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슬 수집사, 묘연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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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밤이슬 수집사, 묘연』은 몽환적이며 교훈적이다. 저자 루하서는 우리의 전래동화 같은 순수한 감정으로 소설을 끌어간다. 삶과 죽음의 세계를 드나드는 인물로서 신비롭고 몽환적 분위기의 세상을 오가는 동물이라면 단연 고양이가 으뜸이다. 더욱이 고양이는 야생성을 유지하면서도 사람과는 친숙하다. 요즘 반려동물 붐에 고양이가 1위를 다투는 이유다. 묘연은 낮에는 고양이,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인물로 천사 같은 이미지로 저자가 창조한 캐릭터다. 묘연이 하는 일 역시 신비롭다. 고양이는 낯선 이에게 살갑지는 않지만 유연하고 악의적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기에 반려 동물에 안성맞춤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야생성을 잃지 않은 것이 신비로운 인물을 의인화할 때 적합한 이미지다. 밤에 하는 일은 '밤이슬 수집사'다. 조금은 엉뚱한 직업이지만 하는 일은 신비감과 교훈을 준다.

묘연은 죽음에 처한 인간들을 찾아가 그들에게서 밤이슬을 모은다. ‘밤이슬'은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과거와 내밀한 사연의 상징물이다. 묘연이 하는 일은 그것을 수집하는 일이다. '수집사'라는 직업 또한 저자의 해석이 붙는다. 모은다는 의미의 집(集), 집사 등 직업에 붙이는 사(士)면 '집사'다. 집사는 대체적으로 집안 일을 거드는 사람들이다. 외국의 귀족들은 큰 집안 일을 담당하는 '집사'라는 직업을 따로 두었으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일부 양반집에 집사가 있었던 것으로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대체로 문자를 조금 알고, 계산 등에 밝은 중인계급에서 뽑힌다고 들었다. 묘연은 집사들이 모여 사는 미다스 대저택의 우두머리 '수'(首) 집사이다.

 


 

이 작품은 저자의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주인공 이안은 아버지의 행방불명 이후 어려워진 생활로 비뚤어진 채 살아오다 홀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빚과 우울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노신사. 그는 이안에게 3개월의 집사직을 조건으로 30억 원이라는 거금을 제안한다. 느닷없는 노신사의 출현과 사기인지 횡재인지 모를 수상한 거래를 자살을 시도했던 이안으로서는 미심쩍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을 터, 수락한다. 이렇게 이안은 자살하려다 말고 미다스 저택의 신입 집사가 된다. 이안이 맡은 특별한 일은 묘연을 보필하는 것. 낮에는 고양이로 지내다 밤이 되면 묘령의 여인으로 변하는 ‘묘연’의 일을 수행하며 도울 것을 제안받았다.

간단한 일에 거금을 준다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저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사유한 결과라고 생각되면 문제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이젠 당초 제안한 대로 수집사 묘연의 일만 열심히 도우면 될 일이다.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해 인간은 살아 있을 때는 미처 모르다가 죽음이 목전에 닥쳤을 때에야 느낄 수 있는 귀한 감정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한 인간의 죽음을 앞두고 과연 어떤 감정이 들까? 어떤 생각을 할까?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면 결코 가볍거나 소홀히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공감이 간다. 많은 이들이 회환의 눈물도 흘릴 것이다. 잘못 살아온 후회도 할 것이다. 또 아직 못다 이룬 일에 대해 안타까운 감정의 회한도 있으리라. 그들의 눈물의 의미는?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로 무장하여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몽환적 판타지 소설로서 낮에는 고양이,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묘연’이란 신묘한 인물이 중심이 된다. 표제어가 압축적이다. 책을 드는 순간부터 독자들은 삶과 죽음이 중첩되는 새로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게서 잠시도 떨어지기 힘들다. ‘밤이슬 수집사’들이 만나는 인물들은 이제 곧 저 세상으로 옮겨갈 사람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게 뭘까? 궁금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기발하면서도 감동적인 이 책이 탄생한 이유다. 기발한 직업뿐만 아니라 저자는 새로운 장치들도 개발했다. ‘미다스 대저택’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부자로 이름난 프리지아의 왕에서 빌려온 용어인 듯하다. 손 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화시킨다는 내용을 차용한 것 같다. 상징적 의미로. 또 이와 반대로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는 ‘백로 징벌소’와 같은 설정은 저자가 이 소설을 구상할 때 많은 고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만들어낸 단어들이 꽤 있다. 상징적이지만 '이슬'은 맑고 곱다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노신사(할아버지)가 이슬에 대해 이안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생은 때론 길고, 때론 짧기도 하지. 생이 길어서 후회가 되는 일도 있고, 짧은 생이라서 후회가 남기도 해. 그래서 사람들은 끝이라 생각한 순간에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 떠오르게 되는 거야.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후회의 눈물, 그것을 우리 집사들은 '이슬'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이슬을 얻어 오는 것이 '미다시 대저택' 집사의 일이다."(p.47)

