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상승 시크릿 - 성공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커리어 전략
김경옥 지음 / 더로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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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다 보니 직장인에게 있어서 재테크는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테크를 큰 부류로 나누어 보면 두 가지 경우인데,

첫 번째가 주식, 부동산, 코인 등의 자산에 투자하여 그 차익을 얻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직장 생활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직을 포함해서 더 높은 지위와 연봉을 얻는 방법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첫 번째 경우에 집중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어찌 보면 좀 더 명확하고 안정적인 방법은 두 번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연히 회사에서 내가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와 동기 부여가 있는 상황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

짧지 않은 생활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이직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아 아직까지 첫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지만 요즘 들어 다른 직장으로 옮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과 고민을 자주 하곤 한다.



많은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찾는 데 몰두합니다. 이는 기존에 해왔던 사업이 잘 되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사업이 잘 되고 있다고 손 놓고 있다가는 언제 상황이 변해서 돈이 벌리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기업은 매년 환경분석을 통해 새롭게 전략을 수립하고, 지속 가능한 또 다른 성장의 동력을 찾습니다. 개인도 그래야 합니다. 기업이 기존 사업에서 철수하고, 매각하고, 새로운 사업을 인수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의 명심해야 할 키워드는 '성장', '지속 가능한 성장'이어야 하고, 이는 개인의 경우,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몸값입니다.

최근에 기업 경영의 화두로 등장한 ESG라는 용어가 있다.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 구조(Governance)의 영문의 첫 글자를 딴 용어로 기업 경영의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3가지 요소를 일컫는 말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에 속해있는 직원이라면 기업의 발전과 함께 하며 안정성을 보다 길게 가져갈 수 있겠지만 쇠퇴하거나 폐업하는 기업에 속해 있는 경우는 자신이 결코 원치 않는 바이지만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생활에 위험을 느낄 수 있다.

기업이 지속 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받듯이 개인도 지속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고민을 해 보고 성장 전략을 세워야만 한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이 업계에서 평가는 '몸값' 즉 '연봉'이다.



전문가는 한 분야를 오랫동안 성과를 내며 해온 사람을 말한 것 같지만 오히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범위를 너무 좁게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가 완전히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너럴과 스페셜이 골고루 같이 가야 한다. 그게 전문가. 이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하는 진실이다.

개인의 역량 평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그 분야에서 얼마만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일 것이다.

예전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하며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그것에 대한 인정을 해 주었다면 요즘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전문가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를 통합(컨버전스) 할 수 있는 시야도 같이 가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게 바로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닐까 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도 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넓게 볼 수 있는 역량까지 요구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만약 갖출 수 있다면 남들과 차별화되는 최고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커리어는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커리어의 변화에 중심이 되는 축을 일관적으로 가지고 커리어를 회전시키고 변화하는 것, 이것을 커리어 피봇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커리어 피봇팅의 개념에서 커리어의 변화 시 어떤 부분을 유지하고 어떤 부분을 변화시킬까? 통상 커리어 피벗을 말할 때 우리가 얘기하는 핵심은 직장이 아닌 직업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력의 중요한 한 축은 살리면서 직업은 바꾸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일을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하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하고, 옆에서 볼 때는 그 일이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해 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쉽고 편한 일만 찾아가서는 개인의 커리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중장기적인 전략과 세부 계획을 어느 정도 세워 놓고 거기에 맞춰서 커리어를 바꿔 나가야지 '이 일 했다', '저 일 했다' 하는 것은 전체 경력에 오히려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직장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보다 익숙한 동일 직장의 다른 직종으로 바꾸는 것도 좋은 관점일 수 있다.



이직에 있어서 언제고 변하지 않는 것은 기업에서는 딱 맞는 사람만 찾는다는 것이다. 딱 이 업무를 해 본 사람, 딱 적합한 사람을 찾는다. 그러므로 내가 설사 그 업무를 해보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면접 보기 전까지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통해 마치 그 업무를 해 본 사람에 버금가는 지식과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면접을 볼 때 가장 당황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이 해보지 않은 업무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때이다.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할 수는 없어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해봤다고 거짓을 말하여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이 회사에 지원한 만큼 이 회사가 어떤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어떤 비즈니스 모델에 강점이 있는지 어떤 신규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는 반드시 해야 할 사전 준비이다.

