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
남난희.정건 지음 / 마인드큐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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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예전에 등산을 다녀봤지만 매니아급은 못 되는 국내 가까운 산 정도다. 젊었을 때 이야기이니 지금은 트레킹도 큰 맘 먹고 계획 세워 다녀야 할 만큼 나이도 들었다. 해외 등산은 산악인, 전문 등산가 등만 다니는 것으로 독자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도전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외국의 산이나 트레킹은 TV를 통한 영상만으로 만족할 수준이다. 이 책 『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의 PCT(pacific crest trail)도 처음 알았다. 예전 TV에서 봤던 '산티아고 순례길' 정도로 생각했다. 긴 거리 때문에 상상 이상의 체력이 요구되는 곳이란 정도만 책 표제어를 통해 알게 된 지식이다. 4,285km라면 독자 수준의 사람이라면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거리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이나 둘레길 경험은 국내에서만 했기에 1,000km 이상의 길은 상상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난희와 정건, 두 분이다. 남난희는 예전에 그가 낸 책으로 접한 적 있어 알고 있었지만 정건은 처음 만나는 분이다. 남난희는 우리 독자들 중에서도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그는 1984년 1월 1일부터 국내 최초로 76일 동안 백두대간 단독 종주에 성공하여 산악계의 샛별이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한 경험도 있는 전문 산악인이다. 이후 지리산에 거주하며 '지리산학교'를 운영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건은 아무래도 낯설다. 그러나 그의 이력 또한 만만치 않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1986년 조선대학교 산악회를 시작으로 산에 입문해 조선대 재학 시절 백두대간을 완주했다. 여러 차례 전국 암벽 대회에서 입상하며 산악인으로 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젊은 시절 산악 마라톤과 유럽 알프스를 등반하며 체력과 기량을 꾸준히 넓힌, 산악인임에 틀림없다. 1994년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으로 발탁되기도 했다고도 하니 산악인으로 불리울 만큼 산과 산길을 좋아하는 분인 듯하다. 이름이 낯선 것은 도미하여 워싱턴 주 시애틀 근교에서 응급간호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표제어에 나오는 PCT는 멕시코 국경에서 출발하여 미국의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3개 주를 관통하여 캐나다 매닝파크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북아메리카 대륙을 세로로 종단하는 트레일 코스는 현재 3개가 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콘티넨탈 디바이스 트레일(CDT), 그리고 애팔래치아 트레일(AT) 등 3곳이다. 이 가운데 하나인 PCT가 이 책이 탄생한 길이다. 이 길은 걷는 자들에게 꿈의 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불린다고 해서 이 책의 표제어로 차용된 듯하다. 독자는 처음 듣는 길이지만 사막, 협곡, 호수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마주하며 곰, 방울뱀, 모기 등 걷는 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야생 동물들을 수시로 만나는 곳이라고 하니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된 곳이란 짐작을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길은 우리에게 셰릴 스프레이드의 책과 영화 〈와일드〉의 배경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이 길의 전 과정을 자신이 먹고, 생활해야 할 모든 짐을 스스로 메고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텐트와 침낭 등 야영장비뿐 아니라 음식까지 며칠마다 나타나는 보급지에서 우편으로 미리 보내 놓은 보급품을 찾아가며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 운행에 필수품인 물마저 며칠 분량을 스스로 메고 걸어야 하는 길이라고 한다. 그것만 아니라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이 길은 더욱 특별하다. 독자 입장에서는 넘보기에 벅찬 길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이 더욱 절실함으로 다가온다.
책에 따르면 보통 3-4월에 멕시코에서 출발한 도보 여행자들은 10월이나 되어 캐나다 남부의 종착 지점으로 거지꼴이 되어 도착하기 일쑤이다. 그나마 온전히 완주하는 하이커는 연간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이 길을 한국의 '아줌마 부대'가 걸어내고 이 책을 썼다. 때론 여럿이 대부분 단둘이. 출발은 함께 했지만 길을 모두 완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모두의 생활이 있기 때문이고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설적인 산꾼인 남난희와 94 에베레스트 원정 대원이었던 정건이 이 길을 모두 걷고, 걷는 기간의 과정과 단상을 정리해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무려 5년에 걸친 고군분투 끝에 얻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그 시기에 5년간 매년 한 달씩 걸어 4,285km 길을 걸었다. 걷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4,285km를 그들은 걸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오로지 걷기 위해 만들어진 길을, 수 개월간 오로지 걷기만 하며 목표 지점에 다른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일상은 매일 꾸준히 반복된다. 걷기 아니면 먹기 그리고 잠자기다. 그 외에는 다른 것이 없는 세상이니 가장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다. "길이 삶을 이토록 단순하게 해 준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라며 저자 남난희는 이 길을 예찬한다. 길에 따라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개 하루 약 10시간 정도 걷고, 10시간 정도 쉬거나 누워있거나 잔다. 그 외의 시간은 먹고, 물 정수하고, 막영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다른 일이 있을 리 없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저자에 따르면 이 길을 걷다 보면 생각도 줄어들고, 걱정도 사라지고, 궁금한 것도 없어진다. 대신 어디까지 가야 하고, 얼마나 왔고, 어디에다 캠프를 칠까? 날씨는 어떤가? 이런 것들에만 관심이 있고 집중을 한다. 얼마나 단순한 삶인가? 걷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고 다니느라 등짐은 무겁지만 생활은 더없이 간편하다. 이렇게 아무 걱정하지 않고, 무엇에 얽매이지도 않고, 욕심부릴 것도 없고, 누구를 시샘할 일도 없는 원초적 일상이 매력적인 이 길이 좋다.
저자는 길은 내가 걷지 않으면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되뇌며 사막을 지나고 설산을 지나 마침내 원하는 곳에 다다랐다. 그리고 목표를 채우고 난 다음은 충만감도 없고, 특별한 기쁨도 없을 터, 왜 걷는지에 대해 많이 해보지 않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살아가는 온갖 짐을 등에 지고 걸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작게 사는 것, 적게 먹고 적게 버리는 것, 그것이 자연과 나를 아끼는 방법이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길이 스승인 것이다. 스스로 알게 하는, 오로지 체험만이 참 공부다.(p.160)

 


 

저자 남난희는 「일상의 짐을 메고 긴 길을 걸어 걸을 수 있음에 2023년 PCT」란 제목의 〈서문을 대신해서〉란 글을 통해 이 길을 한 번에 모두 걷지 못하고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거의 6년이 걸렸다고 썼다. 자신이 한국에서 생활하기에 몇 달~몇 년을 미국에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에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구간을 나눠 6년에 걸쳐 완전히 걸어냈다는 말은 다시 한 번 삶에 많은 영감을 준다. 그리고 지난 6년 행복했고, 만족한 날들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아마 산악인이기에, 걷기를 좋아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말은 아무리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키려 해도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 훼손은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연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기존의 의식을 바꿔야 할 듯한 말도 남긴다. 저자가 이번 걸었던 코스가 '모하비 사막 구간'이다. 그동안 봐온 자료에는 더위와 갈증으로 매우 심한 고생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또 수시로 나타나는 방울뱀과 야생벌 등을 조심해야 한다. 그만큼 자연 훼손이 덜 된 곳이란 의미로도 독자에게는 들린다. 
그러나 이런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후변화로 이곳에도 영향을 미치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일일이 이 책에 적었다. 물론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기후변화가 이처럼 직접적인 악영향을 몰고 오는데 왜 전 세계인들은 인식을 바꾸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듯하다. 
"그런데 사막이 수상하다. 황갈색으로 황폐하게 메말라 가는 사막이 아니고 노란 꽃이 지천에 피어,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며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키 작은 나무도 연녹색으로 또는 진녹색으로 자기네 세상이라는 듯 생기발랄하게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지난겨울, 미국의 기후가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막이 이렇게 생기 넘치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사막이 꽃밭이 되고 풀밭이 되어있는 것이 당장 보는 우리는 좋을지 몰라도 과연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p.13)

