 기술력을 대체하고, 사람만 할 수 있는 기획력이 확대되어 직업의 성격이 바뀐다. 사진 기술이 화가가 가진 자연을 정확하게 모사하는 능력을 대체하면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정, 해석, 개념 등의 역할이 더 커지게 됐다. 그래서 추상미술이 탄생했다. 물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면 직업이 사라진다. 전화교환원, 시계 수리공이 대표적.

산업혁명 이후부터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기계, 컴퓨터로 대체되어 왔고 앞으로는 AI가 더 넓은 범위를 커버하며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부정해서는 혼자만 도태될 뿐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공부하고 어떻게 그것을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AI가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얘기다.

인간 업무의 보조적인 수단으로써 개인도 충분히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고정된 틀에서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어려울 때 챗GPT의 아무 말 대잔치(?) 답변을 들으면 순간 번득이는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아직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현장에서의 지식, 경험과 기획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AI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이미 생성된 수많은 Big Data를 모으고 분석하며 계산하는 능력에 국한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능력은 인간이 부족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샘플과 Data 기반에서 아이디어를 짜면 좋은데 인간이 노가다(?)를 통해 이러한 것들을 수집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변화에 수긍하고 적응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거대한 사회적 변화는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변화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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