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용어의 탄생 -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윤혜준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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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윤혜준은 영문과 교수로 영국 문학, 비교 문학 등을 주 연구로 삼고 있으나, 그와 동시에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탐구를 시도하며 30여 년 인생을 연구에 공을 들였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은 여러 분야의 다양한 주제에 걸쳐있는 역사 이야기를 각 키워드에 따라 탐사하고 수집한 결과를 공유" 하고자 함을 밝힌다. 즉 이 책은 '근대 용어'라는 단어를 하나의 실마리 삼아 근대 서양 문화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다양한 책의 원문을 발췌-번역하여 제시하는 백과 사전식 저작물이다.

책에는 총 스물네 개의 단어가 제시되어 있다. 책의 제목이 근대 용어의 '탄생'이다 보니 독자의 입장에선 언뜻 근대에 이르러 새롭게 생겨난 단어를 생각하게 되는데, 막상 제시되는 단어는 무無에서 유有로 창조된 단어는 아니다. 이 단어들은 머나먼 기원을 가지는 것도 있고, 대부분 근대 이전에 다양한 문헌에서 맥락과 함께 발견되고 쓰이던 기존의 단어들이다. 즉 제목이 가리키고 있는 '탄생'이란 기존의 단어가 사회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며 끝없이 의미 변화를 일으키며 재탄생된다는 의미이다.

선별된 단어는 알파벳 A-Z의 순서에 따라 제시된다. 각각의 단어가 어떠한 인과 관계나 선후 관계에 놓인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사전식 배열은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각 챕터의 실마리가 되는 단어들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비지니스, 계몽, 진보, 유토피아 등이다. 근대 이후 사회적 체제와 경제 산업 구조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급변하였는데 이와 밀접히 연관된 단어들로, 현대를 살아가는 이 시점에도 이들 단어는 퍽 유효하다. (물론, 현대 용어의 탄생이라는 책이 발간된다면, 그 책에 선별된 단어들은 이 책의 단어들과는 사뭇 다르겠지만 말이다.

각 챕터의 구성은 우선, 영단어가 우리말로 존재하는 경우에는 우리말 한자어 풀이를 개략적으로 제시한다. 다음으로는 (영)단어의 기원, 그리고 단어의 변화 과정에 따른 근대의 특성을 제시한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영문학자이므로, 이 책의 핵심은 우리말 단어에 대한 소개가 아닌 '영단어'에 대한 탐구이고 그렇다 보니 당연히 서구 문화를 소개한다. 이들 중 꽤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만 소개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consumption(소비), 이 단어는 라틴어 'consumere'에서 유래한다. '다 가져가다'라는 뜻의 이 라틴어 단어는 사용해버리다, 먹어버리다와 같이 사용되었으며, 영국 의학서에서 이 단어는 기력과 생명을 소모시키는 불치병의 뜻으로 쓰였다. 이처럼 근대 이전의 consumption은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되었으며, 17세기에 이르러 경제 활동에 사용된 consumption 또한 '지갑의 소모병'이나 '불치병과 같은 낭비의 증상'쯤으로 통용되었다. 하지만 농업을 통한 자급자족 경제에서 벗어나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소비'의 증가는 일자리의 증가와 경제 발전으로 밀접하게 연관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 단어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 확정하며, 소비 행위의 주체를 'consumer'라고 명명한다. 소비를 시장경제의 일상적이고 건전한 모습으로 인정하는 시대가 근대 용어 consumption을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쯤 되면 단어가 품고 있던 부정적 뉘앙스는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전체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미국과 유럽 대륙에서 소비의 팽창은 아프리카 대륙 등 식민지 국가에 대한 노동력 착취로 이어진다.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설탕을 소비하는 영국 신사들을 위해 아프리카인들의 생명이 소모되는 현실은, 시장경제에 기초한 사회가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 소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챕터는 이렇게 끝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consumption의 함의를 재고해 볼 수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 끝없이 변모하는 생명체인 단어는 근대에서 현대 사회에 이르는 동안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고 새로운 뉘앙스가 추가된다. 내가 느끼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라는 단어는 근대에 비해 더욱 확장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근원 회귀적이다.

