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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 호모사피엔스에서 트랜스휴먼까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열 가지 키워드 ㅣ 묻고 답하다 5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7월
평점 :
생명과학을 통한 의학의 발달과 각종 신약의 생산은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였지만, 정작 본인이 직접 아프지 않은 이상은 잘 느껴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은 이러한 생각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다. 물리학, 전자공학 등 우리 삶의 편의성을 극대화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생명과학도 그 어떤 학문보다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엔데믹의 분위기와 더운 여름 날씨로 인해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며 이제는 코로나와 안녕이구나 하는 안도감에 잠시 경각심을 내려놓는 사이 다시금 급증하는 확진자 수를 보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의 위세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닥칠 제2, 제3의 팬데믹을 위해 우리 인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저는 수업 시간에 "교육은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생각하는 힘의 핵심은 이질적인 아이디어를 색다르게 결합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기에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과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소양을 균형 있게 쌓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과학과 인문학, 역사와 생명과학.
언뜻 생각해 보면 학교의 교과 과정이 문과, 이과로 독립적으로 나누어져 있듯이 두 학문은 서로 별반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각자의 영역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면 충분히 전문가의 소양을 가질 수 있고 또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AI가 등장하며 시대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인간이 AI와의 경쟁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학문의 상호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인문학 소양을 균형 있게 가지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달리 말해 선별적 생식을 통해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 종의 자질을 제거하면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생각은 20세기 들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과 소련, 유럽 일부에서는 정신 질환자,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로 분류된 사람을 강제로 불임 수술까지 시켰습니다.
무분별한 이념과 가치를 탑재한 과학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편견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우생학은 20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널리 유행했으며, 독일 나치에 이르러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가장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우생학은 생물통계학과 유전학 분야를 아우르는 복합적이고 실천적인 응용 학문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적격자 선택과 부적격자 배제의 원리를 토대로 작동하는 사이비 응용과학일 뿐입니다. 우생학적 주장들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에 관여하는 어떠한 생물학적 본성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사이비 과학과 정치가 결합되어 발생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수한 혈통인 게르만족의 번영이 곧 인류를 위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사실을 보면 잘못된 과학과 신념이 결합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
유전학과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학의 신기원도 이뤘지만 지능이나 키, 외모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가지게 되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미래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아무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를 향한 인간의 욕심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그럼에 따라 역사는 늘 반복되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간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한 장면을 표현했습니다. 그림에는 사슬에 묶인 채 독수리 한 마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는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사슬로 묶어 놓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낮 동안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이 다시 자라났기 때문에 날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제우스는 죽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죽음의 고통을 느끼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영혼과 생명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나 마음이 인간의 장기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까지도 명쾌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문명사회는 심장이 아니라 간에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간이 다른 장기에 비해 크고 우리 몸의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또 혈액이 풍부하여 붉은빛을 띠고 있다는 점이 영혼, 마음, 열정 등으로 연결 짓기에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 고대 설화인 별주부전에도 간이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고 특히나 간과 관련된 많은 속담들이 있다.
거기다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서도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내리는 형벌이 간으로 되어 있는 사실을 보면 간이 영혼과 생명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분명했던 것 같다.
동서양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간에 대한 인식이 서로 비슷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 Plagues and Peoples>에서 인류의 역사가 바로 전염병의 역사라고 강조했습니다. 인류는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하고 기후 환경에 적응할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전염병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인류의 끊임없는 이주와 교류가 전염병의 세계화를 불러왔던 셈입니다... 전염병이 바꾼 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스페인의 아즈텍과 잉카 제국 정복 이야기도 빼놓을 수도 없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에서 다루어 유명해졌지요. 에르난 코르테스는 550여 명의 군사로 아즈텍 제국을,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고작 168명의 군사로 잉카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스페인은 상대 인구의 90퍼센트를 줄였을 정도로 강력한 두창(천연두)이라는 무기가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사에 등장했던 페스트, 천연두 같은 질병이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만 국한되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코로나의 등장과 함께 21세기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말이다.
자동차, 배, 기차, 비행기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교통수단과 교류의 속도가 코로나의 확산에 가장 큰 일조를 했듯이 과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개척, 전쟁 등을 통한 두 문명의 접촉은 필연적으로 역병을 불러왔다. 감기와 같은 단순한 질병으로 그쳤다면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아즈텍, 잉카 문명은 서양으로부터 온 천연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며 결국 문명의 붕괴로까지 이어졌다.
코로나가 발병하며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리라 예측하고 있다.
특히나 최근 많이 대두되고 있는 기상 이변은 기후 변화에 따른 극지방의 빙하 감소가 그동안 빙하 안에 잠들어 있던 고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깨울 수 있다는 영화 같은 시나리오가 점점 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오싹해지기도 한다.
학문의 양대 산맥인 과학과 인문학.
인류의 보다 균형 있고 내실 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두 이 학문의 상호 감시(?)와 경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도 두 학문의 사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깊이 있는 사고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