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재의 철학 - 21세기의 삶을 위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EBS CLASS ⓔ
조대호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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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영원한 현재의 철학』은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에 대한 이야기다. 세 철학자는 사제지간이라고 우리는 배워서 알고 있다. 나이 차로 보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테네가 도시국가임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나이 차이는 한 시점 한 공간에서 만났을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동시대 동일한 장소에서 공부(?)하던 사제지간이라 할 수도 있다. 이들 세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이미 고등학교 때 많이 배운다. 더욱이 그리스의 문명을 대표하는 '철학'의 근간을 세운 철학자들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나 잘 나갈 때나 이들 철학자들은 일정 이상의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저자 조대호는 많이 알려진 바, 서로 스승과 제자 관계라는 것,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는 것,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세웠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서양 학문의 기반을 다져놓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깨부수고 새로운 의미로 풀어내고자 집필했다. 이미 정설로 알려진 것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굳어져 있어 그것들을 새롭게 풀어내고 현대적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진 상식들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자 시도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왜 아직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가?」란 제목의 〈들어가며〉('프롤로그')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대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는 동·서양의 역사에 엄청난 유산을 남겼다고 전제하고, 민주정, 서사시와 비극 등을 포함한 문학과 예술, 건축과 조각 등 그리스 문명이 남긴 유산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가 남긴 유산 가운데는 영광과 희망의 기록뿐 아니라 혼란과 절망의 흔적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바로 영광된 유산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저자가 다시 세 철학자를 되돌아보는 이유이다. 그래서 인간 문명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한 그들의 철학적 성찰은 언제나 유효하고, 우리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나은 삶을 위한 지혜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갖는 현재성에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 1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소크라테스에 관한 이야기이고, 「아고라의 목소리」, 「철학과 ‘참된 정치’」, 「재판과 죽음」이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2부엔 플라톤으로, 「상처받은 영혼의 철학」, 「인간의 본성」, 「정의란 무엇인가?」, 「민주정과 철인통치론」 등 4개의 장이 플라톤과 그의 철학을 돕는다. 3부 아리스토텔레스 편이다. 「자연의 관찰」, 「인간, 실존, 이성」, 「행복과 덕」, 「실천적 지혜」, 「나쁜 민주정과 좋은 민주정」으로 나뉘어 아리스토텔레스를 설명한다.

저자는 먼저 그들의 생몰연도부터 파고든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사이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각각 43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탄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까지 대략 150년의 시간이 걸렸다. 고대 철학 연구자들조차도 이런 점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연구에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왜 그럴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산 사람들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 아테네는 도시국가로서 늘 전쟁의 위협이 있었고, 또 실제로 기나긴 전쟁을 치르면서 승패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흔들리는 것 또한 동서고금을 통해 마찬가지다. 다만 저자가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세 명의 철학자가 150년이란 기간 중 일부 겹치지만 격변하는 아테네 정서에 따라 스승과 제자 관계이기는 하더라도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들어가며〉를 통해 당시의 사회 상황을 설명한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가 태어나기 10년 전 그리스는 페르시아 제국과 전쟁을 치러 승리를 거뒀다. 승리의 영광은 50년 정도 지속됐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이 발발하면서 빛을 잃었다. 동방의 제국에 맞서 싸우는 데 앞장섰던 아테나이와 스파르타를 주축으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내전에 휘말렸다.

 


 

이 내전이 27년 동안 지속되면서 그리스는 쑥대밭이 된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번영과 쇠퇴를 목격하면서 그 시대의 사회적·정신적 혼란에 대해 고민했던 철학자다. 플라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고 몇 년이 지난 뒤 태어났다. 전쟁과 내분의 혼란 한복판에 던져졌다고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스승의 삶보다 더 암울했다. 몰락하는 아테나이 사회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플라톤은 절망의 현실을 마주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꾼 철학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삶은 또 다르다. 그는 오랜 기간 이어진 도시국가 중심의 그리스 사회가 해체되어 '제국'으로 넘어가던 시대를 살았다. 그의 제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바로 제국의 건설자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어떤 현실 참여의 길도 열려 있지 않았다. 그는 고향을 떠난 이방인의 삶을 살았으니까. 이 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걸었던 철학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배경이 되었다. 그는 현실과 거리를 두면서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삶을 살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다른 철학'을 했던 사람들이다.

