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퍼즐 - 기술봉쇄의 역설, 패권전쟁의 결말
전병서 지음 / 연합인포맥스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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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대한민국은 올해 풀어야 할 두 가지 난제를 짊어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2025년을 출발했다. 내적으로는 위헌·불법 비상계엄에 따른 정국 안정화가 필요했다. 비상계엄에 따른 극도로 혼란한 국내 정치 상황은 탄핵·파면으로 정치적 난맥상을 보였고, 진보·보수 지지층의 극한 대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보수 진영은 일부 극우 세력의 극단적 개입에 의한 법원 난동 사건으로 치닫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실추된 국격 문제는 뒤로 하고, 미국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 폭탄은 우리의 경제가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로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다. 또 8월 삼복 더위 중인 한반도는 날마다 '폭염 경보' '열대야' 등 폭염 신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한마디로 한반도가 펄펄 끓는 가마솥 위에 걸쳐 앉은 형국이다. 

우선 국내 정국은 대선 결과 이재명 정부가 공식 출범함으로써 다소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물가 폭등, 자영업 등 내수 부진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 국내 경제의 먹구름은 여전히 안갯속을 걷는 듯하다. 특히 새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 불확실성은 지워지지 않아 상당 기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공통된 의견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으로부터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불확실성을 높여 주는 요인으로 작동할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7월 말 관세 협상은 끝났고, 다소 아쉽지만 협상단의 노력과 기업들의 자발적 협상 지원이 있었다는 점은 우리 경제 자산으로 볼 수 있어 최소한의 만족이 된다는 정부 측 발표는 조심스런 협상 발걸음을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보여 불안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점은 국민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 결과, 미국이 우리나라에 8월 1일부터 부과하기로 예고했던 상호 관세 25%는 15%로 낮아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월 30일 오후 5시(미국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끝에 한미 간 관세협상을 타결했다고 밝혔다. 6월 새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주축으로 기획재정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국무조정실 등이 8월 1일 상호관세 유예시한을 앞두고 관세 인하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으며,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상호호혜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됐다."(정책 브리핑)


이 책 『차이나 퍼즐』은 저자 전병서가 미중 기술패권전쟁의 한가운데서 해답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차이나 퍼즐'이라고 만든 조어이다. 출판사 측 소개글에 따르면 우리의 OEM 공장이었던 중국, 이젠 그 머슴이 돈 벌어 손님이 됐다. 심지어는 밉상에 가까운 ‘손놈’ 짓도 한다. 극중(克中)하고 싶다면, 중국에 서 돈을 벌고 싶다면 지중(知中)이 먼저다. 시진핑과 트럼프, 두 강대국 리더의 치열한 맞대결, 미국의 전례 없는 기술봉쇄와 그 이면에 숨겨진 역설,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패권전쟁의 결말까지. 지금 '차이나 퍼즐'을 풀어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한국은 중국을 피하는 방법이 아닌 즐기는 방법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집필 취지를 밝힌다. "중국이 싫다고 피할 수만은 없다. 지정학적 숙명 때문에 2,000여 년간 마주보고 있는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돌아누우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나라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기술, 중국의 재료와 시장을 가지고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 대한민국에게 미·중 양국에 걸치는 양다리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p.5)

저자는 이에 따라 AI 시대 반도체를 잡는 자가 권력을 잡는다고 말한다. 한·중 간에는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반도체 기술'의 인연이 있다고 밝힌다. '제조 시대 산업의 쌀은 철강'이었지만 'AI 시대 산업의 쌀은 반도체'라고 지적한다. AI 시대 석유는 데이터라고 하지만 데이터에서 IP를 뽑아내려면 반도체가 필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첨단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은 기술은 있지만 공장이 없어 문제고, 중국은 공장은 있지만 기술이 없어 문제다. 한국과 대만은 첨단반도체기술도 있고 공장도 있다. 이 첨단반도체를 두고 미·중이 경쟁을 벌이면서 대만해협이 가장 위험한 3차 대전의 발원지가 될 가능성이 있고, 대만해협 위기는 한국의 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전 세게 AI 시대의 석유의 92%가 대만해협을 타고 흐르고 있다. AI 개발에 필요한 최첨단반도체의 92%를 대만의 TSMC가 생산하고 있고 나머지를 한국이 생산한다. 미사일, 드론, 로켓, 머스크의 스타링크 모두 첨단반도체칩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대만을 잃으면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정보의 원시시대로 회귀하고 중국은 대만을 먹으면 단숨에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선두로 올라선다. 만약 대만이 폭격당하면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반도체 공급국으로 부상하지만 대만전쟁은 바로 한국 반도체 공장 파괴와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을 막기 위한 한반도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은 저자는 강조한다.

트럼프의 동맹 압박에 한국은 관세폭탄과 주한미군 철수를 가장 두려운 경제안보의 후폭풍으로 걱정한다. 미국의 안보동맹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실익을 챙기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트럼프의 공포정치에 두려움에 떨거나 저자세로 퍼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의 관세폭탄은 전 세계를 상대로 다 하는 것이고 한국도 반도체와 배터리 투자를 무기로 협상하기 나름이다. 또한 주한미군 문제는 대만해협의 위기 상황 시 한반도 주둔 미지상군이 가장 신속하게 '대만의 반도체라인 방어'에 투입될 수 있는 '오 분 대기조의 역할'이 새롭게 생겼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터무니없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분담금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동아시아는 우·러, 이·팔전쟁에 이는 세계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중국 공격이 아니라 중국의 대만 공격이 언제일 것인가가 문제다.

이 책은 모두 8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제조의 덫’에 빠진 미국, ‘달러의 덫’에 빠진 중국〉, 2부 〈트럼프노믹스 2.0에 대한 7가지 대예측〉, 3부 〈25년간 지속되어 온 ‘중국 위기론’의 진실〉, 4부 〈차이나 퍼즐, 중국이 과학기술에 강(强)한 이유〉, 5부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승자는?〉, 6부 〈반도체전쟁 시대, 대만문제는 한국문제다〉, 7부 〈다시 풀어야 할 차이나 퍼즐〉, 8부 〈향후 5년 새정부의 바람직한 대중 전략은?〉 등이다. 각 부는 4~6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각 부의 주제에 수렴된다.