 


 

저자들이 단순히 등산가가 아닌, '산꾼'으로 불리는 이유를 독자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들이 산을 오르고 끝 모르는 길을 끝없이 걷는 것은 산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기후가 이상하고, 겪는 피해를 나열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응을 할 것이 아니라, 현재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우리의 지구 전체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한다. 그리고 산을 오르면서, 길을 걸으면서 보여지는 상황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길은 지난해 걸었던 워싱턴 구간과는 완전 차이가 난다. 지난해는 거의 야생의 길로 트레일이 이루어져 있었다면 이번 구간, 즉 모하비 사막 구간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간리되어 야생의 맛은 없어 보였다. 주로 바람개비나 수로 등을 관리해야 할 목적 때문인지, 찻길이 여러 갈래로 뚫려 있다. 지난겨울 비가 많이 와서 사막의 꽃도 그랬지만 물도 수시로 만났다. 우리가 그 악명 높은 사막을 걷는지 그냥 겨울날의 평지를 걷는지 모를 지경이다. 사막의 풍취는 고사하고 추위에 떨어야 할 줄은 정말 몰랐다."(p.15)
이 책은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2018년-오리건〉, 2부 〈2019년-캘리포니아 남부〉, 3부 〈2021년-캘리포니아 중부〉, 4부 〈2022년 - 워싱턴〉 등이다. 두 저자 남난희와 정건은 같은 길을 함께 걸으며 함께 먹고 자고 했으니 보고 느낀 게 거의 같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길을 두 번 소개하지 않고, 특히 다른 느낌을 새롭게 적을 수 있으니 이 책의 기획과 출판 취지가 잘 맞았으리라 이해된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르게 느낀 점이 있듯이···. 이들은 각 부의 제목 아래 다른 느낌의 소제목을 달고 있다. 1부에는 「운명적으로 PCT를 만나다」, 2부엔 「나는 길을 걷기 위해 태어난 사람」, 3부에는 「길은 내가 걷지 않으면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4부는 「매일매일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가 부제로 적혀 있다.

 


 

이들 저자들은 따로 따로 집필해도 감정 표현과 함께 걸으면서 받은 영감은 표현상으로 다르다. 저자들은 아낌없이 그리고 정직하게 이를 책에 적어 넣었다. 독자에게는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이 전해지는 행운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우리가 걸은 트레일은 단조로움이 함축된 세계다. 매일 똑같은 리듬과 지극한 단순함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인위적인 규칙이나 규범, 기준이 없는 곳이다. 오직 자연과 인간적인 척도만 있는 곳이 우리의 세상이었던 PCT다. 모든 것을 스스로, 오로지 자신이 행하고 자신이 책임진다. 철저히 독립적으로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본인이 스스로 자연임을 인식하게 하는 그 시간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시간이었다."(p.329)

저자 : 남난희

지리산학교 숲길걷기반 교사, 지리산걷기학교 교사, (사)백두대간평화트레일 이사장.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1981년 한국등산학교를 수료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1984년 1월 1일부터 국내 최초로 76일 동안 백두대간 단독 종주에 성공하여 산악계의 샛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뒤 ‘금녀의 벽’으로 불리던 350미터의 국내 최장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를 두 차례나 등반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1994년부터 지리산에 내려와 살다가, 2000년 강원도 정선에서 일반인을 위한 자연 생태학습의 장인 ‘정선자연학교’를 세워 교장을 맡았다. 그러다 2002년 여름 태풍 루사가 온나라를 휩쓰는 바람에 그동안 피땀 흘려 이룬 모든 것을 잃고 나서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현재 지리산학교와 지리산걷기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을 국제적 수준의 트레일로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2022년) 스위스의 ‘킹 알베르트 재단’에서 수여하는 ‘마운틴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저서로 백두대간 단독 종주의 기록 에세이 『하얀 능선에 서면』과 산문집 『낮은 산이 낫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한 57일의 백두대간 등산 에세이 『사랑해서 함께한 백두대간』, 『당신도 걸으면 좋겠습니다』 등이 있다.

저자 : 정건
1986년 조선대학교 산악회를 시작으로 산에 입문하였다. 조선대 재학 시절 백두대간을 완주하였다. 여러 차례 전국 암벽 대회에서 입상하여 산악인으로 기반을 다졌다. 젊은 시절 산악 마라톤과 유럽 알프스를 등반하며 기량을 넓혔다. 1994년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원정 이후 도미하여 워싱턴 주 시애틀 근교에서 살고 있다. 질병관리학을 공부하여 현재 스위디쉬 병원 응급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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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몬 상·하 세트 - 전2권
최아일 지음 / 너와숲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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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몬〉의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스토리라인이다. 재벌 상속녀 도도희와 한순간에 능력을 잃은 ‘악마’ 정구원은 계약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이 순탄치 못한 것은 예상된 일. 미처 예상치 못한 일들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파생시키며 그들의 특별한 삶을 이끌어간다.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 판타지, 오피스, 드라마 장르가 혼합되어 다양한 재미를 즐길 수 있다는 탁월한 장점도 있다. 시청자들이 크게 감정에 휩싸이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감동을 이끌어내기에 꽤 높은 시청률도 이끌어냈다. 작가 최아일은 특히 "치열한 일상에 지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밝힌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하나의 모델로서 기능하는 일상의 일들이 소재가 되어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저자 최아일은 "우리는 때로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소중한 것들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구원하는 순간이 더 많아 우리의 삶이 의미가 있다"는 작품 설명을 곁들이면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이 책 『마이데몬』은 드라마 대본집으로 출판되었기에 「기획 의도」나 「등장인물」을 별도로 소개함으로써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았어도 작품에 쉽게 접근하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올해 1월 20일까지 SBS에서 금토드라마로 방영됐다. 아직 그 인기가 채 식지 않은 종영된 지 한 달도 안 된 드라마의 대본집을 출판한 것도 방송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방영 내내 남녀 주인공의 ‘비주얼 화보집’으로 화제가 끊이지 않았었다. 특히 드라마 〈마이데몬〉은 국내에서의 인기는 물론 이젠 해외로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을 경우 이 대본집 『마이데몬』은 드라마 영상을 같이 본다면 훨씬 즐겁게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마이데몬> 인물관계도. 출처 : SBS

 

표제어 '데몬(demon)'은 일반적으로 귀신, 수호신, 악마 등을 의미하며, 본래는 초자연적·영적 존재자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다이몬(daim?n)에서 유래하는 말이라고 한다. 호메로스에서는 거의 〈신〉 또는 〈신의 힘〉의 동의어로서 취급되며, 모든 일을 일으키는 진정한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다. 특히 갑자기 습격해오는 불가해하며 운명적인 힘은 선악을 불문하고 모두 다이몬에 돌려진다. 그 힘과 좋은 관계에 있는 경우가 에우다이몬(eudaim?n, 행복), 나쁜 관계에 있을 때가 카코다이몬(Kakodaim?n, 불행)이다. 헤시오도스는 황금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다이몬이 되어서 후세 사람들을 인도한다고 하였는데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수호령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플라톤은 이를 신과 인간과의 중간자로 위치지었는데 현대인이라면 무의식 영역에 작용한다고 규정되는 일체의 제력이 다이몬이었다.

