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는 지능이 발달한 존재로서 타 종에 대해 압도적 힘을 신체가 아닌 도구나 무기로서 개발해 수렵 및 전쟁에 사용함으로써 집단적 다툼의 우위에 섰다. 지금의 현대 무기는 생명에 치명적이어서 노출되는 순간 거의 죽음을 맞이하지만 총기 이전의 무기는 상해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전투 능력만 상실케 하는 정도로 공격을 가해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로서 충분히 효용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 여부와 상관 없이 막상 상해를 입은 자는 생명을 건진다 할지라도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고통이 심하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정도이니 그 고통은 직접 전투 중 부상의 후유증은 엄청나다고 할 것이다. 상처가 치료된다 하더라도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하는 등 진통제가 서둘러 개발된 것도 전쟁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전투 중 부상을 당한 병사에게 투여되는 약품이 바로 진통제다. 우리가 잘 아는 '모르핀'이라고 불리워지는 약품이다. 그러나 이 약품은 독성이 강한 데다 중독성마저 강해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일정량 이하만 투여해야 한다. 약효가 떨어질 때쯤 또다시 찾아오는 고통은 다시 모르핀을 투여해야 하는데 잦은 모르핀 사용은 나중에는 효과가 점점 약화되다 다른 통증이나 수술이 필요해도 투여가 불가능해진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이 모르핀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진통제도 모두 같은 약리 현상을 보인다고 하니 지나친 진통제 투여는 예나 지금이나 규제 하에 투입이 가능하다.

 

고통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다른 방식의 시술 혹은 치료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견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었다.(p.29)

 


 

이 책 『고통에 관하여』는 의학적 논저의 제목 같지만 소설 작품이다. 작가 정보라가 중독성이 없고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진통제의 개발을 설정해 썼다. 과학의 발달로 완벽한 진통제를 개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SF 소설 성격이 강하다. 약품의 이름은 〈NSTRA-14〉이며 보편적 진통제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고통이 사라지자, 또다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고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신흥 종교 '교단'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하며, 제약회사에 대한 테러를 감행한다.

이 소설은 저자가 주로 머물던 호러와 환상의 세계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처음 집필한 ‘스릴러’라는 점에서 저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치고 거친, 세계의 기괴한 일면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읽는 이에게 뒤틀린 이야기의 쾌감을 전했던 전작 『저주토끼』와는 달리, 아 작품의 분위기는 처연하고 서늘하다. 또 묘한 온기도 있다. 아마도 이런 간극은 이 소설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맞닿아 있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어딘가 잘못된 세상, 그곳을 만든 사람들에게 끔찍하고 아름다운 복수를 선사하던 정보라의 소설은 이제, 거칠고 미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자’고 이야기한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이 소설의 특징을 "고통스러운 과거를 복기하며 자신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고,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자고. 세상과 싸우며 전복을 꿈꾼 사람의 결기가 녹아 있"는 이 소설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고 말한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에 K-장르의 매력을 알린 지 4년만에 내놓은 저자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저자의 '고통'에 대한 사유의 일단이 드러난다. 특히 사이비 종교와 불법 다단계 사업체 등으로 대표되는 착취적인 조직이 주로 사용하는 흔한 방식의 고통에 대한 설명이 인용되고 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 그 삶이 고통이더라도, 거기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오래 지속되면 고통을 견뎌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된다. 삶의 의미를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더 건강하고 자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찾을 능력과 자원은 이미 고통을 견디는 데 소모되어 사라진다."(p.31) 이 책의 사건의 중심에 있는 교단 또한 세력을 확장하고 신도를 붙잡아 두기 위해 같은 방식에 의존했다. 신도들은 고립되어 고통받았고, 그 고통을 견디는 과정에서 고립되었으며, 그 고통의 끝에 그들의 삶에는 교단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모두 한자로 한 자씩으로 지칭된다. 우리가 쓰는 상용한자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한자어가 많아 정확한 뜻과 저자가 이들의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소설은 모두 6부로 나뉘어져 있다. 고통에 관한 기능이나 몸의 작용과 관련이 있는 기관들의 이름이 모두 등장한다.

1부 기억 : 해마체

2부 온도 : 체성감각 영역

3부 정서 : 변연계

4부 논리와 판단 : 전두엽

5부 깨달음 : 시상하부

6부 삶 : 온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테러 사건 후, 잠잠해진 교단에 끔찍한 살인 사건이 또 일어난다. 온몸이 고문 흔적으로 가득하고, 체내에서 다량의 약물이 검출된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교단의 지도자들이다. 형사들은 진범을 밝히기 위해 무기징역으로 수감되어 있던 테러 사건의 범인 ‘태’를 세상으로 불러들인다. ‘태’의 기억은 교단에서 시작된다. ‘태’는 형인 ‘한’과 교단의 시설에서 자랐다. 고통을 섬기며, 고통의 무게를 모든 사람들에게 지우려 했던 ‘태’의 신념은 무고한 피해자를 낳았을 뿐이다. 제약회사를 경영한 ‘경’의 부모도 이때 목숨을 잃었다. ‘태’의 도움으로 형사들은 교단에서 떨어져 나와 은거 중인 ‘한’을 붙잡지만, 어떤 진실도 밝히지 못한 채로 풀어준다. 호수 근처, 제약회사가 철수하며 사람이 모두 떠나 폐촌이 된 황무지를 조사하던 형사들은 그곳에서 불법 약물 제조 시설과, 유치장에서 풀려난 뒤 숨어 있던 ‘한’을 발견한다. ‘한’은 자신이 살인범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태’도 형은 범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지만 무수한 증거가 ‘한’을 범인이라고 가리킨다. 한은 다시 유치장에 갇힌다.

토네이도가 들이닥친다며 기후 경보가 울리던 때, 또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유치장에 갇혀 있던 ‘한’이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CCTV는 고작 3분 동안 작동을 멈췄고, 그 3분을 전후로 유치장에 드나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서에 설치된 CCTV를 모조리 뒤지며 조사해 보아도 모든 사람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 단 한 명, ‘태’의 담당 정신과 의사 ‘엽’을 빼고. 형사들은 CCTV를 돌려 거기 찍힌 의사를 찾으려 하지만, 그 순간 불어닥친 토네이도에 경찰서 건물이 정전된다. 한참이 지나 토네이도가 물러가고,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의사는 어디에도 없다. 유치장에 혼자 남겨진 ‘태’는 그를 떠올린다. 테러에 관한 질문, 교단을 향한 냉철한 태도, 고통에 관한 특별한 통찰력……. ‘태와’ 그를 둘러싼 ‘고통’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던 ‘엽.’ 대체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교단과 제약회사의 싸움에서 그는 무얼 얻고자 했던 것일까.

