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이 글은 순수한 허구이며, 그래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고유명사, 시간, 배경, 장소 등

        모든 것이 창작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19의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읽으시는 분은 주의 바랍니다. 


 

                                                                         ​ <JAL 747>


 

< MISSING JUMBO >


 

 

 < 第3章 82名 全員死亡 >

  6. 

 그렇게 해서 찻집을 나왔던 두 사람은 병원까지 다시 돌아와서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또 그 차 안에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간단하게 하고자, 편의상 이름을 붙임)

 貴島: 그렇다면, 이즈미(和泉)의 장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重信: 오늘밤은 츠우야<通夜-밤새 기원함 또는 시신을 장례 치르기 전에 하룻밤을 새면서 조상(弔喪)하는 밤>니까, 장례는 내일 오후 1시부터입니다.
 貴島: 그럼, 저는 일단 내일 아침 일찍 여관으로 들어가죠!
 重信: 네, 그럼 그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일단, 회사로 다시 들어 가봐야 한다...>면서 시게노부(重信)는 오오무라 역(大森驛)에서 내렸다.
 그러자 그때, 키지마(貴島)가 또 이렇게 말을 했다.

 "저도 일단 하네다(羽田)에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네, 그럼!"

 시게노부(重信)가 이 이렇게 말을 하고는 그곳을 떠나자 키지마(貴島)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달려가던 차 안에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 동네들은 온통 회색(灰色)으로 보였고, 그것은 또 뭔지 모를 으스스한 느낌을 전해주는 듯 했다.
 


<環狀도로> 

 잠시 후, 차가 칸죠우(環狀-道路=도시를 감싸듯이 돌아가는 環狀도로) 8호선에 들어서자
 키지마(貴島)는 운전사에게 정비 장(整備場)으로 가자고 말을 했다.
 그리고는

 <아마도 그 점보는 어젯밤에 격납고로 옮겨져서 지금까지도 현장검증이 실시되고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그럴 것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또 자신은

 <그 기체의 내부까지는 몰라도, 그 기체의 외관만은 밝은 태양 아래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 * *

 잠시 후, 키지마(貴島)는 가솔린스탠드(gasoline stand-注油所) 앞에서 내렸다.
 그러자 도로 바로 건너편에 있던 해상보안청(海上保安廳)의 격납고(格納庫)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키지마(貴島)는 곧바로 걸어가서 그 격납고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격납고의 내부를 통과해서 빠져나갔다.
 그러자 곧 넓고도 넓은 에이프런(apron stage)의 한 중간에 그 문제의 점보가 옮겨져 있던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기체(機體)는 주변에 로프로 고정이 되어 있었지만, 그러나 전날의 긴박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그 기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서있었다.

 * * *

 잠시 후, 그 기체 내에서 감식관(鑑識官)으로 보이던 수 명(數名)의 남자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트랩(a ramp=traps)을 타고 내려와서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또 무언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곧장 전선본부(前線本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또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항공기견인차가 그곳으로 달려왔고 이어서 제복을 입은 경관들이 그 차에서 내려서는 기체를 고정시켜두었던 로프를 걷고 또 견인차에 연결시키는 과정들이 이어졌다.

 그것은 또 아마도, 현장검증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그 기체를 전용 격납고로 옮기려고 그랬던 것 같았는데
 아무튼 잠시 후, 그 기체는 견인차에 끌려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그 일련의 움직임들을 지켜보면서 전날 밤의 끔찍했을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또, 그러면서 그 기체의 동체(胴體)에 검은 도료(塗料)로 쓰인 등록번호를 확인했다.

 < N31043 !------------------ >

 
그리고는 또

 <아마도, 저 거대한 새(鳥)는 당분간은 날지 못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극동항공(極東航空)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손실이 될 것이 분명했다.


NAMC YS-11

 그것은 또 그때, 정기노선에 사용되고 있던 여객기들 중에서는 "YS11형기(型機)"가 제일로 소형(小型)이었다.
 그런데 그 "YS11형기(型機)"를 하루만 지상(地上)에 놀려둔다고 하더라도 그 손실은 약 300만 엔 정도나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점보의 휴식"이란 극동항공(極東航空)의 입장에서는 불을 보듯 뻔했다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때, 키지마(貴島)는 문득 그 기체를 죽 쳐다보고 있던 한 남자에게 눈길이 갔다.
 그것은 또 왠지 안면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는데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아아! 그 코-파이(F/O, コ―・パイ=항공용어의 약어로 副操縱士)닷!---------->

 그는 다름 아닌 그 "
OIK"의 여성들에게 습격을 당했던 바로 그 부조종사 타카오테루오(高尾輝夫)였던 것이다.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망설임도 없이 그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또 타카오(高尾)가 키지마(貴島)를 쳐다봤다.
 그러자 또 키지마(貴島)는 가벼운 인사를 하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입니다만, 혹시 극동항공(極東航空)의 타카오(高尾)씹니까?"
 "아, 네. 그렇습니다만?"

 그러자 타카오(高尾)가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약간의 경계심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얼른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만!"
 "아, 주간지에서 일하시는 분이시군요?"

 그러자 타카오(高尾)가 조금은 안심이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러나 다시

 "네, 하지만 저로서는 이 건(件)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키지마(貴島)가 또 이렇게 말을 했다.

 "어젯밤, 저는 우연히 국내선도착(到着) 빌딩에 있었습니다만..."

 그러자 타카오(高尾)가 갑자기 <에엣?!>하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저는 아직 그 일을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자 또 키지마(貴島)의 일방적인 말이 계속되었다.

 "왠지, 저는 여성들의 히스테리에 관한 기사는 내키지가 않아서요!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그 여성 리더라는 분의 가정생활에 더 흥미가 느껴집니다만?..."

 그러자 타카오(高尾)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는 듯이 이렇게 말을 했다.

 "나는 솔직히 그 여자가 싫어요!"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을 했다.

 "그 여자는 날더러 전처(前妻)에게 위자료도 한 푼 주지 않고 내쫓았다고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저는 그때 살고 있던 분양(分讓)맨션과 그 시점(時點)까지 가지고 있었던 예금(預金) 전부를 전처(前妻)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자들은 현재 조금 있으면 받게 될 저의 아버지의 유산인 스기나미(杉竝)의 땅까지도 모두 다 내놔라고 저 난리인 것입니다!"
 "예에? 그건 좀 심했군요?"
 "네, 그리고 또 사실, 회사는 그런 추문(醜聞)을 제일로 싫어해요. 그래서 만약에 매스컴에서 재미삼아 그 반 정도만 기사를 낸다고 해도 저는 회사를 그만두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그 여자들은 현재 저의 장래(將來)까지도 빼앗아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리더 말입니다만, 자신도 결혼을 한 입장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남의 프라이버시를 무참한 방법으로 폭로 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프라이버시 역시도 그렇게 무참하게 폭로되어야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고 또, 가능하다면 내가 당한 것처럼 우리도 그 여자의 남편이 다니고 있을 그 직장으로 집단적으로 쳐들어가서 도대체 당신은 그런 당신의 아내가 어떻게 느껴지고 있는가 라고 따지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아,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한번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키지마(貴島)가 그를 위로라도 한다는 듯이 이렇게 말을 했다.
 하지만 타카오(高尾)는 그렇게까지는 할 생각이 없는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건 마, 됐습니다!"
 "아니, 왜요?"
 "이제 와서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네?"
 "저에게는 이제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예에? 정말로, 아무 것도?"
 "네, 모든 걸 다 잃어버렸어요!"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또 이렇게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스튜어디스가..."

