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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바라보기
이철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2월
평점 :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삶과 세상과 사람을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여드린 판다가족의 우화는 이후로 전개될 ‘마음으로 바라보는 여덟 가지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판다가족의 이야기는 단지 판다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판다가족의 이야기는 사납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나무 위에서 쓸쓸히 죽어간 어미판다가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어미판다의 사정도 모르면서 먼발치에 서서 어미판다를 조롱하기만 했던 숲속 친구들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펭귄의 날개를 함부로 폄하했던 물개의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주변의 아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만, 그리고 자신의 가능성 확장을 위해서만 노력했던 펭귄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악랄한 사냥꾼에게 잡혀간 어린판다가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가슴을 가진 고슴도치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이토록 사납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어떻게든 우리는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p.246-7)
어느 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다가 제 영혼을 흔드는 문장을 만난 저자.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단지 껍데기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 볼 때이다.” 이 세 문장을 만난 이후로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저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중요한 것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을 하나씩 정리해보았더니 모두 여덟 개의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을 보기에 앞서 책의 절반 아니,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판다 가족의 이야기는 글만이 아닌 그림으로도 따뜻함, 행복함, 기쁨, 쓸쓸함, 외로움, 슬픔 등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해준다.
눈이 많이 내리는, 아름다운 산 정상에 있는 고래바위 동굴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어미판다와 새끼 두마리.
어느 날 판다가족이 살고 있는 고래바위 동굴 밖에 일주일 동안 함박눈이 내렸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새끼판다들은 배고파 울고 있는데 어미판다는 슬픈 표정으로 새끼들을 바라볼 뿐 먹이를 구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동물 친구들은 가짜엄마가 새끼를 다 죽이겠다며 하나같이 어미판다의 흉을 본다.
어린 새끼들이 배고파 여러 날 동안 울고 있는데 어미판다는 왜 먹이를 구하러 나가지 않는걸까. 사실 어미판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미판다가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구하려고 동굴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자신과 새끼판다를 노리는 사냥꾼이 눈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붉은 늑대, 파란 토끼, 강아지와 사막여우는 눈 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어미판다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열흘이 넘도록 눈은 그치지 않았고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던 어미판다는 함박눈이 눈 위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을 덮어줄 거라고 믿으며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간다. 산을 오르던 중 어린 새끼들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동굴로 미친듯이 달려갔지만 새끼들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어미판다의 속마음은 외면한채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어미판다를 판단하고 비아냥거리며 험담을 해대는 동물 친구들.
그들이 마음을 담아 한번만이라도 어미판다의 속마음을 물어봤다면 어미판다가 나무 위에서 그렇게 쓸쓸하게 죽어가지는 않았을텐데 보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괴롭고 아프고 슬펐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던 어미판다는 결국 주변의 무관심한 동물 친구들로 인해 홀로 외로워하며 배고픔과 추위속에서 견디다 못해 죽어버렸다. 저자의 말대로 판다가족의 이야기는 단지 판다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판다가족의 이야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거의 모두가 하나씩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감기처럼 흔한 병이 되어버린건지. 아프고 피가 나면 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단번에 사람들이 알아채고 다독여주거나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등 치료해 줄 수 있지만, 마음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타인이 보고 달래주거나 위로해 줄 수 없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눈치채어주길 기다리다 그 마음이 닳고 닳아서 없어지기 전에 스스로 내 자신과 마주하고 진심을 다해 다독거리며 아껴주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진심은 들여다보지도 않은채 보여지는 상황과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고 그렇게 믿어버린다면 판다가족과 같은 이야기는 무수히 반복될 것이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생각이 맞을 때도 많지만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 매번 옳을 수만은 없다.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을 의심하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가시를 나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가진 가시를 긍정할 수 있을 때 상대방의 가시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라고.
타인과 대화함에 있어서 나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나의 눈과 마음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는 그런 뜻이 아닐까. 고정관념이나 편견없이.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말이다. 내 마음과 마주하듯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가며 눈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기.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삶과 세상과 사람을 더 정확히,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