 


 

고통의 패러다임을 바꾼 강력한 진통제의 등장이라는 설정에도, 등장인물들이 살면서 마주해야 했던 각가지 고통은 일상의 우리에게도 몹시 익숙하다. 몸과 정신을 혹독한 환경에 놓아두면서까지 더 나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는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들인 고통의 시간들을 ‘삶의 의미’라 부르며 견디고, 버티고, 참아내 왔다. 이런 ‘정상성’의 비틀린 부분을 매섭게 포착해 온 정보라 작가는 고통의 의미를 의학적, 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분해하고 재조립해 마침내 하나의 결론으로 내보인다. 몸과 마음에 지독하게 새겨진 고통의 기억, 그 순간들은 과거에 내려놓자고. 우리가 내딛지 못했던 미래로 이제 한 걸음 나아가자고.

저자는 책의 뒷 부분 「작가의 말」을 통해 ‘-하지 않으면’ 뒤에 구체적인 설명조차 덧붙일 수 없는, 언제나 쫓기는 삶의 두려움. 폐지 줍는 노인을 돌보는 사회안전망이 없고 한번 비정규직은 평생 비정규직이니, 백세 시대에 나는 죽지도 않는 질긴 목숨을 저주하며 빈곤 속에 버려질 것이라는 공포.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기 위해서 잠을 못 자기도 하고 밥을 못 먹기도 하면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하여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라고 쓰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이 잘못 되어가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는 듯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고문 기법이나 세뇌 기법이 현재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하는 말로 이해된다.

 

저자 : 정보라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대학에서 러시아와 SF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예일대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에서 러시아 문학과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F와 환상문학을 쓰기도 하고 번역하기도 한다. 중편 「호(狐)」로 제3회 디지털작가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단편 「씨앗」으로 제1회 SF 어워드 단편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붉은 칼』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등의 장편소설과 『저주토끼』 『그녀를 만나다』 『씨앗』 『왕의 창녀』 등의 중단편 소설집이 있고, 『탐욕』 『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 『안드로메다 성운』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거장과 마르가리타』 『구덩이』 『유로피아나』 『일곱 성당 이야기』 등 많은 책을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보다 향기로운 날들 - K-플라워 시대를 여는 김영미의 화원 성공백서
김영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꽃보다 향기로운 날들』은 참 예쁘다. 책을 읽어보니 더 예쁘다. 아마 저자의 예쁜 마음이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저자는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단촐하게 써냈는데도 감동적이다. 감동은 저자의 글 솜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터다. 매우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나, 반대로 쉽고 가벼운 일을 처리하면서도 늘 진솔하다. 이는 저자의 글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강점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우리는 늘 꽃을 보며 산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일상에서 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어느 날 꽃을 보면서 굉장히 오랫만에 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꽃을 못 본 게 아니라 안 본 것이다. 꽃을 보면 누구나 예쁘고 아름답고, 좋아할 정도로 살다가 처음 보는 느낌으로 새삼스레 감동하기도 한다. 꽃을 매일 본다고 꽃을 본 게 아니다.

시인 나태주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노래한 바 있다. 자세히 본다는 의미는 관심을 갖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본다는 의미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꽃을 좋아한다는 말은 늘 마음속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산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이유다.

저자 김영미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이 책을 쓰며 지나온 삶을 세심히 돌아보게 되었다. 기억의 저편에 숨어 잇던 작은 이야기들까지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은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많은 것이 정리되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고, 숨찰 정도로 오르기 어려운 큰 산을 넘어온 것도 같다. 나는 충분히 회복되었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행복한 꽃집의 일상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날 저자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으면 지금의 삶이 새롭게 느껴질까? 또 몸과 마음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만족한 표현을 했을까? 독자로서는 표현의 실체에 대해 느낄 수도 없고, 비교할 수는 더더욱 없는데 저자의 표현은 '새삶'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활력 넘치고 아름다운 삶을 되찾았다는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출판사 측 책 소개글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피어나려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보기엔 한없이 작고 여린 꽃일지라도, 한기가 남아 있는 서늘한 땅에서 매서운 꽃샘추위마저 이겨내고 꿋꿋하게 피어난 강인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렇듯 살아가면서 맞이하게 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해낼 힘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련과 역경을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극복해 희망과 행복으로 전환시키느냐다. 이 책에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그러한 삶의 희망과 행복의 전환회로를 발견해낼 수 있도록 힌트를 저자가 건넨다고 말한다. 저자 역시 지나온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기에 아팠던 작은 추억조차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삶을 돌아보고 자신을 바라보니 삶의 순간순간을 견딘 모습이 대견해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고도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순리를 한마디 독자들에게 건네기도 한다. "누구나 위로받아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럴 때, 내가 먼저 나를 위로하고 사랑해주자. 행복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천히 강물처럼 흘러들어 온다."(p.19)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작은 꽃가게에서 행복을 배우다〉, 2장 〈나는 행복을 파는 사람입니다〉, 3장 〈오늘도 행복에 진심입니다〉, 4장 〈마음이 행복해지는 꽃집〉 등이다. 각 장마다 6~8개의 작은 제목의 글들이 적혀 있다. 제목만으로도 글의 성향을 짐작케 한다. 예를 들면 1장의 두 번째 글 「비밀의 화원」은 지금의 저자 자신이 운영하는 꽃집을 이름한다. 이 꽃집을 운영하면서 느꼈을 행복감이 '비밀'의 주인공이다.

"힘든 여정을 잘 견딘 날들이 쌓여서 결과물이 나오고 기적 같은 일들이 나타난다. 비바람을 견딘 나무가 단단해지고 좋은 열매를 맺듯이 지나온 힘겨운 날들은 나의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월트 디즈니는 '우리가 파는 것은 행복이다'고 말했고, 성공한 어느 유대인도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라고 말했다. 나의 경우에는 꽃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웃으며 행복감에 젖어서 나가는 것을 볼 때, '아, 내가 행복을 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날의 수고로움은 그 순간 모두 사라진다. 어느 때보다도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p.24)

 

 

저자가 직접 지은 꽃집의 이름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줄여 〈사람꽃농원〉으로 했다고 말한다. 안치환의 노래 제목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그렇게 상호명이 됐다고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같은 사람을 두고 어떤 이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표현하는데 비해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따져보니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둘 다 가깝다. 아름답다, 무섭다, 두렵다, 예쁘다 등은 어떤 대상에 대한 느낌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같은 대상이 다른 느낌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틀린 말을 찾아내기 어렵다. 아니, 당초 답이 없는 질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옳고 그름이나 정답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책에 나오는 문장들은 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자의 글은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감정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같다고 느끼거나 다르게 느끼거나 둘 중 하나의 표현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말할 때 꽃을 떠올린다. 꽃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하고 저자는 반문한다. 화려하고 심지어 향기까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알 수 없는 환희에 젖었던 그 노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사람이 느끼는 아픔과 고통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아픔을 견딘 이에게 보내는 찬사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살아오면서 현실의 벽에서 저자는 늘 새로움에 도전했다고 털어놓는다. 새로운 상황으로 나가야 할 때 사람은 '적당히 하고 살라'는 유혹에 흔들리지만 버텨낼 것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조언한다. 저자도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변화 앞에서 유연해지고 융통성 있게 행동할 능력이 있다고 역설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불안감에 휘말려 마치 벽에 막힌 듯이 멈춰 서곤 하지만, 오히려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는 게 저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한 발짝만 내디딘다면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이 저자의 경험을 통한 삶의 지혜다.