종교학대사전에 따르면 데몬은 원래 반드시 사악함과는 결부되지 않는 존재자로, 천재적 인격의 특성으로서 이용되는 독일어 데모니시(damonisch) 등에 적극적 측면이 남아 있지만, 그리스교의 대두와 함께 이교의 신들이 배제되고, 다이몬=데몬도 귀신이나 악마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과 함께 선악이원론의 입장을 취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신이나 천사가 구성하는 선의 위계에 대응해서 악의 위계를 구상하는데, 데몬은 오로지 후자 속에 조직된 것이다. 악마, 악령의 총칭으로서 데모 중에서는 루시페르, 만몸, 아스모데우스, 사탄, 베르제브브, 레비아탄(리바이아산), 베르페고르 등이 대표적인데 근세에는 그 악마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취급하는 악마학(데모놀로지)이 성립하고, 세부적인 논의가 전개되었다.

이 작품은 ‘악마 같은’ 재벌 상속녀 도도희와 한순간 능력을 잃어버린 ‘악마’ 정구원이 계약 결혼을 하며, 각종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구성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다. 작가 최아일의 구상부터 악마가 되어 버린 수호신의 대명사로 '데몬'이 주인공이다. 드라마 중 이름이 '정구원'이라는 점에서 소설적 구상이 시작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 데몬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다시 수호신이 된다면? 그 상상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바로 〈마이데몬〉이다.

 


 

앞서 백과사전의 풀이를 덧대 설명한 대로 인간과 계약을 맺는 것이 존재 이유인 데몬이다. 남자 주인공 ‘구원’(배우 송강)은 ‘에르메스를 입은 악마’ 같은 재벌 상속녀 '도희(배우 김유정)'와 계약 결혼을 한다. 같은 인간끼리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파국으로 치닫기 십상인 결혼 생활인데 과연 구원과 도희는 이 계약을, 그리고 결혼을 지켜낼 수 있을까? 저자는 도도희를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아무도 믿지 못하는 미래그룹 소공녀'로 설정했고, 데몬 정구원은 "치명적인 매력의 완전무결한 존재, 하지만 능력을 상실한 데몬"으로 캐릭터를 창조했다. 간단하게 한 줄로 평가할 정도의 단순한 성격의 인물이 아니라서 아마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인간으로 설정한 게 아닌가 싶다. 도도희는 미래그룹 계열사 〈미래 F&B〉의 대표다. '단짠'을 오가는 '솔트 라떼 같은 여자'다. 까칠한데 부드럽고 여린데 강인하다. '도도희의 탈을 쓴 도라희'라는 별명답게 도도하고 우아한 척하지만 실은 또라이 기질이 다분하다. 천숙의 자식들 속에서 이방인으로 자란 도희는 세상의 이치를 일찍 깨달았다. 사랑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에 시니컬하다. 그저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지내 온 탓이다. 하지만 구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요동치고, 이성과 감정이 따로 놀아 갈등을 늘 갖고 산다. 그러나 겉으론 내색하지 않는다. "내가 너 같은 거 때문에 설렐 거 같아?"

남자 주인공 정구원 또한 만만찮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따뜻한 아이스커피 같은 남자'로 작가 최아일은 적었다. 그는 자신의 일이 좋다. 인생은 불공평하지만 계약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은가. 덫에 걸린 듯 고통 속을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인간들에게 자신은 일종의 로또라고 생각한다. "그는 묻는다. "천국을 위해 지옥 같은 현생을 살 것인가, 천국 같은 현생을 살고 지옥에 갈 것인가?" 무서울 것 없는 구원의 소망은 단 하나. 포식자로 폼 나게 영생을 사는 것. '하찮은 인간과는 다르다' 자만하는 그는 참으로 능력 있는 데몬이었다. 그녀(도도희)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편,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름을 바꿔 가며 대물림인 척 선월재단 이사장직을 지내는 구원을 보고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씨도둑은 못한다'라며 감탄한다. 정일원, 정이원, 정삼원··· 정구원은 그의 아홉 번째 이름이다. 도도희는 그의 이름이 달콤하단다. 인공 감미료 같은 가짜 달콤함.

 


 

드라마 대본집은 요즘 출판계 대세인 것 같다. 최근 인기 좀 있는 드라마 대본집이 많이 나왔다. 독자도 몇 권째인지 헤아려 보진 않았지만 이 작품 포함하면 다섯 편은 넘은 듯하다. 드라마를 본 적도 있고, 아예 한 번도 본 적이없는 대본집도 읽은 경험이 있다. 우선 책이 화려하다. 인기 있는 드라마일수록 화려한 드라마 스틸컷을 많이 실었던 것도 있다. 이 책에는 등장인물을 제외한 드라마 중 스틸 컷을 거의 싣지 않았다. 독자로서 이유는 모르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든다. 보관용으로 구입할 경우 아무래도 드라마의 가장 멋진 장면 등을 담은 사진을 함께 싣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떤 사정인지 모르지만 독자로서는 모두 다 좋다. 내용이 좋아서 눈요기감인 드라마 스틸보다 오히려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 또 드라마를 보지 않은 독자에게는 상상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대본이나 시나리오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참고서의 역할도 될 것이다.

드라마 대본집은 독자의 경험상 한두 출판사에 국한되어 있는 듯하다. 대체로 사극보다는 판타지나 액션물이 더 인기를 얻는 얻는 요즘 추세에 따라 빚어지는 현상일 터다. 독자로서 스토리에 집중하다 보면 드라마에서 놓친 부분을 책을 통해 다시 읽음으로써 더 자세하게 기억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는 명대사가 자주 회자되는데 이 드라마 대본집을 보면서 전후 사정을 겸해서 판단해보면 '왜 명대사가 되었나?' 이해할 수 있고, 더 적절한 대사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드라마 대본집을 다시 읽는 특별한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앞뒤 사정을 잘 알면 명대사라고 지적된 부분에 대한 감동도 커진다.

이 드라마 〈마이데몬〉에서도 명대사가 눈에 많이 띈다. "이 남자를 버려야 내가 사는데···."(1권 p.80)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파괴자이자 구원자다.(2권, p.527) 여기에 드라마를 본 독자들은 드라마 장면을 상상하며 이 책과 견주어 본다면 연출(감독)의 작품 해석 능력은 물론, 영상 연출 능력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출판편집자는 책의 앞 부분에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세 가지로 나눠 적시하고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서이다. ① 낯선 존재와의 로맨스 ② 구원자 혹은 파괴자 ③ 본성의 굴레 등이다. 모두 '데몬'에 대한 설명처럼 읽힌다. ① 낯선 존재와의 로맨스에서는 악마(데몬)에 대한 이미지다. 사실 우리는 '악마'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실제 악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위험하고 섹시한 나쁜 남자 정도의 이미지? 정도가 아닐까? 기획의도는 데몬을 원래의 의미 '인간의 수호신'으로 환원시키는 것이아니가 피다. 데몬과 인간이라는 이종(異種),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성(異性). 성격부터 가치관, 하물며 '부먹', '찍먹'의 취향까지 이질감 끝판왕인 구원과 도희의 로맨스가 험난하지 않을까?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② 구원자 혹은 파괴자에서는 "나는 인간에게 행복해질 기회를 주는 로또 같은 존재야." 인간의 입장에서는 마치 사채업자 같은 데몬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로또'라 여긴다. 인생의 위기에 손을 내밀고 결국에는 지옥으로 이끄는 데몬과의 계약, 과연 그는 구원자일까, 파괴자일까? 저자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나름대로 판단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③ 본성의 굴레에서 책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전갈과 개구리'가 등장한 우화적 에피소드다.

"전갈이 개구리에게 자신을 업고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자 개구리가 묻는다.

"네가 날 독침으로 찌르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믿지?"

"너를 찌르면 나도 같이 물에 빠져 죽을 텐데 내가 왜 그렇게 하겠어?"

전갈의 답에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하지만 강 중간쯤 커다란 나뭇가지에 놀란 전갈은 개구리의 등에 독침을 박고 마는데···. 개구리는 온몸이 마비된 채 물속에 잠기며 묻는다.

"왜 나를 찔렀어? 우리 둘 다 죽게 됐잖아?"

전갈이 슬프게 답한다.

