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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13계단>과 <제노사이드>로 유명한 ‘다카노 가즈아키’의 단편집이다. 작가의 책들이 대부분 추리소설로 분류가 되면서 ‘사회파’소설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인종 차별이나 인명 경시 같은 것을 포함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일본의 우경화나 세대 간 단절을 비판하는 것은, 소설이 보여줘야 하는 게 자극과 재미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해준다.
작품에 대해 언급하자면, ‘발소리’와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죽은 자가 보이는 ‘한(恨)’에 근거한 이야기로 조금은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로 작가의 이전 작 ‘건널목의 유령’에서 보여준 스토리, 구성과 비슷하다. ‘영혼’의 흔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들리거나 보이다는 건 비현실적이지만 범죄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써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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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주지승과 얼굴을 마주치게 하는 계획은 중지하라고 말하려고 했더니 어쿠마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잠시만요. 이쪽은 지금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또 목격자입니다. 처소로 젊은 커플들이 달려와, 유령을 봤다면서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뭐라고?”
“처소 내부가 아주 야단법석이에요.”
“잠깐, 지금 묘지로 가면 보인다는 말이야? 즉, 저기, 그게?”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조주석에 있는 요네무라는 의미를 알아챘는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후루키를 쳐다봤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 유령이……”
오쿠마가 대답했다.
P.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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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은 다른 소설들과 결이 다른 작품 '제로'도 흥미롭다. 이번 단편집 소설들도 ‘한(恨)’과 ‘원죄(原罪)’에 대해 필연적으로 언급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들에 대해 느끼는 바가 비슷해, 이야기가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고 후반부가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여서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인상깊은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작품을 꼽는다면 ‘아마기 산장’과 ‘세번째 남자’였다.
‘아마기 산장’의 미스터리한 스토리 전개는 ‘외딴 산장’이라는 곳의 분위기와 그곳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사건 상상으로 으스스하고, 거기에 불안정한 지식인의 근거없는 이론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지 명확하게 그리고 있다. 게다가 인물 중 한명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은 태평양 전쟁 당시 731부대에서 벌어진 일본의 만행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작가의 관점을 우직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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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해야 성불하지 않고 유령이 되는지 그 조건을 밝혀내려고 했다, 이말입니다.”
하야미는 호기심에 휩싸여 조목별로 적혀 있는 문장을 눈으로 좇았다.
하나, 죽은 자는 노인보다는 젊은이여야 한다.
즉 남은 기대 수명이 길어야 한다.
하나, 죽은 자는 임종을 맞이할 때 욕망 * 망집 * 미련 등 현세를 떠나지
못하는 강한 집착을 품고 있어야 한다.
전항에서 언급했던 기대 수명도 이에 포함.
하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
하나, 처형, 고문 등 참혹한 수단으로 사망해야 한다.
(중략)
하야미는 그 글을 훑어보고서 노학자의 광기를 접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P. 19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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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남자’는 ‘미와코’가 보는 꿈이 전생인지, 다른 사람의 기억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스릴러처럼 그리는데, 과거의 일과 ‘미와코’가 생각했던 것의 결과, 거기에 ‘세번째 남자’에 대해 점쟁이가 언급하는 부분은 마지막에서 반전을 보여준다.
‘두 개의 총구’는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떄문에 너무 현실적인데, 우리나라 역시 이런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페이지는 섬짓하고 그 어떤 공포물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아쉬운 부분은, 기억에 남을만큼 공포스럽거나 자극적인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각 소설이 발행(공개)되었던 시기가 좀 오래-2004년 작품도 있다-된 만큼 배경과 인물이 익숙하거나 유사한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는 작품도 있지만, 긴 호흡의 작품을 읽어내기 어렵다면, 구조가 단순하고 결말이 명확하기 때문에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어 좋을 듯 하다.
덧붙인다면?
1. 우리나라에 출간된 소설들이 대부분 일본에서도 성공한 작품들로써 많지는 않은데,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한 작품들도 번역 출간했으면 좋겠다.
2. 사회비판적인 메세지가 포함되어 현설적이고 호흡이 짧은 추리/미스터리 소설에 관심있다면 추천, 단편집의 단순한 이야기가 끌리지 않거나 뒷통수치는 반전이 기다리는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