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나, 사랑 둘, 사랑 셋
최혜림.챗GPT 지음 / 호연글로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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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랑 하나, 사랑 둘, 사랑 셋』은 사랑을 고백하려는 시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멋진 참고서로 사용 가능한 시집이자 에세이다. 문학적 장르야 어쨌건 이 책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시와 디자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생성형 AI(챗GPT+미드저니)라는 점이다. 미드저니(Midjourney)란 인공지능 연구소이자 해당 연구소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의미한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AI가 이미지를 생성해주는(Text-to-Image) 모델로, 스테이블 디퓨전과 함께 현시점 가장 유명하면서 생성되는 이미지의 퀄리티가 높은 AI 이미지 제너레이터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글을 쓰는 일은 모두 저자가 직접 머릿속에서 상상하거나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작성한다. 어떤 글은 일정한 양식이 갖춰 있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문학적' 글쓰기는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나 창의성에 의해 작성되어 왔다. 독자도 아직 익숙지 못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지만 몇 가지 기술은 활용하고 있다.

AI 기술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대면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기존 디지털 기술 중 당장 적용 가능한 비대면 방식부터 적극적으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3~4년 거치는 동안 이젠 다양한 테크놀로지 사용이 대세가 되고 있다. 지문인식으로 휴대폰 작동을 시작해서 정맥 인식으로 만기 된 은행 예금을 연장하고, 점심시간에는 키오스크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귀가하면 저장된 앱이 아파트 현관 문을 자동으로 열어준다. 물론 독자가 사용하는 일은 드물지만 휴대폰 작동과 키오스크는 불가피해서 한두 번 따라하다 보니 의외로 쉽고 간편해 익혀두고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런 인식과 인증 기능 등이 포함된 소통 방식은 ‘생성형 언어 인공지능’인 챗GPT가 선보이면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시대에는 더 많은 인간의 노동력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임은 이미 코로나 기간 중 수없이 보도되고 발표된 대로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본격 돌입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가장 정밀함이 요구된다는 의료 기술에도 AI 기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니 빅데이터와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저자 최혜림은 시·음악평론·사진 등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리더십이나 자기계발 분야에선 강연하고 교육할 정도의 박사 학위 소지자로 전문직 종사자이다. 그러나 평소 전문 분야에서 많은 글을 쓰거나 문학 작품이나 사진 등에는 크게 활동하지 못해서 "자신의 감성을 글로 표현하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해서 감정을 실어 보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서문〉을 통해 고백한다. 저자는 시의 영역은 인간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고 털어놓는다. 챗GPT는 시상(詩想)을 가다듬지 않고 순식간에 써내려가는 것을 보고 적잖게 당황하고 놀랐을 것 같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은 사랑을 어떻게 기억하고 풀어낼까?"로 관심이 증폭됐다. 사진과 시 그리고 음악 감상 글에 테크놀로지를 연결한 융복합적 접근으로 '사랑'이란 주제의 글을 다루게 된 것임을 털어놓는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 받기 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남기기 위해서다. 저자와 챗GPT의 시 구별은 있지만 독자도 이런 책을 처음 접한다. 이런 까닭에 한 번만 읽어서는 따로 구별하지 않아 혼란스러운 점은 안타깝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2024년의 트랜드 키워드는 '호모 프롬프트'다. 인공지능 활용의 한 분야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용어 호모 프롬프트 가운데 호모는 ‘인간’을 의미하며, 프롬프트는 컴퓨터에서 명령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가리키는 단말기의 용어이다. ‘호모프롬프트’는 이 두 용어를 결합하여, 새로운 기술인 AI와 소통하며 창의성을 발전시키는 인간을 지칭합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처럼 호모 프롬프트라는 신조어는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새로운 상호작용 및 협업의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이는 디지털 시대의 빠른 변화와 기술의 진보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은 몇 가지 주요한 측면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최근 몇년간 AI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딥러닝 및 기계 학습의 발전으로 생성형 AI가 현실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인공지능이 예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창작 분야에서도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AI가 창작물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창의성이 어떻게 보존되고 존중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아직 윤리적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 이른 전개에 일부 산업계와 노동계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작가, 화가, 음악가 등의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과 AI가 협업할 때 어떤 원칙을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말하고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일부 산업에서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반대로 일부 분야에서는 일자리의 감소와 관련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인간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의 진행 여부가 주목된다. 그런가 하면 AI가 창작에 개입함으로써 미술, 문학 등 일부 예술계 인사들은 이전에 없었던 형태와 색채, 주제 등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새로운 문화적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며 반기는 측과,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측면에서 혁신적인 결과이지만 자칫 인간의 창의성 계발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이 책 『사랑 하나, 사랑 둘, 사랑 셋』 역시 이런 시대적·예술적 토대 위에서 펴낸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저자 최혜림은 교육자로 리더십에 관한 많은 연구와 서적을 발표했다고 한다. 또 2022년 저자의 딸인 아티스트이자 대학교수인 리사박과 함께 『우리는 낮에도 별을 본다』란 에세이집을 출간하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이번 책은 저자로서 출판사로서 또 다른 시도이다. 사진, 시, 음악,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융복합적인 발상이 앞으로 창의성의 시대에 필요한 인간의 잠재력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양한 장르를 연결하는 색다른 발상으로 인해 기획 단계에서 편집까지 그리고 AI 디자인 작업은 흥미로웠다는 저자의 말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어울리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보람찬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랑에 관한 인간의 시와 챗GPT의 시를 비교해서 누구에게 점수를 더 주는가의 심사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된다. 책 중에서 「벚꽃 엔딩」이란 제목의 시가 두 편 나온다. 한 편은 저자 '최혜림작'이고 다른 한 편은 '챗GPT'이다. 여기에 나란히 실어본다. 각 한 편에 한 연씩만 실어본다.

 

뜬금없는 이별을 마주하고는

망연자실 소리 없이 주저앉아

새하얗게 타버린 꽃잎을 뒤로 한 채

순간의 추억을 바람에 떠나보낸다(p.118)

- 「최혜림, 벚꽃 엔딩」 중에서

 

벚꽃의 속삭임이 흐르는 봄날

우리의 사랑이 꽃이 되어

언제나 함께 피어날 수 있기를

벚꽃 엔딩, 영원히 간직하리라(p,124)

- 「챗GPT, 벚꽃 엔딩」 중에서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사랑하나, 자기 사랑〉, 2부 〈사랑 둘, 가족 사랑〉, 3부 〈사랑 셋, 남녀 사랑〉 등이다. 갑자기 시집을 내놓고 챗GPT와의 비교를 바란다는 저자가 바라는 '사랑'과 챗GPT가 말하는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독자 개인의 입장이기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자 역시 독자들의 당혹감을 덜어주기 위해 '인공지능이 말하는 지능'에 대한 설명을 책의 앞 부분에 적었다. "저는 인공지능이므로 감정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지만, 사람은 일반적으로 강한 양식의 정서적 연결과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두 개체 사이의 강한 양호한 관계를 나타내며,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며, 관심을 가지며, 서로를 존중하고 돌봄으로써 표현됩니다."