세 철학자가 다른 세상을 살았다는 점에 저자가 주목하는 이유는 세 사람의 철학에는 '인간 사회의 영광과 쇠퇴, 그리고 해체의 경험'이 집약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철학이 지금까지 의미를 가지는 이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영광의 시대에도, 쇠퇴의 시대에도, 해체의 시대에도 이 철학자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이 책에서 역설하고 있다. 1부 '소크라테스 편'의 제목은 〈인간의 삶에 대해 묻다〉이다. 「사람다운 삶을 찾는 일상의 대화」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1장 「아고라의 목소리」에서 소크라테스의 삶과 외모, 그리고 일상에 대해 언급한다. 이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의 터줏대감이었다. 툭 튀어나온 이마, 콧대가 우묵한 안장코, 넙치 같은 얼굴, 대머리 등 남다른 외모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그는 항상 맨발이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이유는 그런 외모가 아니라 대화의 기술 때문이었다. 그의 대화는 아주 친숙한 것에서 시작한다. 석공일, 구두 수선, 말 조련 등 일상의 사례에서 출발하는데, 이런 대화는 어느 순간 경건, 우정, 용기, 절제, 정의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칼, 가위, 술병, 장신구 등 가재도구의 이름을 대면서 ‘이것을 어디서 구하지?’라고 묻다가 느닷없이 ‘그럼 용감하고 덕이 있는 사람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져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의 말은 긴 연설도, 장황한 강의도 아니었다. 물론 강의료도, 상담료도 받지 않았다. 사람들의 생각을 묻고 따지다가 조롱과 주먹다짐을 피하면 다행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했을까?(p.15~16, 책 내용은 경어를 사용하지만 편의상 독자가 평상어로 바꿈)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은 있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나기 약 150년 전에 그리스 땅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즉 '철학'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른다. 자연의 존재와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자연과학에 가깝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철학의 본질을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인간 삶에 대한 탐구로 바꿔놓은 사람이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로부터 끌어내려 도시로 가져다 놓았으며 집안으로까지 들여놓았고 삶과 도덕과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탐구하게 했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철학관'이 조금 드러난다. 철학은 정치도, 예술도, 기술도 하지 않는 것을 한다. 바로 '질문하는 일'이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정치가 정말로 대중을 위해 좋은 정치인지, 예술이 제공하는 즐거움이나 감동이 혹시 사람들의 생각을 무디게 하고 판단력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 기술 발전이 낳는 사회 문제와 환경 파괴 등을 우리가 방치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철학이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철학은 이를 통해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일깨운다.

앞서 언급한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단순히 아테나이와 스파르타 두 나라 사이의 싸움만은 아니었다. 이 두 나라가 이끄는 동맹에 가담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도 아테나이 편과 스파르타 편으로 나누어서 싸움에 말려들었다. 27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마침내 아테나이의 패전으로 끝난다. 소크라테스는 70년을 살면서 인생의 후반기 30년을 이 전쟁통에 보낸 사람이다. 여러 차례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역사가 투키디테스의 말대로 전쟁은 공정한 중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전쟁의 혼란기 겪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보통 사람으로 살면서 영혼의 탁월함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는 점이다. 그는 대화를 영혼의 탁월함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용기란 무엇인가?', '절제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이런 질문을 놓고 아고라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대화를 나누었다. 소크라테스가 한 일을 간단히 요약하면 정의가 없는 시대에 정의를 묻고 절제가 없는 시대에 절제를 묻고 참된 용기가 없는 시대에 용기에 대해서 물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은 합법적인 것과 옳은 것 사이의 간극을 메어서 둘을 일치시키려고 하는 노력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 둘 사이의 간극에서 빚어질 수 있는 파국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p.62)

 


 