 

 

'루인'이란 단어도 등장한다. 눈물 루(淚), 사람 인(人)'이라는 의미다. 글자 그대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뜻한다. 왜 루인이 등장할까? 당연히 이슬을 얻어 오는 집사들이 만날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2장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 눈물 ‘루’, 사람 ‘인」에서 친절한 설명이 있다. 묘연을 따라나선 이안과 대화 중이다.

"혹시 자살 예정이라는 거 말고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나요?"

"그건 왜 묻지?"

"여기까지 왔는데 루인이 죽는 건 말려야죠."

"이안 집사, 혹시 계약서 제대로 숙지 못했나?"

묘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읽긴 제도로 읽었는데···."

 

"그 정도의 나약한 의지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

묘연은 냉철한 눈빛으로 엄격하게 말했다.

"우리는 매번 이렇게 죽음과 삶을 마주하게 될 거야. 그 경계선에서 삶을 선택하든, 죽음을 선택하든, 그건 오롯이 루인의 몫이다. 모든 사람을 우리가 살릴 순 없어. 사자들의 업무를 우리가 가로채는 건 저승과 이승의 암묵적인 협의를 깨는 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집사들은 더 이상 이슬 수집 임무를 할 수 없게 된다."(p.87~88)

 


 

'천수록'도 재미 있는 표현이다. 원래 있는 단어인지, 저자가 만들어낸 말인지 독자는 알 수 없지만 뜻은 짐작이 간다. 특히 제목에 들어 있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뜻이다. 네 번째 장(章)의 제목이다.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 - 천수록」. 이안의 궁금증을 묘연이 설명해준다. 책에 따르면 세상에 있는 병은 수만 가지도 넘는다. 생각보다 병이란 건 예측이 어렵다. 2달 정도밖에 못 산다고 했던 시한부 환자가 2년이 넘도록 살기도 하고, 반대로 가볍게만 생각했던 병 때문에 하루아침에 돌연사하기도 한다. 병사 같은 경우에는 저승사자가 아닌 천수 선생님이 루인의 죽음을 관리한다.

"천수 선생님이요? 생전 처음 들어봐요. 저승사자는 워낙 많이 들어봤지만."

"예로부터 신선은 고통이나 질병이 없으며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전해 오지. 천수는 하늘 '천', 목숨 '수' 하늘이 부여한 수명이라는 뜻이다. 그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정해 주시는 분이 천수 선생님이시고."(p.154)

묘연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중간에 변수만 없다면 정해진 수명대로 삶을 살다가 떠난다. '천수를 누린다'는 말은 하늘이 정해준 만큼 생을 다하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병은 저승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운명에 예기치 않게 끼어든 불청객 같은 것이라고 묘연은 설명한다. 죽을병에 걸리는 것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발병을 하는 것이라서 다른 누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피하기 어렵다. 저승에서도 이 부분을 제일 난감하게 생각한다는 말도 묘연은 덧붙인다. 천수 선생님도 병은 이승에서의 돌발 상황이기에 모두 다 완치시킬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다만 천수 선생님이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친다고도 한다. 환자의 기준은 '살고자 하는 의지'와 약간의 '운'임도 말해준다. 즉, 병에 걸려 자신의 삶을 더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와, 또 하나 운은 이승의 '의사'라고 표현한다. 의사를 '이승의 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말한다.