 그러자 타카오(高尾)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이어서 마치 입 안에 든 불쾌한 것을 내뱉어버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이렇게 말을 했다.

 "쿄우코(杏子)는, 그 기체(機體) 안에서 이미 죽었어요!"
 "아!------------"

 타카오(高尾)는 그렇게 말을 해놓고는 또 마치 원망이라도 하듯이 그 점보를 지그시 쳐다봤다.
 하지만 또 그 순간, 키지마(貴島)도 갑자기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는 듯이 눈을 게슴츠레 감고는 머리를 잔잔히
흔들었다.

 그러면서 또 그는

 <쿄우코(杏子)... 쿄우코
(杏子)...>

 하면서 머릿속으로 승무원들의 명부를 떠올려보았다.
 그러자 금세 떠올랐던 이름 하나!

 <아! 그 갤리(galley)에서 죽어있었다던 그 선임(先任) 스튜어디스의 이름이 바로 타시로쿄우코(田代杏子)였다!---->
 <그리고 동명(同名)의 스튜어디스는 더 이상 없었다!------------>

 "사실, 원래대로였다면, 그녀는 나와 함께 죽을 운명이었어요!"

 그러자 그때, 타카오(高尾)가 또 이렇게 말을 했다.

 "..................?!"
 "사실, 그 점보에는 제가 코-파이(F/O, コ―・パイ=항공용어의 약어로 副操縱士)로 타기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전날, 급히 그 편성(編成)이 바뀌었던 겁니다
."
 "아!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런데 마침 그때, 그 점보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두 사람도 그때부터는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격납고를 나오고 도로에 나섰을 때까지도 타카오(高尾)는 키지마(貴島)의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
그건, 갑자기 기장(機長)에게 무슨 사정이 생겼고, 또 마침 그때 임시 편(臨時便)을 띄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는 등, 일이 그렇게 우연히 겹쳐져서 편성을 바꿨어요. 그리고 또 그 리더 여자는 그때 전화로 저의 스케줄을 확인하고는 그렇게 쳐들어왔던 것이었고요!"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문득

 <어쩌면!--------------->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그 <어쩌면>이란 다름 아닌

 <그 범행이 그 스튜어디스 즉, 쿄우코(杏子)를 노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것이었는데, 만약에 또 그렇게 된다면 이제는 또 그 타카오(高尾)의 전처(前妻)도 용의자선상에 떠오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그것도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무능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녀마저 내 곁에 없으니..."

 그러자 또 그때, 타카오(高尾)가 자조(自嘲)의 의미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리고는 또

 "그리고 이제 다시 비행할 용기도 나질 않습니다."

 라고 말을 하더니 한숨을 쉬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또

 "제가, 특종(特種) 하나를 알려드릴까요?"

 하고 말을 했다.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귀가 번쩍 뜨인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 그게, 뭡니까?"
 "네, 그것이 진짜로 705편(便)이었다면!... 그 비행기에 탔었던 82명의 사람들이 모두다 공중에서 다른 비행기로 옮겨 탔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네------------------------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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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글은 순수한 허구이며, 그래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고유명사, 시간, 배경, 장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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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L 747>


 

< MISSING JUMBO >


 

 

 < 第3章 82名 全員死亡 >

  5-1.

 

 

 "그렇다면, 왜 그런 사람을 썼을까요?"

 키지마(貴島)가 다 듣고 나니 자신도 기가 찬다는 듯이 이렇게 말을 했다.
 그러자 또 시게노부(重信)가 이렇게 말을 했다.

 "
그야 뭐, 당연히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각 사(各社)를 돌아다녔고, 그러다가 더 이상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 없게 되니까 그대로 극화계(劇畫界)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이었고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로 아까운 재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 *

 그러니까 또 사실, 그 '스토리만화'의 급격했던 발전이 단순히 그림만 잘 그렸던 결과에서였다면 그런 인간은 아예 처음부터 쓸 필요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또 전전(戰前)의 스토리만화였다고 한다면 <노라쿠로(のらいぬ=野良犬)>와 <보우켄(冒險) 단키치(ダン吉)> 등, 아주 극소수였을 뿐이었고, 그 중에서도 대다수는 또 난센스(nonsense) 만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것이 전후(戰後)였던 쇼우와(昭和) 34년(서력 1959년)에 주간(週刊) 소년 매거진(magazine-잡지) <소년 선데이(少年サンデ― = WEEKLY SHONEN SUNDAY)>가 창간됨에 따라서 스토리만화의 주류(主流)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 <노라쿠로(野良犬-들개나 집 없는 개, 야견(野犬) 등을 말함)>는 田河水泡(타가와 수이호우)의 만화 또는 그 주인공인 野良犬를 말함.
 

<노라쿠로 그림의 예-YOU TUBE capture> 

 
 그리고 또 <冒險ダン吉>는 코우단샤(講談社)의 소년 대상 잡지였던 <少年 俱楽部(club)>에서 연재되었던 島田啓三(이마다 케이조우)의 만화작품을 말했던 것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삽화(揷畵)를 이야기 속에 끼워 넣은 에모노가타리(繪物語-그림 이야기책)라고 불렸던 형식을 말함. 아래는 그 예임(표지).


 

 

   

 

 

 
그리고 週刊少年サンデー(슈우칸쇼우넨산데-)는 1959년에 쇼우가쿠캉(小學館)에서 발행되었던 일본의 주간소년만화잡지를 말함. 약칭은 그냥 선디 등.
 

 

 하지만 그 <소년주간지>는 처음에는 잘 팔리지가 않았었다. 그것은 또 창간 후 3년째의 발행 수가 <매거진>은 20만 그리고 <선디>는 17만이었던 것으로도 잘 알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또 바로 그 즈음에 텔레비전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소년주간지>는 <티브이 국(局)>과 타이 업(tie-up=협력, 제휴)해서 연재작품을 동화화(動畫化)시켰고, 그리하여 또 양자(兩者)의 상승효과로 인해서 인기를 부르며 급격하게 발행부수가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또 그런 일은 필연적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의 부족을 초래했다. 그리하여 또 <잡지저널리즘>의 눈(目)들은 당시 오사카(大阪)에서 대여전문점 대상의 단행본을 전문적으로 그리고 있었던 사이토우타카오(齊藤隆夫)라든가 시라토산베이(白土三平) 등에게로 쏠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때는 텔레비전의 융성(隆盛)에 반비례해서 대여점들은 쇠퇴 일로를 걷고 있었는데, 그것은 또 그때까지는 사람들이 밤이 되면 별로 즐길 것이 없어서 재미삼아 책을 대여점에서 빌려서 읽었지만, 그러나 텔레비전이 안방을 차지하자 그들의 관심은 금방 그쪽으로 옮겨갔던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극화가들은 일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그랬던 것이 또 저널리즘과의 이해(利害)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상경(上京)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들은 오사카(大阪)에서 이미 실력들을 충분히 비축해두었었기 때문에 조금 혹사(酷使)당하는 것은 별 문제도 되지 않았었고, 오히려 그들은 일을 시작하자 그림에 온통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었으며, 거기다 또 성인(成人)적인 감상(鑑賞)과 함께 참을성까지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성공은 아주 크고도 값진 것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때, 키지마(貴島)는 시게노부(重信)가 말했던 것만으로도 그 외(外)의 부분까지도 전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 'M'은 결국 돈 때문에 자신을 망쳤던 것이었다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또 너무 젊은 나이에 돈맛을 알아버린 결과에서였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아무리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또 그 당시, 현실적으로 <코믹 지(誌)>가 마구 급증하고 있었던 탓도 있었지만, 하지만 또 어쨌든, 그 초창기(草創期)에는 모든 상황이 돌변해서 그때는 간단히 그림만 잘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그래서 원작(原作)의 줄거리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잘 쓰려고 하질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런 젊은이들은 대부분 독창성(originality)이 제로(0)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시게노부(重信) 등 편집자들은 원작을 접하게 되면 우선 그들에게 그 원작의 테마(Thema-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고, 또 어떤 때는 코마와리<コマ(齣)割り=구획(區劃)>까지도 도와주곤 했었던 것이다.

