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마스터피스 - 유명한 그림 뒤 숨겨진 이야기
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조아라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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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수많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명화를 보다 더 풍요롭고 다양한 면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책은 감상하는 데 중요한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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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마스터피스 - 유명한 그림 뒤 숨겨진 이야기
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조아라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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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그림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공부를 따로 한 적도 없다. 다만 그림을 좋아해서 전시회를 가끔씩 다녔을 뿐이다. 그것도 세계 유명 화가들의 특별 전시전이 열릴 때 한 번씩 가보는 정도였다. 몇 번은 도록을 구입한 적도 있긴 하지만 일년에 한 번 꼴이나 되었을까. 이 책 『화가들의 마스터피스』에 나온 화가 기준으로 한다면 구스타프 클림트 전시회가 유일하다. 그때의 놀라움과 두근두근하는 가슴을 억제하느라 혼났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직접 가서 본 적이 있을 뿐 이 책에 나온 작품 중에는 직접 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미술에는 문외한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인적으로 시간이 많이 났지만 상대적으로 전시회가 거의 없어지는 바람에 최근 몇 년 동안은 전시회에도 다닌 적이 없다. 대신 미술 관련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주로 서양 미술 관련 책이었지만 감염병 여파로 소통 부재에서 오는 감정의 흔들림이나 장애를 해소하기에 그림 감상이 매우 유용한 탓이리라. 덕분에 독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림 이론 공부의 기회가 되었다.

그림 출판물이 많은 까닭에 그림 감상법이나 해설이나 설명 식의 책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이 책은 저자 데브라 N. 맨커프의 독창적 그림 감상법을 중심으로 명화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을 해주고 있어 독자의 그림 감상법을 바로잡기에 큰 힘이 되었다. 저자 맨커프는 12명의 근·현대 화가를 대상으로 작품 해설, 제작 과정, 뒷 이야기, 역사적 배경 등을 모두 망라하고 있어 풍부한 그림 감상법을 배울 수 있게 한다. 저자는 '명화'라 이름 붙일 때는 '조건'이 있다고 주장한다. "명화란 시대정신을 구현하면서도 예술가 개인의 독특한 비전을 함께 보여주는 실물 오브제를 말하며, 국가와 문화적 경계는 물론 시대를 초월하는 내재적 우수성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작품을 일컫는다."고 저자는 정의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 옷을 입은 여인〉 등을 이 책 안에서 '조건'을 충족하고 있음을 다양한 방면에서 설명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예술품 중에서도 이 작품들은 어떻게 ‘명화’라 불리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과정이나 미의식, 상황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명화’라고 불린다는 사실만 전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 『화가들의 마스터피스』는 그림이 가진 위대함에 감탄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왜 위대하다고 여겨지는지 질문을 던진다. 모든 작품 뒤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예술품이 가진 예술성 너머에 다른 요소들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을 살펴보는 이 책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명화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책에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시작으로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에이미 셰럴드의 〈미셸 오바마 초상화〉까지, 많은 인기를 누리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친숙한 그림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들이 지금의 명성을 갖게 된 길을 온전히 살피고자 각 그림의 과거를 살펴보고, 상징적인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낸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화가들이 명성을 얻게 된 길은 절도, 스캔들, 법적 분쟁, 정치권력 등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명화가 만들어지는 환경과 명성이 높아지는 과정을 재조명해 현재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공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에 담긴 매혹적인 이야기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이젤에서 대중의 환호 속으로 가는 여정이 명화 그 자체만큼 매력적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품 자체로도, 영화로도, 패러디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발견되었을 당시, 이 작품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작고 낡은 그림이었다. 복원 작업을 거쳐 ‘기가 막히게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작품과 작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는 것. 모든 것이 신비에 싸여 있었고 흥미로운 궁금증들을 불러일으켰다. 학자들은 수 년 동안 그림 속 모델을 누군가와 연결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맨커프는 우리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끌리는 이유를 회화적 기술과 모델의 아름다움이 아닌, 바로 이러한 초월적 면모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녀의 의상은 네덜란드 여성과 소녀가 흔히 입는 평상복이지만, 터번은 그 시대의 여성들이 선호하던 어떤 것과도 비슷하지 않다. 또한 눈물 모양의 진주는 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소녀의 얼굴 모양과 윤곽을 강조하는 요소에 가깝게 표현되었다. 한발 물러선 자세와 애타는 눈빛으로 우리의 시선에 화답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명확한 이름, 역사, 목적을 가진 실체로 드러내려 집착할수록 이미지는 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모델이 실제로 누구인지, 왜 베르메르(페이메르)가 그림의 모델로 선택했는지 영원히 알 수 없다. 이처럼 이 책은 그림 속 인물의 표정과 자세, 시선, 태도 등은 물론 화가와 얽힌 사건을 따라감으로써 작품이 오래도록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인을 분석해 그림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끈다.