트럼프 2기는 시작되자마자 전 세계에 관세폭탄을 들고 위협했다. 세계 경제는 비상이 걸렸고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트럼프 1기 때는 단순히 '미·중 무역전쟁'이란 타이틀로 정의될 정도로 미·중의 패권 경쟁이라고 진단되었다. 세계 각 나라도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트럼프의 1기가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예상(?)대로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고 미국의 경제 정책은 바뀌었다. 긴장되었던 세계의 각 나라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조 바이든의 건강이 악화돼 재집권 가능성이 낮아지자 민주당은 서둘러 현직 부통령 카멜라 해리스를 내세웠으나 트럼프에 대권을 내주고 말았다. '위대한 미국'을 기치로 내건 트럼프의 선거 전략과 미국 백인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관세, 미국 내 직접 공장 설치 등을 패키지로 묶어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결국 트럼프는 당선됐고, 그의 선거 공약대로 중국과의 패권 전쟁은 물론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폭탄을 퍼부었다. 

그렇다면 트럼프 2.0은 중국을 좌초시킬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는 '트리핀의 딜레마*'다. 달러를 세계에 공급해야 미국의 영향력도 세계경제도 커지는데 이 과정에서 무역수지 경상수지의 적자는 필연이고 무역수지의 적자는 미국의 고용에 영향을 준다. 트럼프 대통령과 스태프들은 달러 패권 강화와 제조업 부활,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글로벌 무역·금융·안보 체계 개편을 추진하고자 '마러라고 협정(Mar-a-Lago Accord)을 구상했다. 소위 트럼프식 '트리핀의 딜레마' 극복 방안이다. 

미국의 기축통화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고 '관세(무역적자 해소)와 환율 조정(강달러 관리) 조합'을 통해 미국의제조업을 부활시키고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관세폭탄 전략을 트럼프 전략의 핵심 도구이자, 환율 조정 및 안보비용의 조정을 강요하는 패로 쓴다는 것이다.


*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 미달러의 기축통화 역할로 인해 미국 국제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1950년대 당시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n)이 주장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트리핀의 패러독스’라고도 불린다.(두산백과)


2024년 중국은 3,143만 대의 자동차를 구매해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부상했고 전기차도 1,223만 대 구매하며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미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1,646민 대, 전기차 판매량은 146만 대였다. 코로나 불황에도 2023년 중국은 전 세계 명품의 38%를 구매했고, 전 세계 벤츠 판매량의 36%를 구매하는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했다. 미국은 14%였다. 반도체 소비 역시 전 세계 시장의 31%로 미국의 26%보다 크다.

한국은 자동차, 핸드폰, 화장품, 유통업, 커피 프랜차이즈까지 중국에서 되출되면서 중국 위기론에 힘을 실었지만 미국의 GM과, 포드, 테슬라, 애플, 에스터로더, 윌마트, 스타벅스는 중국에서 여전히 장사하고 있고 퇴출했다는 예기도 없다. 미국 정부가 나서서 첨단기술과 공장은 중국에 가져가지 말라는데도 세계 전기차 1위인 미국의 테슬라는 중국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전기차 공장을 지었고 FSD(Full Self Driving)까지 중국에서 테스트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치명적 경쟁력 약화와 전략적 미스를 중국 시장의 폭망으로부터 치부하며 '감정경제학'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한국의 대중국 관점의 냉정한 현실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과 우리의 관계가 철저히 서로의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이면 될 뿐 이념이나 정책의 관계는 끼워넣어 입지를 좁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돈에는 감정도 애국심도 없다. 돈 되면 들어가는 것이고 돈 안 되면 나오는 것"이란 말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중국에서의 한국 기업 퇴출을 두고 중국 위기론을 떠들며 중국 망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 1972년 개봉된 영화 '대부(The Godfather)'의 명대사를 인용한다. "돈을 앞에 두고 적을 미워하지 마라". 분노하면 판단력이 흐려져,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한국이 명심해야 할 말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이와 함께 6.25 때 중국과 서로 총부리를 맞댄 한국은 중국과 사상의 동지, 이념의 친구였던 적이 없다. 단지 지난 30여 년간 중국은 기술과 자본이 필요했고 한국은 생산공장과 시장이 필요해 만났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국가로 인식하고 복잡한 퍼즐로 바라본다. 중국에 대한 시선을 여러 각도로 분석해 하나하나의 퍼즐 조각을 완성된 그림으로 맞춰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저자 스스로의 중국 현장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실질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조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중국을 경제, 정치와 문화를 각각 이해하고 철저히 분석해 맞춰 들어가고 그들 고유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충분한 경험과 통계 등을 활용해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기존 미국이나 서구 중심의 시선으로 보고 오해를 낳기보다 중국과는 철저히 비즈니스 개념으로 접근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현실적 방안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의 GDP 성장률와 국민의 삶의 질이 골고루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국영기업 중심의 비효율, 통계 수치 왜곡, 내부 부채 문제 등을 통해 중국 경제의 이면을 파헤친다. 중국이 실제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지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정권의 정책 방향이 단순한 경제 성장보다는 ‘체제 수호’와 ‘질서 유지’에 더 집중하고 있는 점도 저자는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진핑의 중국 내 경제 정책의 변화와 한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지금 중국은 역사적 경험, 지도자의 정치적 철학, 민족주의와 중화사상의 부활, 그리고 디지털 통제의 강화 등은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저자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중국을 평가하고 '차이나 퍼즐'을 꿰맞추려는 거의 모든 시도는 실패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 


중국은 모방이 혁신을 낳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나라다. 베낀다고 욕했지만 돌아서면 베낀 것을 넘어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원작자의 뒤통수를 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다.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을 보는 ‘관점의 수정’ 없이는 절대 중국을 못 이긴다.(p.335)