 참고: 코마와리<
コマ(齣)割り>는 구획(區劃)을 의미하며, 주로 영화에서는 컷(cut), 연극 같은 것에서는 한 장면(場面)이라고 부르지만, 그러나 만화에서는 한 지면 위에 들어가는 칸의 수와 배열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예를 들어서 4코마와리(기본)라고 하면, 한 지면 위에 네 칸의 그림 그릴 공간이 구성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물론, 극화계(劇畫界)에서는 그런 젊은이들 외에도 자신의 풍부한 독창성과 확고한 인생관을 가진 아주 우수한 작가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키지마(貴島)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또 의외로, 그런 작가들의 생활은 아주 검소한 편이었고, 그래서 또 그들은 일찌감치 장래를 미리 생각해서 낭비 같은 것을 일삼는 일은 결코 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 * *

 아무튼, 키지마(貴島)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들었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을 했다.

 "그럼, 귀사(貴社)에서는 그 사람에게 얼마를 지불하고 있었습니까?"
 "네, 1페이지 당 1만5천 엔,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편집장은 그와의 인간관계를 너무도 과신(過信)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자가 도망치고 싶어 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군요?"
 "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도 그 'S사' 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와 비슷하게 맞춰보려 애쓰면서 조건을 제시해보기도 했었고, 그리고는 또 그에게 의리(義理)와 인정(人情)에 호소하면서 설득까지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 성공을 바로 앞두고서 이런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자 키지마(貴島)도 대충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면서도
 그러나 또 속으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만약, 그 사건이 이즈미(和泉)를 상대로 했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 이케다(池田) 편집장에게도 충분한 동기(動機)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또, 솔직히 자신이 키우던 개에게 손을 물려본 주인이라면 절대로 그 개의 편에 설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키지마(貴島)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한 후에 또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이즈미(和泉)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그 기획을 실현시킬 생각이십니까?"
 "그건, 타마노(玉野)죠!"

 그러자 시게노부(重信)가 간단하게 답을 했다.

 "?........................."
 "타마노(玉野)는 치프(chief) 어시스턴트고 또 이즈미(和泉)의 그림에 통달해있습니다. 그래서 편집장은 그 타마노(玉野)에게 모든 것을 걸어볼 생각인 것입니다."

 * * *

 그리고 또, 잡지(雜誌) 같은 것에서도 인간과 같이 슬럼프(slump)란 것이 있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현재 <동부(東部) 코믹>은 그 슬럼프에 빠져있었다고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그 <신(新) 기획>이란 것은 한쪽에서부터 벌써 무너지고 있었고, 그와 더불어서 또 잡지의 판매 수 또한 점점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그 회사의 입장에서는 당장에라도 그 이즈미(和泉) 같은 작가를 구해야만 했는데,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다른 곳에 전속(專屬)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구해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완전히 무리였다.

 그래서 또 편집장은 타마노(玉野)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은 되었지만, 그러나 또 그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러니까 그림이라면 약간의 재능만 있는 사람이라면 모사(模寫)가 가능하고, 또 그 타마노(玉野)가 아무리 이즈미(和泉)의 그림에 통달해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어차피 진품은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적인 가치로 생각해보면 그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라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타마노(玉野)가 어느 정도까지는 이즈미(和泉)의 공백을 메울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 이상을 기대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
그래서..."

 아무튼 그때, 시게노부(重信)가 또 이렇게 입을 열었다.

 "
주인공은 그대로 세관(稅關)의 밀수단속반으로 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이야기의 발단(發端)은 이번 사건과 비슷하게 설정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은, 비행 중의 기내(機內)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든지..."
 "네, 그것도 괜찮겠군요!"

 그러자 키지마(貴島)가 긍정한다는 듯 이렇게 말을 했다.

* * *

 그리고 또 물론 그때, 키지마(貴島)로서는 그 타마노(玉野)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당장에 처한 생활고(生活苦)를 생각했을 때 조금도 머뭇거릴 여유가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결정이 
된 것입니까?"

 키지마(貴島)가 또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또 시게노부(重信)가 이렇게 말을 했다.

 "네, 그리고 방(房)은 <이즈미(和泉)프로(production-제작소)> 근처에 있는 여관에다 잡아두었습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일을 시작해주셨으면 합니다만!"

 * * *

 그리고 또, 그 <이즈미(和泉)프로>는 쵸우후(調布-東京都의 市)의 진다이지마치(深大寺町-東京都 調布市)에 있었다. 그래서 시게노부(重信)는 가능하면 타마노(玉野)와 가까운 곳에다 키지마(貴島)를 묶어 두고서, 원고가 끝나는 순서대로 재빨리 타마노(玉野)에게 넘겨서는 한편, 한편 그림을 그리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東京都 調布市>


<深大寺町 위치- 동그라미 안 부분>


<복원된 深大寺町城의 主郭과 土壘>


 <과거의 深大寺町 이에나미(み)>

 

  아무튼, 시게노부(重信)의 말이 또 이어졌다.

 "그런데, 다음 호(號)에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기 위해서, 그 제목만이라도 빨리 결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러자 키지마(貴島)가 미리 생각해두었다는 듯이 또 이렇게 답을 했다.

 "아, 그건! <도쿄코쿠사이쿠우코우(東京國際空港-이하 '동경국제공항'으로 표현함)>가 어떨까요?"
 "아, 좋겠군요! 그럼, 편집장과 상의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시게노부(重信)가 이렇게 말을 하곤,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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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白과 관계되었던 人物 外>

​ <宮中行樂詞八首>

 其八

 水綠南薰殿 (수록남훈전)
 花紅北闕樓 (화홍북궐루)
 鶯歌聞太液 (앵가문태액)
 鳳吹繞瀛洲 (봉취요영주)
 素女鳴珠佩 (소녀명주패)
 天人弄彩毬 (천인롱채구)
 今朝風日好 (금조풍일호)
 宜入未央游 (의입미앙유)

 <해석>

 물빛 좋은 南薰殿
 꽃빛 고운 北闕樓
 꾀꼬리소리는 태액지(太液池)에서 들려오고
 생황(笙簧)은 또 봉래산(蓬萊山)을 넘어와서 영주(瀛洲) 섬(島)을 감도는구나
 素女 같은 宮女들은 진주(眞珠) 패(佩) 소리를 내면서 宮 안을 돌아다니고
 선녀(仙女) 같은 宮女들은 채색한 공을 가지고 즐겁게 논다
 아, 오늘 아침은 바람도 좋고 햇빛도 다 좋으니
 이런 날은 未央宮에 들어가서 마음껏 놀아보면 어떨까

 

 

 

 ※ 작품 감상(제2기) 


 <해설>

 

 이 글은 宮中行樂詞 八首 중에서 마지막 八首에 해당하는 것이며, 내용으로는 크게 의미 둘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마무리 글이기 때문에 소개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 하나씩 해석을 해보면...