"그게 내 본성이니까."

 


 


이 책 『마이데몬』은 상하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16회에 걸쳐 방영됐다. 각 회차마다 각각의 독립된 제목이 있다. 1화 「안개 속을 살다」 2화 「누구나 마음속에 악마가 산다」 3화 「악마의 손을 잡다」 4화 「달콤하고도 위험한」 5화 「당신만이」 6화 「수레바퀴 속으로」 7화 「얼룩진 관계」 8화 「운명이라는 선택」 9화 「진실의 민낯」 10화 「알을 깨다」 11화 「불길한 것들의 천국」 12화 「파멸의 구원자」 13화 「과거라는 원죄」 14화 「우리라는 지옥」 15화 「운명의 끝」 16화 「우리라는 천국」 등이다.

 

주석훈(배우: 이상이)

천숙의 조카. 미래투자 대표. 최종회에서 노석민이 몰락 후, 미래 그룹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한다.

 

주천숙(배우: 김해숙)

미래그룹 창업주. 3회에서 사망했으며 후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아들인 노석민의 의해 살해당했다. 13회에서 노석민이 도도희에게 말하기로는 주천숙이 도도희의 부모님을 죽였다고 한다. 믿지 않는 도희에게 녹음기를 통해 과거 천숙이 도희의 부모님과 미래그룹 관련으로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갈등 끝에 도희의 아버지가 폭로하겠다며 도희의 어머니와 나갔고 천숙은 차를 끌고 뒤따라갔다. 그러나 실상은 노석민이 도도희의 부모님을 죽인 진범이었고 주천숙은 사고현장에서 정구원과 마주했고 진짜 악마를 마주한 천숙은 탐욕에 물든 자신을 반성하고 속죄했으며 고아가 된 도희를 양육하게되었다. 사후 최종회에서 밝혀진 또다른 사실은 석민에게 살해되기 전부터 시한부 환자였다고 한다.

 

진가영(배우: 조혜주, 아역: 강혜원)

선월재단 무용가. 도도희랑 구원을 헤어지게 하려다가 이후 이건 심했다고 느꼈는지 마지막공연을 끝으로 한국을 떠날것으로 보였으나, 14회에서 재등장. 최종회에 어릴 적 자신이 정구원에게 구원받은 것처럼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고 자신이 천사임을 밝혔다.

 

노석민(배우: 김태훈)

천숙의 첫째 아들. 미래전자 대표. 본작의 최종보스. 아내인 세라가 구원에게 석민이 자신의 어머니인 천숙과, 아들인 도경을 죽였다는 것을 밝혔다. 13회부터 본격적인 악마의 모습을 표출했다. 14회에서 투신자살 했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어디에도 시체가 보이지않았고 15회에서 버젓이 살아서 엽총으로 구원을 쏘려다 도희가 대신 맞고 죽자, 구원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도희를 살려냈다.[4] 최종회에서 경찰에 체포된 석민은 대법원에서 사형선고 받고 무기 수감되는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노수안(배우: 이윤지)

천숙의 둘째 딸. 미래어패럴 대표. 오빠인 노석민이 어머니인 주천숙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고 노석민에게 적대감을 표출했다. 그리고 티격태격하던 도도희와 관계가 개선되었다.

 

김세라(배우: 조연희)

석민의 아내. 미래전자 상무. 12회에 아들인 노도경이 사망하면서 남편인 노석민과 관계가 틀어졌으며 13회에서 정구원에게 자신의 시어머니인 주천숙과 아들인 노도경이 남편인 노석민에게 살해됐음을 밝히고 14회에서 경찰서에 가 노석민의 관한 정보들을 제공했다. 노석민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는 남편이 아들에게 가한 학대를 방관한 것을 후회하며 가정 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 대표로 속죄의 삶을 살기로 한다.

 

저자 : 최아일

 

〈6년째 연애중〉을 쓰고, 〈S다이어리〉 각색을 했다. 그리고 오랜 잠수 끝에 〈철인왕후〉를 썼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발버둥치는 인간의 처연함을 사랑하고, 용기 없는 이가 용기를 내는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그런 이야기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웃음과 눈물이 차고 넘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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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서통합 의료인가? - 만성 불치병
이시형 지음 / 풀잎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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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왜 동서통합 의료인가?』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협력을 주창한다. 저자 이시형은 정신과 의사로서,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암, 치매 등 만성적인 질병에 대한 '현대의학'(서양의학)의 치료율이 너무 낮은 원인을 연구하다 동서양 의학의 장점을 잘 맞춰 협력해 치료에 임하는 이른바 '동서 통합 의료'를 주창한다. 동서 통합 의료는 물론 의사 이시형이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외국 특히 의료 선진국이라는 서유럽과 미국 등에서 이미 미미하지만 실행되고 있다. 이는 만성 불치병 치료가 어려운 데 따른 연구 결과에서 장점을 추출해내고 약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통합치료법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은 어떤 개별적인 병과 어느 개별 환자에 대한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암, 치매 등 서양과 동양 의학에서도 쉽게 치료하지 못한 만성 질병의 치료에 두루 미치는 주장이다. 특히 병세가 빠르게 진척되면 더 이상 의학과 치료법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급속도로 나빠지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날 가장 어려운 질환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암, 치매 등은 치료제도 변변찮고, 현재로서는 민간 의료까지 끼어들면서 치료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는 폐단을 없애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관련 의사들은 기대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다른 의학 관련 서적과는 매우 차이를 보인다. 본론은 저자 이시형의 개인적인 진료 경험을 중심으로 편집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학 전문 서적과는 체재부터 다르다. 저자가 평생을 의사로서 일하면서 개인적인 치료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행여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환자에게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저자 이시형은 덧붙인다. 책 내용에 나오지만, 어금니 하나의 결손이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리라는 생각은 의사인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대증 요법을 시행한 많은 서양의학 전문의나 한의사도 치아 결손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그때 아픈 것만 이야기했으니 그 국소적인 문제에만 치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한다.

 


 

저자 이시형은 환자인 자신이 전체적인 맥락을 이야기하지 못한 탓이라고 전제한다. 늦게나마 다행히도 김의신 박사, 박우현 박사, 조기용 박사, 방병관 치과 전문의, DDS의 저자 Aelred C. Fonder 박사의 저서를 통해 하악골의 부정교합이 저자가 그간 앓아온 잔잔한 질병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여기서 나열된 이름의 의사들은 동서통합 치료를 이미 실시하고 있는 분들이다. 그들의 치료법이나 치료 과정, 그리고 의학적 업적은 물론 저자 자신도 이들 대가들의 과학적 논거와 임상실험 결과 등을 개별로 검토하고 종합적으로 바라본 저자의 결론을 함께 실었다. 이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겸손해서 자신들의 업적을 떠들어대지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소중한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 이시형에겐 이보다 더 큰 업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개인적인 문제(어금니 치료)가 얽혀 있어 내가 좀 과장된 표현을 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분들의 업적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워낙 겸손해서 목소리를 적게 낼 뿐이지 저자가 개인적인 문제가 얽힌 사람이 아니라도 학자적 견지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임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없다. 저자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이 그분들의 만성적인 문제를 푸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별도로 펴내었으며 저자가 그동안 구상하고 있던 동서의학과 각종 대체의학들을 총망라한 통합의학 개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앞서 언급한 분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통합의료시설이 개설될 것을 간절히 바라는 〈후기〉를 썼다. 이 책 뒷 부분에 담겨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저자 이시형이 아닌, 유럽 동서의학 병원장 박우현 교수가 썼다. 아마 우리나라엔 아직 정식으로 동서통합의료 시설이 없기 때문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제목 역시 〈통합의학적 서문〉으로 「혁신적인 만성 난치병 치료를 위한 동서 통합의학 치료의 새로운 치료 접목」이란 부제를 달았다. 이 글에서 서문 필자 박우현은 "우주 만물과 현상을 보는 방법에는 구조적 현상과 패턴적 현상 두 가지가 있다"고 전제하고, "구조(현상에 드러난 것, 공간구조, 서양적 사고견해)와 패턴(역동적 배후, 시간구조, 동양적 사고견해)에 대한 생명유기체의 구조인 "소산 구조"라고 구분한다. 구조는 분별되어 보이는 그 모습이고, 오늘날 서양과학 발전의 치료적 모형 원천이라고 밝힌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눈으로 구별되는 증상형태(Symptom)의 모양(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구조라고 말하고, 그러나 패턴인 생물(유기체)구조는 기계의 정적인 고정된 구조와는 많이 다르며,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인 세포나, 단백질이 항상 교체되면서 상·반합적 원리의 생성과 소멸구조로 이루어지는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의학(Allopathic Medicine)은 "소산구조"라는 생명구조의 특징에 대해 많은 치료법이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만성적 난치성 질환(Incurable Diseases)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짚어낸다. 현재 모든 현대의학의 맹점인 증상의학적 논리에 국한되어 현대적 만성병들의 26%만 치료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머물러 있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통합의학에서는 21세기 현재 수많은 만성, 난치성 질환을 해결하기 위한 질병 예방 치료전략 방향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어 전인적 접근을 강조, 시도하는 새로운 의학적 인식체계 패러다임으로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서양 의학적 사고의 근거적인 진단과 치료에, 동양의 전통적 자연의학과 전인치료(몸, 마음, 영성의 심적 신경을 통한 내분비 활성의 면역학적 접근치료)를 통한 근본적인 의학을 접목시키는 의학이라고 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에 통합의학의 필요성 및 당위성을 언급하고 있다.