'소비'의 한자어는 '사라지다, 소멸하다'를 뜻하는 '소消' 자에 '쓰다, 소모하다'를 뜻하는 '비費' 자로 이루어진다. 사라지고 소멸할 때까지 쓰고, 소모하는 것이 '소비'의 근본 뜻인데, 현대 사회에서 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근대의 출발점에는 생산과 함께 경제의 양 축을 구성하던 소비가 자본주의의 팽창과 함께 경제적 윤활유 역할을 넘어 재화든, 노동이든, 자산이나 욕망까지도 모든 것이 사라지고 소멸할 때까지 쓰고 소모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부의 소비가 빈자의 소모를 담보로 했던 윤리적 문제에 더해, 개인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대한 갈급과 타인을 잣대로 하는 불안과 공허가 소비의 주체를 소비의 객체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이는 퍽 교묘하여, 더 많은 물질과 잉여물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임에도, 다양한 광고 문구와 SNS 등을 통해 마치 우리가 현명하고 똑똑하고 자기 권리를 확실히 누리는,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의 존엄을 결정지을 줄 아는 '주체'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소비를 하면 할수록 욕망은 더욱 커져만 가고, 채울 수 없는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공허함이 마음과 통장을, 개인 스스로를 병들게 한다. 자신을 모두 소모할 때까지도, 그 후에도 멈출 수 없는 것이 현대 사회의 '소비'인 셈이다.

이처럼 단어는 기원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사회 현상을 겪으며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고, 다양한 쓰임새로 변모하기도 하지만, 그 역사의 출발점으로 끝없이 회귀한다. 현대 사회의 '소비'가 기력과 생명을 소모시키는 불치병, 그러한 부정적 뉘앙스와 불안감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에 제시된 다른 단어들 또한 사정이 비슷하다. 그러니 한 챕터씩 읽다 보면 근대를 표방하는 단어를 필두로 서구의 역사, 문화, 철학과 과학을 탐색하게 되고 이러한 사료에서 저러한 사료까지 넘나드는 저자의 지적 호기심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물론, 이 책에 비판할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연구하여 공들인 작품을 누가 뭐라 할 자격이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긍정적 비판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발전의 계기가 되길 바라며, 책을 읽으며 풀리지 않던 의구심을 몇 줄 더 덧붙인다.) 우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단어는 영단어이고 영단어의 기원과 서구 문명 사회에서의 변화를 탐구하는 책인데, 글의 구성은 영단어와 이에 대응하는 우리말 단어의 병기이고 챕터의 서두에서 우리말 한자 풀이를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심지어 첫 번째 단어인 America의 경우는 우리말에 '미국'이라는 단어가 있고 '아메리카'라는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메리카'라고 제시한다. 아무튼 독자의 입장에서 혼란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끝내 의구심을 남긴다. 각국의 역사에 있어, 서양, 동양을 막론하고 각각의 근대화 과정이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저자의 집필 방식은 마치 서구에서 동양으로 근대화가 전파된 것이고, 이렇게 유입된 근대의 개념들이 한자어로 번역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동양 사회에서 이미 근대화가 진행 중이었고, 각각의 개념에 맞는 단어가 생겨났거나 혹은 기존 단어의 의미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후에 서구 문명이 유입되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각각의 단어에 대응하는 번역이 진행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역사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난을 예상하며 감수하고라도, 굳이 우리말 한자어 풀이까지 글에 싣고자 한 것은 솔직히 조금은 저자의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말 병기 및 해석은 제외하고, 영단어를 바탕으로 한 서구 문명사 탐색만 제시했다면 독자 입장에서 좀 더 쉽게 읽히고 독서의 목적이 분명한 책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인용하는 많은 자료들의 해석에 있다. 인용하는 자료는 각 단어가 근대의 특성을 어떻게 반영하게 되었는지를 뒷받침하는 근거인데, 이때 자료를 저자 본인이 해석하여 제시한다. 저자의 전문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 책이 저자의 평생 연구 관점을 충실히 반영하는 책이기 때문에 해석에 있어서 자의적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democracy를 민주'주의'로 번역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인용한 자료의 번역에 있어서는 민주주의, 민주 체제 등을 혼용하여 사용하는데, 이는 분명 저자의 관점이 반영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과, 말들의 기원, 말에 반영되는 사회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기대하며 책을 읽었는데, 솔직히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독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오랜 연구와 노력이 반영된 이 책이 '단어'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출판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께, 백과사전 식 책을 통해 잡다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분들께, 용어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공부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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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보는 마음 -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
노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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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노지영'이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라는 부제를 달아 낸 책, 『뒤를 보는 마음』을 읽다가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김경인' 시인에 대한 인터뷰였다. 내가 무척 아껴 읽은 시인의 시집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에서 대부분의 시가 다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 중 하나는 「상속」이었다.

