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아름다운 산문집은 오래전 소설가를 꿈꾸던 한 소년이 절망을 통해 문학에 입문하고, 길 위의 방랑과 수많은 사연을 전해 들은 밤과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통해 소설을, 글을 써 내려가며, 그렇게 이제는 작가(소설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는 삶의 기록이다. 문학, 소위 '글'이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써야 하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작가는 자신의 생이라는 하나의 선 위에서 여러 사연이 얽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을 담담히 응시한다. 그것을 듣고 기록하고 전하는 이로서 문학의 소임을 풀어낸다. 말하자면 문학의, 문학을 위한, 문학에 대한 에세이인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간결한 문체에 깊은 서정이 담겼다.

 손홍규 작가의 삶은 문학이고, 그에게 문학은 '소'다. 소,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소를 기르고 자식을 위해 소를 팔고, 가정이 몰락하여 온 가족이 비참한 선택을 할 때에도 묵새기며 마지막까지 등을 어루만지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하고 사람들의 삶을 증언해 주는 최후의 유일한 목격자. 하지만 더 이상 소를 한 집안의 기둥처럼 지키고 기르는 이들이 사라지고 공동체의 삶이 붕괴될 때에 소는 점점 작아진다. 시대의, 시절의, 사람들 이야기의, 그 붕괴의 중심에 있는 이는 바로 '소'다. 소년 시절로부터 청년에 이르도록 모든 이야기의 기록자였던 소를 팔고 돌아온 밤, 아버지는 작가에게 '이래도 소설이라는 것을 쓸 테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소설을 쓰고 말고 할 게 있나. 소, 한 시대와 모든 사람들의 사연을 묵묵히 듣고 있던 소. "소설은 이미 소가 다 써버렸다"는, 이 작품집의 첫 수필 <문학은 소다>의 마지막 구절은, 작가의 정체성과 글쓰기의 근원을 표상한다. 작가에게 '소설(문학)'은 바로 '소'이며, 이는 "세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는 비장하게 희극적인 삶을 외면할 수 없는" '듣는 이', 최후의 유일한 목격자, 이야기 전달자로서의 삶이다. 이렇게 '소'는 한 작품을 통해 '문학'의 지독하고 마음 아린 처절한 은유가 된다.

 오래간만에 첫 작품(「문학은 소다」)부터 너무 아름다워,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작가와 작품을 만났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때론 부조리하고 때로는 험하며 때로는 서럽고 원망스럽지만, 분노하고 투쟁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기 보다 경계와 편견 없이, 그 누구가 되었든 사연이 있는 이라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가 한 사람을 빛나게 하는, 그런 '듣는 귀'가 있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진실과 서정과 세상을 보는 균형과, 그리고 아름답고 간결한 문체를 동시에 지닌 작가의 이 산문집을 추천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사람들의 사연과 각자 각자의 언어와 그 말들이 교류하며 지어내는 깊은 세계를 통해 나 자신의 사연을 회상하는, 이야기의 단초가 필요한 이들에게 특별히 더 이 작품을 추천한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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