 


 

국내 통합의학은 유럽 선진국처럼 아직 체계정립이 미비하고, 국가정책 지원도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새로운 의학 분야로 인정하고 기술개발을 위한 체계 정립과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교수는 전통적·경험의학적인 한의학적 역량과 위상을 적극 개발 활용하여 통합의학의 일환으로 세계적으로 발전시킨다면, 급속히 고령화된 사회에 급증하는 만성병, 난치병들의 원활한 치료 해결을 통한 국가나 개인의 의료비 지출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통합의학적 서문〉을 통해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통합병원을 위한 담론〉, 2장 〈만성불치병, 박우현 교수의 혁신적 치료〉, 3장 〈김의신 교수와 SB주사(할미꽃뿌리생약)〉, 4장 〈소우주한방병원에서의 치료〉, 5장 〈DDS(친인성스트레스증후군〉 등이다.

지금 세계 의학계는 과학적으로 증명 발전되어 온 서양의학이 대세이지만, 과학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의 정신, 마음, 감정 등은 그 작동원리부터 결과까지 모두 알아도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흔히 말한 '신의 영역'이다. 신체가 작동하는 원리와 구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뇌의 구조와 뇌의 작동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점의 부족을 오랜 경험과 치료, 사람의 기(氣)나 정신과 신체의 연결로 인한 질병과 치료에 미흡한 부분을 동양의학을 접목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통합의학은 서양의학에 대한 우리의 의학적 자원이나 치료 능력이 뛰어나도 여전히 세계 의료계를 이끌어나가는 데에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독자는 읽힌다. 우리의 서양의학에 꾸준히 오랫동안 경험을 통한 한의학의 치료법, 치료원리 등을 함께 환자 치료에 적용한다면 당연히 치료율은 물론 효과도 훨씬 커질 것으로 기대하는 의학계의 바람도 함께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독자는 감명을 받는다. 지금 우리 의료계는 의사 수의 증원이나 현 수준 고수냐를 따지는 양적 문제에 치중하고 있다. 눈앞의 작은 이해 관계에 얽혀 딴 곳에 눈을 돌리고 있다면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는 우리의 의료 능력이 제자리걸음을 할까 독자는 걱정한다. 한 단계 더 높여 단연코 세계 최고의 의료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로 통합의료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에는 박우현 교수의 혁신적 치료의 환자로서의 경험이 실려 있다. 이 경험은 저자 이시형의 의문을 통합의료로써 해결해 준 박 교수의 치료법도 비교적 자세히 실려 있다. 또 우리나라가 원천기술 가지고 있는 '할미꽃뿌리생약'의 'SB항암주사'는 매우 유용한 항암주사다. 이것을 이용한 생약제제 주사를 일부 병원에서 시험한 단계이고, 여러 병원에서 항암제로서 상용화하기 위해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저자 이시형은 이것으로 만든 오인트(연고제제)를 발에 발랐더니 오래된 피부병이 나았다고 책에 쓰고 있다. 또 소우주한방병원 조기용박사의 치료-청혈해독요법 한방제재를 이용한 관장을 통해 적혈구 모양 회복을 확인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이어 저자 자신이 신체불균형을 가지고 있는데, 턱관절 부정교합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어 경기도 연천에 있는 '방치과'에 가서 스프린트를 맞추고 끼우자마자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가 똑바로 서는 것을 사진을 통해 확인했다는 내용도 게재돼 있다. 또 저자는 이런 관련 증상들이 DDS(Dental Distress Syndrome, 치인성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것도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책에서 독자 개인에게 가장 인상적인 의사와 치료법은 박우현 교수이다. 독자가 건강을 위해 예전에 기(氣) 수련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원리와 치료가 모두 낯설지 않고 조금 알기에 그랬을 법하다. 그러나 박 교수는 비엔나(오스트리아)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45개국에 지점을 두고 있는 유럽동서의학 병원장이라는 점만 들어도 서양의학에서도 인정해주는 것 같다. 국내에서의 한의학은 홀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 교수의 치료법은 서유럽에서 활동하고 치료 능력을 더 키울 수 있었던 점을 비추어 볼 때 국내 의료인들의 각성도 필요할 듯하다. 박 교수에 대한 활동은 독일 기자가 인터뷰를 한 기사가 이 책에 실려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의학, 의료 기술 등에 관심이 있기에 많은 내용의 이해가 가능하지만 일반인들이 한 번에 알아듣고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렵긴 하다. 관심 있는 독자들의 집중 독서를 권장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책의 뒷 부분에 저자가 직접 쓴 〈후기〉가 있다. "이 책은 여느 의학 관련 서적과는 아주 다르다. 본론은 내 개인적인 진료 경험을 중심으로 편집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학 전문 서적과는 체재부터 다르다. 내가 평생을 의사로서 일하면서 내 개인적인 치료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행여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환자에게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어금니 하나의 결손이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리라는 생각은 내 자신이 의사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증 요법을 시행한 많은 서양의학 전문의나 한의사도 치아 결손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그때 아픈 것만 내가 이야기했으니 그 국소적인 문제에만 치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환자인 내가 전체적인 맥락을 이야기 못한 탓이다. 늦게나마 다행히도 김의신 박사, 박우현 박사, 조기용 박사, 방병관 치과 전문의, DDS의 저자 Aelred C. Fonder 박사의 저서를 통해 하악골의 부정교합이 내가 그간 앓아온 잔잔한 질병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어서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대가들의 과학적 논거와 임상실험 결과 등을 개별로 검토하고 종합적으로 바라본 내 나름의 결론을 함께 실었다. 이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겸손해서 자신들의 업적을 떠들어대지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소중한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내겐 이보다 더 큰 업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내 개인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 내가 좀 과장된 표현을 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분들의 업적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워낙 겸손해서 목소리를 적게 낼 뿐이지 나처럼 개인적인 문제가 얽힌 사람이 아니라도 학자적 견지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이 그분들의 만성적인 문제를 푸는 하나의 단서가 되었으면 한다. 저자가 그간 구상하고 있던 동서의학과 각종 대체의학들을 총망라한 통합의학 개설에도 이분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머지 않아 개설될 것을 간절히 바란다."(p.150~151)

 

저자 : 이시형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ㆍ서울의대(외래)ㆍ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하고 국민들의 건강한 생활습관과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어른답게 삽시다』,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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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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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추리소설 강국'으로 이름 나 있다. 지금처럼 애니메이션(만화)이나 영상물이 없던 시대부터 추리소설은 일본 문학의 한 장르로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독자는 예전에 추리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았기에 일본의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읽지 못했던 책을 최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추리소설을 몇 편 읽게 됐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지금도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추리소설이 최근 대세로 자리 잡은 판타지물과 함께 본격 출간되기 시작함으로써 어쩌면 일본 못지 않은 추리소설 붐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일본의 추리소설과 우리의 추리소설을 최근 몇 편씩 읽었다.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양에서 일본의 추리소설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만 해도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것을 넘어설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의 추리소설도 예전에 비해 엄청 늘어난 느낌이다. 신간 안내를 통해 살펴 보아도 추리소설 범주에 들어간 것이 매일 들어가 있을 정도다.

