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고려사 : 고려거란전쟁 편 - 알고 봐도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박종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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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5,000년을 이어온 역사 깊은 나라다.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해 세운 고려시대에도 외적의 침입으로 전 국토가 전란에 휩싸인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고려는 인류사에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한 몽골의 칭기스칸 제국인 원(元)나라와의 전쟁을 제외하곤 어떤 전쟁에서도 패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려 시대는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만주나 몽골 지역을 틈틈이 엿보며 나라의 힘을 키웠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다만 우리를 침략한 거란이나 원나라도 나름 엄청나게 세력을 키워서 침략했기에 쉽게 이기지는 못했지만, 원 제국과의 전쟁에선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 고려 시대의 역사는 교과서나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는 쉽게 접하기 어렵다. 고려사는 조선시대 때처럼 〈조선왕조실록〉처럼 정사(正史)를 다룬 실록인 〈고려사〉가 있지만 역사적 전쟁이나 사실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아 상당 부분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쟁의 경우 적국(敵國)의 역사서를 참고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은 기정 사실로 할 수 없게 될 경우 역사서는 물론 소설에서도 함부로 다루기 어렵다. 역사 왜곡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 여부가 확실치 않으니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이다. 소설가들은 이에 따라 야사나 기타 개인적 기록에 의존하면서 본의 아니게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쉽게 다루지도 못할 것이다. 사극이나 소설에서 조선시대에 비해 전무하다시피 한 고려시대의 사극이나 소설이 로맨스나 풍습에 관한 일이 대부분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대하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던 KBS가 〈고려거란전쟁〉을 방영함으로써 고려시대의 전쟁사가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출판계도 가세했다. 이 드라마에서 다룬 내용은 표제어대로 거란과의 세 차례 전쟁이다. 크게 다룬 대회전 같은 전투만 세 번에 걸쳐 26년 동안 이루어졌으나 국지전을 포함하면 10여 차례라고 알려지고 있다. 드라마는 극적인 부분을 강조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기에 화면에 비춰지는 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기는 힘들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침략 세력에 어떻게 싸워 이겼는지를 많은 국민이 알게 해주는 큰 역할을 했다. 이 드라마 방영 기간 앞뒤로 고려-거란전쟁을 다룬 많은 책들이 발간됐다.



이 가운데는 정사를 다룬 책도 있고, 소설로 극화한 책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고려-거란전쟁으로 고려가 이김으로써 고려의 국격은 상승했고, 거란은 패전으로 멸망의 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고려든 거란이든 모든 국력을 쏟아 치러낸 전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책 『역주행 고려사-고려거란전쟁 편』은 우리 역사를 정사 차원에서 이야기 식으로 전해주는 유튜브 채널 〈역주행-조선왕조실록〉의 유튜버 박종민이 드라마 방영에 맞춰 펴냈다. '역주행'이란 단어 때문에 역사를 비틀어 쓴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사를 바탕으로 저자 박종민이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매끄러운 구어체와 일러스트로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힘을 쏟았다. 

이 책 『역주행 고려사-고려거란전쟁 편』은 세력을 키워 고려를 침략했던 거란과 고려의 전쟁을 다뤘다. 뿐만 아니라 거란과의 전쟁이 벌어진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도 저자의 시선은 놓치지 않았다. 저자 박종민은 이를 위해 〈고려사〉는 물론 〈고려사절요〉, 〈요사(遼史)〉 등 고전 문헌들에 기록된 정확한 역사적 사실들만을 바탕으로 하여 객관성을 더했다고 밝힌다. 고려-거란 전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태조 왕건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왕건이 나라를 세운(918년) 후 100년이 안 돼 일어난 전쟁이기에 건국 공신과 지방호족들이 그대로 세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1차 침공 때 외교적 성과를 거둔 서희와 3차 침공 때의 주인공 강감찬 장군 역시 고려 건국 때부터 공을 세운 가문의 사람들이다. 고려-거란 전쟁은 고려의 성장 전반과 거란, 중국 등 주변국과의 복잡한 관계가 총망라된 사건으로, 고려사에 끼친 영향 면에서도, 전쟁 자체의 규모 면에서도 역사적 존재감이 크다. 이 책은 고려의 북진정책 및 친송정책과 정안국에 위협을 느낀 거란이 993년(성종 12), 1010년, 1018년(현종 9)의 3차에 걸쳐 고려에 침공한 사건을 정사인 『고려사』를 바탕으로 다룬다. 

책에 따르면 고려 건국 당시, 지금의 몽골과 만주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거란족은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916년(발해 애왕 16) 요(遼)나라를 건국하였다. 926년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고려와 국경을 접하게 되자 고려 태조는 북진정책을 추진, 발해 유민을 포섭했다.



거란은 고구려 장수왕 때 출복부(出伏部) 등 일부가 예속되었지만 고려와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 922년(태조 5) 야율아보기가 낙타와 말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과 적대관계를 유지하였고, 942년 거란의 태종이 낙타 50필을 보내자 사신은 섬으로 유배보내고 낙타는 만부교(萬夫橋)에서 굶겨 죽여버렸다. 이는 고려의 태조 왕건 때부터 추진한 북진정책의 일환으로 취해진 것으로 그 뒤에도 계승되어 정종 때 광군(光軍) 30만을 조직한 것도 요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송이 건국하고 고려가 송과 화친정책을 실시하자 송은 고려와 협력하여 거란을 공격할 뜻을 비췄고, 압록강 유역의 정안국(定安國)도 송과 화친하면서 거란을 협공할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요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이에 요의 성종(聖宗)은 986년 정안국을 멸망시킨 다음 991년 위구(威寇)·진화(振化)·내원(來遠) 등의 압록강 유역에 성을 쌓고 고려 침략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바로는 거란의 1차 침공(993년) 때 활약한 고려의 서희는 담판의 대가로,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공하자, 서희가 담판을 벌여 소손녕을 설득해서 물러가게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박종민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말로만 얻을 수 있는 평화가 과연 가능할까? 역사학자로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게 역사 어디를 찾아봐도 말로 군사를 물려 되돌아가는 침략군은 없다. 저자는 오랜 연구와 자료 조사 끝에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장면을 다시 되돌려보도록 복원해냈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의 실제 모습을 살펴볼 때 서희가 적절히 군대를 움직여 거란군의 진격을 막아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담판이 없었더라도 거란군은 물러갔을 것이다.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은 전쟁 후 평화 조건을 정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파악해낸 것이다. 그 담판 때문에 소손녕이 물러간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잊지 않는 것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릇된 역사 서술로 잘못 배운다면 차라리 모르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 바로잡기의 역할도 함께 해낸 것이다.