 


 

새로운 단어가 하나 더 눈에 띈다. '백로 징벌소'다. 이안을 여기 데려온 할아버지 집사인 노신사가 백로 징벌소에 들어갔다. 업무 중 과실이어든지 중대 죄는 아니라고 한다. 그곳을 할아버지를 구하러 묘연과 이안이 간다. 책의 7장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 백로 징벌소」이다. 이곳은 죄를 지은 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다. 백로 어른이란 묘연의 부탁이라 특별히 지나갈 수 있는 혜택을 준다고 생색을 내듯 통과를 허락한다. 백로는 그곳의 지키는 총책임자인 것 같다. 분위기가 감옥인 만큼 안과 밖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부로 들어서면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처럼 생긴 길이 나온다. 음산한 비명이 아우성처럼 계속해서 들린다. 처음 들어간 사람은 혼이 나갈 지경이다. 길 양쪽으로 방들이 이어져 있는데 모두 죄수들이 갇혀 있다. 할아버지가 갇혀 있는 곳은 10739번 방. 무려 10000번이 넘은 방까지 걸어들어갔다. 저자의 묘사 능력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결국은 묘연의 재능과 이안의 순수함이 합쳐져 탈출에 묘연이 크게 다쳤지만 성공한다. 이 대목에선 이안과 묘연의 인간적 감정, 사랑이 엿보인다.

 

긴 시간이 흘러서 묘연이 겨우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용히 처소를 나섰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실은… 너까지 잃게 될까 봐… 겁이 났어.”(p.259)

 

저자 : 루하서

 

하늘빛 바다가 보이는 고즈넉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현실에 순응하느라 천성에 맞지 않은 회계를 전공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이끄는 건 여전히 글이 전부라 늦게나마 작가가 되었다. 무수한 감정, 무한한 상상, 그리고 영원한 꿈을 담아 글을 쓴다. 필명은 일상에서 만나는 다정한 위로를 담았다.

가족, 글, 고양이. 가족 이름의 ‘하’, 글 ‘서’, 고양이 이름의 ‘루’ 또 하나는 눈물 ‘루’와 축하하는 글 ‘하서’라는 뜻도 있다.

소중한 추억 상자 속, 고이 담겨 있던 눈물의 페이지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축복을 전하는 한 권의 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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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 -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
존 서덜랜드 지음, 강경이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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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로빈슨 크루소』이란 소설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다준 5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에 들어 있는 책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50번 책에 매겨져 있는 번호 중 『로빈슨 크루소』는 15번째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해 단 한 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도 걸렸다. 여름 방학 기간이어서 집에서 읽었는데 어머니가 점심 먹고 보라고 독촉했는데도 결국 다 읽고 난 뒤에야 손에서 책을 놓았다. 물론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 거의 저녁 시간이 되어서 점심은 걸렸다. 그만큼 재밌었다. 사실 식사를 거르면서 책을 읽은 적은 그 이후로도 없다. 책의 제목도 『로빈슨 크루소』였고 소설 속 주인공이 노예상이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그때는 무역상이라고 책 서두에 얼핏 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이후 독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 소설로 남아 있다.