이어 저자는 "사랑은 감정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합니다. 가족 사랑, 친구 사랑, 로맨틱한 사랑, 애정 어린 사랑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사랑은 때로는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때로는 어려움과 고통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서로를 지지하고 돌보는데 필요한 헌신과 희생을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챗GPT의 사랑에 대한 견해와 사람의 견해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사랑에 대한 정의는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만의 사랑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란 보통의 견해를 덧붙이고 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처럼, 사랑은 변화하고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① 개인 성장 ② 관계의 변화 ③ 외부 요인 ④ 갈등과 해결 ⑤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기대 등의 5가지 변화 요인을 적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변화가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일부 관계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사람 간의 깊은 이해와 결속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어떻게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지에 대한 공통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라는 챗GPT의 '사랑관(觀)'의 객관적 상태를 먼저 제시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의 시, 그리고 그 분위기나 주제에 알맞는 클래식 음악, 그리고 챗GPT의 시를 차례로 꾸밈새를 맞추고 있다. 특히 독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열심히 읽은 부분은 음악과 작곡가들의 이야기다. 위대한 작곡가들은 예술 못지않게 사랑에 대한 열정도 대단함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 최혜림의 의지가 엿보여 좋아 보였다. 또 사랑과 클래식을 연결시켜 듣고자 하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저자의 시 중 「아버지의 뒷 모습」은 독자로서는 조금 충격이었다. 어쩌면 독자 개인의 경우와 같은 마음일까? 해서다. 독자는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님에게 아직도 깊은 사랑을 감사하고 뒤늦게 후회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어서 이 시는 독자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한 연(聯)만 소개한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면서도 ‘사랑합니다’ 말 한 번 못 해본 자녀, 기특한 자녀가 대견하면서도 쑥스러워서 ‘사랑한다’고 말 못 하는 부모 모두에게 드리는 글.

 

아버지가 영원히 떠나시기 전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할걸

늘 마음속 망설였던 말이었다고

수줍더라도 넌지시 건네 볼걸(p.80)

- 「아버지의 뒷 모습」 중에서

 

저자 : 최혜림

 

교육자. 46세 꿈이 없던 주부가 ‘다르게 살고 싶다’라는 염원으로 도미하여 석사와 교육학 박사를 취득한 열정 만학도. 현재 세이지리더십 연구소 대표이며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는 커리어 우먼. 연구소 대표, 교수, 강사, 컨설턴트, 1인 출판사 운영자, 작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요즘 시대의 멀티형 N잡러. 최고의 관심사는 인재개발과 리더 육성. 하고 싶은 일은 여행, 식물 가꾸기, 시 쓰기, 사진 찍기, 춤 배우기 등등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은 카르페 디엠 추구자. 하지만 최고의 직업은 엄마! 서울 출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 학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로스앤젤레스(CSU, LA)에서 교육 리더십으로 석사,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USC)에서 교육학 박사를 수여받았다. 리더십 교육 효과에 대한 박사 논문이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저서로는 『자기 브랜드 리더십(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상, 2012)』, 『어제와 다른 리더십(2014)』, 『스피릿: 4차 산업혁명 시대 리더십(2017)』, 『나는 내 인생의 리더다: 언터처블 ‘나’를 만드는 수업(2018)』, 『한 학기 한 권: 자아편(2018)』, 『한 학기 한 권: 공동체편(2018)』이 있다. 유튜브 채널 [@CHOI최혜림TV]을 운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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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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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이른바 '낀세대'에 속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중간 세대란 뜻이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아날로그 감성을 그대로 가진 채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많다.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절대로 알 수 없는 지식, 즉 디지털 마인드 없이 디지털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들어와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는 뜻이다. 세상에 적응해야 살아 남는다는 이유로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지려고 무던히 애도 썼다. 그러나 테크닉 면에서는 어느 정도 능숙해지자 밥 먹고 살 만큼 적응은 했어도 감성적인 면에서는 늘 허전함과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 어떤 콘텐트로도 감성의 공간을 채울 수는 없었다. 예를 들면 어렸을 적 싸우다가도 금세 다시 어울려 지내는 데는 서로간의 쌓인 정이 있었고, 싸우면서도 감성적으로는 상대에 대한 존중도 있었다. 다만 경쟁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싸우는 일이 불가피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돌아가는 몫은 크게 차이 나는 법이 없었다. 물론 승자가 조금 더 많이, 패자는 조금 더 적게 주어도 불만이 없다는 인식도 함께였기에 가능했으리라.

지난 세기, 즉 20세기까지만 해도 사회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은 살아 있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비정한 승자독식의 무한 경쟁 사회로 돌아섰음에도 개인간 끈끈한 정은 승자가 패자에게 조금이라도 나눠 챙겨주는 일이 잦았다.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승자나 패자나 상대를 죽일 만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21세기 새 천년이 시작된다는 뉴 밀레니엄에 들어서자 사회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또 모든 경제 지표가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말하자마자 어느날 갑자기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변해가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사람 마음인 것 같다. 내가 언제 20세기 혼란스럽고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살았나 하며 마치 '선진국에서 온 한국인'처럼 의식이 변해갔다. 그것은 디지털 사회답게 급속도로,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대한민국 사회를 변화시킨 것 같다. 디지털로 변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날로그 운운하면 그는 이미 '꼰대'로 후진국 대한민국의 융통성 없는 중년임을 자인하는 꼴이 되었다.

 


 

독자는 아날로그 세대다. 나이도 이미 중년에 들어선 지 꽤 됐다. 다행히 아직 은퇴는 하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 중에는 개인 사정 여하에 따라 은퇴하고 전원주택으로 가 사는 친구도 있다. 이미 사회적으로는 유통기한 만료된 셈이다. 그러나 예전의 세대들과 달리 어설프게나마 디지털 문화에 잘 적응했기에 쓸쓸하게 지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책이나 신문, TV 등을 통해 정보를 얻었지만 지금은 인터넷-그것도 손 안 휴대폰-안에 도서관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젊어서 돈 버느라 하지 못햇던 일에 대해 관심을 돌린다. 이에 관한 정보를 원한다면 언제나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 안의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도 있으니, 이 정도면 디지털의 문화적은 충분히 누리는 셈이다. 그러나 독자는 디지털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이상과 같은 일을 해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랄까-독자의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어릴 때 행복했던 기억처럼 아련히 떠오르는 즐거움은 채워지지 않는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북은 종이책으로 보는 감성을 채워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옛날 종이책으로 읽던 충만감은 결코 없다. 이 책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충분함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작가 박완서의 산문집이다. 박완서는 살아 계실 때부터 소박함과 일상의 순수함, 그 순수함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독자들에게 잘 느끼게 해준 작가다. 다른 독자도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독자의 말에 긍정적으로 수긍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사실 2002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란 수필집의 전면 개정판이다. 아직은 박완서 작가가 생전에 계실 때이기도 하지만 그의 글은 모두 전 세기 대한민국의 굴곡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거창하게 역사 소설이나 대하 소설이래서가 아니다. 굴곡의 대한민국 현대사 가운데 일반적인 서민들의 일상을 주제로 삼은 글들이 많아서다. 그것이 지금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일 수도 있지만 지난 일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매우 감성적이란 지적을 받을 수 있지만 순수한 감정이니만큼 귀한 것이기도 하다.