이 책은 거란의 성종이 ‘강조의 정변’을 빌미로 40만 대군을 앞세워 고려를 침공하고, 고려는 수도 개경을 함락당하는 부분도 잘 기술되어 있다. 이 때가 거란의 2차 침공(1010년)이다. 당시 고려에서 활약한 주요 인물이 바로 양규와 김숙흥이다. 그들이 3,000여 명의 병력으로 40만 거란군을 상대했던 장면은 지금 보아도 눈부시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당시 현종은 어떻게 해서 많은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감찬의 항전 건의를 받아들였을까. 어떤 전략이 있었던 것일까. 반면, 말과 낙타, 무기 등 거의 모두를 잃고 사실상 패전과 다름없는 상황에 놓인 거란이 그럼에도 다시 고려를 침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거란은 그 뒤로도 총 일곱 번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다). 고려를 둘러싼 당대의 국제정세가 어떠했기에 거란은 이토록 긴 시간 동안 한 나라를 계속 침공했던 것일까. 귀주대첩(1018-1019)에서 고려의 승리를 이끈 사람은 강감찬 한 명이었을까···. 고려와 거란 사이에 벌어진 지난한 전쟁에 대해 품어볼 만한 의문은 이렇듯 한두 개가 아니다. 저자는 바로 이 같은 여러 가지 의문에 주목하여 ‘고려-거란 전쟁’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 그리고 진실한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썼다. 이 책의 출간 취지이고 제목에 알맞는 책이다.

이 책은 고려와 거란의 오랜 전쟁에 대한 진실과 사실,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를 밝힌다. 드라마를 보는 듯 현장감을 즐기게 해주는 일러스트와 당대의 지리적 요소 및 전투 상황의 이해를 높여주는 지도 배치로 역사서를 소설처럼 재구성한 것도 이 책의 독창성을 돋보이게 한다. 물론 기술도 많은 부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되었다. 물론 우리가 배운 『고려사』를 바탕으로 저자가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한 것일 뿐 허구의 사실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역사적 사건에 몰입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이해를 돕는 친절한 일러스트 등 영상에서 모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지도 등의 보충자료를 풍성하게 더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쉽고 재미있는 역사 도서다. 여러 사건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한 「주요 사건 연표」와 각 전쟁별로 거란의 침입 경로를 지도로 표현한 「거란의 침입로」, 초기 고려 왕실의 복잡한 관계를 한 장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고려 왕실 계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탁월한 점은 앞서 짧게 언급한 점이 있지만 세밀하게 기록한 정사가 없기에 전쟁의 상황을 자세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려사를 쓰는 학자라면 당연히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을 생략한 것은 역사서의 사실 기록을 의문이 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가령 서희 담판으로 오히려 강동 6주를 얻고, 거란을 물러가게 했다고 역사서에는 기술되어 있다. 당시 서희와 소손녕의 대화로 엮어진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해석을 기술한다. 80만 대군을 앞세워 1차 침공을 했지만 얻은 것 없이 철군했다는 사실이다. 저자 박종민은 의문을 갖는다. 세계 역사상 8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침공한 나라에서 전투 한 번 없이 다시 군사를 물린다는 역사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주변 국가와 상황과 거란의 침공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고, 소손녕에게 담판을 통해 조공을 받치고 연호를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우리 고려 입장에서 고개를 숙인 일이라는 점에서 슬그머니 빼거나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주변국의 역학 관계 상 1차 고려 침공의 목적은 송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후방의 고려를 두고 전쟁을 벌일 수 없기에 당초 목적이 고려와의 친교였다는 사실이다. 또 거란의 군사 편제상 '도통'이 지휘관으로 갈 경우는 15만 명 이상의 대군일 때 가능한 일이지만 소손녕은 말로 80만 대군이란 말을 하지만 실상 '도통'의 지위가 아니었다는 말도 저자는 첨부하고 있다. 2차 침공시 도통인 소배압의 지휘권을 인정하고 있고, 황제도 함께 나섰다는 점에서 대군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때 거란 측에서 주장한 40만 대군 중 실제 전투 요원은 10만~15만 명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근대 이전의 국가들은 군대 원정엔 보급로 확보, 보급부대 등 전투 병사를 지원하는 각종 잡무 등을 모두 포함하고, 이때 전투 요원은 파견 군대 수의 3분의 1정도로 보는 것이 전쟁사를 다루는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임을 저자는 덧붙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40만 명의 군사 중 실제 전투 요원은 10만 명 안팎이라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 논리는 고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돼 강조가 이끈 40만 명의 군사 중 전투병은 10만 명 남짓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셈법은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 당시 15만의 수군이 1,500여 척의 배로 침략했다고 돼 있지만 노젓는 잡역부, 취사, 행정, 의료와 잡일 등을 포함한 숫자인 것이다. 한 배에 승선한 인원이 100명 정도라는 것이 이런 계산에서 나온다. 저자의 셈법은 합리적이고 군사 문제를 다루는 학자의 시선이다.



3차 침공 때 소배압은 약 10만 명의 정예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이들은 강감찬과 대회전을 치를 생각이 아예 없었다. 이는 흥화진 등 강동 6주에 있는 진지가 천혜의 조건에 인공으로 불가침의 공력을 들인 성을 만들어 놓았기에 자칫 지난 침공 때처럼 강동 6주에 발이 묶일 경우 개경에는 침공조차 못하고 시간이 없어 되돌아가야 하는 우려가 있음을 경험 많은 지장 소배압은 아예 군사 1만을 이들 요새 공략처럼 희생시키고 곧바로 개경으로 향한다. 워낙 말을 잘 타는 유목민들이라 생각보다 빨리 개경 앞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강감찬이 뒤늦게 이를 알아채고 기병 1만으로 뒤쫒게 하고 강감찬도 전열을 정비한 뒤 개경으로 진군한다. 이때 개경 성을 지키는 군사의 수는 3,000명이었다고 한다. 왕 현종도 신하들의 몽진을 거절하고 끝까지 개경을 사수하겠다는 결의를 가진다. 백성들의 협조를 바라면서. 즉 마을의 약탈될 것, 특히 식량 등은 모조리 불태운다. 이 작전은 이른바 진공 작전이라 원정군에게 식량이나 전투에 필요한 물자 조달을 막기 위해 쓰는 '옥쇠 작전'이다. 이를 저자는 현종의 '신의 한 수'라고 말한다. 2차 침공 때 두 달이 걸려 개경에 도착했지만 이번 3차에는 20일 만에 개경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소배압이 아직 개경의 전쟁 대비 상태를 알지 못하기에 진을 친 채 100명의 척후병을 보내지만 이들이 단 한 명도 살아오지 못함으로써 개경 진입을 망설이다 결국 실기한다. 즉 개경까지 쳐들어온 9만 명의 군사를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앞의 적은 얼마만큼의 전력인지 알지 못하고, 뒤를 쫓아온 고려 기병이나 강감찬이 거느린 대군은 바짝바짝 다가오니 그야말로 자칫 전멸의 위험을 느끼게 된다. 

결국 철수를 명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음은 강감찬이 퇴로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편한 길로 가지 않고 일부로 귀주로 돌아가는 험한 길을 택했지만 이번에 강감찬이 미리 쳐놓은 그물 속으로 걸어들어간 셈이다. 불과 수천 명이 뿔뿔이 흩어져 몇 백과 함께 소배압은 처절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이후 거란은 고려를 다시 침범하지 못할 정도로 주변국들에게 둘러싸여 명맥을 유지하다가 틈을 노린 여진족(후에 청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전쟁 상황에 대해 설명한 저자는 전후 거란과 고려가 각각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정리해준다. 고려 침공해 실패한 거란이 바로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거란 황제 아율용서는 격노하지만 그를 죽이지는 않는다. 패전의 책임을 물어 삭탈관직했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일치하지만, "잘못 알려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말도 있다. 거란 침공에서 고려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까? 