 


 

2장 두 번째 글 「감사기도는 행복의 씨앗을 심는 것」에서 저자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난 뒤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삶이 힘들고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아마 극단적 선택의 갈림길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직접 직면해보니 너무나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한다. 혼란 그 자체였을 것이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오직 끔찍한 고통스러움만이 엄습했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시간이 조금씩 천천히 흐르면서 이 고통 속에서 앞으로 살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자신의 과거도 돌아보게 되고, 결국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어떻게 잘 해낼까?만 생각하며 여유도 없이 분주하게 살았다. 일하는 엄마로서 두 아이들을 잘 키워내려 했고, 아내이고 함께 일하는 동료로 남편과 믿음의 좋은 가정을 가꾸려 했다. 꽃집을 잘 일구어서 대를 잇는 사업체로 성장시키고 싶었다. 나는 내가 가진 역량을 쥐어 짜내듯 그렇게 쉼 없이 살아왔다.

저자의 감사는 여기 현재서부터 시작해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앞날에 이르기도 한다. 주제는 '감사'다. 많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감사의 표현 중에는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사랑 많은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랐다. 감사한다. 미래에 대해 꿈꿀 수 없는 뼈에 사무친 가난도 있었지만, 그래도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사랑받으며 살아온 어린 시절이 감사하다. 나에게 좋은 사람. 살아온 힘들었던 시절을 잊게 해준 좋은 친구였던 남편을 만난 것도 감사한다. 거울을 보듯 비슷한 생각과 활동을 하며 나의 분신 같았던 남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내가 엄마가 되었던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만남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우리에게 있었지만, 남편의 든든한 사랑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었기에 힘든 줄 모르고 살아왔다. 돌아보니 나의 모든 순간이 감사이고 축복이었다. 저자의 감사가 지금의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이라는 데 공감한다.

 


 

저자의 감사는 새로운 삶의 원천이 되었다. 부정과 고통에 빠졌다면 변화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기에 감사의 마음이 지금의 저자 자신을 만들었다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냈다.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한계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현재 자신의 삶을 극복하고 싶다면 먼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하게 되는 감사의 기도를 해보라고 독자들에게 조심스레 조언한다.

그리고 찾아낸 행복의 비밀을 꺼내놓는다. 행복의 비밀은 감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이라는 말은 설명하며 행복의 비밀과 연결시켜 준다. 무언가를 깨닫고서 그 깨달은 것을 삶 속에 녹여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삶의 경험,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의 경험, 그리고 과정에서의 난관 극복 등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이다. 이를 조심스럽게 독자들에게도 권유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뒷 부분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다시 언급한다. "환경이 답답하고 감사가 나오지 않고 원망과 불평이 나올 때 당겨서 감사해보라. 오늘 드린 감사가 내일의 삶에 능력이 될 것이다."(이찬수 목사의 『감사 노트』 중에서)

류시화 시인은 인도를 여행하며 그곳의 사막과 바람이 들려 주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자연이 그렇듯 우리는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살면서 받은 선물이 사라진 것이다. 잃은 것은 없다.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이렇게 책에서 인용한 문장들은 삶 속에서 녹여냄으로써 저자의 살아감의 힘이 되고 감사의 마음과 함께 어울려 지금의 행복의 정원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4의 일곱번 째 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꽃가게 전면에 붙여놓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라는 글귀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번쯤 우리의 유한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 순간이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리라. 우리는 갈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늘 깨어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게 될 텐데, 더 사랑하며 살 텐데.(p.189)

저자 : 김영미

 

플로리스트, 사람꽃농원 대표

· 간호사로 수원의료원과 고려대학교 환경의학연구소 재직

· 2004년 사람꽃농원 창업

· 국가공인 화훼장식기사

· 국가공인 화훼장식기능사

· (사)한국프리져브드플라워작가협회 작가

· 퍼스널 웨딩플라워 전문가

· 꽃집 플라워 상품 컨설턴트

· (사)한국 꽃예술작가협회 수향회 전문강사

· 전국 트랜드 리더스클럽 전문강사

블로그 : https://blog.naver.com/ymhamin

인스타그램 : http://instagram.com/_human_flower_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이석용 지음 / &(앤드)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은 사형 제도 폐지나 마찬가지로 현재 실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 같다. 집행하지 않을 제도라면 공식 폐지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혹시 여론이 아직 사형 제도를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선진 외국들은 사형 제도를 없앴다고 하던데... 사실 사형 제도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제도이긴 하다. 인류가 공동 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제도 아닐까 하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문구는 사형 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류와 함께 법 역시 조금씩 발전해 나간다. 사형 제도는 국가 권력이 아무리 엄격하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마땅히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인식이 근대 이후 확산되면서 인권 보호 차원에서 사형 제도는 차츰 사라져 갔다. 그러나 법 감정은 다른 것도 사실이다. 끔찍하고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까지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냐는 문제에 부닥친 것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라도 종신형(무기징역)으로 사회와 격리시키면 된다는 논리다. 인간에게 인간을 죽일 권리를 어디에서 받았는가?라는 원론적 주장에 부닥치면 사형 제도 폐지는 마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역시 그 중간에서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한 것이다.

이 소설 작품 『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사형 제도를 다룬 내용은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3명의 범인들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로 법으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형을 실제 집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형 대기자'의 신분인 것이다. 이를 정부가 사실상 사문화된 사형을 집권자의 저조한 인기를 끌어올릴 방법 중 하나로 사형을 집행하려는 집권 세력의 '음모'에 의한 사형 집행을 갑자기 추진하려는 것이다. 너무 끔찍하고 비인륜적, 반사회적 범죄이기에 '사형'시켜야 한다는 국민 감정에 편승해 집권자에 대한 인기를 끌어올리겠다는 비루한 계획에 의한 사형 집행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두려 한다. 이쯤 되면 집권 세력을 위한 '살인'에 더 가깝다.

