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 머릿속의 스위치를 끄고 싶을 때 보는 뇌과학 이야기 나는 왜 시리즈
홋타 슈고 지음, 윤지나 옮김 / 서사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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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홋타 슈고’는 뇌과학, 사회심리학, 언어학 등을 연구하며 다수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이유, 생각을 단순화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에 관한 설명을 세계적인 연구기관의 실험 결과를 정리하여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먼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이유와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을 다양한 학문 분야의 관점에서 알려준다. 그 후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 고민, 갈등을 벗어나 적절한 판단과 선택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냉철한 이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행동 지침을 알려준다. 더불어 과도한 생각 탓에 떨어진 집중력과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습관처럼 쓸 수 있는 생활 루틴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최신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뇌와 몸, 마음의 메커니즘과 안정감, 행복감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강 관리도 자세히 다룬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장씩 글을 읽으며 비슷한 사례를 찾고,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 그럼 저절로 머릿속이 비워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언뜻 든 생각으로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해 머릿속을 혼탁하게 하지 말고 맑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즉 명상 상태로 머리를 비우는 것이 뇌건강에 좋다는 말로 이해된다.



이 책의 주장은 '심플한 사고법'이다. 즉 짧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를 위해 이 책에서 '뇌과학이 선택한 45가지 단순 사고법'을 밝힌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 집중력을 끌어올리려면 하루 5분 책 읽기로 시작해야 한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기 어려워 자주 쉬어야 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만약 이 일이 반복되면 성취욕은 사라지게 되고, 무력감이 그 자리에 피어날 수 있다. 또한 현대인이 꼭 지켜야 할 자존감도 곤두박질칠 수 있다. 이건 비단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독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 책은 하루 5분만 읽어도 될 만큼 뇌과학을 짧고, 쉽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뇌과학의 재미에 빠져 책을 펼치자마자 한 번에 읽어내려갈 수 있지만,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도 된다. 성취 경험은 ‘뇌에 집중 회로를 만드는 요소’라고 한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며 성취감을 느끼고 의욕의 불씨를 살려 생각의 꼬리를 과감하게 끊어보기 바란다.



* 불안을 다스릴 줄 아는 자, 어떤 일을 하든 성공은 보장된다

모든 인간은 ‘불안’과 ‘부정성 편향’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는 생각이 많아지게 만들고 무력감에 실천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생각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 중 대부분은 불안감을 안고는 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사람들의 차이는 ‘불안을 다스릴 줄 아는 자’, ‘불안을 다스릴 줄 모르는 자’에서 온다.

불안은 인간이 평생 가지고 가야 할 마음의 기능으로 몸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다. 이러한 불안을 다스리는 좋은 방법이 있다. ‘불안해하지 말아야지’가 아닌 ‘불안과 함께 잘 살아야지’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생각의 전환은 뇌의 다양한 영역이 담당하고 있다. 뇌를 움직이게 하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본문에서 알려주는 행동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몸소 실천해보자.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어제보다 조금 더 앞을 향해 나아갈지 누가 알겠는가.

* 비즈니스, 인간관계, 학업 성취도를 좌우하려면 나만의 마인드 컨트롤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이 많으면 일의 능률이 떨어질뿐더러 불안감도 높아져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삶을 끌어 가려면 마인드 컨트롤을 갖추고 있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일하는 도중 생각이 많아지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나는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기보다 ‘커피숍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서거나 집 안에 비슷한 장소를 만들면 된다. 이것저것 시도해도 잘 되지 않는다면 롤 모델을 정하고 그 사람이 일하는 방식, 공부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넘겨짚는’ 마음이 샘솟는다면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별거 아니라고 뇌에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이외에 마인드 컨트롤의 원리와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책을 펼치기 바란다.