 


 

전면 개정판을 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새로운 옷을 입은 이번 전면 개정판의 초판은 1977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란 제목이었고, 이를 2002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로 재출간했다고 한다. 그러니 거의 50년 전에 첫 출간된 책이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절판 없이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이 산문집은 소설가로서뿐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 박완서의 진면목을 살피는 데 이 책이 좋은 텍스트로서의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출판사 측은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 작가의 소중한 유산을 다시금 독자와 나누기 위해 제목과 장정을 바꿔 새롭게 개정판을 낸 것이다. 이번 전면 개정판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 수록된 46편의 에세이는 작가로 첫발을 뗀 이듬해인 1971년부터 1994년까지, 작가이자 개인으로 통과해 온 20여 년에서 인상적인 순간들이 담겼다. 또한, 따님인 호원숙 작가가 개정판을 위해 특별히 허락한 미출간 원고 「님은 가시고 김치만 남았네」의 수록으로 이 책의 의미를 더했다.

다시 읽어도, 언제 읽어도 마음 깊이 스며드는 박완서 작가의 글맛은 평범한 일상을 생생한 삶의 언어로 자유롭게 써 내려간 에세이에서 더욱더 선명히 드러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작가가 오랜 시간 체험하고 느낀 삶의 풍경이 오롯이 그려져 있어, 지금 읽어도 다시 생각해 볼 만한 유의미한 질문들을 건져 올리는 재미가 있다. 특유의 진솔함과 명쾌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글에서부터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글까지, 올곧은 시선과 깊은 혜안으로 삶 이면의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박완서 작가 에세이의 정수가 담겼다. 보통의 일상을 가장 따뜻하고 묵직하게 어루만지는 삶의 단편들을 리커버 특별판으로 다시 만나면서 독자는 아날로그 감성을 날것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을 발견한 기쁨이다. 실제로 20여년 만에 다시 읽는 그의 글에서 개다리소반을 앞에 놓고 쭈그리고 앉아 원고지를 채우고 있는 박완서 작가의 옛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립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봄을 기다리는 계절에 영원한 현역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전면 개정판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가 다시 출간됨에 독자의 아날로그 감성을 충족시켜 줄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주는 기쁨은 미묘하고도 옛 즐겁고 아름다운 일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박완서 작가는 나이 40이 된 1970년 『나목』을 시작으로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영원한 현역 작가’로 여전히 우리 가슴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소설에서는 중일전쟁, 2차 대전, 6.25 등 박완서 작가를 스쳐 간 어마어마한 문화의 부피가 소설 안에 묵직하게 새겨졌다면, 그의 산문집 에세이에서는 일상 속 다채로운 풍경과 소박하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박완서 작가의 삶이 더욱 짙게 묻어난다. 이 점이 독자에게는 더욱 옛 일이 아련하지만 하나하나 새롭게 떠오르며 아름다움을 반추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눈에 안 보일 뿐 있기는 있는 것〉, 2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3부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등이다. 특히 1부에 수록된 「님은 가시고 김치만 남았네」는 단행본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원고로, 한국 문학의 두 거목 박경리 작가와 박완서 작가의 특별한 우정과 유대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걸어온 길」에는 유년 시절부터 작가의 삶, 개인적인 삶, 가족과의 이별, 외로움 등 지나온 삶을 반추한 내용이 압축해 담겼고, 「특혜보다는 당연한 권리를」에는 동성동본 결혼 금지 제도에 대한 당시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일화가 그려진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극단적인 편견, 태도를 날카롭게 짚어내는 작가의 시선에는, 지금 우리 주변의 갈등 상황에도 비춰볼 수 있는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

2부 중 「겨울 이야기」에 등장하는 에너지 대책과 유류 절약에 대한 장면은 탄소 배출과 지구 온난화라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주말농장」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도시와 지방의 격차와 이기주의의 단면이 그려지고 있다. 아울러 「잘했다, 참 잘했다」에서는 역사적 사건에서 망국의 아픔과 분단의 아픔을 함께 아울러 공감하는 한편, 아이에게까지 미치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염려와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3부의 「틈」, 「고추와 만추국」, 「그때가 가을이었으면」에는 넉넉지 않은 벌이 안에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생활인의 고단함이 담겼고,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서는 지나친 사랑이나 까다로운 주문 대신 무게로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사랑을 주고 싶은 부모의 깊은 애정이 그려진다. 작가가 된 이듬해의 작가로서 포부와 순수한 바람을 담은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에서는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던 박완서 작가의 소박한 소망, 진솔한 마음이 은은히 배어난다.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위로의 문장들은 70, 80, 90년대를 지나온 어른이자 작가인 박완서의 통찰력 있는 시선, 무르익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그의 이야기가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기에,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어떤 고민을 했고 또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를 되새겨 볼 시간을 제공해주신 박완서 작가와 출판사 측에 감사한다.

그리운 작가의 목소리를 오롯이 만날 수 있는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의 책장을 펼치면 ‘지금, 다시, 새롭게 돌아온 박완서’를 만날 수 있다. 주변에 대한 따듯한 관심과 애정을 잃지 않았던, 그래서 더욱더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대작가 박완서. 그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애써 찾지 않아도 날카로운 혜안과 따뜻한 인정,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랐던 한없이 깊은 그의 마음이, 사랑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책의 추천사에서 이해인 시인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비롯해 제목부터가 정겹고 다정한 46편의 글들은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불후의 명작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 사물과 인간에 대한 애정, 사회에 대한 솔직하고 예리한 통찰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삶에 대한 겸손과 용기를 가르쳐 준다. 때로는 눈물겹고 때로는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유익하고도 재미있는 글의 힘! 긴 시간을 거슬러 다시 펴내는 이 희망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읽힐 수 있길 기도한다. 작가는 우리 곁에 없지만, 변함없이 마음을 덥혀 주는 그의 진솔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다시 따뜻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시골집 장독대에 핀 고운 백일홍 한 송이처럼 노을 진 들녘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눈빛으로 착해지는 꿈을. 그래서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꿈을. 지금도 “선생님!” 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반달 미소를 띠고 나타날 것만 같은 박완서, 우리의 작가, 이야기 천사님. “다시 다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고 싶다."고 그를 회고하고 있다.

 


 

박완서 작가의 따님이자 작가인 호원숙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쓰시던 노트북 바탕화면에 떠 있던 글이 두 편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내신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출간 이후에 쓰신 글이었습니다. 두 편의 글은 마치 어머니의 유언과 같아서 우선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 두 편의 글로 책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냥 소중히 가족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1주기도 지나 어머니의 책상 서랍에서 어떤 산문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글을 잘 정리하여 모아놓으신 묶음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컴퓨터에 저장된 것은 믿을 수 없다며 종이의 정직함을 믿으신 어머니가 A4 용지로 프린트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반가움과 기쁨을 주었다기 보다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저려왔습니다.”고 『세상에 예쁜 것』이란 책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어머니 박완서 작가를 그리고 있다.

