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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
사라 피어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7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눈보라, 아주 예전에 요양원이었던 외딴 호텔, 각자 숨기고 있는 과거, 고립, 그리고 연쇄 살인 사건. 일본의 추리 소설에서는 쉽게 다뤄지던 소재와 스토리인데, 스티븐 킹을 제외한 서구의 작가가, 특히 영국 출신의 작가가 썼다는 것에서 관심이 갔다.
이야기 초반부터 인물들에 대한 관계 묘사가 짧고 간결해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고 이 스위스라는 배경이 주는 차갑고 외딴 느낌도 꽤 잘 어울린다. 고립된 상황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부터 놀랍지만, 서로 돕는 듯 하면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의심은 이야기를 더 추리소설에 가깝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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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사실은 나도 계속 형사로 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샘이 죽던 날 엘린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진상을 맑힐 수만 있다면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모두 잊고 새출발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만 과거가 아니라 현 상황이 문제라면?
목구멍에서 흐느낌이 올라오다가 딸꾹질로 바뀐다.
(중략)
윌이 잔에 남은 와인을 마저 마시고 나서 말한다. “내가 화나는 부분이 뭔지 알아? 아이작은 어머님 간병을 당신에게 전적으로 맡겼고, 온갖 귀찮은 법적 수속과 유품 정리를 모두 떠넘겼어. 그럼에도 약혼 파티가 있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과 치졸한 신경전이아 벌이고 있으나 화가 날 수 밖에.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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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건을 추적하면서 진실도 찾아야 하는 엘린의 모습은 탐정과 비슷하기도 한데, 일본의 스릴러 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는 인물들 간의 관계, 그들의 과거, 그리고 그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아주 예전의 과거 이야기가 마주치는 지점이 지속적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쉽게 예측 가능한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첫번째 희생자와 나중에 들어나는 범인의 관계까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인물, 그리고 숨겨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인상깊은 부분은?
번역된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호텔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투명한 유리의 이미지는 속속들이 다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며 눈에만 보일 뿐 다가갈 수 없다는 경계의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모두가 알게 되지만, 진실까지 다가가는 건 어려울거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다.
그만큼 배경이 주는 공포가 있고 후반부에 언급되는 ‘요양원의 정체’와 그것이 전하는 악행과 속죄에 대해서는 살인자의 행위만큼이나 더 다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인물의 입으로만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복기하기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인물들이 처해지는 위협과 살인에는 꼭 마스크가 등장하는데 요양원이나 병원이었다는 것과 연결되는 공포를 만든다. 죽임을 당하는 인물이 처음 맞이하는 것도 마스크이고 우연히 마주한 시체 역시 마스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위생적인 도구라고 생각하는 ‘마스크’가 가장 위협이 되는 도구로 변해서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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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엘린은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짚어본다.
전시용 유리 상자.
손가락 절단(유리 상자에 넣어 둠)
손가락 첫 번째 마디에 걸어놓은 팔찌.
피해자가 착용하고 있던 마스크(가해자도 같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마스크는 결핵 치료를 위해 과거 요양원에서 쓰였던 제품.
엘린은 자기가 쓴 글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하나씩 검토한다. 바로 그 때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불쑥 떠오른다.
혹시 내가 지금껏 엉뚱한 방향에서 수사를 해온 건 아닐까?
(중략)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비로소 엘린은 자신이 지금껏 놓치고 있던 부분에 주목한다.
이 사건은 호텔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 사건은 호텔의 과거와 깊은 연관이 있다.
요양원.
P. 37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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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인물들이 만드는 복선의 혼란이 계속되면서 도대체 어떤 과거가 범인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가 마지막에 답안을 알려주듯이 공개된 범인의 고백은 슬프기까지 한데, 그 진실이 모두가 외면했던 진실이라는 점이 오히려 일본 소설의 ‘사연있는 범인’이어서 익숙하기까지 하다.
다만 일어나는 사건들을 엘린이 추적하기엔 너무 힘겨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보통 추리물에서는 사건을 추적하는데 동조자나 목적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 단계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이 없어 벅차보인다. 만약 이 인물로 후속작이 나온다면 함께 사건을 해결할 동반자 역할이 하나쯤 있으면 더 재미있어 질 듯 하다.
덧붙인다면?
1. ‘엘린’을 주인공으로 하는 후속작 < the retreat >과 <the wilds>가 이미 출간되었다. 국내에는 아직 미번역.
2. 외딴 곳이자 고립된 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복수, 그것을 추적하는 스릴러물을 원한다면 추천,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같은 명탐정이 하나부터 열까지 추리해내는 정통 탐정물을 원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밝은 세상'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