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해야 364일
황선미 지음, 김수정 그림 / 포북 차일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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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더 많이 받고, 명절이면 만나는 할머니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용돈도 더 많이 받는지 생각하면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그랬었다.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나만 고작해야 364일 먼저 태어난 윤조라는 녀석에게서 헌옷을 물려받아서 입어야 했고, 모든게 윤조가 쓰던 나머지것들을 그저 받게 되었던 인생,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확연하게 차이가 나게 윤조에게만 기울어졌다. 저울로 잴수 있다면, 저울로 재서 남들앞에서 보여주고 싶을정도다.

 

그렇게 윤조에게 모두 빼앗기고 산다고 생각하는 명조가 그려가는 세상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윤조에게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그 남은 부스러기들이나 자기 차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명조, 그래서 더더욱 윤조가 싫고 밉다.  그랬기에 스스로를 윤조 자신은 무지무지 운 나쁜 애라고 생각하고, 공평하지 못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가 그랬겠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할머니가 명조네 집으로 오시기 전까지는...

먼저 태어나 새로 산 옷이며, 새로 산 신발, 새로 산 가방등을 차지하는 명조에게 항상 물려 받아 사는 명조네. 명조아빠는 큰 아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계시자 시골에 있는 땅을 모두 처분하고 큰아빠네 가셨지만 녹록치 않았다. 결국은 큰아버지랑 다투고 할머니가 제일 기특해하는 막내아들인 윤조아빠네로 오시게 되었다. 할머니는 오시자마자 윤조방에서 '우리윤조 우리윤조' 하면서 제일 아꼈다. 모든게 엉망진창으로 된 것은 내가 봐 뒀던 운동화를 할머니가 사오셨던 날부터이다. 그 캔버스 운동화를 신고 싶었던 사람은 윤조가 아니라 명조였고, 일주일 내내 엄마한테 그게 얼마나 신고 싶은지 설명한 사람도 명조였고, 엄마가 할머니한테 운동화 값을 드린 것도 분명히, 명조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라면서 형제가 뭐든지 우애 좋게 나눠야 집안이 잘되는 거라고, 며칠 좀 신는다고 신발 바닥 안 닳는다고 그 캔버스 운동화는 윤조에게로 갔다. 그럼 윤조는 어떤가, 할머니와 명조가 어떤 것으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도 없고 오로지 레고 조립만 하는 애. 그래도 좋은 건 다 가질 수 있는 얄미운 복덩어리 그렇기에 더더욱 고분고분하게 형 소리를 할 수가 없다. 고작 364일 먼저 태어난 윤조, 레고에 빠져 있는 윤조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주방으로 가는 할머니 등도 명조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프다 못해 눈물이 나올 때까지 쏘아보고 끈으로 조여 신는 하늘색 컨버스 운동화에 발을 넣어보지만 그것으로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은 베란다로 그 하늘색 운동화를 들고가 결국은 사단이 나는데.... 운동화가 다시 윤조에게 돌아오기까지, 그 과정에서 윤조의 사춘기가 시작하였고, 명조는 윤조와 함께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일이 생겼으며, 고분고분 말 잘듣는 윤조가 반항하여 자기가 원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기까지 명조가 드디어 윤조네 가족의 한 일원이 되기까지 가족이 어떻게 흩어지고, 어떻게 뭉치게 되는지 명조의 시각에서 아주 잘 그려져 있다. 명조가 눈여겨 두었던 하늘색 컨버스화를 분홍색 컨버스화와 함께 짝짝이로 개성있게, 당당하게 멋스럽게 신고 다녔던 알고보니 쌍둥이 장나리, 장하늘 이 두 쌍둥이를 통해서 작가는 개성있는, 당당한, 멋을 낼줄 아는 스치듯 횡단보도에서 지나쳤던 요 또래의 당당함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그 모습을 담아내었다 한다.

 

아이로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를 원하면서 말이다.