저자 : 전병서


‘반도체 산업과 중국 경제(Chip & China)’에 관심이 많고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세계 제패를 해야 한국이 살고 미ㆍ중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당당하게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의도 금융가에서 17년간 반도체/IT 애널리스트로 일했고, 그 후 18년간 중국 경제와 중국 산업을 연구했다. 금융가에서 반도체/IT 애널리스트로 일할 때에는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펀드매니저로부터 베스트라는 찬사를 받았고 애널리스트 업계에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다.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대우증권 상무와 한화증권 전무를 지내면서 리서치본부장과 IB본부장을 역임했다. 중국 베이징 칭화대에서 석사, 상하이 푸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중국 금융 시장과 중국 성장 산업이고 중국 반도체/IT 산업에 관심이 많다. 중국 칭화대, 베이징대, 푸단대의 CEO 과정에서 공부하면서 중국의 다양한 산업 CEO들과도 교류했다. 중국에서는 상하이한화투자자문, 상하이 중국경제금융연구센터에서 일했고 코트라 상하이 차이나데스크 자문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기술패권시대의 대중국 혁신 전략』, 『돈의 흐름을 꿰뚫는 산업 트렌드』, 『중국 금융산업지도』,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중국 100년의 꿈, 한국 10년의 부』, 『한국의 신국부론, 중국에 있다』 등이 있다.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학생들에게 중국경제론, 중국자본시장론, 중국 비즈니스 사례 분석, 국제금융 이슈 분석, 글로벌 공급망 분석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대학과 기관의 CEO, CFO, E-MBA 과정에서 중국 경제와 금융에 관한 특강을 하며 중국 진출 기업에 경영 자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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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회로 가는 길
김상준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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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단 한 번의 민주화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 책은 민주주의 시민 사회의 끊임없는 노력과 이를 위한 시민의회 제도적 정착에 더 노력을 기울일 때라고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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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회로 가는 길
김상준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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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시민의회로 가는 길』의 '시민의회'란 개념은 독자로서는 다소 생소하다. 이 때문에 저자 김상준이 20년 간 시민의회에 몰입했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지만, 독서 욕구는 더 올라간다. 얼핏 짐작건대 '국회'와 다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국회가 영어 표기로는 'National Assembly'라는데 시민의회는 'Citizens’ Assembly'이라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역할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다는 게 독자의 제1 느낌이다. 국민과 시민의 차이일 뿐, 구체적으로 다른 의미인가? 

저자는 〈서문〉을 통해 '시민의회'로 가는 길을 20년 동안 매진해 온 저자 자신의의 소회와 과정을 짧게 밝힌다. "나에게 시민의회로 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았던 길이었다. 없던 길을 혼자 만들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몇몇 길동무가 생겼다. 어느 날부터인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점차 많은 사람들이 같이 걷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시민의회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찌 확신할 수 없었다. 20년의 세월이다. 회의와 낙담의 순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목표 도착을 확신한다. 이미 부분적으로 도착했다. 더욱 훌륭한 완성을 기대하고 있다. 시작했을 때 막연했던 시민의회가 더 이상 아니다. 이미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시민의회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실험이 이뤄졌다. 공론화위원회도 그중 하나다. 이제 그보다 더 훌륭하고 완전한 시민의회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p.5) 

시민의회는 아직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지 않은 개념의 단어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백과사전을 뒤져도 '시민의회'라는 단어는 등재되지 않았다. '입법의회' '국민의회' '의회주의' '시민사회' '의회주권' '의회주의' 등은 꽤 자세하게 다뤘지만 '시민의회'라는 말은 없다. 이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민의회의 개념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 저자 김상준은 시민의회가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나아가 세계 민주주의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시민의회는 다양한 문제를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해 무작위로 선출된 시민들이 숙의와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제도다. 저자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시민의회 도입을 최초로 제안하고, 그 이론적·실천적 토대를 마련해 왔다. 선거와 정당의 정상화만으로는 깊이 뿌리내린 독재의 관행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저자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의회라는 방파제를 구상해 낸 것이다.


저자는 시민의회를 통해 반민주적 퇴행을 막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주장은 당시 '한국에 민주주의가 너무 많아져서 문제'라고 했던 기득권층의 주장과 정반대의 진단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격변하는 현재에 대한 기록에서 시작해, 시민의회론의 태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구조로 편집되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이를 통해 독자는 한국 정치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는 동시에, 한국에서 시민의회론이 어떤 시대의 요청 속에서 어떤 문제의식에 기반해 발전해 왔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책 소개글에 적시하고 있다. 『시민의회로 가는 길』은 정치학자, 공공행정 전문가, 정책 입안자, 시민운동가, 그리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든 독자를 위한 책으로, 민주주의가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 지금 이 시대의 필독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문〉에 따르면 1987년 한국 민주화의 핵심은 선거와 정당의 정상화였다. '선거와 정당의 정상화'란 한국이 서구 민주주의에 비해 뒤떨어졌다는 사정의 표현이요 고백이다. 서구 사회는 이미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선거와 정당의 정상화'라는 말에 아무런 긴장감이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선거와 정당이 정상화되려면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와 정당조차 정상화될 수 없다. 오랜 세월 분단 군사독재와 비상계엄 통치에 고통받아 온 한국이기 때문에 그렇다.

깊이 박힌 독재의 뿌리를 뽑아내는 '정상화'가 단 한 번의 민주화로 이뤄질 수 없다. 독재의 뿌리와 관행이 너무 깊고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민주화는 지속되어야 하고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 쓰러질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에 더욱 힘차게 페달을 밟는 힘이다.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위해 시민의회가 필수적이다. 이 점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야말로 시민의회가 장식품이 아니라 먹고사는 필수품이다. 서구 민주주의보다 더욱 그렇다.