*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듯, 의외의 것에서 명쾌한 해답을 얻는다

이 책의 묘미는 의외의 것에서 해답을 주는 데 있다. 앞서 말했지만 생각이 많은 사람은 성취 경험이 적기 때문에 어떤 일에서든지 무기력할 수 있다.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처방은 생활에서 조금씩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세계적인 연구기관에서 실험하고 밝혀낸 결과를 토대로 루틴처럼 할 수 있는 생활습관을 길러보자. 10분 명상, 호흡하기, 스트레칭부터 나아가 SNS를 중단한다거나 미소를 지어보는 등 아주 의외의 것들을 하나씩 미션 클리어하듯 실행해보자. 이게 큰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 들겠지만, 본문에 적힌 뇌과학의 원리를 보면 의심은 사라지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감정을 가라앉히는 행동으로는 숫자를 세거나 세 번 심호흡을 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단, 미리 감정을 가라앉힐 행동을 정하고 항상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이를 ‘조작적 조건화’라고 한다. 뇌는 같은 조건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패턴화되는 성질이 있다. 즉, ‘감정이 흐트러졌을 때는 10을 센다=냉정해질 수 있다’는 공식이 생기면 효과적으로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 이것은 운동선수들이 경기 전에 하는 루틴과 같은 원리이다.(p. 98)



저자 : 홋타 슈고

메이지대학교 교수이자 언어학박사.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났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박사과정과 캐나다 요크대학교 오스굿 홀 로스쿨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언어학, 법학, 사회심리학,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융합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배움과 엔터테인먼트의 융합’을 라이프워크로 삼고 있으며, 연구 활동을 통해 얻은 지식을 다수의 일반서와 비즈니스서로 펴냈다. 잡지와 WEB에도 많은 글을 연재했다. TV 프로그램 ‘와이드! 스크램블’의 고정 패널이었으며, ‘세상에서 제일 받고 싶은 수업’에도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과학적으로 건강해지는 방법 모았습니다 (분쿄샤文響社), 공저로는 특정인 밖에 사귈 수 없는 것은 결국 당신의 마음이 식었기 때문이다 (크로스 미디어 퍼블리싱) 등이 있다.

역자 : 윤지나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일과를 졸업 후 통번역사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탄수화물이 인유를 멸망시킨다』 『야근 없는 회사가 정답이다』 『교양 없는 이야기』 『디톡스 워터 레시피』 『그 운동, 독이 됩니다』 『가진 돈은 몽땅 써라』 『자녀교육 베스트 100』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초보번역사들이 꼭 알아야 할 7가지』 『처음부터 실패 없는 일본어 번역』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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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남기는 사람
유희란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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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진을 남기는 사람』은 작가 유희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저자는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유품」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에는 모두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밤하늘이 강처럼 흘렀다」에는 장루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장루주머니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펼치기도 하는 등 현실의 제약들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의 조카가 장애를 가진 사람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카의 연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 채 그 만남을 반대한다. 숨겨져 있던, 혹은 외면했던 진실이 드러나는 때는 죽음의 순간과도 맞붙어 있다. 이 작품은 이모와 '나'의 관계, 둘 사이에 드리워진 비밀이 천천히 밝혀지는 쪽으로 나아간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에피소드가 덧붙여진다. '나'와 "직각으로 굳어버린 팔"을 가진 그와의 연애-이별담이다. 작품은 이와 같은 세 개의 서사 층위가 얽히면서 작동한다. 이것은 유희란 단편의 인장이라 할 만하다. 위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보통 세 가지(표층 중간층 심층)을 설정하고 동시에 구동하여 하나의 전언으로 수렴시킨다. 이 소설의 경우는 다음 문장이다. "유기체들은 자기들에게 쳐들어오는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함으로써 손상이나 파멸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

‘장루 주머니, 복지 혜택이 부족하다.’ ‘요양병원 입소 거부 부당하다.’ ‘장루 관리가 가능한 의료기관이나

시설이 너무 없다.’ 매주 목요일 보건소 앞에서 가끔은 구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어떤 날은 이렇게도 썼다. ‘화장실에 세척시설 설치 요구합니다.’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고 오다가다 그녀를 보게 된 사람들은 문구를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누군가의 생명입니다. 살려주세요.’ ‘배변 주머니는 수치일 수 없습니다.’ 이따금 피켓에는 그처럼 노골적인 문구가 쓰였다 지워졌다.