 우선, 남훈전(南薰殿)과 북궐루(北闕樓)는 당대(唐代) 장안(長安)에 있던 궁전(宮殿)의 이름이다. 그리고 장안(長安)의 북쪽 망루대(望樓臺)에 있던 누각(樓閣)으로, 좌우에 돌로 쌓은 높이 약 15미터 이상의 석벽(石壁) 위에 마치 궁전처럼 높이 세웠던 누각(樓閣)을 말하며, 현무전(玄武殿)과 현무문(玄武門)을 가리켰던 것이었다.(그러나 이설 있음. 단, 여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아 보다 상세한 설명은 생략함)

 그리고 또, 水綠南薰殿에서 水綠은 '물이 푸를 정도로 맑다' 또는 '못(池) 안의 물이 푸를 정도로 풍부하고 맑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또 다른 유수(有數)한 곳에서는 여러 가지 약간 무리할 정도로의 확장적인 해석을 해둔 곳도 있었지만, 그러나 본인은 아쉽게도 정확한 것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원 글에 충실하면서 위와 같이 해석을 했다. 그래서 또 역시, 水綠南薰殿은 '맑고 풍부한 물이 상징적인 南薰殿'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花紅北闕樓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鶯歌聞太液에서 鶯歌는 꾀꼬리소리 또는 휘파람새소리로 해석할 수 있으며, 太液池는 못(池)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국의 역대왕조의 궁전에 있었던 못이었으며, 그래서 또 한대(漢代)에서는 장안성(長安城) 밖의 未央宮 내에, 그리고 당대(唐代)에서는 大明宮 내에, 그리고 또 명(明)과 청대(淸代)에서는 북경(北京)의 서원(西苑) 내에 있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처음에 한(漢)의 무제(武帝)가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못의 남쪽에는 건장궁(建章宮-長安의 城西에 만든 것으로 2층 복도는 未央宮과 연결되어 있다고 함)이라는 대(大)궁전을 세웠고, 그 못의 중간에는 또 높이 약 20여 장(丈-사람의 키 정도 되는 길이) 정도의 점대(漸臺)란 것도 세웠다고 하며, 고래를 조각한 돌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 못에다 3개의 섬을 만들었으며, 그것으로 아득한(중국의 입장에서) 동해(東海)에 있다고 믿었던 신선(神仙)들이 사는 영주(瀛洲-仙島의 하나)와 봉래(蓬萊) 그리고 방장(方丈) 즉, 삼신산(三神山)을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또 무제(武帝)는 그 못에다 배를 띄우고는 자신이 총애했던 애희(愛姬)들을 태우고 놀았다고 했는데, 그러자 어쨌든 또 당대(唐代)에서도 그것을 모방해서 봉래전(蓬萊殿)의 북쪽에다 태액지(太液池)란 것을 만들었으며, 그런 다음, 그 못의 중간에다 섬을 하나 만들어놓고는 봉래산(蓬萊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또 위의 태액지(太液池)는 그 못을 의미했으며, 그 아래의 영주(瀛洲)도 그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금성의 위치와 중남해의 간략도>

 

 

 그리고 또 이야기가 나온 차에 그 태액지(太液池)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고 넘어가면, 그것은 원래 중남해(中南海)라고 하는 자금성(紫禁城) 서쪽의 중해(中海)와 남해(南海)라는 2개의 호수에 있었던 못이며, 지금의 중남해(中南海) 북(北)반분(半分)에 황제가 여름의 이궁(離宮)으로 사용했던 대영궁(大寧宮)도 존재했던 곳이었다. 그리하여 금조시대(金朝時代)에는 중해(中海)의 가을 경치를 <태액추파(太液秋波)=는 말 그대로 가을 호수의 물결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만큼 매혹적이고, 아름답다는 의미로 여인의 눈길, 즉 추파를 던지는 것처럼 매혹적인 풍경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역자 주>라고 불리면서 황제 장종(章宗-金의 第6代 皇帝. 在位는 1189年1月20日부터 1208年12月29日. 더욱 상세한 것은 후술 또는 생략)에 의해서 연경팔경(燕京八景-燕京은 北京의 古称)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중남해의 모습>


 

 하지만 그랬던 것이 원(元)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지금의 북경(北京) 지역에 대도시가 건설되었고, 그러자 태액지(太液池)도 황성(皇城)의 일부로 편입되었었다. 그러자 또 그 못의 주변으로 3동(棟-大内裏, 隆福宮, 興聖宮)의 궁전이 건설되었으며, 그래서 또 그 원(元) 시대의 태액지(太液池)의 범위는 오늘날의 북해(北海)와 중해(中海)에 상당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리고 또 생황(笙簧,笙篁)은 아악에 쓰는 관악기로, 나무로 박 모양의 통을 만들어서 17개의 대나무 관을 꽂고, 통 옆에 만든 숨구멍을 불면, 관 아래에 붙인 금속 혀가 떨리면서 소리가 관을 통해 커져 나오는 악기를 말한다. 그리하여 鳳吹繞瀛洲를 위와 같이 해석을 했다.

 그리고 또 素女鳴珠佩에서 素女는 선녀(仙女)의 이름이며, 슬(瑟)의 명수(名手)였다고 한다. 그리고 슬(瑟)은 거문고(琴)와 비슷한 악기로, 중국 고대 악기 중의 하나이며, 앞면은 오동나무, 뒷면은 엄나무로 만들었고, 25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珠佩는 진주(眞珠)로 만든 장식물 또는 패물(佩物)이며, 패(佩)는 또 허리에 차는 것이므로, 그래서 결국 허리에 찬 노리개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예복(禮服)의 장식으로, 옥(玉)을 꿴 실을 몇 가닥 허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늘인 것이기 때문에,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고 하고, 궁중(宮中)을 출입했던 사람들 전부가 그것을 착용했으며, 또한 계급에 따라서 그 소리들이 각기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또 여기서는 선녀(仙女) 같이 아리따운 궁녀(宮女)들 또는 슬(瑟)의 명수(名手)인 그 선녀(仙女) 같은 궁녀(宮女)들이 허리에 찬 주패(珠佩)를 울리면서 궁 안을 돌아다녔다는 것으로 해석을 했고, 그래서 또 그 아래의 천인(天人) 역시도 선녀(仙女)를 의미하는 말이므로, 그 선녀(仙女) 같이 아리따운 궁녀(宮女)들이 채구(彩毬-아름답게 채색을 한 공 또는 아름다운 모양의 공)를 가지고 노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광경으로 해석을 했다. 그리고 또 참고로, 일설에 의하면 축구는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미앙궁 유적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앙궁(未央宮)은 중국 한(漢)나라 때의 궁전 이름으로, 고조(高祖) 초년(初年)에 소하(簫何)가 장안(長安)의 용수산(룽서우 산-龍首山)에 지었던 궁전이며, 그러나 당대(唐代)에는 궁정(宮廷) 안으로 들어왔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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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河井繼之助


 

4. 明治維新에의 對應

 

 4-2. 一藩武装中立
 


 ※ 戊辰戰爭(보신센소우) 10

 慶應 4年/明治 元年-明治2年(1868年-1869年) 薩摩藩・長州藩 等의 西南諸藩(薩長土肥=삿쵸우도비)들이 明治天皇을 擁立했던 王政復古와 함께 明治政府를 樹立하고, 當時 江戶幕府側<舊幕府勢力(彰義隊・會庄同盟・榎本政權 包含)> 및 奧羽越列藩同盟들과 싸웠던 日本의 內戰이었다. 慶應 4年/明治 元年의 干支가 戊辰이었기 때문에 붙여졌던 이름이었다. 그 結果, 明治 新政府가 同 戰爭에서 勝利했고, 그리하여 日本 國內에서는 더 以上의 交戰團體가 없어짐에 따라서, 그 後로부터 同 政府가 日本을 統治하는 政府로서 國際的으로 承認받게 되었다.
그리고 以下, 日字에 關한 것은 原文에 따라서 陰曆으로 表記함.