 


 

표제어와 다르게 소설의 첫 문장은 대통령 집무실 표정을 담았다. "대통령은 제 방에 손님처럼 앉아 있는 법을 안다. 우두커니 앉은 폼이 집무실과 함께 압축 포장된 부실 식재료 같다. 느슨한 올가미처럼 보이는 넥타이와 짝짝이로 걷어 올린 셔츠 소매, 흐트러진 행색이 그나마 부패한 이미지보다는 부실한 쪽으로 거들고 있다. 옷걸이 아래 널브러진 고급 브랜드의 양복 상의가 같은 처지처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그렇게 대통령은 혼자서 집무실의 시공간을 일그러트리는 중이다.(P.7) 분위기 설명은 이어진다. 임기 3년차의 대통령의 인기는 당선 이후 꾸준히 내리막이다. 이대로라면 지지율은 한 자리, 아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제로에 수렴할 것이 분명하다고 저자 이석용은 표현하고 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임기 3년차라면 대개 지지율을 걱정해서는 안 될 자리다. 설혹 정체되거나 다소 떨어져도 권력에 적신호다.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때문에 대통령을 보좌하는 각 부처 장관이나 참모들이 꺼내든 문제 해결 카드가 걸작이다. 임동수 법무 장관과의 대화.

 

대통령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여론의 질타가 검경을 넘어서 정부와 대통령 자신을 향해 쏟아질 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 장관은 사법부의 한 관계자가 사안의 위중함이 탄핵으로도 번질 수 있다고 한 말을 덧붙였다.

“괘씸한···. 어, 어쨌거나 뭔가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곳저곳 물어보니 이 사안은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아니, 그럴 거라고 했습니다.”

“누가요?”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르시는 게 더 낫고요.”

“그건 알았네. 그런데, 그 결단이라는 게···?”

“돌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매달면 어떻겠습니까?”

“매, 매달아? ···뭘?”

“사형숩니다.”(p.10)

 


 

사형 집행을 갑자기 실행한다면 그 뒷 감당이 만만치 않을 것을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다. 법의 후퇴, 전 세계로부터 여론 악화, 국민의 시선 등 한두 가지 걸림돌이 아니다. 지지율 회복을 위해 대통령과 장관, 비서관 등 참모들의 대화가 이런 거라면 흔히 하는 시쳇말로 "볼짱 다 본 집안"이다. 고위 관리의 부정부패에 입막음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정상적인 회복 방안보다는 급한 불 끄기 식의 짧은 의견밖에 더 나오겠는가? 정치를 모른 시민들이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줄줄이 이어지는 선거 때문에 지지율에만 신경 쓰다 보면 결과는 오히려 역행하거나 말 그대로 한 석도 못 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걱정만 늘어놓고 있는 사이 시의적절하게 국민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사건이 하나 해결된다. TV를 통해 뉴스 자막엔 '철물점 초등학생 연쇄 납치 살해 사건 용의자 강현태 검거'라고 쓰여 있다.

 

"저, 저놈, 이제 잡힌 거요?

대통령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그러게요? 벌써 잡힌 줄 알았는데···.

정의원도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그동안 누구 하나 아무 얘기도 안 한 거예요?"

대통령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p.17~18)

 

 

청와대 본관 2층 백악실. 테이블 위엔 여러 종류의 술과 탄산수, 안주들이 즐비하다.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자고 모였던 게 그만 술판이 되어 버렸다. 여당 중진인 정경수 의원, 강영민 정무수석, 임 장관, 그리고 대통령. 전장을 앞두고 둘러앉은 장수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른바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대통령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표졍이 어둡다는 것은 술판과 어울리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상황이 좋지 않다. 국제 신용도가 특히 그렇다. 그런 이유로 수출이 전반적으로 주저앉고, 물가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특히 집값 상승과 교육비 부담은 최악이다. 가계 대출도 대형 지뢰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는 강 수석의 보고다. 대통령이 반문한다. 경제지표는 나쁘지 않다고 그러던데?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니까 건설업계가 물량을 넘치게 뽑아내고 있기 때문이란 답이 되돌아온다. 그럼 괜찮다는 게, 어쨌든 다행이란 게 대통령의 인식이다. 그것도 정식 회의도 아닌, 술좌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꺼낸 말들의 잔치... 이 정부의 앞날이 캄캄하다는 인식은 독자들을 답답하게 한다.

뾰족한 대안이 없기에 연일 보도되는 흉악범 강현태 사건으로 국민 관심은 일단 쏠렸다. 이런 가운데 사형 집행 계획은 물밑에서 계속하고 있었다. 구체적 계획도 세웠다. 사전 분위기를 잡기 위해 지금 체포된 강현태에 대한 국민 감정을 부추기는 방법으로 '극악범죄철폐위원회'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위원 구성 계획도 세웠다. 마땅한 인사로 채울 생각이다. 집권당으로서의 권력이고 권한이다. 충분히 이용해 새 위원회로 사형 집행을 결정하려는 것이다. 강현태 흉악범 체포를 계기로 국민의 감정을 "사형시켜라"는 쪽으로 유도한다. 이럴 경우 사형 선고 후 교도소에서 대기 중이던 이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된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사형 집행 대상자 3명은 선별되었다. 대통령이 다짐하듯 결정하고 나면 일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란 예상은 적중한 듯 보인다. 대통령은 회의에 참석하고도 회의에 없는 '유령 대통령'으로 역할을 한다. 집행될 경우 자칫 음모가 드러나면 오히려 일이 더 크게 될 것을 우려한 참모들과 극악범죄철폐위원회 위원들이 알아서 진행한다. 법부장관 임동수는 최종 선정을 인권위원회로 미룬다. 인권위원장은 그냥 임 장관이 지명 권한이 있으니만큼 임 장관에게 되돌린다. 유령 대통령이 끼어든다. "아무리 사형수라지만 법무부에서 선정하고 법무장관이 대상을 뽑는다면 그냥 한 사람을 지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법무부에서 신중하게 후보군을 선정했으니, 인권위원회에서 인권이란 필터를 다시 한번 숙고해 주신다면 크게 실수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p.65)

임 장관이 교정본부장이 답변한다. 사형 집행이 중지된 지 20년이 넘어서 집행 과정이나 세부 규정의 수정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공지하듯 말하고, 사형 집행을 경험한 연출담당 교도관이 없음을 지적한다. 연출이라니? 사형 집행을 하는데 왜 연출이? 독자의 궁금증은 곧 풀린다. 사형수를 사형장까지 호송하는 걸 '연출'이라고 하는데 이번엔 특히 '마지막 식사'가 집행 전날 저녁 식사로 제공될 예정이어서, 임시 수용실에서 만 이틀을 함께 보내고, 당일 새벽 사형장으로 인도할 교도관들이 필요하는 점을 강조한다. 사형장은 전국에 모두 세 곳이다. 만약을 대비해서 세 곳 모두에 집행을 도울 교도관들을 배치했다고 보고한다. 마지막 식사 메뉴를 묻는 것까지 일련의 조치들을 추가로 덧붙인다. 식사는 누가, 어떻게 준비합니까?란 질문에 교정본부가 연출 과정과 식사 준비에 관한 세부 사항은 모두 허태수 특임교정기획관이 지휘한다고 지목하고 소개한다. 허 기획관에 따르면 사형수는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고, 당국에서 주는 자유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주문식일 경우 일정 비용을 초과하거나, 주류이거나,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불가하다고 사전 고지하며 꼼꼼히 듣고 사형수가 원하는 음식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따른다고 말한다. 가격은 7만 5천 원이며, 주류 등은 금지된다고 밝힌다.

