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은 어쩌다
아밀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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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아밀의 신작 소설집 《멜론은 어쩌다》는 표지에서 볼 수 있듯이 독특한 공기와 색을 머금은 책이다. 낯선 별의 대기를 들이마신 듯, 읽는 순간부터 익숙한 세계와는 다른 결의 분위기가 감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 소설집이 지닌 경쾌함과 묵직함의 기묘한 공존이다. 천연덕스러운 유머 속에 현실의 차별과 혐오가 스며 있고, 발랄한 캐릭터들이 뛰노는 무대 뒤편에는 우리가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특히 〈노 어덜트 헤븐〉은 ‘어린이만이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이라는 발상부터가 묘하게 아름답다. 멜론이라는 소녀가 엄마와 다시 마주하는 장면은 동화적이면서도 처연하다. 과일처럼 묘사된 멜론이의 모습은 작품 전체에 특별한 온기를 더한다. 아밀은 이 소설을 통해 동심과 상처, 순수와 어둠을 절묘하게 교차시키며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이미지를 선물한다.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어느 부치의 섹스로봇 사용기〉,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 등 다른 단편들도 경계를 비트는 대담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설정들이 소설 속에서는 능청스럽게 펼쳐지고, “이렇게도 말할 수 있구나”라는 신선한 놀라움을 안겨준다.


《멜론은 어쩌다》는 SF적 장치를 활용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과 사회, 차별과 사랑이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게, 오히려 명랑하고 재치 있게 풀어내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책을 덮고 나면 마음속에 묘한 진동이 남는다. 불편함과 사랑스러움,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만들어낸 여운. 이 독특한 공기야말로 아밀의 작품을 특별하게 한다. 마치 한여름에 베어 문 멜론처럼 신선하고 낯설며, 동시에 씁쓸한 단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머문다.


새로운 공기 속에서 문학을 느끼고 싶고, 익숙한 세계를 다르게 비춰줄 거울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멜론은어쩌다 #김지현 #아밀 #비채 #비채서포터즈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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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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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책을 좋아하는 내게 여행은 언제나 책장을 넘기듯 시작된다. 가방 속에는 늘 읽다만 소설 한 권이 있고, 낯선 공항의 공기조차 문학 작품 속 배경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와 그녀들의 도시』는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내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곽아람 작가는 어린 시절 머리맡을 지켜주던 책 속 친구들을 실제 세계에서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초록 지붕 집의 앤, 네 자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콩코드, 개츠비의 화려한 뉴욕, 그리고 바다와 싸우던 노인의 쿠바까지. 그 풍경을 두 발로 걸으며 확인하는 과정은 곧 “문학이 단지 허구만은 아님”을 증명하고, 책 속에서 받았던 위안이 공기와 빛, 흙의 냄새로 살아난 순간들이었다.


읽다 보면 여행기가 곧 문학 비평이 되고, 문학이 다시 여행의 나침반이 된다. 특히 스칼렛 오하라의 엄마, 엘런의 서배너까지 찾아간 대목에서 나는 작가의 세심한 시선을 오래 곱씹었다. 대부분 여주인공 스칼렛만 떠올리지만, 작가는 그 뿌리와 배경까지 탐색한다. 여성 인물들에게서 길어 올린 강인함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건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책 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허구의 도시’가 실제 땅 위에 있다는 사실은 내가 오래 사랑해온 문학을 한 번 더 사랑하게 만든다. 책장 깊숙이 묻어둔 『빨강 머리 앤』을 꺼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언젠가 곽아람 작가처럼 진짜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로 떠나,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지붕 집을 바라보며 앤과 나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고 싶다.


『나와 그녀들의 도시』는 책이 여행을 부르고, 여행이 다시 책을 부르는 선순환의 증거다. 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문학이 건네는 초대장일 것이다.


#나와그녀들의도시 #곽아람 #아트북스 #독서에세이 #여행에세이 #독서여행자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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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의 노래 - 제11회 대한민국 과학소재 단편소설 공모전 수상작품집
조나단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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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지원도서


대한민국 과학소재 단편소설 공모전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벌써 11회째를 맞이하고 있었다니, 한국에서도 이렇게 꾸준히 SF 단편을 발굴해온 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책을 펼치며 큰 기대보다는 호기심을 먼저 품었는데, 읽다 보니 금세 작품 속 세계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단편집에는 우주, 인공지능, 로봇을 소재로 한 7편의 수상작이 실려 있다. 그러나 단순한 상상력의 향연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윤리와 감정을 집요하게 건드린다는 점이 인상 깊다.

특히 강렬하게 다가온 작품은 세 가지다.


〈밀수꾼의 노래〉 : 영화처럼 스펙터클한 전개 속에서 오랜 세월 우주를 누벼온 전설과 맞닥뜨리는 모험담.

〈중립 판단〉 : 태양이 사라진 절망적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냉정한 계산과 인간의 결단이 어떻게 부딪히는지를 보여준다.