어떤 이들은 장루 주머니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외면했고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그래서 피켓을 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짐작이라도 해보려는 듯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 「밤하늘이 강처럼 흘렀다」 중에서



「유품」은 저자의 등단작이다. 당시 심사위원(현길언, 권영민)으로부터 "인간의 존재론적인 고독의 문제를 세상을 떠난 독거자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섬세하면서 깊이 있게 처리했다."는 평을 받았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김새별, 청림출판, 2015)이라는 유품정리사의 에세이가 화제가 된 적도 있지만, 이보다 앞서 저자는 유품정리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죽음과 삶을 명징하게 연결 짓는 것이 저자가 쓴 작품의 특징이다. 이는 죽은 이가 남긴 물건을 치우는 일을 하는 '내'가 임신부라는 사실과 연관된다. '나'는 또 다른 생명을 품은 채, '시취'가 풍기는 망자의 집을 드나든다. 죽음과 삶이 분리돼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소설이 "산다는 게 뭔지 아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유품」에서 '기다리는 일'이라고 답한다. 사람이나 때를 기다리는 삶의 형태는 「사진을 남기는 사람」에서 구체화되는데, 그것이 사진 예술이다. 이 작품에는 프레데릭 보머, 윌리 로니스, 로버트 카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론이 거론된다. 그중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대목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거북이를 찍기 위해 거북이 자세로 온종일 기다려야 했거든요. 멀리서 기다리는 일이 그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기다릴 수 있게 되었을 땐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을 테지요." 점점 기다리는 일과 연동하는 삶의 의미가 뚜렷해진다. 뭔가를 다퉈 얻어내려 하는 사람도 있으나 대체로 우리는 그 싸움에서 패배하고 마니까.


「천장지비」는 기다리는 일로서의 삶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박 씨는 다락방을 "하늘과 땅속에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는 염원"을 이룰 수 있는 "천장지비의 터"라고 여긴다. 그녀가 바라는 바는 죽은 남자의 부활이다. 공이의 아버지이자 박 씨의 남편인 그는 사고사했다. "흙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사망했으니 사고사는 맞는 표현 같지만, 실은 틀린 표현이다. 성냥공장을 운영하던 남자는 법적으로 승소할 가망이 없는 철거 명령에 저항하다 죽었다. 귀신을 보고 미래를 점치는 무당 박 씨도 철거계고장을 내세워 집을 밀고 들어오는 굴착기 앞에 무력하다. 샤머니즘은 의식을 치르면서 기다리다보면 사자(死者)를 산 자로 되돌릴 수 있다고는 약속해도, 무작정 기다리다보면 산 자의 삶이 차츰 나아질 거라는 약속은 감히 하지 못한다.

공이는 이곳에서 남자의 시신을 처음 보았다. 다른 자리에 비해 낮은 이 층이었으나 키 작은 공이에게는 계단에 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높은 곳이었다. 누군가는 지붕과 반자 사이의 공간에 들인 다락방이라고 불렀으나 박씨는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터라 여겼다. 하늘과 땅속에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는 염원과도 같아 환생을 이루기에 모자람이 없고 산천의 이로운 기가 머물러 유골을 묻으면 노랗게 황골(黃骨)이 되어 수천 년까지도 형태가 변하지 않을 곳이라고 믿었다.