 


 

요리사 X가 내정된다. 요리사 X는 사형 집행 계획에서 요리사는 필수적인데 당국의 제안을 요리사들이 거절한다. 호텔 요리사 등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일절 회피하고 있어 난항이라는 것이다. 군부대 요리사를 선정할 것을 제안하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보안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는 점도 못마땅하다. 그런데 허 기획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옴으로써 문제는 해결된다. 그는 요리사로 참여하는 데 동의하지만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내세운다. 하나, 신상정보는 벌대 비밀로 할 것. 둘, 모든 취재 요청과 그 시도로부터 보호해 줄 것, 셋 마지막 식사 이틀 전에는 사형수의 신상에 대해 알려줄 것 등이다. 이는 요리를 시식하는 자에게 가장 적당한 것으로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한다. 특이한 어려운 점이 아니고 어쩌면 당국이 더 신경 쓸 부분이란 생각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X는 보안 서약을 할 것도 약속하면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추가한다. 넷, 요리는 요리사 재량에 맡길 것, 다섯, 사형수의 식사 후 소감을 알려줄 것, 여섯, 보수 없이 재능 기부로 해줄 것. 허 기획관뿐만 아니라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위원들도 미소로써 수락을 했다.

허 기획관은 위원들에게 요리사 X의 몇 가지 개인 정보를 알려준다. "다들 아실 만한 해외 유명 호텔에서 오랫동안 수석 셰프를 맡았던 유능한 사람입니다. 이걸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지만, 비밀로 해 달라는 이유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떨어져 지내던 아들을 병으로 여의었습니다. 아내가 그 뒤를 따라서 갔고요. 그 죄스러움으로 일을 그만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전국 구치소에서 자원봉사를 해 오던 터라 인연이 되어 알고 있습니다."(p.75)

 


 

여기서 요리사가 이름 없는 X로 표기된 이유를 알 것 같지만 정작 이유는 엉뚱하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약 3분의 1도 안 되는 부분이다. 약 3분의 2 이상은 요리사와 세 명의 사형수,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전부 말할 수 없는 것은 스포 때문이다. 이 소설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나쁜 서평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소설,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은 영화 내용의 영화를 미리 알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격이다. 이 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여러분의 작품 감상을 위해서 지금까지 내용을 잘 읽고 숙지했다면 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을 귀띔하기로 한다. 앞으로 소설은 요리사 X가 주가 되어 이끌어 가고, X와 사형수, 그의 과거 등이 절묘하게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 복잡하게 얽힌 과정에 반전도 나타나고 사건이 어지럽게 얽히다가 한순간 독자들의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이는 저자 이석용의 글쓰기와 유기적이고 치밀한 구성, 필연적인 반전, 그리고 갈등 해소 등이 이 작품의 격을 높여준다. 출판사가 소개한 적절한 표현의 추전평을 하나만 덧붙인다.

신선한 발상과 시의성 있는 소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각각의 인물에 얽힌 사연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가독성을 높이고 있으며 일종의 심리 드라마로서 마지막 반전도 뛰어나다. 교정, 교도, 사형, 법, 정의 등 가볍지 않은 의제에 대해 진지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 유성호 (문학평론가)

 

저자 : 이석용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국민대 건축대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여러 대학의 건축학과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교과서 연구위원과 여러 박물관·미술관 연구에도 참여했다. 제7차 국정교과서(고등학교 건축설계제도) 연구위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연구원(전시분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중층화 연구 공동연구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 기본구상 연구 공동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2011년 첫 장편소설 『파파라치』(청어람)로 제1회 황금펜영상문학상 금상을 받으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마녀 바라쿠다의 정원』으로 2015 한국안데르센상 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장편 소설 『클럽 페르소나』(책밥)를 출간했다. 건축 교양서로 2016년 『건축, 교양이 되다』(책밥)를 펴냈고, 2019년 동화 『내일도 야구』(창비)를 출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로베 저편의 목소리 - 구로베 협곡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
고노가와 준코 외 지음, 박은정 외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구로베 저편의 목소리』는 일본에 있는 댐 공사에 왜 한국인들이 노동자로 일했을까?란 의문에 대해 답하는 역사서이다. 표제어로만 본다면 자칫 소설 작품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고노가와 준코, 호리에 세쓰코, 우에다 스에노 등 3명의 일본인 저자들이 직접 뛰고 취재해 발굴한 논문과 르포 형식의 글을 책에 실었다. 의문점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왜 일본인들이 구로베 댐 공사에 한국인 노동자가 있었고, 희생 당한 사실을 밝혀 내려는 것일까. 구로베 댐은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높이로도 유명한 일본 최대의 댐으로 손꼽힌다. 이 댐은 일본 도야마현에 있으며 협곡의 풍광이 아름다워 일년 내내 관광객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곳이라고 한다. 수력발전을 위해 지어졌으며 이 거대한 댐 건설을 위해 일본 건축 기술을 집대성한 구조물로 손꼽히고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웅장한 풍경을 자랑하는 구로베댐 아래 조선인 강제 징용의 역사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은 쓰여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물론 일본 정부의 공식 기록이 아니다. 강제 징용이다보니 착공 당시부터 조선인 노동자의 존재를 부정했을까? 그러나 저자들이 확인하 바로는 착공 당시 징용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조선인 신분을 일부러 숨긴 것인지 전후에 삭제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 조선인 노동자는 없었는지 불분명한 상태로 일본 최대의 댐은 묵묵히 제 기능을 오늘날까지 수행해 왔다. 이 댐은 40년 걸려 1963년 완공한 것이라면 일제 때인 1922년 안팎의 시기에 착공했다는 이야긱다. 당시 신문이나 정부 문서, 혹은 기업 임금 등의 문서에 남겨져 있을 텐데 조선인은 없다고 일본 정부는 주장하고 있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강제 징용이라면 댐 공사 중 사고 등으로 사망하거나 병사하는 등은 역사적 문제로 비화될 문제다. 일본 정부는 당시 댐 구역 행정기관인 도야마현의 기록 부재만 되풀이하고 있다.