 

저자 : 박완서(朴婉緖)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아저씨의 훈장』,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배반의 여름』은 1975년 9월에서 1978년 9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조그만 체험기」, 「흑과부黑寡婦」,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가 그리는 모성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6 호암상 수상자(예술상) 초청 강연회’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라고.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풀어내는 모성의 힘은 힘센 것들만이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뒤로 처진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무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는 1987년 1월에서 1994년 4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네 개나 있는데 그중「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의 죽음을 담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담담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저녁의 해후』에는 1984년 1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해산바가지」, 「애 보기가 쉽다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층민들의 인간애는 가진 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은 1979년 3월에서부터 1983년 8월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속물성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젊은 것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황혼」, 「천변풍경泉邊風景」과, 출세한 자들의 허위를 그린 「내가 놓친 화합(和合)」,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등이 그것이다. 『미망』은 조선조 말기에서 6ㆍ25 전쟁 직후까지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한 개성 상인의 가족사를 통하여 재창조한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과 격동의 시대를 험준한 산을 넘듯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박완서 소설 문체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작가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을 담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어 노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선보였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왔던 그녀는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수필집, 동화집을 발표하고, 2010년 8월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마지막으로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기 구리시에는 '박완서 문학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2006년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이후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그 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기나긴 하루』,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길 사람 속』,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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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클래식 리이매진드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올림피아 자그놀리 그림, 윤영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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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의 저자인 L. 프랭크 바움이 오로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줄 생각으로 아픈 가슴과 악몽은 사라져버린 동화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특히 여자 어린이 도로시를 주인공으로 삼아 순수하고도 감성적인 스토리를 담아냈다. 이 환상적인 줄거리의 모험 동화는 당시 현대사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미국의 사회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당시 하와이주는 미국인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의 합병운동이 지속되다가, 1897년에 매킨리 미국 대통령에 의해 합병조약이 체결되어 다음해에 미국의 주권하에 놓이게 되고, 1900년에 준주(準州)가 되었다. 미국령이 된 뒤 사탕수수와 파인애플의 재배가 한층 촉진되어 인구가 증가하고, 펄하버를 중심으로 한 기지의 강화도 추진되었다고 한다. 1941년 12월 8일에 일본군에 의해 펄하버(진주만)가 기습공격을 당했고, 그것을 계기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주(州) 승격운동이 성해지면서 1959년 8월 21일에 알래스카에 이어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1900년 미국은 하와이 주를 합병하기로 확정하고 북아메리카 대륙뿐만 아니라 태평양의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위대한 비상을 꿈꾸던 시기다. 저자 바움은 1900년 4월에 쓴 〈서문〉을 통해 20세기가 시작한 원년에 맞춰 환상 동화 한 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적기라고 판단했음을 알린다. 모든 건강한 아이들이 환상적이고, 놀라우며, 명백히 비현실적인 것들에 대해 건전하고 본능적인 사랑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고 집필 취지를 밝히고 있다. 바움은 "그림 형제와 안데르센의 날개 달린 요정들은 다른 그 어떤 인간 창작물보다도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고 전제하고, "세대를 이어 활약해온 옛날 동화들은 이제 어린이도서관에서 '역사'로 분류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놀라운 이야기'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고 미국의 패권시대가 다가왔음을 말하는 듯하다. 저자는 정형화된 정령, 난쟁이, 요정은 사라졌다고 말하며 새 시대(뉴밀레니엄, 현대)에 맞는 새로운 환상 동화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어린이들은 놀라운 이야기 속에서 단순히 즐거움만 추구할 뿐, 유쾌하지 못한 사건은 기꺼이 생략해 버린다. 이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오늘날의 어린이들을 오로지 즐겁게 해줄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썼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처음 볼 때 독자는 놀랐다. 이런 환상적인 이야기가 왜 독자가 어렸을 때 읽었던 〈세계명작전집〉에는 없었을까? 그리고 대한민국의 출판인쇄 기술의 발전에 또 한 번 놀랐다. 글과 그림은 물론 미국 작가와 이탈리아 화가가 그렸다. 특히 그림은 현대 미술 작품처럼 승화시켰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그림과 책의 환상적 줄거리도 좋지만 인쇄 능력도 뒤를 받치지 못하면 제대로 찍어낼 수 없었을 터, 이젠 우리 출판인쇄술도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어서 한층 기분이 좋다. 각자가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위대하고 무시무시한 오즈가 살고 있다는 '에메랄드 시'를 찾아가는 험난하고 위태로운 여정, 그리고 시시각각 일행이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과 반전의 묘미가 어우러져 책은 줄거리 상 거의 완벽에 가까운 환상 동화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다. 꼭 소장해놓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책이다.

미국의 출판사항을 엿보기 위해 초판본 표지를 그대로 영인한 판본을 온라인 서점에서 찾아 여기에 참고 사진으로 게재한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아도 매우 조잡하긴 하다. 하긴 그때는 컬러 표지만 해도 대단했을 때니까···. 『오즈의 마법사』는 초판 출간 후 한 세기가 넘도록 수많은 뮤지컬과 영화 등으로도 각색되어 여전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이 책은 명작의 '컬렉터용 버전'으로 출간했다고 하니 출판사 측에서도 많은 애를 썼으리라고 짐작된다. 특히 이번 판본은 그동안 다채로운 컬러로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올림피아 자그놀리의 매력적인 이미지가 더해져 비밀이 가득한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그림의 색이 녹색이 많은 것은 아마 동화 속에 등장하는 '에메랄드 시'의 에메랄드가 녹색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책의 첫 문장은 주인공 도로시가 사는 집과 집 주변의 묘사로부터 시작된다. "도로시는 농부인 헨리 삼촌, 엠 숙모와 함께 캔자스 대평원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그들의 집은 조그마했다. 집을 지으려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차로 목재를 싣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네 개의 벽에 바닥과 지붕을 더하여 한 칸짜리 방이 만들어졌다. 그 방에는 녹슨 요리용 스토브, 그릇을 보관하는 찬장, 탁자, 의자 서너 개, 그리고 침대가 있었다. 헨리 삼촌과 엠 숙모는 한쪽 구석에 있는 큰 침대를 썼고, 도로시는 다른 쪽 구석에 있는 작은 침대를 썼다. 다락방도 지하 저장실도 없었지만, 바닥에는 '회오리바람 대피소'라 불리는 작은 구덩이가 있었다.(p.13)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캔자스 대평원의 삼촌 집에서 살고 있는 도로시에게. 거센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집과 함께 통째로 날아간 그곳은 착한 북쪽 마녀와 먼치킨의 나라다. 그런데 이들은 도로시가 사악한 동쪽 마녀를 죽였다며 감사해한다. 뜻하지 않게 집에 깔려 죽은 마녀 때문에 마법이 숨겨진 은색 구두까지 얻게 된 도로시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에 북쪽 마녀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다스리는 에메랄드 시로 가라고, 오즈가 집으로 가도록 도와줄 거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해서 도로시의 기나긴 여행이 시작된다.

