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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 끝의 아이들
전삼혜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1월
평점 :





문득 ‘에오’가 이야기해 준 붉은 실 생각이 났다. 자신과 자신보다도 강하게 이어진, 자신과 다른 초능력자가 있을 거라는 말. 에오를 만났을 때는 유리가 어렸기에 그것이 운명의 상대, 연인 같은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었다. 하지만 시아와 자신 사이에도 그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비록 노리개처럼 고운 매듭은 아니더라도. (p.26)
시아의 두 눈을 마주 보며 유리는 하, 작은 숨을 내뱉었다. ‘우리’가 그랬지. 다른 우주에서도 시아와 나는 엮여 있다고. 붉은 실처럼. 유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닷새 전만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같은 반. 그 외 무언가를 같이 해 본 적이 없는 아이와 엮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런데 50여 시간 남은 지금, 자신은 그 애의 죽음을 막겠다고 한밤중 학교에서 땀 밴 손을 깍지 끼고 있었다. (p.129)
“초능력 때문에 힘들지?” 예지몽을 꾸는 초능력을 가진 유리와 유리의 초능력을 단번에 알아차린 같은 반의 손시아. 유리는 시아가 자신의 초능력을 알아본 것이 너무나 놀라운데, 시아는 자신도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리를 스쳐 지나간다. 사실 유리의 첫 번째 초능력은 ‘나’를 알아보는 거였다. 과학계가 무엇이라 주장하든 유리는 수많은 평행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숨 쉬는 방법을 터득하듯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리고 평행우주에는 수많은 ‘나’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나’가 전부 이 지구의 유리와 똑같은 모습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다른 평행우주에서 다섯 명의 ‘나’가 유리를 찾아와 시아가 지구의 멸망을 초래할 거라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시아를 죽이려 한다. 과연 유리는 다섯 명의 또 다른 자신에게 맞서 시아를 잘 지켜낼 수 있을까?
평행우주를 넘어 시간선을 되돌리며, 가차 없이 찾아오는 너의 멸망 앞에서 우리는 운명에 맞설 수 있을까? 운명의 상대와 이어져 있다는 붉은 실 설화가 전삼혜 작가를 만나 SF소설로 재탄생했다. 평행우주에서 공통으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하고 관측하는 관측자 베이, 떨어지는 것을 역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역중력자 토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인과율자 륜, 변형자 진, 두 갈래 길에선 언제나 정답을 맞추는 판단자 렌, 예지몽을 꾸는 유리와 상대의 걱정을 흡수하여 걱정하는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대리 걱정 능력자 시아까지. 평행우주, 초능력, 타임루프···. 작가는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친구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이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붙들어 놓는다. 신비로운 이야기에 호기심 증폭!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나요? ㅠㅠ 너무 잔혹하지만 애처로운 사연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끔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