플라톤은 불우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집안이 가난해서 불우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최고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중하층의 석공 집안에서 태어난 소크라테스와는 달랐다. 하지만 집안이 좋아도 플라톤은 행복하지 않았다. 꿈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가졌던 꿈은 당시의 명문가 출신들이 가졌던 것과 똑같았다.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나기 몇 년 전에 발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플라톤은 정치가의 꿈을 펼치기 어려웠다.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에 관심을 돌렸지만 몇 해 뒤 플라톤은 더 깊은 상처를 겪었다. 바로 스승의 죽음이다. 그 시대에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상처받은 영혼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p.68~70)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여행한다. 남부 이탈리아 방문 때 피타고라스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경험은 플라톤에게 구원과 같은 체험이었다. 수학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고향에 돌아온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설립한 뒤 젊은 사람들을 모아 교육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철학의 장소'가 열린 것이다. 철학의 장소가 아고라에서 아카데미아로 바뀐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서 시민들의 반성 능력과 정치적 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철학의 목적을 두었다면,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세워 미래 세대를 교육하는 일에 나선 것이다.

우리가 '플라톤' 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이데아'인데 고대 그리스의 일상어에서 눈에 보이는 '외형', '형태', '모습' 등을 뜻한다. 보이는 것 중에는 아름다운 형태가 있고 흉측한 형태가 있다. 사람의 모습은 짐승과 다르다. 이 모든 것을 그리스인들은 '이데아'라고 불렀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신체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눈에 보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바꾸어 사용한다. 이로 인해 '이데아'는 눈에 보이는 '감각적 형태'가 아니라 지성 또는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정신적 형태'를 뜻하게 된다. '신체:눈:감각적 형태=영혼:정신:정신적 형태' 우리 몸에는 눈이 있어서 이를 통해 이 눈으로 사물을 본다. 감각적 형태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에는 지성이 있어서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근현대 철학자 중 니체는 플라톤을 비판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현실 앞에서 비겁했고 그래서 이상으로 도망쳤다"고 비판했다. 플라톤의 철학을 현실도피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목을 지적하고 있다.

 


 