'명화'라 부르기 이전에는 '명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중세 후기 유럽의 길드 제도에서 기원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당시 명작은 최고의 업적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전문가로서 없어서는 안 될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음을 증명하는 단어였다. 명화라는 단어는 15세기 말부터 회화, 건축, 조각 등의 미술 범주가 제작, 금속 세공, 직물 등을 포괄하는 공예와 분리되고 전자가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마스터(master)'는 '고도의 능력'이라는 의미를 얻게 되었다. 이후 두 세기가 지나는 동안 미술 아카데미는 화가들과 조각가들이 선호하는 훈련장으로 여겨지며 기존 길드의 존재를 대체했다.

 


 

저자는 또 '명화'는 긴 역사를 가진 용어이지만 문제적인 개념이라는 부담을 내포한다고 말하낟. 명화 개념의 핵심인 배타성이 오늘날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예술 세계와 상충한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의 우리는 예전과 달리 예술 작품이 정해진 기준을 따라야 한다거나,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질 혹은 본질적인 가치를 구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제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경험을 표현하는 것을 옹호하며, 작품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자신의 사고를 확장하고 싶어한다는 것. 이와 함께 '명화'에는 논쟁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주인과 하인, 나아가서는 주인과 노예 등 지배와 통제, 위계질서를 떠올리게 하는 젠더 개념이 내재된 용어이기도 하다는 것. 위계적 의미와 명화라는 단어가 사실 무관하지도 않은 것이, 특정 예술 작품에 명화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하면 결국 뭇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명화가 명화라 불릴 수 있게 하는 요인을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저자는 이에 따라 시대를 초월하면서 세계적으로 호소력을 갖춘 작품에 대한 우리의 찬미와 명화 개념에 대한 현대의 질문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점에 주목하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명화가 만들어지는 환경과 명성이 높아지는 과정을 재조명해 현재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공한다. 앞으로 이야기할 작품들은 많은 인기를 누리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만큼 모두 친숙하다. 저자의 말대로 '명화'의 조건을 두루 갖춘 많은 이야기들이 함께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작가 개개인의 창작 세계를 발전시킨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들인 동시에 그만의 상징적인 작품들의 인정받게 된 명화들이라고 확신한다. 그 이야기를 이 책에서 쓰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밖에 이것들이 가진 더 흥미로운 공통점을 제시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너머를 봐야만 지금의 명성을 갖게 된 길이 온전히 드러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1차 자료를 탐구하며 그림의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지금 얻은 상징적 의미 뒤에 숨겨진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절도, 스캔들, 법적 분쟁, 정치, 심지어 예술계 관습에 저항하는 행위 모두 우리가 현재 명화라고 간주하는 작품에 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는 말이다.

 


 

첫 번째로 등장한 화가는 산드로 보티첼리다. 보티첼리는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서도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과 함께 소개되어 알고 있다. 당연히 화가의 업적이나 그림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전부였다. 이후 그의 그림을 본 적이 없기에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와 그의 작품을 '명화' 이야기의 첫 번째로 등장시켰다. 〈비너스의 탄생〉이란 그림의 배경 설명으로 시작된다.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권위 있는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갓 돌아온 보티첼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힘 있고 부유한 예술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1480년대 중반에 제작한 작품들은 메디치 가문의 지식인 집단이 가진 혁신적인 철학을 반영하게 되었다. 보티첼리가 당시 작업한 그림들은 제한된 몇몇 관람자를 위해 만들어진, 사적이고 난해한 의미를 담은 것들이었다. 〈비너스의 탄생〉은 19세기 초 일반 관람자에게 공개되었을 때도 여전히 대중적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런던에서 처음 전시되면서 비로소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이후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소수 엘리트 관람자의 흥미를 모으는 일에서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까지의 놀라운 여정을 살펴보는 것은, 어떤 이유들이 이 작품을 명화로 만들었는지에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 피렌체 공화국의 실질적 지배가문인 메디치가의 한 구성원(잘생기고 마상시합 우승자)과 결혼한 아름다운 여성 시모네타 베스푸치에게 반했고, 그녀를 모델로 비너스를 그렸다는 주장이다. 어찌 보면 스캔들이라기보다 한 화가의 '순애보' 같은 사랑이 '비너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마상 시합 후 10년이 지나 그려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그동안 존재하던 신화, 플리치아노의 이야기, 그리고 화가 자신의 회화적 창조가 결합해 탄생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화는 시인 헤시오도스가 판테온 신들의 계보를 담은 작품 『신통기』에서 크로노스의 폭력과 복수를 다룬 이야기를 차용한 것, 즉 어머니를 향한 복수와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잘린 생식기를 바다에 던져 버린 신화를 말한다. 그 바다에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나 '연인들'의 미소와 섹스에서 비롯되는 모든 쾌락을 다스렸다는 내용에서 '바다에서 나타난 여신'이 '비너스'가 된 것이다.