 

 

 

2015.3.10.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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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일처럼 여행처럼 - KBS 김재원 아나운서가 히말라야에서 만난 삶의 민낯
김재원 지음 / 푸르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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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만났던 라다크는 인도 대륙의 북동부,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앉은 잠무카슈미르 주의 라다크(Ladakh)는 작은 터키라고도 불리우는 인도, 히말라야, 티베트 모두를 느낄 수 있는 곳이며, 

티베트 방언을 쓰는 ‘라다키’들의 삶 속에서는 티베트의 문화와 풍속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1974년, 외부인에게 처음 개방된 이후 현대화를 맞이하는 라다크의 변화를 아쉬워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있는 삶이 교육이 되는 그들의 공동체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깊었다.

 

"우리 라다크 가요."

 

KBS 김재원 아나운서에 H 이 둘은 히말라야 라다크를 자전거로 리얼체험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펼쳐진다. 여행은 걱정의 연속이라는 말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기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을 특히나 완전히 낯선 곳에 대한, 특히나 해외여행에 경험이 있는 여행자들이면 여행이 걱정의 연속이라는 말에 조금은 동의를 할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 여행을 완전히 마칠때까지 수많은 계획과 착오 그리고 새롭게 부딪히는 과정에서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 동행자와의 의사충돌 그리고 여행계획에서 여행지에서의 모든 시간속에서의 의견충돌등과 보다 나은 여행을 위한 그 시간들속에서 고뇌하고 알찬여행으로 가꾸기 위해선 필수적인 고민이다. 하지만 걱정을 현실로 바꾸지 않고 풍선처럼 터뜨려 나가는 것이 여행기도 하다. 김재원 아나운서의 말처럼.

 

자전거은 은색이다. 정확히 말하면 회색, 더 정확히 말하면 쇠 색깔 그대로다. 딱히 모양 날 것도 없고, 옷 색깔 맞춰서 맵시도 낼 수 없는 그냥 자전거다. 그런 개성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는 그런 자전거를 타고 라다크를 달린다. '레'에서의 젊은 라다크여인 시링은 델리에서 시집온 도시 처녀였다. 시링의 노래 속 가사 "팔리시 팔리시 자나라이, 무체 초르키 무체 초르키." "팔리시 팔리시 자라나이, 무체 초르키 무체 초르키." 곡조는 단조웠고, 가사는 귀에 쏙 들어왔던 이 노래의 가사는 "이방인이여, 이방인이여, 떠나지 말아요. 오래 머물러요. 오래 머물러요." 가 울컥하게 만든다.

 

혼자 하는 여행은 성찰을 위한 것이라지만, 함께 하는 여행은 성찰을 갈등에 양보해야 한다. 발걸음의 주인은 여행자가 아니다. 여행자가 밟고 있는 땅과 그 땅을 덮고 있는 하늘이다. 그 땅과 하늘에 나를 맡기는 것이 참 여행이겠지. 김재원 아나운서의 깊이있는, 그 울림의 언어들을 만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 속 또 다른 울림이 여기 또 있으니, 상황에 순응하는 삶은 기다리는 삶이요, 그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시간의 항아리가 채워져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순리를 따르는 것이란다. 라다크에서의 촬영은 순탄치 않았으나 감사한 것은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고, 짜증 내는 사람도 없었으며, 화내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술 한잔 찾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라다크의 순수함이 우리의 마음 밭을 갈아 엎어놓은 모양이라고 했다. 여행중에는 특히나 여러 명이 같이 하는 여행길에는 크고 작은 충돌이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라다크 여행길에서 어쩌면 사람과 사람과의 여행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일반 책들보다도 더 깨알같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는 책 속 내용들에서 여행이라는 새로움, 그리고 <오래된 미래>에서 만났던 라다크를 더 정교하게 더 디테일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컸던 책이다. 라다크의 민낯을 보는 그 디테일함이 돋보이는 부분이 되기도 하였지만, 김재원 아나운서의 그 깊은 생각들이 나에게로 오는 순간 순간들은 어설픈 여행기를 접했던 그 시간들을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김재원 아나운서의 글 중에서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구절 하나 옮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때문이란다.