"손님은 며칠째 떠나지 않고 있다 / 손님은 나 몰래 나를 사랑하여 / 이상스럽게 쓸쓸한 어제보다 더 더러워진 손으로 / 나를 헤집어 여름을 꺼낸다 여름이 펼쳐지면 나는" 이라고 시작하는 이 시에서 '상속'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나 몰래 나를 사랑하여, 나를 온통 헤집어 여름을 펼쳐내는, 텅 빈 나의 얼굴을 거울로 비추며 나 몰래 피의 담을 넘어 내 방에 들어와 내 방을 정돈하는, '손님'에 대한 이야기만 나올 뿐이다. '손님'의 사전적 의미는 반갑게 찾아온 사람일 터인데, 이 시에서 손님의 함의는 어쩌면 오래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일 수 있고,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사람, 기다림의 대상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어쨌든 나의 깊은 자아, 나 스스로에게도 꽁꽁 숨겨 버린 내면의 비밀스러운 자아, 뒤틀린 꿈이 되어버린 그러한 나 자신을 '손님'의 함의로 읽었던 것이다. 그러니 왜 그녀가 쓴 시의 제목이 「상속」이었는지, 이 시가 좋아 몇 번이고 읽으면서도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매달 필독서 한 권과 선택 도서 한 권을 읽어야 한다. 선택 도서 목록에 이 책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두 번 생각 않고 이 책을 골랐다. 여덟 명의 시인을 인터뷰한 대담집인데,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많았지만 그보다 '김경인'이라는 이름이 반가워서였다. 어쩌면 내 궁금증이 풀릴지도 몰라. 그렇게 책은 나에게 왔다.

작가의 히스토리를 읽는 걸 좋아하고 작가의 얼굴을 보며 작품에 녹아든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는 '김경인' 시인이 남자라고 생각했다. 시집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는 시인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는 내게 상당히 투박하고 거친 질감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속에서 '노지영'이 인터뷰한 김경인 시인은 내가 아는 한 옆집 언니를 닮았다. 꾸밈없이 수수하고 가히 아름거나 여성스럽다 할 수 없는 이웃 아주머니 같은 일상적 외모를 지닌, 자신의 일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하는, 시인과 시인이 아닌 삶의 경계 짓기를 할 줄 아는, 모 대학의 교수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시인이 바로 소설가 김동인의 손녀라는 사실이었다.