시민의회는 그간 누적된 공론화 실험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안정적 법적, 제도적 기반 위에서 장기적, 숙의적, 합의적, 미래지향적 관점의 대안적 정책결정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우수한 제도이다. 특히, 최근 불법 계엄과 내란 사태로 인해 초래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온전히 극복하고 한 단계 질적으로 도약한 K-민주주의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서 〈시민의회법〉과 〈국민주권위원회법〉의 동시 제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p.24)


이에 따라 이곳 대한민국에서야말로 선거 민주주의는 참여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 결사체 민주주의로 확장돼야 한다. 정당은 시민사회에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명실상부하게 시민이 주인이 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정당이 회의의 대상이 된 서구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정당이 제대로 성장한 적도 없다. 따라서 다시금 시민의회는 민주주의의 정상화, 발전, 강화의 중요한 축이다. 이렇듯 민주주의의 발전이 지속되어야 민주주의의 기본이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한국의 시민의회론은 발아했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10년까지도 한국에서 '시민의회'란 학계에서 단지 몇 사람이 제안했을 뿐인,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별로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아이디어였다. 관심도 동참도 약했다. 그러다 2004년 시행되었다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의 시민의회 실험이 2010년 한국 학술지에 최초로 보고되었다. 이로써 시민의회가 단지 아이디어가 아닌 현실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시민의회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은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혁명 때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때 학계의 좁다란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야말로 '비약'이었다. 박근혜 탄핵 열기를 피하기 위해 당시 정부 여당에서 '물타기' 용으로 개헌론을 꺼내자 촛불 민심에는 큰 위기감이 감돌았다. 여권 개헌론의 기만성은 분명하지만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국회는 탄핵에 집중하고, 개헌은 시민의회가 하면 된다'는, 저자 자신을 비롯한 몇 사람의 주장이 언론과 촛불 민심에 급속히 확산되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 너무나 우연찮게 시민의회를 통한 개헌이 실제로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일부 기성 언론도 아일랜드 시민의회의 진행 상황을 활발히 보도했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시민의회는 개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일순간에 크게 부각되었다. 시민의회를 통한 개헌이라는 요청이 강해졌기 때문에 2017년 대선에서 세 후보(문재인, 안철수, 심상정)는 시민의회형 '국민참여개헌'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반면 윤석열 정부 시기는 시민의회의 진전이 멈춰 섰던 어둠의 시간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제 명백해졌지만, 시민의회만이 아닌 전방위적인, 총체적인 어둠의 시간이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주권’이라는 화두가 한국 사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라고 명명한 것도 이런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 결과다.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정부의 의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다. 시민의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층 강화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서, 저자 김상준 교수는 시민의회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작동 중인 제도임을 상기시키며, 한국 민주주의의 도약을 위해선 시민의회의 제도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시민의회를 제도화하여 “일반 국민이 중요한 공적 사안에 대한 사회적 숙의와 결정 과정에 유의미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주권재민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고, “한국의 민주주의 도약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시민의회는 전국 차원의 중요 의제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제까지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해 무작위로 선출된 시민들이 숙의와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제도다. 이런 시민의회는 ‘국민주권위원회’를 통해 공정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저자는 시민의회가 독재와 선동, 가짜뉴스가 발붙이지 못하고, 숙의와 경청, 통합의 언어로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합의의 장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것이 기존 대의 민주제의 한계와 결함을 보완하고, 정당정치가 미처 다루지 못하는 현실의 절박한 문제들?기후위기, 남북관계, 경제 양극화, 인구 절벽, 교육 붕괴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임을 이 책에서 역설하고 있다.


"그동안 다루어진 시민의회의 의제는 선거법 개정, 헌법개정, 기후위기 대응, 과학기술 정책, 교육 정책, 의료보건 정책, 주요 외교 정책 등 매우 광범하다."(p.101)


저자는 책을 통해 시민의회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시민의회, 아이슬란드의 헌법개혁 시민의회, 헌법개혁에 성공한 아일랜드 사례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동벨기에 의회, 벨기에 브뤼셀, 프랑스 파리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과 지역에서 상설 시민의회를 제도화하였고, 시민의회 실험을 확대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의 민주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보완하는 시민의회 모델 역시 큰 주목을 받으며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회는 이미 현실이고, 성숙, 확산의 경로를 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시민의회 제도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시민의회법 제정안」과 「국민주권위원회법 제정안」 등을 통해 시민의회의 입법화를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한국에서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민의회 실험이 있었지만, 이는 법적·제도적 기반 없이 추진된 것으로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간 누적된 실험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법적?제도적 기반을 구축하자고 말한다. 이런 시민의회는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회가 정치적 갈등이나 이해관계로 인해 다루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장치로 기능함으로써 국회의 결정과 입법 기능을 더욱 정당화하고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 시민의회론은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보다 전투적이고 절박하게 성장해 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현대사의 굵직한 위기와 사건들 속에서 발아한 한국의 시민의회론이 K-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집약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깊이 박힌 독재의 뿌리는 여전히 강고하고, 독재 회귀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단 한 번의 민주화로 완성되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위태로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시민의회가 필수적이란 뜻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길이 엄연히 존재한다. 한 길은 민주주의를 지우고 어두운 독재의 과거로 가자고 한다. 배제와 차별과 증오의 언어를 구사한다. 다른 길은 확장된 민주주의의 미래로 가자고 한다. 경청과 대화와 통합의 언어를 구사한다. 이제 대한민국이 어떤 길로 나가야 할까. 너무나 명백해졌다.”(p.64)


이 책은 “배제와 차별과 증오의 언어를 구사”하는 “독재의 과거”를 버리고 “경청과 대화와 통합의 언어를 구사”하는 “확장된 민주주의의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고 우리에게 제안한다. 시민의회로 가는 길은 바로 민주주의의 미래로 가는 길이고, 통합으로 가는 길이라고 저자가 말한 이유다. 지금 이 땅의 민주주의는 중요한 시험대 위에 섰다. 오늘의 고민과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시민의회로 가는 길』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주권을 튼튼히 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2024년 12.3 비상계엄, 탄핵, 그리고 시민의회〉는 격동의 정치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한 ‘빛의 혁명’의 기록이다. 첫 번째 글 「빛의 혁명을 기념하는 대한국민 권리장전」은 내란 위기를 이겨낸 자랑스런 K-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집약한다. 「시민의회법 제정안」과 「국민주권위원회법 제정안」은 시민의회 제도화를 위한 기본 틀을 제시하며, 시민의회 논의의 핵심을 담았다. 2부 〈어둠 속에서 길 찾기〉는 윤석열 정부 시기, 시민의회 논의가 멈춰 섰던 어둠의 시간에 관한 기록이다. 이 시기 저자는 인류 문명과 민족의 미래를 물으며, 시민의회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깊은 성찰을 이어갔다.