이 책 『속임수의 섬』은 일본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특히 저자는 '유머 미스터리' 소설의 1인자라고 알려져 있다. 추리소설 초보 독자로서는 '유머 미스터리'란 단어조차도 낯설다. 추리든 미스터리든 모두 극적 긴장감이 굉장히 중요한 요건인데 '유머'라니···. 유머는 긴장히 해소된 상태에서 제대로 이해가능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유머와 추리소설은 '모순적' 단어 조합이 아닐까? 이에 답이라도 하듯 이 책은 히가시가와 도쿠야 특유의 유머 미스터리 소설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일본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 『속임수의 섬』은 한국에서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라고 하니 독자들의 기대가 더욱 클 듯하다. 이 소설 작품은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가 흥행하기 전부터 저자가 구상한 작품으로, 여러 개의 트릭을 사용했다는 점과 모순이 없는 미스터리를 쓰고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로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출판사(북다) 측은 전한다.

 


 

일본은 알다시피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큰 섬 4개 외에 그에 딸린 섬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무대인 외딴섬과 독특한 모양의 저택, 거액의 유산과 관련된 유언장 개봉으로 오랜만에 모인 가족, 기이한 살인사건, 폭풍우로 고립된 섬, 마침내 하나둘 밝혀지는 진실까지 극적 요소를 충분히 갖춘 전형적 추리소설의 요인들로 꽉 차 있다. 노련한 저자의 추리소설 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저자가 오랫동안 구상한 이 소설 『속임수의 섬』에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아 독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일본 최대 서평 사이트인 〈독서미터〉에 1,000개가 넘는 리뷰가 올라오는 등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특유의 유머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화가 빛나는 소설로, 오랫동안 그의 소설을 즐겨 온 독자는 물론 이 책으로 처음 도쿠야 월드에 발을 내딛는 독자도 모두 감탄하며 읽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소설 외적인 부분, 즉 활자를 좌우로 배치하는 등의 기교와 저택의 설계도 같은 그림을 자세히 소개하는 등 의외의 그림도 동원한다. 모두 독자들의 이해와 추리를 돕는 데 사용하고 있지만 꼭 그림이나 활자를 이용한 추리를 하는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 기법도 선보인다. 사실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문학이라는 것이 글(문자)로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서 사건에 접근하게 독자들을 유도하고 추리하게 해야 하는데 저자의 기법은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할 불가피한 요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제시하고 추리력과 기억력 등을 동원해 범죄 등 미스터리 사건을 풀어가는 소설도 이미 일본에서는 선보였다. 처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독자도 얼마 전 일본 추리소설 작가 우케쓰의 『이상한 그림』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분명 추리소설의 새로운 형식이다. 독자로서 새로울 뿐이지 저자 우케쓰는 이번 책이 두 번째 '그림 소설'이라고 했다. 일본어로 출간한 일본 소설이지만 세계 공용어인 그림이 추리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 세계 추리소설 독자들의 호평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원래 추리소설이 범인이나 용의자의 심리, 제스처 등 세밀한 부분의 묘사가 많기 때문에 번역할 경우 맛이 좀 떨어지는 것을 독자들은 감안하고 읽는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이나 오류를 줄이는 데는 전 세계 공용 언어가 더 호소력이 클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 우케쓰는 『이상한 그림』이라는 추리소설로 출판계는 물론 독서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짐작도 독자로서 해본다. 크게 틀린 짐작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이에 비해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유머 미스터리’라는 특출한 영역을 개발하여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 아리스가와 아리스로부터 “저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했고, 시리즈 통상 380만 부가 판매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가 가장 잘 알려졌지만 『밀실을 향해 쏴라』, 『살의는 반드시 세 번 느낀다』, 『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교환살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여 온 작가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 『속임수의 섬』은 작가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그동안 그가 쓴 작품들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크고 분량도 길다. 외딴섬에 있는 독특한 모양의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2008년에 발표한 『저택섬』과 연결되지만, 기본 설정만 같을 뿐 모든 면에서 전작을 크게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묘한 건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고립된 섬이라는 배경은 범인의 범행 및 은둔 공간을 섬 전체로 만들면서 ‘밀실’의 범위를 넓혔다. 자연 환경마저 트릭의 요소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겨 준다. 유언장 개봉을 위해 모인 열네 명의 등장인물이 선보이는 캐릭터 쇼도 소설의 커다란 재미다. ‘유머’가 장기인 작가인 만큼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마구 터지는 실소는 오직 히가시가와 도쿠야만이 펼칠 수 있는 무기다.

 


 

주요 등장인물은 유언장 개봉을 위해 외딴섬에 모인 출판 명문 사이다이지가(家) 사람들이다. 섬의 유일한 건축물이자 돔 모양 전망실을 갖춘 별장에서의 하룻밤이 지난 다음 날, 이들은 오랫동안 행방불명되었다가 20여년 만에 다시 만난 쓰루오카의 시체와 마주한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온 태풍으로 꼼짝없이 섬에 갇히고 만다. 이후 섬에 ‘공중에 떠 있는 빨간 귀신’, ‘도깨비 가면을 쓴 수상한 인물’이 차례로 나타나 혼란이 가중된다. 이에 유언장 개봉을 담당한 변호사 야노, 그리고 쓰루오카를 찾아 섬에 데려온 사립탐정 고바야카와가 경찰 대신 사건을 수사하지만 난항을 거듭할 뿐이다. 그러던 중 오래전 이 섬에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섬과 가족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진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살인사건이 23년이란 시간 차이를 두고 발생한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듯 보였던 토막 이야기들, 여기 얽힌 인물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 등이 하나둘 쌓이더니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어 마구 휘몰아친다. 작가는 이 모두를 영리하게 배치해 둠으로써 독자를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얼떨결에 사건 해결을 맡은 야노와 고바야카와 콤비는 혼란이 가중되는 와중에서도 조금씩 진실에 다가서고, 마침내 한 지점에서 두 사건이 완전히 겹쳐진다.

 

“그, 그 빨간 도깨비는 도깨비 가면을 벗고 벼랑에서 바다에 떨어졌다. 아까 우리가 들은 비명은 그자가 떨어질 때 지른 거였다. 그런 거겠죠?"