<戰線의 變遷圖>


 < 江戶에의 進軍 >

 2. 江戶無血開城과 幕府의 終焉

               

                                     <德川慶喜(도쿠가와 요시노부)>
 

 江戶開城(에도카이죠우)

 1) 新政府 側의 動向

 當時, 新政府 側에서는 德川家와 前 將軍 慶喜에 對해서 嚴格하게 處分해야 한다는 强硬論과 길어지는 內紛과 함께 過酷한 處分은 國益에 反하므로, 穩當한 處分으로 끝을 내야한다는 寬典論이 對立했다. 그리고 薩摩藩의 西鄕隆盛 等 强硬論 者들은 大久保利通(오오쿠보 토시미치) 앞으로 慶喜의 割腹을 斷乎하게 要求하는 書狀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자 大久保 亦是도 慶喜가 다만 勤愼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不足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아무튼 當時 東征軍의 目的은 單純히 江戸城 奪取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慶喜와 그에 加擔했던 者(松平容保, 松平定敬 等)들의 處罰과 함께 德川家 自體의 存廢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新政府는 迂餘曲折 끝에 2月9日에는 東征大總督으로 有栖川宮熾仁親王을 任命했고, 이어서 2月15日에는 東征大總督이 京都를 出發해서 東下를 開始했다. 그리고 3月5日에는 駿府에 到着했으며, 翌日에는 江戶城總攻擊의 日字가 3月15日로 決定되었던 것이다.

 2) 德川家 側의 動向

 i - 諸隊의 脫走와 抗戰

 2月5日-傳習隊 步兵 400名이 八王子 方面으로 脫走했다.<그러나 後에 大鳥圭介(오오토리 케이수케)軍에 合流>
 2月7日-밤, 舊幕府 兵 一部(步兵 第11・12連隊)가 脫走했다. 하지만 이들도 그 後에 步兵頭였던 古屋作左衛門(후루야 사쿠자에몽)에 統率되었고, 이어서 同月 末, 羽生(하뉴우)陣營(埼玉縣 羽生市)에 1800名이 結集했다.
그리고 3月8日에는 下野國(시모츠케노쿠니)簗田(栃木縣 足利市 梁田町)에서 東征軍과 싸워서 敗했다. 그리고 古屋(후루야)는 그 後에 今井信郎(이마이 노부오) 等과 衝鋒隊를 結成해서 東北戰爭과 箱館戰爭에 다시 從軍했다. 그리고 또, 新選組의 近藤勇와 土方歳三 等도 甲陽鎮撫隊라고 稱하며 甲州街道로 進擊해서 東征軍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그러나 이미 前述한대로 東征軍에 敗하고는 退却, 以後 近藤勇는 잡혀서 處刑되었다.

 ii - 天璋院・靜寬院・輪王寺宮의 歎願

 그러자 第13代 將軍 家定(이에사다)의 正室이었고, 江戶城의 大奧(오오오쿠) 總責任者였던 天璋院/篤姬(텐쇼우인/아츠히메=近衛敬子=코노에 스미코)는 自身이 薩摩 出身으로, 島津斉彬(시마즈 나리아키라)의 養女였던 緣으로 해서
                        

                   

                                              <天璋院>

 
 그리고 또 明治天皇의 叔母였으며, 第14代 將軍 家茂(이에모치)의 正室로이었던 靜寬院宮(세이칸인노미야=和宮親子內親王=카즈노미야 치카코나이신노우)도 東征大總督 有栖川宮(아리스가와노미야)와 한때 婚約者였었다는 緣으로
해서

                      
                                             <靜寬院宮>                                              <時代祭(지다이마츠리)에서의 代役 모습>
                         

 그리고 또한 上野(우에노)의 寬永寺(칸에이지)에서는 前年에 京都에서 와서 入山해있던 輪王寺宮(린노우지노미야) 公現法親王(後의 北白川宮能久親王=키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신노우)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 慶喜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心情으로 그에게 매달려서, 東征軍에 對한 助命 및 德川家의 存續을 바란다는 趣旨의 歎願을 繼續해서 냈다.
                        

                    

                                             <北白川宮能久親王>

 
 그리고 또 正月21日에는 靜寬院이 慶喜의 歎願書에 橋本実麗(하시모토 사네아키라), 実梁(사네야나) 父子 앞으로 自筆歎願書을 添附해서 自身의 侍女였던 土御門藤子(츠치미카도 후지코)를 使者로 보냈다. 그러자 東海道先鋒總督이었던 橋本実梁은 2月1日에 陣中이었던 桑名(쿠와나=三重県 桑名市)에서 그 書狀을 接受했다. 하지만 그 後 参謀였던 西郷隆盛는 <그것이 아무리 和宮에서 온 歎願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結局 賊徒를 辨明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며 無視했다. 그리고 또한 同知의 京都 大久保도 西郷隆盛와 같은 意見을 보였다. 그러자 또 土御門藤子(후지코)는 하는 수 없이 上京했고, 이어서 6日에 入京해서는 議定이었던 長谷信篤(나가타니 노부아츠) 等에게 다시 呼訴했다. 그리고 그 結果, 그 歎願書는 岩倉具視에게 傳達되었고, 이어서 16日에는 橋本実麗에 對해서 口頭書로 德川家 存續의 命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18日에 京都를 出發했던 藤子(후지코)는 2月 30日에야 江戶로 다시 돌아왔고, 그리고는 곧바로 靜寬院에 復命했다.(靜寬院宮御日記)

 하지만 또 그런 한편, 輪王寺宮公現法親王은 2月21日에 江戶를 出發해서 東海道 西쪽을 따라 올라갔고, 3月7日에는 駿府에서 大總督 有栖川宮熾仁親王과 對面했다. 그리고는 慶喜(도쿠가와 요시노부)의 謝罪狀과 함께 自身의 歎願書를 提出했지만, 그러나 이번에도 西郷隆盛 等이 甲陽鎮撫隊의 抗戰을 嚴格히 들고 나왔고, 이어서 12日에는 大總督宮으로부터 歎願不採用이란 消息을 下達받았다. 그리고 또 그 사이, 天璋院은 慶喜 個人에 對해서는 그다지 好感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德川家 存續 問題에 對해서는 대단한 熱誠을 보였다. 그래서 그녀 또한 나름대로 努力도 했던 것 같았지만, 그러나 別 成果는 없었다.

 iii) 山岡鐵太郞의 準備交涉


 ※ 山岡鐵太郞 (야마오카 테츠타로우)

 


 山岡鐵太郞=山岡鐵舟(야마오카 텟슈우)

 天保 7年 6月10日(1836年7月23日)-明治 21年(1888年7月19日)
 日本의 武士, 幕臣, 政治家, 思想家. 爵位는 子爵. 劍, 禪, 書의 達人으로 알려져 있다.
 鐵舟는 그의 號이며, 通稱은 鐵太郞(테츠타로우).
 諱는 高歩(타카유키).
 浅利義明(아사리 요시아키)門下의 검객(劍客).
 一刀正伝無刀流(잇토우쇼우덴무토우류우=無刀流)의 開祖.
 勝海舟, 高橋泥舟와 함께 <幕末 三舟>으로 불렸다.