저자 : 박종민


쉽고 재밌게 역사를 이야기하는 역사 전문 교양 채널 ‘역주행-조선왕조실록’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생생한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만들고 있으며, 세계사나 일본사, 고려사를 함께 다루며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방영 시기에 고려사 콘텐츠를 업로드하기 시작했으며, 고려사 콘텐츠의 영상 평균 조회수가 수십만 회를 웃돌며,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가장 떠오르는 역사 유튜브 채널답게 역사적 사실 중에서 핵심만 쏙쏙 뽑아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쉽게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 초기 왕실의 복잡한 가계도를 한눈에 이해하기 쉽도록, 직접 만든 ‘고려 왕실 계보’를 일러스트와 함께 설명하는 등 다양한 시각적 자료들을 활용하고 있다. 고려사를 다룬 유튜브 채널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영상 콘텐츠가 풍부하다는 평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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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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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이상·백석·윤동주 소장용 세트 - 전4권 - 민족의 암흑기를 저항과 서정시로 위로한 한국인이 사랑한 시인들 전 시집
정지용 외 지음 / 스타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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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다. 갑자기 해방을 말하는 것은 시인 윤동주를 말하기 위함이다. 윤동주는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해 1945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옥사했다. 때문에 윤동주 타계 80주년이 되는 해가 2025년이다. 이를 기념해 윤동주가 사랑한 3명의 시인들과 이들 4명의 시집에 수록하지 못한 시들을 신문, 잡지 등에서 발굴하여 '전 시집'으로 출간됐다. 이 시집과 시인들은 우리가 잘 아는 『카페 프란스』의 정지용,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이상,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윤동주다. 이들 4명의 시인들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들로 이제는 해외에서도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 4명의 시인은 윤동주와 함께 일제 강점기인 우리나라와 민족의 '암흑기'를 함께 하면서 시를 통해 민족의 아픔과 설음을 대변했던 분들이다.

이들 시인은 때로는 저항의 시로 울분을 토하고 때로는 서정의 시로 위로해주기도 했다. 특히 이상과 백석은 윤동주가 너무 좋아하는 시인이고 정지용은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지용은 해방 후 경향신문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강처중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며 건내 준 윤동주의 시를 읽고 부끄럽다며 절필선언까지 한 시인이다. 그는 윤동주를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린 「향수」의 시인으로 일본 도시샤대학의 선배이기도 하다. 정지용은 1948년 윤동주 시집의 유고집이 나올 때 서문을 써가며 윤동주를 소개했던 인물이다. 정지용은 언론과 교육과 문학을 넘나든 인물이다. 특히 이 4권의 전 시집 시리즈는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이근배·나태주 시인과 4대 시인협회장이 추천해 주신 인문학 시집으로 초판본의 오리지널 이미지를 살렸고 양장본으로 소장가치를 더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이동원, 박인수가 불러 유명한 노래의 가사 「향수」는 정지용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윤동주는 살아생전에 정지용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지용 시집』은 윤동주 사후에도 여전히 보관되어 있을 만큼 윤동주는 정지용의 시를 아꼈다. 이 시집은 『정지용 시집』 『백록담』, 그리고 시집에 실리지 않았던 시들을 신문과 잡지 등에서 새로 발굴해 『카페 프란스』에 「미수록 작품」들로 구분하여 새로 실었다.



이들 가운데는 ‘천재’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두 명의 시인이 있다. 천재 이상과 백석이다. 그리고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윤동주. 윤동주를 가장 아껴 그의 사후에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펴낸 주인공인 정지용. 이들에겐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펜을 들고 꿋꿋하게 자유를 눌러 썼다는 점이다. 이상 전 시집 『건축무한 육면각체』는 『이상 전집』 제2권 초판본 순서 그대로 정리하여 첫 발간 당시의 의미를 살리되 표기법은 기존의 초판본 시집의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름으로써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이상은 시 「오감도」와 단편소설 「날개」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시는 난해하기 그지 없어 당시 신문에 연재하다 독자들의 항의로 중도하차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상은 건축학을 전공한 '문화예술계의 이단아'로 천재라는 수식어가 '박제'돼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시어를 무한 반복함으로써 독자들은 물론 당시 시인들에게도 문학론으로 구설에 오른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잘 이해하고 그를 끝까지 곁에서 지켜준 화가 구본웅의 보살핌이 있었다. 화가 구본웅과의 관계는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영화는 천재 시인 이상과 야수파 곱추 화가 구본웅, 그리고 기생 금홍의 삼각 관계의 로맨스를 그린 시대극이지만 두 사람의 친분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 '이상' 하면 떠오르는 단어 '천재'와 '날개'다. 그의 시는 여전히 지금의 독자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쩌면 소설 「날개」의 작가로 더 익숙하다. 이 소설로 '박제된 천재'라는 말이 그를 칭하는 별명처럼 붙어다닌다. 이번 4인의 '전 시집' 중 이상의 『건축무한 육면각체』 「건축과 문학, 외국어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던 천재」란 제목의 〈서문〉에서 "이상의 작품들은 난해하고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생전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이상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감도(烏瞰圖)」 역시 처음 조선중앙일보에 실렸을 때도 그 난해함과 추상성으로 인해 독자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고 결국 15편을 끝으로 연재를 중단했다"고 썼다. 이 서문은 또 "그의 대표작 날개의 첫 줄인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글에서 묻어나오듯 이상은 자신을 여러 방면에서 천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를 아는 지인들은 이상을 천재로 평가했으나 그때 당시엔 그의 천재성이 주목받거나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독자 생각으로는 이 서문은 명문을 하나 남겼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상의 시대, 이상의 천재성, 이상의 개인사들을 탐색하며 한 발 한 발 그의 작품세계로 걸어나간다"며 "난해해서 읽히지 않았는데 이젠 그 난해함 덕분에 읽히고 있다."는 문장이다. 이에 따라 이상의 시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이 4인 시집 기획시리즈를 펴낸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시가 어려운 이유는 정답이 있다고 믿고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데 찾으려고 하니 당연히 시를 읽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이 서문은 말하고 있다. 시의 답은 시인에게 있지 않고 독자에게 있다. 독자들이 저마다의 답을 내리고 이상이 생전에 발표한 글, 그의 유고, 이상의 습작 노트, 그 외의 발굴 자료 등을 편안하게 읽어내려 가기를 당부하고 있다. 