 


 

강제 징용은 전후에 문제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완공된 후 철저하게 삭제되었을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이에 저자들은 정부의 입장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입소문이나 누군가의 말을 듣고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 일했던 사람 중에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어 혹시 그들을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아무튼 패전 후 일본 정부의 입장은 피해 당사자 국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구로베 댐 공사에 조선인도 강제 징용이든 자원 노동자이든 일한 사실까지 왜 숨기려 하는가. 국제적 문제로 비화되면 외교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서기 때문일까? 똑같은 전쟁을 수행하고 일제보다 더 잔혹한 학살의 경험을 가진 독일인들은 깨끗이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과 진정한 사과 등을 참회의 태도를 보이는데 일본은 너무나도 다른 행보를 보인다. 그러니 입으로 전해진 말이라도 파헤쳐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피해자 입장 아니겠는가. 저자들은 한국인들이 아닌데 일본 정부에 반하는 기록물을 썼을까? 양심적 일본인인가? 책도 저자들도 처음 보고 들어서 독자 역시 확인된 사항이 아니라 조사 결과로서 조심스럽게 읽었다. 책을 읽고 나니 사안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인인 독자는 일본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다. 일제의 태도와는 다른 일본인도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했다.

공식적 일본 정부의 주장은 아니지만 양심 있는 일본인들의 말이라서 오히려 한국인이 조사 발굴한 것보다 오히려 더 신뢰감이 가기도 한다. 아무튼 이 책은 일본인 저자 3명이 공동 입장으로 구로베 댐 공사에 한국인(당시에는 '반도인', '조선인'이라고 칭했다고 함)이 동원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 대규모 눈사태로 목숨을 잃거나 공사중 사고로 생명을 잃은 한 많은 죽음이 많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눈시울이 붉어진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뒤늦게나마 저자들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저자들은 당시 조선인이 왜 바다 건너 구로베까지 와서 일을 했는지, 그리고 왜 그들의 존재가 어둠 속에 묻혀버린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구로베댐의 건설 과정, 특히 구로3과 구로4를 중심으로 추적한다.(구로베 댐 4개의 공식 명칭은 구로베 1수력발전소, 구로베 2수력발전소, 구로베 3수력발전소, 구로베 4수력발전소이지만 저자들은 약칭으로 '구로1' '구로2' '구로3' '구로4'로 사용했다) 숫자를 매긴 것은 구로베 댐이 4개로 인근에 지어졌으니 공사 순으로 순서를 매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로3' 구간은 구로베댐 공사 중 가장 가혹한 환경이었다. 저자 3명 중 한 명인 호리에 세쓰코가 쓴 책 〈머리말〉에 따르면 구로베강 제3발전소에서 터널을 통과하여 6km 상류에 있는 센닝다니까지의 댐을 말한다. 이 댐은 중일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기 바로 직전인 1936년부터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는 1940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이 지역 사람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돈을 벌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조선인들도 상당수 건설공사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구로3' 댐 공사를 포함한 구로베강 전원 개발에 종사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단신으로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함바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들은 구로베 협곡 입구인 우나즈키에 살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1990년대 현재 오륙십 대 나이인 현지 사람들에게는 분명 조선인 동급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이전 세대에서도 구로베 선상지의 농가에서는 농한기가 되면 협곡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까 그 사람들도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이 지났으므로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들은 당시 일본은 최신 기술을 사용하여 위험을 줄이고,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주장했지만, 사전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완성하려 무리하게 강행한 공사였다는 점도 밝혀내고 있다.

 


 

저자들이 밝힌 바로는 1940년 '구로3' 댐이 완성되던 시기에는, 공사 기지인 우나즈키를 포함해서 우치야마의 인구는 4,830명이었다. 우치야마의 인구와는 별개로 '구로베 오쿠야마 국유림'의 함바집에 기거하는 공사 관계자가 3,500명이었는데 그 중 약 3분의 1이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노동자 혹은 주민으로서 사회적, 경제적인 면에서 공헌한 구성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나즈키 마을의 역사나, '구로3' 댐 건설을 모델로 하는 요시무라 아키라의 소설 『고열수도』에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 어려운 공사를 이뤄낸 사토공업주식회사(사토구미)의 회사 연혁인 『110년의 발자취』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물론 역사적인 건축물 공사에 종사했다고 해서 기술자나 노동자들이 언급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을 통해, "조선인 노동자가 없었으면 '구로3' 댐은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들을 수 있었고, 당시 신문에도 일본인 이름과 함께 사고 피해를 입은 조선인의 이름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공사 당시는 전쟁 중이었고 조선인 '황민화' 추진 정책이 한창이어서 신문에도 미담 기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일본 각지에서 이미 100만 명이나 되는 조선인 노동자가 차별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저자들이 왜 이 책을 쓰기 위해 구로베 댐 건설 조선인 노동자의 유무를 추적해는지의 이유다. 이 댐 공사 때는 폭발, 고열, 눈사태 등으로 인한 사고가 빈번히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일본인 노동자와 더불어 수많은 조선인이 희생되었다. 댐 공사가 시작되었던 1900년대 초는 일제강점기 시절이었고, 이미 일본 각지에 100만 명이나 되는 조선인 노동자가 차별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이에 관한 연구나 간행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당시 댐 건설 관계자와 그 가족, 유족들을 취재하고 신문 기사, 잡지, 영상 등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강제 징용·노동에 대한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있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구로베강 제3발전소 건설」(고나가와 준코)에서는 공사 자료와 관계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조선인 노동자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제2장 「조선인 유족들의 반세기」(호리에 세쓰코)에서는 ‘구로3’ 시아이다니 눈사태를 중심으로 구로3의 노동자들, 사고 유족들을 찾아간 한국 여정을 보고한다. 마지막 제3장 「도야마현의 조선인 노동자」(우치다 스에노)에서는 구로베의 조선인 노동자의 역사적 배경을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확인한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조선인 노동자 존재의 의미를 찾고, 일본이 저지른 잘못의 근거를 조명함으로써 앞으로의 한일관계까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이 책이 "저 발전소에, 이 도로에 당신네 나라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습니다."라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하는 계기를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이라고 독자는 기대한다.

 

3장 「도야마현의 조선인 노동자」에는 〈'강제연행' 이전사〉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장에서 저자 우치다 스에노는 공사장에서 조선인들이 처했던 상황과 도야마현의 대응을 5가지 점에서 살펴본 기록을 모두 적었다. ① 싼 임금과 가혹한 처우로 불안정한 노동-함바에서 ②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③ 일상적, 치안 단속 대상으로서의 조선인 ④ 지역, 노동 현장으로부터의 배척 ⑤ 자연 발생적 노동 쟁의 반발 등이다. 특히 ①에서의 사례를 나열하고 있는데 매우 구체적이다. 임금은 대부분의 큰 공사장이 하루 1엔 20전에서 90전으로 도야마현 사람에 비해 20~30전이 적다. 그러나 간부 당 2~3할이 공제되고 하루 식대 70~80전이 빠진다. 손에 쥔 일당은 60~70전. 이 돈은 하루 술값으로 사라지는 게 다반사다. 또 하루 12시간의 노동, 판잣집 주거지, 여자보다 술을 동경한다고 적었다.