책의 3부 '아리스토텔레스 편'의 9장 「인간, 실존, 이성」에서 저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이 '로고스를 가진 동물'이라고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본성을 지적하면서 사용한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는 여러 각지 뜻이 있다. '로고스'는 '계산', '이성', '추리', '말', '법칙' 등을 뜻한다. 그래서 인간이 '로고스를 가진 동물'이라는 의미는 대략 인간만이 이성을 갖고 말을 하고 계산하고 추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실존과 본질은 불가분의 관계다. '실존'은 인간에 대한 20세기의 철학적 논의에서 화두 역할을 한 개념이다. 사르트르와 하이데거가 대표적 철학자들이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탐구한 '인간의 본질'과 현대 철학자들이 주목하는 '인간의 실존'은 아직도 논의 중이지만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에는 로고스의 작용으로서 '추리'가 따른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랜 그리스 철학 공부, 특히 그리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연구에 집중해온 저자로서는 자신이 그동안 찾은 가장 중요한 발견은 다음과 같은 사소한 발견이라고 밝힌다. "인ㄱ란은 추리하는 존재다. 추리에는 상상이 따르고 비교가 따르고 정당화가 따르고 선택의 과정이 따른다. 이러한 추리 과정으로부터 인간의 과학적 탐구, 실천적 계획, 범죄, 예술, 종교 등 모든 것들을 다 설명을 해낼 수가 있다···." 위대한 발견자의 생각 속에서 저자 자신이 찾아낸 가장 중대한 발견임을 내세운다. 그 안에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로고스를 가진 동물" 이라는 단순한 정의 안에 압축해 담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한 고대 철학자가 평생을 걸쳐 이룩한 명제 하나를, 한 현대 철학자가 오랜 탐구 끝에 찾아낸 명제 하나를 철학 책이라고는 한두 권 읽은 독자가 쉽게 평하기에는 어렵다. 차분하게 재독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저자 : 조대호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서양 고전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인츠대학교 연구 교수,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원장, 한국서양고전철학회 회장, 한국서양고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며 생물학의 철학, 윤리학, 행동 이론, 기억 이론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학 내의 연구와 교육 외에 대학 밖에서 그리스 고전들을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네이버 [열린연단],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 등 매체에 출연했고 2021년부터 동아일보에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을 연재하면서 철학, 문학, 역사의 고전 속에 담긴 더 나은 삶을 위한 통찰들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위대한 유산』(공저), 『아리스토텔레스: 에게해에서 만난 인류의 스승』, 『일리아스, 호메로스의 상상 세계』 등이 있으며, 역서로 『파이드로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선집』(공역)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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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
채도운 지음 / 지베르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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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운명처럼 다가온 뜻밖의 공간에서 치열하고도 맹렬한 투쟁을 한다. 어쩌면 내가 태어난 곳, 살던 집, 일하는 공간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정과 닮아 있는 곳이 현재 있는 곳과 놀랍게도 닮아 있다. 때론 달콤하고, 때론 씁쓸하며, 어떤 날에는 뭉클하게 만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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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
채도운 지음 / 지베르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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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는 일상에서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가는 '소확행'의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자칭 '애매한 인간'이라는 필명의 채도운 저자는 신인 작가는 아니다. 이미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라는 에세이를 펴낸 바 있다.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독자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애매한'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을 듯하다. 어쩌면 딱 부러지게 일을 마무리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지만, 그것을 일부러 필명으로 내세울 바는 아닐 것 같고... 1992년생이라니 서른을 넘긴 여성으로서 삶의 중간이라는 의미도 아니고... 아무튼 그의 이번 에세이도 전작과 비슷한 카페&서점 이야기다. 사실 저자는 어렵게 공기업에 입사하고 4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었는지, 경남 진주 작은 마을에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운영하겠다고 나선다. 유서 깊은 도시 진주이지만 변두리 작은 마을에 난생처음 카페를 운영하며 하루하루 일기쓰듯 카카오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책까지 출간한 것이 전작 『엄마는~』이다. 전작은 저자가 카페를 운영하면서 밀리의서재x카카오브런치 전자출판프로젝트에 당선된 것이 계기였다. 이번 책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는 카페 이야기는 맞지만 중점이 카페라는 '공간'에 맞추어져 있다.

'공간'이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라는 사전적 풀이이지만,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이란 속뜻도 포함하고 있는 3차원적 빈 곳을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공간은 저자에게 있어 카페를 말한다. 운영이 어렵지만 임차연장계약을 체결하며 보틀북스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번째 카페 이야기를 담아내며,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저자가 "내가 기대한 인생은 아니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뜻밖의 공간에서의 치열하고도 맹렬한 일상 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담는다.

 


 

저자는 자신이 현재 있는 공간이 자신이 태어난 곳, 살던 집, 일하는 공간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정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현재 있는 공간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말이다. 때론 달콤하고, 때론 씁쓸하며, 어떤 날에는 뭉클하게 만드는 '그곳'은 우리의 일상이 담긴 곳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계속, 그렇게 각자의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는 비유에 독자로서는 조금은 당혹스럽다. 저자의 공간에 대한 의식이 점점 사유가 더해지면서 특별한 내용이 하나씩 추가된다는 느낌을 독자는 강하게 받는다. 우리의 일상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전작을 낸 후 모 인터뷰를 통해 카페에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밝혔다. "처음 책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부모님은 어떤 내용의 책일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마침내 종이책이 출간되자, 부모님은 각자 한 권씩 사서 읽으셨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뒤 엄마와 아빠에게 연락이 왔어요. 저는 부모님이 제게 ‘대견하다’,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먼저 “미안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빠의 은퇴 과정, 엄마의 외로움, 할머니와의 씨름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딸이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지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고.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게 해서 미안하다고. 딱 그말을 하시더라고요."라고 털어놓았다. 한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부모님께 “우리 행복하자”라는 말만 건넬 뿐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저자는 「나는 기어코 또 희망을 발견해 버리고야 말았다」란 제목의 이번 책 〈프롤로그〉를 통해 운영상의 어려움 등 첫 번째 책 출간 이후부터 이번 책 낼 때까지의 과정을 '무미건조'하리만큼 덤덤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살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는 말이다. "오지 않는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며, 의미 없이 휴대전화를 스크롤링하는 행동은 일상을 조금씩 좀먹어 들어갔다." 오지 않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그 순간이 싫어서, 비생산적인 자신이 미워서, 좀처럼 째깍거리지 않는 자신의 시계가 답답해서, 이 순간을 만들어낸 과거의 선택이 너무나도 한스러워서 '책'을 택했다고 고백한다.