대충 지금까지 해 온 경력으로만 얘기하고 평가받으려고 해서는 남과 똑같을 뿐이다.



A 씨의 사례처럼 연봉이 어떻게 책정될지는 면접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회사에서는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면 회사의 연봉 테이블과 상관없이 면접 이후 당신의 연봉이 결정될 수 있다... 그 회사의 연봉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을 만한 수준이 되는지는 어쩌면 그것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직을 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연봉 상승이다.

일반적으로 지금 자기가 속해 있는 회사보다 더 나은 연봉을 줄 수 있는 회사는 더 큰 회사일 경우가 많으므로 거기에 맞춰 준비를 하곤 한다.

물론 더 큰 회사가 연봉도 높고 복리후생도 좋을 가능성이 크지만 반드시 그것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중견 기업이나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자신의 역량과 경쟁력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면 대기업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며 다닐 수 있다. 게다가 회사의 성장과 함께 하는 자부심도 같이 느낄 수 있다.

돈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좋은 이직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도 같이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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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공식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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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30대부터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근무하며 많은 상담수를 상담하는 역할을 진행했던 분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곁에서 삶과 죽음을 가까이 접했을 저자가 바라본 인생은 과연 어떤 것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내가 제시하는 공식은 당신이 팔짱 끼고 있어도 모두 다 해결해 주는 마술 같은 게 아니야. 당신이 직접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해. 대신 공식을 모를 때보다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실타래처럼 꼬인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약속할 수 있어. 나한테 통한 공식이니까 당신한테도 통할 거란 말이지. 당신이나 나나 여린 마음으로 작은 행복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한 가지 부탁하자면 내 공식들을 만날 때 이런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그저 늘 당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머니 만났다고. 할머니가 손수 담근 식혜 한 사발 놓고, 때론 슬프고 때론 웃기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말이야.

인생이 이러이러한 값을 대입하면 이런 결과값(물)이 나오는 수학공식처럼 명확하면 인생을 사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라는 상상을 종종하곤 한다.

거기다가 이렇게만 나를 따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책, 동영상을 포함한 미디어가 넘쳐난다.

공식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러한 미디어를 접하다 보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만약에 실패하는 경우는 그 공식이 잘못됐거나 나와는 맞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자기 정당화도 많이 하게 된다.

인생에 마법 같은 일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만약 남들이 마법 같은 결과라고 평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노력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직접 몸과 마음을 움직여 노력하지 않는 이상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모든 사람을 다 가족처럼, 연인처럼 사랑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러면 좋겠지만 그건 10단 이상이나 가능한 거니까 너무 욕심내지 말자고. 식당 종업원이 실수로 국물을 좀 쏟아도 한번 웃어주고, 누가 내 발을 밟아도 한번 웃어주고, 그게 다 사랑이야. 그 한 번의 웃음이 맺혀 있던 한 하나를 풀어주는 거라니까. 내 깜냥이 아닌 사랑까지는 넘볼 것도 없고 지금 당신 속에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랑, 그놈 엉덩이를 툭툭 쳐서 세상에 한 번 내보내란 말이야. 당신의 행복지수가 세상의 행복지수보다 먼저 올라갈 테니까.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쾌한 일들에 대한 반응은 참 다양하다. 그저 허허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지만, 별것도 아닌 일에 고성과 과한 몸짓으로 반응하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요즘 들어 늘어나는 짜증과 불쾌감에 놀라는 경우가 있어 종종 원인을 생각해 보면 그만큼 삶의 여유가 없다 보니 따라서 정신적인 여유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그것은 나도 예외가 아닐진대 타인의 실수는 엄청 크게 생각하고 자신의 실수는 별거 아닌 양 치부한다.

세상과 주변 사람을 탓하지 말고 바뀌지 않는 나 자신을 탓하자. 상대방의 실수는 관대하게 넘어가며 웃음 지을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지리라.



부모들이 행복하면 아이들 인생도 행복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자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어떻게 자녀들에게 보여줄까 그 궁리나 해. 그게 조기유학 보내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방법이야. 아이들이 ‘우리 부모님 참 괜찮은 사람들이야.’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미 얘기는 끝난 거야.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부모가 되는 거지.