 


 

독자들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20세기 이전에는 서양에서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엄격히 통제되고,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심지어 예술 분야에서도 여성 화가나 여성 작곡가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듯, 한 여성 화가가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도발적인 여성 화가가 등장한다. 바로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다. 로마의 저명한 화가이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영향으로 그림을 잘 그렸던 듯하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의 젊은 시절은 여러 면에서 같은 세대와 환경에 있던 다른 여성들과 비슷했다. 그녀의 세계는 160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3명의 남동생을 돌보면서 가사를 하는 데에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남의 도움 없이는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할 수 없었고,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는 일은 무례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611년 아버지의 가까운 동료이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강간을 당한다. 다음해 3월 오라치오는 타시가 딸을 성폭행한 수 결혼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처녀성 강탈' 혐의로 고소했다. 성폭행범 타시는 로마에서 영원히 추방당했으며 이르테미시아는 아버지의 법률 고문인 피에란토니오 디 벤첸초 스티아테시와 결혼해 1613년 피렌체로 이주했다.

책에 따르면 아르테미시아는 재판 기간 중 혹은 직후, 유디트 주제에 대한 그녀의 첫 번째 해석을 시작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유디트를 주제로 한 작품이 과연 그녀가 겪은 개인적인 트라우마의 영향인지, 여성 영웅주의를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예술가가 삶에서 경험한 일들은 당연히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가 왜 이 주제에 집중했는지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맥락들을 탐구해보아야 한다. 유디트 이야기는 15세기 이탈리아 미술에서 보티첼리, 안드레아 만테냐, 조르조네,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눈에 띄는 작품들과 함께 많은 인기를 누렸는데, 고귀함과 용감함, 여성미를 한 인물에 담아 그려낼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피렌체에 있는 도나텔로의 장엄한 조각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해 칼을 들고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는 웅장한 유디트 금동 조각은 무자비한 침략에 대한 정의의 승리를 나타낸다.

 


 

주제를 결정한 직후, 그는 불과 6주 만에 거대한 그림을 완성했다. 전시관이 공개되었을 때 일부 비평가들은 〈게르니카〉의 폭발적인 구성이 과도하게 위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에는 명확성이 부족해 보였고, 수수께끼 같은 상징적 표현은 최근에 일어난 폭격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려는 피카소의 의도를 오히려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은 피카소의 목표에 끔찍한 사건을 추모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음을 인식했다. 피카소는 관람자로 하여금 기존의 전통적 서사와 비유가 지닌 평온하고 지적인 영역 너머의 세계를 보고 느끼도록 함으로써 〈게르니카〉를 보편적인 명화로 만들었다.(p.147) -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중에서

 

저자 : 데브라 N. 맨커프(Debra N. Mancoff)

 

미술사학자이자 작가로 영국과 미국의 예술, 역사, 문화, 패션에 관해 연구해왔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시카고 뉴베리 도서관 레지던스 학자로 일하고 있다. 『경고! 일하는 여성 예술가(Danger! Women Artists at Work)』, 『파리 인상주의 패션(Fashion in Impressionist Paris)』, 『패션 뮤즈: 아이코닉 디자인에 숨은 영감(Fashion Muse: The Inspiration Behind Iconic Design)』 등 예술과 문화에 관한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브리태니커 블로그(Britanica Blog)의 패션 분야 공동작가로도 활동했다.

 

역자 : 조아라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난 10년 동안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예술 기관에서 일했다.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SeMA Green: 윤석남-심장》, 《사진과 미디어: 새벽 4시》,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망각에 부치는 노래》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2019년부터는 개관을 준비 중이던 서울공예박물관으로 둥지를 옮겨 새로운 뮤지엄이 탄생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지금은 잠시 한국을 떠나 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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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케이지 : 짐승의 집
보니 키스틀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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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더 케이지: 짐승의 집』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 같지만 범죄에 중점이 주어지기보다는 병리적 사회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시작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내내 범죄자로 지목되는 주인공 셰이 램버트의 시선과 심리는 사회 시스템이 병든 상태임에 주목한다.