 그는 天保7年(1836年) 6月10日 江戶 本所에서 蔵奉行과 木呂子村(키로코무라)의 知行主(領主)였던 小野朝右衛門高福(오노쵸우에몽타카토미)의 四男으로 태어났다.

 ※ 本所는 日本 莊園制의 莊園領主였던 本家 및 領家 中에서 荘務를 隨行하는 權限
卽 莊園의 實效支配權을 가졌던 者를 말함.

 母는 塚原(츠카하라)磯女.
 9歲부터 劍術(直心影流劍術=지키신카게류켄쥬츠)을 배웠고, 弘化 2年(1845年)에는 飛騨(히다)郡代(郡奉行)가 되었던 父를 따라가서 飛騨高山(高山市=타카야마시)에서 보냈다.
 그 後, 弘法大師<코우보우다이시=空海(쿠우카이)>流 入木道(쥬보쿠도우=書道의 딴 이름) 51世 岩佐一亭(이와사잇테이)에게서 書를 배웠고, 15歲에는 52世를 繼承해서 一楽斎(이치라쿠사이)란 號를 받았다.


<王羲之의 蘭亭序 一部分> 


 그리고 또, 父가 招待했던 井上清虎(이노우에 세이코)에게서 北辰一刀流(호쿠신잇토우류우) 검술(劍術)도 배웠다.
 嘉永 5年(1852年) 父가 死亡했고, 그 때문에 그는 다시 江戶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즈음, 그의 母도 病死한 것으로 생각된다.(16歲)
 安政 2年(1855年) 井上清虎의 援助를 받아서 講武所(幕末에 江戸幕府가 設置했던 武芸訓練機関)에 들어갔고, 千葉周作(치바 슈우사쿠) 等에게 劍術을 배웠다. 그리고 또 同 時期에 山岡静山(야마오카 세이잔)에게서 槍術도 배웠다.
 그 後, 静山이 急死하자 静山의 実弟였던 謙三郎(켄자부로우=高橋泥舟=타카하시 데이슈우) 等에 依해서 山岡家의 養子가 되었고, 그리고 이어서 静山의 여동생이었던 英子(후사코)와 結婚했다. 그리고 또 그때, 그의 身長은 六尺二寸(188센티)이었고, 体重은 二十八貫(105키로)나 되었다고 한다.
 安政 4年(1857年) 그는 清河八郎(키요카와 하치로우) 等 15人과 함께 尊王攘夷을 標榜했고 <虎尾の會(코비노카이)=一名 tiger tail>를 結成했다.
 그리고 文久 3年(1863年)에는 浪士組(新撰組의 前身) 取締役이 되었고, 家茂의 先供으로서 上洛했지만, 그러나 바로 그 直後에 清河의 움직임을 警戒했던 幕府에 依해서 浪士組에 歸還 命令이 내려짐에 따라서 그 浪士組를 引率해서 江戶로 돌아갔다.
 그 後, 清河는 暗殺되었고, 그에게는 勤愼 處分이 내려졌다.
 그리고 또한 浪士組도 新徵組로 再組織되었다.
 그리고 또 그 무렵, 그는 中西派一刀流(나카니시하잇토우류우)의 浅利義明(아사리 요시아키)와 劍術 試合을 했지만 져서 그의 門下로 入門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劍은 더욱 嚴格해졌고, 禪도 함께 修行해서 그는 劍禪一如의 境地를 追求하게 된다.
 하지만 元來 그는 佛法을 싫어했지만, 그러나 高橋泥舟(타카하시 데이슈우)의 勸誘로 始作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응(慶應) 4年(1868年)에 그는 精鋭隊歩兵頭格이 되었고, 그리고 江戸無血開城을 決定하기 爲해서 勝海舟과 西郷隆盛가 會談을 하기에 앞서 3月9日에 官軍이 駐留하고 있던 駿府에 겨우 到着해서 單身으로 西郷을 面會했다. 그리고 또 그때, 그는 官軍들이 警備하고 있던 陣中을 果敢하게 걸어가면서 <朝敵 德川慶喜의 部下들아! 여기 山岡鉄太郎가 堂堂하게 지나간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西郷과 談判을 해서 江戸 開城의 基本 條件을 合意하는데 成功했다. 그러자 또 西郷은 그를 向해서 <돈도 必要 없고, 名譽도 必要 없고, 生命도 必要 없는 者는 그 始末이 困難한 法이지만, 그러나 저런 者가 아니라면 누가 敢히 天下의 偉業을 達成하겠는가!>라고 하며 아주 크게 稱讚했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3月13日과 14日의 勝과 西郷의 江戸城 開城의 最終会談에도 入會했다.
 그리고 5月에는 若年寄(와카도시요리)格(將軍家의 일을 擔當했던 職) 幹事가 되었다.
 그리고 明治維新 後에는 徳川家達(도쿠가와 이에사토)를 따라서 靜岡縣(시즈오카)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6月에는 靜岡藩藩政補翼이 되었고, 清水次郎長(시미즈노 지로쵸우)와 意氣投合해서
<壮士之墓>를 揮毫해서 주었다.
 明治 4年(1871年) 廢藩置縣(하이항치켄=明治4년에 中央集權化를 爲해서 藩을 廢하고 地方行政을 府縣으로 統一했던 改革)에 隨伴해서 新政府에 出仕했다.
 그리고 그 後 靜岡藩権大参事와 茨成縣(이바라키켄)参事와 伊萬里縣(이마리켄)権令을 歷任했다.
 그리고 또 그 後에는 西郷의 依賴에 依해서 明治 5年(1872年)에 宮中으로 出仕했고, 이어서 10年間의 約束으로 侍從으로 明治天皇의 시중을 들었다.
 그 後, 그는 宮内大丞과 宮内少輔를 歷任했으며, 明治 15年(1882年)에는 西郷와의 約束대로 宮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明治 20年(1887年) 5月24日, 功績에 依해서 그에게 子爵이 敍爵되었다.
 明治 16年(1883年)에는 維新 때 殉職했던 사람들을 弔喪하기 爲해서 東京都 台東區 谷中(야나카)에 普門山 全生庵(젠쇼우앙)을 建立했다.
 그리고 明治 21年(1888年) 7月 19日 9時 15分, 皇居를 向해서 結跏趺坐를 한 채로 그는 絶命했다.
 그때, 死因은 胃癌이었고, 그의 나이 享年 53歲였다. 그리고 그 後 上記의 全生庵에 모셔졌다.
 戒名은 全生庵殿鉄舟高歩大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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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글은 순수한 허구이며, 그래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고유명사, 시간, 배경, 장소 등

        모든 것이 창작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19의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읽으시는 분은 주의 바랍니다. 


 

                                                                         ​ <JAL 747>


 

< MISSING JUMBO >


 

 

 < 第3章 82名 全員死亡 >

5.


 

K대 부속병원은 오오모리 역(大森驛) 북구(北口)에서 택시로 약 10분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오오모리 역> 

 

 그리고 그 건물은 당시, 최근 개축 했다던 10층 건물로 벽은 흰 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그 부근의 시모타야(しもた屋-원래는 상점이었다가 지금은 그만두었거나, 보통의 집으로 변한 집을 말함)를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꼬나보듯 하며 흐린 하늘 아래서 우뚝 솟은 채 서있었다.

 * * *

 키지마(貴島)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바로 조금 전에 해부를 막 끝냈던 이즈미(和泉)의 유체가 흰색 관에 넣어져서 반출(搬出)되고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또 그 관 옆에는 시게노부(重信)와 타마노(玉野) 그리고 이즈미(和泉)의 모친(母親)으로 보였던 노파(老婆) 한 분이 서있었다. 그리고 또 타마노(玉野)의 눈은 그때 이미 충혈 되어 있었는데,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그 관으로 다가가서 목례(目禮)를 올리고는 벽(壁) 한옆으로 가서 붙어 섰다.