한 사람의 글을 읽는 것도 실은 엄청난 일이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책이 보름간의 여행 후에 쓴 기행문일지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맞다. 나는 이 책에서 김재원 아나운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의 일생을 만났다. 라다크라는 이름을 통해서..

책을 만남에 있어 이 생각은 이제 하나의 기준점이 될듯하다.

 

 

 

 

2015.2.28. 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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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영웅들 -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
그레고리 나지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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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문화는 과거나 지금이나 '노래의 문화'다. 그리스인들에게 슬픔의 흐트낌은 비통함의 노래이다.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보여주는 슬픔은 영웅의 죽음과 필멸성이 필요한것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심지어 아킬레우스가 죽었을 때도 노래는 그를 떠나지 않았어요. ....중략...불멸의 신들은 진심으로 아킬레우스를 내어주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여신들의 노래로 남게 되었으니까요.'     <판다로스. '이스트미아 찬가'에 나오는 텍스트다>

 

서사시란 결국 영웅들의 위대한 행적을 고전적이면서도 장려하고 고상한 문체로 기록한, 내용이 엄청나게 방대한 시를 의미한다.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움과 경이로움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될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야기하는 영웅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영웅이라는 말을 하기전에 도대체 누가 영웅인가? 이 부분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전통에서는 영웅이란 오래전 살았던 인간으로 남녀의 구분 없이 불멸의 존재인 신들의 후예로서 초인적인 능력을 겸비한 존재를 의미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영웅으로는 아킬레우스이다.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의 가장 위대한 여신 테티스의 아들이며, 테티스는 우주를 초월하는 힘을 지닌 바다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웅들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멸의 존재들이다. 수명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어떤 식으로든 신들의 후손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왜 고대 그리스인들은 영웅들을 찬양했는가? 신들은 역사의 어느 시대에서든 숭배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럼 다시 고대 그리스인들이 왜 영웅들을 찬양했는지에 대한 답변을 기다린다. 그 답변은 어쩌면 당시 사람들이 신과 영웅을 동격으로 놓고 동시에 숭배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1970년대 후반부터 하버드 대학교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에 대해 가르치고 정리해온 과정을 바탕으로 한 24개의 강의록 안에 호메로스 서사시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명과 교양의 뿌리에 대한 탐구를 해온 나지 교수의 답변이다.

 

'트로이와 목마'로 처음 접했던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에서 트로이아의 영웅이었던 헥토르가 머지않아 과부와 고아가 될 자신의 아내 그리고 어린 아들과 이별을 하는 가슴 찢어지던 그 장면은 아직까지도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다. '일리아스'에 들어가 있는 트로이아의 최고의 영웅이었던 헥토르의 강한 여운이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중요한 말의 부활, 살아남는 말을 통해 영웅에 대한 말도 살아 있는 말로 남을 것이다. 영원히.

 

 

 

 

2015.2.23. 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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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문학 - 철학이 사랑한 사진 그리고 우리 시대의 사진가들
이광수 지음 / 알렙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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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장소가 자아내는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사람의 살 냄새를 더 좋아해 글쓰기나 사람들과 수다 떨기를 더 찾는 편이던 저자가 가을비에 멍때리거나 호젓한 산사의 낙엽 쌓인 길을 일부러 찾기 시작한 것은 카메라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고 한다. 그의 아내도 저자가 사물을 아름답게 보기 시작한 것이 정말 좋다고 하였다니, 그러고 보니 나도 그들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는것은 특히나 아름다움, 현재의 한국은 천편일률적인 보이는 아름다움에 빠져있는 사회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아름다움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성형외과에서 찍혀나오듯 그런 아름다움에 많은 이들이 빠져 살게 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내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과 그리고 사각의 네모난 틀 안에서 바라보이는 또 다른 아름다움은 그 소중함의 가치의 크기만큼 그렇게 소중하게 다가오고 그렇게 보관되어 왔다.