소설 발단의 분위기는 조금은 스산한 듯하지만 낭만적이라고 해도 별 무리 없는 평범한 분위기다. "도시 위 높은 하늘에서 안개가 서성인다. 차가운 밤하늘은 온통 캄캄하고 보이는 것이라곤 난반사된 도시의 불빛뿐이다. 안개가 닿은 건물은 단 하나, 마켓플레이스 타워, 도시에서 가장 높은 최신 건물이다. 반짝이는 첨탑의 모든 면면에는 서리가 뒤덮여 있다. 누구라도 그걸 본다면 설탕을 입힌 동화 속 나라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안개 속에서, 이 어둠 속에서."(p.7)

주인공 셰이 램버트는 명문 아이비리그 로스쿨 출신에다 모두가 선망하는 명품 패션 대기업에서 얼마 전부터 일하고 있는 여성이다. 그런데 주말(휴일)의 늦은 밤, 다른 여성 직원과 함께 회사의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우연히 끔찍한 사고에 휘말린다. 첫째로, 엘리베이터가 타자마자 멈추었다. 불이 다 나간 작은 공간에서는 같이 탄 직원조차 잘 보이지 않고 거친 숨소리만 울린다. 밀실 공포증이 절로 생기는 환경에서도 셰이는 7분 후 동료의 변화에 걱정스러워하며 911 신고도 직접 한다. 권총을 꺼낸 직원과 생각지 못한 몸싸움도 일어난다. 결국 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는 셰이만 살아 있었다. 사건은 셰이가 구출되고 수사 원칙상 살인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죽은 직원은 총상으로 사망했다. 셰이는 그 권총이 직원의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며 직원이 권총을 꺼내들고 쏘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지만, 무죄를 증명할 뚜렷한 길은 보이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외부의 증거가 계속해서 조작된다.

 


 

범죄 발생 부분을 압축해서 썼지만 제대로 전달된 지는 독자도 장담할 수는 없다. 셰이는 고등학교에서 전교 회장, 대학은 아이비리그 장학생, 로스쿨부터 뉴욕 최고 로펌의 우등생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하며 살아왔다. 사건에 휘말리고 난 뒤부터 숨겨온 비밀이 예기치 않은 시점에 드러나면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 소설 『더 케이지』는 누구라도 언제고 겪을 수 있는 엘리베이터 고장 사고에 현직 변호사조차 무죄를 자신할 수 없는 교묘한 상황 설정을 통해 독자들의 호기심과 몰입감을 높인다. 작가의 몫이다. 저자의 구성 능력이다. 모두 잘 쓰고 잘 짜여진 철저한 계획과 설정이다. 단순한 흥미 위주가 아닌 사회성 높은 소설 작품임을 직감할 수 있다. 다만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도입한 것은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이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다면 1, 2부로 구분된 단순한 형식이다. 다만 1부와 2부 사이에 〈인터벌〉 부분이 끼어들어가 있다. 마치 콘서트 구성처럼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소설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내용과 사건이 일어나는 부분까지의 전개 과정을 담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사건이 터지자 피해자의 생사 여부를 알아보지 않고 급히 911에 전화를 걸어 사건 발생 신고를 한다. 응급 환자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피해자는 사망했다. 총으로 피살된 것으로 밝혀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셰이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처지에 선다.

 

 

이제 이야기는 현재 시점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구조된 직후의 셰이, 셰이를 살인자로 몰려 하는 회사 고위층 임원인 법무팀 고문 배럿 잉그럼, 그리고 지금은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이 된 과거 시점의 셰이까지 세 가지 이야기로 장마다 초점을 바꿔가며 진행된다. 변호사로서 온갖 증거를 제시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셰이는 물론이고 역시 변호사로서 셰이의 유죄를 증명하고자 팽팽히 맞서는 배럿 잉그럼의 한 발 한 발은 서로가 무기로 삼고 살아온 법률을 칼로 휘두르는 두뇌 싸움이다. 상대를 완전히 매장시킬 생각으로 최고급 법률 인재들이 서로의 수를 읽고 반격하며 이어지는 반전들은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셰이를 살인자로 몰려 하는 외부의 움직임이 결국은 배럿 잉그럼이다. 사건은 시시각각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몇 차례의 대결 속에서 대기업의 비리, 변호사 직업 윤리 준수 규칙이 엮이기도 한다. 서로간 명운을 건 싸움으로 비화된다.

이에 따라 거대한 스케일로 부풀어 오른 사건은 교묘하게 맞물리고, 절묘하게 쌓아 올린 복선으로 한꺼번에 폭포처럼 터져나오는 흐름은 독자들이 감탄할 수밖에 없는 묵직한 충격을 남긴다. 책의 저자 보니 키스틀러는 기업 소송을 전문으로 미국 전역에서 사건을 수임해 성공적으로 활동한 소송 전문 변호사라고 한다. 유능한 변호사답게 자신의 이력을 백분 살려, 작중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힌 변호사 주인공 셰이가 엘리베이터 내 사망 사고 때문에 복잡한 법적 문제에 휘말리며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을 생생하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변호사 주인공이 난제에 맞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싸우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데 매우 능숙한 실력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은 주인공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교묘한 이야기 설계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더 케이지』에서는 주인공 셰이가 명품 패션 대기업에 하필 모종의 일을 맡는 변호사로 취직하는 바람에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의 기묘한 공방에 휘말린 것이다.