 


 

책을 읽고 있는 저자를 본 한 손님의 권유로 독서 모임을 시작했을 때에야 저자의 시계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독서 모임 전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일상을 쫄깃하게 만들어 주었다곡도 말한다. '자기 계발' '투자' '시험' 등 미래지향적인 단어들을 모두 내려놓고, 충실하게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함께라서 외롭지도 않았다. 책이 주는 위안을, 이 공간에도 공유하기로 결심했단다.

이로써 이곳은 카페이기보다 서점이 됐다. 그동안 독서 모임 멤버는 무려 200여 명으로 늘었고, 독서 모임의 종류도 과학, 사회, 역사, 철학, 경제 등 다채로워졌다. 그런데도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고. 적자생존, 파이싸움, 제로섬게임, 생존과 도태···. 많은 단어들이 나타나 저자를 뒤흔들어 놓는다.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에 책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고, 거리마다 나부끼는 임대 포스터는 모두의 마음에 불안감만 불어넣는다. 다달이 때맞춰 내지 못하는 공과금에는 늘 자잘한 연체금이 붙어 있었고, 반품하지 못하고 쌓여 있는 책들ㅇ른 저자의 마음에 무게와 부피를 더해갔다. 얼굴만 봐도 나냥 좋았던 손님의 지갑이 굳게 닫힌 날, 찌푸린 저자의 인상을 깨달았을 때 마음의 가난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버거웠다고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렇게 되면 소확행이 아니라 '소확고(苦)'에 더 가깝다.

그러나 질척거리는 절망 속에서도 저자는 〈프롤로그〉 제목처럼 「기어코 또 희망을 발견해 버리고야 말았다」. 저자는 말없이 읊조린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면 쉬운 길을 나는 왜 기어코 꾸역꾸역 계속 가려는 것일까. 그 꾸역이, 그 모자라 보이는 우직함이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운명'을 찾아내게 하며, '길'을 개척한다고 믿는다. 이 책은 자신의 '꾸역의 여정'이라고...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 2부 〈당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서관〉, 3부 〈지금 사랑을 담는 중입니다〉, 4부 〈지옥에서 온 커피〉, 5부 〈인생 대환장 파티, 본 적 있나요?〉 등이다. 각 부에는 10편 안팎의 글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 권의 책을 이룬다.

 


 

〈프롤로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문장들이 본문에서는 힘 있게 이어진다. 월세를 내지 못해 쩔쩔매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폐업 위기에 있는 소상공인에게 지원한 지원금의 힘이 가장 컸단다. 이 돈으로 월세며 전기세며 관리비며 내니까 꼴깍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버틸만했다. 버텼다기보다 죽지 못한 것이리라. 역시 작가는 고통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데 특화된 분이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도 있다. "버티는 시간이 무척 괴롭다거나 고된 것만은 아니었다. 손님들과 찐친 못지않은 우정을 다지기도 했고, 마음 맞는 손님들과 맥주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나름 재밌고 행복했다. 나도 그 과정을 통해 '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히 차를 사고파는 공간이 아님을, 같이 추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공간임을 깨닫고, 또 배웠다."(p.17)