요즘 고민하고 있는 내용을 책에서 접하니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장난감은 가격이 얼마까지를, 얼마나 자주 사줘야 할지, 학원과 학습지는 어디로, 무엇을 시켜야 할지 등의 고민은 사실 핵심이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녀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 행복하게 사는 그 모습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부모의 행복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자식이 행복할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을까?

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녀를 위해서라도 내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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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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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얼핏 들었던 여성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여성들이 인권적으로 억압받던 19세기 말~20세기를 살며 독학으로 지성을 쌓아 당대의 학자들과 토론했던 어찌 보면 시대를 앞서 나갔던 인물이었다.

안타깝게도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지만, 그녀가 남긴 문장들 속에서 누구보다 고심했던 인생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That was the strange thing, that one did not know where one was going, or what one wanted, and followed blindly, suffering so much in secret, always unprepared and amazed and knowing nothing; but one thing led to another and by degrees something had formed itself out of nothing, and so one reached at last this calm, this quiet, this certainly, and it was this process that people called living.

그것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고, 맹목적으로 따라갔고, 비밀리에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고, 항상 준비되지 않았고, 놀랐으며,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이 또 다른 일로 이어졌고, 점차 무에서 어떤 것이 스스로 형성되었고, 그래서 마침내 이 고요함, 이 확신에 도달했습니다. 이 과정이 곧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삶의 복잡성과 미지의 미래를 묘사하며 우리가 때로는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지만 시간에 따라 모든 것이 조화롭게 결합할 것임을 의미)

무엇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적지 않은 세월 반복되다 보니 삶의 정의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하는 등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면, 지금은 도무지 무엇이 목표인지를 쉽게 얘기할 수 없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어 편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하기에는 너무 세속적인 것 같고,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남이 좋다고 하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길에 도달했지만, 이제는 이 길의 방향과 목적지를 살펴봐야 할 시점이 된 듯하다.



The strange thing about life is that through the nature of it must have been apparent to every one for hundreds of years, no one has left any adequate account of it. The streets of London have ther map; but our passions are uncharted. Whar are you going to meet if you turn this corner?

인생에 대한 이상한 점은 수백 년 동안 모든 사람에게 그 본질이 분명히 드러나 있었지만, 누구도 충분한 설명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런던의 거리는 지도가 있지만, 우리의 감정은 아직 탐험 되지 않은 영역입니다. 이 구석을 돌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요?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로 지금까지 못해도 수 백억 명의 사람이 인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까지 정답지가 없는 것일까? 사람 수만큼 존재할지도 모를 고차원 방정식을 하나로 합칠 수 없을 만큼 난해하기 때문일까?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차의 필수품이었던 지도는 너무나도 쉽고 간편한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등장하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각자 인생의 목적지를 입력하면 가는 길을 알려주고, 심지어 막히면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 가는 길임에도 당황하지 않으며, 앞에 장애물이 있어 정체가 발생해도 미리 알 수 있게 된다면 인생의 많은 고민이 사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What is the meaning of life? That was all-a simple question; one that tended to close in on one with years, the great revelation had never come. The great revelation perhaps never did come. Instead, there were little daily miracles, illuminations, matches struck unexpectedly in the dark; here was one.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단순한 질문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하나에 가까워지는 이 질문에, 위대한 깨달음은 절대 오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깨달음은 아마 오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일상의 작은 기적, 깨달음, 어둠 속에서 일어난 불꽃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 또한 하나의 깨달음입니다.

요즘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뭔가 나를 변화시켜줄 깨달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속으로만 때로는 말로만 인생을 바꾸자, 바꾸자 되뇌며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깨달음과 같은 행운이 스스로 나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모습에 벗어나지 않은 채 말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며 조금씩 전진하는 발전된 모습만이 누적되어 훗날 큰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요행을 바라며 나의 행동 양식과 주변 환경이 한 번에 바뀌길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허황된 욕심일 뿐이다.