이후 노란 벽돌 길을 따라 에메랄드 시로 향하던 도로시는 지푸라기 대신 뇌를 갖고 싶어 하는 허수아비와 잃어버린 심장을 갖고 싶어 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갖고 싶어 하는 덩치 큰 사자를 만나 오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된다. 숲속을 지나고 강물을 건너고 양귀비 꽃밭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일행은 에메랄드빛 도시에 도착하지만,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며 일행을 만난 오즈는 사악한 서쪽 마녀를 죽여야 각자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답한다. 결국 그들은 서쪽에 있는 윙키의 나라로 향하고 수난을 겪은 뒤 사악한 마녀를 없애버린다. 그러고 나서 에메랄드 시로 향한 일행은 무시무시한 오즈의 정체에 놀라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도로시의 간절한 소망마저 오즈와 함께 날아가버린다. 이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도로시는 초록 병사가 알려준 남쪽의 콰들링의 나라에 살고 있는 착한 마녀에게 도움을 청해보기로 한다. 또다시 함께 길을 떠난 일행은 나무들이 공격하는 숲과 신비한 도자기 나라, 괴물 때문에 동물들이 불안해하는 숲속을 지나 마침내 착한 마녀 글린다를 만나고 도로시는 은색 구두의 놀라운 힘을 빌려 그토록 애타게 바랐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작품은 애초에 어린이를 위해 쓴 만큼 얼기설기 복잡하거나 첨예한 갈등 구조, 추상적인 표현 등이 난무하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도로시 일행의 여정을 따라가며 저자가 그려내는 순수한 상상의 세계 속으로 흠뻑 빠져들 수 있다. 또한 소녀,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가 제각각 원하는 집, 뇌, 심장, 용기는 다양한 관점에서 변이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모두가 원하는 걸 이루고 각자 다스릴 왕국까지 갖게 되는 해피 엔딩은 이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순수한 우정과 따듯한 사랑의 소중함을 더욱더 호소력 넘치게 해준다.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았을, 신기한 마법의 힘이 작용하는 이야기 세계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올림피아 자그놀리는 특히 『오즈의 마법사』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촉망받는 젊은 아티스트로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전한다. 사물과 인물을 유려한 선과 매혹적인 색채로 표현한 그녀의 작품은 전 세계의 여러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도록으로도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림피아 자그놀리 특별전’, 2023년 ‘시크릿 오브 컬러 올림피아 자그놀리’ 전시 등이 열렸다.

1900년에 출간된 『오즈의 마법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논평가들에게 너무나 다양한 해석과 평가의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이 이야기의 배경과 등장 캐릭터는 작가인 L. 프랭크 바움의 굴곡 많은 삶과 경험에서 나왔을 테지만, 19세기 후반의 미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냈다는 주장도 일견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즈(OZ)’는 금의 무게 단위인 온스의 영어식 줄임말이고 노란 벽돌 길은 미국의 금본위제를, 에메랄드 시는 워싱턴 DC를,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과 사자는 각각 순박한 농민 계급과 체계에 갇혀 비인간화된 공장 노동자와 당시의 정치인을 빗대어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의인화와 판타지 요소가 가득한 이야기로 당시의 미국 사회를 은근히 풍자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색다른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가 상징과 비평의 덤불 속에 겹겹이 갇혀서는 안 될 것이다.

나무꾼이 넓은 알현실에 들어섰을 때 본 것은 머리도 여인도 아니었다. 오즈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짐승의 형상이었다. 덩치가 코끼리만큼 커서 초록 왕좌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할 정도로 보였다. 짐승의 머리는 코뿔소와 닮았고 얼굴에는 눈이 다섯 개였다. 몸에는 기다란 팔이 다섯 개나 자라나 있고, 길고 마른 다리도 다섯 개였다. 굵고 무성한 털이 온몸을 뒤덮은 것이, 그보다 더 끔찍하게 생긴 괴물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 순간만큼은 양철 나무꾼에게 심장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공포심에 심장이 마구 뛰었을 테니까. 나무꾼은 오로지 양철로만 이루어졌기에, 크게 실망했지만 전혀 무섭진 않았다.(p.156) - 「11 오즈의 에메랄드빛 도시」 중에서

 


 

저자 : L. 프랭크 바움(Lyman Frank Baum)

 

아동과 청소년에게 널리 읽히는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쓴 작가이다. 1856년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났다. 극작가, 극장 경영자, 신문기자, 영업사원, 심지어 닭을 기르는 일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아내의 격려로 좌절하지 않은 그는 밤마다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지었으며 장모 마틸다 게이지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프랭크 바움의 첫 책은 흥미롭게도 『함부르크 양육법』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결혼 후 한 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마더 구즈' 책들을 출간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잡지사의 편집장으로서의 자리도 탄탄히 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바움은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1899년 W. W. 덴슬로우와 함게 작업한 『파더 구즈 : 그의 책』은 출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듬해인 1900년, 평범한 시골 소녀의 독특한 모험담을 담은 『오즈의 마법사』를 출간하면서 잊혀지지 않을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후에 작가는 어른들을 위한 책도 여러 편 썼으나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오즈의 마법사』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편지에 파 묻혀 모두 14권에 이르는 '오즈' 시리즈 『오즈의 마법사 The Wonderful Wizard of Oz』, 『환상의 나라 오즈 The Marvelous Land of Oz 』, 『오즈의 오즈마 공주 Ozma of Oz』, 『도로시와 오즈의 마법사 Dorothy and the Wizard in Oz』, 『오즈로 가는 길 The Road to Oz』, 『오즈의 에메랄드 시 The Emerald City of Oz』, 『오즈의 누더기 소녀 The Patchwork Girl of Oz』, 『오즈의 작은 마법사 이야기 Little Wizard Stories of Oz』, 『오즈의 틱톡 Tik-Tok of Oz』, 『오즈의 허수아비 The Scarecrow of Oz』, 『오즈의 링키팅크 Rinkitink in Oz』, 『오즈의 사라진 공주 The Lost Princess of Oz』, 『오즈의 양철 나무꾼 The Tin Woodman of Oz』, 『오즈의 마법 The Magic of Oz』, 『오즈의 글린다 Glinda of Oz』 를 출간했다. 이 중 마지막 14권을 쓸 때 바움은 병원에서 그의 마지막 생을 보내고 있었고 끝내 그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림 : 올림피아 자그놀리

 