작중에서는 〈짐승 우리(더 케이지the Cage)〉라는 말이 여러 번 변용되어 등장한다. 난데없이 발생한 엘리베이터 사고는 엘리베이터에서 시체가 된 동료와 함께 갇혀 있던 시간 때문에 셰이에게 트라우마를 남기는 끔찍한 사건으로 변모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생긴 일의 진실을 아는 것은 주인공 셰이뿐이지만 아무도 셰이가 진짜 겪은 일에는 관심이 없고 엘리베이터 사고로 촉발된 각자의 생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급급하다. 셰이는 전 직장에서 오래전 해고당한 이후 질기고 독하게 버텨온 과거의 경험과 현재 이어지는 위기를 두고, 자신이 있는 세계가 짐승들의 세계임을 깨닫고 각성한다. 꺼풀이 벗겨지듯 조금씩 밝혀지는 셰이의 비밀에 더해 생존을 위한 강렬한 의지가 더해져 셰이는 독자들의 상상한 한계를 넘는 캐릭터로 완성되어 간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마지막 장까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죽은 사람은 물론이고 셰이와 배럿의 비밀은 공개될 경우 각자에게 치명적이다. 그만큼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인물들이 죽을 힘을 다해 치는 몸부림은 독자들의 허를 찌르며 감탄사가 절로 나게 한다. 또한 미국 명품 패션 대기업을 대표하는 도시의 고층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묘사와 공방전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화려한 묘사와 더불어 돌연 찬물을 끼얹는 듯이 소름 돋는 장면 배치까지, 독자들이 한 번 손대면 그대로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도록 치밀하게 완성한 소설이다.

 


 

소설의 서평을 쓰려면 스포가 될 만한 사실은 감춰야 한다. 그것은 읽는 독자들의 흥미와 추리를 하는 재미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스릴러나 추리, 범죄 소설은 더욱 그렇다. 이 소설도 치밀하게 구성해 쌓아 올라가는 독자들의 흥미를 스포 한 번으로 망가뜨릴 수 있다. 더욱이 주인공 셰이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혹시 변호사로서의 범죄와 법적 문제의 소지까지 전부 감안해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닐까? 하는 독자의 생각도 끌어냈으니 하는 말이다. 아무튼 최대한 스포를 없애도 1부까지의 결과마저 모두 통째로 뺄 수는 없다는 게 독자의 판단이다. 1부까지의 결과는 결국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건의 마무리가 아니고 한참 꼬이고 혼란스러워 가는 진전의 물살에 휩싸이는 것이다. 저자의 소설 구성 능력이고 미스터리 스릴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1부가 끝나는 지점에서 셰이는 드디어 정식 체포된다.

 

크루즈 : "그래서 불이 나갔을 때······."

라일리 : "정신이 나간 건 카터 존스가 아니었죠."

크루즈 : "그건 당신이었어!"

"아니 아니에요. 그건 루시······." 나는 그들이 한마디씩 마칠 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둘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일어나세요." 크루즈가 탁자에서 물러났다.

"네?"

그가 내 뒤로 다가왔다.

"아니 진짜로 당신들 지금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는 거예요!"

크루즈는 나를 밭잡아 일으켜 세운 후 두 팔을 뒤로 꺾었다.

"샤로나 챈스 램버트, 당신을 루시 카터 존스 살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차가운 수갑이 손목에 채워졌다.(p.211)

 


 

“모르세요?” 피비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 얘기는 인터넷에서 그야말로 난리였어요. 온갖 게시판에서 그 사건에 대해 토론을 벌였는데 ‘셰이 편’이 이기고 있었죠. ‘#셰이에게자유를’이라는 해시태그까지 생겼다니까요. 그리고 누군가 당신 변호를 위해 펀딩을 시작했죠.”

“뭐라고요? 누가요?”

피비가 어깨를 으쓱했다. “십중팔구 당신에 대해 환상을 품은 방구석 얼간이겠죠. 근데 중요한 건, 그것 때문에 불이 붙었다는 거예요. 5만 달러까지 모였을걸요.”

“뭐라고요? 아니, 왜요?” 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신 이야기가 사람들 주목을 끄니까요. 엘리베이터에 갇혔는데 누군가 자살을 한다? 이런 일은 우리 누구든 겪을 수 있어요. 그랬는데 그걸로 죄를 뒤집어쓴 거잖아요.”(p.279)

 

저자 : 보니 키스틀러(Bonnie Kistler)

 

보니 키스틀러는 기업 소송을 전문으로, 전국적으로 사건을 수임해 성공적으로 소송을 진행한 바 있는 변호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모의 재판에서 우승하고 법률적 글쓰기를 강의하기도 했다. 영문학 학위도 가진 키스틀러는 법률가로서 이력을 더해가는 동시에 서스펜스 스릴러 작품을 여럿 내놓아 작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는 『하우스 온 파이어(2019)』, 『더 케이지(2022)』, 『그녀(2023)』가 있다.