이 책 『문학의 역사』에서도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다. 독자의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몇 권 건성으로 읽었지만 한결같이 문학의 기원이라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들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시다. 이 두 시는 강력한 두 세력,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벌어진 오랜 전쟁을 다룬다고 이 책은 설명을 시작한다. 고고학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호메로스는 '신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을 창작했다. 시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모험을 한다. 한번은 그의 선원들과 함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혀 동굴에 갇힌다. 이 괴물의 외눈은 이마 가운데에 있다. 그는 배가 고프면 동굴에 붙잡힌 포로 한 명을, 주로 아침 식사로 잡아먹는다. 영웅들 중 가장 영리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를 술에 취하게 한 뒤, 그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고 선원들과 함께 탈출한다. 이 신화의 진실은 외눈에 있다고 저자 존 서덜랜드는 말한다. '문제의 양면'을 볼 수 없거나 보지 않으려는 사람의 상징적 의미로 저자는 해석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조금은 원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신화는 그것이 창조된 시대만큼이나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진실의 조각을 항상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서사시의 시작이 시대를 훨씬 거슬러올라가 BC 2,000년께 지어진 『길가메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점토판의 글자를 해독해 밝혀진 사실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최근 『길가메시』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 책을 모두 40장(章)으로 나뉘어 서술하고 있다. 『문학의 역사』라는 표제어 옆에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1장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책 『로빈슨 크루소』가 나온다. 책 이야기는 아니지만 〈BBC 라디오〉의 최장수 인기 프로그램이자 BBC 월드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청취할 수 있는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출연자들에게 묻는 두 가지의 고정 질문이 있다. 첫째, 사치품 하나를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와 또 하나의 질문은 성경 외에 단 한 권의 책을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고 한다. 단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이미 섬에 있다. 아마 먼저 섬에 머물다 청산가리 알약을 선택한 조난자가 놓고 간 듯하다고 선택을 독자들에게 슬쩍 던진다.

이를 전제로 던진 질문은 책의 시작 문장을 설명하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고립되어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상황에서 책을 단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저자의 질문 속에 로빈슨 크루소가 연상된다. 유도를 위한 질문일까? 저자가 50년째 듣고 있는 이 방송의 초대 손님은 외로운 여생의 동반자로 위대한 문학 작품을 선택한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제인 오스틴이다. 수천 회에 이르는 방송에서 거의 모든 초대 손님은 자신이 이미 읽은 작품을 선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반응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추출해낸다. 첫째, 우리는 분명 문학이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다. 둘째, 문학을 '소비'한다고들 하지만 접시 위에 놓인 음식과 달리 우리가 소비한 뒤에도 문학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로빈슨 크루소』를 다루는 장이 아닌 곳에서도 자주 인용한다. 이유는 독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영국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1719년 첫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인물의 자전적 이야기로 다가갔다고 한다. 표지부터 저자 대니얼 디포의 이름 대신 '로빈슨 크루소'와 '자신이 직접 쓴'이라는 문구를 내세웠다고 저자는 밝힌다. 게다가 그처럼 섬에 고립된 선원의 실제 이야기가 몇 년 전 출간돼 인기를 끈 터, 영국 문학 최초의 소설 작품은 이처럼 사실주의의 특징 역시 보여줬다고 귀띰한다. 이 책 『문학의 역사』는 이런 소설이 자본주의와 나란히 등장한 것이 우연은 아니란 점을 강조하면서, 고립된 채 자신의 힘으로 재산을 일군 로빈슨 크루소는 이른바 '호모 이코노미쿠스'이기도 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영국의 문학교수로 이미 수십 권의 저서로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저자는 영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일반인을 겨냥한 문학 이야기이자, 영국 중심의 문학사를 이 책 『문학의 역사』로 풀어냈다. 디포, 오스틴, 브론테, 디킨스, 울프 등 낯익은 작가는 물론 이름만 들어본 서사시 '베오울프'나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등도 그 특징을 뚜렷이 포착해 문학사적 의미를 알기 쉽게 전하고 있다. 모두 40개의 각 장은 개별 작가·작품만 아니라 문학이 무엇이고, 독자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영화의 각색은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그리고 검열·문학상·저작권·베스트셀러 등을 주제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썼다.

영국과 미국의 비교도 재미있다. 18세기 초 최초의 저작권법이 생긴 영국과 달리 미국은 19세기 말에야 관련 국제협정에 가입했다. 그전까지 미국에서는 영국 등의 작품을 저자 허락없이 출판한 '해적판' 책들이 많았다. 또 미국이 19세기 말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을 도입한 반면 영국의 출판업계는 1970년대 중반까지도 이를 거부했다.