노지영 평론가와 김경인 시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러니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삶을 모질게 살아가며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게 하는 추동력이 누구에게나 있는데, 이를 만약 시작의 동인이라고 한다면, 그녀의 동인은 너무나 잘난 '피'였구나. 너무나 잘난 상속, 원하지 않는데 부여받게 되는 훈장 같은 집안의 이름. 그녀에게 그 이름, 그 피, 그 상속은 성장기의 고통이고 번민이 되었다. 그녀에게 세속의 언어를 앗아가고 그녀 자신 스스로에게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기 폐쇄적 시 쓰기를 쓰게 했다. 그런 그녀의 시 쓰기는 당연히 실패작이었을 테고, 이제 그녀는 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어느 만큼의 자유를 얻어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지만, 불경하게도 나는 '글쎄'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내가 좋아한 시인의 시집 제목은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이다. 『뒤를 보는 마음』에서 담담한 시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이제 그 시의 제목이 '상속'인 까닭을 알았다. 그녀에게 찾아드는 손님, 그녀를 헤집어 아름답고 근사한 여름을 꺼내었다가 사라지게 하는 손님, 그녀를 영영 사랑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텅 비게 하고, 수은 연못의 뒤틀린 물고기를 꺼내게 하는 손님은 바로 '상속', 거부하고 싶은 이름이다. 그 이름을 거부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녀는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비뚤어진 삶을 치열하게 산다. 하지만 우리가 거부하고 싶은 그 이름, 그 꿈의 자리로 우리는 항상 환원하고 만다. 우리를 번민과 갈등의 삶으로 살아가게 한 추동력, 그 시작의 동인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거운 추를 달아 깊은 바다에 던진다고 한들 그것은 그저 잠잠히 가라앉아 있을 뿐,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살았던 시간을 부정하고는, 우리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지금 내가 쓴 리뷰는 이 책의 한 꼭지인 '김경인' 시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좀 더 상세히 파고든 것이다. 사실 이 책, 『뒤를 보는 마음』은 시인 여덟 명과 노지영씨가 인터뷰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시인들, 예를 들자면 이문재, 손택수, 김경인, 강은교 시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시인들 외에 김기택, 김정환, 김해자, 신용목 시인의 '시'에 대한 철학, 시인의 내면과 시작의 태도, 삶을 살아가는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다.

시를 읽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글들은 그저 활자와 의미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접근 가능한 곳에 있다면, 아무래도 '시'만큼은 시인의 마음이 되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지영 평론가의 인터뷰가 담백했고, 문학을, 시를, 깊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의 질문이어서 시인들의 초상을 이끌어내는데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문재 시인의 인터뷰도 강은교 시인의 인터뷰도, 모든 시인의 인터뷰 면면이 다 좋았지만 특히 내게 강렬했던 시집과 시인, 김경인 작가를 중심으로 리뷰를 써 보았다. 시집과 더불어 시인의 마음이 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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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하루 - 다정하게 스며들고 번지는 것에 대하여
강건모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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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에세이스트, 문학 편집자, 사진가, 뮤지션, 영상제작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작가는 냉정한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문학 편집자로서 제격일 것 같다. 그는 아직 발간되지 않았고 혹은 영원히 서랍 속에 잠들어 있을, 그러나 영원한 기대와 열망이 대상이 될 미완성의 소설을 쓰길 소망하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 책에서 작가는 제주도에 혼자 산다. 바람의 정원에서 글을 쓴다. 이웃들은 담이라 할 수 없는 낮은 벽을 자연스럽게 넘어 들어와 그의 정원을 차지하기도 하고, 고양이 묘선이는 작가의 다정함에 길들어 글을 쓰는 작가의 발치에 가만히 앉는다. 작가는 그렇게 글을 쓴다. 솔직히 그의 글은 조금 조심스럽다. 작가 자신이 사람을 사랑하다가 사람을 경계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연민하다가도 애틋한 마음에 잠긴다. 현실의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상처의 유년과 조금씩 조우하다가 어느 결에 휙 돌아서 버린다. 더 많이 보여줄 것도 같은데 독자가 마음을 앞세워 다가가면 급히 꼬리를 감춘다. 마치 숨바꼭질과 같은 글, 혹은 '다정도 병'인 것이 분명한 마음 여린 한 사람의 조심스러운 자기 고백과도 같은 글이다.

그러니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글 자체가 지닌 형식적 유려함이나 의미의 명철함 보다는 그 글 자체가 전하는 분위기와 뉘앙스를 읽는다. 작가의 글은 마치 나의 글과도, 혹은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글과도 닮았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그가 독자에게 바란 것은 '글'이 읽히기 보다는 '마음'이 읽히길 바란 것이다. '무탈한 하루'라는 제목이 명징하게 보여주듯 말이다. 오늘 하루도 무사했니? 나도 오늘 하루 무사했어, 너의 하루도 그러하길 바라. 아무것도 아닌듯한 평범한 하루의 안부가, 세상에 있는 누군가는 때론 슬프고 때론 고된 하루를 보냈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내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한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희미한 타전 소리만으로도 힘들었던 오늘은 무탈한 하루가 된다.