이상은 그 천재성만큼이나 기행도 잦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한다는 서울공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디자인 공모에도 1등으로 당선됐다. 예술 분야에서 독창적인 의식으로 시, 소설, 수필, 그림까지 유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 당시 이상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이상은 '건축가 이상'으로 최근 재조명 되고 있기도 하다. 스물일곱이라는 짧은 생에서 그가 한 일은 너무나 많다. 다방과 술집을 경영하고, 떠들썩한 금홍이와의 사랑과 구본웅 화가의 사촌인 변동림과의 결혼(이상과 이혼한 뒤 김환기 화백과 재혼했다) 등 다사다난하고 바쁘게 살았다. 아마 지병 치료차 일본에도 갔던 것 같다. 그때 쓴 수필 「동경(도쿄)」가 남아 전해진다. "우리같이 폐가 칠칠치 못한 인간은 우선 이 도시에 살 자격이 없다. 입을 다물어도 벌려도 척 가솔린 냄새가 삼투되어 버렸으니 무슨 음식이고 간에, 얼마간의 가솔린 맛을 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동경 시민의 체취는 자동차와 비슷해 가리로다. (중략) 나는 택시 속에서 20세기라는 제목을 연구했다. 창밖은 지금 궁성호리 곁-무수한 자동차가 영영(營營)히 20세기를 유지하노라고 야단들이다. 19세기 쉬적지근한 내음새가 썩 많이 나는, 내 도덕성은 어째서 저렇게 자동차가 많은가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결국은 대단히 점잖은 것이렸다."(p.246~247)



이상은 그러나 동경제국대학 부속 병원에서 1937년 4월 17일 새벽 4시에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변동림이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었으나, 돌보는 이가 없다가 6.25 전쟁 후 미아리 공동묘지가 사라지며 유실되었다고 한다. 이 책 『건축무한 육면각체』에는 「미발표 유고」 9편과 「기타 시」로 분류되는 3편의 시, 대표소설 「날개」와 대표 수필 「권태」 등 3편이 함께 실려 이번 시리즈 기획 출판의 의미를 더한다. 시에 대한 지식이 '문외한급'인 독자의 독서로는 그의 시 가운데 비교적 이해가 되는 시는 「거울」 한 편뿐인 것이 몹시 아쉽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 「거울」 중에서



공교롭게도 해방 전에는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인데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못 본 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이들 4명의 시인들이다. 이상은 1937년, 윤동주는 1945년, 정지용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 백석은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시인들의 마지막이 안락하거나 비극적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가운데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백석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는 많은 징후들이 보인다. 먼저 그의 시의 색깔이다. 안도현의 『백석 평전』에 따르면 백석이 1963년 북한 문단에서 종적을 감춘 뒤, 한때 숙청설과 사망설까지 떠돌았다. 최근에야 그가 1996년 85세로 생을 마쳤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백석 평전』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태어나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84년의 세월을 다룬다. 비록 1963년에서 1996년까지 30여 년의 세월은 알려진 자료가 없기에 공백으로 남겨뒀지만, 안도현 시인이 재구성해낸 백석의 삶을 따르다 보면 그의 문학 작품과 문학관은 물론 굴곡 많았던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

안도현은 "백석의 시는 여러 책을 통해 독자에게 알려졌지만, 산문은 그렇지 않다"며 "그래서 가능하면 전문을 다 수록하려고 했다. 산문으로 백석이 살아온 시간을 더듬을 수 있다. 스키장 탐방기라든지 양을 키우면서 쓴 산문을 보니 역시 백석은 천상 시인이다."고 평가했다. 

"어느 해’볕 따사로운 이른 봄 산 밑 감자밭에 두엄을 내노라고 소발구를 몰고 가던 나는 엄지들을 따라 방목지로 나온 수많은 새끼양들이 즐겁고 발랄하게 뜀질을 하고, 개닥질을 하고, 또 엄지들의 흉내를 내여 마른 풀’입사귀를 뜯고, 풀뿌리를 들추고 하는 것이 눈에 띄였다. 나는 이 때 나도 모르게 소를 내버리고 방목지로 달려 갔다. 그러자 매애애 소리치며 놀라 달아나는 새끼양들을 붙들어 안아 보고, 그 볼에 내 볼을 가져다 비비고, 등을 쓰다듬고...... 이렇듯 감격에 잠겼던 것이다. 그것들은 바로 내가 태’줄을 끊은 것들이며, 그것들은 바로 내가 구정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것을 안고 따스한 난로’가를 찾아 갔던 것들이다. 나는 이 새끼양들이 어서 무럭무럭 자라기만 간절히 념원하며, 그것들의 자지러진 울음 소리에 온 조합의 산과 골짝과 최’둑과 밭들이 한결 더 밝아 오는 것을 깨닫는 것이였다." (『백석 평전』 p.370에서 재인용)



한국전쟁 후 북한에서 활동했던 시인이었기에 백석은 철저히 가려진 인물이었다. 이념으로 갈라진 같은 나라 같은 겨레지만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념 대결 상태를 지속해온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 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라가 안정되고 소련이 붕괴된 후 백석은 비로소 일제 강점기 시와 함께 본연의 모습에 조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백석은 동료 시인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높은 시인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우선, 잘생긴 외모 때문일 것이다. 서울을 시끄럽게 했을 정도의 연애담의 주인공 자야 여사뿐만 아니라, 최정희. 모윤숙 같은 모던 걸이 궁금해하던 대상이 백석이었다. 연애사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백석의 연애사는 자야 여사가 『내 사랑 백석』을 내면서 더 널리, 세부적으로 알려졌다. 안도현의 『백석 평전』에는 "사랑하면 데리고 살아야지, 부모가 기생이라고 반대한다고 포기했으니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화가 났는지, 3번 결혼하고 돌아왔다고 썼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2번이다. 2번 결혼하고 돌아왔다는 것도, 증언할 사람이 자야 여사밖에 없다. 자야 여사와 연애를 인정은 하겠지만, 결혼 횟수는 2번으로 줄였다. 평전에 쓴 대로는 백석은 4번 결혼했다." 

백석의 사랑에는 시가 있고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평생을 기다린 시간뿐이었다고 그를 회고하는 시인들이 많다. 백석이 사랑했던 기생 김영한과의 러브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한 애절함이 백석을 좋아하는 이들을 슬프게 한다. 또한 ‘자야’라는 애칭과 함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가 탄생하여 평생 만나지 못한 그들의 이별 끝자락에 〈길상사〉가 세워진다. 시세가 수백억 원에 이르는 터와 건물을 포함한 요정 대원각을 자야 여사가 시주함으로써 〈길상사〉로 바뀐 것이다. 이때 자야 여사가 “그까짓 1000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말했다고 하니, 과연 세기의 연애라 할 만하다. 