사야카의 질문에 다카오는 벌떡 일어나서 벼랑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게 볼 수 있는 상황이군. 발이 미끄러져서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내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23년 전 사건 때와 완전히 똑같은 전개인데. 정말로 그럴까?”(p.274)

 


 

이 작품 『속임수의 섬』에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요소가 꽤 많이 있다. 특히 소설의 무대가 되는 외딴섬과 기묘한 저택은 클로즈드서클 미스터리의 스케일과 품격을 한층 높인다. 여문 것은 미스터리만이 아니다. 때로는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 주고, 가끔은 사건의 정곡을 찌르는 역할을 하는 유머가 절정에 도달한다. 삼중, 사중의 복선을 빠짐없이 회수해 가는 작가의 노련함이야말로 놓쳐서는 안 되는 이 소설의 묘미다. 저자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지금껏 4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지만 매번 새로운 이야기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다. 이 소설 『속임수의 섬』에서는 드디어 그만의 매력이 절정에 달해 보인다. 오랜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저자의 신작이 유독 반가운 것은 한층 견고하고 두터워진 히가시가와 도쿠야 월드의 진면목을 읽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독자들은 저자 히가시가와 도쿠야에 대해 많이 알겠지만 우리 독자들은 그의 책이 많이 번역되지 않아 비교적 적은 수의 독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출판사 측은 파악하고 있다. 출판사는 저자의 이번 신작 발표를 통해 그와 그의 작품을 더 널리 알리고 한국 독자과 추리소설 지망생들에게도 즐겁게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번 책 번역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책의 역자 김은모에 따르면 저자 히가시와 도쿠야는 장편 미스터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었으나, 어느 날 카파-원(Kappa-One) 등용문'이라는 콘테스트에 참가해 보라는 출판사 관계자의 권유를 받고 장편을 썼다. 미스터리 장편의 저작에 능통하지 못한 저자는 살인사건과 단서를 찾는 과정 사이사이에 '유머'를 섞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장편 데뷔작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이다. 그의 '유머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행로는 그때 이미 정해진 것으로 역자는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후 2010년 발표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가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면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간간이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는 했다. 그중 『저택섬』(현대문학, 2011)은 독특한 작품이라고 한다. 외딴섬에 있는 기묘한 저택(육각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마다 소지의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시공사, 2009)에 영향 받았다고 한다. 누구의 영향을 받았든 이 작품은 『속임수의 섬』의 전편에 해당될 정도로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자신에게 본격 미스터리란 '분위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고 역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히가시가와 도쿠야에게 본격 미스터리란 '유머'다고 단언한다. 미소, 폭소, 실소와 함께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깜짝 놀랄 트릭과 진상이 독자의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중요한 복선과 단서는 '유머' 속에 담겨 있다.(p.477)

 

사야카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시선 끝에 인간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구체 전망실이 보였다. 불이 켜진 전망실에서 누군가가 움직였다.

틀림없다. 누군가 전망실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다.

사야카는 입술을 떨며 탐정에게 물었다.

“고, 고바야카와 씨…… 버, 범인은…… 대체 누구예요?”(p.381)

 

저자 : 히가시가와 도쿠야(ひがしがわや, 東川 篤哉)

 

1968년 히로시마 현 오노미치 시에서 태어났다. 오카야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카메라 제조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지만 26세가 되던 해에 그만두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면서 틈틈이 단편소설을 쓰던 중, 2002년 『밀실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라는 작품으로 데뷔했고, 많은 독자들에게 완성도 높은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배경이 된 가상의 도시 이카가와 시를 무대로 한 미스터리 소설을 연이어 선보이며 ‘유머 본격 미스터리’라는 그만의 독특한 작풍을 완성했다.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소설은 아슬아슬한 엇갈림, 대담한 트릭 등의 촘촘하고 탄탄한 구성으로 예상치 못한 결말에 이르며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저서로는『밀실을 향해 쏴라』『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어중간한 밀실』등이 있다.

 

역자 : 김은모

 

일본 문학 번역가. 198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던 도중 일본 미스터리의 깊은 바다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테후테후장에 어서 오세요』,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여자 친구』를 비롯하여 아시베 다쿠의 고바야시 히로키의 『Q&A』, 미치오 슈스케의 『투명 카멜레온』, 『달과 게』, 『기담을 파는 가게』, 이사카 고타로의 『화이트 래빗』, 『후가는 유가』 야쿠마루 가쿠의 『우죄』,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지넨 미키토의 병동 시리즈 『가면병동』, 『시한병동』,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 『프리즘』, 미야베 미유키의 『비탄의 문 1, 2』,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 『마안갑의 살인』을 비롯하여,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의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지나가는 녹색 바람』, 『검찰 측 죄인』, 『달과 게』, 『성스러운 검은 밤』, 『열대야』, 『밀실살인게임』, 『사이언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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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속절없이 빠져드는 화학전쟁사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쟁의 승패를 갈랐던 화학 이야기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0
곽재식.김민영 지음, 김지혜 북디자이너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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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유사 이래 전쟁을 하루도 멈춘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전쟁은 인간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다. 전쟁의 법칙은 '승자독식'이며 전쟁에서 패할 경우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마저 마지막일 수도 있다. 전쟁에 임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며, 진 뒤에는 변명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전쟁터는 당연히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는 살륙의 장이 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고대 전쟁에서도 전쟁에 패할 경우 죽음이며 살아갈 유일한 길은 노예가 되는 길이다. 전쟁을 하지 않는 방법만이 인류의 지속 번영을 이어가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모순이 엉키는 곳이 전장(戰場)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본 요건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대와 중세까지 전쟁의 주 무기는 칼과 창, 활과 화살이었다. 그러나 근대 직전 화약이 발명되고부터는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고 또 희생자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화약은 엄청난 폭발력으로 일시에 수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도록 했고, 이른바 '대량학살'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 책 『곽재식의 속절없이 빠져드는 화학전쟁사』는 전쟁에서 이용되는 '화학'으로 전쟁을 설명한다. 화학은 많은 독자들이 알다시피 물건이나 생물체를 이루는 '성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칼과 창은 물리적 이용이지만 사상자의 숫자는 아군의 군사력에 비례하는 일정한 공식이 따른다. 사람을 살상하는 힘의 한계가 보인다는 의미다. 그러나 화학이 전쟁에 사용되면 훨씬 간단하고 넓은 범위의 사상자를 일시에 만들어낸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우월한 과학자(화학자)들 덕에 '독가스' 제조에 성공했다. 포와 개인화기의 총탄만으로 전쟁을 지속했으나 예상보다 시일이 오래 걸리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독일은 독가스를 만들어 살포했다. 이는 죽음의 참호전을 펼치던 프랑스 등 상대국의 병사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 현장에서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얼마 후 몸속의 장기들이 손상돼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가스의 피해를 경험했던 승전국들은 전쟁에서 가스 사용을 엄격히 규제한 국제법을 만든다. 당시 하루 1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대부분 독가스 희생자였음을 돌이키며 전쟁에서 가스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국제조약으로 확정했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군에 입대하면 훈련병 시절에 '화생방'을 훈련받는다. 국제 규약에도 불구하고 왜 병사들에게 화생방전을 가르치는가? 국제 규약의 강제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화생방전은 대량으로 살상하는 무기로서, 전쟁터에서도 사용을 금지시킨 것이다. 여기서 화학과 생물학, 그리고 물리학(원자력, 방사능)이 무기로 사용될 때 희생자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엄청난 희생자를 가져온 경험을 통해서 겨우 규제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아직 화생방전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화생방전의 첫 머리글자가 '화학전'에 사용되는 '가스'를 말한다. 두 번째 글자는 생물학전(세균전), 세 번째는 원자력(원자폭탄)을 의미한다.

책의 저자 곽재식은 우리가 삶을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 고민하는 대부분의 현실 문제는 '화학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석유 가격이 올라 휘발유 가격도 오른다는데, 석유가 왜 중요한지, 석유로 어떻게 휘발유를 만드는지도 화학 문제이며 반도체를 만들어 수출한다거나 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약이 나왔다고 하는 첨단기술도 결국은 화학 문제와 관련이 깊다"고 전제한다. 저자는 "또 반도체 재료를 무슨 약품으로 가공해서 만드는지가 화학 문제이고, 약을 어떻게 만들고 그것이 몸에 들어가면 어떤 화학 반을을 일으키기에 몸의 망가진 곳을 고치는 역할을 하는지가 화학 연구의 결과"라고 말한다. 즉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많은 변화도 크게 보면 화학과 관련이 깊다는 점을 강조한다. 근현대로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어떤 산업이 발달했고, 어떤 기술 때문에 변화가 일어났느냐를 따지다 보면 결국 화학 분야의 기술 발전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역설한다.