제주의 해풍을 맞고 한 사람의 정성과 사랑으로 땀땀이 기록된 이 담백한 에세이를 읽으며 독자들은 어느결에 스미고 번져 나를 물들이는 이 다정함의 날들에 대한 환기와 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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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문화 - 내부자가 된 외부자 교유서가 어제의책
피터 게이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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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매달 출판사에서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미션 도서 외에 읽고 싶은 한 권의 책을 더 고르고 이에 대한 서평을 써야 한다. 굳이『바이마르 문화』같은 어려운 책을 고른 걸 사실 좀 후회했지만, 이 책을 고른 까닭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완독 후 여러 의문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부터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되는 1933년까지 '바이마르공화국' 시대를 거친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혼란과 배반과 모반과 계략 속에서 바이마르공화국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고난에 빠져 있었고 대내외적 혼란이 가라앉을 무렵인 1923년에 이르러 바이마르공화국은 나름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황금기는 역사학자 '피터 게이'에 의하면 짧지만 강렬한 시기이다. 그는 이 시기를 '위태로운 영광이었으며 화산의 분화구에서 추는 춤이었다. 바이마르 문화는 짧고 혼란스러우며 허약했던 순간에 역사에 의해 내부로 몰려들어왔던 외부자들의 소산이었다.'라고 일갈한다. 건축-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법한 '바우하우스'부터, '라이아 마이너 릴케', '니체', 그리고 토마스 만의 『마의 산』까지. 바이마르공화국 시기는 독일의 민주주의 쇠락부터 히틀러의 권력 획득 과정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혼란과 요동치는 정국 속에서 그 불안의 에너지를 예술과 문학, 음학, 문화의 성장에 폭발적으로 쏟는다. 이 의심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황금기, 짧지만 강렬했던 바이마르공화국 시기는 히틀러 정권 탈취에 의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급박하게 전복되고 몰락하는데, 그 후에도 외부로 퍼져나가 영혼의 힘으로 영원히 살아남는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바이마르공화국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피터 게이의 평에 따르자면 '문화적 귀족이자 철학적 아이러니스트'였던 '토마스 만'에게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이 작품은 바이마르공화국 황금기인 1924년에 출간되었고, 두꺼운 분량과 상관없이 매우 큰 인기를 끌며 대중에게 팔려 나갔다.

『마의 산』은 남독일 고원, 슈바벤 호수를 건너 스위스 지역에서 알프스산맥을 거슬러 올라간 '다보스 플라츠'에 위치한 요양원이다(가상의 공간이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결핵에 걸린 사촌 '요하임'을 방문하기 위해 3주 일정으로 그곳을 방문한다. 하지만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곳에서 시간의 감각을 상실하고, 저지低地(그의 고향 함부르크뿐만 아니라 일반적 사회와 세속)의 삶으로부터 멀어진다. 사촌 방문 3주 일정은 금세 지나고 한스 자신도 요양원의 사람들과 같은 '병'에 걸린다. 곧 세 달, 삼 년을 지나 그는 결국 요양원에서 7년을 머문다.