 잠시 후, 이즈미(和泉)의 유체가 담긴 관은 통용구(通用口)에 미리 대기되어 있던 검은 왜건(wagon-4륜의 짐마차 또는 운반차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장의차 또는 영구차를 의미함)에 실렸고, 그러자 또 타마노(玉野)와 그의 모친인 듯했던 노파가 그 차에 함께 올라탔다. 그러자 키지마(貴島)와 시게노부(重信)는 경건한 자세로 그 차가 시야에서 다 사라질 때까지 통용구 앞에 서있었다.

 * * *

 "수고 많으셨습니다."

 잠시 후, 차가 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시게노부(重信)가 통상의 인사인 듯 키지마(貴島)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하지만 키지마(貴島)가 봤을 때, 그 표정은 놀랍게도 너무 밝은 듯 보였다.

 "네,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시 잠시 후,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키지마(貴島)가 먼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사인(死因)은 밝혀졌습니까?"
 "네, 역시 그 가스 중독인 것으로..."

 "네, 그랬군요!"

 "네, 그리고 그 유체에는 가스 중독 특유의 반응인 선홍색(鮮紅色)의 사반(死斑)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저 병원으로 딱딱하게 굳은 채 실려 왔던 모든 유체들에서도 유동혈액(流動血液)이라거나, 뇌막충혈(腦膜充血) 그리고 출혈(出血) 등이 있었고, 그리고 또 뇌(腦)와 폐장(肺臟)에서 청산(靑酸)의 반응이 나타났으며, 혈액은 또 이상하다고 생각될 만큼 빨간색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어본 즉, 그것이 또 바로 보통 급하게 청산(靑酸) 가스를 들이켰을 때 나타나는 <청산가스중독사>의 특징이라고 하더군요!"

 참고: 시반(屍班) 또는 사반(死斑)은 사람이 죽은 뒤 약 6시간에서 12시간이 지나면 피부에 생기게 되는 자줏빛 반점으로, 혈관속의 혈액이 사체의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생기게 되는 현상이며, 그것으로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네, 그렇군요..."

 그러자 키지마(貴島)가 이렇게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후, 그 두 사람은 그 근처에 있던 찻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자리를 잡고 앉자 키지마(貴島)가 또 이렇게 먼저 말을 했다.

 "그런데, 저와 상의할 것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약간 머뭇거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시게노부(重信)가 이렇게 답을 했다.

 "아, 그건 다른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획(企劃) 건에 대한 것입니다만..."
 "아, 그것은 이즈미(和泉)가 사망했기 때문에, 무산(無産)된 것으로 압니다만?!"

 그러자 시게노부(重信)는 잠시 안경을 벗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면서 다음과 같이 또 말을 했다.

 "사실, 우리 회사로서는 어떻게든 계속해볼 생각입니다만..."
 "............."
 "그러니까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그 이즈미(和泉)를 라이벌인 'S사(社)'에 빼앗겼었습니다."
 "네-에?!-------------"
 "그 이즈미(和泉)는 원래, 오사카(大阪)에서 활동하면서 대여점(貸與店)전문의 단행본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을 당시, 차장(次長) 이케다(池田) 씨가 발굴을 했었고, 그리고는 또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에 도쿄(東京)로 불러올렸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회사 돈으로 나카노(中野)에 아파트까지 빌려서 살게 해주었습니다
."

 시게노부(重信)가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키지마(貴島)가 담배를 꺼내서 한 개는 자신의 입에 물고 또 한 개를 시게노부(重信)에게 권하고는 라이터(lighter)로 불을 붙여주었다. 그러자 시게노부(重信)는 머리를 가볍게 숙이며 키지마(貴島)에게 인사를 한 뒤, 한 모금 깊이 들이켰다. 그러더니 담배연기와 함께 또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타마노(玉野)는 이즈미(和泉)와는 중학(中學) 동급생이었는데,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왔었습니다. 그리고는 생활에 보탬이 된다는 의미로 월(月) 1회 정도로 완결이 되는 단편을 썼었습니다."
 "네, 그랬었군요..."
 "네, 그리고 그것은 처음부터 제가 담당했었는데, 그런데 그 즈음에는 잡화(雜畵) 정도의 수준이어서, 그래서 저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인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편집장은 어딘가 비범(非凡)한 구석이 있다고 하면서 게재(揭載)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화료(畵料)만은 꼬박꼬박 지불했습니다."
 "네..."
 "네, 하지만 또 비평은 아주 엄격해서, 저는 그냥 옆에서 들기만 했었는데도 가여운 마음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 * *

 그리고 또 여기서 잠시--------------------,

 이야기가 늘어질 염려가 있어서, 그 이케다(池田)가 했었다던 비평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면, 그러니까 시게노부(重信)의 표현에 의하면, 그 이케다(池田)의 비평이란 것은 마치 단칼에 싹 베어버리듯이 폐부(肺腑)를 도려내는 것 같은 것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즈미(和泉)의 면전에서 화고(畵稿-초벌 그림이나, 인쇄물에 붙이기 위해서 그려놓은 그림)만 슬쩍 보고서도

 <이 작품에는 테마가 없다!>
 <도대체 작자(作者)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아무 것도 모르겠다!>

 는 등의 언사를 아주 노골적으로 언짢은 얼굴을 하고서 말하고는
 또

 <이런 건, 쿠소츠보(옛날, 뒷간에 묻어서 배설물을 받아두었던 독, 또는 항아리)에나 버려버렷!------------>

 하는 말도 서슴없이 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여성에 관한 작품에 대해서도

 <니가 보기에 이게 여자 같아?!>

 라고 했다든가, 또는

 <독자들이 한번 척 보고도 아아, 이런 여자라면 한번 안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염하게 한번 그려보란
말이야!------------>

 라는 말도 자주 했었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갑자기 자기 옆에 있던 컵을 가리키면서

 <이것을 한번 그려봐!>

 라는 말도 했었다는데, 그러자 그때 이즈미(和泉)는 그 컵의 옆모습을 그렸다. 그러자 이케다(池田)는 그것을 보고는 콧방귀를 뀌더니, 곧 이즈미(和泉)가 그렸던 그림 옆에다 아무렇게나
이중환(二重丸=이중 동그라미=◎)을 그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또 난폭한 어감으로 이렇게 말을 했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컵이야! 알겠나?!>

 그러자 이즈미(和泉)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갸웃거렸다는데, 그러자 또 이케다(池田)는 그 실제 컵을 집어서 높이 쳐들고는, 그 컵의 바닥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면서 또 이렇게 말을 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본 것이야!>

 그러자 또 과연, 그때서야 그 그림은 진짜로 그렇게 보였다고 했지만, 아무튼 그리고는 또

 <그러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그렸을 때는 이 그림은 단순한 이중환(二重丸)일 뿐이야! 그러나 네가 이것과 꼭 같이 그린다고 해도 독자들은 아, 과연 이것은 컵이로구나! 라고 납득 또는 인정을 할 수 있게 그려야만 한다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기술인 것이야! 알겠나?>

 라고 말을 했던 적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 * *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순간적으로 <야! 이거, 보통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또, 그 이케다(池田)는 그림의 구도(構圖)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시각에 대해서도 그 시점(視點)을
변화시켜가면서 그려보라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 그런 것은 꼭 극화(劇畫)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것은 여러 가지의 예술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매너리즘(mannerism=惰性)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또는 그것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 * *

 아무튼, 그 즈음의 이즈미(和泉)는 그렇게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던가 보지만
 그리고 또 타마노(玉野)와 함께 <인스턴트 라면> 한 개만으로 하루를 보내야했을 때도 있었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랬던 것이..."

