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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딸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평점 :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편지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편지 『다른 딸』은 아니 에르노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죽은 언니 지네트에게 보내는 편지다.
나는 당신이 죽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죽은 것은 내가 글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오래된 사진 속 아기가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자신에게 죽은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겪게 된 혼란과 나의 흔적에 얹힌 언니의 흔적을 찾아 나간다.
"그 아이는 쟤보다 훨씬 착했어요."라고 무심히 던진 엄마의 말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언제나 항상 죽은 사람이었던 언니의 존재에 대한 부재와 존재를 탐구해 나가는 아니 에르노.
나는 내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존재로 사는 복제인간이라고 늘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살아 있지 않으며, 이 삶은 또 다른 삶을 허구로 만들어 쓴 '글쓰기'라는 것을. 존재의 부재 혹은 이 가상의 존재를 파고들어야 한다.
어린 시절에 이렇게 일기장에 쓴 글귀를 보면 죽은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된 사실을 어린 아니에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을 것이고 글쓰기를 통해 온전한 자신을 탐구해 나갔을 것이다.
죽은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삶이 된다. 외동딸의 자리에서 밀려나 사실은 둘째 딸이었다는 지위를 획득한 아니는 그녀처럼 '착하지' 않다. 그리고 쫓겨났다. 이제 사랑 속에서 살 수 없고, 단지 고독과 지성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신비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지네트에게 이 편지가 전달되기를 원하고 있다.
수신자가 없는 편지를 쓰는 기분은 어떨까? 분명히 존재했던 사람이지만 나는 모르는 과거의 흔적만이 있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는 가짜편지라고 할 수 있겠다. 한밤중 잊지 못하는 그리움에 취해서 술의 힘을 빌려 쓰는 편지 같은 느낌일까? 아침이 되고 나면 절대로 보내지 못하는 편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