 

사람이 되어 가는 길,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길, 사람이기 때문에 가야 하는 길과 같은 것들을 고민하는 인문학을 그 고민을 사진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해보자는 저자의 색다른 제안에 선뜻 마음을 열어본다.

 

그냥 주어진 사물 자체도 제대로 담아내기 힘들어하는 나에게 사진인문학이란 약간 생소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인문학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진이 모사가 아닌 재현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진은 망원경이나 거울 또는 물을 보는 것과 같아서 대상에 대해 지각적 접촉을 중개해 주는 수단이라고 하는 저자의 설명에 사진이 인문학이 될 수도 있겠다는 묘한, 작은 가능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진이 권력이 되는 지점, 이 지점은 조금 더 알아야 할 부분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어찌됐든 익숙한 것을 낯설게 읽는 벤야민의 아우라부터 시작한다. 벤야민, 사진에 대한 담론의 물꼬를 튼 벤야민은 19세기말, 20세기 초 자본주의가 한창 꽃피던 시절의 대중문화였단다. 현대의 대중이 갖는 예술 작품에 대한 직접 경험의 욕구를 아케이드와 구경꾼의 개념에서 찾았던 벤야민은 도시 전체를 물신주의를 실현하고 하나의 거대한 마술 환등으로 바뀐다고  행하지만 알지 못하는 존재, 즉 한 시대의 무의식을 드러내려고 했고, 벤야민을 알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했던 앗제는 외젠 앗제의 사진을 보면 아우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전통적 눈으로 볼 대는 보이지 않았던 주변적이고 천대받는 군상들이 제 목소리를 내도록 기록하였다는 사실이다.

 

난해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깊이있게 읽어내어야 할 책이었다. 사진이라 했기에 사물을 보이는데로 담아내는 그런 사진의 쉬운 단면만을 얼핏 생각했는데, 역시 인문학을 담은 책이었다. 하지만 각 사진들을 예제로 삼아 인문학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에 대한 설명이 뒷받침되어 있었으니 어렵다고 덮어버릴 수는 없게 만들었다. 어쩌면 사진으로 담아내는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담아낸 사진은 결국은 우리의 삶이었기때문이었을지도 모르기에...

 

 

 

2015.2.22.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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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맛 -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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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중국 요리를 논하고자 한다면, 광둥 요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전 세계 중국 요리는 광둥 요리의 지배 아래 국제적인 성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콩요리와 더불어 전 세계에 흩어진 화교의 광둥 요리만이 중국 요리중에서 유일하게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 그리고 일본 요리와 나란히 설만한 현대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의 저자인 가쓰미 요이치씨가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한 것은 문화대혁명 즉,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때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중국 본토의 요리를 논하려면 다른 외국 요리를 논할 때와는 다른 좌표축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바라보자면 중국의 광둥 요리가 중국 요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의 관점에서 바라볼때에는 결코 광둥 요리만이 중국 요리의 대표 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후 자유국가들의 각국의 대표요리들을 경연했던 일에 중국 대륙 각지의 '본고장의 맛'은 참가하지 못했었다. 인민공화국이었던 중국은 모든 음식점이 국가 소유였기때문이기도 했으며 그때에는 민간 레스토랑등이 아직 영업을 허용하지 않던 시대였다. 혀를 도려내는 것처럼 초라하고 빈곤한 그 맛에 저자는 남 몰래 '문화 혁명의 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한다.

 

'요리는 인간이 만든다. 그 요리가 유통되고 사람들의 혀를 즐겁게 했을 때, 사회는 활력이 넘치고 그런 분위기에 세련미가 더해지면 그것이 문화다.'                  <본문 30페이지>

 