- 「천장지비」 중에서



의류 디자이너를 제재로 한 소설 두 편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는 점은 유희란 소설집에서 특기할 만하다. 문학평론가 허희는 두 가지 연유가 있는 듯하다고 이 소설집 뒷 부분에 있는 「발문」을 통해 살펴본다. 책에 따르면 첫 번째 까닭을 「이제」에서 찾을 수 있다. 패션에 감춰진 함의를 여자가 짚어내는 대목이다. "변장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나를 표현하지만, 의도적으로 내 이미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어요. 변신이기도 한 거죠. 예를 들어 레이어링 기법에 뛰어난 사람이 있어요. 옷을 겹쳐 입듯이 자신을 보이지 않도록 위장하는 거예요. (...) 나도 변장하는 걸까요. 메타모르포제. 인위적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거예요. 당신 앞에선 내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와 달라요. 당신과 유사한 사람이 되거나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성격마저 송두리째 바꾸고 싶은 상태가 된 거 같아요." 여자는 옷을 입는다는 것을 진짜 나를 숨기려는 변장과 변신이라고 역설한다. 실제로 패션에는 이런 꾸밈의 속성이 강력하다. 여자는 남자와 있을 때 자신도 이처럼 바뀌는지 모르겠다고 부연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기 위해." 하지만 옷은 상처를 가릴 순 있어도 치유하진 못한다. 위장으로 잇는 삶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저자가 의류 디자이너를 제제로 한 소설을 쓰는 두 번째 까닭은 「셔츠」에서 찾을 수 있다. 텔레비전 다큐에 출연한 수의 제작자가 하는 말을 통해서다. "죽음을 슬프다고 생각하면 저는 슬픈 옷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수의를 지을 때는 가시는 길에 막힘이 없으라고 실의 매듭을 짓지 않으며, 빈손으로 간다는 뜻에서 주머니를 만들지 않아요." '나' 역시 수의 제작자와 비슷한 마음으로 셔츠를 만든다. '나'에게 옷은 한 사람에게 정확히 맞춰진, 그리하여 그의 이니셜을 새기고, 그 옷을 입고 지낼 그의 안녕을 비는 유일무이한 핸드메이드다. 정작 의뢰인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의 신체 사이즈를 '나'는 꼼꼼하게 파악한다. 그러면서 의뢰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감지해내기도 한다. 옷이 그의 위장술이라는 「이제」의 여자와 달리, '나'에게 옷은 그를 향한 포용술이다. 안 그랬다면 '나'는 가슴에 가시박이 자라는, 고통을 제 몸 안에 품고 사는 정기훈과도 인연을 맺지 않았으리라. 그가 주문한 셔츠의 완성은 거듭 수정되고 유예됐으나, 대신해 '나'는 그의 고통을 감싸 안았다. 포용으로 잇는 삼을 파국을 비껴난다.



2013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저자는 당선 소감에 이렇게 적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진실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 시간의 흐름을 겪은 후 어느 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일. 아마도 그럴 것이다. (...) 가족은 내게 말한다. 아픈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슬프지 않은 이야기를 쓰기를 바란다고. 때리고 후벼 파고 매달렸던 그 무엇. 나는 유독 그러한 것에 관해 쓰고자 했는지 모른다." 저자의 당선 소감을 짧게나마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이것이 그로부터 8년 뒤 출간하는 첫 소설집 『사진을 남기는 사람』에 다가갈 유용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나의 인상에 남기를 원한다."라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후 저자가 쓴 소설들은 보다시피 '아픈 사람이 등장하는 슬픈 이야기'로 채워졌다. "때리고 후벼 파고 매달렸던 그 무엇"이 다른 것으로 그리 쉽게 대치될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다소 변화가 있더라도 작가의 문학적 스타일은 작가의 얼굴만큼 고유하다.

저자 : 유희란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유품」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소설집 『사진을 남기는 사람』을 써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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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령의 더 셀렉션 THE SELECTION - 선택의 힘으로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300페이지 인생수업
김이령 지음 / 치읓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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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서인지 누구보다 추진력이 강한 저자는, 뇌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매 순간을 집중 또 집중해야만 했다. ˝내 인생의 선택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마라˝는 저자의 조언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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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령의 더 셀렉션 THE SELECTION - 선택의 힘으로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300페이지 인생수업
김이령 지음 / 치읓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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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공한 사람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역경과 난관을 슬기롭게 헤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영감이나 아이디어로 승부해 성공했다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영감이나 아이디어도 아무 노력 없이 얻어지는 '운'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겸손으로 들린다.