시인 백석은 인간의 삶에 직접 와 닿는 시어들을 사용하였는데, 그가 쓴 시어들을 보면 우리 전통의 생활과 풍습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드러나는 시들이 많다. 여러 지방의 고어와 토착어, 특히 평안도 방언을 시어로 가져와 썼고 이 책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는 시인이 의도적으로 사용한 고어와 토착어, 평안도 방언을 그대로 살려 각주와 해설을 달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 놓았다. 본문에서 비슷한 시기의 발표작임에도 단어의 표기를 다르게 한 경우가 있는데 맞춤법을 통일하던 당시의 혼란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카페 프란스』는 한때 이름 없는 시인이었던 정지용의 시집이다. 그의 시 「카페 프란스」를 그대로 표제어로 썼다. 정지용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하던 시인으로 해방 후까지 시작과 시집 발간에 몰두했으나 6·25 전쟁 중 납북되어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 시단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동하며 적지 않은 시를 남겼다. 한국문단사에도 큰 업적을 남긴 당시 우리 시단의 대표적 시인이었다. 일도 많지만 6·25전쟁 중 납북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과 사망이 확인되지 않을 때까지는 시인의 이름은 '정O용'으로 표기됐다. 그는 시인이지만 정치색이나 친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어 어쩌면 북한 인민군이 자신들의 선전용으로 납치해 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지용은 특히 윤동주와의 관계가 돈독했고, 윤동주보다 연배여서 선배로 많은 역할과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해방 후 윤동주의 시집 발간에 앞장 서고, 윤동주의 일제 때의 행적을 가장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쓴 시보다 윤동주의 시집을 펴내는 데 더 힘을 쏟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했으며,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 한 주인공이었다. 그는 해방 후 경향신문 주간으로 재직하면서 윤동주의 시를 알리는 데 앞장섰으며 윤동주의 시집이 나올 때 윤동주를 대신해서 〈서문〉을 쓰기도 했다. 이 〈서문〉은 한국문단사에는 명문으로 기록되고 있다. 윤동주는 살아생전에 정지용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은 1935년 발간됐다. 이 시집 『정지용 전 시집-카페 프란스』 1부에 그대로 전재됐다. 이 시집은 윤동주 시인의 유품으로 남겨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만큼 윤동주는 정지용의 시를 아꼈다. 책에는 1936년 3월 19일 ‘동주소장’이라는 글귀가 친필로 쓰여 있다. 윤동주 시인이 평양 숭실중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지용 시인은 절제된 언어와 우리말을 감각적으로 활용한 신선한 시 작품들을 발표하며 이후 한국 시에 확연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 책에는 정지용 시인의 작품들을 원본 그대로의 표기를 살려 실은 이유도 그에게서 탄생한 시에 담겨 있는 풍성한 우리말을 가능한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자 한 데 목적이 있다고 출판사 측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지금과 다른 표현에는 각주로 설명을 해 놓아 이해에 어려움이 없도록 출판사가 배려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한국문단사에 따르면 정지용 시인은 절제된 언어와 우리말을 감각적으로 활용한 신선한 시 작품들을 발표하며 이후 한국 시에 확연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 책에는 정지용 시인의 작품들을 원본 그대로의 표기를 살려 실은 이유도 그에게서 탄생한 시에 담겨 있는 풍성한 우리말을 가능한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자 한 데 목적이 있다고 출판사 측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지금과 다른 표현에는 각주로 설명을 해 놓아 이해에 어려움이 없도록 출판사가 배려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 시집 『정지용 전 시집-카페 프란스』는 1부 〈정지용 시집〉, 2부 〈백록담〉 그리고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잡지 등에서 새로 발굴한 작품과 〈미수록 작품〉들로 구분하여 실었다. 1부에는 우리 전통의 서정성과 이국정취가 배합된 시들이 좀 더 특징적이라면, 2부는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이 그려져 정지용 시인의 변화도 알 수 있다. 한편 이 책은 가톨릭 신자인 그의 신앙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통해서는 그가 받아들인 천주와 성모에 대해서 느끼도록 해 준다.

우리는 대부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의 시를 처음 알게 됐다. 그가 납북된 이후 그의 시를 소개하는 것도, 그의 이름을 밝히는 것도 매우 어려웠던 남북의 극한의 대치 상황 속에서 우리 역시 납북인사인지, 월북인사인지,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 여부가 드러나지 않은 인사들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기에 일어난 분단의 비극이 여실히 반영된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이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사상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시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터였는데도 말이다. 정지용의 시를 읽으며 당시의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그의 삶이 여실히 전달되는 감상을 하게 되면서 마음의 위로도 받을 것이다. 그의 시는 모더니즘 경향의 시들을 주로 발표했지만 향토색 짙은 우리의 언어와 사투리, 자신의 신조어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등 시작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우리는 대부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의 시를 처음 알게 됐다. 그가 납북된 이후 그의 시를 소개하는 것도, 그의 이름을 밝히는 것도 매우 어려웠던 남북의 극한의 대치 상황 속에서 우리 역시 납북인사인지, 월북인사인지, 이후 북한에서의 활동 여부가 드러나지 않은 인사들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기에 일어난 분단의 비극이 여실히 반영된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이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사상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시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터였는데도 말이다.



한국시사에 그의 시는 크게 세 시기로 특징이 구분된다. 첫 번째 시기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는 「향수」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두 번째 시기는 그가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으로 활동했던 1933년부터 1935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그는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여러 편의 종교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반」, 「불사조」, 「다른 하늘」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36년 이후로, 이 시기에 그는 전통적인 미학에 바탕을 둔 자연시들을 발표했다고 한국시사는 기록하고 있다. 「장수산」, 「백록담」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자연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여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산수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지용은 이처럼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분단 이후 오랫동안 그의 시들은 다른 납북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다 수많은 문인의 청원으로 1988년 3월 비로소 해금되어 대중에게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9년에는 〈지용 시문학상〉이 제정되어 박두진이 1회 수상자로 선정된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향수」 중에서


이 책의 표제어가 된 「카페 프란스」는 정지용이 지상(紙上)에 발표한 최초의 작품이자 그가 쓴 초창기 시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향토적 서정의 상징인 「향수」와 상반되는 모더니즘의 색채를 띠고 있다. 


옴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프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 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쟈. 


- 「카페·프란스」 중에서



마지막으로 국민시인 윤동주의 시집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서시」의 원제(原題)이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 실험으로 살해당한 이후 그의 시집을 낼 때 강처중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서문 성격에 맞는다고 해서 서시로 바꾸고 제목까지 함께 바꿔 냈다. 윤동주 시인은 이 시집의 제목을 『병원』이라고 지었다. 초판본에 보면 병원이라는 한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윤동주 시집은 초판본 이후 증보판이 나올 때마다 서문과 발문이 교체되거나 추가되었는데 이 책에는 모두 한곳에 모아 9부에 실었다. 모두가 윤동주에 대한 회고와 존경을 담은 명문들이다.

한글로 시를 쓰는 것이 '죄인 시대'에 윤동주는 오로지 한글로만 시를 썼다. 게다가 윤동주는 자신이 일본식 이름으로 바꾼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시 「참회록」을 남겼다. 시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윤동주는 그러지 않았다. 부끄러워하고 참회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그들의 시를 알지 못하는 것 역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윤동주가 사용한 시어들은 '순결하다'는 점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그것은 그의 품성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이 순결한 시어들은 윤동주의 시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생애가 짧아 많은 시를 남기지 못한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고 아쉬움이 많지만 남아 있는 것이라도 잘 보존해 수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는 것만이라도 다행스럽다. 윤동주의 시는 일제 지배에 저항하는 저항 시인의 시어들처럼 격렬하거나 힘이 들어가 있지눈 않다. 순수하고 여린 심성이 드러나는 고결하고 순결한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 것이라는 생각은 독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서의 윤동주는, '시'를 꼽는 설문조사에도 그의 시 몇 편이 꼭 들어간다.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도 이른바 참여 문학 논쟁이 가열됐다. 이른바 순수문학이냐 참여문학이냐에 대한 논쟁이었다. 70~80년대까지도 이어진 문학논쟁이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닌데 굉장히 오랫동안 서로를 반목할 정도였다. 이때의 논쟁에 참여한 시인이나 문인들의 주장의 끝에 이미 윤동주의 시가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1941. 11. 2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 「서시」 전문


저자 : 윤동주(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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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에 도둑맞은 탁월함
이재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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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평범함에 도둑맞은 탁월함』의 저자 이재영은 「내면의 탁월함으로 나아가라」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신은 천재에게 불행을 선사해 일반인에게 위로를 주는가? 아니면 불행한 사람에게 재능을 선물해 위로를 주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첵의 표제어의 '탁월함'에 대한 저자의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저자는 얼마 전 TV 드라마로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사례를 들어가며 과연 탁월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에 접근해 간다. 드라마에서 우영우는 법전과 판례를 정확하게 외우는 기억력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논리력으로 법정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일상적인 행동에서 불안장애를 드러내는 등 약점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이와 비슷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살펴도 많은 사람이 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비롯, 발명왕 에디슨도 일상에서 허점을 드러낸 '괴짜'의 이력을 갖고 있다. 예술계와 철학자 중에도 정신장애로 불행한 삶을 살지만 뛰어난 학문적, 예술적 업적을 쌓기도 했다. 고흐나 쇼펜하우도 등도 이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이를 학문적 용어로는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말한다. 