어둠을 밝히는 커다란 횃불도 그 시작은 작디작은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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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딴생각에 빠진 당신에게
홋타 슈고 지음, 정지영 옮김 / 밀리언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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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의 다양한 매체들을 접하다 보면 예전에는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여러 매체가 정보와 재미를 신속하게 전달해 준다는 장점도 있지만 중독성 또한 강하다 보니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퇴근해서 잠시 쉰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자정이 가까워지는 경험을 많이 하곤 하는데 이 생활 패턴을 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쉽사리 잘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어도 도박, 알코올, 약물에 의존할 때처럼 돈을 낭비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죄를 추궁당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기기를 능숙하게 사용한다거나 정보에 민감하다는 식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많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친다. 어차피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뇌 구조 자체는 20만 년 전과 거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처리해야 할 정보량만 늘어나 뇌가 항상 풀가동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옛날에 비해 피로나 스트레스를 쉽게 느낀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개선하거나 리셋하려면 잠을 충분히 자고, 정보를 차단한 뒤 자연 속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밤중이나 잠깐 비는 시간에도 인터넷 서핑을 하고, SNS를 확인하거나 게임을 하기 때문에 잠을 충분히 잘 수도, 뇌를 쉬게 할 수도 없다. 그 결과 뇌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면서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두통, 불면증, 메니에르 증후군, 과민성대장 증후군, 기능성 위염, 고혈압, 심장신경증 등 몸과 마음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고, 개중에는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술, 도박, 마약 등에 대한 중독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구성원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가지게 하지만 스마트폰에 대한 중독은 그 영향력에 대한 심도 있는 얘기가 거의 없는 듯하다. 특히 스마트폰의 기술이 발전하며 가히 손안의 PC가 된 요즘에는 스마트폰의 기능이 워낙 다양하고 출중하다 보니 할 수 있는 분야가 너무나도 많다.

적절하게 발전성 있는 방향으로 잘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게 되는 요소들이 다분하다. 쉽게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량의 정보와 영상물들은 우리 뇌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하도록 한다.

피로와 두통, 불면증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체적 기능 장애를 야기하며, 정신적으로 우울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라미레즈 팀의 실험에서 불안감을 글로 적은 그룹은 감정과 생각을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전두엽이 작용하고 대뇌연변계의 반응이 억제되었기 때문에 불안감을 내려놓고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참고로 글을 쓸 때 '생각한다, 느낀다, 이해한다' 등의 통찰하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었다. 통찰하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깊이 파고들어야 하며,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두엽의 기능이 활발해진다.

...

참고로 불안감을 '태핑(tapping)'으로도 해소할 수 있다. 태핑이란 손가락 전체로 톡톡 두드리는 동작으로, 태핑을 하는 부위는 이마, 눈썹, 눈꼬리, 눈 밑, 턱, 쇄골도 상관없다. 최소 30초 정도 태핑을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태핑은 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s, 감정 해방 기법)라는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벤구리온대학교의 클론드(Clond)는 2016년에 EFT에 관한 과거 연구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메타 분석을 통해 "EFT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급변하고 치열한 경쟁이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호소한다. 잘하고 있으면서도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해도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여러 감정들이 불안감을 키우는데 일조한다.

이러한 불안에 대한 원인이 명확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막연하게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책에서는 불안한 감정을 글로 써보기를 추천하고 있다.

글로 쓰기 위해서는 이 감정이 진정 어떤 것인지에 대한 분석 작업이 선행적으로 필요하므로 좀 더 냉정한 시각에서 불안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업무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무리한 목표였다고 생각한다. 돈을 지나치게 낭비하고서는 반성하고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자기 정당화는 스스로 눈치채기가 어렵다. 그리고 오랫동안 편한 쪽으로 생각을 바꾼 결과, 주위 사람들이 "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내버려 뒀지?"라고 놀랄 정도로 문제가 커지거나 의존증이나 질병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이런 경우 행동을 바꾸고 싶을 때 가치를 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우선 '오늘 하루 SNS를 안 하면 맛있는 것을 먹는다'라는 식으로 'OO을 안 하면 XX가 손에 들어온다'라고 가치 부여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 술을 안 마시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라도 술을 마시지 않은 다음 날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느끼면 자연히 술을 삼가게 된다. 습관이나 타성으로 그만두지 못한 것을 한번 멀리해보고 가치를 느끼면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 자유 시간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몸과 마음이 얼마나 쾌적해지는지 알게 되고, 그때까지 자신이 변명으로 정당화했음을 깨닫는다.

인지 부조화.

