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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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에 근무하지 않아도 대부분 직장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 맨 처음 날려야 하는 멘트로 "감사합니다.(안녕하세요를 사용할 때도 가끔 있지만) 땡땡 부서의 누구누구입니다."라면서 전화 응대를 시작한다. 졸업 후 처음으로 취직했을 때 다짜고짜 감사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저 매뉴얼에 적힌 그대로 읽어낼 뿐이었다.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는 '진심으로 손님을 접대한다.'라는 뜻으로 일본식 환대를 대표하는 말이다. '서비스 천국'이라는 일본은 한국과 어떤 점들이 비슷하고 다를지 사뭇 궁금해진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하고 3월 11일 팬데믹이 선언되는 가운데 한국의 여행업계는 코로나19로 많은 곳이 운영하기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예은 작가는 그런 코시국에 일본 여행사의 콜센터에 입사를 했다고 하니 더욱 놀라웠다. 한국이 아닌 낯선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로 비대면 상담을 하는 것은 얼굴을 마주하는 상담보다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어쨌든 궁금증을 가득 안고 외국인 노동자 이예은 작가의 살아있는 '체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부분 직장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업무에는 매뉴얼이 있다. 콜센터에서도 매뉴얼대로 상담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매뉴얼에 없는 사항은 매니저에게 확인하거나 섣부른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무리 진상의 탈을 쓴 고객이라도 존경어와 겸양어를 사용해야 한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지금은 많이들 사용하는 단어로, 타인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고객만족을 위해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해서 '고객감동'을 넘어 '고객졸도'라는 말까지도 나오기도 했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무리한 요구와 욕설에도 항상 웃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모습이 막장 드라마에도 많이 비친다. VIP 고객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잘못은 도대체 어떤 잘못이었을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요즘은 '전화 먼저 끊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려도 되는 매뉴얼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콜센터 상담원들이 자주 사용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고객이 진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타격감이 커서 진상 고객이 더 크게 마음에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치고이치에(いちごいちえ)는 상담원과 고객의 관계를 절묘하게 함축한 말로 한자로 일기일회(一期一會),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을 뜻한다. 한 통의 상담전화가 종료되면 다시 같은 상담원에게 연결되기 힘든 관계를 생각한다면 단 한 통의 전화 상담이라도 허투루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콜센터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이라고 생각하면, '귀하게 여기지 못할 사람이 없겠다.'라는 생각으로 뻗어나가는 이예은 작가는 왠지 차분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보인다. 520일 상담원으로 살아낸 날들을 한 권으로 묶었으니, 계속 쓰는 것이 꿈인 이예은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팬데믹, 사요나라(さような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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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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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일본 서점 대상 등 일본의 3대 문학상을 휩쓸고, 나오키상 처음으로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대상에 선정되고 “몇십 년 만에 한 번 나올 만한 위대한 걸작”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출간 전부터 시끌벅적했던 소설이다.

"공산당도 국민당도 하는 짓은 같아. 다른 마을에 마구 쳐들어가 돈과 먹을거리를 빼앗았지. 그렇게 백성들을 먹어치우며 같은 일을 되풀이했어. 전쟁이란 그런 거야."

중일전쟁과 국공 내전으로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옮겨온 국민당 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이주한 사람들 중에 예준린이 있었다. 예준린은 포목점을 운영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고, 독일제 권총을 가지고 다니면서 전쟁에서 활약했던 무용담을 들려주며, 본토(중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분이었다.

언제나 항상 자신을 응원해 주는 할아버지(예준린)가 살해당한 현장을 목도하게 된 열일곱 살 예치우성은 포목점에서 발견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을 걸고 범인을 찾아내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중국과 대만, 공산당과 국민당, 이념으로 갈라선 시대는 누구에게나 양자택일을 강요하게 된다. 우리가 겪은 6.25 전쟁처럼 중국과 대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것 같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정세 속에서 민초들이 선택한 삶에 대해서 누가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까?

<류(流)>를 읽으면서 다른 나라의 근현대 역사에 참 무관심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소설 속 배경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흐를 류(流)를 역사는 흐른다로 읽어도 괜찮을 듯싶다. 타인의 인생에 조금만 관심을 갖게 되는 기회가 된 듯하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처럼 중국과 대만의 관계도 불편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ㅡ러시아 전쟁이 뉴스에서 계속 회자되고 있는 것처럼 대만에 미 하원의장 펠로시가 방문한 뉴스를 둘러싸고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소식과 중국 미사일 11발이 대만 국민들 머리 위로 발사되는 경악할 만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대만 태생 작가의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된 건 시의적절해 보인다.