키스틀러는 변호사 주인공이 난제에 맞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싸우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데 능한데, 키스틀러의 작품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은 주인공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교묘한 이야기 설계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더 케이지』에서 주인공 셰이는 명품 패션 대기업에 하필 모종의 일을 맡는 변호사로 취직하는 바람에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의 기묘한 공방에 휘말린다.

 

역자 : 안은주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0년 동안 라디오 및 TV 방송작가로 일했다. 이후 한국방송통신대학 불문학과에 진학하며 번역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졸업 후 영어와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이란 멀리 떨어진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행위라 믿으며 이에 임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카티 보니당의 『128호실의 원고』, 찰리 돈리의 『수어사이드 하우스』와 『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 세라 게일리의 『일회용 아내』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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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 - 불각(不刻)의 아름다움
김종영 지음 / 시공아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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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생생한 숨결을 간직한 기록, 김종영은 조각뿐만 아니라 조형예술 모두에 관심이 컸고, 불모지인 한국의 예술 발전을 위해 후학 양성을 위해 강단에서도 30여년을 가르쳤다. 그의 예술적 통찰은 마침내 불각(不刻)의 미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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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 - 불각(不刻)의 아름다움
김종영 지음 / 시공아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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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은 예술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가 읽기에 조금 버거울 정도로 예술에 관한 정의, 예술사, 예술의 지향, 삶과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텍스트로 쓰였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간다. 어렵게 썼다는 의미가 아니라 쓰인 단어가 적재적소에서 예술을 설명하고 이해시켜 주는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독자는 평소 독서를 할 때 밑줄 긋는 것이 습관인데 이 책은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그어야 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신선한 지식을 공급해준다. 사실 독자는 이 책의 저자인 조각가 김종영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는 상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예술론을 처음 읽었다는 것도 깨달을 정도로 무척이나 많은 영향을 준다. 이미 지난 1982년에 타계하셨다 하니 독자는 불행하게도 그의 존재도 모른 채 예술을 즐겼고, 예술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는 뒤늦은 자책감마저 든다. '조각가'로 호칭되는 저자는 이 책에 조각 작품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이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미 예술계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한 예술성이나 그의 글에 담긴 예술론에 이의를 달거나 반론을 펴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고, 강단에서도 32년간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김종영은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불과 몇 명 안 되는 예술가의 한 사람(미술 평론가 이경성), “순수 조형 의지로 일관한 선구자”이자 “타고난 추상 조각가”(미술 평론가 유근준)이라 일컬어졌다.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었던 거장 김종영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관점으로 세계 속의 한국미술을 성취해 냈다고 평가되고 있다. 선비에 비유되기도 하는 고결한 성품으로 창작의 길을 걸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일생 헌신했다. 상업적 성공이나 화려한 이목을 좇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새로이 재조명되고 깊이 연구되어야 할 여지가 많은 예술가다. 김종영이 남긴 유고를 선별하여 오롯이 담은 이 책 『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은 그의 예술 철학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창작자를 위한 의미 있는 이정표라고 이 책을 출판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조각가 최종택(김종영 미술관장)은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세 번째 증보판이다.

최종택 관장은 각종 기고문을 비롯한 70편에 달하는 글을 추가로 발굴해 실었으며, 추가된 글들도 더 손 볼 데 없이 완벽한 원고로서 한 자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실은 글도 있다. 특히 이번 증보판은 ‘조각가로서는 탁월하고 특이한 솜씨이며 감추어진 중요한 일면을 보여준다’고 평가되는 다양한 그림도 만날 수 있다. 드로잉과 에스키스, 유화 작품은 물론 유년기부터 한학에 통달했던 그의 필체가 담긴 수목화 등 도판 80여 점을 수록했다.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던 선각자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 책에 제시된 다양한 기록은 치열하게 사색하던 창작자의 내면을 그대로 옮긴 소중한 사료라고 최종택 관장은 설명한다. 여러 경로에 흩어져 있던 글과 그림을 한 권에 집약하여 만날 수 있는 것은 후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누리는 일종의 특권이라며 『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은 1983년 작가의 1주기를 기념하여 펴낸 초판과 2015년 개정판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에 이은 증보판으로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도판 다수가 새롭게 교체했다고 강조했다. 추가된 부록에서는 당시 활동을 담은 기사 및 인터뷰를 비롯하여 개인 노트 속 연구의 흔적까지 확인할 수 있다.