저자는 이어 '공간' 이야기를 본격 꺼내든다. 책에 따르면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신이 운영하는 이 '공간'을 무어라고 부를지 아직 결정 내리지 못했다. 카페일까? 서점일까? 공방일까? 문화공간일까? 뭘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나라서 이 공간도 애매하기만 했다. 카페 같기도 하고, 서점 같기도 하고, 공방 같기도 하고 뭐 그런 거. 하지만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아우를 수 있고,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애매한 것도 특징이 되고, 장점이 되고, 강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카페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 문화공간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을 다 우리 '애매한 공간'에 초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애매함의 힘이란 이토록 놀라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굉장히 심란한 상태다. 이 공간을 좋아해 주는 손님도 있고, 나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고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척이나 속상하다. 손님이 방문하는 것만큼 수익은 나지 않는다. 일은 일대로 하고 있지만, 내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다. 손님과 이야기하는 건 재밌지만, 또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다. 나는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해야 할까?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뭘 얻었을까? 예금과 적금은 없지만 행복과 보람을 얻었다. 하는 일은 즐겁다. 손님들과의 일상들도 참 행복하다. 하지만 이 행복이 돈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저자의 이번 책에서도 행복하지만, 고뇌스러운 하루의 일상이 별 감정의 동요 없이 잘 드러나 있다. 고뇌스럽지만 그러나 해답은 또 어떻게든 찾아낸다. 애매한 공간이어서일까. 카페 주인이 못 찾으니 이번엔 손님이 제시한다. 손님들과 책맥 모임을 만들어서 벌써 2년째란다. 저자는 그날따라 고작(?) 캔맥주에 취했다. 아니, 힘든 자신의 감정에 취했을까? 저자는 그저 온통 무거운 마음의 짐을 울부짖듯 토로했다. 그런데 손님이 딱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본인은 이 모든 걸 놓고 포기하고 싶구나.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거 하나가 딱 좋아서 못 놓는 거구나. 손님들이 진상이거나 조금이라도 악독하고 못됐으면 놓았을 텐데. 이놈의 모임에 진상이 한 명이라도 등장했으면 그 얄팍한 끈을 놓을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도저히 못 놓는구나."

이때 저자는 왜 놓지 못하는가를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왜 힘든 감정싸움을 하면서까지 이 공간을 버텨내고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 말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하며 저자를 짓눌렀다. 즐거움, 행복, 보람 그 모든 긍정적 감정을 압도할 만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자자는 분명히 행복하기 때문에, 지금 손님들과의 이 시간과 순간이 너무 행복하기에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이 공간이 운명인가 보다.

 

저자 : 애매한 인간(채도운)

 

1992년생. 자격증, 이력, 경력, 전문성, 돈, 재능 등 모든 게 애매한 인간. 무난하게라도 살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다 마침내 공공기관 입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힘겹게 4년을 버티고 퇴사, 나고 자란 진주에서 무작정 카페를 열었다. 그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주인을 닮아서일까? 카페도 애매하다. 카페인가, 서점인가, 마을회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함이 주는 힘을 믿기에, 이 공간을 방문해주는 손님, 친구들,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를 충실히 잘 살아내고 있다. 애매한 인간의 카페 창업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엄마가 카페에서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전자책을 출간했다. 오늘도 진주에서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애매하게 운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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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 - 우울증 환자를 살리는 올바른 대처법
최의종 지음 / 라디오북(Radio boo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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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가족이 제대로 알고 제대로 돕는다면 치료 희망이 커진다. 병원에서는 들을 수 없는 우울증 환자를 살리는 가족의 대처법을 하나하나 직접 실천하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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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 - 우울증 환자를 살리는 올바른 대처법
최의종 지음 / 라디오북(Radio boo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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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는 아내에 대한 한 남자의 순애보다. 어느 날 아내가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병원에 가기 전부터 조금은 증상을 보였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정도의 가벼운 증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시쳇말을 너무 믿은 탓일까. 아내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낀 남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가서 진단 결과를 받아들고도 한편으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당장 입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걱정이 사뭇 자신이 넘겨 짚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기를 바랐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또 하나의 상처가 우울감 호소자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소통 부재에 따른 '코로나 블루'라고 의학계에선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증상이라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치유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전문의와 상의할 것을 권고해 왔다. 이 때문인지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일은 예전처럼 꺼리고, 숨기고 할 필요는 많이 사라졌다. 흔하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가벼운 증상이기 때문이다. 감기에 누구나 걸려도 큰 걱정을 안 하듯이 말이다. 사실은 정신병원 진찰만 받으러 가는 것도 숨겼다. "정신질환자는 함께하기가 무섭다"고 피했다. 본인이 갈 때에는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나로 보지 않고 '정신질환자'로 볼까 두려워서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좋아지긴 했다. 병에 대한 인식도 많이 알려져 그닥 크고 위험한 질병에 들지는 않는다. 의학적 지식이라고는 없는 독자가 보기에 사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 갑자기 어떤 계기로 인해 심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독자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감기 정도의 가벼운 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직접 겪어본 환자나 환자 가족은 고작 감기 정도가 아님을 잘 안다는 주장이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울증은 소중한 사람을 잠식하고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심한 경우 극심한 자살 충동으로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저자의 말은 경험에서 얻은 지식이어서 반론은 무의미하다.