3부 〈2016~2017 촛불혁명과 시민의회〉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에서 시민의회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크게 높아진 시기에 쓰였다. 촛불혁명은 한국에서 시민의회가 개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시기에 ‘공론화위원회’가 설치되었고, 대통령 헌법개정안이 시민의회 방식을 참고하여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시민의회는 한국에서도 현실이 되었다. 4부 〈한국에서 시민의회론이 태동하다〉에는 시민의회를 현실화하기 위한 이론적·철학적 근거 마련에 주안점을 둔 저자의 초기 연구들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시민의회의 발상을 숙성시켰던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국회를 대체하는 시민의회’가 아니라 ‘국회를 보완하는 시민의회’다. 실제 외국에서 소집된 시민의회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의회는 선거법이나 헌법 조항 수정을 최적의 조건에서 논의하여 합의를 이루어 주는 단위이지, 그렇게 도달한 합의 내용을 직접 입법화하는 단위는 아니다. 시민의회에서 합의된 내용은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어 심의와 표결 절차를 거쳐 입법화된다. 그동안 시민의회에서 논의된 선거법 개정과 개헌 문제는 모두 의회 내에서는 원만한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문제들이었다."(p.231)


저자 : 김상준(金相俊)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이다. 시민의회론, 성찰윤리론, 중층근대론, 중간경제론, 비서구 민주주의론, 후기근대론, 동아시아 내장근대론, 코리아 양국체제론, 내장적 문명전환론 등의 새로운 학술 담론을 제기해 왔다. 주요 저서로는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미지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를 구상하다》,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진화하는 민주주의: 아시아ㆍ라틴아메리카ㆍ이슬람 민주주의 현장 읽기》, 《코리아 양국체제: 촛불을 평화적 혁명으로 완성하는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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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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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처럼 지내기로 결심했다."(p.10)

이 소설 작품 『젊음의 나라』의 첫 문장이다. 저자 손원평은 이미 한국문단에선 중견 작가에 속할 만큼 역량을 보인 몇 작품이 평단의 호평을 끌어냈다. 이번 작품은 미래 한국, 저출생 고령화가 현실이 된 ‘노인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건강한 '젊음'이 제대로 안녕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저자의 질문이다. 사실 이 소설은 근미래의 판타지 소설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을 반영해 썼을 뿐 작품 시점은 근미래라는 이야기다. 더 쉽게 표현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회 부조리나 사람들의 '부'에 대한 인식은 자본주의의 끝까지 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고령화, 저출생, AI의 일상화, 급격한 기술 발전, 극단적 혐오와 차별, 늘어나는 외국인 이민자, 존엄사 등-가 현실이 된 미래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주인공 유나라의 1년 간의 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저출생 고령화의 여파로 노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미래 한국. 스물 아홉의 주인공 나라는 자기보다 더 젊은 사람들과 기계에게 대체되는 삶이 버겁다. 몇 안 되는 좁은 인간관계도 순탄치 못하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는 단 3분의 통화도 어색한 사이이고, 룸메이트 엘리야는 이주 2세대라는 ‘공인된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무기 삼아 나라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외로운 현실 속에서 나라는 유년 시절의 빛이었으나, 이제는 연락조차 닿지 않는 민아 이모의 행방을 늘 궁금해한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게도 꿈은 있다. 바로 시카모어 섬에 정식으로 입도해 배우가 되는 것이다. 카밀리아 레드너라는 묘한 인물이 주축이 되어 남태평양 어딘가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시카모어 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퍼 리치 시니어들이 호화로운 서비스를 누리며 노후를 보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젊은이들 역시 만족스러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유토피아다.


그러나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이야기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딘가 꼭 존재해야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동시에 반드시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p.289)

어느 날 나라에게 우연히 나라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국내 최대의 노인 복지 시설인 유카시엘에 채용되는 것이다. 유카시엘은 시카모어 섬과 업무 협약을 맺고 있어, 유카시엘에서의 경력은 시카모어 섬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유카시엘에 상담사로 들어가 다양한 시니어를 만나게 되는 나라. 과연 그녀는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 희망의 섬 시카모어에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소설 『젊음의 나라』는 인구 노령화가 현실이 된 미래 한국을 그리고 있다. 절대다수의 노인과 소수 그룹인 청년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다. 재력이 차고 넘치는 전 세계의 기업가나 셀럽들은 카밀리아 레드너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남태평양의 시카모어 섬에서 젊은이들의 특급 대우를 받으며 꿈같은 말년을 보낸다. 대한민국의 경우 대부분의 노인들이 정부 지정 업체인 민간 재단 유카시엘에서 운영하는 수용 시설에 들어간다. 유카시엘은 유닛 A부터 F까지 등급이 매겨져 운영되며, 각 유닛에 합당한 재력을 갖춰야 입소할 수 있다. 특히 유닛 F의 노인들은 노동의 의무를 져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퇴출된다. 물론 이러한 노인 수용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를 알아서 건사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노인과 대비되는 청년층의 삶도 이 소설에서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포인트다. 