이탈리아의 예술가.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유럽디자인학교(IED)를 졸업했고 줄곧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뉴욕 타임스], [뉴요커], [마리끌레르], 프라다, 디올 등 저명한 미디어 및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2011년 뉴욕의 아트디렉터스클럽이 수여하는 ‘젊은 작가상(Young Guns)’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프린트매거진이 선정하는 ‘올해의 뉴비주얼아티스트’로 뽑혔다. 유려한 선과 매혹적인 색으로 사물과 인물을 표현한 작품들이 전 세계의 여러 갤러리에서 전시되었으며, 2022년과 2023년에는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역자 : 윤영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고고미술사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그림 그리기 는 즐겁죠 : 밥 로스의 참 쉬운 그림 수업』, 『밥 로스 컬러링 북』,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 자이너를 위한 책 : 로고 디자인 편』,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 : 일러스 트레이션 편』,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 : 타이포그래피 편』, 『The Art of 인크레더블 2 : 디즈니 픽사 인크레더블 2 아트북』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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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는 독자가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고대 특히 서양 도시국가 시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다. 아테네 등 몇 곳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지만 모두 주변 국가와의 수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를 지켜냈고, 승리한 강대국들이 문명도 훨씬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인물 중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왜 아테네 문명의 많은 학자들에게서 배제했을까? 당시 귀족 등 학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 위해 17세 이상의 남자일 경우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는 의무로서의 법이 있었고, 아테네 남자들 역시 대부분 군에 입대해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당시는 학교라는 것이 없었기에 선생이나 교육자에게 대한 징집 면제 혜택도 없었으니 당연히 그리스 모든 시민은 병역 문제를 스스로 군에 가서 해결해야 진정한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로마 역시 남자는 그리스처럼 17세 이상의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하고 등급에 따라 전쟁에서 주요 역할을 해야 했다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로마군이 강했던 것은 용병 제도를 운용했거나, 무기 개발에 특별히 힘썼다는 점도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로마 제국 초창기에는 로마 시민만이 로마군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의 시민이 10만 명 안팎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군단제로 운영할 때 25만 안팎의 병력을 소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병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인근의 부족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갈 때도 지휘관이나 주요 요직은 로마 시민으로 못박았다고도 한다. 당연히 로마 시민은 전쟁에 이기면 전리품까지 나누어 받으니 호화생활(정복자로서)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전쟁을 벌여 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럴 때도 지금의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등을 군단을 파견해 정복 전쟁을 계속했다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도 언급이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로마군은 정복국에 대한 신뢰는 전혀 보여주지도, 바라지도 않았다고 한다. 피재배국에서 스스로 입대한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전혀 로마군에 강제 동원하지도 않았다니 그들의 군대 문화는 가히 철저한 자주 의식에서 강한 면모를 가졌나보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철학 인문서다. 철학이 사람과 사람의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책은 철학자들을 다룬다. 그의 학자로서의 면모보다는 많이 듣지 못한 그의 주변 사람들과 철학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저자 김헌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철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크라테스가 전쟁에 참여했다는 말도 독자는 이 책에서 처음 들었고, 사실 생각마저도 해본 적이 없었다. 군대와 철학자는 잘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전쟁터에 철학자들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철학자들은 없었기에 더욱 생소한 조합이다. 이 책은 이에 따라 철학책의 클리셰를 과감히 벗어 던졌다. 저자는 그 의도를 「무엇을 사랑하며 살 것인가?」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명백히 밝힌다. 무려 21페이지에 달하는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하이데거의 예처럼 철학자의 삶 자체와 그 속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사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고 밝히고, 저자는 ‘철학 하는 것’이란 생각하고, 공부하고, 개념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에 따라 행동하는 일상적 삶이라 강조한다.

이 책이 딱딱한 철학서가 아니라 '유쾌한 철학 이야기'로, 철학자의 삶을 풀어낸 점을 뚜렷이 밝힌다. 한마디로 '흥미롭고 유쾌한 철학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문학자인 저자는 ‘인문학’은 ‘인간다움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며, 그 역할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문학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 대안으로 철학에 대한 재검토를 제시한다. 그는 철학을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학문으로 정의하며 그 구체적 탐구와 사유의 모델로 하이데거의 예를 든다.

저자는 문(文)·사(史)·철(哲)로 불리우는 인문학의 올바른 의미와 차이점을 먼저 제시하고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바란다. 세 분야는 모두 인문학으로 구분되는데 명확히 구분되는 다른 점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는 사실에 입각하여 실증적인 탐구를 해 나간다. 지금까지 인간이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느가를 정확하게 밝혀내려고 한다. 오직 사실만은 밝혀내겠다는 의지가 남다른 분야이다. 실증적인 증거가 없다면 아무것도 단언하려고 하지 않고,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증거 자료를 찾아 사실이 아닌 것은 엄격히 제거하고 제한한다. 반면 문학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충실하고 세상과 인간에 관한 진실을 지향하지만, 역사처럼 실증의 덕목에 묶여 있으려 하지 않는다. 인간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를 탐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런 인간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즉 인간의 가능성을 마음껏 상상하는 가운데 인간이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역사와 문학을 비교하며,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인용한다. "시인의 작업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즉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따라 가능한 일을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따라서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한 사람은 일어났던 일들을 말하는 반면, 한 사람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말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인간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분명 인간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고, 이로 인해 역사와 문학이 인문학의 중요한 두 축이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고찰하고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즉,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이며, 당위성을 따지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는 곳에서 철학이 그 고유한 빛을 찬란하게 발한다고 역설한다.

독자는 지금까지 문·사·철, 인문학에 대해 이렇게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도 읽은 적이 없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명료하게 철학·역사·문학을 이해시킬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철학은 '인간은 이렇게 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도리가 아닌가?라는 당위의 문제를 다루며,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을 환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철학도 역사처럼 인간과 세상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무엇을 해야만 하고, 그렇게 했을 때, 인간과 세상은 어떤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논리적인 탐구만이 아니라 문학에서와 같은 모종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철학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당위성을 제안하는 가운데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서 최종적인 결실을 맺으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다루었던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진정 인간의 윤리적인 문제를 다룬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로마의 철학자인 키케로의 『투스쿨룸 대화』라는 책을 인용한다.

"그 옛날의 철학으로부터 아낙사고라스의 제자인 아르켈라오스에게서 강의를 들었던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숫자들과 운동들을 다루어 왔고,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별들의 크기, 간격, 궤적과 천체에 관해 아주 진지한 연구를 해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도시들과 인간들 안으로 불러들여 자리 잡도록 했고 집 안으로 끌어들였으며, 삶과 죽음, 선한 것들과 악한 것들에 관해 탐구하도록 만들었다."(p.13~14)

 


 

이 책은 철학자의 삶을 통해서 그가 문제를 인식하고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답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다〉, 2부 〈정의는 강자의 이익〉, 3부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4부 〈독주 한잔〉 등이다. 각 부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우리 삶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전쟁' '정의' '지혜' '쾌락' 등에 관한 사유이다. 이 책에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부터 이후 로마시대 이전까지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1부에서 그리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주로 등장한다. 물, 불 등 세상에 널리 산재해 있는 만물에 대한 사유를 끌어냈던 철학자들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오늘날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이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퓌타고라스,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서,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 등의 철학과 그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을 오늘날 그리스 철학과 다른 명칭인 '자연주의 철학자'라고 칭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과는 크게 달라 보입니다”라고 하며 “우리의 일상생활의 현장에 가까이 있는 느낌”이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한다. ‘철학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퓌타고라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해 철저하게 알고 싶어한 탈레스는 삶 속에서 철학을 실천하려 한 최초의 철학자들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죽음을 불사하기조차 했다.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한 엠페도클레스는 에트나산의 꼭대기로 올라가 스스로 분화구 속으로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학 안으로 들어가 ‘철학 하는 것’을 보여준 철학자들의 생생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들을 흥미롭게 한다.