엄밀히 이 소설은 성장 소설류이지만, 단순히 사실주의적 성장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심오하고 복잡한 상징적 장치들로 둘러싸여 있다. 우선,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마의 산'과 '저지低地'이다. 작품의 초입에서 작가는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시간을 훨씬 능가하는 내적 변화를 일으킨다.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망각을 낳는다. 공간은 인간을 여러 관계로부터 해방시키며, 인간을 원래 그대로의 자유로운 상태로 옮겨 놓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밝히는데, 사실 이 부분만 읽어도 '마의 산'의 상징성을 간파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마의 산'은 '한스 카스트로프'라는 청년을 '현실의 관계'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 본연의 자유의 상태로 옮겨 놓는 공간이다. '저지低地'가 시간의 질서에 따른 규율과 규칙의 삶, 사회적 관계에 얽매여 전통과 문화를 답습하며 살아가는 의무와 책임의 삶, 선線적인 삶을 상징한다면, '마의 산'은 모든 시간이 정지한 공간, 죽음을 화두로 병과 퇴폐에 탐닉하는 공간, 사회적 자아를 상실하고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자아에 빠져드는 공간을 상징한다. 이 공간, 즉 '요양원'은 『바이마르 문화』에서 작가 피터 게이의 언급을 따르면, '평화를 역겨워하고, 죽음의 무도회가 준비되어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번영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패한 퇴폐적 유럽의 복제품'이다. 하지만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개인의 성장에만 초점을 두자면, '시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은 공간. 망자들이 취생몽사하는 심연. 죽음의 심연인 동시에 그렇기에 가장 강렬하고 가볍고 자유로운 욕망과 원시적 자아의 공간'이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이곳에 올라와 고향인 저지대로 돌아가지 않고 무언가에 홀린 듯 요양원에서 칠 년이라는 망각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개인 내적 성장에 있어서는 청년에서 사회적 자아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만 쓰기에는 『마의 산』이라는 작품은 물론 무척 복합적이다. 작가 토마스 만은 이 요양원에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들 각 인물은 수 세기 동안 유럽을 발전시키거나 분열시킨 사고들이 유형화된 캐릭터들로, 예를 들어 한스를 맞닥뜨린 처음 순간부터 "이곳을 떠나 자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경고를 하는 계몽주의자 세템브리니는 한스로 하여금 삶의 질서, 건강한 업무의 세계로 복귀할 것을 염려하는 이상화된 아버지의 전형이다. 하지만 한스는 이 선하고 합리적인 자유주의자를 좋아하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에게 요양원에서 칠 년은 누군가에 의해 감금된 세월이 아닌, 자의에 의해 선택된 것으로 정지해 있는 영원이며 인생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연금술적 마술의 순간이다. 요양원에서 시간의 관념은 사라지고, 건강한 생의 업무 대신 죽음에 지배당한 문제적 세계가 한없는 자유와 가벼움을 불어 넣는다. 얼핏 보면 한심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지만, 일면으로는 과잉된 에너지의 축적이 언제든 폭발할 것처럼 불안감을 안고 있는 이곳에서 한스 카스트로프는 죽음과 병과 욕망과 자유 의지에 깊이 이끌린다.

그런데 한스 카스토르프가 요양원에서 칠 년의 생활 끝에 저지의 삶으로 복귀하게 되는 것은 전쟁 발발이라는 외부적 사건, 역사적 청천벽력 때문이며, 그렇기에 그가 요양원을 떠나는 장면은 급작스럽다. 사람들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마의 산을 떠난다. 한스도 이들과 함께 무모한 출발을 감행한다. 마지막 이별의 장면에서 세템브리니가 그를 안고, "이제야 떠나는군! 네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떠나길 바랐는데. 나는 네가 일하러 가기를 바랐는데, 이젠 네 형제들 틈에서 싸우겠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가 말한 '다른 방식'은 아마 자유 의지에 의한 떠남, 한스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길 세템브리니는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마의 산'과의 이별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에 의해서이고, 이렇게 기나긴 장편 소설의 분량에 비해 턱없이 짧게 배치된 결말 장면에서 작가 토마스 만은 우리의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양 운명 속으로 내팽개쳐 버린다.

『바이마르 문화』에서 피터 게이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심도 있게 논하면서,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으로 '눈'의 장을 꼽는다. 요양원에서 한참의 세월을 흘려보내며 한스가 죽음과 병의 방종에 헤매며 탐닉하고 있을 때에 산속으로 스키를 타고 갔다가 눈보라를 만나 고립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이 눈보라 속에서 넘어져 잠이 들며 꿈에 빠지는데, 이 꿈을 통해 자신의 현재 삶이 정지해 있는 영원임을 깨닫고 꿈에서 깨어난다. 곧 그는 자신이 탈진해 눈 속에서 얼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애착이 실은 생에 대한 강렬한 긍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 속에 있지만 죽음보다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닌 사랑이다. "나는 선과 사랑을 위해 인간은 죽음이 그의 사고 위에서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뒤 그는 가까스로 생환한다. 이 생환은 한스가 눈보라에서 살아 돌아온 사건이기도 하지만, 한스라는 한 인간의 '각성'의 순간이기도 하다. 오랜 방황과 무감각한 시간의 소요 끝에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맞닥뜨리고, '삶'의 장소로 돌아오는 것이다.