 하고 키지마(貴島)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시게노부(重信)가 다시 이렇게 말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
<노래 불러라, 죠니!>가 히트를 치자, 그는 그것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던 것이었지요..."

 * * *

 그리고 또 역시, 시게노부(重信)가 그때 했던 말을 간략하게 옮겨보면!...

 그 작품의 내용은 토우호쿠(東北-아래 설명)의 카소무라(過疎村-인구가 아주 적은 小村)에서 집단취직을 하기 위해서 상경했던 수인(數人)의 소년 소녀들이 생활과 싸워가면서 가요계에 입문(入門), 그리고는 그 후로 조금씩 커나간다는 일종의 성장스토리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것은 특히 젊은 독자층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또, 그것은 거의 이즈미(和泉) 자신의 자서전 같은 것이었다고 했는데,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그 말을 듣자, 그것을 전형적인 헝그리 맨(hungry man) 케이스(case-경우)라고 생각했다.

 참고: 東北(地方)은 本州(혼슈우)의 동북부에 위치하며, 그에는 靑森(아오모리), 秋田(아키타), 岩手(이와테), 山形(야마가타), 宮城(미야기) 福島(후쿠시마) 6현(縣)이 있음.

 
그리고 또 사실, 한 십년 전쯤에는 지방(地方)의 가난한 소년들이 사회에 나와서 한 번에 거금(巨金)을 손에 쥘 수 있는 방법으로는 복싱(boxing-권투)이 제일 빨랐지만, 그러나 지금(이야기 현재)은 극화(劇畫)나 가요(歌謠) 쪽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요즘 젊은이들은 몸을 혹사시키는 일보다는 조금이라도 편한 쪽을 선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또 그림에 조금만 재능이 있어도 소위, 잘 나가는 극화가(劇畫家)의 어시스턴트(assistant-보조, 조수)만 해도 월 수입 10만 엔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그 이즈미(和泉)도 6명의 어시스턴트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좀 전에 그 사람을 'S사(社)'에 빼앗겼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키지마(貴島)가 다시 물었다.

 "아, 네! 그것은, 그 'S사(社)'는 사실 2년 전부터 그에게 접근을 해왔었습니다. 그래서 골프라든가, 큰 물고기를 낚는 트롤링(trolling-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배 뒤에 매달아놓은 낚시로 다랑어 등 큰 물고기를 낚는 방법) 같은 것으로 그를 유혹하기도 했었고, 그것 외에도 온천마작(麻雀)에 초대했다든지, 회사 창립 몇 주년이라면서 그 기념으로 금배(金杯)를 선물했다든지... 뭐, 그렇게 했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우리는 그런 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요!"
 "아, 그럼, 다 알고 있었다면서 왜?"

 키지마(貴島)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또 물었다.

 "네, 그건! 이케다(池田) 씨의 인간적인 유대관계에 대한 과신(過信)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또, 회사의 입장으로서도 그 이케다(池田)가 있는 한, 이즈미(和泉)를 타 회사에 빼앗길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란 확신도 있었기 때문이었고요!"
 "그런데도 현실은?"
 "네, 그 'S사(社)'가 도리(道理)에 맞지 않게 갑자기 '전속계약'의 조건을 들고 나왔던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대가(代價)로 계약금이 3천만 엔, 화고료(畵稿料)가 페이지 당(當) 3만 엔, 그리고 또 그 외에도 연(年) 2회 보너스로 2천만
엔을 더 지불하겠다면서..."
 "훔!..."

 그러자 키지마(貴島)는 마치 할 말을 잃었다는 듯이 이렇게 한숨을 토해냈다.

 * * *

 그리고 또 그 이유로는, 그 'S사(社)'는 당시, 문예도서와 예능주간지 그리고 소년소녀 지향의 주간지와 아동도서 등도 취급하고 있었던 소위, 문어발식의 총합출판사였고, 코믹(comic)지(誌)도 함께 주간(週刊)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페이지의 수는 평균 20페이지였는데, 그래서 그 금액을 계산해보면!...

 화고료가 주당(週當) 60만 엔, 그리고 1년을 52주로 가정을 하고 계산을 해보면, 그 금액은 약 3,120만 엔이나 되었던
이다. 그런데다 또 보너스 4천만 엔을 더한다면, 계약금은 별도로 하더라도 7,120만 엔의 수입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또 물론, 그 'S사(社)'는 고액의 계약금을 지불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소년주간지와 예능지에도 그는 어느 정도의 조력(助力)을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또 그렇게 된다면 그 총수입은 1억 엔도 가볍게 돌파했을 것이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또 어시스턴트들의 급료를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이즈미(和泉)의 수입은 엄청난 것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키지마(貴島)는 그때, 어떻게 해서 인기 극작가(劇作家)들이 계속해서 호화스러운 저택을 신축하고, 또한 프로덕션을 설립해서 법인조직화해 나갈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그때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키지마(貴島)는

 "
과연, 이제 불과 25, 6세의 젊은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만으로 벤츠(Benz)를 굴리고 또 한 마리에 백만 엔이나 하는 개를 키울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군요?!"

 라고까지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자 또 시게노부(重信)는 안면에 자조(自嘲)의 빛을 역력히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네,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것은 항상 우리 담당자들이지요!"

 그리고는 또

 "그리고 또, 그 전부(全部)가 전부(全部)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 중에서는 제법 심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고, 특히 'M'이란 자는 아주 엉망이었어요!"

 라
고 시게노부(重信)은 과거 한때, 폭발적으로 매상을 올렸다가 또 급속하게 사라져버렸던 어떤 극작가의 성(姓)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는 또

 "그는 술과 여자와 마작(麻雀)과 경마(競馬) 등, 놀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손을 댔었고, 그리고는 또 원고 마감 직전이 되면 갑자기 어딘가로 훌쩍 사라져버렸어요. 그러면 또 대개(大槪) 그런 사람들은 신쥬쿠(新宿) 근방의 바(bar)나 호스티스의 아파트 같은 곳에서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러나 그는 아무리 찾아봤어도 꽁꽁 숨어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다 그런 일이 매주(每週) 매주 계속되었던 것이었지요. 그리고 또 그쪽에서는 그런 일이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낮에는 회사 일을 해야 했고, 또 저녁이면 그와 철야(徹夜)로 붙어 일하면서 마감에 쫓겼고, 그러면 또 우리들은 그 원고들의 베타누리<β(ベタ)塗り>까지도 거들고서야 겨우 완성이 되곤 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당시, 몸을 망친 편집자(編集者)들이 아주 속출(續出) 했었습니다."

 라고 말을 했다.

 참고: 위의 '베타누리'는 만화제작에 쓰이는 용어이며, 원고 내에서 주 저자(著者=상업만화가)가 표시(주로 X로 표시함)해둔 곳을 본인 또는 어시스턴트가 검게 음영(陰影)처리하는 것을 말하며, 실제로도 심리적인 효과가 탁월하다고 함.(일종의 배경 중 그림자부분의 처리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으로 생각됨. 상세한 것은 따로 연구해주시길 바랍니다) 


                       



                         
                    
            

 

                                                   <베타누리의 예-사진의 위치는 아메바>
 






 

 

참고: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하루에 두 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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