2부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소피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김헌은 ‘궤변론자’라고 알려진 소피스트가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를 먼저 살핀다. 저자는 당시 소피스트들은 강연이나 교육을 통해 수업료를 받으면서 ‘지식 장사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말한다. 소피스트 이전의 철학자들 누구도 자신의 철학으로 대가를 받지 않았으며, 당시 사람들은 지식이 상품처럼 팔고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소피스트가 수사학, 즉 연설의 기술,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인다”며 소피스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만을 가르치려 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소피스트에 대한 오래된 비난과 프레임을 넘어 그들의 철학적 내용을 소피스트의 삶과 궤적을 통해 다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로 알려져 있다.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의 최고 권력자 페리클레스에 의해 입법책임자를 맡았는데, 현대 철학자들은 프로타고라스를 ‘현상론자’라고 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의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 사람의 감각에 드러나는 현상만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감각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로타고라스는 ‘어떤 것이 아름답고 추한가, 좋은가? 나쁜가,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는 의미에서 “인간(또는 개인)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했다. 프로타고라스는 상대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회의주의 철학자 고르기아스는 “있는 것은 없다. 있다고 해도 알 수 없다. 안다 해도 말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트라쉬마코스는 소크라테스와 ‘정의란 무엇인가’로 논쟁을 벌였다. 트라쉬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입니다”라고 주장하며, “도대체 누가 법을 만드는가”라며 사회적 강자를 문제 삼았다. 트라쉬마코스의 논리에 따르면, 약자들은 법을 지킬수록 손해를 보고, 그 법을 만든 사람들의 이익을 크게 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약자의 이익을 돌보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법과 제도에 편승해서 부를 축적하고 특권을 누리는 것은 사회적 강자들이다.

3부에서 저자는 진정한 철학의 시대로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사유를 그들의 삶과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서술한다. 소크라테스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꼽힌다. 서양철학이 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석공이나 조각가로 평생을 살아가는 대신,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정신의 산파로서, 정신의 조각가로서 철학자의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구름 위에 있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포티다이아 전투에 중무장 보병으로 참가하기도 했고, 혹한의 겨울 날씨에 평상복 차림으로 군영 밖으로 나가 활보했다고 한다. 크산티페와 결혼한 소크라테스는 천하의 백수로 살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고라 장터에 나가 사람들과 철학을 한답시고 노닥거리기 일쑤였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졌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던 유명한 격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때부터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아폴론 신전의 격언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그가 고발당하고 재판정에 서서 사형선고를 받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의 장면이다.

 


 

무지를 들킨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괘씸하게 여겨 없애려고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이 요구한 탈옥을 거부했다. 자신은 죽음을 기다려 왔고, 또 죽음을 연습했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테네의 법에 따라 진행된 재판의 결과까지 거부하면서 죽음을 피한다면 자신의 삶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철학의 절정, 철학의 완성이 바로 죽음이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서양철학의 가장 중요한 틀을 만든 사람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스무 살에 만나, 불과 9년 동안 제자로 지냈다. 플라톤은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세 번은 전쟁에 나갔다.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은 이성이고, 그 이성에 의해 인간은 도덕과 행복을 추구해 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철학이 개념을 다듬고, 그 개념을 논리적으로 잘 짜 맞춰서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라면, 논리적인 구조를 갖춘 기하학이나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철학적 사유를 하는 데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국가』에서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자가 되어 국가를 다스리는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세우고 20년 동안 학문에 매진하고 결사적으로 많은 작품을 써 내려갔다. 특히 이상적인 정치를 그려낸 『국가』가 현실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학문적 반성을 토대로 좀 더 현실적인 국가의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플라톤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이소크라테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사상과 교육, 구체적으로 학교 운영까지도 플라톤과 치열한 경쟁 관계였다. 이소크라테스는 심지어 “나야말로 진짜 철학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저자 : 김헌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서양고대철학, 플라톤),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서양고전학, 호메로스)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박사학위(서양고전학,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HK교원)로 재직 중이다. 서양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 고전기 아테네의 수사학과 철학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저서가 있고, 역서로는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그리스 지도자들에게 고함』, 『‘어떤 철학’의 변명』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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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 헤르만 헤세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헤르만 헤세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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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한국에서도 어떤 작가 못지않게 유명세를 누린다. 그는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의 정점에 올랐다. 독일 국적의 시인이자 작가이지만 1923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는 않은 듯하다. 그의 유명세는 이미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가 발표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발표 전 이미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1899년 출간했다. 그는 시와 소설, 산문 등을 넘나들며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독일 문단에서도 국적 변경에 개의치 않고 그를 독일의 자랑스러운 대문호로 떠받들 정도였으니 그의 문학적 업적과 명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삶의 이정표로서의 역할도 했다. 특히 그의 시는 낭만적 사조를 띠고 있음에도 도덕적, 윤리적 타락을 느낄 수 없이 밝고 명랑하다. 그의 정서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지만 선동적이지 않고 오히려 삶의 길이 혼탁할 때 이정표로 삼을 만큼 깊은 깨달음과 위로, 안식이 담겨 있다.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 출신이지만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했다. 스위스 국적은 이때 취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시는 당시 독일 문단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부터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정해진 목적지도, 반듯하게 뻗은 길도 없는 곳들을 떠돌면서 헤세 또한 무수히 많은 번민과 방황을 했으며, 죽는 날까지 실존적 고민을 결코 멈추지 않은 흔적이 그의 시와 글 많은 곳에서 발견된다. 그런 흔적은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는 데도 큰몫을 했다는 것이 문학평론가들의 일관된 평이다.

헤세는 바람 한가운데서 얼어붙은 보리수나무의 딱딱한 줄기를 베고 누워서도 부드러운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수백 번 가지가 잘려나가도 참을성 있게 새잎을 내는 떡갈나무처럼 ‘이 미친 세상’을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헤르만 헤세만큼 삶을 치열하게 살고 사랑한 사람이 또 있을까? 헤르만 헤세처럼 신의 섭리에 순종하면서도 진리에 대한 탐구적 자세를 견지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가 타계(1962)한 지 62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문학적 향기는 고고하게 전 세계에 울려퍼지며 그를 느끼게 해준다. 이 시집 『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는 그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재적 고민이 오롯이 담긴 그의 시 100편을 골라 실은 필사집으로 출간됐다.