한스 카스트로프가 저지대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전쟁이라는 외부적 장치에 의해서이지만, 알고 보면 이 생의 귀환에는 내면의 각성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 비록 작가가 마지막 구절에서 "온 세상을 뒤덮는 죽음의 축제에서도, 사방에서 비 내리는 저녁 하늘을 불태우는 열병과도 같은 사악한 불길 속에서도, 언젠가 사랑이 샘솟는 날이 올 것인가?"라고 의문하고 있지만, 그의 의문은 절망적 비관주의가 아닌, 희망적 긍정이다. 

피터 게이는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에 대해 "그러나 이 시기의 바이마르는 마의 산 위의 사회와 흡사했다"라고 쓴다. 비아마르공화국 내에서 청년의 정치사는 이들의 수많은 아이러니 중에서 가장 통절한 것이었다고 평한다. 일부의 진정한 혁명가를 제외하고 죽음에 도취된 이 시기의 청년들은 치명적이기는 하지만 눈을 감은 채 심연 속으로 돌진할 정도로 젊었다. 이런 청년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것은 '나치'이다.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을 통해 알 수 있듯) 인내를 갖고 합리성과 절제를 가진 진정한 자유를 향하라고 촉구한 사람 중 하나일 뿐, 청년들을 구원하지 못했다. 아들들은 떠나기 위해 모반을 꾀했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어머니의 전능함을 저버리고 싶어 했다. "이들에게 명령을 내릴 자라면 누구라도 받아들이려 한다"는 이 젊은이들은 진정한 혁명에 대한 준비 없이 오로지 영웅숭배, 진정한 혁명적 '사상'에 도취되어 세상을 전복시킨다. 1932년 바이마르공화국은 사방으로 무기력하고 곤경에 처했으며, 그 위기를 미처 의식할 새도 없이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된다. '저녁 하늘을 불태우는 열병과도 같은 사악한 불길'이 젊은이들을 덮쳤고, 그들에게 '언젠가 사랑이 샘솟는 날'이 오기까지 너무 많은 희생과 고통과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실 『마의 산』도『바이마르 문화』도 모든 내용을 이해하며 읽기에는 난해하고 어려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을 나름의 열정으로 탐독하며 완독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정말 기성세대로, (기성세대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그러하듯) 그다지 악의적이거나 비아냥대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약으로 신 시대를 열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염려한다. 아버지의 복수만큼 어머니의 전능함 또한 청년들에게 똑같이 해로운 것이라는 작가 '피터 게이'의 말에 통감하면서도, 청년들의 운명을 행운으로 바꾸는 전능함을 발휘하고 싶다. 바이마르공화국처럼 혼란과 불안의 극단은 아니지만, 사방에서 다양한 분노와 혐오, 분열이 아이들을 잡아당기고, 갈 곳 잃은 아이들의 열정과 불안과 자유 의지가 농축될 때 이것이 나쁜 방향으로 분출하고 폭발되지 않기를 바란다. 배반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악의적이고 비관적이지만, 그저 우리 기성세대를 거스르는 일쯤으로 볼 때, 기존의 부조리와 구태의연한 관습과 어른의 세속적 욕망과 경직된 의무 부여를 거스르는, 그러한 부모에 대한 배반을 통해 실컷 헤매고, 멈추지 말고, 사랑이 가득한 삶의 자리로 귀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포스팅은 교유서가 서포터즈로, '피터 게이'의 문화 역사서 『바이마르 문화』에 대한 서평인데, 토마스 만을 비롯, 헤르만 헤세,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로이트, 막스 베버 등 비록 공화국은 짧은 시간 안에 쇠락했으나 그 정신은 오래 살아남은 '바이마르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본래 소설을 읽을 때에 작가적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도 나 스스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슬슬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가. 더 깊은 앎은 또 다른 감동을 이끈다는 생각을 한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  『바이마르 문화』를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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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 - 마케팅 전문가들이 주목한 라이프스타일 인사이트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이노션 인사이트전략본부 지음 / 싱긋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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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는 '이노션 인사이트전략본부'에서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새해를 계획하는 중요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년 10월 출판하는 트렌드 전망 도서이다. 교유당의 교양 브랜드인 '싱긋'에서 글로벌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인사이트전략본부와 손을 잡고 출판하고 있다.