 


 

앞서 잠깐 살폈지만 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근원적인 질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질문 속에는 문학을 둘러싼 수많은 궁금증과 논쟁이 내포되어 있다. 책에 따르면 문학의 기원부터 변화 과정, 역할, 가치 또는 효용성, 형태, 방식, 미래 등. 이들 중 한 가지만 선택해 서술하더라도 엄청난 분량의 글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문학의 세계는 드넓고, 복잡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때문에 문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흥미를 돋우는 유효적절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써내려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대 언어로 쓰인 서사시부터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그리고 시대별 문학에 영향을 준 여러 분야의 사상적 흐름과 사건들, 작가의 성장 배경과 사적인 이야기, 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등등을 꿰뚫어봐야 할 뿐만 아니라 주요 문학 작품을 직접 읽어 자신만의 관점을 명확히 정립해야만 문학의 역사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문학 관련 책을 스무 권 이상 저술하고 부커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저자 존 서덜랜드는 이 책에서 당대 문학의 전개 양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일반론적 관점에서의 접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문학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연결 통로가 되어준다는 게 저자의 문학관이다. 따라서 저자는 최고의 문학은 세상을 단순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정신과 감수성을 확장시켜 복잡성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한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중요한 맥락을 짚어주는 문학의 역사를 개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오늘날 책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갖는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문학의 역사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 지점은 1789~1832년이다. 이유는 ‘낭만주의’다. 키츠, 워즈워스, 바이런, 콜리지, 셸리 등이 주도한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과 동시에 일어났으며, ‘이데올로기’를 중심에 둔 최초의 문학 운동으로 여겨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문학이란 무엇이고,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를 광범위하게 재정의하려 했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문학을 쓰고 읽는 방법을 영원히 바꾸어놓은, 일대 혁명과도 같은 사조였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변화’는 이 책의 기저에 놓인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20세기 이후의 문학은 장르의 세분화와 매체의 다양화, 국경 없는 세계문학, 독서 대중의 영향력 확대와 적극적인 참여 등으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학 작품의 각색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더 가속화하고 있는데, 새롭게 해석되고 구성되는 영화나 드라마, 디지털 콘텐츠가 원작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몇백 년에 걸친 통신의 성장과 국제 무역, 특정 ‘세계어들’의 지배는 작가와 독자가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작가는 전 세계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쓰고 독자는 작가와의 대화, 독서 모임 등 새로운 소통의 길을 갈망하게 되었다. 한편 출판 산업은 문학 소비자인 독자의 취향을 최대한 알아내기 위해 정밀한 시장조사에 많은 비용을 들인다. 세계적인 주요 문학상이 문학의 발전과 독자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업화를 지향하는 대중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번역본이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까지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 등도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책에는 일부 미국 문학과 카프카 등의 부조리 문학,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 현대의 판타지 문학이나 팬픽, 모옌이나 하루키 같은 아시아 작가들 얘기도 나온다. 시대는 바뀌고 필사본·인쇄본·전자책 등 형태도 달라질망정 문학의 힘과 대중의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저자의 낙관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이 책은 문학의 현재와 과거뿐만 아니라 문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세 가지의 기본 조건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문학의 범람이라는 환경적 변화, 다감각으로 즐기는 문학의 향유 방식, 저자와 독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인터넷 ‘팬픽’의 폭발적 성장과 같은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포장이다. 물론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그만큼 우리는 선택지가 많아졌고, 원하는 문학을 무한정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과연 문학에, 또는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문학과, 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과 문학 참여자들의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문학이 지닌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문학이 공동의 것인지도 탐색한다.

 

저자 : 존 서덜랜드(John Sutherland)

 

영국의 문학자이자 칼럼니스트, 작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근대 영문학 로드 노스클리프 명예교수로 다양한 레벨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가디언〉에 문학 서평을 쓰는 한편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쓰고 엮었다. 1999년과 2005년에는 부커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지은 책으로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How to Read a Novel)』, 『당신이 알아야 할 50가지 문학 아이디어(50 Literature Ideas You Really Need to Know)』, 2013년에 출간되어 광범위한 찬사를 받은 『소설가들의 삶 : 294명의 삶으로 본 픽션의 역사(Lives of the Novelists: A History of Fiction in 294 Lives)』 등이 있다.