서번트 증후군이란 흔히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이 암산, 기억, 음악, 퍼즐 맞추기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영국의 의학박사 다운(John Langdon Haydon Down)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다운 박사는 정신과 병동에서 30년간 일하면서 1887년 런던의학협회에 서번트 증후군에 해당하는 10명의 사례를 발표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다운 박사가 이들을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 혹은 ‘백치천재’라 호칭했는데, 이는 낮은 IQ를 가진 석학 혹은 천재를 뜻한다고 한다. 이들 환자는 수학, 음악, 미술, 기계 등의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였고,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 속의 생존경쟁은 치열하다. 사슴은 뿔을 부딪쳐 우열을 다투고, 하마도 입을 크게 벌려 영역을 다툰다. 심지어 자그마한 화단에서조차 식물들끼리 뿌리를 뻗으며 경쟁한다. 끝없는 생존경쟁에서 가장 우위를 점한 동물이 호모 사피엔스다. 이들은 힘과 속도로 경쟁하는 다른 짐승들과 다르게 사고하는 능력을 길렀고, 덕분에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랐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도 자연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생존 외의 것을 두고 경쟁할 뿐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재력을 과시하고, 누구나 알아주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명함에 한 줄이라도 더 새기고자 분투하는 등 갖가지 경기장에서 선수의 입장이 된다.

경기장의 테두리, 즉 셀(cell)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우리의 행동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을 넘는 자에게는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셀은 그 안의 존재들을 하나로 묶어서 평범함의 범주에 끼워 넣는다. 그래서 셀 안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는 사람도 그 작은 경기장을 넘을 수는 없다.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마냥 꼼짝 못 하고 굶주린 거미에게 잡아먹히길 기다리는 신세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아브라삭스’처럼 알을 깨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알, 즉 스스로의 한계를 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야기 속의 영웅들처럼 커다란 시련을 거칠 필요도 없다.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7가지 능력을 찾아내고, 7가지 도구를 통해 능력을 배양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탁월해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사유와 연구의 결과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탁월(卓越)함에 대해 '남보다 두드러지게 뛰어남'으로 풀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어로 삼은 '탁월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자어 어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탁(卓) 자의 갑골문을 살펴보면 '새가 새 그물 위에 나는 모습'이다. 사람이 쳐놓은 새 그물보다 훨씬 높게 나는 새는 높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다.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안전하다. 바로 그런 높이를 탁(卓)이라 한다.



탁월함은 시대에 따라 다른 말로 등장한다. 지고한 이데아를 추구하던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달리 현실을 바라보았다. 그는 탁월함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어떤 가치나 상태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설명은 '아레테(ARETE)'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 단어를 '어떤 존재의 본질이 드러남' 혹은 '자기다움'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이것을 덕이라고 불렀는데, 그 덕은 '비르투스(VIRTUS)'라는 단어로 오늘날 전해진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백과사전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고르기아스』(해제)란 저서의 「탁월함(덕)과 질서」의 장(章)을 통해 ① 도구든 육체든 혼이든 살아있는 어떤 것이든 각각의 탁월함은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각각에게 할당되는 짜임새 있는 배열(taxis)과 올바름(orthot?s)과 기술(techn?)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 ② 각 사물의 탁월함은 짜임새 있는 배열에 따라 배치되고 질서를 갖춤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다. ③ 따라서 있는 것들 각각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각자 안에 생기는 각자의 고유한 어떤 질서(kosmos)이다. ④ 따라서 자신의 질서를 갖고 있는 혼이 무질서한 혼보다 더 훌륭하다. ⑤ 질서 있는 혼은 절제가 있다. ⑨ 절제 있는 혼은 훌륭한 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기능과 덕(탁월성)」의 장(章)을 통해 매우 자세하게 탁월함에 대해 기술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이제 인간의 기능은 이성과 일치하는 혹은 적어도 이성과 분리되지 않은 영혼의 활동이라는 것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아가 한 종에 속하는 어떤 것의 기능과 그 종에 속하는 탁월한 어떤 것의 기능은 동일하다는 것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프 연주자의 기능과 탁월한 하프 연주자의 기능은 동일하고, 이 점은 다른 모든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탁월한 것의 탁월성(arete)에 있어서의 두드러짐은 기능에 부가된다. 즉 하프 연주자의 기능이 하프를 연주하는 것이라면 탁월한 하프 연주자의 기능은 하프를 잘 연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상정이 맞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기능을 어떤 종류의 삶으로 규정하고, 또 이 삶을 이성을 동반하는 영혼의 활동과 행위들로 규정한다. 따라서 뛰어난(spoudaios) 사람의 기능은 이것들을 잘 그리고 훌륭하게 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각의 기능은 그것의 부류에 고유한 탁월성(arete)에 따라서 수행될 때 잘 수행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로 ‘탁월성’(excellence)으로 번역되지만 워낙 ‘덕’(德, virtue)이라고 자주 번역되어 온 헬라스어 아레테(arete)는 앞서 토론했던 ‘좋음’과 ‘선’의 구별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외과 의사로서는 좋지만 인간으로서는 선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주는 바는 한 인간의 전문적 능력, 기능을 중심에 놓는 ‘좋음’과 그것과 상관없이 성립하는 듯이 보이는 도덕적 의지의 ‘선’한 사용 사이의 괴리를 드러낸다. 물론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에서와 같이 ‘좋음’이 전문 지식과 대비되는 도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또 주로 인간의 좋음과 관련해서 양자의 일치 현상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저자가 〈프롤로그〉를 통해 언급한 자연 속 생존경쟁의 사례로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올챙이 꼬리는 개구리가 되는 과정 속에서 생체시계가 다해 소멸한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이를 사후세계에 대한 지혜로 여겼지만 개인의 내면에 숨어있던 탁월함이 드러나는 것을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이란 지적이다. 이런 까닭에 저자는 평범에서 탁월함으로의 변화는 간헐적인 불연속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지는 체험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날개를 달고도 풀잎 위를 기어 다니는 애벌레 흉내를 내는 나비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작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데 이견이 없는 과학자들이 지닌 천재성의 이면에 숨겨진 노트를 들춰내고 그 노트를 따라 쓴다면 누구든지 탁월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독자는 이 전작을 읽어보지 못했다.) 하늘은 공평해서 누구에게나 천재성을 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꺼내지 않은 채 평범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이 책에서의 저자의 주장은 한층 더 나아간다. 탁월한 사람은 남다른 사람이다. 경쟁에 승리하여 금메달을 거머쥔 자는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우수한 사람일 뿐이다. 탁월한 사람은 남다른 사람, 즉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가 탁월한 까닭은 모두가 전기로 움직이는 차는 골프장 카트 정도로만 생각하던 시절에 자동차 바닥에 배터리를 깔아서 엔진 자동차와 동일한 성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가 개척한 길은 전 세계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탁월함의 길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공과는 다르기에 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심지어 성공을 거뒀음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대세를 거부하고 나만의 작은 길을 찾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p.7)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탁월함의 결과보다는 탁월해지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그저 "우리는 모두 탁월함으로 나아갈 문을 갖고 태어났고, 그 문을 찾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피로사회를 떠나 여행을 떠나자〉, 2부 〈평범한 사람이 탁월해지기 위한 7가지 조건〉, 3부 〈평범한 사람이 탁월해지기 위한 7가지 도구〉 등이다. 각 부는 각각 5~7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있고, 각 단락별로 소제목을 붙여 일목요연하게 책의 내용을 살필 수 있도록 목차에 적어 두었다. 물론 1부는 서론에 속하는 일반적인 풀이와 '평범함'의 성격을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논의한다. 2부에서는 개인의 내면에 잠재된 능력들 중 어떤 것을 이끌어내야 하는지 '7가지 조건'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3부는 탁월해지기 위한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도구들을 제시한다.