 


 

우울증은 왜 생겼는지, 그 원인을 알기는 어렵다고 한다. 원인도 워낙 다양하고, 처방약도 마땅찮다. 특히 정신질환은 아직까지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신의 영역'에 있는 인간의 뇌의 이상 증상으로만 안다. 특효약이 없다는 것은 감기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병이지만 우울증은 다르다. 감염병도 아닐 뿐만 아니라 증세는 있지만 병의 원인은 모른다는 데 차이점이 분명하다. 사실 뇌의 이상으로 오는 정신질환은 아직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고 한다. 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치매, 파킨슨병 등 모두 뇌의 이상에서 오는 질환이다. 그러나 특효약이나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의·약학계가 약을 개발해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서양의학은 병의 원인을 모를 경우 치료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의 원인과 그에 따른 병명을 제대로 알아내야 치료가 시작된다. 뇌 부분에 대한 치료약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는 것은 병의 원인과 병명마저 아직은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일부 증상만 지연시키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증세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경증 환자들이겠지만 '완치'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대부분 앓고 있는 환자의 부정확한 진술에만 의존해 진료가 이뤄져 정확한 진단이 쉽지 않다. 혹 원인을 알아도 환자에게 맞는 약을 찾는 데만 보통 몇 달이 걸린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1분 1초가 힘든 환자는 지쳐가고 증상은 더 악화된다.

우울증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만큼 함께 생활하는 가족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늘 곁에 있는 가족이 우울증을 이해하고, 환자 상태를 파악하며, 환자가 우울증에 매몰되지 않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 이는 생각보다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우울증을 공부하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가족의 상태를 관찰해 꾸준히 환경을 개선하고, 말과 행동을 적절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울증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수다.

 

 

이 책은 우울증 환자가 아닌 환자 가족 입장에서 환자를 제대로 돕기 위한 인사이트를 담았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7년간 치료저항성 중증 우울증 치료를 한 아내를 돌본 남편이 치료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바탕이 됐다. 단순히 병원 진료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병원 치료를 보완하기 위해 가족이 해야 할 거의 모든 일들을 담았다. 우울증에 걸린 소중한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 그래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은 환자 가족이라면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음은 있어도 방법을 몰라서, 혹은 여건이 안 돼서 소중한 사람에게 필요한, 어쩌면 가족을 살리는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오랜 치료에 지쳐 포기하기도 하는 사례도 많이 봐왔다. 어떠한 경우라도 적절한 도움이 간절한 환자에겐 좋은 일은 아니다.