 

 

우성 김종영은 추사 김정희와 프랑스 인상파 화가 세잔에게서 시공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예술적 공통성을 찾았다. 동양 사상에 대한 깊은 조예와 서양 미술을 넘나드는 너른 시야를 갖추었던 그는 ‘불각(不刻)의 미’라는 특유의 예술론을 꽃피웠다. 조각가로서 지향하는 “깎지 않음”의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예술 문외한인 독자는 조각가가 불각을 지향한다고? 책의 부제로 「불각(不刻)의 아름다움」이라고 버젓이 새기듯 표지 왼쪽 맨 위에 찍혀 있다. 그렇다면 불각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그를 아는 많은 제자들과 평단은 문자 그대로의 단순한 해석에 그쳐선 안 되는 이 담론을 바루고 넓혀 가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기록을 톺아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책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새로운 미적 관점에 도달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준다.

예술 애호가로 널리 알려진 BTS의 리더 RM(1994~)은 조용히 김종영미술관을 다녀가고 선생의 전시작을 SNS에 소개하며 작품을 직접 소장하기도 했다. 시대의 간극을 넘어 교감하게 하는 김종영 작품 세계의 메시지와 힘은 무엇일까?

책에 따르면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현실에서 유행의 잔향은 순식간에 휘발된다. 고전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과거의 지혜가 현재의 목마름을 채우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올곧은 신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 낸 인물의 꾸밈없는 서술은 긴 세월은 넘어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에 무한의 가치를 생활하는 것”이며 “인생에 있어서 모든 가치는 사랑이 그 바탕”이고 “예술은 사랑의 가공”(p.23)이라 전하는 김종영 작가의 당부는, 예술은 무엇이며 왜 예술이어야 하는가를 끝없이 고뇌하는 오늘날의 아티스트에게 길을 안내하는 별자리이자 새로운 영감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 초판 발행(1983. 12. 15) 때 〈서문〉에서 조각가 김세중(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김종영과 그가 쓴 글에 대해 "동서양의 문화를 총제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어디에 구애됨이 없다."고 전했다. 완당의 실사구시의 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했다는 말이다. 완당은 추사 김정희의 호 가운데 하나다. 실사구시 정신이란 속박과 자유, 민간의 자각, 개체성과 전체성의 문제들이며 무한의 질서를 향한 끝없는 탐구라고 김세중은 설명한다. 이에 덧붙여 이 책에 실린 김종영의 소묘는 다양해서 그의 관심 폭이 매우 넓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며 소묘의 영역을 넘어 회화의 경지라고 말해야 옳다고 극찬의 평가를 이끌어 낸다. 이루 다 정리하기가 어려워서 초판에는 육십년대와 칠십년대의 것을 많이 가려뽑았다고도 말한다. 이를 통해 형태가 추상적 경향으로 무르익어 갈 무렵에 오히려 김종영은 현실을 준엄하게 응시하고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각가로서는 탁월하고 특이한 솜씨이며 감추어진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다고 〈서문〉에서 김세중은 강조하고 있다.

김종영은 평소 말 가운데 우리가 흔히 쓰지 않는 몇 가지 희귀한(?) 단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이 책 증보판 축사에서 최종택 관장은 말한다. 〈초월〉, 〈창조〉, 〈사랑〉, 〈통찰〉, 〈불각〉 등이다. 이 단어들이 뜻하는 바는 한발 비켜서서 전체를 관조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에 무한의 가치를 생활한다는 것이다. 동양이라는 것 서양이라는 것 그런 지역성도 넘고 학문과 예술을 하나로 승화시키는 원대한 사상을 읽을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이를 키워드로 해서 6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예술가, 시대의 거울」, 2 부 「통일·조화·질서」, 3부 「예술, 그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4부 「전통과 창조」, 5부 「조각, 정신과 물질의 결합체」, 6부 「현대미술과 비행접시」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뒤늦게 발견된 각종 기고문이나 인터뷰 기사, 노트 기록 등은 책 뒷 부분에 별도 〈부록〉으로 실었다.

 


 

앞서 독자가 솔직하게 기술한 대로 이 책의 모든 문장은 독자의 평소 습관대로라면 책 전체의 글에 밑줄을 쳐야 한다. 학생들의 교과서로 쓰였다고 전하는 말이 있었듯 몇 페이지만 읽어도 내용은 물론 문장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부의 첫 장(章)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일찍이 주로 인체에 한정되어 있는 조각의 모티프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가져 왔다. 예술이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감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의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숙제가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과의 조화 같은 문제도 어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p.17)