 

 

고대와 중세의 역사적 사건조차 그 배경에 화학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 곁들여지면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작은 문제로는 궁중 암투에서 누가 사약을 받았다거나 독살을 당했다고 하면 도대체 사약이나 독약에 어떤 성분이 들었기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고, 큰 문제로는 땅의 토질에서 무슨 성분이 부족해졌기에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해 전국에서 큰 흉년을 맞이하게 되었는가 하는 예도 생각해 불 수 있다고 말한다. 화학은 앞서 언급한 대로의 물건의 성분을 바꾸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또 고유한 특성을 이용해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것이기에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전쟁터에서의 사용은 무척 매력적이지만 규제되어야 할 과학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화학이 얼마나 다양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다 생생한 이야기로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속 전쟁이 어떤 화학 문제와 관련이 있는지를 풀이해 보고자 했다고 집필 취지를 밝힌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삼국 통일을 이끈 포차의 화학〉, 2장 〈후백제 견훤의 기병대를 이끈 화학〉, 3장 〈접착제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핑계〉, 4장 〈한반도를 무너뜨린 석탄 군함, 운요호〉 등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모두 배우는 내용이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사에서 배웠기에 역사 속 숨어 있는 화학을 따로 떼어내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힘과 힘이 격돌했던 시대, 한반도는 어떻게 다양한 국가들과 맞서 싸우며 발전할 수 있었는가? 이 책은 7세기 삼국통일부터 19세기 운요호 사건까지, 과학자 곽재식 교수가 해석하는 네 개의 화학 지식과 전쟁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간단하게는 포차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밧줄의 화학성분부터 크게는 한반도를 무너뜨린 일본 석탄 군함 운요호의 화학 에너지의 비밀까지, 각종 전쟁과 관련한 역사적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술해 나간다.

 


 

한국의 역사와 역사 속 화학을 우리 역사 속에서 포착해 차근차근 알려준다. 포차의 화학, 기병대의 화학, 증기 기관의 화학 등 지금-여기를 있게 한 ‘한반도의 화학전쟁사’ 스토리에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펼쳐진다. 1장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의 '포차' 이야기다. "서기 558년에 나마 신득이라는 이가 포노를 만들어서 바쳤다는 기록으로, '나마'는 신라의 벼슬이름이다. 신라 시대 17관등 중 11등급에 해당하며 실무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 관직은 진골이나 육두품 외에 오두품도 받을 수 있는 관직이었다. 나마 신득이 바친 '포노'에서 '포'는 돌을 던지는 기계를 뜻하며 '노'는 쇠뇌라고 부르는 장치로 화살을 쏘는 데 도움을 주는 기계 장치를 말한다."(p.12)

저자는 투석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한국 역사 속 전쟁을 생각할 때 투석기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는 않다. 아마 투석기라고 하면 외국의 역사 드라마나 판타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돌을 던지는 기계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투석기는 대개 한쪽에다 돌을 실어놓고 다른 한쪽에서 장치를 움직이면 어떤 힘을 이용해 돌을 멀리 던지는 형태를 가지고있다. 불덩이 같은 것을 던지기도 하고 만화나 코미디 영화를 보면 돌을 놓는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다가 날아가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이런 돌 던지는 기계를 이용해 성벽을 부수거나 성벽을 넘어가 싸우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의외로 우리나라 사극에서는 돌 던지는 기계, 즉 투석기가 자주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는 저자는 "많은 제작비를 들인 대하 사극에서는 가끔 투석기로 돌을 던지는 전투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보통 사극을 보면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1, 2편에 제작비를 많이 들여서 웅장한 장면을 보여준다. 수많은 병사가 너른 평원에 모여 대처하다가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 장면이나 엑스트라가 많이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고 다음 편에서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이한다. 그다음 편에서는 갑자기 과거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런 대하 사극에서 제작비를 많이 들인 1, 2편에 투석기를 쓰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

 


 

이처럼 투석기는 물리적 성질을 이용한 무기로 보이지만 투석기에 쓰인 밧줄을 보면 화학적 지식이 충분히 쌓여 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투석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부품은 밧줄이다. 투석기의 본체를 이루는 나무는 튼튼하게 잘 연결해 놓기만 하면 된다. 투석기에 쓰는 돌은 적당히 무게감 있고 크기만 맞으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하고 질기면서도 힘이 잘 붙도록 적절한 탄성이 있고 적당하게 잘 구부러지고 휘어져서 여러 사람이 같이 당기기에도 편리한 밧줄이다. 신라 시대 당시 역사적 기록이 미흡해 포차의 제작 과정 등은 기록으로 남은 게 없어 아쉽다는 저자는 오늘날 질긴 화학 섬유와 비교해보면 그 원리는 같다고 말한다.

이같은 화학의 응용은 지금처럼 활발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무기 제조에 고려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고려 말 이성계는 요동 정벌의 네 번째 반대 이유로 ‘활의 교(膠)가 풀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습도가 높아지는 여름이면 엉겨 있는 단백질 입자 사이사이로 수분이 들어가기 쉬워져 아교의 탄성이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계는 탄성이 달라지는 아교를 핑계로 하여 요동 정벌을 반대했고,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조선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반역에 대한 명분을 단백질의 화학성분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 책은 비교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한반도의 화학전쟁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보다 더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한 서술로 과학과 역사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화학은 우리 생활에서 가장 익숙한 과학’이라고 이야기한다. 화학은 알게 모르게 고대와 중세에서도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고, 이는 오늘날에 이르러서 삶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어 지식의 확장과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한 화학 분야에 전쟁사라는 키워드를 함께 제시하여 탄생시킨 곽재식 교수의 통섭의 역사책은 인문·과학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융합적 사고의 필요성이 무엇보다 대두되는 오늘날,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분야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읽어보며 세상을 풍성하게 바라보는 기회를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도대체 말은 왜 잘 달릴까? 어렸을 때는 한 번쯤 궁금해했을 만한 질문이다. 말은 사람보다 훨씬 잘 달리고 힘도 세다. 사람은 고기도 먹고 채소도 먹지만 말은 풀만 먹고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힘이 좋을까? (…) 실처럼 되어 있는 근섬유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성분은 마이오신 또는 미오신(myosin)이라고 하는 물질이다. 이 미오신이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삼인산)를 뿌리면 ATP는 ADP(adenosine diphosphate, 아데노신 이인산)라는 물질로 변한다. 그리고 미오신은 그 영향으로 잠깐 모양이 굽어들 듯이 변하는 특징이 생긴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운동의 근원이다. 걷고, 뛰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누군가를 껴안고, 즐거워서 박수 치고, 화가 나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고, 심지어 숨쉬기 운동을 하며 조금씩 가슴과 배를 움직이는 것까지. 그 모든 움직임이 ATP가 ADP로 변할 때 미오신이라는 물질의 모양이 굽어드는 화학 반응 때문에 일어난다.(p.81~82)

 

저자 : 곽재식

 

공학박사이자 작가로,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된 이후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과학적 상상력과 방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곽재식과 힘의 용사들』, 『곽재식의 유령 잡는 화학자』,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의 아파트 생물학』,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등 다수의 논픽션을 집필했다. 또한 『곽재식의 역설 사전』, 『곽재식의 도시 탐구』, 『곽재식의 고전 유람』,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한국 괴물 백과』 등의 인문 교양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EBS <인물사담회>, KBS 라디오 <주말 생방송 정보쇼>,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과학 입담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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