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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2년 4월
평점 :

어느 날, 오래된 편지를 받았다.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란 제목으로 가랑비메이커에게서 온 편지를. 다정한 손 편지를 써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지만 COVID-19로 공연장에 안 가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대신 조용히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을 찾기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을 찾기 시작하고, 책 속 단어와 문장 사이에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냈다. 혼자만의 키득거림과 감동과 눈물로 2년이 지나갔구나! 느적느적 마을과 마을 사이를 걷는 산책의 맛을 알아버렸으니 다시는 2년 전처럼 미친 듯이 살진 못할 것 같다.
표지 카피 '오래된 편지가 늦은 대화가 될 수 있을까요.'는 3년의 공백이 아닌 느린 우체통에 넣었던 추억의 시간이 1년 후에, 3년 후에 까맣게 있고 있다가 날 찾아온 엽서처럼 순식간에 그 편지 속 계절로 데려다주었다.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를 다 읽으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걷는 기분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난 느낌!
TV 속 시대 배경이 7,80년대인 드라마를 보면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까지 격이 없이 지내는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처럼 그런 세상이었는데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적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세상이 되었다. 개인 취향을 존중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섣불리 나 때는 말이야를 말하면 꼰대로 치부되는 세상. 하지만 궁금해하지 않고 묻지 않으면 무시하냐고 말하는 아이러니의 세상이다. 자신만의 울타리를 쳐놓은 상태에서 취향 존중을 해달라는 너의 주문을 어떻게 들어줄 수 있을까?
눅눅한 산책이라는 편지는 지금이 조금 지나서 만날 수 있는 편지일 것 같다. 봄과 여름 사이에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하기 전에, 조금만 움직거려도 몸에서 열이 나는 그 밤을 만날 수 있겠다. 계속 묻는 너에게 나는 답을 하면서도 함께 산책을 하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누군가에겐 벌이 될 수도 선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큰 기쁨의 추억이었다. 이제 그런 시간을 함께 할 수 없기에 더더욱.
그래서일까?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절대로 부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서투른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말한 글들 대신에 얼굴이 빨개지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가 부러웠다고 한다. 왜냐하면, 창백한 얼굴로는 부끄러움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아무도 표현되지 않는 것은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까.
한 줄기 빗줄기가 뿌리고 난 뒤의 차가운 밤공기에 펼쳐들면 좋을 책이다. 그리운 친구들이 생각날 때, 작가의 말처럼 소리 내어 읽으며 잘 음미해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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