아키라 히가시야마는 대만에서 1968년에 태어났지만 1973년부터 일본에서 자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대만, 일본, 중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류(流)>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일지도.

데킬라를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처럼, 소설 속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이야기 속 인물들 모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처음엔 미스터리 소설로 읽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역사 이야기였다. 아키라 히가시야마의 다른 작품들이 마구마구 궁금해진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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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의 방 - 내가 사랑하는 그 색의 비밀 컬러 시리즈
폴 심프슨 지음, 박설영 옮김 / 윌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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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초록의 방을 펼쳐서 읽어보고 싶어진다. 셰익스피어와 나폴레옹 그리고 에릭 로메르와 초록이 어떻게 연결 되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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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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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얼리즘과 글로벌 휴머니즘 연대를 제안하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열두 편의 에세이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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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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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 광고처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로 다시 읽는 모비딕! 우영우가 좋아하니까 우영우의 이름처럼 고래 이름이 모비모였으면 어땠을까? 후훗!



허먼 멜빌(1819.8.1~1891.9.28)은 뉴욕 출신으로 부유한 무역상 집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1830년 경기 침체 때 아버지의 파산과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게 된다. 20세부터 상선과 포경선의 선원으로 일을 했던 경험들은 <모비딕>에서 생생히 표현되고 있다.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 특유의 투박함으로 어두운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혈투가 더 실감 나게 느껴진다.



"Call me Ishmmael"



주인공은 나를 이슈메일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슈메일이라는 이름 뒤로 숨은 것일까? 이슈메일은 성경에서 추방 당한 사람을 말한다. 에이해브 선장의 이름도 이스라엘의 타락한 아합왕의 미국식 이름이다. 허먼 멜빌은 이름부터 기독교에 대한 풍자로 시작한다.



간단하게 요약한 줄거리는 이슈메일이 에이해브 선장의 피쿼드 호를 타고 포경업을 하기 위해 출발했지만, 선장 에이해브는 자신의 잃어버린 한쪽 다리 때문에 복수를 하겠다(내 다리 내놔~~~)는 일념으로 모비딕을 찾아다니게 되고, 모비딕을 발견한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로 피쿼드 호와 선원들은 모두 수장을 당하게 된다. 다만, 퀴케그가 만든 관을 부표 삼아 이슈메일이라고 불러달라던 그 남자만이 살아 돌아와 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포경선을 직접 탔었던 경험으로 허먼 멜빌의 자세한 설명은 마치 포경선에 직접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과거에는 <모비 딕>이 고래학으로 분류되었다고 하는데 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소설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픽션과 논픽션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모비 딕>의 진가이리라.



그리고 지금은 하나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슈메일과 퀴케그의 브로맨스가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좀 지겹다 싶은 고래 설명에 깨알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둘이 함께 살아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 나가게 하는 힘이었다.



<모비 딕>을 예전엔 <백경>이라고 번역을 했었다. 그래서 단순히 하얀 고래로 생각했었는데 고래는 대체로 검은 색이었을텐데 하얀 고래라니. 이종인 번역자의 해설처럼 모비딕을 악으로 본다면,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하던 백인이 생각나는 건 나뿐일까! 그래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었던 피쿼드를 포경선의 이름으로 설정했을지도 모르겠다. 고래를 학살하는 백정들. 아직도 포경업을 자행하고 있는 일본 포경선을 보여주던 다큐멘터리의 장면이 오버랩된다.



스타벅스로 더 유명해진 일등항해사 스타벅만이 포경선 위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포경선의 원래 목적인 고래기름에 집중해야 한다고 에이해브 선장을 설득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정해진 것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피쿼드 호 위에서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허먼 멜빌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을까? 대서양을 운행하고 있는 포경선에는 온몸에 문신을 한 식인종부터 인디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인간 군상들이 한배에 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 그들을 선동해서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고자 하는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에 모두 전염되어 술을 나눠 마시고, 맹세하고, 동맹을 맺는다. 나침반까지 망가진 상태에서도 모비 딕을 찾아 달려가는 에이해브 선장의 명령을 왜 아무도 꺾지 못했을까? 히틀러가 써먹은 선동 방식이랑 너무 닮아 있다. 포경선에 있는 선원들은 모두 에이해브의 복수에 이용될 재물이란 것을 모른다.



모비 딕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나라면 과연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라면 스타벅처럼 주저하지 않고 에이해브를 꺾고 모두를 살릴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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