 

역자 : 강경이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번역 공동체 모임인 펍헙번역그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철학이 필요한 순간』, 『절제의 기술』,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걸 스쿼드』, 『길고 긴 나무의 삶』, 『과식의 심리학』, 『천천히, 스미는』, 『그들이 사는 마을』, 『오래된 빛』, 『아테네의 변명』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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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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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마치 꿈속처럼 달콤하기도, 때로는 뱉어내고 싶은 악몽도 있지만 그 꿈속을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현실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일까. 이 소설에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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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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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신체 조각 미술관』은 호러 단편 소설집이다. 모두 8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기담 전문 작가'라는 별칭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기담의 호러 분야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표제어가 된 「신체 조각 미술관」이 하나의 단편으로서 가장 이색적 부분이어서인지 그대로 표제어가 되었다. 그가 호러 소설을 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작 『기요틴』과 『카데바』으로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호러 소설로 이미 호러 소설 대표 작가의 1인이 되었다. 이번 세 번째 책은 단편집이다. 표제어인 「신체 조각 미술관」은 독자들의 공포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다. 이 미술관은 관장이자 조각 예술가인 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한다. 딸은 해설사(도슨트)인 딸이 관람객들에게 작품의 이모저모를 해설해준다. 일반 미술관과 다른 점은 사람의 신체 일부를 조각품으로 만들어 전시한다는 점에서 특이함을 뛰어넘어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아무리 예술적 작품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신체를 동물의 박제처럼 제작해 전시한다는 것은 법과 윤리를 떠나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호러물이고 상상의 표현이기에 가능한 것일 터, 독자들이 호응도는 예상하기 어렵다. 허구의 이야기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미술관의 이름은 〈더 바디 갤러리〉. 전시 예술품의 재료가 되는 신체는 당사자(혹은 관리자)에게 허락을 구하여 기증 받는다. 이 이야기는 관람객인 ‘나’에게 작품을 설명해 주는 큐레이터 ‘수란’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다. 조각가인 수란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딸 수란은 자신도 죽은 연인을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나’에게 말한다. “모두 이렇게 새 생명을 얻었으니, 저희는 더 이상 슬프지 않습니다.”

 


 

큐레이터 수란의 해설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더욱이 제작 과정을 알려 줌으로써 독자들의 공포심을 더욱 자아내지만 수란의 해설로 다소 완화되기도, 혹은 증폭되기도 한다. 수란은 준비된 해설사이다. 작품 설명 중간 중간에 제작 과정을 슬쩍 곁들이며 '의도적으로' 공포심과 불안감을 자극한다. "지하 공간은 꽤 광활하고 층고도 높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작될 작품들이 놓일 빈 공간도 있고, 관장님의 작업 공간도 있고, 작품 재료를 보존하는 냉동고가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작업장과 냉동고는 보안상 공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p.10) 작품 제작시 방부 처리된 신체를 특정 약품을 이용해 시신이 서서히 굳도록 합니다. 피를 빼거나 피부나 근육, 장기를 제거해야 하는 경우에는 추가적인 작업이 요구되지요. 곧 보면 아시겠지만 제거한 신체의 일부도 대부분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신이 다 굳기 전에 절단하거나 고인이 생전에 의뢰한 형태로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중략) 숨이 끊어지고 난 후 자신의 신체가 썩거나 재가 되기보다는, 이렇게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지 않답니다. 작품이 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도 더러 계시고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마치 도살자들이 도살된 동물 다루듯이 말하는 바람에 오싹한 느낌이 든다. 소름도 돋고, 얼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큐레이터의 설명이 갈수록 가관이다. 심지어는 태아의 시신들로 이루어진 작품도 있다. 〈인간〉이라는 작품이다. 큐레이터는 이 작품을 설명하며 가족이 참여해 오랜 기간 걸려 제작했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사무적으로. "여기 사람 모양의 조각이 서 있습니다. 생김새가 여성인 것도 같고, 남성인 것도 같은 모호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기가 각기 다른 수많은 태아의 시신들이 겹치고, 이어지고, 쌓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손가락 한마디만 한 태아도 있고, 이미 다 큰 신생아 크기의 태아도 있습니다. 그동안 관장님을 비롯해 저의 가족이 오랜 기간 기증받아 온 태아의 시신을 거두어 이렇게 하나의 인간을 구현해냈지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가여운 영혼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큐레이터는 작품 해설에만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의뢰자들의 ‘신체 기증 서약서’ 겸 ‘작품 제작 의뢰서’도 받는다. "의뢰자분께서 직접 작품이 되기로 마음먹으신 거군요. 네, 이곳에서 저희는 의뢰자를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아름답게 재탄생시켜 드릴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요청하신 양식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내 신체가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되는 곳, ‘더 바디 갤러리’에 찾아주시고 의뢰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십니다."(p.25)