이 책은 중증 우울증의 아내 치료를 함께한 남편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가 가족으로서 놀라운 점은 아내를 위해 직접 우울증을 공부하고, 직접 여러 영양제와 음식을 먹어보고, 직접 운동법을 익히고, 우울증 환자에게 좋고, 매일 편하게 준비할 수 있는 식단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는 의사마저도 할 수 없는, 오로지 환자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아내에게 알맞은 '좋은 병원'과 의료진을 선별하는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등 우울증 환자 보호자에게 필요한 디테일들을 만들었다는 점은 보통 남편으로서 할 일을 넘어선다. 지극한 사랑과 헌신이 있어야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이런 까닭에 독자는 이 책을 환자가족으로서의 치료법이라기보다 '순애보'라고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시중에 출시된 우울증 관련 책을 수백 권 읽는 것을 넘어 해외 논문과 의사들을 위한 연구 자료를 찾아보며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고 밝힌다. 운동으로 아내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운동을 미리 익힌 후 아내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가능한 모든 진료를 함께 다니며 부적절한 의료진 언행을 차단하고, 옆에서 관찰한 환자 상태를 의료진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알맞은 진단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 환자 건강에 좋고 매일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는 맞춤 식단을 개발했고, 환자가 건강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다양한 아이디어로 도왔다. 또,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환자뿐만 아니라 길어지는 치료 과정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법을 고민하고, 행여 엄마의 우울증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게 아이들 양육에서도 해법을 찾았다. 모든 노력이 바로 효과를 낸 것은 아니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이란 병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수차례 응급실에 갈 정도로 커다란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다. '허울'뿐인 완치 판정 후 재발해 상황은 더 나빠졌고, 환자는 심각한 자살 충동 속에 더 힘들어했다. 하지만 저자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 모든 노력을 꾸준히 지속한 결과 저자의 아내는 중증 우울증에서 벗어나 현재는 일상을 회복했다.

저자는 우울증은 함께 생활하는 가족의 도움 없이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책에서 강조한다. 며칠 밤을 새우며 우울증을 공부해도 환자 치료에 대한 내용만 있을 뿐 환자를 보살피며 도와야 할 가족의 대처법에 대한 내용을 얻을 수 없어 답답했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실제 옆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울증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지, 환자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며, 다양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지, 가족을 위한 체계적인 가이드는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곁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했으며, 그 결과를 기록하고 분석해 나름의 해법을 찾았다. 단순히 '이렇게 하면 우울증이 낫는다'라는 섣부른 공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과 상황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접근하는 경험적 지혜를 나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이 돌봐야 할 환자의 상태에 맞게 저자의 경험을 적용하며 치료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에 고군분투하는 환자 가족이라면 저자의 경험과 조언이 소중한 사람을 살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하루빨리 우울증에서 구하는 방법을 이 책에서 찾기를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책을 낸 후 별도의 인터뷰를 통해 환자 가족에게 도움말을 남기기도 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부정적 사고에 빠져 약물 치료 불안감과 의료진 불신 등으로 치료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병증으로 인한 것임을 알려줘서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약물 치료 효과가 늦게 나타날 수도 있으니 불안해하지 않도록 비약물 치료도 병행하는 등 치료 전반에 관심을 갖고 함께 대응해야 합니다. 또, 병원에 환자 혼자 보내지 말고 가능하면 진료실 안까지 동행해 의료진에게 환자 상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저자는 또한 "우울증 환자는 보통 수면의 질이 좋지 않으니, 침실을 먼저 개선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침구류를 환자 몸에 맞는 것으로 바꾸고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온습도를 조절하는 등 어린아이처럼 세심히 돌봐야 합니다. 약물 치료만큼 효과가 큰 것이 운동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집 밖을 나서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집에서 운동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합니다. 집에서 가볍게 걷고 뛸 수 있는 워킹패드 등의 기구를 갖추고, 보호자가 올바른 운동법을 먼저 익히고 환자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좋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환자인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환자 가족들에게도 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저자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아내의 우울증 치유에 가장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최의종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후 현재 국내 유수의 게임회사 기술 총책임자(Technical Director)로 일하고 있다.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7년 전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병원에 다녀도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보고 우울증 공부를 시작했다. 각종 논문과 사례를 닥치는 대로 찾아 검토했고, 운동과 식단, 생활 환경 등을 아내 상태에 맞게 적용해 큰 효과를 거뒀다. 덕분에 아내는 예전 상태를 회복했다. 치료 과정에서 우울증은 가족이 돕지 않으면 낫기 힘들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고,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2023년 <대한신경정신학회-와이브레인>이 주최한 우울증 극복 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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