이 책 『김이령의 더 셀렉션 THE SELECTION』은 가정 환경이나 학벌, 지연이나 학연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서전적 성공 스토리여서 더욱 감동적이다. 말 그대로 '흙수저'가 사회에서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계발, 직접 뛰어 이뤄낸 성공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 김이령이 자신의 성공 비결은 오로지 순간 순간의 선택에 집중했고, 그 선택이 늘 옳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비결이란 게 따로 없다는 뜻이다. 이미 성공한 사업가가 자서전적 글을 쓰면 흔히 자랑에 치우치기 쉽다. 아마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수많은 선택이 대부분 옳았다고 해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신뢰감이 더할 뿐이다. 그것은 그가 성공 스토리를 쓰는 과정에서 보여준 열정과 노력, 집중과 선택 등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무형의 자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흙수저의 성공 스토리,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부인 이 책의 글 속에는 피눈물과 세상을 흙수저의 성공 스토리,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부인 이 책의 글 속에 피눈물과 세상을 대하는 성실성, 덕목으로 여겨지는 선택과 집중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이 첫번째 책이라 한다. 쓰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 엄청 많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도 저자는 자랑보다는 실천적 조언이나 직접 체험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독자의 선택에 맡기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는 것은 선택권을 묵살하는 행동이 되고, '나처럼 따라 해라'는 압력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치 자신처럼 하지 않고서는 성공은 어렵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저 행동으로 이뤄온 삶의 직관적 성공을 0.1%의 가식도 없이, 고스란히 펼쳐 보여준 것이다. 언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독자, 당사자들의 몫이다. 선택이 옳을 때는 성취의 보상이 따를 것이고, 그릇된 선택에는 더 노력하라는 주문이 따를 것이다.

40년간 15개 분야에서 1인 창업의 성공 신화의 기적을 써내려온 저자는, 너무나 열악했던 최악의 환경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슈퍼 갑으로 만드는 흐름을 만들었다. 타고난 스토리텔링 감각을 지닌 그녀답게, 하나하나 실화와 실증에 바탕을 두어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수십 년 간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이뤄놓은 1인 사업에 대한 성공 노하우와 사업가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교훈을 꼼꼼하게 담아냈다. 현재 피부미용의 1번지, 강남 청담동에서 1:1 맞춤 전문 케어 시스템을 갖춘 여성전용 프리미엄 슈가링 왁싱 부티크를 운영 중인 저자는, 이미 향후 7년간의 예약이 마감된 요일이 있을 정도로 그 분야에서 최고 중의 최고의 실력과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바쁜 일정을 쪼개어 책을 집필하고, 시니어 모델로서 새로운 인생에 도전할 만큼 여전히 넘치는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그녀에게는 유전자로 몸속에 간직되었나 보다.

성공한 사업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그 노하우에 대해, 탁월한 통찰력과 직관력, 학력이나 타고난 환경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성공을 부르는 '선택의 힘'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고 깨닫게 한다. 성공과 자유, 그 무엇이 먼저가 아니라, 성공과 자유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선택, 그리고 실행으로 이끄는 확신만이 ‘나다운 삶’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에 독자로서 감사한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스스로 체득하여 얻어 낸 보물만이 자신의 유일한 자산이라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변화무쌍한 시장의 흐름을 민첩하게 대처하고 순항해 오면서, 긍정의 마인드와 일관성 있는 집념을 가지고 살아온 1960년생 여성 시니어이다.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아 낮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야간부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선택했으며, 3년간 이론보다는 기능을 숙련해서 졸업한 스펙이 그녀의 전부였다. 또래의 친구들이 대학교에서 책 속의 지식만을 공부하고 있을 때, 그녀는 일찌감치 현장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손실과 이익, 분배에 대한 돈의 감각과 스킬을 익혔다고 한다. 풍파와 역경으로 뿌리째 흔들리는 가정환경과, 칠흑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냉기가 흐르는 불안정한 가정의 8남매 중 일곱째였던 저자는, 태어나서부터 부모나 형제의 보살핌 한 번 받지 못하고, 친구 집을 전전하며 식사도 도움 받을 정도로 어려웠다.