개인의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굴레가 아니다. 당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밀레니얼 제트 세대, 즉 ‘MZ세대’는 이미 기성세대가 만든 틀을 깨고 탁월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잘나가는 젊음이 있는가 하면, 일면에는 많은 걸 포기하고 그저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N포세대’도 있다.

두 집단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삶의 양식이 이토록 다른 걸까.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이들만 잘나가는 걸까? 그렇지 않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천재 중에는 불행한 가정사를 가진 이들이 많다. 위대한 사람의 불행을 들춰내서 그들의 상처를 후벼 파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탁월한 성취와 결핍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하다. 결핍은 우리에게 지독한 무력감을 선사하지만, 때로는 원하는 걸 손에 쥐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내 능력으로는 안 돼.’ ‘천재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1등은 분명 똑똑한 애들이나 하는 거겠지.’ 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체념을 넘어서자. 수많은 천재들도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은 채 탁월함으로 도약할 준비운동을 하자. 이 책은 당신이 탁월해지기 위해 떠나는 여행길에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탁월함을 향해 떠나는 여행길은 고되겠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붙잡을 순간은 반드시 온다.

이 책은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탁월함에 이를 수 있는 7가지 조건과 7가지 도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7가지 조건은 ① 통찰력 ② 괴짜 정신 ③ 결핍 ④ 도전 정신 ⑤ 의지력 ⑥ 프로 의식 ⑦ 인문학적 성찰 등이다. 독자가 임의로 핵심 단어만 나열했으니 독자들의 일독이 필요하다. 또 7가지 도구로서는 ① 휴대 노트 ② 도서관 ③ 편지 ④ 멘토 ⑤ 창조의 시간 ⑥ 나만의 작업실 ⑦ 휴식 등을 제시하고 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목표는 세우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고. 목표를 세우고 쉼 없이 정진하는 것도 좋겠으나, 목표가 보이지 않거든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오늘이라는 무수한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될 것이고, 언젠가 ‘나의 목표는 이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혹시 오디세우스도 한동안 아내를 잊었다가 어느 날 아내의 존재를 깨달으며 집요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p.171)


저자 : 이재영


한동대학교 기계제어공학부 교수이며 포스코 석좌교수이다. KAIST에서 이상유체 지배방정식과 해석 및 특이현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McMaster 대, Purdue대에서 객원교수를 했다. 에너지시스템 안전과 미래에너지 관련 연구, 과학기술과 인간정신의 상호작용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산문집으로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 『노트의 품격』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SF 장편소설 『지적거인』을 펴냈다. 강연으로는 2010년 G20 정상회담기념 TECH+2010강연 <융합인재의 조건>, 2017년 석학 인문강좌 <공기방울의 인문학>, 2018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노트쓰기로 당신의 천재성을 끌어내세요>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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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나이 드는 기쁨
마스노 슌묘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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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심플하게 나이 드는 기쁨』은 표제어에 나타난 대로 '나이듦에 대하여'에 대한 에세이다. 나이듦이란 늙는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일 뿐 늙기 전에 갖추어야 할 자신의 마음과 정신, 삶의 자세를 모두가 바라는 '평안한 노후'를 대비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선(禪)의 정원 디자이너로 유명한 마스노 슌묘이다. 승려이자 대학 교수이고 디자이너다. 일본의 승려는 우리와는 다르게 별도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들은 바가 있는데 이 때문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아무것도 없는 정원’을 디자인하기 위해 늘 고심한다고 한다. 그는 정원 디자인을 의뢰받았을 때 늘 염두에 두는 것은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단계까지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뢰자로 하여금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느끼는 평온함’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선의 정원이 지향하는 목표라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복잡함을 덜어내면 편안함이 뒤따른다. 주변 시선을 개의치 않고, 단조로운 가운데 여유가 생긴다. 또한 복잡함을 덜어내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보인다. 새로운 내가 보이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즐거움이 뒤따른다. 생활에서도 마음에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줄이고 각자 간소하면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노년을 구상해 보자는 취지로 집필했다. 심플하게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의 분주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인 「들어가며」를 통해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늙음이다. 그렇다면 굳이 나이 드는 것에 거역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지혜롭고 즐겁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에 마음을 기울이는 쪽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행복한 노년을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덜어낸 것은 무엇인지, 또 빛나는 말년을 보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지, 이 책이 적어도 그 힌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p.7)



우리도 한동안 '100세 시대'라고 떠들썩했었다. 이 열풍을 앗아간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이겠지만, 사실 굉장한 뉴스거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보다 이 열풍이 먼저 불었던 나라라면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장수국'으로 손꼽히고 있고 장수시대 열풍도 수십 년 전 겪었다. 책 속에서 저자는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의 기대수명은 여성이 87.6세, 남성이 81.5세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은 최상위에 있는, 그야말로 장수국가라 할 수 있다.(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2년 기준, 여성이 85.6세, 남성이 79.9세다.) 