 


 

"일본에 도항해온 조선인들은 악조건 속에서 노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많은 데이터와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박정식의 『조선인 강제 연행 기록』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일본인의 50~70%에 불과했고 직종은 대부분 토목공이었다고 한다. 일용직 인부의 경우, 고용주나 인부 감독으로부터 평균 30~40%의 중간착취를 당했기 때문에 생활수준은 최하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935년 도쿄의 토목 노동자 및 인부의 세대 당 월 평균 수입은 각각 20엔 78전과 19엔 60전으로 최저 생활을 유지할 정도였다."(p.61)

 

역자 : 박은정

건국대학교에서 일본어교육을 전공하고 일본 도야마대학교에서 석사, 히로시마대학교에서 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검도를 배우면서 문학과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09년 시즈오카 세계번역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아 시즈오카대학교에서 연구생으로 1년 동안 수학했다. 옮긴 책으로는 다케다 타이준의 『반짝이끼』와 나카지마 아쓰시의 『빛과 바람과 꿈』 그리고 『짧았기에 더욱 빛나는: 일본문학 컬렉션 01』(공역), 『발칙한 그녀들: 일본문학 컬렉션 02』(공역)이 있으며,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別れの谷)』(공역)를 일본어로 번역했다.

 

역자 : 안영신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엔도 슈사쿠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동남보건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출강하였고, 타자론과 육체 담론에 관심을 갖고 일본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엔도 슈사쿠 문학과 마르키 드 사드」, 「일본 전후문학과 노년의 젠더」, 「일본 전후문학에 나타난 육체의 표상」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조선’ 표상의 문화지』(공역), 『황후의 초상』(공역), 『짧았기에 더욱 빛나는: 일본문학 컬렉션 01』공역), 『발칙한 그녀들: 일본문학 컬렉션 02』(공역)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의 유전학』. 표제어로부터 오는 강렬함이 이 책의 내용과 잘 맞는다. 표지 그림을 볼 땐 소설 같다는 느낌이지만 제목만 따로 읽는다면 '유전학' 논저로도 보인다. 표제어뿐만 아니라 내용 역시 멋진 제목을 주제로 잘 구성된 소설이어서 독자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내용은 우리 나라가 아닌 구소련 직전과 이후 '소련'의 일을 다루지만 정치적 실제 인물이 중심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이색적'이거나 특이한 느낌으로부터 오는 생소함을 완화시킨다. 과학(의학) 소설임도 확실하다. 19세기 이후에야 체계를 갖춘 '유전학'이 주요 소재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부터 이야기의 발단도 구소련의 탄생 직전이다. 1913년, 시베리아 지역. 극한의 추위가 몰아쳐 사람이 살기 힘든 러시아 제정 변방의 한 도시다. 소비에트 이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왕 때의 이야기다. 다른 유럽 여러 나라는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농노제를 폐지하고 자본주의 제도를 도입해 민주주의 체제와 함께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제정 러시아는 농노제를 여전히 유지하며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더 이상 발전이 불가능할 상태여서 민심은 흉흉하고 러시아는 숨만 쉬고 있는 빈사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미 유럽의 변방으로 치부되던 때다.

당연히 국민들, 특히 농노를 비롯한 농사에 종사하던 사람들과 도시 노동자의 폭동이 오늘 내일 할 정도로 정세는 악화됐다. 큰 거리에서 대낮에도 틈만 나면 범죄가 일상이 될 수밖에 없는 최악의 국가 재정 상태다. 뜻 있는 지식인들은 노동자·농민 등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날짜를 기다린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대부분의 국민들은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해 유럽이 온통 전쟁터로 바뀌어도 전쟁보다 생계를 위한 음식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이 소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한 작은 도시에서 스스럼없이 강도 행각을 벌이는 한 사내에 집중하고 있다. 일을 끝내고 마차에 올라탄 사내가 움켜쥔 손에는 돈자루가 들려 있다. 이 정도면 사내의 윗선인 '그분'이 세상을 뒤엎을 공작금으로 넉넉하다고 속으로 되뇌인다. 30만 루블. 사내는 그 길로 부모와 처자식을 내팽개치고 유유히 고향을 떠난다.

 


 

이 극악무도한 사내가 훗날 10월 혁명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하고, 주변 이웃나라를 모두 통합해 소비에트연맹을 수립한 레닌의 후계자이다. 바로 스탈린이다. 냉혹한 권력의 대명사, 스탈린은 넓은 동토의 소련에 '철의 장막'을 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다. 냉혹한 성격으로 러시아는 소련으로 거듭나며 일정 성과를 거둔다. 그는 국방력을 강화하고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공산주의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그가 어떻게 공산주의 혁명의 주요 일원이 되었는지 이 책에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그는 역대 소련의 서기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우리 나라도 2차 대전 후 소련의 영향력으로 분단됐고, 지금도 반쪽 국가로 한 많은 사람들을 많이도 만든 '악'의 구체적 실체로 인식되고 있다.

이 소설은 스탈린이 태어나고 이후 소련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후 자신들의 나라처럼 냉혹한 권력자의 '유전한 실험'이다. 이 소설의 소재와 주제를 제공한 자는 러시아의 유전학자 리센코 후작이다. 리센코는 러시아에서 빈농이나 다름없는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영재였다고 한다. 그의 능력을 알아 본 제정 러시아 황제는 그의 유학을 지원했고, 유전학과 진화론에 관심이 있었던 리센코는 저명한 스승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공부했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세운 가설을 실제로 인간에게 적용해 실험해 보기로 한다. 추위를 타지 않는 강한 민족을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계획은 황제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고, 그렇게 수백 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인간은 절대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서양 의학의 기본에 입각해서도 인간을 직접 실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의사 이전에 누구도 해서는 안 될 금지 사항 아닌가?

 


 

이 책 『악의 유전학』에서 실험을 주도하는 리센코 후작은 실존 인물인 생물학자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를 모델로 해 탄생한 인물이다. 이 작품에는 리센코 외에도 여러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담겨 있다.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실존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고 여기에 있는 모든 사건을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주요 사건이나 일을 부각시키기 위해 저자 임야비가 소설로 재구성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팩션(faction, 허구+사실)이다. 인간 대상 실험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일제도 했던 일이라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우리도 일본에 의해 유능한 사람이 피해를 보고 옥사한 것으로 처리된 예를 배우고 들었다. 독자로서는 '731부대', '마루타' 등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처음 알게 됐을 때는 증오심이 불탔지만 두 번째 들으니 그때만큼의 충격을 받지 않았다. 다만 일제가 시도한 것보다 이전이란 사실에 '인간 실험'이란 게 일제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느낌에 인간의 '악'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됐다.