벼랑 끝에 매달려 절망적인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자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 내면서도, 환경 탓, 상황 탓을 하는 대신 스스로 내리는 ‘선택’ 앞에서 정직하고자 했다. 다만 온 신경을 자신이 정해놓은 매뉴얼에 놓고 하나씩, 조금씩, 꾸준히 신념을 가지고 실천해 나갔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서인지 누구보다 추진력이 강한 저자는, 뇌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매 순간을 집중 또 집중해야만 했다. 이성에 대해 잘 모르고 가정에 대한 롤 모델이 없어 성숙하지 못한 섣부른 선택으로 인해 결혼생활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자 했기에, 한국주택은행 본점, 대기업 사장 비서 등을 거치며 직속상관들로부터 이목과 눈길을 받았다.

그녀는 스펙을 넘어, 최고의 선택과 실행을 해나가며 주변인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인정을 받았고, 그렇게 그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감으로 자신의 위치를 구축해나갔다고 말한다. 회사를 위한 인재로 칭찬에 만족하며 안주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비즈니스에 성과를 온전히 본인의 몫으로 챙기고 싶다는 야무진 발상으로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마이웨이의 길을 선택했다. 40년간 1인 창업으로만 15가지 이상의 다채로운 비즈니스를 펼치면서 타고난 사업적인 센스와 감각, 대체 불가능한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기까지 힘들었던 일은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내색할 상대도 없었고,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협상의 귀재, 설득의 여왕 슈가링 왁싱계의 샤넬’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고객들에게 인정을 받은 덕에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1인 창업의 전문가로서 40년간 쉼 없이 진행해온 노하우와 지식, 경험과 소신 등 자신만의 가치들을 깊이 녹여내어 이 책, 『김이령의 더 셀렉션 THE SELECTION』에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풀어썼다. 기쁨과 환희, 고통과 절망 등이 스며 있는 그녀만의 비즈니스 노하우와 스킬 등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은 간절함도 함께 전해주고 있다.

피부미용의 1번지 청담동에 1:1 맞춤 전문 케어 시스템 관리로 여성전용 프리미엄 슈가링 왁싱 전문 부티크를 운영 중이며 그녀만의 독특한 패션 감각과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줄 ‘탑 시니어 모델 김이령’으로서의 훈련에 매진 중이다. 그녀의 선택을 담은 이 책을 통해, 본인의 열정과 에너지를 독자들이 나누어 받아 마음 깊이 소유하기를 바라며, 허락된 시간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임 받는 사람으로서 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들과 더 가까이에서 깊이 만나길 원하고 있다.



그가 쓴 이 책 소제목만 보아도 무슨 얘길 하려는지 일목요연하게 목차도 정해져 있다.

①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②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은 없다

③ 일, 사랑, 변화로 이끄는 선택

④ 내 인생에 중도하차란 없다

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도 선택이다

⑥ 인생을 바꾼 선물

마지막으로 책 표지에 나온 저자가 만든 격언 하나가 오래 가슴에 남는다.

"내 인생의 선택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마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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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도시 - 공간의 쓸모와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이규빈 지음 / 샘터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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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란 한정된 공간을 예술과 실용을 모두 구현해내는 사람이다. 그들은 예술가이기에 영감을 중요시하고 실용적인 공간 창출자이기에 기술의 중요성도 도외시할 수 없다.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하고, 예술을 기술에 적용시켜 아름다운 실용적 건축물을 설계하기도 한다. 이 책 『건축가의 도시』의 저자 이규빈은 건축가이다. 아직은 자신의 이름을 앞세울 만한 건축물을 설계할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 건축가이지만 그의 건축에 대한 이해는 어느 유명 건축가에 비해 좁거나 낮지 않다.

