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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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출한 밤이라면 절대로 펼쳐선 안 될 책이다. 절대로!!!"

결혼 사이트를 통해 만난 남자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3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꽃뱀 살인 사건'의 가지이 마나코는 현재 도쿄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체포 직전까지 글을 올린, 맛있는 음식과 사치품 사진으로 넘치는 블로그가 화제였다. 그리고 또 하나 일반적으로 꽃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다르게 육중한 몸매에 수수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남자들을 유혹했을까?'라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성 주간지 기자 마치다 리카는 가지이 마나코에게 여러 차례 취재를 요청했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레시피를 물어보면 말을 안 해주고는 못 배긴다.'는 베프 레이코의 말에, 취재 요청 편지에 비프스튜 레시피가 궁금하다는 추신을 적어 보내자 가지이 마나코에게서 방문을 허락하는 답장을 받게 된다.

첫 만남에서 가지이 마나코는 사건에 관해서는 말할 생각이 없고 대신 리카의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다.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때우는 리카의 냉장고에는 야채음료와 마가린이 있다고 하자 가지이 마나코는 버터간장밥을 만들어서 먹어 보라며 진정한 버터 맛을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를 원한다며 첫 면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갓 지은 밥에 버터와 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다."

가지이 마나코의 힐링 템이었을까? 나도 엄마 생각이 날 때는 어린 시절에 먹었던 갓 지은 하얀 밥에 계란 노른자, 마가린, 간장과 통깨를 넣고 비벼 먹는 걸 좋아한다. 리카는 무슨 미션 수행처럼 가지이 마나코가 일러준 대로 버터간장밥을 직접 만들어서 맛있게 먹는다.

가지이 마나코를 취재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되는 요리의 마력은 리카의 몸매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아니, 몸매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삶을 살아내며 느껴야만 했던 사회적 압박에 대한 생각들도 변하기 시작하고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가지이 마나코에게 빠져들었던 이유가 어쩜 그렇게도 똑같은지. 어이가 없었다. 다 큰 성인 남자들이 늙으나 젊으나 가지이 마나코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어린아이처럼 앉아서 받아먹을 줄만 알았지 그들은 철저히 그녀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가지이 마나코는 철저히 이용해 먹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먹은 셈인가?

가지이 마나코는 남자들을 이용해 먹을 때처럼 감옥 안에서 리카를 요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카는 버터를 통해서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오히려 벗어나고 있었다.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더 사랑하고 나아가 주변 사람들과 요리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자신감을 회복해 나아가고 있다.

"이 세상은 살아갈, 아니, 탐욕스럽게 맛볼 가치가 있어요."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의 기지마 가나에는 2009년에 체포되었고 현재 사형을 선고받은 상태로 '구치소 일기'라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자전적 소설 <예찬>을 발표하기도 했다. 감옥에서 세 번이나 결혼을 하는 등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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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개의 날 1
김보통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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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누군가의 아들을, 형제를, 연인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주말에 유흥가 주변을 2인 1조로 멋지게 걸어 다니던 헌병 MP만 본 적이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여성이 들여다보게 되는 군대 생활은 정말 낯설었다. 아니 낯선 게 아니라 몰랐다.


『DP-개의 날』은 넷플릭스에서 정해인 출연으로 지금 핫한 드라마의 원작 만화로 육군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조 DP라는 탈영병을 잡는 군인을 통해서 대한민국 군대의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안준호 상병은 103사단 헌병 DP 신분으로 탈영병의 흔적을 찾아서 체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DP는 일반 군인과는 다르게 머리도 기르고 사복을 입고 다닌다. 일반인과 구분하기 어렵다. 군인들도 이들의 존재를 잘 모른다.


처음 등장하는 김중선 일병은 휴가가 끝나고 복귀 대신 피시방을 찾았다. 어이없게도 밤샘 게임으로 피곤하니까 근처 찜질방에서 군번줄 차고 자다가도 관등성명을 대는 일병 김중선의 행동은 군기일까? 습관일까? 후임이 사다 달라고 한 맥심 잡지를 가지고서 왜 탈영을 했을까? 게임 한 판 더 하고 싶어서였다.


이런 탈영은 애교 수준이다. 일병 최창식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채 뜬 눈으로 지새운 수백 번의 밤을 보내고 죽이고 싶었으나 무서워서 도망치는 방법을 선택했다. 폐쇄적인 군부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임병들의 구타와 괴롭힘으로 잠을 자고 싶어서 탈영을 한 일병 최창식의 경우는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


작가는 군탈체포조로 근무했던 자신의 군 생활은 가해자와 피해자, 군인과 민간인, 그리고 탈영을 하지 않은 자와 탈영을 한 자의 경계에서 엉거주춤 선 채 기웃기웃 구경을 하고 있는 경계인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주인공 안준호 상병이 작가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


이제 작품은 점점 더 심한 경우를 그리고 있다. 김보통 만화가가 보여주고 있는 군대의 상황들이 지금은 사라졌을까?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군인들의 뉴스를 채널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시대다.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해서 변했을까?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군인과 관련된 사건 사고는 또 얼마나 많을까? 지금처럼 코로나로 인해 단체 생활도 경험해 보지 않은 아이들이 군대에 갈 나이가 되면 반드시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고 권유할 수 있을까?