죽음의 시점을 미리 예약하지 않고 삶이 허락한 만큼 살다 가겠다는 노인들을 비난의 눈초리로 보는 시선이 팽배해졌다. 속된 말로 ‘빨리빨리 죽어버리지, 왜 살아있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노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p.180)


불안한 오늘날의 청춘들과 많이 닮아 있는 나라, 노인 요양 병원의 간호사이면서 노인 혐오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주민 2세대 엘리야, 고액 연봉을 받으며 선택사(신원이 확실하고 재력이 충분한 노인들에게 합법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한 제도)를 시행하는 엘리트 의사 재희, 남북 개방 후 북에서 내려온 불법 선택사 브로커 수현까지. 노인의,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이 소설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세대 간의 대립 뿐 아니라, 가족간의 관계도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스물 아홉의 나라에게 가족은 사이가 어색한 엄마 뿐이지만, 어린 시절 나라에게는 배우라는 꿈을 갖게 해주고 세상을 알게 해준 ‘알리콘(날개 달린 유니콘)’ 같은 민아 이모가 있었다. 민아 이모와 나라, 나라의 엄마인 유진은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나눈다. 그러나 진짜 가족인 아빠가 나타나면서 일종의 유사 가족원이었던 민아 이모는 자취를 감춘다.

이 소설 『젊음의 나라』는 가족이 무엇인지를 묻고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짚으며, 진실한 관계의 회복이 미래 사회에 직면하게 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시대를 초월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족 간의 갈등과 극복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소설은 고령화가 극단으로 치달은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현재 존엄사나 안락사로 불리고 있는 ‘선택사’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는 미래의 선택사 제도가,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을 보장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적 효율과 비용 절감을 위해 설계된 것임을 암시한다. 

과연 인간의 죽음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그 안에서 선택이라는 이름의 권한을 주는 일이 진정한 존엄일 수 있을까? 『젊음의 나라』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보다 불편한 구조를 낱낱이 드러내 보임으로써 독자 스스로가 윤리적 판단과 성찰의 장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선택사를 단지 미래 사회의 가상 설정 가운데 하나가 아닌 현실과 관련지어 깊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나라로 하여금 유카시엘의 모든 유닛을 경험하게 한다. 이는 노인에 대한 나라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나라가 얼마나, 어떻게 각성했는지 시카모어 섬의 채용 면접에서 나라의 입을 통해 직접 털어놓게 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준다. 저자의 의도된 서술과 유기적 구성을 통해 독자들은 나라의 고백으로 노인과 청년의 세대 갈등, 나아가 인간 대 기술, 자국민 대 이주민,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계급 갈등 같은 사회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 뿐만 아니라 설령 디스토피아적 색채가 짙은 미래일지라도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말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젊음의 나라'는 완전한 낙원이 아닌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으로서의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작품 속 시카모어 섬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지만,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어우러져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상’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즉, 시카모어 섬은 분명히 불완전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인간을 돌보는 방식, 타인을 향한 연대, 예술, 그리고 꿈이 존재한다. 작가는 작품 속 유토피아를 완성형으로 제시하지 않고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둠으로써, 불완전함 속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한때는 모든 것을 지우고 그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뿌리가 이곳에 단단하게 박혀있음을 안다. 그러니까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가지를 뻗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이 아름다울지 추악할지, 내 선택이 다행스러울지 후회로 남을지 모르지만.(p.283~284)



『젊음의 나라』는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내면의 고백과 외부 세계에 대한 관찰을 교차시키는 서사적 실험을 감행한다. 일기라는 장치는 작품에 일관된 시간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어로 나라의 감춰지지 않는 내면을 독자와 직접 접촉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나라가 날마다 기록하는 일상은 단순히 개인적 감정을 토로하는 공간을 넘어 한 청년이 겪는 시대적 단면의 기록으로 발전한다. 다시 말해, 나라의 고단한 현실이 피로감이나 환멸의 정서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향한 간절한 희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라의 일기는 점차 일종의 증언이 돼간다. 이에 따라 청년 세대가 감내하는 노동의 불안정, 기계에 대체되는 인간, 가족이나 세대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각성은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공감하고 유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 손원평의 소설은 사회적 부조리나 한계에 대해 "위로보다는 응원"을 보여준다. 『젊음의 나라』가 노인과 젊은이들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갈등과 부조리한 삶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 방향을 제시한다. 삶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위로보다는 응원으로 좀 더 활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동력을 주는 것이다. 

저자의 전작 『튜브』에는 계속된 사업 실패에 이어 자살 시도마저 실패한 남자가 등장한다. 한 번은 너무 추워서, 한 번은 어이없는 실수로 죽지 못한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삶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은 무엇일까. 손원평 저자는 일면식 없는 무명의 누군가를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위로는 다시 일어날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응원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죠." 나락으로 떨어진 젊은이의 재기의 결심, 새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용기를 준다. 독자의 귀에 아직도 생생한 저자의 말은 이 소설 『젊음의 나라』에서도 계속된다. 젊은이들을 향한 응원은 활기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독려하는 것과 같다. 그가 제시하는 사회 비평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메시지다.


응원과 용기라는 작품의 특징은 저자를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 작가로 일약 스타덤에 올린 첫 작품 『아몬드』에서부터 이미 내재돼 있다. 『아몬드』는 감정이 없는 소년이 겪는 우정, 성장, 사랑, 인류애를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지니고 있는 ‘감정’이라는 소통의 도구가 얼마나 버겁고 동시에 소중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윤재가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을 거쳐 여러 명의 등장인물, 심박사, 곤이, 도라와 이어져가며 성장하는 여정은 얼어붙은 독자의 마음을 녹이고 공감의 따뜻함을 되새기며 독자의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 것이다.