이렇듯 잔인하고 참혹한 이야기에는 기묘하게도 ‘죽음’에서 비롯되는 아련한 슬픔이 있다. 사랑하는 존재를 다시 보고 싶어서 신체를 조각으로 만든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되레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현실 불가능한 일이 소설 속에서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두 작품 〈블루홀〉과 〈바닷가〉도 흥미를 끈다. 이 작품들은 ‘상실’의 공포를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각각 아내 혹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주인공들이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바닷가에서 겪은 기묘한 체험으로 풀어 썼다.

바다를 사랑해서 해양구조사가 된 주인공은 결혼 1주년 아내와 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기 위해 왔다. 그러나 날씨가 나빠 철수하려다 아내가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듣는다. 말릴 틈도 없이 지연이 바다에 뛰어들고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삼일 밤낮으로 격랑을 헤치며 찾아다녔지만 바닷 속에도 바다 위에서도 그녀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바다 같은 걸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다. 프리다이빙 같은 걸 즐기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렇게 했다면 지연이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후회가 눈앞을 가린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찾다 찾다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물 속으로 끊임없이 찾아다닌 끝에 결국 아내 지연의 시신을 발견한다. 아내 지연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순간, 내가 살아서 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서서히 아내를 안고 아래로 향해 들어간다. 물살이 더 거세지면서 허우적거린다. 지연을 안은 채 물살에 몸을 맡긴다. 순간 손을 붙잡는 느낌! 꿈이다. 결과가 다소 진부하지만 오랜 만에 읽어 스릴이 있었다. 실감나게 써내려간 저자 덕분이리라.

 


 

반면, 〈어떤 부부〉와 〈내리사랑〉은 어느새 애정보다 더 커져버린 증오 때문에 끝내 파국에 치닫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푸른 인어〉는 희귀하고 신비로운 존재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한밤중의 어트랙션〉은 욕망과 치기에 휩싸인 젊은 남녀의 어리석음을 벌하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꿈에 관한 이야기들〉은 작가가 직접 겪은 가위눌림에 관한 일화를 녹여 가상의 기담으로 만들어냈다.

다양한 작풍과 소재로 쓰인 이야기들이지만, 이스안 저자가 그려내는 세계에서 ‘꿈’과 ‘죽음’은 빠지지 않는 두 가지 주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죽음이 가장 두렵”지만 “쓰는 소설마다 빠지지 않아서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독자들이 호러소설을 보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주제는 가장 무섭고 피하고 싶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시선이 향하고 마는 인생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저자 : 이스안

 

1992년 12월 출생.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공부했다. 인형 수집가이자 공포영화 마니아이기도 하다. 2018년 북악문화상에서 〈사주〉로 가작을 수상했으며 소설, 에세이, 여행, 사진, 매거진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있다.

출간한 작품으로는 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포토 에세이 『유리코』가 있고, 앤솔러지 『기기묘묘 ? 괴양이 앤솔러지』 『괴이, 도시 ? 만월빌라』에 참여했다. 키덜트 분야 저서로는 『담벼락 위 고양이들』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장난감 수집가의 음울한 삶』 『하찮은 뽑기 장난감들』 『DOLL TOWN』이 있으며 매거진 〈토이크라우드〉를 올해 선보일 예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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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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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근원은 어디인가, 어떤 트라우마를 남기는가. 사회학적 고찰을 위해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우리 신체와 비교해가며 따져들어간다. 독자들에게 재미보다는 영감을 훨씬 더 많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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