〈편의점 로봇, 아시모〉 : 편의점이라는 평범한 공간에서 로봇과 인간의 일자리 문제가 생생하게 펼쳐지며, ‘내일이라도 현실이 될 법한 이야기’라는 섬뜩한 울림을 남긴다.


다른 단편들 역시 SF적 상상력을 빌려 사회적·윤리적 문제를 비트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덕분에 더 현실적이고, 읽는 내내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매년 수백 편의 응모작이 몰리고, 올해는 700편 이상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SF라는 언어로 미래를 탐구한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SF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혹은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속에서 ‘내일의 인간’을 미리 마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차분히 읽기 시작했지만, 덮고 나서는 오히려 “왜 이제야 이 공모전을 알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밀수꾼의노래 #중립판단 #편의점로봇아시모 #황금가지 #조나단 #송건자 #신진오 #유혜선 #이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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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 - 2018 한스 안데르센상 대상 수상작 어떤 하루의 그림책 2
베아트리체 마시니 지음, 잔니 데 콘노 그림, 김지우 옮김 / 이온서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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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시지원도서


여행을 떠난다는 건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이라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일깨워 준다. 《좋은 여행》은 우리가 사는 삶 그 자체를 하나의 긴 여정으로 바라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책장을 펼치면, 떠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 낯선 길과 익숙한 풍경,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그려진다. 길 위에서 맞이하는 우연한 순간들―비에 젖은 길, 지쳐 잠든 밤, 뜻하지 않게 도착한 아름다운 곳―은 모두 여행의 일부이자 인생의 일부임을 느끼게 한다.


잔니 데 콘노의 그림은 언어를 넘어 감정을 전하고, 베아트리체 마시니의 문장은 그 그림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에게는 모험과 발견의 기쁨을, 어른에게는 삶의 길 위에서 나아가야 할 용기를 건네준다.


특히 마지막에 마련된 「나의 여행 노트」는 스스로의 길을 기록하게 만든다. 이 지면에 적어 내려간 단어와 문장들은 언젠가 되돌아볼 때, 또 하나의 여행이자 나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어떤 모습의 여행이더라도 괜찮다. 그 모든 것이 결국 너의 이야기다.”


책을 덮고 나면, 문득 일상의 순간들마저 여행처럼 다가온다. 오늘의 산책, 아이와의 짧은 나들이,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시간까지도. 이 평범한 순간들을 소중히 느끼게 만드는, 다정한 친구 같은 그림책.


좋은 여행을 하고 싶을 때, 아니 어쩌면 좋은 삶을 살고 싶을 때, 곁에 두고 오래 곱씹게 될 책을 만났다.


#좋은여행 #베아트리체마시니 #잔니데콘노 #이온서가 #어떤하루의그림책 #방카렐리노비평가특별상 #안데르센상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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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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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강물 위로 부유하는 어렴풋한 형체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범죄의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가 이내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한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의도적으로 기대를 빗나가게 하고, 그 틈으로 삶과 사랑, 그리고 자연의 숨결을 밀려오듯 흘려보낸다.

주인공 게이코는 서른다섯. 도시의 질서를 벗어나 낯선 마을 안치나이에 정착해 우편배달을 시작한다. 누군가의 하루를 담은 편지를 배달하는 일은 단조롭지만, 동시에 삶의 맥박을 가장 가까이서 듣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만난 데라토미노 가즈히코는 마치 다른 시간대에 사는 인물 같다. 그는 세상의 소리를 수집하며, 게이코가 잊고 있던 감각의 결을 깨운다. 그와의 만남은 게이코의 삶을 불쑥 불타오르게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수수께끼 속으로 그녀를 밀어 넣는다.

마쓰이에의 문장은 언제나 자연을 배경이 아니라 인물처럼 세운다. 눈이 흩날리고, 바람이 밀밭을 스친다. 청량한 공기와 햇볕의 냄새가 페이지마다 배어 있다.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게이코와 가즈히코의 관계 역시 자연의 리듬과 함께 고요히, 그러나 불가피하게 무르익는다. 그들의 사랑은 젊은 날의 격정이 아니라, 이미 삶의 무게를 짊어진 어른들의 사랑이다. 그래서 더 서늘하고, 그래서 더 진실하다.

특히 ‘프랜시스’라는 존재는 기묘하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놓인 듯 불분명한 이 이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지탱하는 비밀스러운 장치이자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리 없는 등장인물 같다.

마쓰이에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문득, 내가 무심히 지나쳐온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스치는 바람의 결, 오래 묵은 나무의 촉감, 그리고 사랑하는 이가 내 곁에 있다는 단순한 사실의 온기. 이 모든 것이 언어로 정제되어 내 마음을 부드럽게 두드린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 이미 보여주었던 섬세한 필치는 《가라앉는 프랜시스》에서 더욱 농밀해졌다. 도시를 떠난 한 여인의 연애를 따라가며, 인간의 삶과 자연, 그리고 감각의 힘을 다시금 증명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도 옆에 있는 사람의 숨결이 새삼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마 그것이 마쓰이에 문학의 마력일 것이다.


#가라앉는프랜시스 #마쓰이에마사시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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