그는 건축가로서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공간을 완성하려면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건축 계획안을 그려낼 수 있었던 원동력을 건축적인 영감이나 부지런한 손이 아닌, 중국 현지 조사를 할 때 음식 한 접시로 주민들과 교감했던 진심이라고 말한다. 세계 곳곳의 삶의 현장을 치열하게 돌아보며 공간과 건축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나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도 여행은 건축 설계에 영감을 준 최고의 수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세계의 도시들을 출장과 여행으로 오가며 기록한 글과 사진에서 우리는 낯선 도시와 공간을 바라보는 건축가의 시선을 살펴볼 수 있다. 최고의 여행 메이트는 건축가라는 말이 있다. 여행이란 새로운 도시를 거닐고 건축을 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세계의 낯선 도시들을 건축가와 함께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의 난징 대학살 기념관은 건축물의 재료나 입면, 설계 구성 등에 날카롭고 불편한 형태를 차용함으로써 공간이 지닌 진실과 슬픔의 무게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9·11 추모공원 및 기념관은 겉으로 드러나는 건축도 기념비도 없지만 ‘빈자리’와 ‘부재의 풍경’으로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인간의 슬픔이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시간들을 상기시켜준다.

라 투레트, 생폴 드 모졸, 세낭크 수도원은 프랑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장소이다. 수도원이 간직해야 할 영성은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지운 수도원을 오르내리며 인간은 경건을 준비하고 경건을 내려놓는다. 어디까지가 지형이고 어디까지가 건축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고흐드의 절경은 그 존재만으로 영성이다. 저자는 프랑스 수도원 기행을 통해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은 자연을 통해 조화와 비례와 균형을 얻는다고 넌지시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혹은 우리가 여행한 공간을 만나고 이해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렇다면 건축물과 도시를 설계하고 만드는 건축가는 이 공간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 책은 우리가 서 있거나 여행했거나 가고픈 그곳, 그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 중국, 미국, 브라질, 프랑스 등 다섯 개 나라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글은 고유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저자는 단순히 건축물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그 공간이 지닌 역사적 배경과 의미, 그리고 그곳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또한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른 건축 기법과 설계 방향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는 다양한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저자가 그린 사십여 장의 설계 도면과 건축물의 세밀한 미학을 포착해낸 사진도 주목할 만하다. 건축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탄생한 공간은 어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지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사진과 설계 도면은 독립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일련의 상호성 속에서 우리의 지평을 확장해준다.

 


 

건축은 단단하고 도시는 거대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건축과 도시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 쉽게 착각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일생이 건축과 도시의 시간보다 터무니없이 짧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하면 시대가 변하듯 건축과 도시 또한 늘 변화한다. 1985년 민주화를 맞이한 브라질. 고국으로 돌아온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기고 2012년 104세의 나이로 영면한다. 건축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며 좌절했던 그의 건축물에는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진이 걸려 있다.

건축가는 여느 사람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여느 사람에게 유리는 그냥 유리이지만 건축가에게 유리는 투명성과 반사성을 지닌 마법과도 같은 건축 재료인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포착할 수 없는 건축물의 내밀한 이야기를 건축가의 시선으로 들려준다.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건축물에는 미학적 완성도를 넘어 인간이 깃들어 있고, 자연이 깃들어 있고, 끝끝내 기억되어야 할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건축물과 건축들의 다양한 도면들을 보면서, 건축이란 학문 자체가 참으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은 의식주(衣食住) 3요소 가운데서 주거에 해당된다. 옷이 있고, 음식이 있어도 추위와 더위를 막아 줄 공간이 없다면,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건축은 건축학개론 첫 번째 과제에서 보듯이 집을 그리고 짓는 것을 의미한다. 줄자를 가지고 이곳저곳 치수를 재면서 모눈종이 위에 선을 이리저리 긋고 이어서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건축물의 도면이 뚝딱하고 완성된다. 그 도면을 토대로, 땅 위에 설계대로 시공하면 종이 속 그림이 실제 땅 위에 건축물로 탄생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건축이고 건축학이다.