 


 

이 필사집의 〈추천사〉를 쓴 시인 장석주는 "중학교 때 국어 부교재로 구입한 『문장의 기쁨』(반 세기도 지난 일이라 제목이 정확한지 모를 정도지만)에서 헤세의 글을 처음 읽었다"고 말하고, 그 책에 실린 단편 「나비」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다고 털어놓는다. 정석주 시인은 나비 수집에 몰입한 한 소년이 실수를 저지른 뒤 느낀 죄책감과 회한을 토로하는 그 단편 소설에 감응해서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는 것. 이후 헤세 전집을 구해 밤새워 탐독한 건 한참 뒤의 일이라고 말머리를 꺼낸다.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100편을 단숨에 다 읽었다. 헤세의 시들이 청춘과 행복의 덧없음, 계절의 순환이 우리 감각에 일으키는 작은 파문, 아름다움과 멜랑콜리에 반응하는 마음의 결을 하나로 아우른다는 점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밝혔다. 시인은 이어 헤세의 시들은 "이성과 감성의 균형, 자연과 인생에 대한 관조, 자연스러운 운율, 언어의 조탁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고향, 정원, 집, 나무를 노래하는 헤세의 시들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사물과 조응하는 천진한 소년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말한다.

흐드러진 꽃들은 지고, 청춘은 빨리 쇠락한다. 만물은 낡고, 시들고, 바스라지고, 부서진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 지혜와 미덕은 물론이거니와 가장 아름다운 것조차 조락과 소멸의 운명을 피할 도리는 없다. 남는 것은 만물이 변화한다는 진실과 한 줌의 무상뿐!이란 시평을 남긴다. 「시든 잎」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모든 꽃은 열매가 되고 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한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건

변화와 무상뿐!

- 「시든 잎」 중에서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은 시처럼 아름답게 변한다. 대체로 그렇다. 감명 받은 시에서도,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시를 읽는 마음은 순수함을 돌아간다. 그래서 시에서 받은 감동은 오래 지속되나보다. 이 책의 표제어가 된 「방랑을 하며」란 시에 쓴 싯구다. 싯구가 그대로 시집의 제목이 된 예다. 이는 아름다운 싯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하고,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지 충분히 추정할 만하다. '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다. 이에 대해서도 장석주 시인은 한 줄의 평을 남긴다. "인생이란 영원한 원무(圓舞)! 우리는 사는 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춘다. 또한 인생이란 빈약한 기쁨과 가혹한 슬픔, 그리고 기도와 구애와 비탄으로 짜인 피륙이다. 가을 지나면 한파가 몰아치고 빙점 이하의 기온에서 물은 결빙한다. 삭풍에 어린 나뭇가지는 꺾이고 시든 잎들은 우수수 떨어진다. 봄의 훈풍을 그리워하며 방랑하는 자여, 세상이 삭막해도 실존의 불안에 꺾이지는 말자. 결국 이 모든

사태는 지나가고, 밤이 이것들을 삼켜 평정하리라.

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

밤이 오면 우리는 빛바랜 땅 위로

서늘한 달님이 살포시 웃어주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 손을 잡고 쉴 거예요

 

슬퍼하지 말아요, 곧 때가 옵니다

때가 오면 쉬게 될 거예요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두 개가 나란히

밝은 길가에 서 있을 거예요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오갈 거예요

- 「방랑을 하며」 - 크놀프를 생각하며, 전문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시집은 필사용 시집이다. 장석주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이 점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든다. "헤세의 시들이 시대를 넘어서서 운명에 대한 깊은 통찰로 우리 생의 감각을 쇄신하는 까닭이다. 꼼꼼하게 읽어보니, 헤세는 생명과 봄과 소년의 시인, 재에서 불꽃이 솟구치듯 신생하는 시인이다. 봄의 푸른 공기와 새들의 노랫소리를 찬양할 때 헤세의 시적 감성은 더욱 영롱하게 반짝인다. 자, 「봄이 하는 말」을 읽어보자.

 

아이들은 모두

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살아라, 자라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틔워라

너 자신을 내어주어라

그리고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 「봄이 하는 말」 중에서

 

시인은 “실패와 좌절로 우울이 깊어질 때마다 저녁의 문설주에 근심 많은 이마를 대고 이 시를 읊조리면 위안과 힘을 얻으리라. 불안이 찾아올 때 머리를 수그리고 가만히 생각하자. 별이 지면 그 빈자리에 세로운 별이 떠오른다는 것을! 인생에서 단 하나 숭고한 의무는 우리에게 주어진 별의 순간을 꽉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이라며 말을 맺는다.

 


 

시집을 번역하는 일은 소설이나 산문을 번역하는 것과 또다른 어려움이 있다고 이 시집의 역자 유영미는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보통의 텍스트를 번역하는 것과 사뭇 다른 작업이다. 보통은 한 번 문장을 만들고 나면 그다지 손볼 일이 없지만 시는 낱말을 자꾸 이리저리 교체해 본다"고 밝힌다. 왜 이런 단어를 여기에 넣었을까? 왜 이렇게 노래했을까? 저자의 시상을 내 것으로 느끼려 하면서 시상에 가장 맞는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서다. 때문에 산책을 하면서도 시를 읊조리는 경우가 많다고도 말한다. 특히 헤세를 번역하고 있다는 역자의 말에 많은 지인들이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인다고도 털어놓는다. 어떤 친구는 「시든 잎」을 줄줄 외워 보이기도 해서 저으기 놀란 적도 있다고 회고한다. 사실 역자는 대학 때 도서관에서 헤세 시 전집을 빌여온 날, 헤세가 남긴 수많은 시들을 보면서 헤세의 부지런함에 혀를 내둘렀다고 고백한다. 소설과 산문을 그렇게 많이 쓰고, 시도 이토록 많이 썼단 말인가.

고요히 테이블에 앉아 헤세의 시를 필사한다는 건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는 고백도 한다. 그러나 시 필사는 소요 시간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자신의 결론에 이른다. 시대를 거슬러 느림과 주의 깊음, 마음 챙김으로 나아가는 행위일 것이라 믿는 이유다. 헤세의 시에 몸을 푹 담그고 헤세의 마음과 공명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또 "그렇게 위로받고, 헤세처럼, 또 헤세의 시를 좋아했던 많은 독자들처럼 다시 기운을 내서 일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을 맺는다.

이 필사 시집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뜰 안의 바이올린〉, 2부 〈시집을 손에 든 친구에게〉, 3부 〈그는 어둑한 곳을 걸었다〉, 4부 〈저녁 무렵의 집들〉 등이다. 각 부의 제목은 그 파트 안에 들어 있는 시의 제목에서 뽑아왔다. 새해 첫 선물처럼 받은 헤세의 필사시집이 오랜만에 독자의 방에도 문학적 향기를 듬뿍 전해 준다. 이 책의 향기가 농익은 과일향처럼 짙어 매우 오래 갈 것이란 예감에 기분이 들뜨기도 한다. 멋진 필사시집이다.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역자 : 유영미

 

연세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동 도서에서부터 인문, 교양과학, 사회과학, 에세이, 기독교 도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더 클럽』, 『삶이라는 동물원』, 『안녕히 주무셨어요?』, 『부분과 전체』, 『소행성 적인가 친구인가』, 『지금 지구에 소행성이 돌진해 온다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감정 사용 설명서』, 『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 『내 몸에 이로운 식사를 하고 있습니까?』,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여자와 책』, 『평정심, 나를 지켜내는 힘』,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등이 있다. 2001년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 로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번역상을 수상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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