감정 없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끄는 윤재의 독백 안에서, 독자는 윤재가 느껴야 할 오만가지 감정을 대신 느끼게 된다. 감정의 무게와 오묘함, 성장의 아픔과 경이로움 등이 휘몰아치는 서사 안에서 독자를 압도하며, 현실에서라면 다만 문제아이자 피하고 싶은 두 소년인 윤재와 곤이를 독자는 오롯이 이해하고 바라보게 된다. 감정이 없기에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자라 나가는 윤재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쌉쌀하고 달콤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느끼며 감동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예언서다! (중략) 소설 속 미래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상 현실을 담고 있지만 놀라우리만큼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다. 현재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변화가 지속될 경우, 더 자라난 우리의 자녀 세대가 살게 될 가능성이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를 통찰하고 비판하는 사람이다. 파국을 외치는 자신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져서 현재가 바뀌고 미래에 대한 자신의 예언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이 소설은 예언서로 다가온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추천사〉는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는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저자 : 손원평(孫元平)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2001년 제6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고, 2006년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너의 의미」 등 다수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첫 장편소설 『아몬드』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여 등단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아몬드』 『서른의 반격』으로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했다. 이외 장편소설 『프리즘』, 소설집 『타인의 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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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 그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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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열어보지 말 것』에서 가장 중요한 물상인 '상자 속 미니어처 왕국'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어릴 때 많이 읽었던 동화 속 세계를 그리는 소설 같은 느낌이다. 요즘은 우리가 읽었던 동화 중 상당수가 '잔혹 동화'였다는 사실이 동심의 세계를 와장창 깨뜨렸지만···, 판타지 소설로 멋진 세상을 그리는 것은 동심이 아직 남아 있어서일까? 여전히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관계 없다.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처럼 신비감은 오히려 증폭되니까.

이 소설 작품은 현실과 환상이 맞닿는 문턱에서 시작된다. 폭우 속에서 주운 상자 속 ‘미니어처 왕국’을 들여다보는 소년의 이야기부터 흡혈귀의 기억, 멈춰버린 평원, 기묘한 로봇과 불사의 약, 그리고 알 수 없는 대륙 너머로 떠나는 여정까지···. 세계관을 공유하는 소설 속 여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독립적인 서사를 품고 있지만 정교하게 맞물리며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시작은 작은 상자 하나이지만, 현실과 비현실, 관찰과 개입, 성장과 상실이라는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세계관을 밀도 있게 쌓아 올리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일본의 스타 소설가이자 이 작품의 저자 쓰네카와 고타로는 마치 정교한 축소 세계를 조립하듯 판타지적인 상상력과 심리적 섬세함을 오가며 다층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단순히 환상이나 탈출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계를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라는 평가는 이미 출판사 소개글에도 있다. 여섯 편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연결하는 서사의 조각들은 현실의 답답함을 해결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관찰자’로 머물 것인가, ‘변화’의 일원이 될 것인가?

이 책은 6장(章)과 다섯 개의 '이야기의 조각'이 연속적으로 되풀이되며 전개된다. 이러한 형식은 신비감이나 환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소설의 끝까지 이어 나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 책 표지는 물론 앞 부분의 일러스트는 환상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매우 간단한 표제어 '열어보지 말 것' 역시 신화적 요소와 맞물리며 궁금증을 한껏 끌어 올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여섯 개의 장은 〈상자 속 왕국〉, 〈스즈와 긴타의 은시계〉, 〈단시간 접착제〉, 〈통찰자〉, 〈내추럴로이드〉, 〈끝없는 대륙, 불멸의 야차〉라는 제목으로 더욱 신비로운 느낌이다. 각 장의 끝 부분에 이어지는 다섯 개의 '이야기의 조각' 역시 각각의 제목을 갖고 있다. 「흡혈귀의 여행」, 「정지된 평원」, 「가이다 사이이치로의 아침」, 「팬레터」, 「땅끝에서 미지의 세계로」 등이다. 

소설은 작고 평범한 상자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소년은 어머니를 잃었던 어느 폭우의 날, 진흙더미 속에서 나무 상자를 하나 줍는다. 그런데 그 상자 속에는 정교하게 움직이는 세계가 하나 존재한다. 숲과 마을, 사람, 성, 그리고 용과 흡혈귀까지. 미니어처 왕국처럼 보이는 그 세계는 실제처럼 살아 숨 쉰다. 처음에 단순한 관찰의 대상에 불과했던 그 세계는 점차 소년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고, 곧이어 다른 인물 ‘에카게 구미’를 통해 진짜 전환점을 맞는다. 과 연… 우리는 상자 속 세계로 들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서사를 풀어낸다. 그리고 다섯 개의 조각 이야기들이 이 모든 서사를 엮어 하나의 세계관으로 완성해 낸다. 각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읽히나 서로의 파편을 반사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구성한다. 독특하면서도 유기적 구성이다. 특히 상자 속 세계의 흥망과 혁명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마치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조나 윤리, 권력을 반영하는 듯하다. 어쩌면 저자가 현실감을 불어넣기 위해 집어넣은 듯하다. 일본의 스타 작가이자 이 소설의 저자 쓰네카와 고타로는 이 모든 것을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관찰만 하던 인물이 결국 변화에 개입하고, 상자 속 미니어처 왕국은 더 이상 모형 세계가 아닌 거대한 서사의 무대로 확장된다.


이 소설 작품은 작은 것을 열었을 때 일어나는 세계의 균열과 진화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진정한 울림은 단지 환상적인 설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책의 제목은 ‘열지 말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곧 알게 된다. 상자를 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결국 모든 이야기는 작게 열린 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작은 상자로부터 하나의 세계가 태어나고, 발전하고, 붕괴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그려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정교하게 꾸며진 상자 속 모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권력 구조와 계급 질서, 저항과 억압이 자리한다. 미니어처처럼 보였던 세계는 곧 ‘살아 있는 왕국’이 되고, 우리는 그 흥망성쇠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 상자를 통해 문명 단위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환상 세계를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설계해 낸다. 판타지 장르에서 보기 드문 ‘세계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서사’다.