옳지 않은 것임을 알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계획을 세웠다가 지키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 정당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인 것으로 그치면 상관없겠지만 지속적으로 장기간 반복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 심각한 경우가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단기간의 작은 변화는 스스로 눈치채기 어렵겠지만 이것이 누적되어 큰 부정적인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이 상황을 타파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가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자기가 목표로 한 자그마한 계획을 달성하면 거기에 보상을 주거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무 큰 목표는 오히려 의욕 저하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작은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이 선순환 구조가 보다 확대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보다 집중하여 더 큰 성취를 맛볼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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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 진짜 사랑을 잊은 한국 사회, 더 나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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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류는 왜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에서 살아가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사랑이 불가능해진 원인을 사랑에 대한 무지나 오해에서 찾는다. 또 다른 이들은 개인의 정신건강 악화를 꼽기도 한다. 사랑이 불가능해진 이유, 사랑에서 실패하는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랑에서 계속 실패하는 원인, 가짜 사랑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과연 개인에게 있을까? 나는 사랑이 불가능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병적인 사회라고 믿는다. 물론 사랑에 대한 무지나 오해 정신건강 악화도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병든 사회가 초래하거나 강요한 것이므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 스토킹을 포함한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범죄를 보다 보면 당사자는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랑이라고 포장하고는 있지만 상대방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해치고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서로 간의 사랑, 존중과 배려를 기반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진대 언제부터 이런 기조가 무너진 것일까? 저자는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단호히 병적인 사회가 그 원인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사랑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인간에게 사랑이 너무나 중요함에도 사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자존감, 행복 등에 과거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예전의 영화, 드라마 등의 매체부터 최근 유행하고 있는 SNS의 순기능 또한 분명히 크겠지만, 사랑, 행복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관점에만 국한해서 본다면 역기능이 훨씬 더 커 보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마법과 같은 환상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이 마치 보편화된 것처럼 보여주고 있고, SNS에서도 부유하고 이쁘고 아름다운 모습만으로 포장된 내면이 아닌 외면에 편향된 글들이 차고도 넘친다.

이 넓고 넓은 세상에 오직 나만이 남들보다 뒤처져 있는 것 같고 다들 성공해서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러 힘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은 자괴감만 더 키울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 국면을 한방에 전환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만남만을 꿈꾸기도 하고, 또는 지극히 인스턴트적인 사랑과 기쁨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랑이 가득한 세상에서는 사랑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 현대 사회가 사랑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광신적 사랑이 마음의 상처(정신장애), 그리고 병적인 욕망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광신적 사랑은 무력감에 기초하는 의존과 동일시 같은 심리 현상을 동반하므로 자기 상실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광신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완전히 상실한 채 사랑의 대상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거나 복종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맹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종교일 수도 있지만,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도 그 대상일 수 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사랑도 그 정도를 벗어나면 없느니만 못한 법이다. 연예인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스토킹으로 나타나고, 정치인의 경우는 그들의 언행을 무비판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며, 반대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적대시하는 경우로 나타난다.

문제는 이러한 극단적인 이분법적 성향이 사회의 갈등과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의 문제가 아닌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사람 수만큼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각 의견을 모두 귀담아 들어주고 인정해 주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



사회-일반적으로 게임의 규칙은 그 사회를 지배하는 독점자본가 같은 지배층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정한다-가 정하는 부의 분배 방식이나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 게임의 규칙 등은 인간 심리와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는 권력과 부를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1 대 99의 양극화 사회를 초래했고, 사람들에게 승자독식의 원리에 기초한 경쟁이라는 게임 규칙을 강요하여 인간관계를 파괴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간적이고 건전한 요구나 욕망을 실현할 수 없기에 전반적인 정신건강이 크게 악화된다. 부정적 심리와 정신건강 악화는 진짜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가짜 사랑을 강제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동기부여의 원동력이 되며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부를 거머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경제체제임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권력과 부의 불평등이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초기에 부를 거머졌던 사람들은 자본의 힘을 느끼고 알았기에 이 달콤함을 영원히 놓치지 않기 위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교묘하게 구성원들을 세뇌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고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가난과 실패는 구성원의 노력이나 능력 부족에 기인한 것이라는 기조를 만들며, 잘못된 생각과 부정적 심리를 가질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당연히 건전한 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고 이것은 곧 비뚤어지고 가짜인 사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또 다른 경제 체제가 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완벽한 것은 없는 법이다.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며, 약자가 보호받고 누구에게나 균등하고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도적인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척 힘들고 오랜 노력이 필요한 과정의 연속이겠지만 가짜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이 넘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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