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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평점 :
☆리딩투데이지원도서
"내가 죽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는 손에 장을 지졌을까?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다시 첫 페이지를 읽어야 했다. 《파이 이야기》처럼.
핀처 마틴. 그의 풀네임은 " 크리스토퍼 해들리 마틴"이다. 해군 수병들이 붙여준 별명이 핀처다. 영국 해군 마틴 제독이 수병들의 실수를 잘 꼬집고 다녔다는 것에서 꼬집는 사람이라는 뜻의 핀처 Pincher가 마틴이라는 성씨에 자동적으로 붙게 되는 별명이었다. 핀처 Pincher에는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왜 주인공의 이름일 수밖에 없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위도, 아래도, 빛도, 공기도 없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 눈을 뜬 그는 살려 달라는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시작된다. 대서양 한복판에서 눈을 뜬 핀처 마틴은 구명대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사력을 다해 발버둥 치며 암석 위로 올라가 물과 먹을 것을 찾고, 미역 줄기를 모아 구조 신호를 보내게 된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던 그에게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크리스토퍼 / 해들리 / 마틴 / 영국 해군 의용 예비대 임대위 / 영국 국교회. 구조되리라는 희망으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면서 섬광처럼 과거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씩 떠오르는데.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는 배구공에 눈, 코, 입을 만들어주고는 윌슨이라는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핀터 마틴은 암석을 '전망대'라고 부르고, 바위에 각각 '난쟁이', '안전 바위', '식량 절벽', '레드 라이언', '전망 절벽', '갈매기 절벽', '옥스퍼드 서커스', '피커딜리', '레스터 스퀘어' 등등 이름을 붙여준다.
질투심 때문에 새 오토바이를 가진 친구의 다리를 망가트리고, 돈을 훔치면서도 죄책감을 갖기는커녕 너무나 당당했고, 상대방을 무시한 성관계를 하고, 살인까지 생각했던 사람이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심으로 행했던 악행들.
바다에 빠진 사람이니까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가 구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그의 기억의 파편들이 펼쳐지면 질수록 못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목숨이 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냥 그대로 구조되지 않기를.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해군으로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 호를 격침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기여했던 윌리엄 골딩의 경험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 미국에 출간 당시 제목은 『크리스토퍼 마틴의 두 번의 죽음 The Two Deaths of Christopher Martin 』이었다고 한다. 다 읽고 나서 이해가 되는 제목이다.
만약,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부표 끝에 매달려 있을 때 쥐었던 손가락을 나는 그냥 펼 수 있을까? 핀처 마틴처럼 발버둥 칠 것인가?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죽음이라는 공포와 마주한 인간은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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