작품의 주요 전환점은 에카게 구미라는 인물을 통해 발생한다. 관찰자였던 주인공의 시선은 그녀의 행동을 따라 적극적인 개입의 방향으로 바뀐다. 현실에서 폭력과 외면에 시달리던 에카게는 상자 속 세계로 들어가 민중을 조직하고, 왕권을 몰아내며, 결국 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봉기에 앞장선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움직이지 못하니 불쌍하다, 삶을 살아갈 수 없으니 불쌍하다, 저들도 움직이고 싶을 텐데, 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시간이 정지된 자들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뇌파도 사고도 없으니까요. 저들의 입장에서는 고통도 불행도 없는 셈이죠.”(p.169)


붕괴는 우리가 흔히 비슷한 구조의 소설에서 보아왔던 영웅 서사라기보다 문명의 재구성에 가까운 느낌이다. 이와 유사한 감각은 마지막 장 「끝없는 대륙, 불멸의 야차」에서도 반복된다. “문명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세계의 종말이 가까워졌다. (중략) 음악도, 문학도, 건물도, 조각도. 유일하게 기계 생명치엔 시그마만이 그 모습을 관망했다.” 

이 문장은 인간이 구축한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걸 덤덤하게 바라보는 소설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 책은 결국 작은 상자 안에서 하나의 문명을 일으키고, 해체하고, 다시 쓰는 이야기다. 작가는 단지 인물을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자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멈추는지를 거시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상자는 유한적인 공간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구조이며, 그 안의 변화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비춘다. 왕국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는 작은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완성된 세계의 흥망사라는 것을 말이다.

이 책 『열어보지 말 것』은 표면적으로 이세계 판타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보는 자’와 ‘믿는 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 편의 단편에는 각기 다른 기묘한 물건이 등장한다. 

상자 속에는 친절한 흡혈귀와 용이 사는 왕국이 펼쳐진다. 시간을 이동하는 시계, 자아를 가진 로봇, 불사의 묘약. 신들이 잃어버린 왕국 속 물건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스위치를 가진 자만이 볼 수 있는 상자 속 미니어처 왕국. 연결된 세계관을 따라 맞춰지는 이야기의 조각! 미지의 세계, 끝내 단 한 곳을 가리키는 여섯 편의 모험담! 이 물건들은 단순한 환상 장치가 아니라 ‘인간’에게 경계 너머의 세계를 ‘보는 능력’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은 마냥 축복이라고만 할 수 없다. 오히려 질문에 더욱 가까울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무언가를 본다는 관점보다는 행동이 더 깊은 윤리적 혼란을, 그리고 세계의 질서를 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신의 선물처럼 보이는 물건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보았는가?’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보다는 '이세계'의 작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믿는 자들은 물건을 쟁취할 수 있고, 그것을 쟁취하여 '이세계'의 그림자를 본 자만이 흔들린다. 이 소설 작품이 무섭도록 집요하게 파고드는 건 보는 자, 그리고 믿는 자의 불안정한 마음이다.

그러니 결국 이 세계라는 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결핍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기묘한 물건들이 열어젖히는 세계는 환상적이라기보다 해석 불가능한 현실의 거울에 가깝다. 상자, 시계, 로봇, 묘약 등은 모두 인간의 결핍을 확대할 뿐이다. 기묘한 신의 물건들은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보는 자는 점점 말을 잃고, 믿는 자는 끝내 자신을 잃게 되는 이야기의 장이 여기에 있다. 

이 소설은 무언가를 초월하는 판타지적인 서사라고만 단정 지을 수 없다. '이세계'는 멀리 있는 미지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끝내 이해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뒷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장을 덮을 때쯤, 이 책은 질문을 한 가지 남긴다. “당신은 그것을 믿는가? 아니면 단지, 보고만 있는가?”


“시간은 지금부터 일주일 주겠네. 일주일이 지나면, 상금 이야기는 없던 일이 되는 거야. 그리고 그 뒤에 내가 자네의 방이든 어디든 상자를 발견한다면, 그땐 어떤 핑계를 대도 소용없어. 자네는 범죄자니까. 나는 ‘발견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보상을 할 테지만, ‘훔친’ 사람에게는 아주 지독하게 대할 셈이거든. 만일 경찰이 개입한다면 고등학교는 꿈도 못 꾸겠지. 자넨 퇴학이야.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하게. 모두가 불행해질 선택은 나도 바라지 않아.”(p.46)


“모든 생물이 죽음을 맞이하고 세계가 어둠에 잠기고 나면, 파괴의 혼돈기가 시작돼. 지각 변동이 일어나지. 땅이 갈라지고, 산은 무너지고, 생물은 이미 멸종되고 없는 상태에서 문명 역시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미증유의 지각 변동과 폭풍이 계속될 거야.”(p.401)


저자 : 쓰네카와 고타로


1973년 도쿄에서 태어나 다이토분카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여행을 하면서 프리터 생활을 했지만, 데뷔작인 『야시』로 '놀라운 발상 전환의 재능을 가진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2005년 제12회 일본호러대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2005년 데뷔작 『야시』는 제134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는가 하면 제12회 일본호러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짧은 소설은 호러 소설보다는 환상소설에 가깝다는 평가를 들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가 소설 속에 담고 있는 세계는 무엇인가를 사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기괴한 공간임과 동시에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신비로운 세계이다. 그래서 책을 놓은 후에도 그 기이한 세계에 대한 깊은 이미지를 각인하게 되는 그만의 상상력과 그것을 펼쳐내는 전개력에 독자들은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이야기, 그것을 통하여 미로처럼 헤메이는 우리의 욕망과 운명을 그려내고 있는 작가이다. 

스티븐 킹과 미야자와 겐지를 좋아하는 그는 두 번째로 쓴 장편 『천둥의 계절』로 2006년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가을의 감옥』은 2007년 제29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에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고독'을 테마로 다룬 작품집으로,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다층적인 시공간으로 확장되며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초제』는 제22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후보에 오르는 등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금색기계』는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거쳐간 미스터리 분야 최고 권위상인 2014년 제6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완벽하게 새로운 세계의 판타지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멸망의 정원』은 한 해 동안 출간된 문학 작품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에 시상하는 2018년 제9회 야마다 후타로상 최종 후보로 선정된 작품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놀라운 세계관을 보여주며, 평단의 인정과 독자의 지지를 동시에 끌어냈다. 대조적 세계관을 제시한 것은 물론, 긴장감과 감동까지 더한 전례 없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현재, 호주 여행에서 만난 아내와 함께 오키나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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