작품이란 작가의 예술적 충동을 그때그때 기록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김종영은 밝힌다. 작품의 모든 세부는 구성의 통제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작품이 하나의 전체로서 있게 하고 작품을 정착시키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 구성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사앙, 역사적인 자각, 개성 있는 창의성, 이런 모든 것들이 작품의 구성 속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런 생각은 예술가와 관중으로 나아간다. 예술가는 누구나가 관중을 염두에 두게 되며, 예술가가 생각하는 관중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많고 넓을수록 좋다. 그러나 진정한 관중은 자기 자신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기만하면 관중을 속이는 셈이 될 것이고,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면 그만큼 관중에게 성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작품은 자신을 위해서 제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술가로서의 지향하는 바를 김종영은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를 알고서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극히 허황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미를 나는 아직 본 적도 없고, 그런 것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것은 전지전능의 조물주에 속하는 문제이다. 예술가가 미를 창작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p.20)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키워드에 대해 이 책은 자세하고 창의적 생각을 담고 있다. 〈초월〉을 통해 동서양의 차이를 극복하고,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고 나면 가장 마음에 남는 앙금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앙금은 〈전통〉이라는 것이지 않을까 문외한 독자는 생각해본다. 이 〈전통〉도 그의 김종영의 말을 들으면 크게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김종영은 '전통'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정의해 낸다. 이 지구상에는 시로 장구한 역사와 산더미 같은 유물을 갖고 있는 나라도 많지만, 그것으로 전통문화를 가졌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하였다. 오히려 보잘것없는 역사와 약소한 국가에서 몇 사람의 천재에 의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빛나는 문화의 전통을 세운 예를 볼 때, '전통'이란 단순한 전승이나 반복에 있는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끊임없는 탄생이고 새로운 인격의 형성을 뜻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통이라는 것이 현실을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문제와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역사적 감각 즉 과거, 현실, 미래를 동시에 생활하는 노력과 비판의 지속 없이 진정한 '전통'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p.169~170)

김종영은 또 '불각의 미'에 대해서도 확실한 주장을 밝힌다. 다소 비유적 표현이지만 천천히 새겨 읽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이에 따르면 고대 중국 사람들은 일찍이 불각의 미를 숭상하였다. 괴석 같은 데 약간의 가공을 했을 때는 손 댄 자국을 없애기 위해서 물 속에 몇 해를 넣어 두었다가 감상을 하였다. 자연석의 경우에 불각의 미를 최고로 삼는 것은 형체보다도 뜻을 중히 여겼던 탓이다. 한때 조형이념이 형체의 모델보다도 작가의 정신적 태도를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은 동양사상의 불각의 미와 상통한 것으로 김종영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예도 있다. 콘스탄틴 부랑쿠시나 헨리 무어의 작품이 조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싫어하고 천연스럽게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조형에 대한 독특한 의미를 구하는 태도이고 보니, 이것 역시 불각의 미라고 김종영은 말한다. 즉 자연에서의 조화를 구하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또한 작품이 확실하게 외연히 존재하면서도 항상 자연의 재질서와 상통하는 격조를 지니게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 작품이 어떠한 무엇으로나 기록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실제로 작품 처리에 있어 터치를 깨끗이 지워 버리기도 하고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도 많은 신경을 쓴다. 이렇게 해서 깎아 만든 조각으로서의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리고 될 수 있는 대로 하나의 객관체로서 자연스럽게 또는 필연적으로 작품이 있게 하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자연의 묘사가 아닌 작품으로서의 생명감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공간에 있으면서 공간을 호흡하고, 언제든지 공간에서 죽어 없어질 수 있는 이러한 생명을 갖기를 권한다.(p.148~149) - 「3부 〈예술, 그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작품과 사진’」 중에서

 

나는 단 한 가지 자신 있게 단언합니다. 자연과 인간 사회가 있는 한 예술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고, 우리의 희망은 계속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백 년 전 인상파 미술가들에게도 현실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무거운 전통의 압력에서 실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희망과 지혜를 준 것은 다름 아닌 대자연이었고, 인간의 현실이었습니다. 거기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르네상스의 지혜도 자연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희망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변과 그날의 생활 속에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p.263) - 「6부 〈현대미술과 비행접시〉 ‘현대의 조형예술, 무엇이 문제인가’」 중에서

 

저자 : 김종영

 

1915년 6월 26일 경남 창원에서 성재 김기호와 이정실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휘문고등보통학교와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1948년부터 1980년까지 32년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3년 4월 런던에서 개최된 《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조각콩쿠르에 한국 조각가로는 최초로 입상하였고, 1959년 장우성·김종영 2인전을 중앙공보관에서 열었으며, 1963년 <3?1독립선언기념탑>을 국민 성금으로 탑골공원에 제작하였다. 1975년 회갑을 기념하여 조소과 동문회 주최로 신세계미술관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80년 5월 조각가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을 개최하였다. 1980년 8월 정년퇴임 후 일 년여 투병 끝에 1982년 12월 15일 영면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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