이 책에서 리센코가 유전학에서 배우고 느낌 점 중에서 가장 영향을 준 학자와 학설은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용불용설'을 발표한 라마르크의 『동물 철학』이란 책을 통해서다. 이때 라마르크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은 환경에 따라 필요한 부분은 발달, 불필요한 부분은 퇴화되어 유전된다는 ‘용불용설’ 이론을 발표했다. 환경에 의해 ‘획득’한 ‘형질’은 이후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획득 형질의 유전’을 주장힌 것이다. 그 이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완두콩 실험을 통해 얻어진 '멘델의 법칙' 등 유전학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게다가 프랜시스 골턴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열성 인간의 임신과 출산을 막고, 우성 인간의 출생률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우생학’을 주장하며 더 뛰어난 인류를 만들기 위한 주장들이 대두되기도 했다.

 


 

저자 임야비는 의사 출신 작가다. 그가 유전학을 소설 작품으로 쓴 것은 유전학의 실체를 잘 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짐작되는 부분이다. 또 실명을 사용함으로써 소설의 구체적 내용들이 진실일까? 하는 의문의 꼬리표가 붙지만 너무 분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의사로서 저자가 의학이나 생물학에 깊은 조예가 있을 것이고, 작가로의 저자는 허구와 사실의 구분을 하고 소설로 구성했을 터이다. 옳다 그르다를 위한 사실 관계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다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사실 독자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대화나 기타 표현, 묘사, 인물 연관 관계 등이 저자가 창조한 내용이지, 사실 기록은 아닐 터이니 내용만 파악하면서 읽으면 훨씬 흥미로울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구성을 잘하면 스토리는 가끔 사실 여부에 관계 없이 독자들이 사실, 진실로 믿게 되기 쉽다. 이런 점만 배제한다면 이 소설 작품은 한결 재미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리센코가 스물한 살이 되던 1856년, 자신만의 확고한 이론을 완성한 그는 내로라하는 유전학자들의 책을 모두 덮어 버렸다. 그는 세계 최초로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간에게 적용해보기로 결심한다. 영국에서 '일란성 쌍둥이'와 '천재의 혈통' 연구의 권위자인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을 무작정 찾아가 자신이 확립한 이론을 대학자인 골턴에게 내민다. 골턴은 젊은 '러시아 천재'의 이론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론이 법칙으로 성립하려면, 반드시 실험적 증명과 과학적 통계가 수반돼야만 한다고 조언해준다. 자신이 고안한 통계학을 전수해 줄 수 있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시간적, 윤리적, 재정적 문제로 시도 자체가 힘들다는 쓴소리도 건넨다. 하지만 리센코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러시아로 되돌아온 리센코는 자신의 이론을 적용해 법칙으로 만들기 위해 계획한 인간 대상 실험을 실천을 옮긴다. 자신의 유전학을 이용해 인간을 강한 유전자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자신이 세운 이론을 법칙으로 정립하기 위해 제정 러시아 황제의 도움을 받는다. 정확히 1년 후 리센코는 연구원들과 50명 정도의 군인을 이끌고 유쥐나야로 들어온다. 이들은 곧장 홀로드나야의 수도원으로 가서 250명의 남자아이와 250명의 여자아이가 들어와 있었다. 이 중의 한 명이 케케, 스탈린의 어머니가 있었다.

 


 

인간을 개조하겠다는 목적으로 자행된 루센코의 실험에서 피실험자였던 사내의 어머니(케케)는 한 살 때 투루한스크 지역의 산속 마을로 옮겨졌다. ‘기적의 케케’라 불리며 행복하고 사랑과 설렘이 있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실험체로 철저히 이용당하며 처절한 삶을 살다가 결국은 베소(스탈린의 아버지)와 그곳을 탈출하게 된 20년 동안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준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아들과 함께하는 날 밤, 케케는 자신이 살아온 곳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모든 진실을 꺼내 놓는다.

그로부터 6년 후, 사내는 다시 고향 마을을 찾아온다. 그사이 사내의 아내 카토와 아버지 베소는 죽어 세상에 없었다. 사내는 각종 폭동, 테러, 파업, 방화, 강도, 암살 등을 일삼으며 잡혔다 탈출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는 멀고도 추운 지역, 투루한스크로 유형을 가게 되었고, 유형 가기 전날 밤 어머니를 만나러 집에 들른 것이었다. 투루한스크로 가게 되었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 케케는 그동안 품어 왔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마음먹는다.

 

“네 아비 베소는 악마가 될 만한 배포가 없는 사람이었다. 한낱 불쌍한 주정뱅이일 뿐이었어.”

평생 술을 입에 대 본 적 없는 노파가 테이블로 잔을 가져와 보드카를 따랐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짜 악마는 따로 있다. 그 악마가 베소와 나를 완전히 망가뜨렸어.”

노파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보드카를 반 잔이나 마셨다. 아들은 난생처음 보는 어머니의 음주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평생 숨겨 왔던 비밀을 막 풀려는 참이었다.(p.19)

 


 

의사 출신의 저자는 ‘유전학’과 ‘우생학’이라는 과학 지식과 정치적 이념이 일상을 지배했던 19~20세기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악의 유전학』을 구상했다. 우생학을 통해 ‘강한 나라’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진 과학자 ‘리센코’와 그 과학자의 실험체로 20년 동안 산속 마을에 갇혀 살았던 수백 명의 아이들, 그리고 그곳에서 탈출해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실험체 ‘케케’. 그리고 케케의 아들, 반전의 ‘사내’.

이 책 『악의 유전학』에는 실존 인물을 토대로 과학적 사유와 역사적 사실을 자연스럽게 엮어,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20개월 동안 1600여 쌍의 쌍둥이로 인체 실험을 자행했던 것처럼 당시 러시아에서도 실제로 이와 같은 실험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촘촘한 구성과 철저한 고증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케케는 저수지로 걸어갔다. 후작의 방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하얗고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저수지 옆에 놓인 큰 돌을 양손으로 들고 빙판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누군가 뚫어 놓은 작은 구멍이 있었다. 큰 돌로 구멍 주변의 얼음을 깨 커다란 검은자를 만들었다. 케케는 돌을 품에 안고 얼음 구멍 앞에 섰다. 각막이 간지러워 올려다본 밤하늘은 오롯이 오로라 차지였다. 케케는 언덕 위 수도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녕, 베소.”

엄마의 자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케케는 흰자 속으로 가라앉았다.(p.208)

 

저자 : 임야비

 

서울. 시월생.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유리알 유희를 하며 여러 유형의 글을 쓴다. 대학로 극단에서 연출부 드라마투르그로 일하며, 총체극과 클래식 연주회를 기획 및 연출한다. 2020년 장편 소설 《클락헨Clock-Hen》을 출간했고, 2022년에 출간한 증언 문학 《그 의사의 코로나》는 <신과 함께>를 제작한 대형 영화 제작사, 리얼라이즈 픽처스와 영상화 계약을 완료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