우리 대부분은 인생 50, 60까지 부지런히 달려왔어도 여전히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이 있고,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로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끌려 다니다가 ‘아뿔싸, 늦었구나!’ 할 때가 온다고 저자 마스노 슌묘는 말한다. 저자는 이 모든 게 단숨에 정리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선 10%씩만 정리해 보자고 책에서 제안한다. 옷장 속에 열 개의 가방이 들어 있다면 그중 한 개씩 버리거나 정리하는 연습을 하자는 제안이다. 처음에는 10%를 덜어냈지만 나중에는 꼭 필요한 것만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조로움 속에서 느긋하게 웃는 것이야말로 누구나가 바라는 노년, '평안함'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옷장을 조금씩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죽기 전에 하는 생전 정리가 아니라 노인이 되기 전에 ‘노전’ 정리를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신체의 쇠약함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에 “이제 생전 정리를 해야겠다”라고 하면 만족스럽게 정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늙기 전에, 몸을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차근차근 정리를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물론 그게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마음 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놓지 못하는 미련이나 집착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건강을 위해서도 노전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60세가 넘어서 ‘이제 운동을 시작해보자’ ‘건강을 챙겨보자’ 하면 늦다고 한다. 운동도 습관이 들어야 60대, 70대가 되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고,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고 하더라도 하루라도 일찍 배워 두어야 노년에 가서도 다치지 않고 운동으로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사는 동안 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각했던 사실이다. 독자 역시 이젠 슬슬 노후 자금도 걱정되고 건강도 걱정될 나이다. 아직 일상을 꽉 채우고 있는 것들을 덜어낼 생각은 없지만 계획을 세울 무렵엔 채우기보다는 비움으로 새로운 즐거움들을 찾아가야겠다는 각오를 이 책을 통해 다질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표제어 『심플하게 나이 드는 기쁨』으로 정한 이유를 슬며시 꺼내 놓는다.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바삐 살아왔지만 이제는 숨을 고르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 세계적 추세도 복잡함을 덜어내고 간소함의 미덕을 배워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사실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복잡하고 속도가 빠른 변화로부터 오는 것이 클 것이다. 이를 일상에서 매일 감내하고 극복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속에 매일을 살아야 한다. 심지어는 스트레스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일에 몰두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신적 불안 등 장애 요인을 발견해 당황하는 사례가 셀 수 없이 등장한다. 정신 장애나 심리학이 부각되는 사회다. 그만큼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주범은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신경증세가 단연 압도적이라고 전문가와 언론은 한목소리를 낸다. 이에 저자의 '심플한 삶'과 '평안한 삶'이 함께 나란히 설 수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 드는 것을 서글프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반대로 나이를 먹어야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과 삶의 지혜가 있다고 역설한다. 늙음도 얼마든지 즐겁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자 곳곳에 배어 있는 중심 생각이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이 들면서 새롭게 알게 된 즐거움〉, 2장 〈나이 들어 더 이해되는 인간관계의 행복〉, 3장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기 위한 지혜〉, 4장 〈소박함 속에서 다시 배우는 풍요로움〉 등이다.



이 4개의 장에는 각각 11~15개 항목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구분되어 있다. 책을 읽어본 독자로서 이 책은 워낙 쉽게 기술돼 한 번 쭈욱 훑어만 봐도 이해되고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다. 장을 나누는 것은 형식상의 문제이지 나누지 않을 경우 너무 길게 늘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을까 우려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이해되는 까닭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정서가 같은 동양인으로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면 역자가 훌륭하게 번역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역자 이정환은 일본어 번역에는 많이 알려진 번역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일본어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과 우리나라 사람의 의식을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훌륭한 번역은 그만큼 독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저자가 승려이고 대중에게 삶의 태도나 지혜를 전수하는 일을 한다는 데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일본어로 된 훌륭한 책은 일본인에 대한 민족적 반감보다는 친근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1장의 표제어다. 독자는 1장의 여러 항목 중 「새로운 자신을 만난다」에 주목한다. 이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전제하며 글을 이끌어간다. "신체는 근력이 쇠약해지고 정신적으로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간단히 할 수 있었던 일들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게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이 있다." 저자의 논리는 급반전한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포기한다’는 것은 ‘명확하게 판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명확하게 판별하는 것! 나이를 먹어서 할 수 없게 된 것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제 포기하자.’, ‘이것까지는 아직 할 수 있으니까 시도해보자.’라는 식으로 현재 자신의 능력을 판별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새롭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p.38)



2장 〈나이 들어 더 이해되는 인간관계의 행복〉에서는 「대접을 하며 활력을 되찾는다」가 눈길을 잡아 끈다. 타인을 집으로 초대하면 집안의 활기가 넘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도시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일에 익숙지 않다. 그러다 보니 독자도 집으로 사람을 초대한 일이 별로 없었음을 되새겨본다. 겨우 집 사서 이사한 후 동료나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와 가까운 동료들과 '2차'로 집에 '초대' 아닌 '습격'한 일은 있었지만 말이다. 저자도 그 점을 의식했을까? 한 사례를 80대, 남편과 사별한 여성 S로 들고 있다. 젊은 나이에 혼자 살면서 이성을 초대하거나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의 사람을 초대할 일은 없을 터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지인을 집으로 초대하는 습관은 S씨에게 재미있는 변화를 안겨주었다. 그중 하나가 복장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양말이 약간 낡았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갑자기 지인을 집으로 초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단정한 차림을 갖추게 되었다. 나아가 집 안도 몰라볼 정도로 깨끗해졌다. 정성을 들여 청소하게 되었고 차를 내놓는 식탁은 늘 깨끗하게 정돈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일상에 활력을 준다.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다음에 지인들을 초대하면 이런 요리를 해줄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제과점 등에서 맛있는 과자를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p.97)

같은 장의 「혼자 여행을 떠나본다」는 무척 인상적이다. 어쩌면 독자도 이 항목의 일들을 오래 기억에 남겨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자신이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장소로 떠날 수 있고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어서 좋다는 장점을 먼저 이야기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굳이 계획을 짜지 않아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정하면 된다는 의미에서 매우 자유롭다는 잇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혼자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여행지에 관한 기대감이나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등, 일상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감정이 넘쳐 흐른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익숙하지 않은 탈것들을 타보고 익숙하지 않은 경치를 만나면 마음은 고조되는 까닭이다.

 

3장에서는 일찍 일어나는 습관, 소식(小食), '신체의 말'에 귀 기울이기, 바른 자세, 호흡, 웃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인생 마무리 방법 등 적지 않은 분야에서 부딪치는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의 제안대로 실천만 한다면 '삶의 지혜'로 바꿔도 상관없을 일이다. 이 가운데 소식은 일본인들의 '장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고 독자는 알고 있다. 또 육류보다는 가급적 채소와 생선을 주로 먹기를 권장하는 의사의 처방과도 잘 어울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배가 부를 때까지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60이 넘을 경우 소식을 권장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또 곧고 바른 자세를 유지할 것을 주문한다. 이밖에도 호흡, 웃음 등 많은 참고 사항을 말한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저자 : 마스노 슌묘(ますの しゅんみょう, 升野 俊明)


1953년 가나가와 현 출생으로, 겐코지建功寺의 주지스님이자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또한 다마미술대학 환경디자인과 교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특별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선禪 사상과 일본의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한 ‘선의 정원’ 창작활동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예술선장 문부대신 신인상’을 정원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수상하였으며, 독일연방공화국 공로훈장인 공로십자훈장,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공로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에는 <뉴스위크> 일본판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인’에 선정된 바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 도쿄 캐나다 대사관과 세룰리언타워 도큐호텔의 ‘일본 정원’ 등이 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불필요한 것과 헤어지기』『일상을 심플하게』『오늘, 마음 맑음』 등이 있다.


역자 : 이정환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했다. ㈜리아트 통역과장을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 및 동양철학, 종교학 연구가, 역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돈의 맛』 『2억 빚을 진 내게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 『지적자본론』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사소하지만 강력한 말의 기술』 『오다 노부나가 카리스마 경영』 『적을 경영하라』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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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 끝에 있는 상담소 - 우리 모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지연 지음 / 보아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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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우울증, 화병, 불안, 집착, 열등감 등 여섯 가지 실제 사례를 소설로 재구성했다. 상담심리사와 치유 과정을 함께하며 마음을 바꾼 후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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