원래 중국이란 나라는 청나라 중기까지는 왕후 귀족이나 지방 호족, 소수의 민간인 부유층은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고급 요리를 바깥에 새나가지 않도록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그러했기에 요리법을 글로 남기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수했고 그랬기에 제대로 된 조리법이 기록된 문헌이 남아 있을리도 없었던 것이다.거기에다 중요한 원전마저 문화혁명 때 분실된 것이 많다는데 그 중에 청나라 시대의 궁중 주방 어선방의 기록(어선방당책)도 후세에 호사가를 겨냥하여 가짜가 여러 권 만들어졌으며 고궁에 남아 있던 책들은 환관들이 반출하거나 바꿔치기를 했다고 한다. 참으로 중국이란 나라도 어지러운 나라였구나. 더구나 중국이란 나라처럼 왕조가 몇 번이나 다른 민족으로 바뀌는 역사를 경험한 국가는 달리 유례가 없다는데 중국이 변화를 겪을 때마다 문화가 성숙해진 역사를 지닌것은 참으로 내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수준 높은 요리를 자랑하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중국요리가 근대적 정신 구조를 갖추기 시작하던 모습을 만나게 되는 때는, 청나라 시대에 한족문화와 만주족 문화가 격렬하게 뒤섞였던 그때에 다른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청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정보공개'였다는데 청나라때는 중국 가지의 요리사들이 이름을 떨치고자 수도로 몰려왔고, 요리의 명인들은 자연스레 조정이나 관리와 환관에게 고용되었다. 정보공개의 분위기에 휩쓸려 이름난 요리사들이 비결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현재의 인터넷에서 많은 블로거들이 레시피를 자랑삼아 드러내듯이 그랬었나보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면서 그러한 풍토에서 청나라 제6대 황제 건륭제(재위1735~1796)는 만주족이면서도 한족요리를 애호햇고, 특히 강남 요리를 편애했다. 그는 건륭제는 미식가였다. 건륭제는 닭과 오리 요리를 좋아했는데, 아침부터 닭이나 오리고기를 구워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상어 지느러미와 해파리는 연회에는 내놓았어도 건륭제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청나라 왕조에서는 후대 황제가 선대 황제의 생활방식을 존중했기에, 건륭제 이후의 다른 황제들도 상어 지느러미를 꺼렸다. 하지만 이 관습을 뒤집은 것이 바로 서태후였다는데 서태후는 몽골계 만주족 출신이자 하급관리 예허나라 혜징의 딸이었는데  몽골계 이슬람교도와 혈연인 한족의 피가 섞였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의하면 서태후가 정말 상어 지느러미를 좋아했다기보다도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즐겨 먹었으리라는 것이다. 권력이란 이런 음식에서도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역사에서 음식의 역사에서 '풍택원'이라는 이름이 빠질 수야 없다. 1930년에 문을 연 이 음식점은 중국 공산당과 함께 걸어온 역사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에 삼켜진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청기와와 벽돌로 지은 건물 내부에는 사철 언제나 난시먼 밖 꽃집 두 곳에서 싱싱한 꽃을 배달시켜 꽃병에 장식했다. 테이블과 의자를 최고급 자단으로 만들었고 잔과 과일 그릇, 숟가락, 젓가락 받침등은 순은으로 만든것으로 썼다. 젓가락은 상아에다 잔에는 건륭제 시대에 만들어진 칠보를 장식하고 호화로움을 자랑했으며 풍택원 요리의 섬세함은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요리사는 모두 산둥성 출신이었다. 하지만 1936년 풍택원 반장은 주변 음식점들이 인플레이션때문에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도 일본군과 친밀했던 덕에 괜찮은 이윤을 내고 있었고, 그 시대에는 요리사는 고소득 직종이 아니었으며 그러한 대우에 불만이 있었던 요리사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구력(음력) 8월 15일에 직원들은 전부 그만두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요리사의 권리가 인정되고 가게는 쇠퇴하였다. 산둥요리 전문점인 '풍택원'은 베이징의 대표 음식점이 되었었다.

 

인간이란 나고 자란 곳의 맛, 바로 어머니의 손맛을 결코 잊지 못하기 마련이다.  문화혁명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산둥요리와 상하이 요리의 대결이라는 측면도 담겨 있다.

 

혁명의 맛은 바로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을 저자가 직접 체험한 역사의 현장을 탐사하여 마오쩌둥 시대의 맨 얼굴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15.2.22.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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