다수의 남자들이 경험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군대 이야기가 넷플릭스에서 상영되고 있다. 드라마 DP 속의 준호(정해인)는 어떻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줄지 다음 시즌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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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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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불전쟁과 파리코뮌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인간들의 고통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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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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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죄가 있다면, 내가 유죄라면, 겁쟁이였다는 것뿐이에요."


21세기 찰스 디킨스의 등장이라고?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를 소환시킨 인도 태생 메가 마줌다르의 불타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원제는 A Burnig인데 <콜카타의 세 사람>으로 지반과 체육 선생, 러블리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도 콜카타 빈민가 기차역에 정차한 열차가 테러 공격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된다.


지반의 혐의 내용은 정부를 상대로 벌인 전쟁. 살인과 범죄 모의. 테러 행위 준비임을 알면서 도움을 준 행위. 자유의사로 테러리스트들을 은닉한 행위이다. 지반은 그저 페이스북에 반정부적 글을 게시했을 뿐이다. 체포된 지반은 결백을 주장하지만 국가권력은 폭력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감옥으로 이송된다.


때는 이때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언론에 진실은 왜곡되고 부풀려진 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타이틀을 뽑아서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진짜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기사로 뿌려진다.

한때 지반의 체육 선생이었던 그는 우연히 제1야당인 국민복지당의 연설을 듣게 되고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위치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시골에서 선동을 위한 연설을 하던 그는 군중의 힘을 빌려 무슬림의 가족에게 젊은이들이 자행하는 사건을 목도하게 되고 도덕적 양심이 손짓하지만 정당은 은폐해 버린다.


히즈라인 러블리는 가장 밝은 목소리로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과 희망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녀가 사회에서 당하는 여성 혐오와 무시는 인도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메가 마줌다르는 인도에 있는 하층민, 국가 권력, 정치인, 언론, 소수자, 종교를 버무려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는 힌디어 외에 14개의 공용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3천 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좋게 말해서 다원성과 다양성을 가진 나라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곳에도 엄연히 자본주의의 미덕이 고스란히 지배하는 곳이었다.


국가 권력은 돈에 물들어 있고 언론은 끝없는 추문으로 기사를 도배하고 정치인은 반대파를 악으로 규정하고 단 한 번의 선거를 위해 사람들은 선동하고 착취하고 있는 인도에서 과연 지반은 어떤 판결을 받았을까?


내년 대선을 위해 언론과 정치인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이 겹쳐지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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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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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트앤스터디에서 김진영 선생님의 '<미니마 모랄리아> 혹은 상처로 숨 쉬는 법'으로 강의하신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1903~1969)의 153편의 아포리즘을 엮은 <미니마 모랄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미국 망명 시절에 쓰였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기만성과 그 안에서 상처받은 사랑, 욕망, 정치, 미디어, 교양, 예술, 언어, 몸짓까지 삶의 속살들의 허구와 환멸의 맨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그때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아도르노의 비판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도르노에게는 가능성을 위해서 스스로의 불가능을 껴안는 '부정 변증법'적인 희망이 있다. 용기 속에서만 눈뜨는 희망이 있고, 그 용기를 아도르노는 '버티기'라고 불렀다.


버티기.


불가능성 앞에서 물러나지 않기.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능성을 짜내기 위해서 논리적 구축을 포기하지 않기.


밤하늘에 흩뿌려져 있는 별과 별 사이에 선을 그어 별자리를 찾아내듯 현실 속에 파편처럼 흩어진 사실들을 조합하고 허물고 또 조합하기를 멈추기 않기. 그 지루하고 집요한 반복의 버티기가 아도르노의 희망이었다.


아도르노의 <명제들>을 수첩에 적어 놓고 계속 떠올려본다.


<삶은 살고 있지 못하다>, <잘못된 삶 안에 올바른 삶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거짓이다.>, <문화는 쓰레기다.>, <모든 것이 자연의 표현이다.>, <모든 것이 거짓인 사회에서 진실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가장 자연일 때 그것은 역사적인 것이며, 가장 역사적일 때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되돌아가는 일은 퇴행일 뿐이다.>, <이론이 실천이다.>


산다는 건 숨을 쉰다는 것이고, 숨을 쉰다는 건 구멍으로 호흡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만하지 못한 세상이란 무엇일까. 그건 구멍이 다 막혀버린 세상, 숨을 쉴 수 없는 세상이다. 살자면 그래도 숨을 쉬어야 한다. 어떻게? 구멍들이 다 막혀도 삶 안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구멍이 있다. 그건 바로 상처라는 이름의 구멍이다. 이 구멍으로 숨을 쉰다는 건 특별한 사유와 실천의 기술들이 필요하다.


오늘날 보이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을 파편적으로만 보지 말고 문제와 문제들 사이에 있는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는 사회의 진짜 문제들을 들여다볼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지는 강의였습니다. 강의 속에 언급되고 있는 영화랑 책들도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 김진영 선생님이 보고 싶어지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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