 

건축과 전시는 모두 공간을 다루는 것이기에 닮은 점이 참 많다. 공간, 빛, 동선, 재료 따위를 세밀하게 다루고 조정하는 일이며 도면이라는 도구를 통해 설계되고 누군가에 의해 시공되어야만 비로소 세상 앞에 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도 있는데 바로 ‘호흡’이다.(p. 82)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도 감동을 주지만 멋진 건축물은 경이롭다는 느낌까지 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외국이나 낯선 도시를 가면 건축물은 제 1 관심의 대상이다. 정복자들은 찬란한 업적과 문명의 힘을 건축물로 대신하는 것이 인간의 건축에 대한 인식이다. 이런 건물은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한편으로는 실용적인 점이 강조되는 건축물도 많다. 어떤 점을 강조할지는 건축가의 손에 달려 있다. 그들의 의식 속의 영감이나 예술 감성을 건축물로 구현해내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건축가들은 이 때문에 우리의 주거문화를 편리하게 해주는 실용적인 면보다 예술가라는 미적 감각이 더 우수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책은 젊은 건축가 이규빈이 일본, 중국, 브라질, 프랑스, 미국을 오가면서 건축가의 눈으로 본 건축물들의 이야기, 건축물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 생각, 건축가로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벽돌 한 장 한 장 쌓듯이 글로 담았다. 건축가 입장에서 건축물의 아쉬운 점, 훌륭한 부분 등을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면서 담담하게 써냈다.

 

매일 밤 집에 돌아와 모니터 앞으로 다시 출근했다. 도면에 미처 옮겨지지 못한 나의 미련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보고, 듣고, 지은 건축과 도시에 대한 증언을 써 내려갔다. 생각은 한 장 벽돌에 담기면 건축이 되고 한 줄 문장에 담기면 글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나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건축’이다.(p. 10)

 


 

책 속의 수많은 도면은 건축물의 보이지 않는 공간을 다양한 측면, 시각에서 보여주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공간에 대해서도 그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미리 예측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도면을 통해 닝고 역사박물관이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고, 세계무역센터의 내부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또 그레이스 팜스의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일본, 중국, 미국, 브라질, 프랑스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의 건축물 중에서도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건축물들에 대해 많은 정보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큰 수확이다. 이 책에 나온 건축물의 작은 일부는 여행을 가서 직접 본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 본 것인데도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함께 보니 낯설지 않고 직접 가서 본 것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돼 건축물의 예술성과 실용성, 역사성과 문화성 등이 모두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저자의 친절한 배려도 느낄 수 있다.

 

세낭크와 고흐드는 모두 거기에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축이었다. 어쩌면 인간은 그저 자연 앞에서 주어진 소명대로 건축을 완수하는 역할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가끔 건축하며 자연과 대립해야 할 순간마다 세낭크에서 혹은 고흐드에서 마주했던 장면을 떠올려본다. 자연 앞에서 겸손할 때 비로소 좋은 건축이 만들어지리라 믿는다.(p. 295)

 

저자 : 이규빈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건축가 승효상의 사무실 ‘이로재’에서 건축과 검도를 수련 중이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스페인 마드리드건축학교에서 수학했고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젊은 건축가 펠로십’을 받았다. ‘새들의 수도원’, ‘부산 롯데타워’,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성뒤마을’ 등 다수의 설계를 담당했다. 2021년부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하여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30여 개국을 일과 여행으로 오고 가며 낯선 도시에서의 생각과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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