자본이 세상의 모든 출발점이자 귀결점이 되어버린 시대에, 그리고 그 자본의 생산과 소비가 (우리의 착각 중 가장 큰 착각이겠지만) 대중에게 빠르고 쉽고 공평하고 광대하고 무작위적으로 공유되고 복제 재생산 재창작되는 문화 속에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비자의 심리, 전망을 읽어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물론, 심오하고 디테일한 분석을 기대하면 좀 실망스럽고, 솔직히는 누구나 다 알 법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2023년 올 한 해 가장 트렌디했던 문화를 다각도로 조망하며, 데이터를 분석한 표와 그래프, 사진을 적절히 배치하여 읽기 쉽고 알기 좋게 구성하였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주목한 라이프스타일 인사이트'라는 책의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책을 읽은 후 감상평을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하면 "노동의 가치가 하락한 시대에, 결국은 대부분의 노동자가 최대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 판매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는 미래 자화상의 예고편"쯤 될 것 같다.

삶이란 본래 거대한 순환 구조 속에서 상호 배타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며 굴러가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의 삶이란 SNS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빠르다. 불확정성과 우연성에 큰 영향을 받고, 그렇다 보니 소위 '문화'라 불리는 것들도 너무 쉽게 나타났다가 또 쉽게 사라진다. 본래 '문화'란 시간의 소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어서, 일정한 시간을 두고 공동체 구성원이 상호 작용하며 생성, 변모하는 것인데 요즘의 '문화'는 시간의 소요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요즘의 이런저런 현상은 '문화'라 불리기보다는, '트렌드'라고 불린다. 무작위, 익명, 대중이 참여 가능한 인터넷 공간이 사람들 삶의 주 무대가 되면서 '라이프스타일' 또한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대중의 호응이 있을 때 비로소 '스타일'로 자리 잡는다. 때로는 그 호응에 깊은 타당성이나 인과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인과성 자체를 무겁게 여기고 거부감을 느끼거나 혐오하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 '쿨하다'라고 지칭되는 삶의 방식이나 문화는 이 책에서 분석한 대로 정의와 공정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 솔직히는 의구심이 든다. 아무튼 이러한 요즘의 트렌드는 예전 말로 하자면 '유행'인데, 워낙 빠르게 변하고 금방 시들해지곤 하니 예측하기 어렵다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그 흐름에 편승하여 가볍게 즐기고 가볍게 소모하는 경향이 짙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트렌드'의 파급 효과는 그 어떤 시대보다 크다. 단순히 소비의 문화라고 치부하기엔, 요즘의 트렌드는 삶 곳곳에 깊숙이 침투하여 우리의 경제 기반과 삶의 방식 그 자체를 형성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이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트렌드의 '뒷' 담화이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라이프 인사이트는 엄밀히는 지나가버린 유행의 무엇이다.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은 연속적이어서, 지나간 현상을 파악하고 분석하며 이해하는 일은 미래의 흐름에 대한 통찰이 되어줄 것이다. 마케팅이 중요한 경제 활동 전반의 곳곳에서, 미래 산업을 지향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이들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스낵 같은 책으로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를 권한다. 매 해 출판되는 책이니, 꾸준히 모으면 한 해를 넘어, 한 세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터이니 수집하는 재미도 꽤 클 것 같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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